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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도피기록

last modified: 2015-04-14 20:23:28 by Contributors


유병언 도피기록
수배기간 2014년 5월 19일 ~ 2014년 7월 24일[1]
동원인력 경찰 병력 약 5000여명검찰 인력 약 50여명 군인 약 5000여명[2]
현상금 5천만원 → 5억원

Contents

1. 개요
2. 도피의 시작
2.1. 검찰은 왜 영장 발부와 구속에 집착하는가?
2.2. 과거 경험에서 배운 유병언
3. 도주기록
3.1. 2014년 5월
3.1.1. 5월 16일
3.1.2. 5월 21일
3.1.3. 5월 22일
3.1.3.1. 심문취소후 구속 여부의 합당성 논란
3.1.3.2. 지명수배 시작
3.1.4. 5월 25일
3.1.4.1. 유병언과 유명인사의 관계 폭로
3.1.4.2. 현상금 5억 상향 조정
3.1.4.3. 도피조력자 4인 체포
3.1.5. 5월 26일
3.1.6. 5월 27일 - 장녀 유섬나 체포
3.1.7. 5월 29일
3.1.8. 5월 30일
3.2. 2014년 6월
3.2.1. 6월 4일
3.2.2. 6월 5일
3.2.3. 6월 7일
3.2.4. 6월 11일
3.2.5. 6월 12일 - 변사체 발견
3.2.6. 6월 13일
3.2.7. 6월 18일
3.2.8. 6월 19일
3.2.9. 6월 20일
3.2.10. 6월 21일
3.2.11. 6월 22일
3.2.12. 6월 25일
3.3. 2014년 7월
3.3.1. 7월 2일
3.3.2. 7월 18일
3.3.3. 7월 19일
3.3.4. 7월 20일
3.3.5. 7월 21일 - 유병언 사체 확인
3.3.6. 7월 22일
3.3.7. 7월 23일
3.3.8. 7월 24일
3.3.9. 7월 25일 - 장남 유대균 체포
3.3.10. 7월 28일
3.3.11. 7월 29일
3.3.12. 9월 5일
4. 유병언 시신 조사결과
4.1. 국과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유병언의 시신으로 확정하였나?
4.2. 사망 정황
5. 시신에 대한 의혹과 음모론
5.1. 18일만에 백골이 될 수 있나?
5.2. 유병언치곤 시신의 키가 크다?
5.3. 안경이 유병언의 안경 같지 않다?
5.4. 백골에서 어떻게 지문을 채취했나?
5.5. 시신은 4월에 발견되었으나 숨기고 있었다?
5.6. 박범계 의원의 의혹 제기
5.7. 강동원 의원의 의혹 제기
5.8. 타살인가?
6. 트리비아
6.1. 프랑스가 적극 협력하는 이유
6.2. 해외도피설
6.3. 나비효과?
6.4. 변사 현장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 "잊지말자 유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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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패러디 포스터에선 'DEAD OR ALIVE'라고 적혀 있긴 하지만, 실제 현상금은 수배자가 살아 있을 때의 직접적인 신고자에 대해서만 지급된다.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됨에 따라, 처음 유병언 변사체를 발견한 매실밭의 주인이던 박모씨가 현상금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법률상 현상금이나 사례금을 받지 못한다.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다 당시 시신 부패/훼손이 심해 첫 발견한 주민 박모씨도 이 시신이 유병언인지 알지 못하고 무연고자로 경찰에 신고했었기 때문이다. 만약 박모씨가 시신이 유병언이라는 걸 알아보고 "이 사체가 유병언으로 추정되는거 같다."라고 신고했었다면 사례금을 일정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체가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했었는지라 박모씨던 경찰이던 처음 보는 순간에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유병언이라는 게 밝혀진 것은 결국 40일이나 넘게 지난 후였지만...

1. 개요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실질적인 소유자로 알려진, 유병언이 검찰의 소환에 불응 한 후 도주한 것에 대한 기록. 현재 유병언이 사망했다고 결론이 남에 따라 수사는 유병언의 자녀들과 관계자/조력자들로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한다.

탐욕스럽고 무책임한 인간말종 사기꾼과 무능한 검경의 삽질로 비롯된 2014년 대한민국 최악의 흑역사

2. 도피의 시작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 직후 청해진 해운측은 전자산을 매각해서라도 배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검찰은 이를 수용, 실질적인 소유자로 알려진 유병언에 대한 소환조사를 간단히 신청한 후 자진 출석을 유도했다. 하지만 유병언 측이 2014년 5월 16일, 2차 소환조사까지 거부하며 자신이 세운 이단종교인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에서 농성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별도의 사전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수배를 할 것이라 향후 방침을 예고하게 된다.

별도의 대면조사 없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된 것에, 유병언을 옹호하는 구원파는 "높으신 분들이 우릴 세월호 참사의 국민적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언론플레이를 펼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전 구속영장 청구 절차에 대해 법조계 인사들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며, 수배 절차 또한 공개수배 절차와 지명수배 절차가 혼용되어 있어 이를 걱정하는 의사를 내비추었다.

2.1. 검찰은 왜 영장 발부와 구속에 집착하는가?

검찰이 영장 발부에 집착하는 것은 세월호 침몰사고가 청해진 해운의 불법선박 개조를 필두로 한 인재라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 소재 구분과 세월호 승무원들의 처벌 과정에서 총책임자를 실질 소유자인 유병언으로 확정하기 위해 절차를 밟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구속수사에 집착 하는 것은 한마디로, 유병언이 통수를 친 전력이 있는 만큼 확실하게 보내버리려고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법처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유병언의 신병 확보가 최우선 조건이었으며, 언론이 도주 우려를 표방했으나 검찰은 유병언측의 검찰소환지시를 충실히 따르겠다는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철썩같이 믿고 유병언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식으로 멍때리며 유병언측을 무조건 신뢰하다 제대로 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이 총력전을 선언 한 것에 대해 세월호 참사의 소재 규명이란 공익적인 목적보다 검찰의 구겨진 체면을 다시 세우려는 사익적인 목적이 우선되고 있는 것이란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그냥 바로 잡아 들이지

2.2. 과거 경험에서 배운 유병언

언론이 유병언의 도주를 우려한 것은 다름아닌, 유병언의 과거 경력 때문이다.

유병언은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당시 검찰이 해명서 한 장 쓰면 다 해결된다는 제안에, 웃으면서 대전 지방검찰청에 출두하여 즉시 구속되고, 6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즉, 검찰이 나오라고 하면 바로 잡혀 구속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기에 그의 도주는 사실상 기정 사실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유병언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그의 도주는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번 당한놈이라 튄거군

3. 도주기록

3.1. 2014년 5월

유병언의 도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자, 동시에 검찰의 장절한 삽질이 시작된 시기이다. 본격 추적자

3.1.1. 5월 16일

유병언이 검찰의 소환조사에 불응하였고, 검찰은 별도 대면조사 없이 바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하지만, 이 사전 구속영장의 청구에 법률해석상의 오류가 지적됨에 따라 검찰은 5월 20일로 예정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이후 움직이겠다는 의사를 밝히게 된다.

