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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last modified: 2015-04-03 15:06:36 by Contributors


엘 자이시 SC No.10
이근호 (李根鎬 / Lee Keun-ho)
생년월일 1985년 4월 11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포지션 공격수
신체조건 172cm / 76kg
프로입단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2005~2006)
대구 FC (2007~2008)
주빌로 이와타 (2009~2010)
감바 오사카 (2010~2011)
울산 현대 (2012~2014)
상주 상무(임대) (2013~2014)
엘 자이시 SC (2014~ )
국가대표 75경기 19골

2012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세르베르 제파로프(알 샤밥) 이근호(울산 현대 축구단) 정즈(광저우 헝다)

2012년 AFC 챔피언스 리그 최우수 선수상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이근호(울산 현대 축구단) 무리퀴(광저우 헝다)

2013년 K리그 챌린지 MVP
리그 창설 이근호(상주 상무) 아드리아노(대전 시티즌)

2013년 K리그 챌린지 득점왕
리그 창설 이근호(상주 상무) 아드리아노(대전 시티즌)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알렉스
MF
염기훈
MF
이호
MF
최진수
MF
김영후
DF
최철순
DF
김형일
DF
이재성
DF
오범석
GK
김호준

Contents

1. 소개
2. 커리어
2.1. 대구 FC
2.2. 해외진출
2.3. 울산 현대
2.4. 상주 상무
2.5. 엘 자이시 SC
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3.1. 2014 브라질 월드컵
3.2. 2015 AFC 아시안컵
4. 역대 성적

1. 소개

대한민국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 소속팀은 엘 자이시 SC.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뛰어난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공격 진영 전반을 휘저으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본인도 찬스를 많이 찾아낸다. 그러나 단점도 뚜렷하다. 상당히 투박한 스타일로 퍼스트 터치가 둔탁하고 골 결정력이 떨어져서 찬스를 많이 찾는 만큼 놓치기도 많이 놓친다. 덕분에 눈에 많이 띄게 되면서 유난히 욕을 먹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외파를 통틀어서도 이근호만큼이나 찬스 냄새를 맡을 줄 알고 또 거기까지 움직여주는 선수는 없다. 이덕인지 한때 박지성-이근호 콤비는 절정을 이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으로 오래보지 못한게 아쉬울 다름.

결정력 부족에 관해선 이근호 본인도 인정하고 있으며 이근호가 정말 몸이 좋아서 결정력까지 좋을 때면 모를까 대구 시절도 그렇고 원톱은 별로 몸에 맞지 않는 옷. 이는 감독들도 인지하고 있어서 원톱으로는 거의 기용되지 않으며 투톱으로 뛰거나 양측 윙어, 2선 공격수등의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폼 좋을때는 원톱이나 제로톱 역할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퍼스트 터치란건 경험 쌓는다고 좋아지는게 아닌지라 한계는 뚜렷하다.[1]

측면으로 빠지는 플레이가 많기 때문에 크로스도 적당히 올릴 줄 알고, 라인 파는 플레이도 괜찮다.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점프력이 나쁘지 않고 의외로 헤딩 감각도 날카롭다. 중앙에 섰을 때 도움됨은 물론이고 울산 철퇴축구 시절에는 곽태휘, 김신욱 같은 거인들에게 주구장창 경합을 시키다 가까운 쪽에 있는 이근호에게 한 번 올려서 매섭게 잘라들어가는 플레이는 알고도 손발이 어지러워서 못 막았다.

2. 커리어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부평고 황금세대의 마지막 멤버로 졸업하고 2004년에 창단멤버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2군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2군에서의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 2군 리그 MVP까지 차지하고 주일을 상대로 대구 FC에 트레이드됬다. 여기서 포텐셜이 폭발했다.

