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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코네프

last modified: 2015-01-23 02:06:20 by Contributors


목차

1. 소련군의 장군
1.1. 출생과 독소전쟁까지
1.2. 독소전쟁에서의 활약
1.3. 종전 이후
1.4. 수상 경력
2. 은하영웅전설의 등장 인물 이반 코네프


1. 소련군의 장군

konev.jpg
[JPG 그림 (111.82 KB)]


Иван Степанович Конев.
Ivan Stepanovich Konev. (이반 스테파노비치 코네프)

1897년 12월 28일 ~ 1973년 5월 21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지휘관중 한 명으로서 최종적으로 소련 원수까지 승진했고, 게오르기 주코프의 라이벌로 불린다.

1.1. 출생과 독소전쟁까지

코네프는 1897년에 포도시노프스키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교육을 제대로 못받고 나무꾼을 하다가 제정 러시아군에 1916년 징집된 것이 군사경력의 시작이었다. 당시 러시아군에 장교가 부족하여 부사관학교 입학하여 장교 교육을 받은 후 부사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이점에 있어서는 주코프와 비슷하다.

그러다가 1917년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공산당으로 전향, 적백내전에서 극동으로 파견되 활약하게 되는데 이때 하필이면 그의 상관이던게 훗날 러시아 육군 참모총장이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술친구(…)였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원수였던지라 이후 그의 커리어에서 큰 역할을 한다.

원래 정치장교를 하다가 지휘관으로 전직하게 된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래서 정통지휘관 출신 고급장성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코프와는 라이벌 관계도 있고 해서 사이가 매우 나빴다는 이야기가 있다.

1926년에는 프룬제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상급지휘관으로 여러 사단의 사단장이 되는데, 37~8년 벌어진 대숙청에서 보로실로프와 그의 파벌의 영향력으로 살아남아 되려 숙청당한 상급자들의 자리로 쾌속승진하여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후보 위원까지 된다.

1.2. 독소전쟁에서의 활약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코네프는 비텝스크에 배치된 제19소총군의 사령관이 되어 독일군과 맞서게 된다. 코네프는 비텝스크에서 비록 후퇴하기는 했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며 후퇴하는 데 성공했다. 바자마에서 패하여 스탈린의 눈 밖에 나기도 했지만 게오르기 주코프의 비호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코네프는 칼리닌 전선군에 배치되어 스몰렌스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적 저지와 후퇴작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특히 모스크바 공방전 때 벌어진 독일군에 대한 반격 작전에서 선봉을 맡아 성공적인 결과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그 이후 스텝 전선군 지휘관으로 쿠르스크 전투 직후 쿠르스크 돌출부 남쪽에서 벌어진 소련군의 반격작전 류먄체프 작전에서 에리히 폰 만슈타인을 상대로 승리하고 하르코프를 탈환하는 등의 전공에 이어 루마니아까지 진격하면서 소련 원수로 최종 진급했다.

그의 부대는 잔인함과 공격성으로 유명했는데, 1944년에 벌어진 소련군의 동계 공세 때 일어난 체르카시 전투에서 독일군이 점령중인 러시아 마을 위에다 인화성 폭탄으로 폭격을 퍼부은 뒤 T-34 전차코사크 기병대를 돌입시켜 항복하는 적군까지 포함해 2만명을 사살하고 8,000명(사살자수가 포로보다 한참 높은 거에 주목)을 포로로 잡는다. 코네프는 후에 코사크 기병의 용맹성을 칭찬하면서 "걔네들은 독일군이 항복한다고 든 손까지 잘라버리더군 "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성품은 온화한 편이었고, 책벌레로 유명해 전선에서도 소설이나 역사서를 가져가 짬날 때마다 읽곤 했다.

전쟁 후반기에 진행된 마지막 대규모 전투였던 베를린 전투에서는 주코프와 베를린 점령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주코프가 베를린 목전인 젤로 고지에서 지나친 공명심에 사로잡혀 삽질을 하는 바람에, 코네프 휘하 부대의 진격속도는 주코프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었다. 주코프의 진격이 지지부진하자 열받은 스탈린은 주코프가 이끄는 제1벨로루시 전선군과 코네프가 이끄는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의 전투 지경선을 없애버리기까지 하며 주코프와 코네프의 경쟁을 부추겼다. 남쪽에서 진격하던 코네프는 베를린 함락의 영광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젤로를 겨우 넘은 주코프가 코네프에게 질 수 없다며 광속 진격을 하는 바람에 베를린 점령의 영광은 주코프에게 돌아갔다. 코네프는 무척 아쉬워 했다고 한다.

그 대신 코네프의 부대는 엘베 강을 건너다 오마 브래들리가 이끄는 미군과 조우했다. 그 직후 스탈린의 지시로 진격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체코슬로바키아로 진격했고, 나치 점령군에게 저항하던 저항 세력을 도와 프라하를 해방시켰다. 이 공로로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 원수 직함을 받았다.

1.3. 종전 이후

종전 후 주코프의 후임으로 소비에트 연방군 사령관이 되었지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던 스탈린에 의해 얼마 뒤 카르파티아 군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권력 투쟁 과정에서 라브렌티 베리야를 숙청하는데 협조하면서 복권되었고, 1960년까지 바르샤바 조약군 총사령관으로 근무했다. 재임 기간 중인 1956년에 일어난 헝가리의 반소련 봉기 당시 조약군을 동원해 무력 진압을 지시한 것도 이 사람. 이 때문에 헝가리에서는 평판이 굉장히 안좋고, 심지어 봉기 기념일에 코네프의 사진을 불태우는 이들도 있다.

1.4. 수상 경력

2. 은하영웅전설의 등장 인물 이반 코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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