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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영

last modified: 2015-08-07 17:00:12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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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1960년생 배우
1.1. 소개
1.2. 원조교제 사건
1.2.1. 개요
1.2.2. 쟁점
1.2.3. 사건 일지
1.2.4. 본격적 재기 이후 이경영의 언론 플레이
1.2.5. 일부 언론의 오보 (이경영이 2004년에 무죄판결 받았다고?)
1.2.6. 판결 정리
1.2.7. 네티즌들이 자주 궁금해 하는 사항
1.3. 재기
1.4. 주요 출연작
1.4.1. 영화
1.4.2. 드라마
2. 작가
2.1. 소개
2.2. 출간 작품
3. 1958년 생 성우배우
3.1. 대표 출연작품

1.1. 소개

1960년생. 성우 출신 배우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최민수와 함께 충무로 4대 트로이카로 잘 나가던 배우였다.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 네 배우들 중에서 멜로적인 성격까지 연기할 수 있는 연기폭을 지녔지만, 지나친 다작출연으로 가치마저 훼손되기도 했다.[1] 그러나 같은 장르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1996년에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하여[2] 제작한 귀천도가 실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2001년에는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1.2. 원조교제 사건

1.2.1. 개요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는데, 첫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한편 형사재판이 종결된 후, L양과 L양의 부모는 이경영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2004년 5월 L양 측이 승소하였다.

그런데 이경영은 여러 인터뷰에서 유죄판결 받았던 부분은 숨기고, 단순히 무죄판결만을 받은 듯이 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적잖은 기사에는 잘못된 정보(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실려 있는 상황이다.

1.2.2. 쟁점

- 3차례의 성관계를 가질 동안 이경영은 L양이 미성년자임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 이경영이 L양에게 준 10만원, 3만원 등의 금전은 화대 명목이었나? 교통비 명목이었나?
- 이경영이 L양에게 한 영화출연 약속은 성관계의 대가였는가?

1.2.3. 사건 일지

  • 2002년 5월 14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소위 원조교제) 혐의로 긴급체포

  • 2002년 5월 16일 구속영장 발부

  • 2002년 7월 30일 보석금 700만원을 내고 석방되어 불구속상태에서 재판 받게 됨


  • 2002년 8월 12일 형사재판 1심 판결 선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1심 재판은 인천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L모(18)양과의 첫번째 성관계시 미성년자인줄 몰랐다는 점은 인정되나 두번째는 성관계전 L양이 '나이를 말했다'는 진술이 신빙성이 높아 유죄가 인정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작한 영화에 L양을 출연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을 준점도 인정된다"며 성 관계의 대가성 부분도 인정했다. 그리하여 1심 재판부는 이경영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하였다. # 그런데 검찰은 첫번째 성관계 때도 이경영은 L양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 2002년 10월 25일 형사재판 2심 판결 선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2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다. 검찰은 이경영이 첫번째 성관계 때도 상대 여성이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1심 법원과 똑같은 판결을 하였다. 한편 검찰과 이경영 모두 2심 재판 결과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2심에서 끝이 났다. 이에 따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확정되었다.#


  • 2002년 11월 사회봉사명령 이행 #


  • 2004년 5월 민사재판 판결 선고 (L양 측 승소)
    형사재판이 끝난 뒤, L양과 L양의 부모는 이경영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배우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영화출연을 내세워 자신들의 성적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성년자인 L양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L양의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였다. 즉 L양 측이 승소하였다. #


  • 2009년 2월 MBC 드라마 까메오 출연 무산
    원조교제 유죄판결받은 전력때문에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까메오 출연이 무산되자, 자신의 미니홈피에 "항소를 했더라면 부끄러움은 씻지 못하겠지만 범죄자의 오명은 씻지 않았을까" 라는 글을 올렸다. 즉 유죄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

1.2.4. 본격적 재기 이후 이경영의 언론 플레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이후 2005년부터 간간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2011년 이후에는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언론과의 인터뷰가 자주 있었는데,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면, 유죄판결 받은 부분은 숨기고, "무죄판결 받았다"고만 답하였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경영의 말을 검증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두 건의 인터뷰를 예로 들어 보겠다.