2.1. 대구 FC


팔공산 라베시(팔공산 라베찌)
대구 FC에서 활동하는 2시즌 동안 이근호는 46경기 19골 9도움을 기록했으며, 외국인 용병 공격수들과의 득점 경쟁에서 가장 돋보이는 한국인이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대구 FC의 엠블럼에 있는 태양 문양에서 따온 명칭인 태양의 아들이라 불리며 대표팀에도 승선해 맹활약을 펼친다. 이 시기에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블랙번 로버스에서도 2번이나 이적 제의를 했으나 본인이 주전 출장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팀으로 이적하길 원해 이적이 불발됐다.

2007시즌 초반 변병주가 이끄는 총알축구의 선봉장이었으며, 대구 FC 유일의 국가대표선수였다.[2] 루이지뉴, 장남석, 이근호가 주축이 된 삼각편대를 중심으로, 후방에서 하대성에닝요가 찔러주고, 진경선이 백업을 해주는 역할로 대구는 공격력의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당시 리그에서 이근호가 기록한 스탯만 봐도 태양의 아들이란 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잘 알수 있는데, 2007년 득점 랭킹 10위 가운데 국내 선수는 단 두 사람 이근호(8위/20경기 8득점) 우성용(9위/26경기 8득점) 뿐이었다. 참고로 같은 해 득점 랭킹 안에 든 외국인 공격수들의 면면을 살피면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소리가 절로 나올 이름들 투성이다. 26경기 26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역대급 데뷔시즌을 보여준 득점왕 보레를 필두로 K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중 한명인 데얀, 신으로 불리운 사나이 모따, 까보레와 함께 경남의 돌풍을 이끈 뽀뽀, 대전의 6강 플옵 진출을 이끈 닐손, 이해가 커리어 하이였던 스테보 등 K리그를 거쳐간 무수한 외국인 공격수들 가운데도 믿고 쓰는 정도가 아닌 역대급 소리를 들을 쟁쟁한 선수들이 휩쓸 때였다.

그리고 2008년 26경기 11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5위에 오른다. 여담으로 한가지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이해 득점 랭킹 10위 안에 대구 선수가 무려 세 사람이나 있었다. 이근호 장남석(6위/24경기 10득점) 그리고 에닝요(10위/19경기 8득점). 훗날 전북에서 닥공 축구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60-60 클럽에 가입한 그 선수 맞다. 울산으로 이적한 루이지뉴(7위/19경기 9득점)까지 합친다면 대구FC는 그야말로 공격수의 산실인 셈이었다.
갈락티코도 아닌 일개 시민구단에서 득점 랭킹 10위 안에 공격수 3명이 들어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과인데, 당시 변병주 감독이 극단적인 공격축구를 표방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해 팀 득점 1위였지만 실점도 독보적인 1위라 리그 순위는 11위에 그쳤다(...).

하지만 국가대표 차출 이후 복귀했을 때 경기를 설렁설렁 뛴다라는 비판을 종종 받곤 했다.[3] 일부 팬들은 스타 의식에 빠진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 그래서 당시 악의를 품은 이들이 붙인 별명이 이그노어였다.

2.2. 해외진출

대구 FC와의 계약이 끝난 이후에 이근호는 주전 출장을 할 수 있으며, 향후 유럽 3대 리그로 진출하기에 용이한 유럽의 리그로 이적하길 원했고 겨울 이적 시장이 열렸을 때 프랑스 리그 앙의 파리 생제르맹(PSG),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빌렘II, 덴마크 슈퍼리가의 오덴세 등 여러 팀에 입질을 했으나 진출에 실패한다.

Lee_Keun-Ho_Jubilo_Iwat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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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근호는 국가대표팀에 계속 남아있기 위한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J리그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한다. 입단 초기에는 브라질리언이 아닌 한국인을 영입한다며 주빌로 이와타에 대한 혐한들의 비아냥도 있었지만 8경기 출전에 6골 5도움이라는 호성적을 내면서 하위권에 머물던 주빌로 이와타를 단숨에 중위권까지 끌어 올리며 에이스가 되었다.