이는, 유병언의 체포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소재 공방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이었으며 구원파가 개거품을 물고 유병언 수호를 외치는 시발점이 된다.

3.1.2. 5월 21일

검찰은 유병언의 도주를 예측하고, 구인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의 명의로 발부 받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본산인 구원파의 금수원에 진입해 압수수색을 했다.

하지만 유병언의 수색에는 실패했으며 구원파측은 이를 종교 탄압이라고 대대적으로 해외에 선전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검찰도 삽질만 한 것은 아니다. 유병언이 기거한 장소에 남은 자료를 더듬어 금수원내의 CCTV자료를 확보하여 유병언의 고의적인 도주를 증명해 후에 유병언 주변인들이 주장할 가능성이 있던 종교탄압, 여론살해 논란을 막아 버렸다. 그런데 구원파는 여전히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의 유병언의 검거 실패에 여론은 금수원의 진입을 천천히 한 탓에 유병언을 놓쳣다는 비판 여론과 유병언이 구원파쉴드로 삼아 종교탄압 등을 주장할 빌미를 근절했다는 호의적인 로 양분되어버렸다.

검찰은 유병언의 적인 도피를 공표, 향후 수사과정에서 유병언을 비호하거나 숨겨준 사람들은 인은닉도피죄를 적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3.1.3. 5월 22일

유벙언에 대한 인장이 만료되는 날이라, 인천지방검찰 특별수사팀의 김회종 2차장검사는 구인장의 만료를 지적하는 언론에게 구속영장 발부를 통한 신병 확보 작업을 전국구단위로 진행중이란 발표를 한다.

전국 단위의 전방위 수색을 통해, 반드시 검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며, 22일 내에 유병언의 흔적을 찾지 못해 구인장의 효력이 정지되면 법원에 구속영장을 정식으로 발부하는 요청을 한다는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구원파는 격렬한 항의 의사를 밝혔으나 합당한 절차를 거친 구속영장 청구라 여론과 법조계 모두 구원파의 항의를 일제히 비판했다.

3.1.3.1. 심문취소후 구속 여부의 합당성 논란

구원파측은 인장의 집행을 거치지 않은 구속영장 청구는 위법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법조계 유명인사들이 피의자의 도주 혹은 잠적으로 인해 구인장 집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를 소명하면 법원의 허가에 따라 심문과정 없이 즉시 구속여부를 결정 할 수 있으므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정당하다는 해석을 내놓아 합당성 논란은 종식된다. 하지만, 지명수배의 전환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최초 수배 절차가 지명수배가 아닌 공개 수배인 상태였기에 현상금을 내건 전면적인 수배의사 표방은 검찰에게 독으로 적용 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의사가 나왔다.

3.1.3.2. 지명수배 시작

인천지검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즉시, 유병언을 지명수배했다.
지명수배 상금은 5천만원이며, 경찰이 검거에 성공할 경우 경찰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포상이 약속되었다.

또한,법원구원파가 공개수배와 지명수배절차의 적합성에 대한 시비를 걸어 오기 시작 한 것을 의식해서인지 통상 7일 간 효과가 유지되는 구속영장과 달리, 2014년 7월 22일까지 장기효력이 발생하는 초장기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었다. 유병언이 못잡으면 너네가 대신 빵에 들어가란 법원의 패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명수배가 이루어짐에 따라, 유병언의 도피를 도울 사람들이 적극협력 할것이 예고되었고, 국세청은 유병언에 대한 횡령, 배임, 조세포탈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의 수사를 조력하게 된다. 검찰은 국세청의 세무수사관에 지원인력을 보내, 재산추적팀을 확대 하는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3.1.4. 5월 25일

25일 새벽 검찰이 금수원 압수수사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유병언의 도피를 도운 구원파 신도를 체포했다.

인도피죄를 적용하여 체포하였으며, 체포사실이 보도되자 구원파측은 10여명을 대표로 인천지검의 청사를 항의조로 방문했다. 법조계의 인권변호사들에게 구원파가 도움을 요청했다는 루머가 있으나 구원파 측은 이에 대해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고 리스트에 오른 유명 인권변호사들은 이를 부정했고, 이미 사전에 검찰이 충분히 예고한 내용이며, 지명수배된 사람의 도피를 도운 것임으로 인권과는 관련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권변호사와 단체들의 거절이 알려지자, 구원파는 500여명의 대규모 인력을 인천지검에 보내 규탄집회를 개최하고 성명을 낸다. 성명의 골자는 증거없이 체포했다는 것으로 검찰이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한체 체포하였다는 내용을 수차례 강조하며 "고작 핸드폰 빌려준 것으로 체포하는게 말이 되냐?되는데요"라는 발언을 강조하였는데 핸드폰대여는 범인도피죄에 속한다는 검찰측 해명에 구원파측은 "CCTV이외의 확실한 증거를 내놓으라"는 주장을 시작했다. 그런데 도와준 게 죄냐고 자백을 해서 의미가 없어졌다

3.1.4.1. 유병언과 유명인사의 관계 폭로

인천에서 한창 시위를 하는 와중에 금수원에선 유병언의 출판기념회의 참석자 명단을 공개했다.

출판기념식에 참가한 정치인과 연예인은 이명박대통령, 오세훈서울시장, 가수 박진영 등으로 구원파측은 유병언은 정재계에 유명인으로 출판행사에도 유명 정치인들과 거물급 연예인사가 찾아온다는 점을 강조하며 청해진 해운의 정관계로비에 대한 의혹은 검찰의 막무가내식 수사라는 주장을 함과 동시에 프랑스루브르 박물관의 유명 큐레이터들도 예술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며 종교탄압 떡밥 대신, 초로에 묻힌 청렴한 예술사를 탄압한다는 뜬금포를 날렸다.

구원파의 뜬금포에 검찰도 뜬금포로 맞섰다. 금수원 수색당시 유병언의 개인공간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5천만원의 현금다발이 발견되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압류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금수원 수사 당시 압류해간 비밀장부와 현금의 존재가 알려지자 구원파는 이를 돌려달라는 의견을 피력해 수많은 사람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적법한 절차를 따른 구속이란 검찰의 해명과 현금 5천만원의 압류가 알려지자, 인천지검에서 항의하던 구원파 신도들은 자진해산을 선언하였다.

