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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last modified: 2015-04-10 14:34:31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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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왜곡유사역사학
백지원 김대령 이덕일 김상태

한국의 대중 역사평론가, 저술가, 사학박사, 대학 교수. 타칭 유사역사학# 독살마니아,
조선사의 김대령
한국 역사계의 괴벨스[1]


Contents

1. 경력과 주요 저작
1.1. 이덕일이 고대사/조선사에 박사학위정도의 전문성이 있는가?
2. 문제점
2.1. 조선사 관련 문제점
2.1.1. "임진왜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는 기사
2.1.2. '만악의 근원, 노론'
2.1.3. 세월호 참사 노론기원설
2.1.4. 간도, 을사늑약이전 조선영토설
2.2. 고대사 관련 문제점
2.2.1.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 에서 사용한 지도
2.3. 무고한 학자들 몰아세우기
2.3.1. 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는 날조
2.3.2. 노태돈 교수 식민사관 학자 설
2.3.3. 동북아 역사재단 공격
2.4. 유사 파시즘
2.4.1. 간도가 조선영토설 부정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야한다
2.4.2. 간도가 조선땅이라는 걸 부정하면 비국민이다.
2.4.3. 간도가 조선땅인 걸 부정하면 한민족이 아니다.
2.4.4. 음모론: 간도는 조선땅인데 조선총독부 세력들이 부정하고 있다.
2.4.5. 간도가 조선땅인걸 부정하는 정권은 뒤엎어야한다
2.4.6. 소결론
2.5. 역사학자로서 기본수준 결여
3. 대중적 인식과 평가
4. 다른 저자들과의 논쟁
5. 저서
6. 그 외


1. 경력과 주요 저작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아산 온양천도국민학교-아산중학교-천안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주의계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연구 논문인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소설을 쓰는 환빠라는 세간의 평 때문에 김운회처럼 비전공자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이덕일은 어쨌든 역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전공자이다. 현재는 사단법인 한가람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과 관련하여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주장하는 주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로는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왕 독살사건, 여인열전, 누가 조선왕을 죽였는가 등이 있다. 독살설 관련은 조선왕 독살설을 참고.

고대사에서 독특한 주장으로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은 물론, 조선사에서도 소현세자의 문제, 정조 문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게다가 역사서라고 해서 무조건 딱딱한 문체가 아닌, 화려한 수식은 없어도 무난히 읽혀지는 글을 썼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우리 안의 식민사관"부터는 그것도 떨어진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1.1. 이덕일이 고대사/조선사에 박사학위정도의 전문성이 있는가?

결론을 말하면 아니다! 초기에는 전체적으로 공부하지만 점점 파고갈수록 자기분야만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 예중 하나가 바로 언어다. 언어 경우 영역이 어떤 것이냐 따라 완전히 다르다. 한국사만 한정해도 이렇다.

한국고대사: 한문, 중국어, 일본어
고려시대사: 한문 사육 변려체
조선시대사: 한문 초서체
한국근대사: 일본어를 마스터해야 함, 한문
한국현대사: 영어를 마스터해야 함

이덕일 경우는 좀 극단적이라 언어만 해도 다른 영역에서 기본수준도 못 되는 경우를 보여준다. 묘예(苗裔:먼 후대의 자손.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단어다.)를 '묘족의 후예'로 착각하거나 "태묘"를 "태조의 묘"로 착각해서 완전 딴 내용을 주장하는 것 등. 광복 이후 초기라면 모를까 지금 기준에서 제대로 배웠으면 저런 걸 착각할 수는 없다.

이덕일이 다른 영역에 극단적으로 무지하다는 걸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임오화변이다. 이덕일은 사도세자 죽음이 정신병처럼 됐다는 걸 근거로 노론사관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세자 당쟁희생설은 이덕일이 그에 대한 책을 쓰기전부터 사학계에선 정설이었다. 다시 말해 주류사관이었다! 오히려 정병설 교수가 비주류설이다. 그런데 이덕일은 완전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은순 교수의 논문조차 몰랐다!

이덕일이 제시했다는 프레임은 1968년 발표된 이은순 교수의 논문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은순은 '사도세자의 고백'이 출간되기 30년 전에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이라는 논문에서 그런 가설을 발표했고 이것을 발전해서 1981년에는 한국학보 에 "현륭원지 행장과 한중록의 비교 연구"라는 논문을 실었고 1988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 '조선후기당쟁사연구'에 수록했다.
 
- 이은순,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 1968(이화사학연구) 이화사학연구소
- 이은순, 현륭원지 행장과 한중록의 비교연구, 1981, 일지사, 이은순
- 이은순, 사도세자의 정치적 생애와 시벽의 분립, 조선 후기 당쟁사 연구, 1988

책을 내기 몇십년전부터 이미 이은순 교수가 제기해서 "주류사학"이 된 것이 바로 사도세자 당쟁희생설이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런 "주류사학" 프레임을 자기 것인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2] 심지어는 사도세자 당쟁희생설을 "주류사학"으로 만든 이은순 교수의 논문조차 들어보지 못 했다고 한다.[3] 이덕일이 근현대사 영역 빼고는 기본수준조차 안 된다는 근거다. 다시 말해 근현대사 밖에 대한 이덕일의 주장은 박사학위 수준의 전문성이 없으며 철학과 박사학위자인 5.18 역사왜곡의 대표유사역사학자이 김대령과 수준이 다를 게 없다.

