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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수

last modified: 2015-04-08 06:06:3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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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리그 득점왕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유병수(인천 유나이티드) 데얀 다미아노비치 (FC 서울)

FC 로스토프 No.10
유병수(兪炳守 / Yoo Byung-soo)
생년월일 1988년 3월 26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포지션 공격수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2009~2011)
알 힐랄(2011~2013)
FC 로스토프 (2013~)
별명 월미도 호날두사실은 드록바
국가대표 3경기

Contents

1. 개요
2. 스타일
3. 시즌
4. 대표팀

1. 개요


인천 팬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선수
한국프로축구 역사상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1]

대구 신암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 이후 서울 둔촌중학교에 진학, 경기당 1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언남고등학교 시절 백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 득점[2]상과 추계 한국고교축구연맹전 득점상을 수상.
2008년 홍익대학교에서 전국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우승을 이끌고 도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대학을 휴학하고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이 결정되었다. 인천은 유병수를 데려오며 승환을 제주로 이적시켰다. 당시 팬들은 이 결정에 우려를 표했지만 안종복 사장과 페트코비치 감독이 모두 유병수의 잠재성을 믿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 결정은 인천의 10년을 결정지을 용단이었다.

2.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전형적인 스트라이커 스타일이다.[3]
키가 크지는 않지만 위치선정이 좋아 셋피스에서 헤딩 성공률이 매우 높으며, 헤딩의 기술도 좋다. 왼발 오른발 모두 사용 가능하고 상대와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다. 또한 빠르진 않지만 특유의 스텝과 폼을 이용한 스피드 완급조절 드리블이 뛰어나 돌파[4]에도 자신이 있어 1:1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높은 확률로 득점으로 연결하는 '득점기계'. 프리킥 능력까지 장착하고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전방에서 볼을 따내고 지켜내는 능력도 준수하다. 때문에 밀집 수비 내에서 몸싸움으로 수비를 등지고 버텨낼 수 있어서 2010년 집중견제에도 엄청난 득점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었다.
슈팅은 박주영이나 여타 한국 국대급 공격수처럼 로빙슛 같은 기술적인 슈팅을 선호하기보단 짧고 간결하게 차거나 특유의 허벅지로 강하게 차는걸 선호한다.

가장 큰 장점은 오프사이드를 거의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프사이드를 만들지 않고 1:1 상황을 만들어내는 플레이가 상당히 좋다. 은근히 쉐도우 성향이 강한 공격수이다. 실제로 2009시즌엔 챠디 및에서 사실상 공미에 가깝게 뛰기도 했고 2010시즌에도 브루노 밑에서 2선 자원으로 뛰기도 했다.

그리고 밑에 적시된 내용과 기록을 보면 확실히 골냄새를 맡는 능력은 탁월할 정도.

또 유병수가 활약하던 시절 인천 공격진과 미들진은 잉여들로 가득했다. 괜히 잉천이란 별명이 나온 것이 아니다. 박주영은 히칼도가 있었고, 데얀은 몰리나와 하대성이 있었고, 김신욱에겐 한상운과 이근호, 하피냐가 있고, 이동국에겐 에닝요와 루이스, 최태욱, 레오가 있었는데 유병수는 아무도 없었다...당시 1:1찬스 5회 무산, 골키퍼 제치고 백패스하던 강수일은 있었다. 이 시절 인천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반쯤은 혼자 힘으로 득점왕을 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덕분에 마크만 네다섯씩 붙었지만 밀집 수비를 부숴내는 저돌적인 시도가 장점이기도 하다.[5]

다만 볼을 소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력이 적은 점이 아쉽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대표팀이던 올림픽 대표팀이던 인연이 없다. 아무래도 프로팀과 대표팀은 요구하는 롤이 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방압박은 토나올정도로 잘했다. 전방압박으로 탈취한 공으로 골을 만든게 한두번이 아니다.

알 힐랄로 이적한 뒤로는 다양한 롤을 수행하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반대급부로 골이 줄어든 부분은 아쉽다.

