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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와라 간지

last modified: 2015-03-24 11:08:50 by Contributors


1934년 센다이 주둔 제4연대장 이시와라 대좌.
이시와라[1] 간지(石原莞爾, 1889. 1. 18. ~ 1949. 8. 15)

"전투기의 가장 유용한 사용법은 주정뱅이가 오줌을 갈기듯이 기관총을 쏘는 것이다."

Contents

1. 개요
2. 잘도 이런 미치광이 신앙을!
3. 만주국
4. 세계최종전쟁
5. 종말
6. 미디어
7. 참고항목

1. 개요

일본군 장성에 광신도가 더해진 결과물
평생 병신간지를 추구했던 간지남

야마가타현의 사무라이 집안 출신.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하고 1918년에 육군 대학[2]을 졸업했다. 그리고 1920년, 련종계열의 종교인 주회의 신도가 된다.[3]

1차대전을 겪은 직후, 일본 군부는 앞으로 전쟁이 물량전·소모전·보급전·과학전이란 교훈을 깨닫고는 있었다. 다만 그렇게 가면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논리적 결과가 나와서 그 반동으로 정신력 제일주의로 후퇴해 버린 것이다.[4] 그래서 황도파 파벌은 "우린 전면전은 안될거야 그러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이길 수 있게 알아서 기자." 는 결론을 내렸다.[5] 그러나 간지가 속한 통제파는 "우리도 경제 발전으로 선진국을 따라 잡을 수 있다! 다만 자유방임 경제 말고 계획 경제 통제"라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통제파 장교들인 간지나 나가타 데츠잔, 스즈키 데이치나 이케다 스미히사는 "빨갱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 통제파라곤 해도 현실 도피일 뿐, 정작 '자원 부족의 국가 일본'란 본질적인 문제에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궁핍한 나라 일본을 풍부한 나라로 바꾸려는 급진파가 이시와라 간지였다.

2. 잘도 이런 미치광이 신앙을!

1928년 1월. 육군 내부 공부 모임인 목요회에서 이시와라 간지는 〈우리의 국방방침〉이란 강연을 했다.
그는 1966년[6]에 세계 최종 전쟁이 일어난다. 동양의 대표 일본, 서양의 대표 미국이 겨뤄 세계의 운명이 결정된다.개드립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미친 소리를 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라 주장했다. 뭔 개소리야!

동석한 자리에서 이 개소리를 듣던 통제파 장교인 나가타 데츠잔은 '왜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하나', '중국 진출같은 위험한 짓을 무릅쓰면서까지 일본이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가'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을 했다. 이시와라가 이런 미친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일련종 계열 종교인 주회의 영향이 있었다. 이시와라는 다나카 지가쿠라는 국주회 사상가를 믿었는데 그가 1904년 출판한 '묘종식목강의록'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저 텍스트는 이시와라 버전으로 번역되서, '세계최종전론(1940)'에 다음과 같이 변해버렸다.

니치렌 성인은 장래에 대한 거대한 예언을 하고 있다. … 그것이 어떤 것이냐면,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에 일찍이 없던 큰 전쟁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때 혼게조교가 다시 세상에 오셔서, 본문의 계단을 일본국에 세우고, 거기서 일본의 국체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의 통일을 실현할 것이다. 그렇게 예언하시고 돌아간 것이다.

그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일본의 전쟁수행력 따윈 문제가 아니다. '전쟁은 일어날 것이고, 일본은 거기에 이겨야 한다'고 경전에 쓰여 있는 것이다. 그는 1918년의 강연에서 "지금으로 부터 48년 후, 일천사해개귀묘법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일천사해개귀묘법을 위해, 타가키 세이시로와 함께 장작림을 암살하고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3. 만주국

1940년에 간지가 쓰던 자전적 에세이 '전쟁사대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쇼와 2년 늦가을, 이세 신궁에 참배했을때, 국위가 서방에 찬연하게 빛나는 영위를 받고서 돌아왔다.

1943년 이시와라는 자신을 찾아온 이지치 노리히코란 청년이 그 '영위'가 대체 뭐냐고 묻자 답해주었다.

"눈앞에 지구의 모습이 드러났으며, 금색의 빛이 일본에서 만주를 향하여 비추었다."

그는 세계 최종 전쟁을 위해 만주를 침공하란 계시를 받은 것이다.

오족협화도 그의 영향을 받았는데, 만주의 땅과 공업 시설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인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아시아 여러 민족이 협력해서 세계최종전쟁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시와라는 세계최종전쟁에 필요한 물자 생산 기지, 만주국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모델은 당시 눈부신 경제발전을 하는 것 처럼 보였던 소련 5개년 계획을 따와 '제1차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소련의 5개년 계획이 그러하였듯 만주국의 5개년 계획도 부실한 게 많았다. 1941년 결과를 보면 실제로는 전체 목표의 반 이하의 성과를 거둔 것을 보였다.그러나 당시 대공황 시기의 미국과 비교해서 1966년 쯤되면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럼 과연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 대비해야 하는 '세계최종전쟁'은 무엇일까.

4. 세계최종전쟁

이시와라가 상상한 세계최종전쟁은[7] 총력전이며, 단기전이다. 그는 병기의 발달로 전쟁기간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 보았다. 국지전이나 전초전은 여럿 있겠지만 전면전은 단기간에 끝난다고 주장했다.