2. 문제점

2.1. 조선사 관련 문제점

2.1.1. "임진왜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는 기사

이덕일이 사료를 어떻게 써먹는가를 보여준 기사다. 이덕일을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이라는 것을 '시사저널'에 연재했다. 그 제목은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5. 임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이다.기사는 여기. 근거로 드는 상황은 이것이였다. 5월 4일에 선조는 개성에서 평양으로 도주하려하면서 윤두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 (<선조실록> 25년 5월4일) 이게 끝이다. 저 대화는 그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몇번 나눈 짧은 말일뿐이다. 그런데 이걸 근거로 순왜의 규모를 강조한 것이다. 순왜의 규모를 알아보는 다른 연구조차 없다. 저런 혼란기의 헛소문을 여과없이 받아들이자면 여러 독재자들은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격이 되고 9.11땐 이스라엘에 핵이 떨어진게 된다.

2.1.2. '만악의 근원, 노론'


역사학자이면서 여러 군데 오류가 곳곳에서 보이고 특히 조선 후기 관련에서 이미 다 논파된 음모론을 아직도 정설인 양 서술한다는게 문제다. 예를 들어 <누가 왕을 죽였는가(이후 '조선왕 독살사건'이란 제목으로 개정)>의 정조 편에서는 당시 정조의 건강을 총책임지고 있던, 제조 이시수가 노론 벽파이기 때문에 정조의 독살에 참여했다는 설을 제기하였는데, 사실 이시수는 노론 벽파가 아닌 시파의 인물로 정조의 최측근이며 순조 당시 정순왕후의 집권을 반대한 인물이다. 정순왕후가 수렴을 거뒀다가 다시 수렴하려하자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정순왕후 항목 참조.

게다가 정조 독살설만 해도 심환지를 정조의 최대 정적이며 마치 음모의 정점에 선 흑막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심환지와 정조는 서신을 보낼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고 상호 공존을 하는 정치적 공동체였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이덕일은 박정희와 김재규도 평소에는 친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예를 들어 계속 심환지가 독살을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조가 벽파의 후원자였고 실제로 정조 사후 6년 만에 벽파가 전멸당한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정작 같은 책에서 광해군에 의한 선조 독살설에 대해, '인목대비 외에는 인조반정 거사자들이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거가 빈약하다고 했지만, 사실 정조 사후 병인경화로 시파가 벽파를 타도했을 때 역시 정조 독살설이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에는 눈감고 있다(…). 이 점은 유봉학에 의해 반박당했다.

또한 소현세자 독살설도, 소현세자의 <동궁일기>를 근거로 세자는 에 있을 때부터 몸이 아파 연약한 상태에서 조선으로 귀국해 죽었다는 반박도 힘이 없지 않다. 하지만 소현세자 독살설까지 음모론만으로 치부하는 것도 또한 무리이다. 물론 그렇다고 소현세자 독살설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자세도 지양해야 하지만.

하지만 소현세자 건은 인조의 태도를 보면 그럭저럭 납득할수는 있어도 정조 독살설은 심환지와 주고받던 어찰이 공개되면서 독살설의 근거가 깨졌지만, 문제는 아직도 정조가 독살당했다는 설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조는 이래저래서 독살당했다."라고 대중들을 세뇌한다. 이래서 고정관념이 무서운 거다.

이덕일의 영향력은 생각보다는 막대한데 특히 대중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7년~2008년에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이산의 경우도 상당 부분 정조 독살설과 관련한 이덕일의 주장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김귀주가 정조를 암살하려 한다거나 정순왕후와 정조의 관계를 정적 관계로 몰아가는 등 주류 역사학계에서 부정되고 있는 내용이 그대로 반영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김귀주는 실제로는 정조의 정적이라기 보다는 세손 시절 김종수를 비롯한 청명당과 손을 잡고 정조를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다가 귀양까지 갔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정조 즉위 이후 홍봉한 일파를 맹렬히 공격하다가 즉시 제거되는데 이는 사실 김귀주가 정조의 정적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홍인한, 정후겸 등을 숙청한 정조가 똑똑하고 유력한 척신인 그를 남겨 척신 정치의 빌미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순왕후 역시 정조를 세손 시절부터 후원하면서 처가인 경주 김씨 가문을 움직여 세손 지지 상소를 올리게 했고 본인도 영조에게 세손이 대리청정하여 할아버지의 뒤를 손자가 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고 세손을 꾸준하게 지지했던 사람이건만 이덕일 서로 한 하늘을 일 수 없는 정적이라고 꾸준글이나 쓰고 있다.

정조 독살설과 관련해 저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에서 노론 벽파를 만악의 근원으로 몰아붙이는 편협하고 단순한 이분법적 사관을 고수하는 데다가 노론 음모론을 주장하는 등 노론 죽이기에 앞장서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다. 특히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정말 증오혐오에 가까운 수준.