3. 시즌

2009년 시즌 개막전 부산과의 경기에서 전반 이준영의 헤딩패스를 이어받아 데뷔골을 기록했다.
유병수는 약 40m 거리의 프리킥 찬스에서 강력한 무회전 프리킥을 구사하면서 인천 호날두라는 별명을 얻는다. 특유의 엠블렘을 입에 물고 질주하는 세레모니로 인천 팬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보너스.
첫 시즌 리그 27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며 인천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리그 막판까지 김영후와 경쟁하며 신인왕을 노렸지만 아쉽게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2010년 시즌에는 인천의 대들보로 자리 잡았다.
7라운드까지는 슬럼프라고 느껴질 정도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무득점,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4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6] 이후 폭풍같이 매경기 득점포를 몰아치며 K리그 득점 1위를 수성했다.
2010년 정규시즌이 종료되고 득점왕을 달성했다. 리그 28경기 22골. 경기당 약 0.79골의 위업을 달성하며 수상이 확정되었다. 몰아 넣기가 많아서 편차는 심하지만, 아무튼 평균은 경기당 0.785골이다.
여담으로 유병수 혼자 광주 상무 불사조의 시즌 팀 득점보다 무려 5골이나 더 넣었다(...)

실감이 잘 안난다면 이때 유병수 나이가 만 22살이고, 이는 현재 유망주 취급받는 이종호보다 한달 어리고 김승대보다 1살 적다. 경기당 득점률을 유병수를 넘는 선수는 아직까지 데얀이 유일하고, 데얀에겐 에스쿠데로 몰리나 하대성 윤일록 특급 도우미가 있다면, 유병수에겐 남준재 강수일 브루노 등 눈물만 나오는 자원 뿐이였다. 그럼에도 한 팀 득점보다 우위인 것... 오직 득점만으로 공격포인트 1위와 동률을 기록한 것도 주목할 만한 점

한화 이글스류현진이 있다면 인천엔 유병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처지가 비슷하다. 각자 팀을 넘어 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지만, 팀 전력이 시망이라 그 실력에도 불구하고 팀의 일원으로서 영광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잘던지고,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도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질 못하니... 완봉 못해서 팀이 졌다는 말이 나오는 류현진처럼 '4골 못넣고 해트트릭만 해서 팀이 못이기는' 경우도 있으니... 안습

EPL 볼턴 원더러스나 프랑스 리그앙AS 모나코 이적설이 돌기도 했다.
인천 팬들은 이런 기사가 한 번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가난한 시민구단 인천은 창단 이래 우수한 선수를 많이 배출했지만 그들이 모두 이적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효진, 김치우, 데얀 다미아노비치는 모두 인천 출신이다.[7]
팬들은 유병수가 임중용 같은 인천의 레전드가 되어주길 바라지만... 현실은 시궁창. 2010 시즌을 끝으로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가운데, 대다수 K리그 팬들은 유병수가 해외진출은 몰라도 인천을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지못미

그런데 2011년 2월 18일, 인천은 유병수와 2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
150만 달러 바이아웃 조항이 걸리긴 했지만, 일단 2013년까지 인천에서 뛰게 되었다. 인천팬들은 한시름 덜 듯. 그러나 상주 상무 불사조가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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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부터 여름 이적시장에 유병수가 나온다는 설이 파다하게 돌았으며, 결국 2011년 7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 리그 강호인 알 힐랄로 공식 이적했다. 공식적인 계약금은 밝히지 않았지만, 150만 달러 바이아웃 조항을 충족해서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이영표가 뛰던 구단이고 사우디에서 상당히 잘나가는 구단이기 때문에 잘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랍권 리그 수준을 보면 사실상 돈 때문에 갔다는것이 정설이며,[8] 설상가상으로 이영표가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현지적응에 대한 문제도 존재한다.

다만 이적하기 한달 전에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악성 루머가 퍼져 한창 고생하고 있던 때였다.[9]

참고로 알 힐랄은 알 이티하드에게 FA컵 4강전 패배 이후로 리그 무패 우승을 이끈 가브리엘 칼데론 감독을 해임했다. 이는 라이벌인 알 이티하드에게 5:0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칼데론 감독은 이전에 알 이티하드 감독으로 있다가 반대로 알 힐랄에게 5:0으로 대패하여 그때도 잘렸던 경력이 있다. 두 라이벌 팀을 오고가며 똑같이 5:0 대패를 당하고 잘렸다(...) 더블 우승을 이룩하고도 잘린 안첼로티가 생각나지만, 칼데론은 5:0으로 지자마자 단번에 잘렸을 정도로 알 이티하드에 대한 알 힐랄 구단주와 서포터들의 경쟁심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알 이티하드도 마찬가지다.

7월 현재 감독 대행은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계 전설인 사막의 여우 사미 알 자베르. 9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 전성기를 이끈 축구선수이자 한국 대표팀에게도 많은 곤란을 안겨주었고 사우디의 월드컵 16강을 이끈 스트라이커인 만큼 돈뿐 아니라 성장도 기대해 볼 만하다.

