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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훈

last modified: 2015-10-25 14:22:15 by Contributors

Contents

1. 遺訓
1.1. 유훈을 남긴 통치자
2. 후한 말 여강태수 유훈 자대(子臺)
3. 후한원소 휘하의 유훈 자황(子璜)

1. 遺訓

遺訓. 사전적인 의미로는 죽기 전에 남긴 가르침. 일반적으로는 왕이 임종시에 왕자나 대신들에게 최후로 남기는 말을 의미한다. 유명(遺命), 혹은 유조(遺詔)라고 하기도 한다.

유언과는 보다 격이 높게, 권력자의 사후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지시에 해당한다. 작게는 후사 문제나 장례 문제 등을 언급하기도 하고, 크게는 내정이나 대외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는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이 유훈을 받은 대신(따로 고명대신이라 부른다)이나 후계자가 전적으로 이 유훈에 대한 해석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믿어야 하는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윗동네의 경우 김정일이 김일성을 팔아서 자신의 통치를 '유훈통치'라고 규정할 정도.

1.1. 유훈을 남긴 통치자

  • 고려 태조 왕건 : 훈요 10조 참조.
  • 신라 문무왕 : 유훈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알려져 있다. 흔히 유언으로 통용되는 동해에 장사시키라는 부탁은 이 유훈의 일부.
  • 한고제 유방 : 후대 재상에 대한 유훈을 남겼다. 해당 항목 참조.
  • 소열제 유비 : 제갈량조운에 국정을 일임하였다.
  • 송 태조 조광윤 : 유훈을 돌에 새겼는데("석각유훈") 선양을 한 사씨 일족을 보호할 것과 간언하는 신하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내용이다.
  • 김일성 : 김정일을 민족의 태양으로 모시라는 유훈을 남겼다 카더라

2. 후한 말 여강태수 유훈 자대(子臺)

劉勳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 여강태수. 자는 자대(子臺).

서주 낭야국 사람으로 조조와 친분이 있었다고 하며, 별개의 열전은 없지만 여러 열전에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손책육강을 무찌르고 난 뒤, 원술손책과의 약속을 깨트리고 손책이 아닌 유훈을 여강태수로 삼는 것이 그의 첫 등장. 연의 정사 공통이다.

그러나 199년에 원술이 죽자, 그 세력을 이끌고 손책에게 귀의하러 가던 원술의 부하 장훈양홍을 모조리 사로잡고 그 보물들을 취했다. 반면에 원술의 동생 원윤과 사위 황의는 원술의 처자와 부곡을 거느리고 유훈에게 의탁하러 왔으며 거기다가 유엽이 정보를 죽이고 그 세력을 이끌고 유훈에게 의탁하러 오자 세력이 거대해졌다.

세력이 거대해진 것은 좋았지만 그 세력을 먹일 곡식이 부족해져서 화흠한테 부탁했는데, 화흠도 물자가 풍족한 편이 못 되어서 곤란해하던 마당에 손책이 우리가 지원해줄 것이니 상료를 점령해서 나눠가지자는 제안을 했다. 유엽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그 제안에 넘어갔지만 이는 모두 유훈을 작살내려는 손책의 계략이었다.

상료에 가니 이미 상료의 정수는 도망치고 난 뒤라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 동안 본진인 환성이 손책군에게 넘어갔고[1], 상료를 공격하러 간 본군은 손분손보에게 당하면서 나중에는 황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황조의 구원군인 황역이 오기 전에 손책 본군에게 궤멸된다.

그 후 조조와의 친분을 이용해 조조에게 귀순해서 열후에 임명되고 정로장군까지 지내지만 조조와 사마지와의 친분만을 믿고 법을 어기면서 방탕하게 생활하다가 처형된다. 그가 이렇게 방탕하게 생활할 때 두기한테 대추나무를 구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두기가 그것을 못 하겠다고 유훈이 납득할 정도로 설명을 해 조조가 놀랐다는 표현이 있다. 이건 두기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이 정도로 깐깐했다고 사료에 남을 정도의 유훈이 대단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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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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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는 그냥 전형적인 원술의 부장으로 등장. 물론 능력치도 좋지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48/63/35/25. 누선 말고는 볼 게 없는 쓰레기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1/64/50/47/54에 특기는 기술, 일제뿐. 지력이 50밖에 안되는 이상 기술 특기도 별 도움이 안되니 이래저래 쓰레기.

삼국전투기에는 아따맘마아빠로 나온다.

3. 후한원소 휘하의 유훈 자황(子璜)

劉勳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로 원소의 부하이며, 원술의 부하인 유훈과는 한자까지 동일한 동명이인이다.

호아도위를 지내다가 장양을 항복시키는 공을 세웠지만 원소가 트집을 잡아 유훈을 죽였다고 한다.

공손찬이 원소와 전쟁을 벌일 때 그의 죄상에 관한 표를 조정에 상주문으로 올려 원소가 부하들이나 지방관들에게 한 행위에 대해 10가지 죄상으로 논했는데, 그 중에서 일곱번째로 언급하면서 원소와 유훈이 처음에 함께 군대를 만들었지만 유훈이 공적을 세웠지만 사소한 일에 분노해 억울하게 죽였다면서 이에 대해 참소하는 사특한 자를 신용하고 공이 있는 자를 살해했다고 논했다.

장양이 항복한 때는 191년, 공손찬이 헌제에게 상주문을 올린 것은 192년이기 때문에 191년 또는 192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배송지의 의견에 따르면 유훈의 자가 자황(子璜)으로 유자황과 동일인물로 추측하고 있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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