그런 이유로 노론의 원류라는 점에서 서인 또한 무척 싫어하고 서인의 중심 학풍의 지주인 이이가 노론에 의해 띄워졌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이게 다 정조가 노론을 청산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치기도 했다.

참고로 이덕일이 송시열만큼 증오하고 혐오하는 인물이 바로 세조다. 하지만 이는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있는 것이 이덕일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조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구국의 결단을 내린 위대한 영웅'이라는 군사정권의 일방적인 칭송과 찬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덕일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90년대 말 이후로는 세조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세조에 대한 이덕일의 시각은 정통성이 결여된 자가 왕위 찬탈[4] → 이에 반발하는 세력의 반란 → 반란을 진압하면서 또 공신책봉이란 상황이 반복되었고, 이렇게 쏟아져 나온 공신세력을 태종처럼 적절한 숙청 없이 무작정 친위세력을 키워주면서 자신의 생전에는 왕권이 강화되기는 하였으나 그의 사후에는 살아있던 공신들이 원로로서 국정을 장악하여 군약신강의 환경이 조성될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덕일의 세조 증오는 이덕일 자신이 그토록 주장하는 '사악하고 강력한 신권에 맞선 왕들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토양이라고 주장할 건덕지가 있고 그간의 미화에 대한 반대급부가 결합된 것이리라. 사실 이덕일이 드라마 <왕과 비> 방영 당시 세조 미화를 비판하며 쓴 글을 보면 이게 이덕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개념글이다.

2012년 6월에 '이덕일 역사평설' 이라며 <근대를 말하다>라는 책을 썼다. 내용은 대략 러일전쟁부터 시작한다. 대략 내용은 만주사변 직전까지의 일제강점기 당시 국내외, 만주 상황 등을 다루고 있다. 책 표지에는 딱히 '1권'이란 표시는 없지만 책의 앞부분 목차 맨 밑에 작게 '2권에선 사회주의 단체결성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 민족해방운동, 1945년 광복의 전후 상황을 다룬다'고 되어있다. 다루고있는 내용·시기의 특성상 딱히 기존 사학계, 국사교과서와 크게 다른 특이할 점은 보이지 않는다만, 대신 천하의 개쌍놈 이완용을 노론의 수장이라고 표현하며 노론 안티근성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책에서도 여전히 조선을 노론이 300년 동안 지배했고, 이들이 근대에 와선 결국 나라까지 팔아먹었다는 노론 음모론을 고수한다.

물론 노론이 조선 후기 300년을 지배한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숙종 말기부터는 소론, 남인에 비해 노론이 정국의 주도권을 거의 쥐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구한말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잘 나와 있다. 관직에 있어서 소론과 남인, 북인은 노론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남인은 숙종이후 고종 이전까지는 대제학을 내지 못하고 있었으며, 북인은 부용(큰 나라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의 신세라고 하였다. 노론의 공석인사는 순조, 헌종, 철종으로 가면서 점점더 정교해 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아무리 뛰어난 관리라도 소론은 정2품, 남인과 북인은 종2품이 거의 한계였다.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을 각 도에 파송할 때에도 노른자위 지역은 노론이, 기피하는 지역은 소론, 남인, 북인 시관이 갔다고 한다. 청요직으로 꼽히는 홍문관 관리가 되기 위한 홍문록에 드는 선발인원에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이 골고루 들어가지만, 정3품 당상관이상 오르는 가문은 노론 가문이 다수였다. 그런데 이것을 음모론적으로 풀이하니까 글러먹은 것이다. 숙종조의 환국으로 인해 한번 쫓겨난 당은 역당으로 몰리는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이덕일이 그렇게 씹어대는 노론이 아니라 숙종이 그렇게 한 것이다. 사실 숙종이 즉위할 때는 노,소론 분당이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영조 즉위 후에 남인과 소론 준론이 음모론에 집착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사태가 노론 천하로 귀결되진 않았을 것이다.[5]

2.1.3. 세월호 참사 노론기원설

세월호 참사 뿌리는 노론에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민낯의 시작은 친일파이며 그 뿌리는 '이미 망한 명나라를 명분으로 인조반정을 일으킨 세력에 닿아 있고, 사도세자를 죽이고 정조를 독살한 세력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 민낯의 근원은 인조반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하였다. 이 정도면 광기 수준.

2.1.4. 간도, 을사늑약이전 조선영토설

이덕일은 말을 돌리지도 않고 "간도는 원래 조선땅이였다."는 주장을 한다.
그 일부를 발췌해보자.

간도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이전까지는 한국인들의 땅이었다.-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65쪽

이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시절 간도에서 세금을 걷었으니 조선 영토라는 주장도 하였다.

