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유재학

last modified: 2015-04-07 14:53:36 by Contributors


울산 모비스 피버스 감독
유재학(兪載學)
생년월일 1963년 3월 2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상명초 - 용산중 - 경복고 -연세대
포지션 가드
신체사이즈 180Cm, 80Kg
실업입단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입단
소속팀 기아자동차 (1986~1991)
지도자 인천 대우/신세기/SK/전자랜드 블랙슬래머 감독 (1998~2004)
울산 모비스 피버스 감독 (2004~)

1988~1989 농구대잔치 MVP
김현준(삼성전자) 유재학(기아산업) 한기범(기아산업)

2005~2006, 2006~2007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전창진(원주 TG삼보 엑서스) 유재학(울산 모비스 피버스) 전창진(원주 동부 프로미)

2008~2009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전창진(원주 동부 프로미) 유재학(울산 모비스 피버스) 전창진(부산 KT 소닉붐)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감독 생활
3.1. 감독 스타일
4. 논란
5. 이야깃거리


1. 개요

선수 시절에는 대한민국 농구를 대표하는 천재 포인트가드였고, 은퇴한 후에는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자리잡은 인물. 2012년 현재 KBL 통산 승리 1위에 빛나는 감독. 그리고 강희대제코재마저 피하지 못했던 타어강도 무시해버린 최고의 명장. 사실 저주의 원조뿐 아니라 모기업 내 다른 스포츠단과 접점이 단 하나도 없던 것이 부른 결과물이다.

별명은 현역 시절에는 코트의 여우, 감독 시절에는 만 가지의 수를 가지고 있다 해서 만수. 야구의 그 분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배구도 축구도2014년부터는 인기리에 방영중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있는 연기자 송일국의 둘째 아들인 송민국과 똑같이 닮았다는 이유로 민국이, 꾹꾹이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농구인물 중에 자기 친동생 송만세가 있다 카더라

2. 선수 시절

상명국민학교[1] 3학년 때 처음 농구에 입문했다. 농구를 좋아하던 유재학이 매일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튀기고 노는 것을 보고서 농구부에서 그를 농구로 입문시킨 것이었다. 이 때 같이 들어간 친구가 지금도 절친한 벗인 전창진이다. 상명국민학교 때부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상명국민학교를 소년체전 3연패의 위업을 달성시켰다. 소년체전은 5학년부터 참가가 가능한데, 유재학의 재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4학년인 그를 5학년으로 속여서 출전시켰다고 한다.

용산중학교에 들어갈 때, 워낙 실력이 좋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농구를 못 하게 될 뻔했다. 결국 용산중 관계자가 아버지가 내건 조건을 수락하고 농구를 다시하게 되었는데, 그 조건은 체벌 금지, 공부 시간 보장이었다. 그래서 유재학은 맞지도 않고, 남들 훈련할 때 나가서 공부도 했다. 그럼 선배들이 싫어했겠지만 유재학이 나가면 이기는데 싫어할 수는 없었다. 중학교 때, 전국대회 39연승을 하면서 중학농구를 씹어먹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야 했는데, 정상적인 경로라면 용산고등학교로 가야 했지만,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고 싶었고, 또 만난 사람들과 계속 농구를 해야 한다는 지겨움 때문에 선배들이 거의 없던 경복고등학교 진학을 우겨서 결국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경복고에 가서는 또 다시 경복고를 이끌고 고교 대회를 모조리 제패하면서 당시 흔들렸던 경복고 농구를 완전히 재건시켰다.

이제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이 천재 가드의 진로는 경복고의 후원자였던 고려대학교였다. 하지만 유재학은 "난 어릴 때부터 연대의 파란색 유니폼이 맘에 들었다능."이러면서 고교 졸업과 동시에 군 입대도 불사하며 연세대학교 입학을 고집한 끝에 갈 수 있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겠지?! 그리고 연세대는 유재학의 입학과 함께 날개를 달았다. 이 때도 역시 유재학은 천재 가드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대학도 졸업할 때가 되자 실업팀으로 가게 되었는데, 당시 막 창단한 기아자동차로 진로가 결정되었다. 농구대잔치의 끝물까지 이어진 신생팀에 대한 특혜로, 기아자동차는 그해 한 대학교의 졸업생 전부와 다른 대학의 졸업생 2명을 우선지명할수 있었는데,그들의 선택은 중앙대의 졸업생 전부와 연세대 졸업생 중 유재학, 정덕화였다.처음에는 아무래도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당시 1급 선수들을 다 모았던 기아자동차가 농구대잔치의 주역이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7-88 시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88-89 시즌에는 마침내 농구대잔치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즌의 MVP에 올랐다.

그런데 이 거칠것 없던 천재 가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무릎을 다치면서 고생하기 시작한 것. 당시 스포츠 의학의 개념이 없던 대한민국에서는 일단 경기가 중요하다고 스테로이드 주사(일명 대포주사. 데포메드롤)를 맞춰서 임시로 뛰게 했다. 그리고 두 차례 무릎 수술을 대한민국에서 받았는데, 전혀 낫지 않았다. 이러면서 무릎이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일본에 가면서 다시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의 두 차례 수술을 한 마디로 엉뚱한 곳을 잘라낸 오진이었다.

