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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last modified: 2015-08-08 23:55:07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1.1. 마라톤 데뷔
1.2. 스타가 되다
1.3. 대한민국 신기록
1.4. 은퇴
2.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마라토너. 별명은 봉달이, '국민 마라토너'.

1970년 10월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난 그는 충남 홍성군 광천고교 1학년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했다. 1990년 제71회 전국 체전 2위에 이어 1991년 제72회 전국체전 마라톤 종목에서 우승한 후 93년 제74회 전국체전에서도 2시간 10분 27초으로 정상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1. 마라톤 데뷔

1991년 한국 마라톤의 대부 정봉수 감독# 인터뷰의 끈질긴 권유로 `코오롱 사단'에 입단한 이봉주는 이듬해 1월 도쿄국제하프마라톤대회에서 한국최고기록을 수립하며 4위로 골인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1] 1993년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대회로 나섰다.

1.2. 스타가 되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마라톤의 스타로 우뚝 섰다. 안타깝게도 금메달(조시아 투과니)과는 3초차였는데, 이것은 역대 최단 격차였다. 같은해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2]과 이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획득.

1.3. 대한민국 신기록

1998년 4월 19일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 7분 44초로, 2000년 2월 13일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7분 20초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웠다.[3] 그러나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24위로 뒤졌다. 이 안타까운 성적은 본인으로서도 가장 아쉬운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과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마라톤,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동아일보 주관)에서 우승했다. 다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28위로 뒤졌다.

1.4. 은퇴

결국 2009년 10월 21일 제 90회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15분 25초 만에 완주해 1위로 결승점을 통과, 만 39세의 나이로 그의 은퇴 경기이자 41번째 완주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2. 기타

2009년 12월 8일 장미란 선수와 함께 체육인으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청룡장을 수상하였다

마라토너로서 서른살 이후로 찾아온 럼프에서 다시 일어났으며, 44번을 도전해 41번을 완주한 엄청난 끈기[4], 평발+짝발을 극복했다는 점 등이 높게 평가되었다.

현재 천안에는 그의 이름을 딴 '봉주로’가 있다.

스카이라이프 광고를 찍기도 했다. "봉주르 라이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와 동갑이다. 경력상 황영조가 앞섰기 때문에 가끔 조언 비스무리한걸 하다가 이봉주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고. 매스컴에서 이 둘을 라이벌 내지는 황영조의 후계자(?)로 만들어 버렸지만, 만악의 악, 매스컴 실제로는 절친한 친구사이라고 한다. 또한 이봉주의 부인은 황영조의 중학교 동창이며, 이봉주가 황영조의 고향으로 같이 휴가갔다가 지금 부인과 눈이 맞아서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한다. 사실 은퇴 후 행실 면에서 구설수에 자주 올랐던 황영조에 비해 긍정적이고 겸손한 성격을 가진데다가 몸 관리를 잘하면서 현역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에 세간의 이미지는 이봉주가 더 좋은 편이다. 언젠가 이봉주는 "황영조의 그 심장이 부러웠다.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재능이나 신체 스펙은 황영조가 훨씬 앞섰으나...(참고로 황영조 선수의 어머니는 해녀다 ㅎㄷㄷ) 노력에서는 이봉주가 앞선 결과라 하겠다.

마라톤 영화 페이스메이커에 찬조출연했다. 김명민이 황영조랑 붙으면 누가 이기냐고 물어본다(...)

LG 트윈스 양상문 감독과 KIA 타이거즈 안치홍과는 특이한 연이 있는데 바로 고려대학교 최고위과정 동기동문이라는 것. 덕분에 안치홍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 대상으로 이봉주를 지목하기도 했다.

2013년 11월 1일 나 혼자 산다 방송에서 잠깐 나왔는데 현재는 치킨장사를 하고 있다.역시 모든 직업의 끝은 치킨집

마라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봉주가 은퇴하고 한국 마라톤은 침체기에 빠져들었기에 아쉬움을 많이 받고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아 마라톤 대회에서 9월 28일 남녀 20km 경보와 10월1일 남자 50km 경보, 10월2일 여자마라톤과 10월3일 남자마라톤에서 심판으로 나선 바 있다.

이봉주도 모에화는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믿으면 골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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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1992년 자체는 이봉주에게 좋은 해는 못됐다. 전국체전에서 9위를 하는 등. 하지만 당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가 아니다.
  • [2] 이때는 2위로 골인한 스페인 선수를 불과 2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함으로써 애틀랜타에서의 한을 아주 조금이나마 달랬다.
  • [3] 이것은 2020-02-25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을 내고도 당시 대회 8위였다...
  • [4] 매 경기마다 4천키로미터를 뛰는데, 대략 연습거리까지 포함하면 20만 km쯤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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