2009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자 그 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영입 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PSG에서 다시 입질이 들어왔다. PSG는 이근호의 에이전트 측에 선수를 영입하고 싶으니 주빌로 이와타와의 관계를 정리하면 좋겠다는 입단 의향서를 보냈고 에이전트와 이근호는 그 말대로 주빌로 이와타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2009년 7월 19일까지 PSG는 이근호에게 아무런 제의를 하지 않아 이적이 불발되었고[4] 다시 주빌로 이와타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PSG에게 이근호가 두번이나 물을 먹자 여론은 "J리그보다 K리그가 좋다더만 결국은 J리그에서 뛰냐?"라며 이근호를 욕하는 부류와 "에이전트가 계약도 제대로 못한다."며 에이전트를 비난하는 부류, 그리고 "역시 프랑스 놈들이라 계약을 엿같이 한다."라며 PSG를 욕하는 부류로 나뉘고 있다.

2009년 초반까지만 해도 국대 No.1 공격수로서 이근호의 파트너를 정한다고 언론에서 설레발을 떨정도의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적 이후 K리그보다 압박의 강도가 덜한 J리그에서 뛰고[5] 이적파동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 폼이 심각하게 하락했다.

2010년 5월 31일 발표된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엔트리에서 구자철, 신형민과 함께 탈락하였다. PSG 이적 불발 이후 2009년부터 이어진 심각한 슬럼프가 그 원인인 듯. 부동의 주전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월드컵 예선때를 생각해보면 그저 안습인 상황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강민수도 뽑혔는데! 강민수도 뽑혔는데![6] 그리고 그 이근호의 자리를 메꾼 것이 염기훈. 그리고 염기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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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했다. 하지만 첫 시즌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2011년 3월, 거의 7개월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온두라스전에 후반 교체 투입 되었다. 움직임은 활발했으나 좋은 찬스를 몇 번 놓쳐 해충갤에서 이그노어라는 별명을 들으며[7]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으나 후반 추가 시간이 끝날 무렵에 코너킥 찬스에서 헤딩골을 넣으면서 인간극장 취급을 받고 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football_new4&no=645082&page=41&bbs= 본인도 골을 넣고선 감격했는지 상당히 표정이...

그리고 2011 시즌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리그와 챔스에서 꾸준히 공격포인트를 올려주었다. 제주와의 챔스 경기에서는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국대에서도 세르비아, 가나와의 평가전에 연달아 출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광래식 만화축구 하에서 스코어러 역할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 미들과의 연계한 상대 공격진 예봉차단 임무까지 몽땅 떠맡은 박주영을 빠른 스피드로 보좌하며 또 다른 공격옵션이 되었고 상대팀 공격진의 섣부른 전진을 막아내는 역할도 준수하게 이행했다.

다만, 2011년 8월 10일. 다른 경기도 아니고 한일전에서 최악의 경기력으로 한국의 패배에 단단히 일조하면서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이고 있다. 물론 전술부터 선수 개개인 실력까지 한국이 전반적으로 일본에게 발린 경기이기는 한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였으니 문제다. 덕분에 당시 조광래와 함께 까임의 양대 축을 맡아버렸다. EE

2011시즌 J리그 득점왕에 가까이 가기도 했었으나 이루지는 못했고 커리어 하이인 리그 15골로 마감한다.

그리고 2012년 1월에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감바 오사카는 강등

2.3.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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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문제로 인해 군 팀에서 뛸 자격을 얻기 위해 국내 무대로 복귀. 그 때문에 감바 오사카에게 5억원 가량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했다.

국내 복귀 이후에는 그야말로 사기유닛의 재림. 머리까지 노랗다!! J리그 득점왕 근처까지 간게 폼은 아니라는듯이 종횡무진하고 있다. 다만, 골 결정력은 여전히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몸상태가 절정에 올라간 시즌 후반엔 그런 것도 없어졌다.