이적 후 프리시즌 대회인 리야드 인터내셔널 토너먼트에서 알 이티파크 및 알 타운과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작렬했다. 그러나 대회 결승에선 킹스컵 우승팀인 알 샤바브에게 패해 팀의 준우승을 바라봐야 했다. 그래도 일단 리그 적응은 순조롭다는 평이다.

2011년 9월 11일에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10/11 시즌 개막전에서 출장, 83분동안 뛰다가 교체되었다. 아쉽게도 3번의 골득점 기회를 놓쳤는데 알 힐랄은 승격팀 하지르를 2:1로 이겼다.

17라운드까지 2골 1도움을 기록 중이며, 2012년 1월 23일에 열린 알 나스르와의 크라운 프린스컵 8강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4:1 대승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한국 선수끼리 만나서 뜻깊었는데 알 나스르에 입단한 김병석도 1도움을 기록했기 때문. 그리고 4강전에서 라이벌 알 이티하드와 또 만났는데 여기서 골을 기록하며 2:0 승리에 기여했다. 결승에선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으나 그래도 공동으로 크라운 프린스컵 득점왕에 오르며 주가를 올렸다. 리그 17경기에 나와서 5골 5도움을 기록.

이때 활약상으로 유병수를 중동의 호날두라며 설레발 국대 복귀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직까진 그 정도 평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초반 현지적응 문제는 성공적으로 극복한 듯 보이며, 조금씩 득점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사우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상을 기대하게 만든다.

한편 2011-12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하며 득점 3위까지 올랐다. 2012년 5월 23일에 벌어진 16강전에선 아랍에미리트의 베니야스 SC를 상대로 무려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7:1 팀의 대승에 완벽한 기여를 했다. 8강까지 5골 1도움으로 팀내 아챔리그 최다득점을 기록 중이다. 현지 아나운서 왈, 슈퍼 헤트트릭 유뵹수

하지만 몰아치기에 의한 최다득점이고, 리그 득점율이 무척 저조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리그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그래도 그 때의 활약 덕에 골닷컴이 선정한 5월 아시아 베스트 11에 들었다.#

2012년 7월 13일 프리시즌에 벌어진 맨체스터 시티오스트리아에서 벌인 평가전(경기는 1:0으로 알 힐랄이 이겼다)에서 허벅지를 다쳐 전치 3주 정도 치료 및 안정을 취하게 되었다.

2012년 8월 중순에 부상에서 회복되고 8월말 사우디리그 3라운드에서 교체출전해서 1어시스트를 올린 후 4라운드에서도 교체출전해서 아무 활약이 없었고 5라운드에서 선발출전했지만 역시 아무런 활약도 없었다.

그러나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연초까지 폼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료인 웨슬리 로페즈의 득점이 저조한 가운데 다시 팀의 주 득점원으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이집트의 명문축구팀 알 아흘리와 우크라이나 축구팀 샤흐타르 도네스크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했으며, 폼이 올라온 이후 거의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2013년 1월 28일 기준으로 9골 득점으로 리그 득점랭킹 4위에 랭크되어 있다. 1위는 팀 동료 웨슬리 로페즈 15골. 출전시간 대비 득점률은 80분 당 1골로 1위다.

팀내 활약 등이 여러 모로 상당하기에 연장계약도 이뤄질 전망일 듯 하다. 하지만 2013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열심히 뛰었으나 심판 문제같은 불운으로 팀이 16강에서 탈락하던 걸 경기가 끝나고 주저앉아 봐야 했다.

그리고 2013시즌 여름이적시장을 통해서 90만 유로의 이적료로 북한 국대 공격수 홍영조의 옛 소속팀인 러시아 로스토프로 이적했다.

데뷔전에서 7분만에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리그 득점 1위인 아르템 쥬바에 밀려서 벤치 멤버가 되었다. 팀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데려온 선수이므로 경기마다 교체로라도 출전은 시켜주었다. 경기 감각이 떨어져서 아깝게 놓친 골들이 많다. 그러다가 시즌 막판인 5월에 드디어 2호골을 기록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기사도 하나도 안 떴다.이보시오.. 유럽 리그 8위 러시아 리그라고!

결국 시즌 마지막까지 조커로만 출전하며 2골로 시즌을 마감했으나 팀이 유로파리그에 진출해 출전기회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르템 쥬바라는 러시안 유병수가 임대가 만료되었고, 새로운 경쟁 상대가 한물간 부카로프나 유망주 니콜리치 뿐이라는 점은 오랫동안 지켜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영입했다는 유병수에겐 좋은 기회가 될 예정이다.

