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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데리우기나

last modified: 2015-03-24 22:36:2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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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 모습


지금은 무척 무서운 인상의 아주머니가 되었다. 원판불변이라고 지금도 예쁜 얼굴이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1]

Contents

1. 프로필
2. 리듬체조 스타일
2.1. 우크라이나식 리듬체조
3.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전성기와 몰락
3.1. 2000년 유럽선수권 편파판정 논란
3.2. 비하인드 스토리
3.3. 결과
4. 기타


1. 프로필

생년월일 1958년 1월 11일
출생지 우크라이나 키예프

이리나 이바노브나 데리우기나(Irina Ivanovna Deriugina, Іри́на Іва́нівна Дерю́гіна). 구 소련, 그리고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의 레전드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현재는 어머니인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함께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국가대표 헤드코치를 맡고 있다.

수상 경력은 아래와 같다.

  • 1977년 바젤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1위, 리본 1위, 후프 2위, 볼 2위
  • 1979년 런던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1위, 곤봉 1위, 리본 2위, 볼 3위
  • 1978년 마드리드 유럽선수권 개인종합 2위, 볼 1위, 줄 2위, 리본 2위

구 소련 출신으로는 리듬체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2연패를 한 유일한 선수였고 1970년대 최고의 미녀 선수로 시대를 주름잡았다. 1982년에 은퇴한 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헤드코치를 맡고 있다.

2. 리듬체조 스타일

드라마틱한 음악과 그에 혼연일체되는 안무, 그리고 극적인 표정연기 등 소위 '우크라이나식 표현법' 의 창시자이다. 그때문인지 상당히 까다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는데 그 까다로움이 난도나 실시를 볼 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몸매와 얼굴을 볼 때만 해당된다(...) 현재 러시아 헤드코치인 이리나 비녜르가 유연성 덕후라면 데리우기나는 체형 덕후라고 볼 수 있겠다.[2][3]

이리나가 체형 덕후인 점을 증명하는 증거로 데리우기나 스쿨의 학생들을 들 수 있다. 어머니인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함께 운영하는 '데리우기나 스쿨' 은 어느 정도 체형이 안 되면 아예 입학이 불가능하다. 설사 입학하더라도 아름다운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전성기 시절[4] 이 클럽의 에이스 선수들은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마른 몸매에 키는 죄다 180cm에 육박했다.[5]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연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리듬체조계의 추세에 따라 선수들의 평균 신장도 많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75cm이다. 은퇴한 안나 베소노바알리나 막시멘코도 174cm였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나 리잣디노바, 빅토리아 마주르, 아나스타샤 물미나, 엘레오노라 로마노바 등도 마른 체형에 키가 큰 편이다.

한국의 리듬체조 유망주 선수인 천송이 선수가 데리우기나의 간택을 받아 우크라이나에서 전지훈련을 받고 있다. 천송이 선수 또한 174cm의 키에 상당히 마른 체형으로 역시 체형 덕후인 데리우기나의 안목을 볼 수 있다.


가장 완벽한 발레리나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볼쇼이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hyperextended knee와 발. 이게 바로 데리우기나가 원하는 체형인데 이건 연습으로는 만들기 힘들고 타고 나야 한다. 한마디로 이미 주니어때부터 다리, 발 모양이 평균 미달이면 다이어트고 뭐고 하기도 전에 탈락.

사실 볼쇼이나 마린스키같은 러시아의 유명 발레 아카데미 에서도 10살 남짓한 신입생들을 받을때 체형과 유연성 검사를 하고 뽑는다. 데리우기나는 이걸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발레는 유망주가 체조에 비해 넘사벽으로 많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리듬체조 인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신입생 수급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2.1. 우크라이나식 리듬체조

전체적으로 볼 때 1990년대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데리우기나는 아름다운 를르베[6]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런 점이 위에서 말한 키 크코 마른 체형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피봇을 돌 때 축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이라[7] 링이나 백스플릿 등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다만 고관절 유연성만큼은 좋아서 점프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한다. 하지만 또 등 유연성이 부족해서 백벤드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 대체 어쩌라는 걸까

이런 스타일의 리듬체조를 거의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고집하고 있어서 안나 베소노바 이후로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잘 안 나온다. 그나마 2013 쿼드 이후로 신체난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다시 빛을 보고 있다. 그리고 찾아온 크림 반도의 역습

3.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전성기와 몰락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초반에는 우크라이나가 리듬체조계의 1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8] 당시 데리우기나 스쿨과 우크라이나 체조협회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덕분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우크라이나 출신의 선수인 알렉산드라 티모셴코와 옥사나 스칼디나[9]를 발 빠르게 독립국가 연합 리듬체조 대표로 등록시키는 등 러시아를 관광 보낸 적이 있다.[10]

이렇게 러시아에게 굴욕을 주던 데리우기나였지만 이리나 비녜르가 1990년대 중반에 러시아 리듬체조 헤드코치로 들어오면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리나 비녜르의 무지막지한 영향력 때문도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데리우기나 본인의 삽질 때문이었다.

