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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last modified: 2015-10-24 20:18:40 by Contributors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의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 한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년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수가 있으리.
- 박정희,〈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陸英修

Contents

1. 소개
2. 생애
3. 슬하
4. 활동
5. 암살
6. 기타

1. 소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2. 생애

1925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갑부 육종관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이종사촌인 송재천[1]의 소개로 박정희를 만나 1950년 12월 대구 계산성당에서 결혼하였다. 당시 결혼식 사진을 보면 공교롭게도 육영수가 전날 위경련을 일으켜 얼굴이 심하게 부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 나이는 박정희가 34세, 그리고 육영수가 26세. 결혼식 때 주례를 섰던 허억 대구 초대 시장이 두 사람의 이름 때문에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이라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근데 주례선생님 성함도 만만치 않으십니다만 비슷한 예로 방송에서 육영수 여사라고 해야할 것을 육영사 여수라고 방송사고를 낸 일도 있었다고 한다. 출처는 이계진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게다가 결혼식에 쓸 예물반지를 가지고 있던 육영수의 사촌오빠가 결혼식날 반지를 잃어버려 부랴부랴 반지를 사왔다고 한다. 다사다난한 결혼식

사실 박정희는 육영수와의 결혼이 처음이 아니었다. 첫째 부인으로 김호남이 있다. 자세한건 해당항목을 참조.

당시 군인이었던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결사 반대했던 아버지 육종관은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나서도 사위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2]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 이경령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육종관은 결혼식에도 찾아오지 않고 사실상 의절을 했다. 들리는 말로는 1965년 육종관이 사망할 때 박정희가 임종을 지켰는데 그제야 그가 큰 인물을 몰라봤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3. 슬하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에서는 총 1남 2녀를 두었다. 육영수의 장녀 박근혜는 현재 대한민국대통령으로 재임중이며 그 외에는 육영수의 차녀 박근령, 장남 박지만이 있다.

4. 활동

결혼 후에는 당시 군인 월급이 박봉이었던 터라 구멍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6년 후에 서울 신당동에 집을 마련하였는데 당시 대문이 낮아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야 했던 박정희를 보고, 남자가 고개를 숙이면 기개가 꺾인다며 대문을 개조하였다고 한다.

영부인으로써 비교적 모범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에 비교적 비판적 논조를 보이던 'TBC 석간'의 진행자 봉두완 옹[3]의 회고에 따르면, TBC나 DBS 동아방송이 정부비판적 보도를 하여 관련자들이 고생할 때 옆에서 견제하며 뜯어말리고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봉두완, 박정희, 육영수가 3자대면한 적도 있다고.. 이런 부분은 연합통신/동아일보 출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에서도 교차 검증된다.

이렇게 남편을 다독이다 보니 그녀는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항상 한복 차림과 매우 꼼꼼하고 소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 고아원과 보육원등에서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1971년 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를 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육영수는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고 직접 봉사한 최초의 인물이며, 직접 소록도로 방문한 것이 아니라 1973년 한센인들을 청와대로 불러 다과회를 열고, 구호물자를 보냈다고 한다. 영부인으로 소록도를 최초로 직접 방문한 건 2000년대에 이희호 여사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41932515 육영수도 한센인촌을 방문하였으나 소록도가 아니라 1971년 전남 나주의 한센인촌, 1972년 전북 익산의 한센인촌이었다. 어쨌거나 당시 한센병 환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한 점은 아직도 소록도에서 회자되며, 덕분에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전라도 지방에서 우세당이었던 민주당인 만큼 1839개의 투표소 중에 1838개의 투표소가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으나 유일하게 소록도에 있는 도양읍 제7투표소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62.65%의 지지[4]를 받는 등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무튼 이렇다 보니 박정희까도 넘어가는 동네에서 육영수 까다간 바로 SALHAE 당한다 카드라[5]

*생전 육성.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의 강연이다.

5. 암살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박정희 저격 사건에서 문세광에게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두부관통상이었으며 훗날 여러가지 음모론에 휩싸이기도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밝혀낸 사실 중 하나는 당시 현장에서 회수된 6발의 총알 중 육영수의 머리에 맞은 총알만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넘겨지지 않았다고 한다.[6] 10.26 사태를 생각해보면 부부가 둘 다 총에 맞아 사망한 셈이다.

사실 그녀의 죽음을 암살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다. 문세광의 의도는 박정희의 저격이었고, 육영수의 피격은 말 그대로 사고에 가까운, 말하자면 collateral damage이기 때문. 그러나 일단은 엄연히 암살미수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이므로 암살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육영수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뤄졌으며, 조문객 수만 20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그 이후, 육영수의 사후 프랑스 유학 중이었던 박근혜가 귀국하여 임시적으로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다.

