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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last modified: 2015-04-06 18:29:04 by Contributors


이름 : 이수만(李秀滿)
출생 : 1952년 6월 19일
직업 : SM엔터테인먼트 회장
학력 : 서울대학교 농기계과
가족 : 부인, 슬하 2남,
형 이수영, 조카 써니
본관 : 전주 이씨

Contents

1. 개요

1. 개요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자 최대주주이자 선생님이다. 일부 장년층에겐 전직 가수로 더 유명하기도 하다.

1952년에 출생하였으며 1975년에 가수로 데뷔하였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기계과[1] 출신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유학파 연예인이었다. 미국 유학까지 하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디 시절에는 샌드페블즈 초창기 멤버로서 활동하는 등 정통 락을 기반으로 음악을 갈고 닦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수만이 샌드페블즈 였었는데 왜 대학가요제는 나가지 않았나?" 라고 묻는 부분이 있는데, 1977년 첫 대학가요제 당시 샌드페블즈는 기수로 6기였다. 이수만은 2기. 그리고 바로 윗선배(1기)가 김동만씨인데 이분의 아들이 지금 TOXIC의 김정우. 그리고 특별히 77년 첫 대학가요제 당시는 5기 멤버가 한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우승곡인 "나 어떡해"의 작곡자이자 바로 산울림의 레전드 베이시스트인 김창훈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 뒤 이수만은 대신 대학가요제 최다 MC로 활약했다.(8회)


이수만과 365일 1집. 1980년 발매된 이 앨범에서는 정통 록을 확실하게 시도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좋은 노래들이 상당 수록되어 있다. 당대에 워낙 쟁쟁한 가수가 많아서 큰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MBC 라디오에서 '이수만과 함께'라는 프로그램의 DJ를 맡았다. 배철수가 그의 직후 후임으로 20여년간 계속 맡아오던 그 프로그램 맞다.[2] 지금은 아무도 배철수 앞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MBC 라디오의 가수출신 DJ로 "별이 빛나는 밤"에 이문세, "젊음의 음악캠프" 과 함께 마삼트리오(馬三 Tri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앞의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인지도 있는 가수였다. 그러나 점차 연예 활동에 한계를 느꼈다. 포크/록 가수로서 최정상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상실감과 정상에 서고싶다는 욕망 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가운데 와중 미국 유학에서 본 틴아이돌들과 일본에서 본 초창기 쟈니즈에 큰 충격을 받아 SM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중 음악계'서의 평판도 좋지 않은데 조영남은 2006년 GQ 인터뷰에서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이문세 또한 샤이니가 오늘아침 이문세입니다에 출연하여 이수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더이상 이야기 하지 말도록 해요. 별로 안 좋아하거든."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 어떤 가수도 직간접적으로 이수만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름 레전드로 칭송받는 4월과 5월의 초대보컬로 1집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부터 1989년 10집 뉴에이지 이후 아예 음악활동을 끊었으니 미련은 없는 듯. 그래도 별이 빛나는 밤에 1만회 특집에서는 랩을 이문세와 같이 하기도 했다. 별밤 40주년 기념 특집방송에서 주철환 전 MBC PD(현 JTBC 콘텐츠본부장)와 샤이니가 같이 출연했을 때 기념삼아 틀어줬다. 별밤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제공되니 그 현란한 래핑을 확인해보자.

음악 활동을 접을 무렵 MC로도 진출하였으며 한편 가수 현진영을 키우려고 하는 등(2집 제작 총지휘) 매니지먼트 사업행보가 시작됐다. 1995년 2월에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H.O.T., S.E.S,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보아, 동방신기,천상지희,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등의 아이돌 그룹들을 배출하였다.