3.1. 2000년 유럽선수권 편파판정 논란

데리우기나는 원래 본인의 미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는 설령 자신이 직접 키운 제자거나 자국 선수라 해도 과감히 버렸다. 덕분에(?) 데리우기나가 심판으로 활동할 당시 피해를 입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올레나 비트리첸코였다. 이 선수가 키도 작은 편[11]에 체형도 마른 편이 아니라서 데리우기나는 비트리첸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데리우기나는 의도적으로 비트리첸코의 점수를 낮게 주기 시작했다.

이런 삽질(...)이 대대적으로 터진 게 2000년 자라고사 유럽선수권이었다. 다른 심판들과 담합해 비트리첸코의 점수를 노골적으로 낮게 준 것이다. 이 결과로 비트리첸코는 별 실수도 없었는데 개인종합 16위로 경기를 마쳤다.

3.2. 비하인드 스토리

사실 이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세레브리안스카야와 비트리첸코의 어머니[12]에 관련한 신경전이 크게 한 몫 했다.

비트리첸코의 어머니인 니나 비트리첸코가 유럽선수권 심판에 배정되고 세레브리안스카야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세레브리안스카야의 어머니인 류보프 세레브리안스카야가 '내 딸의 라이벌을 딸로 둔 사람이 공정한 심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럴 바에는 공정성을 위해 나도 심판을 보게 해달라' 라며 항의를 했으나 이 항의는 기각되었다.

결국 세레브리안스카야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를 핑계로 세계선수권을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에 불참하고 그 길로 은퇴해버렸다. 라이벌이 없어진 올레나는 그 후 승승장구하고 니나 비트리첸코는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데리우기나가 의도적으로 올레나의 점수를 누르면서 니나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2000년 유럽선수권에서 대대적으로 터진 것이다.

비트리첸코에게 16위를 준 것은 앞으로도 올림픽 출전권과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모두 안정권으로 발탁되는 국내대회 2위 안에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3위 권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보통 올림픽이나 유럽선수권은 국가당 두 명씩 출전하기 때문.

3.3. 결과

결국 경기 결과에 관중들이 분노하여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데리우기나는 FIG에 제소되어 중징계를 받았다. FIG에서는 심판인 벨라루스의 나탈리아 스테파노바, 오스트리아의 가브리엘르 스터머, 라트비아의 갈리나 마리나, 독일의 우르술라 솔렌캄프, 러시아의 나탈리아 라치신카야 그리고 데리우기나에게 1년간 심판 정지 및 사라고사 심판 26명 전원에게 다음 올림픽 심판 정지 징계를 내렸다. 당시 FIG의 기술위원장인 마담 아브루치니는 데리우기나에게 무기한 영구 징계를 내렸으며, 2008년 올림픽 직전에도 FIG 회장에게 서면상으로 데리우기나의 복귀를 막아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리듬체조 내에서의 우크라이나의 권력은 상당히 축소되었다. 하지만 안나 베소노바를 올림픽 2연속 동메달리스트로 만드는 등의 영향력은 아직 남아있다.

어머니의 과욕으로 인해 올레나는 심판들의 눈 밖에 나버려 결국 은퇴했다.[13] 한편 니나는 딸이 은퇴한 후에도 코치직과 심판직을 계속 맡았다.

역설적이게도 지도자들끼리는 그토록 척을 진 사이였지만 비트리첸코의 제자들도 데리우기나의 제자들처럼 마른 몸매에 뛰어난 미모를 가진 선수들을 선호하는 스승의 취향을 보여주는 외모를 가졌다. 그 때문인지 많은 선수들이 은퇴한 후에 대만이나 일본에서 CF 모델로 활동했다.[14]

4. 기타

참고로 화가 나면 매우매우매우 무서운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리듬체조 갈라쇼 때마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뒤집어 엎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버리겠다고 난리치는 걸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매번 메달 딴 러시아 선수들이 쩌리되고 우크라이나 갈라가 되어버린다

디나모 키예프의 축구선수 올레흐 블로힌과 결혼했다가 90년대에 이혼했다. 딸 이리샤 블로히나가 있는데 상당히 미모가 뛰어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4살 때부터 데리우리나 스쿨에서 리듬체조를 배웠고 엄마 데리우기나의 다큐멘터리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하지만 딸이 당연히 리듬체조를 할 것이라는 데리우기나의 기대와 달리 이리샤는 리듬체조 선수가 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모녀 사이가 한동안 좋지 않았던 듯하다. 팬들은 데리우기나가 딸에게 쏟을 애정을 베소노바에게 다 쏟았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직전 FIG 회장에게로 온 투서로 인해 데리우기나가 유럽선수권 징계와 올림픽 영구박탈에 이어 세계선수권 심판 자리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고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FIG의 회장이자 패널 의장인 브루노 그란디는 데리우기나의 심판 참여불가 기간이 끝나는 2008년에 또다시 2016년까지 심판 불가 선언을 내렸던 것이다. 15년 이상 올림픽 심판으로 참가하지 못하면 난도 개정 시즌을 4시즌 이상 놓치기에, 사실상 영구박탈이나 다름없다. 비녜르의 경우 순순히 사과 서한을 보냈으나, 데리우기나는 사라고사 이후 자신이 또다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제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내렸다는 이유로 격하게 항의하며 FIG에 우크라이나 법정에서 보자는 선전포고를 날렸기에 결과는 더욱 나빴던 것이다. 블로힌에게 미녀 스타들과의 스캔들이 많았던 것도 어머니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이후로 어머니는 난도, 딸은 안무로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부모들은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옛날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으며 딸이 부모 사이를 오가며 축구와 리듬체조 영역에서 각각 도와주고 있는 사이다.

