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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학의 난

last modified: 2015-01-08 17:47:47 by Contributors

임진왜란정유재란 사이에 일어난 반란.

전주 이씨 서얼 출신의 이몽학이 일으킨 반란으로 당시 조선 민심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이몽학의 아버지는 이몽학을 집에서 내쫓았다. 집에서 쫓겨나서 떠돌이로 살던 이몽학은 한현의 부하로 들어가 그곳에서 반란 계획을 생각한다. 이후 의병을 모집한다는 명분으로 갑회라는 조직을 만드나, 실은 이곳에서 오히려 반란을 위해 군사 훈련을 했다.

1596년부터 시작한 반란은 왜적의 침입을 허용한 무능한 정부 대신 왜적을 몰아낸다는 기치를 내세운 덕에 초기에는 홍경래의 난처럼 잘 나갔지만 이후 부하들의 배신으로 목이 잘리면서 끝났다. 무엇보다 홍주성을 지키던 목사 홍가신과 홍주성을 구하러 온 의병들(임득의 같이 가노들을 이끌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때문이었다.

이 반란은 앞서 난 유진의 난, 후대의 이순신 옥사와 함께 선조 임금의 권력욕과 의병, 무장들에 건 의심증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 송유진의 난 때는 의병장 이산겸이 반란군과 무관함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때려 죽이더니 이몽학의 난 때는 이몽학이 반란군을 결성 당시 했던 "김덕령을 비롯한 몇몇 의병들, 도원수와 수사들이 나와 함께 한다"는 거짓말을 빌미로 김덕령을 모진 고문 끝에 죽게 만들었다.
  • 또한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순신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원균을 추켜세우기 시작한다. 그 똑똑한 머리로 두 사람의 차이를 정말 몰랐을 리는 없고 순전히 무장들에 건 견제와 의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끝내 이순신의 파직, 이어서 칠천량 해전, 그리고 선조의 무슨 말을 하리오, 무슨 말을 하리오...[1]

선조의 의심병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를 확고부동하게 자리잡게 했다는 점에서 조선에 큰 해악을 끼쳤다.

그런데 이몽학이 이 난을 일으킨 해가 공교롭게도 1596년, 병신이었다. 이몽학 丙申의 난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이를 원작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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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이몽학의 난 이전까지만 해도 선조는 이순신의 후원자에 가까웠다. 애시당초 북방에서 이일의 장계를 받고도 백의종군으로 처벌을 낮췄고, 평소대로라면 수군절도사로 못 진급하던 이순신을 고집을 피우면서까지 전라좌수사로 임명했다.
  • [2] 영화판에선 정여립의 난과도 연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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