3.1.4.2. 현상금 5억 상향 조정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유병언이 돈을 억단위로 뿌리고 다니는데, 고작 5천만원 받고 신병을 넘겨줄 사람이 어디있느냐?"는 제보자들의 딜을 수용해, 유병언의 현상금을 5억으로 상향 조정했다. 기존에 검찰이 지정한 5천만원의 현상금은 신창원 수배 당시 사용된 5천만원이 최고기록으로 5억원은 "범죄 신고자 등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의 최고 금액을 적용 한 것이다. 사설 경비업체 관계자들은 검찰이 현상금을 올리게 된 배경으론 잠시 기거한 금수원에서 압류한 현찰이 현상금과 동일한 5천만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해석했다.

5억으로 10배 뻥튀기현상금 소식이 화제가 되자, 검찰측은 현상금은 세금을 안냅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단순 제보라도, 체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 현상금을 지급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국민의 동참을 유도하였다.

3.1.4.3. 도피조력자 4인 체포

유병언의 도피를 조력한 것으로 알려진 4인을 체포한 검찰은 구원파가 조직적으로 유병언의 도피를 돕는다 판단해, 수사범위를 확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검찰의 발표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자칫 잘못하다간, 유병언과 구원파의 의도대로 종교탄압으로 보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현재 체포된 4인은 지명수배 이전에 조력을 시작한 공개수배 당시의 조력자이기도 하여 일단 풀어주고 후에 다시 죄를 묻는 형태로 지명수배와 공개수배가 혼재된 시기의 죄를 묻지 말 것을 권고했다.

3.1.5. 5월 26일

후계자로 알려진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가 프랑스로 출국하려다 실패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발표를 했다. 유병언의 장남인 유대균의 경우 세월호 참사 직후 출국금지 조치로 인해 출국하지 못한 사실도 알려지며 유병언과 그 관계자들이 해외로 도피하려는 것이라는 설이 대두되었다.

3.1.6. 5월 27일 - 장녀 유섬나 체포

유병언의 도피를 도운 중요 관계자 중 한명인 이재옥 해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에 대해 체포가 이루어졌다. 검찰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통해 이재옥을 체포했으며, 금수원 주변에서 신병이 확보되었으며 혐의는 범인도피 혐의가 적용되었다. 이재옥의 체포소식에 구원파는 다시금 인천지검에 항의시위를 시작했다.

프랑스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진 유병언의 장녀, 유섬나가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체포되었다. 프랑스 경찰의 주도로 체포된 유섬나는 인터폴색수배령 대상으로 외교통상부를 통해 여권반납이 명령된 상태라 프랑스측이 체포할수 있었다.
유섬나의 체포를 한국대사관을 통해 전한 프랑스 사법국은 범죄인 인도재판의 절차를 통해 신병을 대한민국에 빠르게 인도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유섬나는 프랑스의 거물 변호사 트릭 메조뇌브를 선임해, 범죄인 인도재판에 법률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비췄다.[3] 이후 여러 차례 보석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었다고 한다.

3.1.7. 5월 29일

검찰이 이재옥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사실을 공표했다. 구속영장 상의 죄목은 범인은닉도피와 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이며 이재옥의 구속으로 구원파소속의 조력자는 총 8명이 체포되었다.

3.1.8. 5월 30일

그동안 검찰은 유병언이 전남 순천지역에 숨어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는데, 유병언이 탄 것으로 알려진 차량이 전주에서 발견됨에 따라 검찰과 경찰의 포위망이 뚫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3.2. 2014년 6월

검찰의 수사망이 뚫렸다는 의혹이 제기된것과 동시에, 유병언의 해외도피 가능성이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3.2.1. 6월 4일

6.4 지방선거 직후, 구원파가 6월 5일, 금수원으로 신도집결을 요청하는 단체문자를 보낸 것이 확인 되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사방해죄등의 죄명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6월 5일은 목요일로 종교집회와 관련없는 일자이므로 고의적인 수사방해가 되는지 검토했으나 집결문자의 내용이 불분명하며 연휴기간이 진행된 시기인만큼 적용하기 어렵다는 법리해석이 나왔다.

3.2.2. 6월 5일

6월 4일, 돌린 단체 문자에 응한 구원파 신도 1500여명이 오전에 금수원에 집결해 금수원에 4000여명의 신도가 집결한 것으로 알려지며 금수원에 대한 수사가 새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구원파측의 엄살에 검찰은 금수원에 진입할 의사나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의견을 비공식 창구로 일부 기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검찰의 비공식 창구발표에 대해 시사평론가들은 검찰이 낚시정보를 흘리는 것이라며 검찰의 금수원 재진입은 기정사실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검찰이 침묵한 이 날, 공식발표는 인천지방법원에서 나왔는데, 유병언의 친인척인 권오균 트라이곤코리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며 국세청의 조력하에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밝혔다.

3.2.3. 6월 7일

검찰은 유병언의 도피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8명을 지명수배했다.
유병언의 조력자들이 금수원에서 출퇴근하며 내부지시를 외부로 퍼나른다는 의혹이 나온 뒤 진행된 지명수배이며, 도피계획을 실행하는 실행조인 일명 신엄마와 도피계획을 계획한 김엄마도 수배대상에 올랐다.

3.2.4. 6월 11일

검찰이 6월 5일 발표와 달리, 금수원에 대한 2차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
하지만 2차 압수수색은 이렇다할 결실을 내지 못했다. 유병언의 도피를 도운 수배8인 중 5명을 체포했으나 유병언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진 못한 상황이다.

얻은 것보단 잃은 것이 많은 압수수색이란 언론의 지적에 대해, 검찰은 12일에도 압수수색을 이어 갈 것이라는 강행의사를 밝혔다. 10일날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 체포에 대한 강조를 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3.2.5. 6월 12일 - 변사체 발견

유병언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송치재 별장에서 고작 2~3km 떨어진 순천시 서면 신촌리에 있는 매실밭에서 변사체 발견. 당시에는 발견한 사람은 물론 검찰도, 경찰도 이 변사체가 유병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단순 변사 사건으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수사 기간은 더욱 길어지게 되었다.


3.2.6. 6월 13일

정오 무렵(시간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음) 일명 '신엄마'라고 불리는(신ㅁㅎ, 64) 유병언의 최측근이 자백을 하였다.[4]
이날 검찰 조사에서는 "주변사람들이 여러사람 구속되고 검찰이 금수원을 강하게 압수수색하는 것을 보고 더이상 숨어지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라고 자수 이유를 밝혔다.
이날 오전 11시에 유병일(유병언의 친형, 75)이 금수원 뒷편 야산 진입로 인근 도로에서 검문검색하는 중 긴급체포되었다.