이건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숙종시기 청나라의 요구로 조선, 청나라간 국경선을 정할 때 이미 양측에서 압록강두만강국경으로 여기고 있었다. 논란이 되는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은 그저 두만강의 근원으로 엉뚱한 강을 짚어서 기록한 것이다. 초반에는 조선에선 토문강이 경계라는 주장하였으나 토문강은 송화강의 지류였기에 잘못된 주장이 되서 이후 논란은 두만강의 어느 지류를 경계로 삼느냐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말이 많은 간도협약에서 다룬 것도 경계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었지 간도의 영유권에 대한 것이 아니다. 북간도와 서간도 모두 발해 멸망 이후로는 우리 민족의 영토였던 적도 없고, 실효지배한 적도 없다. 청나라가 약해진 뒤로 조선에서 간도로 넘어간 조선인에 대한 관리를 시도했으나, 그들은 이미 청나라 관리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을사늑약전까진 간도는 조선땅이였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데 이걸 근거로 유사파시즘을 한 다는 것이다. 아래 유사 파시즘 부분 참고

2.2. 고대사 관련 문제점

또 다른 비판은 그가 바로 환빠라는 점.

이덕일이 주장하기를, 환단고기가 비록 근대 용어 등 후세에 일부 가필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했다면 보다 완벽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면서 이덕일은 위와 같은 견해를 가지면서 이상룡의 <서사록>과 박은식의 <동명성왕실기>가 1911년에 저술되었다고 해서 '후세의 위작'이라고 비판받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면 <환단고기>가 위서(僞書)라고 받은 비판은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정리하자면 환단고기가 20세기의 저작이냐를 기준으로 위서 여부를 묻는다면 그의 대답은 예스다.)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제국주의의 면모가 어렴풋이 보인다. 심지어 상생출판에서 완역 환단고기를 출판했을때 '축하인사'까지 전했다!!환빠 인증

그리고 이상룡·박은식·신채호가 그랬던 것처럼 계연수도 한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독립운동 애국사상을 고취시킬 목적의 하나로 선교 계열의 고서류를 참고해 <환단고기>를 편저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왠지 환빠들이 박제상도 족보에 실린 명백한 실존 인물이니 부도지도 진서라고 펼치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니, 저 넓은 만주 벌판이 다 우리 것이라니 하는 주장을 보면

2.2.1.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 에서 사용한 지도

임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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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에서 이런 지도를 썼다. 잘보면 남부쪽에 왜 라는 지역이 있다! 임나일본부설? 다만 저 지도는 임나일본부설은 아니고 한반도 서남부의 세력이었다가 나중에 일본열도로 이동했다는 가설을 다룬 것이다. 다만 이 가설은 임나일본부설 주장세력한테 유리한 가설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거 말고도 저 지도는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 숙신과 동부여의 위치도 바뀌었고, 길림의 원부여 자리에 거란의 일부라고 여겨지는 비려를 박아놓은 것 등등

2.3. 무고한 학자들 몰아세우기

2.3.1. 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는 날조

자세한건 김현구 임나일본부학자설 항목 참고

2.3.2. 노태돈 교수 식민사관 학자 설

이덕일의 식민사관주장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제는 노태돈 교수까지 식민사학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항목을 보면 알 듯이 노태돈 교수는 '한국 고대사학계의 거두로 손꼽히는 학자'이다! 더욱이 학부생 시절부터 쓴 논문이 학화지에 실릴만큼 고대사에 대한 연구성과가 대단한 학자이다. 박사학위 논문이 '고구려사연구'인걸 생각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런 학자까지 식민사학자로 몰아세운 것이며, 그 근거가 자기 유사역사학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이딴 주장을 담긴 책을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것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9월 4일에 나왔는데 9월 27일 기준으로 역사부분 베스트셀러 5위다. 예스 24 5위, 교보문고와 반디앤루니스에선 4위, 알라딘에서 무려 3위다! 이덕일은 지금 5.18 역사왜곡세력과 맞먹는 만행을, 고대사에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2.3.3. 동북아 역사재단 공격

2014년 3월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식민사학에 동조한다는 망언을 했다. 거기다 동북아 역사재단을 공격하기 위해 식민사학 해체 범국민운동본부라는 것도 만들었다. 본격 한국판 새역모 근현대 이전의 교학사(이전 버전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유사역사학을 다루기 시작했다고 했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아니다.)

2.4. 유사 파시즘

거기다 이덕일은 유사 파시즘 성향까지 있다. 과격한 배타적 민족주의, 비국민, 두개를 선동하기 위해 음모론. 파시즘의 요소를 다 갖췄다.

2.4.1. 간도가 조선영토설 부정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야한다

이덕일은, 간도가 조선땅이였다는 걸 부정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국가보안법으로 수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인식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간도 문제'다.....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장하는 것은 동북과정을 수행하는 중국의 관변학자들의 주장보다 더 친중국적이고 더 반대한민국적이다......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동북아역사재단의 사무총장 및 이 분석서를 만든 담당자는 당장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을 것이다. 역사 침략은 반드시 영토 침략으로 이어진다. 역사 주권을 팔아 먹는 것은 영토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와 같다. 앞의 중앙일보 기자는 이를 외교부 관계자를 통해 입수하고 보도했다고 했는데, 외교부에서 이를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기자에게 건넸다면 현행 외교부는 당장 간판을 '주한일본대사관 한국 분소' 내지는 '주한중국대사관 한국 분소'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중앙일보 기자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이런 매사, 매국적 역사관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는지......한마디로 간도는 중국 땅이란 이야기며 대한민국은 간도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동북아역사재단은 간도가 과거 조선 영토였다는 문서나 지도가 나오면 광분해서 비난하기 바쁘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53~155쪽