이 때 유재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데, 일본 병원에서 짜준 재활 프로그램을 조기에 종결시킨 것. 통증이 사라지자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조기 복귀하면서 아픈 무릎이 다시 탈이 났다. 여기에 당시 기아자동차의 연세대와 중앙대 출신 선수들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그의 평생의 스승인 방열 감독의 퇴진, 그리고 아픈 무릎 상태와 그의 빈자리를 차지하던 후배 모씨의 존재는 결국 유재학의 조기 은퇴를 가져왔다. 결국 유재학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모교 연세대학교의 코치로 부임했다.

3. 감독 생활

명성이 높던 스타라서 그런지, 연세대학교는 유재학을 정식으로 교직원에 임명해 주며 신분을 보장해 줬다. 연세대에서 4년을 코치로 일하다가 연세대학교를 연고 학교로 하여 새로 창단되는 대우증권 팀의 코치로 들어갔다.

이미 연세대 코치 시절에 지도자로서 공부도 충실히 했고, 현역 시절 워낙 뛰어난 포인트가드였던 유재학은 곧바로 사실상의 감독 역할을 했다. 종규 감독의 지원 아래 훈련 지도나 전술을 관장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2년을 또 다시 감독 수업을 받다가 마침내 1998-1999 시즌, 34세의 나이에 정식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모기업이 신세기통신으로, SK텔레콤(신세기와 합병)으로, 전자랜드로 바뀌는 와중에도 감독직을 계속 지켰다. 그런데 인천에서의 세월은 엄밀히 말하면 성공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6강 PO에는 종종 들었지만, 4강 PO에는 든 것은 딱 한 번. 꼴찌도 한 차례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인천 팀은 유재학이 떠난 후 더 막장으로 흐르면서 유재학이 명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2010년에 취임한 유도훈 감독을 두고 "유재학 다음은 유도훈"이라는 말도 있다.....

2004년 충격적인 뉴스가 나오는데, 당시 전자랜드와의 계약이 만료된 유재학을 모비스가 2억 3천만원의 연봉을 주고 감독으로 영입했다는 것. 전자랜드 시절에 4강 이상의 경력이 거의 없었던 그가 일약 감독 최고 연봉자가 되자 오버페이라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재학은 이를 실력으로 잠재웠다. 박수교-최희암을 거치면서 막장이 되어 버렸던 모비스를 단숨에 재건한 것이다. 그리고 박수교-최희암은 유재학이 떠난 전자랜드를 차례로 맡으면서 맞트레이드? 전자랜드를 개그랜드로 만들었다(...). 그리고 박종천 때 또 한 번 개그랜드를 찍은 후 현재의 유도훈 감독이 다잡았다. 그래서 전자랜드 팬들은 유재학 다음 감독이 유도훈이라고 부를 정도다.

첫 시즌은 쉬어간 후, 2005-06 시즌에 크리스 윌리엄스양동근을 앞세워 정규시즌 1위라는 이변을 연출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간발의 차로 4게임 모두 지면서 0-4로 졌지만, 모비스의 변신은 모두가 주목했다.(kbl 첫 챔피언결정전 0-4패배) 그리고 2006-07 시즌에 다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고, 이번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지 않고, KTF와의 접전 끝에 4승 3패로 첫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인정은 잘 안 해도 어쨌든 KBL 공식 기록 상으로 모비스의 10년만의 우승이었다.

양동근의 군입대와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인한 크리스 윌리엄스의 이탈, 그리고 대체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로 2007-08 시즌에는 6강 PO에 들지 못하며 실패하는가 싶었지만, 2008-09 시즌에 주목받지 못하던 김현중, 함지훈 같은 선수들을 조련하며 정규시즌 1위라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2005-06 시즌에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던 안준호 감독의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지며 정규시즌 1위팀이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지 못하는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절치부심한 유재학은 2009-10 시즌에 다시금 전력을 재정비하며, KT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정규시즌 1위를 지키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전주 KCC 이지스를 누르고 두 번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때의 우승으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함지훈의 입대로 10~11시즌은 8위에 그쳤지만, 11~12 시즌은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록했다. 2012~2013에는 서울 SK 나이츠에 가려서 그렇지 41승의 성적으로 정규시즌 준우승을 차지했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를 3대 0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시즌 1위 SK의 드랍 존을 완벽하게 박살내면서 4:0의 전적을 기록하며 KBL 역사상 2번째로 전승우승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아시아 농구선수권 대회에서 만가지 수를 맘껏 펼치면서 국대를 4강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당초 입상에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으나 경기마다 절묘한 작전과 엔트리 선수들을 전원 적절히 기용해 다른 나라들을 경악하게 만들며 승승장구. 4강에서 홈팀 필리핀에게 패했으나 3·4위전에서 대만을 꺾고 3위에 입상하며 대한민국을 16년만에 세계선수권 대회로 이끌었다.