3.2.7. 6월 18일

'김엄마'로 불리는 인물(김ㅁㅅ, 59)의 윗선인 '제2의 김엄마'라고 불리는 인물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황교안 법무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유병언 검거가 늦어지고 있는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검거가 이토록 늦어지는 이유로 검찰의 극비 수사 정보가 유병언 측으로 새고 있는것 같다고 발언했다. 만약 사실일 경우 유병언의 촉수가 정부부처 깊숙히 있다는 말의 증거가 됨에 동시에 엄청난 문책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기사

3.2.8. 6월 19일

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19일까지 유 전 회장과 대균씨에 대한 신고는 모두 205건에 이르지만, 202건이 오인신고, 3건은 허위신고라고 한다. 기사

3.2.9. 6월 20일

유병언의 매제인 오갑렬 전 체코대사와 그 부인이 긴급체포되었다. 오 전대사는 유병언의 해외망명시도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이를 부정해왔었다. 그러나 검찰은 오 전대사 부부가 유병언의 도피에 깊이 관여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이 진술에 의하면 오 전대사는 유병언을 자신의 차량으로 금수원에서 이동시켰다는 것. 검찰은 오 전대사 부부에게 유병언의 행방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3.2.10. 6월 21일

유병언의 부인이자 구원파 1대교주 권신찬의 딸인 권윤자가 배임 혐의로 오전 10시 5분에 경기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모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긴급체포되었다. 권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여성 김모씨와 양모씨 등 2명도 함께 체포됐다.

3.2.11. 6월 22일

유병언의 둘째 동생인 유병호가 오후 6시 20분에 대구 수성구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3.2.12. 6월 25일

유병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금수원 상무 이석환이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공원 주차장에서 체포됐다.

3.3. 2014년 7월

3.3.1. 7월 2일

유병언의 친형인 유병일과 신 모씨(일명 신엄마), 유 전회장의 여비서 김 모씨를 업무상 횡령,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3.3.2. 7월 18일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금수원 헌금관리인이자 구원파 총무부장인 신도 이모(70·여)씨를 구속했다.

3.3.3. 7월 19일

전라남도에서 컨테이너 차량으로 도피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해외로 도주한 것 아니였어? 수사에 들어갔다 한다. 컨테이너 내는 꽤나 호화롭다 한다.

3.3.4. 7월 20일

"이제까지 유병언과 그의 아들을 검거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유병언에 대한 구속영장이 새로이 발부됐기 때문에 추적에 더욱 총력을 기울여 반드시 검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by 임정혁, 대검찰청 차장검사

검찰이 유병언 부자의 검거가 늦어지는 점을 사과하며, 구속영장의 6개월 연장을 통과시켰다. 역대 최장기간 효력을 가진 구속영장이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까지 나서 사과를 하는 유례없는 대국민사과가 이어졌다.[5]

그런데...

3.3.5. 7월 21일 - 유병언 사체 확인

21일 밤, 6월 12일 전라남도 순천에서 발견되었던 변사체가 유병언으로 추정된다는 통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게서 받은 경찰검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검찰은 22일 새벽에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아래에 적혀 있는 내용 대부분은 21일이 아니라 22일에 알려진 것.

6월 12일에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2.5km 가량 떨어진 매실밭에서 부패된 남성의 시신을 한 구 발견했는데, 당시 경찰은 이를 무연고자로 보고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분석을 의뢰했다. 변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분석한 결과, 유병언의 친형으로 구속기소된 유병일(75·구속기소)의 DNA와 상당 부분 일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유병언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지만 시신이 유병언인지 최종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경이 확보한 DNA와 대조작업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체가 유병언이라는 것이 드러남에 따라, 검찰은 온 국민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전례없는 6개월짜리 영장을 발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사실 유병언은 죽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송치재 근처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거 자체를 이 때까지 검찰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 협조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제까지의 수사는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전락할 위기이며, 유병언이 사망한 경우 뇌물에 관련된 혐의에 대한 수사방식이 대폭 줄어들어[6][7] 세월호 참사의 수습에 들어갈 돈을 유병언 일가에게 청구하는 것이 어려워질수도 있다. 결국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배상도 어려워지고 검찰 역시 체면을 단단히 구긴 셈이다.

그리고 6월 12일 발견된 사체가 이미 부패가 심각해 발견 당시 유병언임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해당 시신의 사망 시점은 최소한 일주일 이전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상식적 견해가 대두되었다. 결국 시체 상태를 고려해서 18일만에 부패한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6월 12일 발견시점에서 18일 전이면, 구원파에서 유병언이 공식언급된 마지막 날이자, 금수원에서 도피 조력자들이 이제 막 체포된 시점이다.

그러나, 구원파 측에서는 나온 정보가 유병언의 신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구원파 대변인은 "잘못된 정보를 흘려서 유병언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것 같다"라고.# 구원파에서는 5월 25일까지 유병언이 측근과 같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대체...

또 경찰은 DNA 감식 전 채취한 오른쪽 지문이 유병언 회장의 것과 일치한다고 밝혀 사태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문제인 것이, 한국은 의무적으로 지문을 등록하게 되어 있어 지문이 발견되면 바로 본인확인이 가능한데[8] 왜 지문을 얻어놓고 한달 이상 지나서야 발표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경찰에서는 시신 발견 시 시신 훼손이 심해 지문을 얻지 못했다가 열 냉각 처리 등을 통해 한 손가락의 지문을 얻어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후 18일만에 백골이 되었다는 점, 지문 대조 결과를 늦게 발표한 점, 매실밭에서 시체가 20일 가까이 있었다는 점, 유병언의 도주 시점은 초여름인데 시신은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9] 등이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유병언을 숨겨주려고 한다는 극단적인 음모론이 뉴스 기사 댓글 대부분을 채울 지경. #관련 기사

3.3.6. 7월 22일

22일 유병언이 소지한 것으로 보이는 현금 가방과 안경이 사라졌다는 점이 보도되어 타살설이 제기되었다. 고액인 5만원 권을 사용하면 좀 큰 가방이면 충분히 5억 이상의 돈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심지어는 보수언론에서조차 이 시신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당장 안경 착용자라면 다들 느끼겠지만, 안경을 일상적으로 쓰던 사람이 산길에서 안경 없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실제로 조희팔의 사례도 있는 만큼 더 많은 증거가 나올때까지는 유병언이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계속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경찰 내부에서도 변사체가 실제로 유병언이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3.3.7. 7월 23일

23일 밤 국민TV의 뉴스K영상의 44분부터 관련보도에서 '유병언 시신' 사진이 공개되었다. 뉴스K 측은 이 사진은 경찰이 원출처로 국회를 통해 입수한 원본 사진이라고 밝혔으며,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견해가 나오길 바라는 뜻에서 보도가치가 있으리라고 판단, 사자(死者)의 사진을 공개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신 사진 공개로 인한 항의나 경찰의 사진유출자 엄단 선포 때문[10]이었는지 해당 링크의 유투브 영상이 잠시동안 비공개 처리되었다가 현재는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재업로드되어 있다. 우선 뉴스에서 모자이크 처리 이전에 공개된 사진 스틸샷은 이곳이곳, 그리고이곳[11]에서 볼 수 있는데, 가려지지 않은 시체 사진이므로 사람에 따라 충분히 혐오/공포스러울 수 있으니 비위가 약한 사람은 보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같은 날 밤 뉴스 Y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수배중인 유병언의 운전기사인 양회정이 자신의 처제에게 "유병언을 숲속에 두고 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유병언의 죽음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지 두고봐야 할 대목이다.