동북아역사재단은 "당빌선, 본선이라는 명칭은 학계에서 통용되는 명칭이 아니라 자의적인 명칭에 불과하며, 이러한 선들이 국경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입증되지 않았음"이라고 비난했다. 독립 운동가들 식으로 말하면 왜놈의 앞잡이'들이 왜놈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주구'들의 행태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태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자행되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당장 납세 거부 운동을 전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왜놈 주구'식 주장은 계속되어......'압록강-두만강'북쪽을 조선의 국경으로 표기한 서양 고지도도 다수 존재함'이라고 말하는 인간들이 대한민국 국고로 호의호식하며 지낸다.......외교부 공무원이 이 문건을 바탕 삼아 경기도 교육청을 비판하라고 말했다면 이는 즉각 국가보안법의 간첩죄로 수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자신을 식민지 치하의 왜놈으로 여기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를 조선 총독부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57~159

2.4.2. 간도가 조선땅이라는 걸 부정하면 비국민이다.

이덕일은 근대사 전공이다. 그 연구의 중심은 일제 파시즘에 맞선 '동북항일연군'이다. 그런데 경악스럽게도 이덕일은 일본제국파시즘 논리였던 비국민논리를 그대로 사용한다.

해당 서술에서도 그걸 알 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당빌선, 본선이라는 명칭은 학계에서 통용되는 명칭이 아니라 자의적인 명칭에 불과하며, 이러한 선들이 국경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입증되지 않았음"이라고 비난했다. 독립 운동가들 식으로 말하면 왜놈의 앞잡이'들이 왜놈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주구'들의 행태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태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자행되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당장 납세 거부 운동을 전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왜놈 주구'식 주장은 계속되어......'압록강-두만강'북쪽을 조선의 국경으로 표기한 서양 고지도도 다수 존재함'이라고 말하는 인간들이 대한민국 국고로 호의호식하며 지낸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반국가적 행태는 계속된다......이런 문건을 작성해서 교육부를 통해 압박한 인간들을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57~159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학계'라고 쓸 때 '(식민사)학계'라고 읽으면 정확한 용어가 된다.......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역사 주권과 역사 강역 부인을 자신에게 부여된 '학계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합의된 견해도 존재하지 않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59쪽

동북아역사재단의 관점은 정확하게 매국, 매사로 일관되어 있다.-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62쪽

이뿐만 아니라 외교부는 '주한일본대사관 한국 분소' 내지는 '주한중국대사관 한국 분소'라고도 주장한다.

간도가 조선땅인걸 부정하면 "비국민"이며 "왜놈 앞잡이들의 주구"이며 "반국가세력"이며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존재이며 "매국노"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타적인 유사 파시즘성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2.4.3. 간도가 조선땅인 걸 부정하면 한민족이 아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무식하게도 "간도를 한국 영토로 삼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국 학생들은 계속 조선총독부 관점과 중국 동북공정으로 교육 받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일왕의 살아있는 신민이자 중국의 흑인(호적이 되어 있지 않은 중국인이다.)이다.-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167~169 쪽

나치즘에서 사용됐던 배타적 민족주의다.

2.4.4. 음모론: 간도는 조선땅인데 조선총독부 세력들이 부정하고 있다.

나치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선동했던 유대인 음모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덕일의 이런 논리는 책소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심어 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 네이버 소개 #

왜 아직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조선총독부 관점 vs 독립 운동가 관점. 우리 역사를 읽는데 위와 같은 두 가지 관점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관점에서 한국사를 배우고 싶은가?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관점에서 배워야 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느 관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답이 너무나 뻔한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식민사학,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무한증식하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이런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이 심어 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심지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기까지 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 출판사 서평 #


간도 음모론에서도 이런 주장을 한다.
"역사 침략은 반드시 영토 침략으로 이어진다. 역사 주권을 팔아 먹는 것은 영토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와 같다."
"독립 운동가들 식으로 말하면 '왜놈의 앞잡이'들이 왜놈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주구'들의 행태를 자처하는 것"
"자신을 식민지 치하의 왜놈으로 여기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를 조선 총독부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학계'라고 쓸 때 '(식민사)학계'라고 읽으면 정확한 용어가 된다.
이들은 일왕의 살아있는 신민

2.4.5. 간도가 조선땅인걸 부정하는 정권은 뒤엎어야한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제2의 3.1 운동'에 나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한다.-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169

2.4.6. 소결론

파시즘이다. 일제파시즘, 나치즘을 그대로 간도에다 사용하고 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사쿠라이 마코토가 하는 행위를 이덕일이 그대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이 논리는 4.3 사건에 대한 반공 파시즘 논리와도 같다.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는 부분이 그렇다.[6] 역사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국가세력이며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5. 역사학자로서 기본수준 결여

이덕일은 사학자면서도 한자조차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 2006년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던 글에서 묘예(苗裔:먼 후대의 자손.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단어다.)를 '묘족의 후예'로 번역하는 황당한 짓을 저질렀다.#