데리우기나가 안나 베소노바를 처음 맡았을 당시 베소노바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베소노바의 치맛바람에 고생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15] 그 데리우기나를 고생시킬 정도면 베소노바의 독한 성격이 누구한테 물려받은 것인지 이해가 간다


딸인 블로히나와 함께.

참고로 데리우기나의 딸인 블로히나와 베소노바의 가정배경은 상당히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공통점은 리듬체조 세계선수권 2회 연속 우승자인 어머니와 축구계 스타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16] 그러나 블로힌은 가정보다 선수로서의 경력을 중요시하여 외국으로 떠난 반면 베소노프는 딸과 아내와 떨어지기 싫어서 외국 리그도 마다하고 우크라이나에 머물렀다는 차이점이 있다. 덕분에 부모와 갈등이 있었던 블로히나와 달리 베소노바는 안정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성격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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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적인 예로 2012년 리듬체조 결선을 네이버에서 중계할 때 데리우기나와 알리나 막시멘코가 키스 앤 크라이 존에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카메라에서 비춰주었는데 중계창 코멘트란에 '저 아줌마 젊었을 때 엄청 예뻤을 듯', '근데 무섭게 생겼다', '저 선수 경기 끝나고 맞을 듯'(...) 등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사실 막시멘코가 경기에서 수구를 떨어뜨린 후라 평소보다도 열 받은 표정이기도 했다.
  • [2] 유연성과 체형 모두 리듬체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자질이다. 현 리듬체조 규정상 유연성 좋은 게 훨씬 유리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과 체형 모두 갖춰야 된다는 것이다. 알리나 카바예바가 대단한 이유가 남다른 유연성으로 불리한 체형을 극복했다는 것이고 에브게니아 카나예바가 대단한 이유가 유연성과 완벽한 체형을 모두 갖춘 선수라는 것이다.
  • [3] 물론 비녜르도 체형을 상당히 보는 편이다. 다만 유연성을 최우선순위로 놓고 본다. 결국 리듬체조 잘 하는 애들 중에서 체형 예쁜 애들만 살아남는다
  • [4] 즉 1980년대에서 1990년대.
  • [5] 1996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예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야도 키가 178cm였다.
  • [6] 발레와 리듬체조에서 까치발로 서면서 다리를 지탱하는 자세를 를르베라고 한다. 사실 리듬체조 선수라면 모두 아름다운 를르베를 위해 신경을 쓰지만 데리우기나가 유독 많이 따지는 편.
  • [7] 빅토리아 마주르 등 1994년 이후에 태어난 선수들은 유연성이 좋은 편이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전부 주니어거나 시니어 1~2년차라는 거
  • [8] 불가리아는 비앙카 파노바의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선수가 안 나오면서 거의 세력을 잃어버렸다.
  • [9] 2014년 8월에 은퇴한 러시아 선수 다리아 스밧코프스카야의 어머니이다.
  • [10] 이때 피해를 본 선수가 바로 전설적인 선수 옥사나 코스티나이다. 소련 붕괴 전에도 데리우기나 세력에 밀려서 심판 판정이나 대회 참가 등에서 많은 피해를 봤다. 올림픽이 끝난 후 티모셴코와 스칼디나가 은퇴하자 브뤼셀 세계선수권에 참가해 최초 전관왕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해에 남자친구의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11] 168cm였다.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다(...)
  • [12] 두 선수의 어머니들 모두 국제심판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 [13] 올레나는 후에 자서전 및 인터뷰에서 '너무 힘들었다. (중략) 세레브리안스카야와 나는 친자매 같은 사이였는데 결국 데리우기나에 의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나 코치보다 먼저 알려주는 사이였다' 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 [14] 축구 선수 안정환의 '꽃을 든 남자' CF에 나온 동유럽 미녀 병풍들이 바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다. 그 중 가장 인기있던 모델은 라리사 바쿠로바. 10년간 데리우기나 스쿨에서 활동한 바쿠로바는 은퇴후 '리샤' 라는 애칭으로 대만에서 에스티로더 모델로 활동했다.
  • [15] 빅토리아 베소노바 역시 리듬체조 선수 출신이었고 데리우기나와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로 단체전 세계선수권 2회 우승팀 멤버라 그다지 꿀릴 것도 없었다. 주니어 시절 내내 딸이 연습하는 데에 찾아왔다고 한다. 딸과 마찬가지로 선수 시절 빼어난 미모로 유명하기도 했다.
  • [16] 사실 블로힌이 베소노프보다 조금 더 화려한데 이쪽은 무려 발롱도르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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