그러나 2014년 9월 1일 현재,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지난 시즌보다 훨씬 상황이 악화되었다. 팀이 치룬 9번의 공식경기에서 선발출장 없이 단 한 번의 교체투입에 그치고 있고 명단제외되어 벤치에도 못 앉은 경기가 6번이나 된다. 게다가 팀은 유로파리그에서 트라브존스포르에게 패배하여 조별리그 진출에 실패, 출전기회를 부여받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는 부상 때문이고 앞으로는 두고 봐야 할듯하다.

2014년 11월 21일 현재 에이전트가 모든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확실히 내후년에는 군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K리그로 돌아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4. 대표팀

K리그에서의 활약과는 별개로 국가대표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다.[10]

K리그에서의 활약에 비해서 대표팀 데뷔는 훨씬 늦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준비하던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대표팀에 처음으로 유병수를 차출했다. 2009년 6월 3일 오만과의 친선전에서 A매치 데뷔를 했는데, 이 경기는 교체선수 인원이 11명에 달하면서 A매치 자격을 상실했다(...) 유병수와 함께 이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김형일, 이강진, 양동현, 김근환은 그저 안습. 경기도 0-0으로 비겼다. 그나마 유병수와 김형일은 이후 정식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지만 나머지 셋은...지못미.

이후 201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히지 못하고 A매치 데뷔전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으나, 10월 13일 한일전에서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를 앞두고 교체 출전하면서 정식으로 데뷔전을 치뤘다. 경기 결과는 0-0.

그래도 K리그 득점왕을 마냥 시험도 하지 않은 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조광래호2011년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포함되었다. 시리아와 평가전에선 후반에 교체투입되어 K리그에서도 기용되지 않은 포지션인 좌측 윙어로 뛰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시안컵 본선 호주전 후반에 투입되었으나 닌자 모드로 일관했다(...) 정확하게는 상대적으로 강한 호주 수비진에 피지컬로 밀리면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거기에 경기 투입된 시간 동안 활동량은 많았으나, 공격 위치 선정에 난점을 겪으면서 결과적으로 변변한 슛팅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왔다가 30분 뛰고 다시 교체로 나가는 굴욕을 당했다. 그래도 기성용에게 도움을 올렸다-그 시간에;;;;

굴욕적인 호주전이 끝난 뒤 자신의 미니홈피에 신세한탄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진짜 할 맛 안난다. 90분도 아니고 20분 만에 내가 가지고 이룬 모든 것이 다 날아가버렸네..."

이 글이 올라간 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찌라시에 딱 걸려서 항명 파동으로 번졌고, 결국 정정문을 올렸다.

그냥내자신한테너무화가났고감독님에대해서절때아무런불만이없는데오해없으시길바랍니다저는감독님께항명한적도없습니다기자분기사를쓰시려면정확한사실을가지고쓰셔야지추측을바탕으로쓰지는말아주셨으면좋겠습니다.


이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면서 조광래 감독이 짤리지 않는 한 영영 대표팀에서 못볼 것이라는 소문이 많았는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해임된 후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면서 국내파 해외파를 아우르는 경쟁을 강조했고, 유병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 주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 체제에서도 국가대표에서 선발되지 못했다.

2012년 5월 스위스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 출전명단에 뽑힐 가능성이 있었으나 선발되지 못했다. 최강희호에서 중용된 공격수는 국내파인 이동국, 김신욱이었고 결국 예선 끝까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최강희호에서 중용된 이동국 김신욱은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예선내내 욕을 먹었는데...

이후 홍명보호에선 감독, 기술위, 언론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되었다.

슈틸리케호에서도 소속팀에서의 출장시간을 중요시하는 감독의 방침에 따라 국가대표 발탁은 힘들어보인다. 팀을 옮기고 나서 2014~15시즌 안정적으로 출장하면서 실적을 보여주기 시작한 석현준에 비하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11]

출장시간을 중요시하는 슈틸리케호에서는 본인이 출장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현재 대표팀 중앙공격수 기근을 보면 본인도 축구팬도 아쉬울 따름. 어찌보면 득점력 하나는 확실한 선수가 근4년간 명단조차도 들지못한건 의아할만하다. 참 안타까운게 선수생활하면서 감독이 선호하는 특성을 만족하지 않은게 좀 크다. 조광래는 해외파, 최강희는 국내파, 홍명보는 런던파(...), 슈틸리케는 출장시간 위주로 선수를 기용하고 있는데 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작 안정된 출장시간과 활약을 보여준 이종호는 탈락하고 소속팀 벤치수준인 이정협이 발탁되었다. 정말 출장시간 위주로 평가하는 감독이 맞다면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박주영은 a매치를 몇십경기나 뛴 베테랑이지만 이정협은 그것조차 포함이 안된다. 억지논리와 편협함으로 각 감독마다 다른 논리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논리에 비추어 평가하자면 당연히 이정협의 발탁은 분명 비판받을 부분.