  • 이덕일은 다음처럼 주장한 바 있다. <혜경궁은 '한중록'에 세자가 스물두 살이 되도록 영조가 능행할 때 한번도 수가(어가를 따라가는 것)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 또한 부자 간의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혜경궁이 의도적으로 꾸민 거짓말에 불과하다. 세자는 그전에 이미 여러 차례 영조를 수가해 능행에 다녀왔다. 혜경궁이 처음이라고 주장했던 해보다 4년 앞선 영조 28년(1752) 7월 태묘에 거등할 때로 수가했으며 또한 같은 해 12월 태실에 나아갈 때와 다음 해 첫날 태묘에 나아갈 때도 따라갔다.>(사도세자의 고백 181쪽). 보다시피 이덕일은 태묘 에다 태조의 묘 라고 용어 풀이까지 달아놓았다. 근데 태묘는 무덤이 아니다. 태묘太廟의 묘는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 가 아니라 사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태묘는 곧 종묘宗廟이다 서울 종로 변, 창덕궁 바로 아래에 있는 왕실의 사당 말이다. 이덕일은 태묘와 태실이 종묘라는 기본적인 역사용어조차 몰랐다. 그는 태묘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태조의 무덤, 곧 건원릉으로 보았고 사도세자가 거기까지 수가했다고 했다. 이덕일은 태묘를 태조의 무덤으로 오독해서 사도세자가 자신의 거처 바로 앞에 있는 종묘에 간 것을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진 건원릉에 간 것으로 보았다.(정병설, 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참고)

  • 심지어 낙랑군의 위치를 왜곡하기 위해 군현제상에서 '수성(遂成縣)' 아래 '남영(南營州)'가 있다는 개소리도 뻔뻔하게 저지른다. 경기도청이 수원시에 있으니까 수원시에 의정부, 동두천이 있고 따라서 미군이 수원에 주둔했다는 것과 같은 소리.

3. 대중적 인식과 평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가 대중 역사서로 수많은 국민들에게 인지도가 높다는 점과 실제로 책을 써서 부와 지위를 얻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대중들은 사도세자 당쟁설은 사실처럼 믿게 되었으며, 노론, 벽파=개쌍놈으로 생각하고 있다. 초중고교에서도 이 설을 사실처럼 말하는 역사 교사들도 많다. 아마 그저 역사 교사로써 일하지 역사에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 왜곡 드라마를 추천하는 역사 교사들도 많다. 심지어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를 까기 위해 정순왕후가 세도 정치를 시작한 안동 김씨라고 하는 일까지 있다. 그렇지만 안동 김씨는 노론 시파이며, 정순왕후의 집안 경주 김씨는 안동 김씨에게 숙청당했다. 아직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꼭 그의 저서가 집에 한두 권은 있으며(부모나 학교, 신문의 추천으로) <조선왕 독살사건> 같은 책은 거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가끔씩 제법 좋은 수준의 역사서를 저술하기는 한데, 책을 팔아먹기 위해선 자극적이고 뜨거운 소재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계속 독살 음모론이나 환단고기에 관련된 책을 저술하거나 의견을 피력하는 데 힘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름대로 역사학을 전공했으니 만큼 아는 것도 많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능력이 크지만, 그 주장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사학자 겸 표퓰리즘에 영합하는 환빠 상업 작가. 그가 책에 쓰는 내용은 지극히 그의 어레인지가 들어간 주장일 뿐, 학계에서 공인된 설은 아니다. 그것을 유의해야한다. 물론 환빠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역사학자이자 최고의 역사학자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2012년 10월 26일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역사학회 등 대다수 학회들의 회장, 총무이사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주최측의 입장으로 축사를 하던 KAIST 부총장이 유수의 역사학자들 앞에서 자신이 요즘 역사책을 읽고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여기까지는 역사와 거리가 먼 KAIST 부총장의 덕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름 아닌 이덕일의 책이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해당 부총장은 그 책을 읽고 '우리 역사 왜곡이 이렇게 심한지 처음 알았다'고 발언하였다.

어떻게 보면 한국시오노 나나미?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래도 개인적인 견해를 말할 때는 "...가 아닐까."라는 식으로 자기 견해라는 점은 분명히 한다. 그런 개인적인 견해에 자기 취향이나 상상이 심하게 들어가는 점이 문제일 뿐, 이덕일처럼 그런 상상을 가지고 역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부정하는 행각을 벌이지는 않는다.

이덕일이 정말로 놀라운 부분은 그가 비록 근대사를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사학과를 졸업하고 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류 학자 출신이라는 데에 있다. 즉 이덕일식 해석과 주장은 어쩌면 책을 팔아먹기 위한 고도의 전술일수도 있다는 것. 역사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1차 사료에 접근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실수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이덕일은 그런 것도 없다. 시오노 나나미보다 이덕일이 더 나쁠 수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다른 저자들과의 논쟁

이미 이덕일은 2000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쓴 이후로 수많은 역사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충남대 교수 조종업(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비판), 서울대 교수 오수창(살아있는 한국사 비판), 한신대 교수 유봉학, 성균관대 교수 안대희(이덕일의 정조 독살설 비판), 전주대 오항녕 교수(십만양병설 관련 주장 비판) 등이 이덕일의 편협한 사고와 빈약한 논리에 대해 질타했지만 그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긴커녕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친일파, 노론 후예로 매도하더니 마침내 아래와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2009년 한겨레에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라는 제목 아래 역사학계를 조선사편수회의 후예로 몰아 싸잡아 비난하는 글들을 연재하였다.