국대에서는 이청용의 공백으로 인해 붙박이 주전으로 복귀. 활약도 점차 나아지더니 최강희호에서는 이동국과 함께 맹활약중. 1박 2일의 힘

2012 시즌 김신욱과 함께 빅 앤 스몰 조합의 정수를 보여주며 팀을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적을 인정받아 2012년 AFC 올해의 선수상을 수여받았다. 이는 1991년 김주성 이후 21년만이며, 현행 체재로 개편된 2002년 이후로는 한국인 최초 수상자이다.


동시에 기존의 대표팀 주력이던 유럽파들이 부상과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는 힘든 상황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빠질 수 없는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2.4. 상주 상무


시즌 종료 후 입대를 선택, 13~14 시즌은 K리그 챌린지의 상주 상무에서 보내게 되었다.
2013년 챌린지에서 이근호의 활약상은 한마디로 2부 리그에서 혼자 메시 놀이 한다(...). 챌린지 원년인 2013년 득점왕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2014년 상주상무가 K리그 클래식에 승격하면서 이근호의 활약상은 주춤한다. 일단 클래식과 챌린지는 리그 수준이 다른 데다가, 상무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입대와 전역에 따른 스쿼드 변경이 걸림돌이 되었다.
2013년 11월 김재성 김형일 백지훈 등이 전역했고 또한 상주 돌풍의 주역중 한명이였던 미친 왼발 이상협과 풀백 최철순마저 2014년 4월 전역하면서 졸지에 절름발이 팀이 되어버린 것. 물론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 발을 맞추며 차츰 조직력을 끌어올리면 해결 가능한 문제겠으나, 문제는 이근호는 9월 전역이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상주 팬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2014년 7월 25일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그런데 올스타전 홍보용 티저 동영상에서 상주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까지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다는 개그 컨셉을 선보이며 빵 터진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냈다[8] 건빵맛스타 드립이나, 트랙터 주유비가 병장 한달 월급(...) 등 깨알같은 군대 개그가 일품


2.5. 엘 자이시 SC

2014년 9월 5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의 엘 자이시 이적이 확정되었다. 9월 16일 상주 상무에서 제대한 뒤 9월 18일부터 엘 자이시에 합류할 예정이다.

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에 출장했을 때는 역시나 한창 때보다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그 능력은 인정받아서 계속 기회를 얻고 있다.


아이티-크로아티아 평가전에서 득점하더니 말리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원톱으로 선발 출전, 제로톱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2선의 손흥민-이청용 등과 좋은 시너지를 내며 득점에 기여하진 못했지만 팀 승리에 한몫을 담당했다. 이로 인해 언론 및 박주영의 대표 복귀를 원하지 않는 팬들 사이에서 한국의 현실적인 최상의 원톱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아무래도 선수들 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2부에서 뛰다 온 것을 스스로 인식해서 템포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던 듯. 과연 경기를 치를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엔 미주 전지훈련의 평가전에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자신의 전술에 안성맞춤인 선수만 골라 뽑기 위해, 선수의 개성이나 플레이 스타일이야 어떻든 큰 틀만 짜놓고 거기에 끼워맞춰놓고 무작정 방치한 홍명보의 잘못이다. 사실 이 전지훈련은 케이리거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메세지에 가깝다. 쉽게 말해 대표팀 티오는 진작 정해졌으니, 대표팀에 오려면 해외파 따가리 노릇을 하던가 꼬우면 오지말던가.

해외파와 국내파와, 큰 차이가 없다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을 앞두고 국내파와 해외파의 수준을 이야기 했던 인터뷰가 네티즌의 조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월드컵이 끝나고 재평가 받았다.

