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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남

last modified: 2015-04-04 19:08:28 by Contributors

李英男
조선시대의 인물. 임진왜란당시의 무관. 생몰년도는 ??년~1598년[1].

개전 당시에는 원균의 아래에서 경상우수군 권관으로 활동했으며, 정유재란 당시에는 가리포첨사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었다. 근데 임란 당시에 권관에 위치하기 전까지의 캐리어가 미스테리어스 한 분인데 그게 1592년 당시에는 무려 종4품 율포만호로 임명되었지만,[2] 그 중간에 딱히 탄핵을 받은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란 개전 당시에는 9품 권관으로 떨어졌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원균의 기록에서 이영남이 원균의 인간성을 제일 집요하게 파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원균이 싫어했다[3]는 기록이 있다는 걸 보면, 그 찌질이 X 원균이 상관 직위를 이용해서 강등시켰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전란 당시 막장이 되어버린 인사권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물론 이영남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고 전라좌수영에 와서 이순신에게 원균 뒷담화를 했다(...)[4]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자 잔적을 소탕하던 도중 자신도 역시 전사했다.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산정면에 있으며 가리포첨사로 노량해전에 참여했고 고금도 충무사에는 이순신과 함께 모셔져 있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중화산동 예수병원 근처에 그를 모시는 절이 있다.[5]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유태웅이 연기했다. 그야말로 불멸의 이순신 최고의 모에캐릭터(...)[6]. 발음상인지는 몰라도 슴다체를 자주 쓰는 것처럼 들린다. 젊은 혈기 때문에 열혈돌격장 같은 성격이었다. 왠지 드라마 상의 원균과 비슷한 성격이었지만, 어떤 이의 아주 적절한 표현을 빌리자면, 무개념유개념의 차이는 논리로 설득하면 말귀가 통하는 가 안하는 가의 차이에서 온다. 어쨌든 그 성격 때문에 첫화부터 충무공의 칼에 달린 손잡이를 맞고 기절(...)

역사대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는데 여기서는 묘사가 각색되었다. 이순신와키자카 야스하루와 싸우던 도중 위험에 빠진 모습[7]을 목격, 그를 구하기 위해 와키자카의 대장선을 습격[8]하여 그의 배에 올라 왜군들을 베어댄 후 와키자카가 직접 나서서 칼을 뽑자 그와 맞서다가 자신의 칼이 부러지고 그에게 오른팔이 베여 쓰러진다. 그러나 기운을 차려 다시 일어나서 와키자카에게 다시 덤벼들지만 그에게 복부를 찔림에도 불구하고 그를 붙잡아 함께 동귀어진하기 위해 바다에 빠진다. 다행히 이순신에 의해 건져올려져서 구출되지만 이미 입은 치명상 때문에 최후를 맞이한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이순신보다 일찍 죽었다.

하지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어차피 임진왜란 후에도 살아있고, 애초에 노량해전에 참전하지도 않았는데다, 죽자살자해서 구해낸 통제사는 감독에 의해 자살설이 절충된 마당이라 드라마내에서 제대로 고인능욕당했다(...). 지못미.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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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자료를 뒤져보면 태어난 해가 뒤죽박죽한다.
  • [2] 19살에 급제했을 때면 못해도 1580년도 말기 또는 1590년도 초기일 텐데, 1592년에 만호가 되었다면 꽤나 파격 승직인 것이다.
  • [3] 을파소 블로그 출처.
  • [4] 난중일기 1593년 3월 2일의 기록 - 비. 종일 비가 왔다. 배 봉창 밑에 앉았노라니 온갖 생각에 가슴이 치밀어 올라 회포가 어지럽다... 이영남, 이여념이 왔다. 그들에게 원 수사의 비리(非理)를 들으니 한탄스럽다.
  • [5] 위키피디아 출처.
  • [6] 미남이라는 소리 듣는데다, 이순신 메가데레(...)부녀자들이 폭주한다.
  • [7] 와키자카의 대장선이 이순신의 대장선에 사조구를 던졌다.
  • [8] 두 배의 사이에 끼어들어 이순신의 대장선에 걸려 있는 사조구의 줄을 한 번에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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