  •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 #

기자: 성매매 스캔들은 어떻게 종결됐나?
이경영: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그 친구한테 사과도 받았다.


  • 여성중앙과의 인터뷰 (여성중앙 2015년 1월호)

기자: 어느 순간부터 미디어와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어요
이경영: 그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위 인터뷰를 보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기사들 때문에 이경영이 무죄판결을 받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경영의 말은 1/3만 진실이고, 2/3는 거짓이다. 3차례 성관계 중 첫번째 성관계만 무죄고, 나머지 두 번의 성관계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니까.

※ 여성중앙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위 대화 부분은 2015년 1월 15일부로 온라인판에서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종이로 출판된 여성중앙 2015년 1월호 책자에는 위 내용이 여전히 실려있다. 해당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메일로 문의하였는데, '무죄판결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온라인판에서 삭제하였다고 답변해왔다.

1.2.5. 일부 언론의 오보 (이경영이 2004년에 무죄판결 받았다고?)

2012년 이경영은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라는 토크쇼에 출연했는데, 그 방송은 "이경영은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법정공방 끝에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경영이 해당 방송 제작진에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방송이 나간 직후 "이경영이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는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등장하였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무혐의 처분은 검사가 수사 후 내리는 결정 중의 하나로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면 피의자는 재판을 받지 않게 된다. 따라서 법정공방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것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한 말이다. 법정공방 끝에 나올 수 있는 것은 검사의 처분이 아니라 판사에 의한 유죄판결, 무죄판결 등이다.

무혐의 처분 받았다는 표현을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의미로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사건 형사재판 판결은 2002년에 확정되었다.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을 열어 새로운 판결을 받아내려면 재심을 청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재심청구는 극히 예외적인 사유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 한편 이경영 사건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것임을 감안할 때 만약 이경영이 재심을 청구하여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면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제 OO 재판부(재판장 아무개 부장판사)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배우 이경영씨에 대한 재심재판에서 … 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등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의 보도가 있었을텐데, 2004년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런 구체적인 보도는 단 한줄도 없다. 오히려 2004년에는 L양과 L양의 부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이경영이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민사재판 판결에 대한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잘못된 정보인 결정적인 증거는, 2009년에 이경영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항소를 했더라면 부끄러움은 씻지 못하겠지만 범죄자의 오명은 씻지 않았을까" 라는 글을 올리며 항소를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는 점이다.# 만약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2009년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2004년으로부터 11년이 지난 2015년 현재까지 이경영은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에 출연금지된 상태이다. 이것 역시 이경영이 2004년에 무죄판결받았다는 것이 오보라는 증거이다.

한편 2015년 1월, 한 언론사는 "이경영이 무죄판결 받았다"는 정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내기도 하였다. # #

1.2.6. 판결 정리

형사재판: 3차례 성관계 중 첫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몰랐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선고됨.

민사재판: "배우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영화출연을 내세워 자신의 성적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성년자인 L양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 이라며 "이경영은 L양과 L양의 부모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판결이 선고됨.

1.2.7. 네티즌들이 자주 궁금해 하는 사항

법원은 이경영이 L양(당시 18세)과 가진 3차례 성관계 중 첫번째 성관계는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설령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성매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첫번째 성관계 역시 유죄아닌가?'라며 의아해한다.

궁금증을 풀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죄목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려준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죄목에 대해서는 판결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불고불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이경영을 원조교제(=미성년자 성매매 =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은 첫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원조교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라고 하였다. 한편 미성년자임을 몰랐더라도 일반 성매매죄가 성립할 수 있지만, 검찰이 일반 성매매죄로는 기소하지 않아서 일반 성매매죄에 대해서는 판결자체가 내려지지 않았다.

1.3. 재기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써니에서의 단역 출연도 있었고,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영동 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 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3]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태.