3.1. 2014 브라질 월드컵



월드컵에서의 한을 풀다

수많은 들이 똥 싸는 와중에 김승규, 김신욱, 손흥민과 함께 홍명보호에서 그나마 잘 한 선수
지극히 당연한 홍명보호의 에이스

그리고 군대 무용담 끝판왕 야 내가 병장때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어

1차전 러시아전에선 후반전에 박주영과 교체 이후,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 넣더니 그대로 슈팅을 때려 골문을 흔들었다. 아킨페프 때땡큐 by 안정환[9] 골을 넣은 것 외에도 선발출장하여 56분동안 0골 0어시 0슈팅을 기록한 박주영과 비교해 활동량, 움직임, 돌파력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골로 인해 이번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 중 최저 연봉자가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10] ''
여담으로 재미있는 기록임은 분명하나, 역대로 따져보면 그보다 더 연봉이 낮았던 서정원도 있다. 94미국올림픽에서 스페인 상대로 득점할때 소속이 상무였다. 1990년에 병장 월급은 9,400원이었다. 2000년에 18,200원이었으니 서정원이 있을 당시에는 1만원 초반대였을 것이다. 연봉을 계산하면 지금 병장 월급 수준. 더군더나 서정원은 입대 하자마자 이등병 신분으로 월드컵에 나갔다. 월드컵이 끝난 후 일병이 되어 훈련소에 입소했다고 한다.


알제리전에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쇄도하던 구자철에게 패스하면서 2:4로 만드는 만회골을 넣는데 공헌했다. 이로서 첫 월드컵 득점에 이어 도움까지 만들어내며 2경기 1골 1도움을 기록, 2경기 0슈팅 0어시 1따봉를 한 어느 선수와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선보였다. 비록 한국팀은 알제리를 상대로 처절한 패배를 거두었지만 그라운드를 개처럼 뛴 손흥민, 후반 투입 이후 모든 공중볼을 따내며 알제리 수비진을 관광쳤던 김신욱과 함께 까방권을 얻은 몇 안된 선수였다. 또한 본인의 기량과 상관없이 K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받던 입축구좆문가축구 사이트에서 재평가까지 이뤄지며 사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차전 벨기에 전에선 후반 한국영과 교체 투입되어 쿠르투와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등 2차례에 걸쳐 좋은 찬스를 잡았지만 하나는 골대 위로 멀찌감치 띄우고 하나는 쿠르투와의 선방에 막혀 득점에는 실패했다. 또한 얀 베르통헌의 결승골은 그가 한국 진영에서 공을 끌고 나오다가 탈취당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그 실점 장면은 벨기에 역습상황에서 공격수 이근호가 죽어라 뛰어내려와서 탈취한 공이 다시 재탈취당한 것이다. 또 1차 선방 이후 쇄도하는 선수를 막지 '않은''못한'이 아니다. 손들다가 놓쳤다. 수비수 탓도 크다.그리고 이근호가 죽어라 내려와서 공을 뺐었다 다시 뺐기고 골키퍼가 1차선방한 걸 다시 차서 먹히는 와중에 수비형 미드필더 기슬렁 선수는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다. 왜 안 보이나 몇 번씩 다시 돌려보니 상대편 문전까지 올라가서 어슬렁거리다 수비 복귀 안하던데 빨리 퇴출 좀 그 기성용이 피파 공인 캐스트롤 인덱스, 스카이스포츠, 후스코어드, 골닷컴에서는 대표팀 평점 1위였다. 키커에서는 3위 모든 평점 사이트에서 3위안에 든 유일한 선수.

특히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 85년생 동갑인 박주영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박주영은 천재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 유럽 무대에서도 인지도를 올렸고 끝내는 통수아스날 이적까지 해내면서 빅클럽에 발을 붙였지만, 이근호는 이적파동에 휘말리고 J리그로 간 이후 폼이 떨어져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좌절을 맛보았고, 동갑내기 박주영이 유럽 여행을 하고 있을 때 국내용이란 소리를 들으며 까였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이근호의 투혼과 센스는 굉장했다.