2001년 대주주로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주금 가장 납입 형식으로 횡령한 회사 공금 11억원을 'PR비'명목으로 PD에 금전제공 등에 사용했다는 혐의와 코스닥 등록 이후 수백억 원 대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로 당시 검찰은 이 대표가 1998년께 자기자본금의 100% 이상을 증자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으로 증권업협회 운영규정이 곧 개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개정 직전 회사 돈을 빼돌려 급하게 유상증자를 하면서 5,000만원이던 자본금을 12억원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근데 수사를 받던 도중 미국으로 도피, 2003년 1월 인터폴에 수배를 비롯 여권무효화 등으로 압박의 강도가 높아지자 2003년 5월 23일 자진귀국하여 검찰소환에 응했으나 하루만에 귀가시켰다. 2004년 9월 재판 결과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빼낸 돈을 다시 회사 계좌에 입금했고 실제로 회사 자본증식이 이뤄진 점을 감안해 형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 뒤 2007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면서 '솜방망이'라는 시민단체와 법조계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도피/구속기간 동안 SM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은 1/5 토막이 나버렸고, 그 동안 나온 그룹들이 밀크, 이삭 N 지연, 신비, 트랙스, 블랙비트[3]를 출범시켰으나 반응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데뷔 이후 끊없이 벌어지는 노예계약 문제, 각종 대우 등으로 인해 팬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지금은 최고참 아이돌로 입지가 탄탄한 신화조차도 1집이 망하자 바로 해체할거라는 루머가 나올 정도로 푸대접을 받아서 신화와 신화창조는 불만이 많았다. 물론 데뷔전부터 대놓고 '수만이','수만이 아저씨','이수만씨'라고 부르던 신화 멤버들이지만 1집 이후로는 대놓고 방송에서도 그랬다. 게다가 나름 잘나가전 4집 때 앤디 탈퇴 건을 둘러싼 갈등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음악시장을 망쳐놓은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한다.이수만을 죽입시다 이수만은 나의 원수 시스템 하에서 연습생 몇몇을 뽑아 컨셉을 잡고, 같은 작곡가(혹은 작곡가 집단)가 비슷비슷하게 찍어내는 공장형 음악을 조합해 시장에 내놓으며, 이를 반복해 수익을 올리는 거대기업형 연예 매니지먼트 시초가 SM이었기 때문. 물론 이수만이 없었다고 해서 현재의 아이돌 홍수시대가 오지 않았을 거란 보장은 없다. 또한 mp3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음반 위주의 음악 시장이 현재의 음원 위주로 재편된 것은 전세계적인 추세인만큼 한국 음악시장의 침체를 이수만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SM은 팬덤의 영향으로 음원보단 음반이 강한 회사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주장은 모순적이고 단면만을 본 주장이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선보인 '립싱크도 하나의 장르로 봐달라'는 희대의 개드립은 음악과 가수에 대한 그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일면이라 할 수 있다. 가수 이은미는 후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수만의 이러한 립싱크에 대한 견해를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반대로 그를 현재 정형화되고 있는 아이돌 2세대 시장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은데, 샤이니f(x) 등의 기획에 참여하며 두 그룹이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그룹들과는 다르다는 이미지를, 그리고 음악적으로 평가될 발판을 확실히 만들어준 사람이 이수만이다. EXO는 한국 유닛과 중국 유닛이 동시에 활동한다는 야심찬 전략으로 '현지화 가수' 를 처음 시도하게 됐고, 국내에서는 병맛 SMP라고 욕먹지만 중국 시장에서 확실히 먹힘으로써 그의 선견지명이 드러났다. 국내 차트 순위에 연연하는 대신, 유투브를 통한 해외 시장 공략으로 일찍이 눈을 돌린 것도 이수만과 SM이었다. 확실히 SM의 파리 콘서트 이후 국내 기획사들이 유투브를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고, 음악중심/인기가요 등에도 유투브 점수가 반영되게 되었다. 예전부터 보아동방신기를 일본에서 성공시키고, 소녀시대 또한 이 뒤를 이었다는 점에서, 이수만의 기획력은 대중들과 팬덤들한테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는 '대형 기획사 회장' 이라는 직함에 가려 저평가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보자면 아이돌 시스템에 관련해선 이수만 본인이 대표격으로 인식되어 욕을 먹은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이수만 이전에도 (주먹구구식으로 좀 막장스럽긴 했지만) 비슷한 형태의 기획사나 가수들은 많이 있었다. 가수에 대한 수익분배 처우나 음악적견해등도 이수만보다 나을 게 없었다. 이수만은 기존의 형태를 좀 더 분업 - 체계화 시키고 (수익적으로)발전시킨것과 아이돌이란 이름으로 10대 위주의 시장을 개척시킨것. 다만 이수만의 경우는 이런 초대박을 연이어 터뜨리고 모델화 시켰고, 다른 부분들을 발전시킨데 반해 해당 가수와의 수익 분배에선 살짝 나아지긴 했지만 그 전과 같이 관행적으로 처리했다는 문제로 인해 HOT의 반발을 샀다는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있다. 더불어 아이돌 위주의 가요계 변화에 있어서 이수만은 중장년 층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인기 연예인 출신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있었기에 욕을 더 먹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그 전에 가수들의 수익 분배 구조는 그냥 사장 내키는 대로(...)였다. 사장이 기분이 좋으면 돈 더주고 안되면 말고 식. 예를 들어 몇년 선배인 룰라의 경우 100만장을 팔았지만 정상적인 수익분배는 기대도 할 수 없었고[4] 그냥 사장이 내키는대로 보너스 식으로 돈 더주는 것에 만족했을 정도이며 R.ef의 경우도 자신들의 인기 정점의 시기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밤무대에서 활동 했을 때가 수익적으로 훨씬 나았다고 할 정도. 서지원은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 추모콘서트 등으로 번 수익마저 기획사에서 삼키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 심지어는 레전드로 칭송받는 조용필 조차 자신이 작곡한 곡의 저작권 조차 소속사 사장이 가지고 수익분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5]. 그 전엔 돈 문제로 사장한테 얘기했다간 니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잘됐냐는 식으로 사장이 적반하장 화를 내고 협박하는 등의 경우도 많았다. 이수만 식의 앨범당 얼마등 명문화된 수익분배는 1990년대 중후반 치곤 나름 발전된 체계였던셈 물론 주는 돈이 적지만. 동시대에 활동했던 호연이 키운 젝스키스는 4년동안 활동하면서 받은 돈이 한달에 백만원도 안 되는 꼴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소속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다른 두 사람인 양현석, 박진영과 비교되는데 이수만은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엄격하지만 원리원칙에 따라 행동하며 가수들을 가혹하게 굴 때도 자신이 나름대로 정한 선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성공할 싹은 확실하게 밀어줬다. 그 대표적인 예가 BoA.