3.3.8. 7월 24일

박지원 의원이 법사위 긴급현안질의에서 유병언 시신이라는 그 변사체가 유병언 사건 이전에 발견되었다는 주민의 증언 녹취록을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마을주민 5명의 증언에 의하면 사체의 발견은 6월이 아닌 4월 어느시점이며 사체 최초발견자인 매실밭 주인이 발견한 시간도 오후 7시 40분경인데 119 신고대장에는 9시로 적혀있다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다른 주민은 4월은 아니며 6월 어느시점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후 녹취록에 등장한 해당 주민이 증언을 부인하면서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3.3.9. 7월 25일 - 장남 유대균 체포

국과수의 최종 사인 감정 결과가 발표됐다. 결론적으로는 유벙언의 생전 치료기록등과 DNA, 지문등을 통해 유병언이 맞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시신의 훼손상태가 심각해 사인을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 독살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됐다.[12] 또한 타살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망 시점과 관련하여, 최초 발견자 박 모씨가 '지난 5월 28일엔 매실밭에 갔을 땐 유병언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경찰에 증언한 사실이 25일 언론으로부터 확인됐다. 그렇다면 유병언의 사망시점이 최소 '5월 25일'이 아닌 '5월 28일'이후가 된다. 따라서 시신부패에 걸린 시간이 '최대 17~8일'에서 '최대 15일'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저녁 7시경에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과 신엄마의 딸로 유대균의 경호원 역할을 한 박수경이 경기도 용인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되었고 인천광역수사대를 거쳐 인천지검으로 압송되었다. 한편 유대균은 가족과 연락한 적이 없어 체포된 후에야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울었다고 하며, 해외 밀항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3.3.10. 7월 28일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가 내려진 구원파 신도 '김엄마' 김명숙(59·여)씨는 이날 오전 6시께 인천지검 당직실로 전화를 걸어 직접 자수 의사를 밝혔고 2시간 반 뒤인 오전 8시 30분께 유병언의 운전기사 양회정(55)씨 부인 유희자(52)씨와 함께 인천지검을 찾아 자수했다.#

3.3.11. 7월 29일

유병언의 운전기사인 양회정(55·남)씨가 인천지검을 직접 찾아 자수하였다. 유병언과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한 인물로 추정되는 만큼 유병언의 사인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양씨를 상대로 유씨의 순천까지 도주 경로 및 순천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은신할 당시의 행적을 추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씨가 직접 별장 내 통나무 벽 안의 비밀공간을 만들었는지, 비밀공간 내에서 발견된 여행가방 2개에 담겨 있던 현금 8억 3천만원 및 미화 16만달러(약 1억 6천만원)의 출처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캐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씨가 지난 5월 25일 유씨와 따로 떨어져 도주한데다 이후 유씨가 별장 내 비밀공간에 숨어 있다가 혼자 움직였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 역시 유씨의 사망 전 도주 경로와 사인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를 가능성이 크다.

3.3.12. 9월 5일

유병언의 측근 김혜경이 미국에서 체포되었다.

4. 유병언 시신 조사결과

4.1. 국과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유병언의 시신으로 확정하였나?

  • DNA : 시신의 여러 부위를 채취하여 DNA를 검사하였고 이를 별장에서 발견한 유병언의 DNA, 친인척들의 DNA와 비교한 결과 유병언으로 확정되었다. 25일 체포한 유대균의 DNA도 채취해 비교한 결과 부자관계임이 명확해졌다.
  • 지문 : 오른손에 채취한 지문 하나가 유병언의 지문과 일치하였다.
  • 키 : 다리뼈로 키를 추정해본 결과 159cm에서 ±2cm, 즉 유병언의 키와 맞아떨어진다.
  • 치아배열 : 치아, 특히 금니의 위치가 유병언의 것과 동일하였다.
  • 신체특징 : 왼쪽 손의 끝이 잘려나간 집게 손가락과 굽은 넷째 손가락이 일치하였다.

4.2. 사망 정황

측근들의 증언이 맞다면, 검찰에 쫓기던 측근들이 급히 유병언 만을 숲에 내려놓고 피신했으며 검경의 감시망 때문에 다시 유병언과 접촉하러 갈 수 없게 되었다. 숲 속의 유병언은 수배중인 몸이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이런 추정 정황으로 보아, 사망 원인은 몇가지로 볼 수 있다. 일단 유병언은 고령이라 오래 버티기에는 체력이 부족하고, 사망 당시 소지품으로 보아 너무 급히 도망치느라 충분한 식량이나 야숙에 필요한 용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주머니에 먹을 것이 있기는 했으나, 쿠알렌은콩 20알, 육포 정도에 불과했다. 기사

그러므로 늙은 몸에 변변히 먹을 것도 없이 오래 숨어있다보니 체력이 다한 나머지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밤중에 담요도 없이 숲 속에서 잠을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시되는데, 브리핑에 참여한 가톨릭대 강신홍 교수는 저체온증에 무게를 두었으며 시신이 신발을 벗고 상의를 반쯤 벗은 것에 이상탈의 현상[13]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시체 주변에 있던 소주병과 막걸리병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일단 수거는 했는데 유병언이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는 모른다고[14] 한다. 다만 병의 제조일자가 좀 많이 옛날 거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병언의 시체가 빨리 부패해서 알아보기 힘들 것을 예상하고 노숙자로 위장하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견해가 있다. 참고로 술병이 발견된것은 유병언 시체 옆이 아니라. 유벙언이 들고 있던 가방이었고, 술병에는 흙이 묻어져 있었다. 다만, 유병언이 무언가에 쓸려고 술병을 주웠을수도 있다.

5. 시신에 대한 의혹과 음모론

경/검찰의 부실한 수사에 실망한 국민들은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자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였으며 관련 음모론도 대량으로 생산되어 각종 포털 사이트와 SNS를 통해 퍼졌다.
국과수는 이러한 의혹이 발생할 것을 예견했는지 최종 사인 감정 결과를 발표할 때 국과수 원장이 직접 브리핑을 담당하였으며[15] 전국의 법의학 권위자들을 초청하였다. 발표장에 참석한 법의학자들은 시신이 유병언인 것은 맞지만 사인은 알 수 없다는 결과 발표를 전적 지지하였다. 참석한 법의학자는 가톨릭대 강신홍 교수, 서울대 이숭덕 교수, 전남대 박종태 교수, 조선대 육창륙 교수였다.

