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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기

last modified: 2014-11-12 14:11:04 by Contributors


이억기 장군의 영정

조선중기의 무신(1561~1597).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원균만 못하다고 입을 모아 까댄 비운의 장수, 이순신과는 달리 칠천량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자신의 진가를 다시 입증해보일 길이 없었다

전주 이씨로 왕실 종친. 정종의 10째 아들인 덕천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심주군(沁洲君) 연손(連孫)이다.

어릴 때부터 무예에 뛰어나서 17세에 사복시(司僕寺)[1]의 내승(內乘)이 되었고, 10대에 이미 무과에 급제했다. 21세에 경흥부사로 임명되었으며 이 때 두만강을 넘어온 여진족을 격퇴하여 큰 공을 세웠다. 26세에 온성부사(穩城府使)가 되었다. 이순신이 녹둔도 전투 때문에 압박 받자 이억기가 이순신 편을 들어 줬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1591년(선조 24) 32세 때 순천부사를 거쳐 전라우도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 전라우수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과 합세하여 당항포·한산도·안골포·부산포 등지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는 큰 활약을 했으며, 그 공적은 이순신 다음으로 여겨진다. 다만 임진왜란 초반의 주요 해전에 참여하지 않아 선무공신 2등이 되었다.

1596년에는 휘하의 전선(戰船)을 이끌고 전라좌·우도 사이를 내왕하면서, 진도제주도의 전투준비를 성원하였다. 또한 한산도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본영을 응원하였다. 또한 연합함대의 기동타격군의 구실을 수행하였다.[2]

이순신이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잡혀가 조사를 받게 되자, 이항복·김명원 등 조정대신들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의 무죄를 극구 변론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통제사 원균 휘하에서 조정의 무리한 진격명령을 받고, 부산의 왜적을 공격하였다가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에서 패하여 원균·충청수사 최호(崔湖) 등과 함께 전사했는데, 총지휘관인 원균이 부하들 목숨은 내팽개치고 도망갔지만, 이억기는 도주하지 않고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것이다.

젊어서부터 활약한 유능한 공자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과 한국 역사상 최악의 졸장인 원균의 개성에 막혀 인지도가 적은 편이다.[3] 이건 당대에도 마찬가지라서 수군의 작전통제권(주로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을 의논할 때 선조가 이억기는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있는데, 쓸만한 사람이다라고 하니까 체찰사였던 이정형이 그는 원균만 못 합니다라고 답하는 일생 일대의 굴욕을 겪기도 한다.

2차, 3차 출동 때는 전라좌수영 병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병력만 동원했다. 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남겨둔 것인데 이는 육군에 파견되거나 서해로 올라오는 것을 막으라는 명령 때문인 듯 하다. 이순신 역시 육군에 병력이 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몇 차례나 장계를 보낸 바가 있다. 이후 4차 출동 때는 40척이 넘는 병력을 보냈고, 그 이후에도 삼도 수군 중 가장 많은 병력을 거느렸다. 그런 것에 비해서 너무 인지도가 낮은 편. 투명라인의 원조격일지도.

병력을 동원하는 문제로 이순신과 대립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후 로 푼 듯 하다. (...) 그 외에도 이순신이 이억기에게 가니까 원균과 같이 있었다는 등 둘의 불화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후에 선무공신 2등이 되었고, 병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정조 때 마땅히 시호를 받아야 하는데 전례에서 누락되었다는 지적이 있어 의민(毅愍)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완흥군(完興君)에 추봉되었다.

종친이라서 실력이 있었음에도 견제 받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신빙성은 없다. 이미 왕위 계승에서 까마득하게 멀고 추존도 되지 못 한 존재감 없는 왕 정종의, 그것도 서자의 후손이다. 선조가 방계 정도가 아니라 고종 급의 정통성이었더래도 이억기 정도의 사람은 위협이 못된다. 선조가 방계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는 말도 어디까지나 카더라에 가까운 추측이며 선조가 이억기를 혈통 때문에 위험하게 봤다는 추측은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 기간에 '똑똑한 왕손을 다 죽였다'카더라에 가까운 억측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1기 초반에 불륜남 역할로 자주 출현했던 최성준이 맡았다.

대한민국 해군장보고급 잠수함의 마지막 함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2014년 김한민 감독의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에서 죽은 부하들의 원혼을 보는 장면에서 이순신이 "이수사 아닌가"라며 울며 말하던 "이수사"는 이억기 장군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른채 지나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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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왕가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는 부서
  • [2]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 [3] 이 항목 역시 제법 늦은 2011년 5월 27일에 만들어졌을 정도. 갱신도 잘 안되긴 한다. 여하간 임진왜란 때의 장수 및 이순신의 부하들보다도 훨씬 늦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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