시스로드 2009년 6월에 샤토 무통 로쉴드로부터 와인 기사 작위를 받았다. 결국 와인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일부 음모론자들은 이 사진을 가지고 이수만이 프리메이슨에게 기사작위를 받았다며 인터넷에 뻥카퍼트리기도 했다. 흠좀무

이 사람을 두고 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SM엔터테인먼트와 해당 연예인들과의 노예계약. H.O.T. 해체 때도 계약금과 인세가 논란이 된 바 있으며 2009년 동방신기가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동방신기의 계약 기간이 13년 이상으로 길다는 점, 그리고 앨범이 50만장 이상 팔리지 않으면 수익을 받을 수 없는 조항 등으로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인 이유는, 장기계약에 대해서는 "가수도 이득"이라는 반론이, 앨범 수익분배에 대해서는 "음반수익은 애초에 얼마 되지도 않고, 다른 수익은 동방신기에게 유리하다"는 반론이 있기 때문. 심지어 동방신기는 모든 해외 스케줄의 비행기표 값, 미용사와 코디네이터 비용도 자신들이 부담해야 했다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주장도 있다. 현진영도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 이수만 밑에서 일하면서 한푼도 받지 않았다며 (물론 본인이 사고친 것들을 이수만이 뒷수습 해주긴 했지만), SM 1층은 자신이 지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6].

반대론자들은 뒷공작으로 동방신기를 해체시킨 것은 김영민이이고 이수만은 그걸 막으려고 자리 지키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재빨리 귀국하긴 했다. 그 예로 SM소속 가수들이 이수만선생님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만 김영민 사장님 감사하다는 말은 한번도 나오질 않았다면서. 물론 또 그 반대론자들은 "어차피 바지사장인데 고맙고 말고 할 게 있냐" 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는 소녀시대를 비롯한 현 소속가수들은 어지간한 자리에서 김영민에게도 감사하다고 얘기한다. SM빠들은 이수만보다 김영민을 더 까는 편이다.