5.1. 18일만에 백골이 될 수 있나?

18일만에 저렇게 백골이 되는 건 불가능하며 따라서 발견된 시신유병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동아일보>의 7월 23일자 기사에 따르면 관계자가 이례적으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었음을 인정했으나, 부패하기 가장 쉬운 계절인 여름인 점과 벌레와 야생동물의 영향으로 인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 시체에서도 다수의 구더기가 발견되었다.

법의학에서는 시체의 사후경과시간을 측정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파리의 알은 24시간이 경과하면 구더기로 부화는데, 부화 이후 7일간 시체를 파먹고 성장하여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다시 최소 7일 이후에 성충이 되는데 이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총 14~15일이다. 따라서 시체에서 구더기가 발견된다면 이를 채집하여 같은 환경에서 길러 종류와 시간을 역산하고, 구더기의 길이를 재어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보통 구더기는 하루에 약 1.5mm 정도 성장하며 성체는 약 1cm 정도의 크기를 가진다. 그리고 파리 중에서는 시체의 부패 정도에 따라 꼬이는 종도 달라지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파리 분포를 알면 더욱 자세한 경과 시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방법은 사후 15일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사후 15일 이내에서는 1일 이내로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 있으나, 15일 이후에는 이미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 날아가버렸고 이후 몇 번이나 부화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 따라서 구더기를 채집할 때에는 번데기도 함께 채집하여 변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결정적인 사망 시각 추정 자료보다는 보조적인 자료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여러 요인에 따라 변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 예를 들어 이 낮거나 건조하면 파리가 잘 꼬이지 않으며, 비가 올 때는 접근도 하지 않는다. 실내에 있거나 비닐 등에 싸여 있어도 접근이 불가능하며, 거꾸로 이런 벌레들의 번식으로 인해 시체의 손괴가 가속화되어 사망시각 추정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파리 및 구더기가 꼬였을 때는 사후 여름 기준 24시간 내외, 겨울 기준 72시간 내외로 추정하고 구더기가 번데기가 되었을 때는 8일 내외, 번데기가 선탈하였을때는 3주 내외로 추정한다.

그런데 일부 법의학자들은 기온이 높다고해서 무조건 부패가 빨리 진행된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이라 지적한다. 단순히 고온한 환경에서는 시체의 부패가 가속화되기보다는 마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건조한 환경에 한하며 시신이 발견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 테네시대 인류학연구센터에 있는 '시체농장'에서 실험한 결과 조건만 맞으면 불과 열흘만에 백골화가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서도 7월 말에 돼지로 실험하여 비슷한 결과를 낸 적 있는 만큼 18일 내에 백골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유병언의 시신은 완전히 백골화 되지 않았다. 밖으로 노출된 머리와 안면은 거의 백골화가 완료된 반면 몸통은 대부분 부패 단계에 머물렀으며[16] 특히 국과수의 입체 스캔 결과를 보면 밖으로 노출이 없었던 등쪽과 다리쪽은 아직 근육 조직이 많이 남아있다.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실로 많은 사람들이 유병언의 시신이 완전히 뼈만 남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법의학적으로 '백골화'라는 단어는 조금이라도 뼈가 노출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시신의 뼈가 노출되어 백골화 되었다고 발표한 것을 완전 뼈만 남은 것으로 오해하게 된 것이다.


5.2. 유병언치곤 시신의 키가 크다?

구원파 측에서 최초 제시한 의혹. 유출된 유병언의 시신 사진에는 크기 비교를 할만한 물체가 전혀 없다. 사진에 나온 사람의 키를 추측할 땐 주변에 있는 오브젝트 중 그 크기가 정형화되어 있는 오브젝트를 대조하여 추측한다. 유병언 시신의 키가 크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그리고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뼈마디를 잇는 연골과 힘줄조직이 소멸해 키가 더 커보일 수 있다.

5.3. 안경이 유병언의 안경 같지 않다?

유병언은 평상시 돋보기 반무테 안경을 착용했는데, 시체 근처에서 발견된 안경은 난시 뿔테 안경이며 해당 구역은 몇 번이나 예초작업을 했는데 너무 멀쩡하다는 의혹이다.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안경인데 시체 근처에 있었던 탓에 유병언의 것으로 착각한 게 아니냐는 것.# 이 의혹은 맞는 걸로 판명났다. 발견된 안경은 며칠 뒤에 매실밭 주인의 안경이었던 걸로 밝혀졌다.

5.4. 백골에서 어떻게 지문을 채취했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애초에 완전 백골이 된 게 아니었기에 지문 채취가 가능했으며 박성환 고려대학교 법의학연구소 교수에 의하면 사람이 죽었을 경우 손가락, 발가락 같은 첨단 부분은 수분이 말라 비틀어져 원형이 변형될 순 있지만 비교적 오래 보존된다고 한다. 어떻게 백골에서 지문을 뜨냐고 우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출된 시신의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경우인데, 해당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유병언의 오른손만 봐도 주먹을 쥐었는지 아니면 안으로 구부렸는지 손가락은 보이지 않지만 손등만큼은 명확하게 보이며, 절대 백골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다.

다만 역시나 부패상태 때문에 채취가 어려웠는지 국과수에서 채취한 지문은 오른손에서 단 하나만 성공했다. "왼손가락 하나가 없다는데 그게 돋아나서 채취했냐? 구라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언론 보도를 보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지문을 전부 채취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지문이 있었으면 왜 처음부터 채취하지 않았느냐? 라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시신의 부패 상태 때문에 발견 당시엔 지문을 채취할 상태가 아니었고, 계속 실패하였다. 21일이 지나 국과수에서 DNA 검사 결과가 나오자 지문 채취 경력 13년의 경찰 내 최고 베테랑 전문가를 투입, 시신의 냉동→건조 과정을 걸쳐 지문을 바짝 말려서 간신히 하나를 채취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즉 처음엔 지문 채취를 계속 실패하였으며, 이 때문에 DNA검사로 넘어간 것이었으며 이후 지문 확인은 어디까지나 추가 확인 차원으로 하였기 때문에 늦어진 것이다.