러일전쟁에서는 기껏해야 기관총과 포 정도였지만, 1차대전이 되자 항공기, 독가스, 잠수함, 전차가 등장했다. 무기의 파괴력은 나날이 진화해 언젠가는 대도시나 나라 자체도 한방에 부숴버릴 결전 병기가 등장할 것이라 주장했다. 당연히 '결전 병기'는 산업력과 과학력이 우월한 국가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부유한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뭐 등장하긴 했다, 쳐맞은게 지들이라 그렇지

이시와라가 육군 중장, 교토 제16사단장으로 재직할 1940년 4월 29일 당시 〈세계최종전론〉이란 강연을 하고 강연 내용을 출판했다. 그는 나치 독일프랑스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로 독일의 과학력을 언급했다. 특히 화학 공업의 발달로 합성 석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독일은 다시 세계 전쟁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앞으로 30년 후 다가올 세계최종전쟁을 대비해서 일본도 첨단 과학 무기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래식 항공기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성층권에서도 행동할 수 있는 근사한 항공기를 빨리 만들어 내야 합니다. 또한 단숨에 적에게 섬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결전 병기가 나와야 합니다…
(중략)
…파괴도 단순한 파괴가 아닙니다. 최후의 대결승전에서 세계의 인구는 절반이 될 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세계는 하나가 됩니다…그런 놀라운 과학의 시대에는 물이나 공기 같은 단순하고 무진장한 원료로 온갖 물자가 다 생산될 수 있게 되므로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의 구별이 없어집니다. 놀랄만한 산업혁명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척척 만들어내게 됩니다…

근데 예언한거 다 미국에서 만든거 보면 역예언가인 듯

결국 이시와라 간지는 군대에서 짤리고 만다.

단, 강제퇴역 당한 것은 비단 사상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사와라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관동군을 주축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만주를 충분히 공업화한 다음에 중국 침략을 수행해야 계획이 틀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사와라는 이에 반대하다가 도조 히데키의 미움을 사서 퇴역당하게 된 것. 이때 이사와라는 후배 장성들에게 "각하께서 (만주사변에) 하신 대로 저희는 할 뿐입니다"라는 비웃음을 샀다는 일화가 있다.

퇴역 후에는 쓰메이칸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2년간 군사학을 가르쳤지만 그를 위험분자라고 판단한 도조의 명을 받은 헌병대와 특별고등경찰이 그를 감시했고 학교에 압력을 가하여 그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5. 종말

그 후 다들 알다시피 제2차 만주국 5개년 계획 따윈 없었다. 미국과의 전쟁에 돌입해 버렸으니까.

이사와라가 생각했던 것보다 25년이나 빨리 말이다.


뭔가 위험한 사상을 가진 군인은 잘리게 되어있다. 대한민국 국군도 군인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려 하던 간지가 잘리고 만 것은 당연한 결과인 셈. 하지만 도조 히데키에게 반대하고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막상 도쿄 전범 재판에 전범으로 기소되기는 커녕, 증인으로 출석하여 도조에게 불리한 증언을 잔뜩 하고 천수를 누리다가 패망으로부터 정확히 4년 뒤인 1949년 8월 15일 사망했다. 그의 유골은 일련종의 매장시설에 묻혔다.

6. 미디어

야스히코 요시카즈무지갯빛 트로츠키에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오족협화 운운하던 만주국이 일본인들의 땅도둑질 장소가 되었다고 개탄하고 지금 소련과 붙으면 중화기가 형편없는 일본군은 전멸당할 것이라고 비웃는 등 다른 일본군들보다야 조금 깨어 있는 인물로 나오지만 잘 쳐봐야 무력한 몽상가다. 만주국에 트로츠키를 불러들여 소련을 치겠다는 커다란 몽상에 빠져 음모를 꾸미나 결국 부하이던 츠지 마사노부의 폭주 때문에 음모가 어그러지자 찌질거리는 모습으로 실제 인물이 잘 반영되었다는 평.

와구치 카이지지팡구에서는 무슨 현자처럼 엄청나게 미화되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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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보통 石原는 이시하라로 읽지만 이 사람의 경우는 이시와라이다
  • [2] 당시 일본 육군 장교의 엘리트 코스 였다.
  • [3] 일련종은 한국에서는 창가학회가 유명하지만, 창가학회와는 다른 분파로 발전한 종교다.
  • [4] 일본이 경제 발전을 할 시간에 미국, 영국, 소련이 놀고 먹지는 않을 테니까 뒤처진 국가는 뒤처진다는 결론이 나와 버린다.
  • [5] 다만, 그렇다고 군인이 대놓고 "우린 영미 못이김"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보병교전에는 "언제라도 공격, 공격", "기습을 하면", "정신력 제일"이면 이긴다고 써놓긴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약소국을 상대할 때 내지는 제한전 시의 기준이고, 강대국과는 아예 전쟁을 하면 안된다암묵적 불문율을 전제했다. 그러나 2.26 사건으로 황도파는 나가리되었으나 이 교리의 내막을 모르는 통제파가 그냥 이대로 간다!되버린 끝에…
  • [6] 왠진 몰라도 간지는 1966년도에 집착했다.
  • [7]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세계최종전쟁론은 훗날 적군파에게 영향을 준다. 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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