이수만 소유의 100평이 넘는 펜트하우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녀시대써니가 이 사람의 조카다. 형의 딸이라고 하니 즉 써니의 작은 아버지다. 관계가 관계인데다, 써니소녀시대에는 제일 늦게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데뷔했기 때문에 낙하산 논란이 있으나, 써니가 방송 출연하여 "사실을 숨기고 오디션을 봤기 때문에 작은 아버지는 몰랐었다"고 말했다. 진실은 그들만이 알겠지

그리고 먼 과거에 기갑창세기 모스피다의 오프닝곡을 부르기도 했다.

코갤에서의 별명은 흰수만. SM 소속 가수의 팬들이 그의 생일에 축하와 함께 '이수만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리플을 줄줄이 단 것에서 비롯된 듯하다. 섹고쿠와 함께 양대 연예계 원피스 캐릭터.

이수만은 현재 SM의 지분 24.43%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100억원 어치의 주식을 소유한 연예계 최대 주식부자 였다. 양현석은 2012년 초 지분가치 1,400억원으로 2위였으나 싸이의 초대박으로 주가가 상승하여 2012년 9월 24일 계속된 주가 상승으로 양현석의 지분가치는 3,000억원을 넘어 부동의 1위에 올랐다. 배용준이 315억원으로 3위를 차지한것을 비교해보면 넘사벽 수준.

모 CF가 발굴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SM 금지영상

한편 1986년에 서세원이 감독한 <납자루떼>라는 컬트적이고 괴상한 영화의 OST를 만들었던 흑역사가 있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도피생활 1987년 이현세 원작의 만화를 영화화 한 "지옥의 링"의 주제가도 그가 불렀다. 흥행은 망했어요

최근엔 KB투자증권의 TVCF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횡령으로 인터폴 수배받던 인간이 투자증권 광고라니


그리고 화합을 도모중. 이수만부터 보아, 시원, 최강창민, 브라이언, 트랙스의 정모. 빨간모자가 장우혁인줄 착각

미얀마의 민주화운동가 아웅산 수치 여사를 다룬 프랑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The Lady'의 미국 시사회에 참가, 뤽 베송 감독과 주연배우 양자경,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과 사진을 찍었다. 애초에 이는 이수만이 힐러리에게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으로, 이 기묘한 인연은 힐러리가 한국에서 미얀마로 출국할 때, 이수만이 힐러리에게 'The Lady'의 DVD를 구해다주어 성립한 것이다.

최근에는 하도 까인 것에 대한 반작용인지, 한국 매니지먼트 사업의 선구자로써 이수만을 재평가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돌 키우는 능력 하나는 월등한 게 SM이고, 샤이니, f(x)의 최근 앨범들이 음악적으로도 호평을 받으면서 프로듀서인 이수만을 다시 보게 된 것. 실제로 '피노키오' 가 처음 나왔을 때 이수만의 지시로 한번 엎고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김경욱이 만들어 망해가던 천상지희에 손을 대서 천상지희 the grace로 개편해 회생시키고, 결국 망했지만 소녀시대의 댄싱퀸을 뒤엎고 Gee를 타이틀곡으로 선회해 크게 히트시켰다. 그리고 경영가로써의 이수만보다 기획자 이수만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이수만의 부인 김은진씨가 2014년 9월 30일 소장암으로 별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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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바이오시스템공학전공
  • [2]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전신이 된 프로그램으로 실제로 2013년 배철수가 진행 도중에 이수만 선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3] 멤버 중 심재원은 이글 파이브에서 활동한 후 블랙비트에 합류했다. 현재는 SM의 안무 디렉터.
  • [4] 예능 방송에서 고영욱이 후배 가수들에게 너네 백만장 팔아봤어? 라고 농담식으로 자랑하자 옆에있던 신정환은 그래서 100만장 팔아서 얼마 받았는데? 라고 디스하자 고영욱이 데꿀멍 했던 적도 있다.
  • [5] 예외적인 경우라면 아예 본인들이 회사를 차려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정도이다.
  • [6] 하지만 실질적으론 현진영의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기도 전에 마약사건으로 인해 음반등은 폐기되고 직원들은 경찰에 조사받고 소속가수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SM자체가 공중분해 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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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18: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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