5.5. 시신은 4월에 발견되었으나 숨기고 있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핵심관계자는 주민들과의 통화로 시신이 발견된 시점이 4월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박지원 의원은 국과수의 DNA 분석 결과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지만, 시신이 발견된 근방 주민 5명에게 질문한 결과 최초 신고일이 6월 12일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녹취록에서 한 주민은 "4월이고, 6월 12일보다는 훨씬 앞일이냐"는 질문에 "예, 예"라고 답하였으며, 최초 발견 시기가 이른 봄이냐는 질문에는 "이른 봄은 아니고, 하여튼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고 메모도 안해놨다. 그런데 그 유병언 사건이 터지기 전이다,"라고 답하였다. 박지원 의원은 이 "유병언 사건"이 세월호 침몰 사건이라 보고 시체 최초 발견일이 4월이라고 주장한 것. 기사1 기사2

문제는 다른 시신 발견 증언자와 의견이 충돌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지 판단할 수 없으며, 유병언 사건이 정확하게 어떤 시점을 가르키는지 녹취록 내용만 가지고는 집어낼 수 없다.
다만, '유병언 시신'이 오뉴월엔 어울리지 않는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를 고려해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시신의 최초 발견자 박씨의 증언이 이를 확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단 가능성은 낮아보이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채널 A는 박지원 의원의 주장과 대치되는 보도를 하였다#. 이 보도에 의하면, 박지원 의원에게 제보한 인물이 자신의 증언을 번복한다는 내용이다.
일단, 박지원 의원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녹취록은 어느 한 사람의 증언이 담긴 것이 아니라 최소 5명의 증언을 담고 있으며, 또한 증언한 인물을 채널 A의 보도에서처럼 매실밭 주인으로 특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교차검증이나 대조검증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아울러 이 보도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서 박지원 의원에게 '제보'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박지원 의원은 자신이 혹은 의원실에서 직접 정보를 수집했는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수집했는지 밝힌 바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도 대조검증이 불가능하다.
또, 보도에서는 보도에서 특정한 인물이 '착각으로 잘못 말했다'라고 적시했지만 보도에서 공개한 해당 인물과의 인터뷰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완전하게 분별되지 않는다.[17]

5.6. 박범계 의원의 의혹 제기

7월 29일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문제의 시신은 유병언이 아니다라는 경찰 관계자 증언이 있다"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물증이나 증언자의 정확한 증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 외에도 박범계 의원은 키가 안맞다, 지문을 어떻게 채취했느냐 등의 의혹을 제기하였으나 대부분 이전 국과수 발표때 해명한 내용이었으며 국과수는 기존 발표에서 조금 더 내용을 보강하여 재차 반론했어야 했다.

국과수가 의혹에 대해 반박하자 결국 박범계 의원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해당 증언의 음성 파일이 박범계 의원의 중요한 증거물이 되었다. 경찰은 박범계 의원에게 해당 음성 파일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였다. 기사 박범계 의원측은 파일 공개 여부를 재검토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경찰은 필요하다면 공문을 통해 파일 제출을 요청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국회의원이 피의자 신분이 되기 이전에는 국회의원에게 특정 서류나 자료의 제출을 강제할 법적인 수단은 없다. 만일 박범계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피소하려 한다 해도 해당 증거를 정보원 보호 차원에서 제공할 것을 거부한다면, 이 또한 자료의 제출을 강제하기가 어렵다.

한편 박범계 의원측은 재검토 하겠다는 발표만 한 뒤 아무런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녹음 파일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 하필 의혹 제기를 한 때가 재보궐선거 하루 전날이란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한 발언이라는 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5.7. 강동원 의원의 의혹 제기

위 박지원과 박범계 의원이 제기한 의혹과 같은 취지의 의혹을 같은 당 강동원 의원도 제기하였다.

5.8. 타살인가?

국과수에서 공식적으로 "사인을 알 수 없다"라고 발표했으나 많은 이들이 타살인지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

  •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걸려 평소 가지고 다닌다던 20억원 가방을 털리고 살해당했다는 의견.
    확실히 줄지도 안 줄지도 모르는 5억보단 눈앞에 20억이 구미가 당길 수는 있다. 허나 살인을 하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할 이들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현금 20억이면 5만원권 지폐로만도 엄청나게 무겁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던 유회장이라지만 노령인 그가 이걸 들고 다녔다? 게다가 유회장은 측근들 증언을 종합해보건데 혼자 남겨졌을 당시는 거의 빈손인 것으로 추정된다. 털어갈 20억원이 있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결정적으로 유회장의 20억원 가방이 애초부터 존재했는지도 의문이다. 유씨의 20억원 얘기는 한창 유씨가 도피할 당시 쏟아진 기사 중 유회장이 부동산 거래를 했는데 가방에서 수억 뭉칫돈을 꺼내 지불했다, 근데 그 가방 크기가 이만하더라, 그러니 그 가방엔 20억원 정도 들어있을지도 몰라! 가 이상하게 크게 기사화되면서 유병언은 20억을 가지고 다닌다더라고 알게 모르게 확정 지어진 것이다. 심지어 유회장이 권총도 가지고 다닌다더라는 카더라[18]도 기사화됐을 지경이다.

  • 밭주인이 너무 늦게 발견했다?
    그렇게 썩기도 전에 냄새 때문에 밭주인이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씨는 한참 전에 살해되서 발견 당일 그곳에 옮겨졌다는 의견.

  • 유씨 주변의 풀이 이상하다.
    부패한 시체 주변의 풀의 상태는 스며나온 부패액 등에 의해 변색되거나 죽는 등 상태이상을 보일 것인데 발견 당시 사진에는 풀들의 상태가 멀쩡했다는 의견. 바로 위 설의 연장으로 그러므로 유씨는 계속 그 자리에서 부패되고 있던 게 아닌 어디선가 살해되고 당일에 발견되도록 옮겨진 것이다는 의견.

  • 유씨와 구원파가 거짓 죽음을 만들었다?
    본인이나 비호 세력이 시체 바꿔치기를 했다는 스파이 소설 같은 주장. 사기꾼 조희팔 등의 사례를 보면 위장된 거짓 죽음이 100%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이 주장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무리가 있다. 일단 유씨와 구원파가 아무리 잘났어도 경찰,검찰,국과수,정부라는 최종보스급 국가조직을 속여넘길 수 있을까? 혹자는 해당 조직들 안에 구원파 신도들이 잠복해서 꾸몄다고도 하는데 이런 식이면 구원파는 완전 프리메이슨 내지는 템플 기사단급 비밀결사다.