그러나 그가 쓴 내용에 남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누리꾼들의 댓글에서 엄청나게 까이고 말았다. 논거로 드는 문헌 중 하나가 재야사학자의 탈을 쓴 정창의 <고조선사연구>.

연재가 끝난 뒤에 이덕일의 조선시대사 논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오항녕 고려 강사(현 전주대 교수)가 반론글을 한겨레에 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오항녕과 이덕일의 논쟁(?)이 신문상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이 논쟁에서 오항녕으로부터 "그는 오류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자신의 논거가 무너진 것을 모르나 봅니다"라는 굴욕적인 비판까지 받았다. 사실 이 논쟁은 한겨레 측에서 제대로 불이 붙기 전에 적당히 끝내버린 것이라고 한다. 신문에 실린 반론 글

오항녕 교수는 이후 이 논쟁을 2010년 출간한 조선의 힘에 연재하며 다시 한 번 이덕일을 깠다. 조선의 힘 판매량을 보면 이덕일에게는 굴욕. 여러모로 2010년인 이덕일에게 팔자가 사나웠는지 자신이 추천평까지 써 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정확히는 경종'영조실록, 정조실록) 사도세자와 정조 사망원인에 관해서 이덕일의 주장을 대놓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영향때문인지 작 최후반부인 고종실록, 망국편에서 이덕일의 추천사가 빠졌다.

그리고 2011년 1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한중록을 바탕으로 한 '정병설, 권력과 인간'을 연재하던 도중 이덕일의 저작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덕일은 즉각 한겨레를 통해 이를 비판했으나 정병설 역시 반박하였다. 참고로 정병설 교수는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비판을 역사비평에 올려버렸고 이덕일유사역사학떡실신보냈다. 자세한건 정병설 항목 참고.

5. 저서

  • 침묵과 왜곡 속에 숨겨진 이야기 (1996, 글동네)
  • 성학십도·동국십팔선정(이상진, 송기섭과 공저) (1996, 자유문고)
  •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1997, 석필)
  •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1997, 석필)
  • 사도세자의 고백 (1998, 푸른역사/2004/2007, 휴머니스트)
  • 누가 왕을 죽였는가(조선왕 독살사건) (1998, 푸른역사/2005/2009, 다산초당)
  •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이희근과 공저) (1999(1~2권)/2004(3권), 김영사)
  • 운부 (2000, 중앙M&B(현 랜덤하우스코리아))
  •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 (2000, 대산출판사)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2000, 김영사)
  •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아나키스트가 된 명문가 이회영과 젊은 그들) (2001, 웅진닷컴/2009, 역사의아침)
  • 오국사기 (2002, 김영사)
  • 역사에게 길을 묻다 (2002, 이학사)
  • 한권으로 읽는 한국사 (2002, 휴머니스트)
  • 이덕일의 여인열전 (2003, 김영사)
  • 살아있는 한국사 (2003, 휴머니스트)
  • 이덕일 선생님과 함께 우리 역사의 벌판으로 달려보자 (2003, 두산동아)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004, 김영사/2012, 다산초당)
  • 교양 한국사 (2005, 휴머니스트)
  • 장군과 제왕 (2005, 웅진지식하우스)
  • 조선 최대 갑부 역관 (2006, 김영사)
  • 조선 선비 살해사건 (2006, 다산초당)
  •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김병기와 공저) (2006, 역사의아침)
  • 다산 천자문 (2006(1권)/2008(2~3권), 웅진주니어)
  • 이덕일의 영웅천하 그 위대한 전쟁 (2007, 김영사)
  • 이덕일의 역사사랑 (2007, 랜덤하우스코리아)
  • 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2007, 역사의아침)
  •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김병기 공저) (2007, 역사의아침)
  •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2008, 고즈윈)
  •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그들 (2008, 한겨레출판)
  • 조선의 승려는 북벌을 꿈꿨다 (2008, 랜덤하우스코리아)
  •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2009, 옥당)
  •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2009, 역사의아침)
  •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2010, 옥당)
  • 조선 왕을 말하다 (2010, 역사의아침)
  • 윤휴와 침묵의 제국 (2011, 다산초당)
  •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2011, 역사의아침)
  •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2012, 옥당)
  • 난세의 혁신리더 유성룡 (2012, 역사의아침)
  • 이덕일 역사평설 근대를 말하다 (2012, 역사의아침)
  •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김병기와 공저) (2012, 예스위캔)
  •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김성국, 강동권 등과 공저) (2013, 이학사)
  • 이덕일 역사평설 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2013, 역사의아침)
  •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 (2013, 역사의아침)
  • 정도전과 그의 시대 (2014, 옥당)
  •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2014, 옥당)
  • 이덕일의 고금통의 (2014, 김영사)
  • 우리 안의 식민사관 (2014, 만권당)
  • 당의통략(이건창 저, 이준영과 공동 번역) (2015, 자유문고)

6. 그 외

  • 한국근현대사 분야도 다루겠다고 밝혔다.# 흠좀무... 이덕일의 박사학위 논문이 독립운동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근현대사쪽이 본업.