그러나 이정협은 아시안컵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이러한 비판을 실력으로 잠재우는 중. 이정협이 비록 상무에서도 부산에도 보여준 게 별로 많진 않지만 출전시간으로 깔 수는 없는 게, 지난 시즌 38경기 중 25경기에 출전했고, 4골을 넣었다. 이는 지난 시즌 상주 상무의 모든 공격수 중 한상운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출전횟수이다.

또한 이종호와 강수일을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 옵션의 다양화를 위해서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종호는 타겟형이라 볼 수 없고, 강수일은 괜찮은 피지컬과 위치선정능력을 가지고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순간적인 유연함과 스피드를 이용한 공간침투와 돌파가 장기이다. 소속팀에서도 그가 맡은 역할은 기본적으로 이명주의 역할이었다. 즉, 1선보다는 2선에 가까운 공격수였다는 것. 그런데 알다시피 대표팀 2선에는 손흥민, 이청용뿐만 아니라 슈틸리케 부임 이후로 날아다닌 한교원, 김민우, 남태희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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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 놀라운 포스를 보여주는 김승대는 2014년 만 23살. 유병수가 득점왕을 탄 2010년 유병수는 만 22살이다. 아직 경쟁자조차 없는 셈. 이종호는 유병수보다 생일이 한달 빨라서 불가능하다. 2014년 기준으로 김신욱과 동갑인 26살
  • [2] 6경기 12골이다. ㄷㄷ
  • [3] 사실 전형적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독특한 타입이다. 포스트, 쉐도우 모두 소화가 가능하다.
  • [4] 돌파 스타일이 일반적인 한국 선수와 다르다. 보통 페이크를 부리거나 접고 순간 속도로 치고가는게 아니라 수비수 몇명 끌고가면서 스피드랑 스텝을 조절해서 균형을 흐뜨려놓는다거나 하는 드리블. 테베즈의 그것과 비슷하다. 생소하던 2009년엔 이런 드리블을 자주 보여줬다. 2009년 전반기 성남전 돌파 참조
  • [5] 2010 전반기 대구전 페널티킥 얻는 장면과 부산전 fa컵 선제골 장면을 찾아서보면 거의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혼자힘으로 밀집 수비를 뚫어내는걸 볼 수 있다. 특히 부산전 골은 하프라인부터 드리블해가서 수비 5명 제치고 넣은 골
  • [6] 이는 최연소 오버헤트트릭
  • [7] 돌고돌아 지금은 셋다 서울에 있다. 가만보면 서울이 은근히 인천 출신들을 많이 쓴다.
  • [8] 물론 같은 아랍권이라고 해도 리그의 수준 차이는 존재한다. 사우디 리그는 아랍권(아시아 계열)에서는 가장 강하며, AFC 전체에서도 K리그를 제외한다면 가장 강하다.
  • [9] 무엇보다 승부조작이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는데, 2010년 유병수는 득점왕을 달성했다. 승부조작은 팀의 패배를 유도하는 것이 보통인데, 유병수가 승부조작을 했다면 골 많이 넣어서 패배를 유도했단 말인가? K리그에 관심이 없는 대중은 유병수의 득점 기록에 무관심했고 황색 언론은 이러한 배경을 모조리 무시한 채, 단순히 '승부조작'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통해 한 선수를 매장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5년이 지나도록 기사 한줄 나오지 않는다.
  • [10] 과거에도 신태용, 상철, 김현석등 K리그 득점기계들이 국대를 못간 경우는 많다. 다만 당시 한국 대표팀이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등 최소한 아시아에선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를 가진 나라였던걸 치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트라이커 재원이 없다는 말이 나올정도이니 팬의 입장에선 아쉬울 따름이다.
  • [11] 포루투칼 리그에서 계속 골을 넣고 있는 석현준은 2015년 들어서 '슈틸리케가 한번은 불러서 테스트 해볼 것'이라는 언론기사들이 뜨고 있다. 지동원도 최근에 출전 빈도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유병수는 여전히 언급도 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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