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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last modified: 2015-01-30 01:09:37 by Contributors


이름 이상목(李相睦)
생년월일 1971년 4월 25일
국적 한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삼성 라이온즈 고졸우선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1990~1993)
한화 이글스(1993~2003)
롯데 자이언츠(2004~2007)
삼성 라이온즈(200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1번(1990~1993)
? 이상목(1990~1993) 김경호(1995~1997)
한화 이글스 등번호 14번(1994~1998)
박선일(1989~1992) 이상목(1994~1998) 최호원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2004)
김영수(2000~2003) 이상목(2004) 이정민(2005~200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2005~2007)
손인호(2003) 이상목(2005~2007) 이웅한(2008~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9번(2008)
제이미 브라운(2006~2007) 이상목(2008) 백정현(2009~)

포크의 왕자, KBO 역대 최강의 포크볼러
마의 승수쌓기 대명사.

Contents

1. 소개
2.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출처 : 포토로)
당시 빼빼마른 프로 데뷔시절

(출처 : 포토로)
한화 이글스 현역 선수시절

원래는 삼성 출신(1990년 삼성 데뷔)이며 94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 전성기를 누렸으며 99년도에는 한화에서 우승경력이 있다. 이 해 성적은 14승 8패 방어율 4.20.[1] 이후 부상으로 3년간 드러누웠다가 2003년에는 15승, 방어율 3.55로, 정민태와 다승 경쟁을 하기도 했으나, 17승과 선발 21연승의 대기록을 기록한 정민태에게 골든글러브와 다승왕 모두 뺏긴다.. 이때가 커리어 하이.#

이때부터 롯데의 FA잔혹사가 시작되고... 이상목은 뭐 2006년에 12승이라도 했지 정수근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출처 : 포토로)
롯데 자이언츠 현역 선수시절

03 시즌 종료 뒤 4년간 22억원의 FA계약으로 큰 연봉을 받고 정수근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지만[2] FA이적 첫 시즌인 2004년 3승 9패로 시원하게 시즌 말아먹고 밑에 서술할 DDSM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05년과 06년에는 몸값에는 못미쳐도 나름대로의 활약을 보여주지만(특히 06년은 12승) FA계약 마지막해인 07년 1승으로 정말로 시원하게 말아먹는다. 당연히 롯데는 재계약 포기. 결국 친정팀인 삼성으로 연봉 1억원에 이적했다. FA계약 4년동안 22승 28패로 승당 1억꼴.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2014년까지 역대 외부영입 투수 FA 가운데 가장 성공작이다. 진짜다(...). 2013년 FA시장부터 낀 어마어마한 거품 탓에 꼴랑 1억만으로 1승씩이나 해줄 수 있는 외부영입 투수 FA는 더 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 오오 가성비의 제왕 이상목

2008년 8월 2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1이닝 2실점으로 막아 타선의 도움덕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3]
사실 통산 99승, 2008 시즌 5승[4]을 하기 까지만 하더라도 100승을 눈앞에 뒀으나 몇번의 아홉수에 무릎을 끓었지만 선동열 감독의 믿음으로 2008 후반기에서 시작된 첫 경기에서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 8전9기 끝에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5] 참으로 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인지. 성준이 못다한 100승을 그가 올렸다. 만일 히어로즈전마저 승리하지 못 했다면 평생 100승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6]이것으로 인해 삼성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또 하나의 반전을 쓰며 조건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2008 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방출, FA가 되었지만 사실상 은퇴. 더 이상 그의 포크볼을 볼 수 없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회에 5실점을 했었는데 시즌 종료 후에 그것 때문에 방출을 한데다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피칭을 할 수 없어서 은퇴를 했다는 점이 기정 사실일 듯. 다행인 점은 친정팀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것과 그 시즌을 6승으로 장식한 점.[7]

통산기록: 100승 122패 25세이브 1830⅔이닝 1231K

별명은 DDSM, 즉 대런 드라이포트 상목이다. 즉, 롯데에서의 먹튀를 뜻하는 별명. 2008시즌에는 투수 내에서의 고참을 뜻하는 '상목이 형님', 모기햄이 있으며 상목신 혹은 상먹신, 디디상목이 있다.

그의 주무기는 바로 낙차 큰 포크볼이다. 한국 역대 최강의 포크볼러이며 이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포크의 왕자' 이상목. 원래 그 전까지 '동양인은 포크볼을 던지지 못한다'라는 야구계의 속설이 있었는데[8], 그 속설을 일본에서 타파한 선수는 노모 히데오였으며, 한국에서 타파한 선수는 바로 이 선수. 이상목이였다.[9][10]

최고구속은 약 145km정도. 그리고 포크 외에도 싱커, 체인지업,슬라이더 등등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다. 마구마구 보고와서 너클볼도 던질줄안다 주장하는 촏잉은 없길 바란다

또 BB/9(9이닝을 던졌을 때 볼넷 허용 개수)는 2.00으로 역대 4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제구력도 자랑하였다. 제구가 되는 포크의 무서움이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담이지만 삼성에서 마지막으로 뛸 때의 29번은 김시진(현 롯데 감독)이 현역 시절 썼던 등번호이다. 2009시즌부터는 백정현이 사용하고 있다.