비록 감독을 잘못 만나 팀이 걸레짝처럼 두드려 맞고 있지만, 이근호가 그간의 설움을 딛고 활약하는 모습에 많은 축구팬들이 감동해서 열렬한 성원을 보냈으며, 홍명보의 으리 논란에 맞서 김신욱, 김승규와 함께 K리거의 위상을 드높였다.

3.2. 2015 AFC 아시안컵

슈틸리케호에선 아직 국대에 뽑히지 않고 있다. 단, 이 전의 신태용 코치가 대행을 맡을 적엔 국대에 뽑혔다. 클럽에서의 출전을 중시하는 슈틸리케인 만큼, 팀에 완전히 자리잡게 되면 그 때쯤 다시 국대에서 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11월 평가전 명단에 포함되었다. 문제는 박주영도 같이 뽑히는 바람에 월드컵 때와 또 경쟁해야 했지만 박주영이 요르단전에서 주영화(...)가 되자 이란전에 원톱으로 선발출전했다.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위협적인 슈팅을 하고 손흥민과의 연계플레이 등 좋은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다. 이 후 소속팀에서도 골을 기록하면서 소속팀에서 부진한 박주영을 재치고 당당히 아시안컵 엔트리에 뽑혔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오만전에서는 나오지 못했다가 쿠웨이트전에서 원톱으로 선발출전했다. 이 날 대표팀 경기가 워낙 막장이었지만 이근호는 그나마 기성용, 박주호와 같이 칭찬을 받았다. 비록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시로 뛰어다니면서 쿠웨이트 선수들을 압박했고 수비가담도 적극적으로 했다. 하지만 이근호 특유의 투박한 플레이와 드리블은 그대로 남아있어 커뮤니티에서는 이근호를 신나게 깠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서 가장 많은 슈팅을 기록한 것도 이근호였다. 하지만 골 결정력이 그야말로 안습이어서 전반 30분에 김민우의 스루패스를 받고 1:1 찬스를 맞이하고 골키퍼가 각을 좁히자 칩샷을 시도했지만 막혔고 헤딩슛은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후반에는 골키퍼에게서 공을 가로채 오른쪽 골라인에서 공을 감아찼지만 그것도 빗나갔다. [11] 게다가 이청용이 빠지자 다른 선수들은 시도하지도 않은 2:1 패스 등 연계플레이를 많이 보여주었다.

3차전인 호주전에서도 무난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다만 이번엔 원톱이 아닌 평소 뛰는 위치인 윙으로포지션을 전환했다. 특유의 투박한 스타일은 그대로 있었으나 좋은 드리블을 보여주고 수비가담을 쉴새없이 하였다. 전반 30분 경에는 기성용의 패스를 받고 이를 다시 이정협에게 연결해주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토너먼트 8강전에서도 호주전에서 같은 포지션으로서 출전했고 무난한 드리블과 많은 활동량으로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압박했다. 공격시에는 올라오고 특히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수비시에는 내려와 다른 선수들과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압박해 공을 탈취했다.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움직였지만 우즈벡 수비수들의 방해와 아쉬운 골 결정력으로 득점을 올리진 못했다. 전반 17분에도 손흥민의 절묘한 패스를 받았지만 수비수들에게 막혔다. 그리고 기성용과 박주호의 절묘한 로빙패스를 두 번이나 받았지만 퍼스트터치가 시망이라서 공이 한 번은 골라인으로 나가고 한 번은 골망을 때렸다. 공격에 있어서 퍼스트터치는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승전에서는 후반 62분에 교체출전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지만 전과 같이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 수비가담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팀은 1:2로 아쉽게 지고 말았다.