더욱이 2014년에 들어서면서 어마어마한 다작을 하고 있다. 그 목록을 보면

2월 : 관능의 법칙(최성재 역), 또 하나의 약속(교익 역)
4월 : 백프로(교장 역)
5월 : 무명인(유강진 역)
7월 : 군도: 민란의 시대(땡추 역)
8월 : 해적:바다로 간 산적(소마 역)
9월 : 타짜: 신의 손(꼬장 역)
10월 : 제보자(이장환[4] 역)
11월 : 패션왕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게다가 10월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도 출연했다!뭐야 이 아저씨 무서워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농담조로 한국영화에는 '이경영 쿼터제'가 있다고 하기도...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도 있겠지만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너무 가볍지 않고 개그 캐릭터가 아닌 격조가 있는 중간보스급의 위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몰라도 조연급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다. 그래서 주연급은 아니지만 조연급으로는 여기저기서 캐스팅되고 있다. 또한 이경영이 선역부터 악역까지 다양하게 맡을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도 이유이다.


1990년대 초반의 얼굴에 비하면 살도 살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이 특징이다.



1.4. 주요 출연작

1.4.1. 영화

연도제목배역관객수
1987연산일기중종 1만 명
1987아다다수룡 2만 명
1989구로 아리랑현식 2만 명
1990비 오는 날 수채화천호
1990있잖아요 비밀이에요오 선생
1990영심이교생
1990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상대 변호사
1990난 깜짝 놀랄 짓을 할거야주연
1991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오 선생
1991부활의 노래오 선생 1만 명
1991잃어버린 너이종환 18만 명
1991하얀 비요일고묵
1991사의 찬미홍난파 18만 명
1992하얀 전쟁변진수
1993아침이 오면 그대 이름으로주연
1993그여자, 그남자주연 21만 명
1994세상 밖으로경영 25만 명
1995손톱정민14만 명
1995테러리스트사현32만 명
1996코르셋한상우11만 명
1996귀천도좌운검20만 명
1997미스터 콘돔경호15만 명
19973인조3만 명
1997베이비 세일상준5만 명
1997할렐루야오동팔31만 명
1998죽이는 이야기하비4만 명
1998기막힌 사내들베테랑1만 명
2002몽중인이윤호-
2002미워도 다시 한번 2002안지환1만 명
2002패밀리최무영13만 명
2005려나무 숲원양어선 최 선장2만 명
2007부신 날에상준28만 명
2010파주보스(특별출연)
2010적자박 경위157만 명
2011최종병기 활김무선747만 명
2011른소금최고문77만 명
2011카운트다운조명석47만 명
2012부러진 화살이태우 판사345만 명
2012, 눈아버지2만 명
2012궁 : 제왕의 첩내시감263만 명
2012사원반지훈110만 명
2012남영동1985이두한33만 명
201226년김갑세296만 명
2013베를린리학수716만 명
2013신세계석회장468만 명
2013더 테러 라이브차대은558만 명
2013이 : 괴물을 삼킨 아이임형택239만 명
2014또 하나의 약속김교익49만 명
2014관능의 법칙최성재78만 명
2014프로교장 3만 명
2014명인유강진 -
2014군도:민란의 시대땡추477만 명
2014해적:바다로 간 산적소마866만 명
2014타짜: 신의 손꼬장401만 명
2014제보자이장환 박사172만 명
2014패션왕원호부(특별출연)
2015허삼관
2015암살
총 관객수 6,358만 명

1.4.2. 드라마

연도제목배역시청률
1998로맨스[5]
1998은실이
2001푸른안개윤성재
2014미생최전무7.9%

2. 작가

2.1. 소개

한국 판타지 소설 작가. 블로그 홈페이지
1978년생으로 한국 판타지 1세대 작가군의 하나이며 고등학교 때부터 쓴 총 40권이 넘는 가즈 나이트 시리즈로 유명하다.
1, 2부로 나뉘어진 섀델 크로이츠를 완결하고, 2010년 9월 가즈 나이트R를 출간하며 새로운 가즈 나이트 시리즈의 연장을 알렸다.