  • 아나키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저서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집필하는 등 한국 아나키즘 역사 연구에도 이름이 알려진 연구자 중 한 명이다. '한국 아나키즘 100년'을 공저하기도 했다.

  • 2011년 여름에는 윤휴를 소재로 한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라는 책을 냈다. 사실 윤휴가 조세나 민생문제 해결에 열정적이었고 주목할 만한 대안도 많이 낸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문제도 많았던 인물이고 이덕일 본인이 제일 증오하는 송시열의 학설보다도 더 퇴보된 주장을 하기도 했던 인물인지라 무작정 옹호할 만한 인물은 아닌데 말이다.(사문난적 항목 참고)

  • 책마저도 성실하게 쓰는 것 같진 않다. 예를 들어서 <조선왕 독살사건>의 정조 파트 대부분, 특히 마지막 몇 문단은 <사도세자의 고백>을 그대로 카피 페이스트했다("정조가 죽자 삼각산도 울었다."라든지, "상복 입은 벼" 이야기가 그대로 진행된다).

  • 초기 작품인 <당쟁으로 보는 조선사>(개정증보판이 바로 <조선 선비 살해사건>)에 실린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아주 말랐다. 그런데 지금은 보다시피 어느 정도 기반을 유지했는지 후덕해졌다.

  •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이란 책에서 갑옷 그리기로 유명한 네티즌 두정갑의 그림을 표지에 무단도용하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들리는 소문에, 뒤늦게 소식을 들은 네티즌 두정갑은 해당 출판사에 정식으로 항의를 했고 그로 인해 몇백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는 얘기도 있었으나 실제로 당사자는 그렇게까지 많이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진짜 인외마도를 걷는 건가

  • 조용헌 교수의 저서 <고수기행>에서 이덕일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이덕일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자신의 꿈에서 사도세자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독살당했다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했다지 않나, 책 출판 전 이덕일의 책에서 적대시하는 인물이 꿈에 나타나 자기에게 침을 뱉으니 그곳에 종기가 나 고생했다지 않나... 진위여부를 떠나 이쯤 되면 순수한 학문을 하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신앙인의 신앙 수준이다.

  • '근대를 말하다'의 2권이라 할 수있는 '잊혀진 근대 : 해방전사를 말하다'에서 이덕일은 난징 대학살 사건의 주범이 쓰이 이와네라고 썼지만 사실은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가 진범이다. 아마 실수로 범한 오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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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말이 붙는 이유는 이거다. 1. 과격한 배타적 민족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다. 심지어는 "간도 조선 영토설을 부정하면 국가보안법"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건 일제가 썼던 치안유지법과 다를 게 없는 유사 파시즘이다. 2. 그걸 위해 날조를 해서 선동을 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점이다. 가장 큰 것은 김현구 교수 경우와 동북아가 있으며 이라는 것. 이걸 파시즘의 영역에도 들어간다. 3. 또한 이은순 교수가 제기해서 몇십 년 전부터 "주류사학"이었던 사도세자 당쟁 희생설을 자기 프레임인 것처럼 허위 선동을 퍼트린다.
  • [2] 일부에선 착각이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다시 말해 알면서 일부러 그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건 아직 증거가 없으니 섣불리 말하는 건 곤란하다.
  • [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153119
  • [4] 이 때 왕은 조선에서도 정통성이 만렙이었던 단종이었다. 세조가 괜히 욕을 먹는게 아니다.
  • [5] 이것은 옳지 못한 비난이다. 이덕일은 그의 책에서 숙종의 환국 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취소선 그어 놓은 글에서는 대놓고 남인과 소론 준론을 깠는데 물론 그들이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영조을 제거하고 자신을 왕위에 앉히려 했던 노론을 두둔하고 복권한 것은 더 큰 잘못이다.
  • [6] 4.3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레드헌트는 국가보안법에 의거 '이적 표현물'로 판단되었고, 1997년에 이 작품을 상영한 인권영화제의 주최자인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서준식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인 2009년에 최고의 간첩전문가도 탄압을 받은 일이 있다. 윤모 단장은 지난 2009년 5월 때 감찰실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제주 4.3 진압은 정부쪽에서 심하게 한 측면이 있다"는 말을 했다. 감찰실은 윤 단장의 발언을 '좌파적 발언'이라고 몰았고, 윤 단장을 대기발령당했다.# 2014년에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자 어느 반공 단체가 반발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언급했다.# 또한 제주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박원순 변호사였는데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좌익폭도들을 감싸고 이승만 대통령을 학살자로 만드는 등 왜곡했다며 박원순 시장의 사임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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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0 14: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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