2013~14시즌에도 모비스의 상승세는 여전해서 정규시즌 17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고, 양동근김시래의 공백을 무명 이대성으로 메우면서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시즌 마지막 LG전을 놓치면서 다시 2위가 되었다. 그러나 13~14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LG를 상대로 4승 2패로 우승, 역대 2번째로 2년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감독 개인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하며 최다 우승 감독이 되었다.

시즌 후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다시 맡았는데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에서는 리투아니아 등 세계적인 강호에게 연달아 털렸다.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충격적일 정도"라고 인터뷰했다.## 본인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던 듯.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이란을 꺾고 남녀 동반 금메달을 차지하며 4년 전의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2014-2015시즌은 서울 SK 나이츠, 원주 동부 프로미와 마지막 접전 끝에 5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시즌 종료 후 모비스와 5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플레이오프 4강에서 창원 LG 세이커스를 3승 2패로 눌렀고 결승에서는 원주 동부를 맞아 4경기를 연속으로 이기며 3연패의 업적을 쌓았다.

3.1. 감독 스타일

간단히 요약해 훈련 지상주의자다. 농구판의 김성근이라고 봐도 될 듯. 많은 훈련량으로 선수들을 조련하고, 팀 내 규율을 중시한다. 아침에는 반드시 모든 선수들이 모여야 하고, 훈련을 태만히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훈련량만 무식하게 많은 건 아니었고 선수 개개인에게 맞는 훈련을 진행한다. 한때 유행했던 산악 훈련을 유재학 감독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산악훈련보다 더 빡센 훈련을 한다는 게 함정

다양한 전략과 상황에 맞춰서 전략을 짜는 것 때문에 붙여진 별명은 만수(萬手), 즉 '만가지 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만수와는 절대 관련 없다. 그러고 보니 이만수는... 그만큼 전략이 다양하고, 모비스의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을 만드는 데 유재학 감독의 역할은 크다. 김성근 : 야구는 감독이 한다유재학 : 농구도 감독이 한다

또한 유재학 감독은 학연을 잘 안 본다. 의리? 그런 거 없다 상술된 학창 시절 때만 놓고 보더라도 용산중-용산고 라인이나 경복고-고려대 라인을 거부한 것부터 보면 벌써부터 학연과 관련된 얘기는 쑥 들어간다. 유 감독과 10년간 호흡을 맞췄던[2] 근배 코치는 경희대학교 출신으로 유재학과는 학연이나 일면식이 원래는 없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라서 특별히 명문대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드래프트에서 상명대, 조선대, 목포대와 같은 비주류 대학 선수들을 선택하는데에 거침없는 편.

4. 논란

2014년 2월 16일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과의 경기 작전타임 도중 함지훈에게 한 언행이 논란이 되었다. 과격하게 말하면서 입에 테이프를 붙이라고 강요했는데 영상에서 보이다시피 한 선수의 인격을 완전히 짓밟은 쉴드가 불가능한 짓. 이는 중계화면으로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기사
참고로 당사자인 함지훈은 “신경도 안 썼는데…테이핑 논란이 더 황당해” 라고 인터뷰 하였고 유재학 감독도 ‘함지훈 테이프’ 인격모독 논란…유재학 감독 “내 잘못이다” 라고 사과 인터뷰를 하였다.

5. 이야깃거리

2007-2008 시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움짤인 이른바 모래반지 빵야빵야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다만 이 움짤은 표명일의 시전장면과 유재학 감독의 표정을 합성한 것.

그후 근 7년만에 위에 버금갈 만한 움짤을 창조해냈다.


야 이 병신아!!


뭘 잘했다고!! 뒤에서 실실 쪼개는 조동현이 압권


2014년 12월 1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 나이츠울산 모비스의 경기에서 89:86으로 앞서 있던 모비스. 그런데 마지막에 모비스의 전준범이 쓸데없는 반칙을 하는 바람에 애런 헤인즈에게 점수를 내주면서 바스켓카운트를 줘버렸다. 2득점이 인정되고 자유투까지 들어가면 동점이 되는 상황. 이날 경기가 엎치락뒤치락하던 상황이라 신경이 곤두서있던 상황에서 이런 병크가 터지자 열이 제대로 뻗친 유재학 감독은 전준범에게 "야 이 병신아!!"라고 소리쳤고, 이 화면이 그대로 SBS 스포츠 중계방송을 타버렸다. 하지만 누구도 유재학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거

그런데 애런 헤인즈는 그와중에도 자유투를 넣지 못하면서(...) 89:88, 모비스의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아까까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문경은 SK 감독은 되레 뻘쭘한 자세로 악수를 나누었고, 그렇게 벤치로 들어오는 전준범에게 유재학 감독은 한대 때리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저때 전준범은 유재학 감독에게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고(...).

2015년 2월 13일 KCC전에서도 전준범이 또 기행짓을 하려하자또 갈구는 모습(...) 제발 그냥 나와 은근히 케미가 상당하다
----
  • [1] 지금의 상명초등학교
  • [2] 불화로 갈라선 것은 아니고, 기러기 아빠였던 임근배 코치가 미국에 건너간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본인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자진 사임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7 14:53:36
Processing time 0.3809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