6. 기타

불우 청소년들의 직업보도를 위해 정수직업훈련원을 설치하고 만화잡지 보물섬을 발간한 것으로 유명한 육영재단이나 어린이회관을 짓는 등 아동복지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

육영재단은 손기정선수의 메달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다. # 그러나 정작 손기정 선수의 장례식 당시, 장례식을 위해 메달과 상장을 대여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를 단칼에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청와대에 보관되어 있던 다양한 문화재들이 박정희 암살 이후 사라졌는데, 육영재단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

역대 영부인 중 가장 키가 크고[7] 한복에 어울리는[8] 체형이었다고 한다. 박정희보다 키가 커서[9] , 이거 때문에 부부가 같이 참석할 땐 육영수 쪽이 키를 조금이라도 작게 보이게 하려고 신경 썼다는 말이 있다.

한 때 '푸른 기와집에 정희와 영수가 사는데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게'라는 농담이 돌기도 했다. 매우 유치한 농담이긴 하지만 '대통령 부부가 싸우는 걸 세 글자로 줄이면?'이라는 농담도 있었다. 정답은 '육박전'.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는 이 농담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지만 이 농담을 맨 처음 고안해서 써먹은 전유성은 즉각 출연정지를 먹었고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PD는 회사에 끌려가서 개발살이 났다. 재미있다면서 밑에 놈들이 알아서 긴거겠지. 즉 과잉충성이지. 정작 이 농담은 대통령 전용기의 스튜어디스에게서 들었다고...#

제3공화국(MBC)와 삼김시대(SBS)에서는 배우 김미숙이, 제4공화국(MBC)에서는 배우 전인화가, 코리아게이트(SBS)에서는 배우 고두심[10], 제5공화국(MBC)에서는 배우 양미경이 육영수 역을 연기하였다.

2010년 들어서 레이디퍼스트란 제목으로 그녀에 대한 영화가 기획되었으나 번번히 무산되고 있다. 주연으로 내정되던 감우성을 비롯한 배우들이 각본 등의 여러 이유로 거부하였고 제작비 투자도 부진한 상황이라고 한다. 거기에 청와대에서 국비 지원한다는 헛소문까지 돌아서 감독이 불쾌감을 보인다는 소문도 있으나 투자설명회에서 나온 각본이나 설정이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수준이라 투자자들이 멍때리고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가운데 변호인이 대박을 거두자 이 영화 제작투자가 다시 활기를 띤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오래가지 않아 역시 흐지부지되었다. 근데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라 레이디퍼스트?? 오타 아닌가?

대통령이나 기타 유명 정치인 및 그와 깊이 관계된 인물 항목에는 공과를 가릴 수 없는 사실 부분만 짤막하게 쓰여 있거나 논란·소송 등의 이유로 작성금지된 경우가 많은데, 이 항목은 논란도 없이 열려 있으니 근/현대 정치 관련 인물 관련으로는 상당히 특이한 항목이다. 그것만으로도 육영수에 대한 세간의 평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1차적인 이유는 이미 사망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망한 사람의 경우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지 않는 한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이다. 물론 만일 친고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위키가 무너지고 랜선이 황폐화 되고. 그 전에 허위사실을 적시할 '용자'가 있을까? 그보다 뭘 알아야 허위사실을 적던가 말던가 하지 그런데 어차피 적을 게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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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박정희가 참모장이던 9사단에서 장교로 복무중이었다.
  • [2] 일설에는 육영수가 박정희랑 결혼하면 육영수가 죽는다는 예언을 들었다고.몇살까지 살고 죽는가는 이야기 안한걸 보니 잘 살다가 늙어서 죽는다는 얘기였을수도 흠많무...
  • [3] TBC의 간판 뉴스앵커였고 당시 인지도는 엄기영 전 MBC 사장이나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과 거의 동급이었다. 이후 전두환 정권 때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대, 제12대 국회의원을 하였다.
  • [4] 득표수는 박근혜 270표 문재인 158표
  • [5] 이게 농담도 아닌게 실제 박근혜가 정계에 들어온 후, 박정희의 행적에 대한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고, 야당이 정치적으로도 이용해 먹었지만, 육영수에 대해서는 고요할 정도로 언급이 없다. 실제로 박정희 싫어도 육영수 때문에 박근혜에게 표줬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 [6] 탄환이 우뇌 깊은 곳에 박혀서 탄을 꺼내려면 시신 훼손이 심각해지기에 탄을 꺼내지 않고 장례를 치뤘다고 한다. 탄환이 박혀있는 채로 묻혀 있는 셈이다.
  • [7] 170cm에 육박했다고 한다.
  • [8] 이건 사실 이후 영부인이 되는 이순자 의 흠좀무(...)한 한복 센스 때문에 더 부각된 면이 있다.
  • [9] 참고로 박정희는 165cm로 역대 남자 대통령들 중 가장 신장이 작다. 딸인 박근혜는 162cm.
  • [10] 고두심은 MBC 라디오드라마 격동 30년(격동 50년의 전신)에서도 육영수 여사의 목소리를 맡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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