  • 정부가 그랬다?
    유씨가 살아있길 바라지 않는 어딘가의 높으신 분들의 결정에 의해 살해당했다. 원래 정부가 배후인 음모론의 발생 원인은 대부분 정부탓인 경우가 많다. 정부가 그만큼 신뢰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피드백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표면적으로 전국을 샅샅히 뒤지고 있는 검찰의 눈을 피해 누구보다 먼저 유벙언을 발견할 조직력이 있는 정부기관이 유병언을 굳이 제거해놓고 시체는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방치해뒀다는 모순된 결과가 나온다. 타살이라는 주장 또한 어느정도 정황이 확인되었으나 결정적 물증은 존재하지 않고, 정부가 암살했다면 시체는 깔끔히 처리할 여력이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또한 근거가 없는 한 음모론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6.1. 프랑스가 적극 협력하는 이유

프랑스 경찰의 경우, 타 국가의 수사협조에 대해 콧대높은 자존심을 세우며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오기로 유명한데[19] 유병언 일가의 수사에 대해선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유병언이 자신의 예술성을 증명받는 대가로 프랑스의 유명 큐레이터들을 상대로 10억 단위의 돈을 뿌리며[20] 루브르 박물관의 행사와 공개 전시회[21] 자신의 사진을 독점게시한 과거사[22]가 르몽드 지를 통해 폭로되었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의해 실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병언, 유대균 두 부자의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1, #2, #3)

르몽드지의 폭로 이후 유병언의 과거 행적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프랑스 예술계의 평판이 추락하고 있다. 예술가라면 인생의 목표라할 수 있는 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의 독점게시 행사라거나, 베르사유 궁전의 단독 전시회의 값어치가 고작 10억으로 열 수 있는 구려(?) 행사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의외다!! 이놈이(…)? 10억을 싸구려로 만드는 빵국의 예술 결국 카트린 페가르 베르사유궁 박물관장은 이에 대해 항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2. 해외도피설

행방이 묘연하여 이미 해외로 도피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다. 기사(※중간에 자연스럽게 유주얼 서스펙트스포일러를 하는 기사이니 주의할 것.) 하지만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유대균이 경기도 용인의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됨에 따라 사실 무근의 주장이 되었다. 아마도 한국 역사상 레전드급 사기꾼이자 죽었다고 장례를 치루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뭔가 구린내가 나는 조희팔 때문에 더 해외도피설이 흥한 듯.

6.3. 나비효과?

공교롭게도 유병언을 찾기 위해 전국의 야산을 뒤지다보니 개인들이 몰래 재배하고 있던 대마나 양귀비가 많이 발견되어 생각도 못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덤으로 아들 유대균 씨가 은신하던 오피스텔에선 오피스텔 성매매 일당이 잡혔다. 경찰들이 건물을 주시하고 있는데 살지도 않는 남자들이 들락날락거려서 조사해보니 빙고였다고...

6.4. 변사 현장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 "잊지말자 유병언!"

충남 아산 경찰수사연수원은 유병언이 발견된 현장을 실물 크기 그대로 본 딴 모형을 만들어 전시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연수원에서 교육받는 전국의 경찰관들이 이를 보면서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형은 시신에 붙어 있던 것들까지 그대로 반영해 만들어진다. 시신 옆에서 발견된 가방과 신발 등 유 전 회장의 소지품, 풀과 나무 등 주변환경도 발견 당시 모습으로 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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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망확인 발표로 인한 처리
  • [2] 금수원 2차 진입시 군의 협력을 얻었다
  • [3] 파트릭 메조뇌브는 게슈타포 대장과 캄보디아 '킬링필드' 학살 주범을 변호하는 등 '악당 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어지간한 실력과 배짱으로는 저런 변호들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거물급인지 짐작가능. 쉴드가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세월호 선원들의 사선 변호인들이 줄줄이 사임을 해서 선 변호사가 붙은 상황과 비교하면 묘하다.
  • [4] 그런데 변호사를 통해 자수의사를 밝혀왔다는 건...뭔가 의도가 있다는 거다. MBC 왕상한 교수의 라디오에서도 이렇게 예상함.
  • [5] 이제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사과하면 전쟁발발에 대한 사과프로세서와 동급이 된다고 한다.
  • [6] 수뢰혐의는 양자대면을 기본으로 한다. 한쪽이 사망하면 확실한 증거가 없는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사가 불가능해진다.
  • [7] 또한, 수사 대상자가 사망하면 검찰에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이게 체면 단단히 구기는 일이다.
  • [8] 인권침해 논란이 있음에도 이러한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위헌소송이 기각된적이 있다.
  • [9] 이 부분은 종편채널에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그가 겨울옷을 입은 이유를 추측한 바 있다. 한밤중의 산의 기온은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점, 유병언이 고령이라는 점, 또 유병언이 발견된 곳이 인근 주민들에게 <소련재>라고 불리는 주변보다 기온이 낮은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 [10] 그런데 이러한 엄단 선포가 거의 병크 수준인게, 경찰 스스로가 국회에 자료를 제출했고, 국회에 자료를 제출했다는 것은 곧 자료를 일반에 공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부 기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는 국회의원의 재량에 의해 공개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공개는 정보기관의 기밀 자료 등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국한된다(사실, 정보기관에서 국회에 제출한 기밀 자료도 일반에 공개되어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 [11] 삭제된 블로그이다.
  • [12] 거의 없다는 것과 0%는 다르다. 체내 대사속도가 빨라서 전혀 검출이 안되는 독들도 있고, 공기라도 인위적으로 혈관에 집어넣으면 색전증을 유발하는 독이 되어버리는 등. 하지만 암살자들이 나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이럴 일은 거의 없다.
  • [13] 신체가 급격히 추워지면 뇌의 신호가 혼란을 일으켜 오히려 덥다고 판단, 옷을 벗게되는 행위.
  • [14] 일단 유씨는 음주를 하지 않는다는 증언이 있긴 하다.
  • [15] 이는 지존파 사건 이후 21년만이다.
  • [16] 유출된 사진만 봐도 머리 외의 부분은 갈색으로 변색된 체 아직 원형을 미약하게 유지하고 있다.
  • [17] 사실 기자의 보도가 있기 전 아나운서가 경찰이 '소동을 벌였다'고 한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유병언 변사체 발견 사건의 경우에는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수사 기록을 재집계하는 것은 '소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조사 결과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경찰의 당연한 할 일이다(국과수도 매우 이례적으로 원장이 직접 브리핑을 한 것을 참고). 하지만 이 문제는 보도 태도의 문제일 뿐 박지원 의원의 주장과는 큰 연관이 없다.
  • [18] 유병언의 개인 수집품으로 전장식의 구식 권총이 나오긴 했다.
  • [19] 대표적으로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이 있었다.
  • [20] 루브르 박물관에 110만 유로(약 15억 원), 베르사유 궁전에 (정원 복원 프로젝트 비용을 겸해서) 140만 유로(약 19억 7천만 원)을 후원금으로 지급했다.
  • [21] 루브르 박물관 본관이 아니고 분관에 전시되었지만, 루브르 박물관이 연루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시한 공간이 본관인지 분관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 [22] 이 때 전시에 관련된, 장소 대관과 전시물 설치비용 등 모든 비용을 지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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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20: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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