2009년 8월 26일 100승 1주년인 대구 경기에서 삼성은 롯데를 10대1로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같은 29번인 백정현은 등판하지 않았다. 다음날인 6월 27일 백정현은 구원등판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2009년 김현욱의 카페에서의 김현욱의 댓글을 보면 은퇴 후 무엇을 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2년 현재 정경훈의 소개로 탑건설 마에스트로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로 뛰면서 대방동에 야구 교실을 열어 사회인 선수들을 대상으로야구 지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리그를 초토화시키는 에이스로 거듭났다(...).#

영화 해운대에서 이대호설경구에게 돼지새끼라고 욕먹은 그 경기에서 1루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으로 짤막하게 한 컷 나왔다. 나도 천만배우

2.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0삼성 라이온즈 9 23 0 0 0 - 4.70 21 15 6
19911군 기록 없음
199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3 빙그레 이글스 16 46⅔ 0 2 2 0 4.82 50 16 22
1994한화 이글스 37 128 5 8 5 0 4.01 127 34 77
1995 32 134⅓ 7 8 5 0 3.75 129 40 112
1996 33 174⅔ 9 13 2 0 3.97 176 46 156
(5위)
1997 38 138 6 10 0 0 4.30 150 41 101
1998 38 174⅔ 9 17 2 0 4.84 198 41 145
1999 31 172 14 8 2 0 4.29 161 37 140
2000 1 1 0 0 0 0 0.00 2 0 1
2001 40 101 7 8 5 3 4.90 125 34 69
2002 30 62 0 7 3 2 6.10 70 16 47
2003 33 185⅓
(3위)
15
(2위)
7 1 1 3.54
(5위)
203 33 11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4롯데 자이언츠 19 87⅔ 3 9 0 0 5.03 112 23 51
2005 17 101⅓ 6 7 0 0 3.02 88 23 69
2006 23 138⅔ 12 8 0 0 3.25 132 28 50
2007 11 37⅔ 1 4 0 0 6.69 56 14 1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삼성 라이온즈 31 124⅔ 6 6 0 1 5.34 152 38 53
통산 439 1830⅔ 100 122 27 7 4.30 1952 479 1231

  •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1 한화 이글스 1 1 .000 0 0 0 0 0 0 0
통산 1 1 .000 0 0 0 0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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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때 한화의 3선발로 활약하였다. 한화의 그 해 우승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선발로 18승으로 커리어 하이였던 정민철(18승), 2선발로 부활한 송진우(15승), 그리고 이상목 이렇게 강력한 3선발이 등판했을 때는 전력을 다하고, 나머지 2자리는 돌려막았다. 그리고 계투중 미더운 사람은 마무리 구대성밖에 없었다. 나머지 계투들은 5점대는 기본이요 6점대, 7점대까지 가는 막장 방어율로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그나마 믿을 사람이라면 팀 사정상 선발 계투 가리지않고 마구잡이로 출장해 91이닝을 던진 25세의 영건, 김해님정도(방어율 4.87)... 그래서 앞의 3선발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먹고 내려가면, 믿음직스럽지 못한 불펜진들이 실점을 불사하고 1,2이닝쯤 소화하면 구대성이 남은 이닝을 처리하는 식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제이 데이비스,댄 로마이어,장종훈,이영우,송지만 등 강렬한 타선으로 미리 상대 선발을 털기도 조지기도 하였다. 이른바 3승 2패 전략(그렇게하면 승률 6할로 우승 가능권이라는 계산.)으로 결국 우승.
  • [2] 여담으로 이때 보상선수가 지금 KIA에 있는 신종길이다.
  • [3] 이는 프로데뷔 19시즌만에 100승을 달성한 것으로, 최다시즌 100승 달성자라는 심히 아스트랄한 기록을 세운다. 그래도 달성한게 어디야..성준처럼 딱 3승 남겨놓고 은퇴한 케이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달성 못한거보단 나았다(...)
  • [4] 이 5승을 할 때 까지는 사실상 팀 내 에이스였다.
  • [5] 3달 뒤 인 11월 1일 프로게이머 송병구도 스타리그 진출만에 8전 9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건 좀 아이러니
  • [6] 물론 그가 한화에 있었을 때에는 한화의 암흑기였던 지라 승수 손해본 적이 많았다.
  • [7] 07 시즌 션하게 말아먹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이다..
  • [8] 포크볼 등은 손가락이 길어야 유리한데,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손가락이 짧아서라는 이유.
  • [9] 그러나, 이상목의 손가락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한다.
  • [10] 그러나 사실 포크볼이라는 구질 자체가 유래는 미국이지만 가다듬고 발전 시킨 곳은 일본이다. 미국 쪽에서는 포크볼은 잘 안던지고 스플리터를 주로 구사하는데, 이쪽 역시 손가락이 잘 벌어지고 길수록 구사가 쉽고 무브먼트도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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