4. 역대 성적


2004시즌(인천 유나이티드) KFA컵 1경기 0골
2005시즌(인천 유나이티드) KFA컵 1경기 0골
리그컵 5경기 0골
2006시즌(인천 유나이티드) 리그 2경기 0골
리그컵 1경기 0골
2007시즌(대구 FC) 20경기 8골
KFA컵 2경기 0골
리그컵 7경기 2골
2008시즌(대구 FC) 26경기 11골
KFA컵 3경기 2골
리그컵 6경기 2골
2009시즌(주빌로 이와타) 리그 24경기 12골
천왕컵 1경기 1골
리그컵 1경기 0골
2010시즌(주빌로 이와타) 리그 12경기 1골
리그컵 4경기 1골
2010시즌(감바 오사카) 리그 20경기 4골
천왕컵 5경기 1골
2011시즌(감바 오사카) 리그 32경기 15골
천왕컵 1경기 0골
AFC 챔피언스리그 7경기 2골
2012시즌(울산 현대) 리그 33경기 8골
AFC 챔피언스리그 7경기 1골
2013시즌(상주 상무) 리그 25경기 15골
KFA 0경기 0골
2014시즌(상주 상무) 리그 9경기 1골
KFA 0경기 0골
국가대표 60경기 19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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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축구선수의 기술 성장은 20대 초반이면 끝난다. 그 이후론 쌓아놓은 재산을 갈고닦는 과정으로 그때까지 없던 기술이 연습한다고 생기진 않는다.
  • [2] 물론 당시 선수들 기준이다. 오장은, 홍순학, 진순진 등의 선수들이 국가대표 경력이 있었다.
  • [3]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로 선출되어 박주영과 함께 팀의 공격을 책임졌으나 단점인 골결정력 부족을 극복못해 부진한게 컸다. 승점자판기로 예상된 약체 온드라스와 3전 전승이 예상되는 강호 이탈리아, 다크호스 카메룬과 한조가 된 대표팀이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온두라스는 무조건 이긴다고 보고 카메룬을 잡는게 필수였다. 그러나 이근호가 여러번의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 버리면서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후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세바스티안 지오빙코와 토마소 로키를 앞세운 이탈리아에 0-3으로 참패하여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었고 3차전 온드라스 전에서 1-0 승리에 그치며 8강 진출에 실패한다. 지금도 대표팀이 졸전할때면 나오는 축구장에 물 채워라 드립이 처음나온게 이때였다.
  • [4] 혹 이적한다 하더라도 PSG는 이근호 영입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공격수 보강을 마쳐 주전 출장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5] 압박의 강도가 덜하니 골 넣기는 K리그보다 수월하지만 장기적으로 선수의 성장에는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게 중론. 베어백 재임 시절 국대 원톱 이었던 조재진은 K리그 시절 골 결정력은 떨어졌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몸싸움으로 동료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던 선수였는데 J리그 진출 이후 장점이던 왕성한 활동력을 잃어 버렸다.
  • [6] 물론 강민수는 곽태휘의 부상으로 인하여 대체선수로 뽑힌 것이긴 하지만...
  • [7] 다만 이 이그노어란 별명은 처음부터 비아냥대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주전 공격수들의 절망적인 경기력에도 벤치의 이근호를 베어백 당시 감독이 끝까지 ignore한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 [8] 실제로 트랙터는 서울에 있는 트랙터 업체 본사에서 옮겨다 놓았다. 이근호는 올스타전 후반에서 말년 병장다운 구라빨을 세우며 상주에서 서울까지 자신이 몰고 왔다고 허풍을 쳤다. 시청자 속여먹을 속셈인지 시속이 40km도 안 되더라는 구체적인 드립까지...
  • [9] 아킨페프 골키퍼가 이근호의 공을 잡는 듯 하다 놓쳐버렸다. 재밌는 것은, 이근호는 2012 클럽 월드컵 울산 vs 몬테레이 경기에서 비슷하게 골을 넣기도 했었다.
  • [10] 참고로 골을 허용한 이고르 아킨페프는 당시 러시아 최고 연봉자... 지못미
  • [11] 이 때 이근호의 성실함을 볼 수 있는데 공이 튕겨 골키퍼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끝까지 달려 기어이 골키퍼 손에서 공을 가로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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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3 15: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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