최고의 히트작은 당연히 가즈나이트. 때문에 가즈나이트에 비해서 다른 작품은 안 팔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즈 나이트 시리즈로 계속 되돌아오게 되었다고 하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작가 본인은 이를 부정했다. 링크. 그냥 본인이 쓰고 싶어서 쓰는 거라고.
그런데 비그리드 연중, 레드혼 연중, 셰델크로이츠는 1부 2권, 2부 7권으로 조기[6]완결인걸 생각하면 가즈나이트를 제외한 책이 안팔려서 가즈나이트로 돌아왔다.는 말이 설득력있기는 하다.

여담으로 시리즈 하나 끝낼 때마다 필력이 성장하여서 가즈나이트R에서는 괜찮은 필력이라고도 평가받는 편이다. 가즈나이트는 소설 자체의 필력은 굉장히 평가가 낮은 편. 물론 초창기 가즈는 고등학교 때 쓰기 시작한 거니 감안한다 쳐도...그보다 일개 고딩이 그런 초히트작을
더불어 잘 살펴보면 굉장히 덕스러운모에로운 여캐들이 작품군에 산재해 있는데 동시에 매우 세련되게 조형되어 소위 말하는 덕내를 느낄 수 없다는 것도 특징.이것이 바로 1세대 덕의 패기

가즈나이트가 연재된지 오래된 소설인 만큼 텍스트본이 많이 풀려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저작권 관련 법소송으로 걸리지 말고 제대로 된 거 구해서 보라고 한다. 작가가 작가블로그에 이런 글 올리지 않게 제발 텍스트본이나 스캔본이 아니라 책 사서 보자. 원본

그리고 과거 통신연재 텍본은 교정 전의 글이다보니 출판된 책과 비교해보면 내용이 엉성한 게 보인다. 특히 1부 고신전쟁 통신연재판은 캐릭터 성격이 현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출판본으로 봐야 가즈나이트 R까지 캐릭터나 설정이 이어진다.

2.2. 출간 작품

3. 1958년 생 성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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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70.08 KB)]


생년월일 : 1958년 6월 16일
신장/체중 : 172 cm/68kg
소속 : 스타피아엔터테인먼트(주)
학력 :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1978년)
경력 : KBS 제 18 기 성우 (1982년)
KBS 제 10 기 탤런트 (1983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연극부문)(1985년)



성우 출신 배우로서 각종 TV 드라마에서는 조연으로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동명이인의 1번 항목보다 데뷔도 빠르고 나이도 많지만 배우로서의 인지도는 안습수준.

현재 대불대학교 뮤지컬학과 교수로 재임중이다.

3.1. 대표 출연작품

  • KBS 통사람들 - 조용원 상대역 (1983년)
  • KBS 무풍지대 - 유지광 파 망치 역 (1988년)
  • KBS 자는 외로워 - 수지 애인 역 (1994년)
  • KBS 무인시대 - 조환관 역 (2003~2004년)
  • KBS 금요드라마 "다이아몬드의 눈물" - 김혜선 남편 진광호 역 (2005년)
  • MBC 제5공화국 - 남영식 싱가포르 대사관 부이사관 역 (2005년)
  • SBS 연개소문 - 연개소문 동생 연정토 역 (2007년)
  • MBC 이산 - 병조판서 한준호 역 (2008년)
  • SBS 자이언트 - 조필연의 친구 오세광역 (2010년)
  • MBC 무신 - 최우(정보석)의 처남 정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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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이 시기에는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던 탓도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관객들이 외면해 버린 시기이기도 했다
  • [2] 원래는 심승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 했으나 사정으로 이경영에게 넘어갔다. 여주인공 교체 등 다사다난에 시달렸지만 흥행성적도 안습이었다.
  • [3]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 [4] 이름은 다르지만 황우석과 동일인물이다.
  • [5] sbs에서 방영된 주말극
  • [6] 한번 시리즈 내면 권수가 엄청나오는 가즈나이트 시리즈와 비교하면 권수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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