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이영표

last modified: 2015-10-29 18:01:19 by Contributors

20

2013년 10월 27일 은퇴경기에서 주장완장을차고...


이젠 해설자다!

Our all. Our honour.[1]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

다시 나오기 힘든 대한민국 풀백의 레전드
예언왕 초롱팍도사 표스트라다무스 문어 파울의 후계자 감히 두족류에 비교되는 영장류

성명 이영표 (李榮杓 / Lee Young-Pyo)
생년월일 1977년 4월 23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 강원도 홍천군 내면 창촌리[2]
포지션 풀백
신체조건 177cm, 66kg, O형
가족 부인, 슬하 2녀
프로입단 2000년 안양 LG 치타스
소속 클럽 안양 LG 치타스 (2000~2002)
PSV 아인트호벤 (2003~2005)
토트넘 핫스퍼 FC (2005~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09)
알 힐랄 (2009~2011)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1~2013)
국가대표 127경기 / 5골
트위터 http://twitter.com/fromtheline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Contents

1. 개요
2. 약력
3. 점쟁이 예언자 해설로 데뷔
4. 논란거리
4.1. 종교색
4.2. FC 서울과의 관계
4.3. 말말말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포지션은 풀백으로, 왼쪽과 오른쪽 양쪽에서 모두 뛸 수 있지만 주로 왼쪽에서 뛴다. 왼쪽에서 주로 뛰지만 오른발 잡이고, 크로스도 오른발로 올리는게 더 정확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른쪽에서 뛰면 왼쪽에서 뛰는 것보다 약하다.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특유의 '헛다리' 개인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실제로 그는 개인기를 통해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데서 재미를 느껴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무던히도 개인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소위 '헛다리'라 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중심축을 잃지 않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성기 시절 그의 헛다리 드리블만큼은 세계에서도 순위권이라 할 만 했다.

프리미어 리그 이적 첫 경기였던 대 리버풀전에서는 측면에서 리그 탑 클래스 리버풀 수비 두 명, 아르네 리세제이미 캐러거를 보란듯이 제껴버리고 크로스를 올리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이영표는 MOM을 먹었다. 그 외 PSV 시절,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대 AC 밀란과의 홈 경기에서 레전드급 수비수 카푸를 완벽히 제껴버리고 멋진 크로스[3]를 올리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영표라는 플레이어를 대표하는 명장면 중 하나.

전성기가 지난 뒤로는 그 때의 폭발력은 더이상 보여주지 못했지만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관록으로 김동진, 장학영, 김치우 등등 뛰어난 왼발잡이 풀백들이 즐비한 한국 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직전까지 부동의 주전자리를 지켰다.[4] 특히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 위치할 경우는 소울메이트 급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있는 동안 대표팀 왼쪽은 아르헨티나를 만나도 잘 털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현란한 드리블 때문에 공격적인 윙백으로 인식이 잡혀있지만 이영표의 진가는 공격보다 수비에 있다.오히려 공격은 약한 킥력때문에.... 수비는 상대와의 수싸움을 통한 자리 잡고 막는 방식과 피지컬로 커버하는 방식이 있는데 전성기 이영표는 상대와 수싸움도 능하고 스피드도 빨라서 어지간하면 위험한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즉 상대방을 기본적으로 잘 읽는데다가 혹시나 제껴지더라도 금방 다시 따라와서 공격수를 막았다. 거기에 강철체력은 덤. 특히 기복없는 꾸준한 경기력은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수비수의 최고 덕목이다. 이영표는 부상도 없고 기복도 없고 실수도 별로 없는 안정적인 수비수로 감독들이 좋아할만한 선수였다. 물론 나이들어 피지컬이 떨어지고 특히 몸빵이 중시되는 EPL로 이적하면서 초반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특유의 영리함으로 재빨리 적응해내는 것도 이영표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킥력이 약해서 크로스와 슛 등에 문제가 있어서 좋은 공격자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란한 드리블과 강인한 체력으로 인한 무한 오버래핑으로 맞은편 상대 윙백을 압살하곤 했다. 이영표의 이런 공격 특징의 하이라이트는 앞서 언급한 PSV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경기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풀백이라고 불리던 밀란의 우측윙백 카푸를 맞아 90분간 무한 오버래핑을 시전하여 '그' 카푸를 제대로 발라버렸다. 국대 경기에서도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사이드를 탈탈탈 털어버리면서 이영표 커리어의 역대급 하이라이트로 불릴 수 있는 경기가 있다.

다만 노쇠화 이후로는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수싸움에서 지레 지고 들어가는 장면이 잦았다. 물론 수비에서 가장 나쁜 건 덤벼들다 완전히 패배하는 것이므로 차선책을 선택하면서 안정적으로 가는 게 좋은 것이지만 상대방은 한국의 왼쪽 측면을 공격에서 일단 쉬어가는 전진기지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은퇴 직전까지도 받았던 칭송은 사실 과하다고 할 수 있다. 괜히 은퇴한 게 아니지만 또 나이에 따른 노쇠화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팬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초롱이.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미 26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엽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상징하는 백넘버라면 12번을 들 수 있는데 처음엔 특별히 12번에 애착을 가져서 택한건 아니고 계속 달다보니 본인의 번호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팀에서 자리를 잡으면 주로 3번으로 번호를 바꾸곤 했다. 참고로 2002년 월드컵 한국국대의 10번이다.별 의미가 없었겠지 당시 월드컵 엔트리 규정에 따르면 골키퍼는 1번, 12번, 18번, 23번만 배번이 가능해서 김병지에게 12번을 주고 10번을 단것이다. 10번은 엔트리 제출일에 거스 히딩크감독이 고심하다 준 것이다. 10번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대표팀 선수들이 내심 달기를 원했지만, 팀의 단합을 중시하던 히딩크는 가장 성실히 훈련에 임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영표에게 주었다고 한다.

2. 약력

2000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던 허카우터의 눈에 들어 그해 6월 12일 코리아컵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룬다. 예나 지금이나 대표팀 선수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고 U-17, U-20, 올림픽 팀(U-23)을 차례로 거쳐 대표팀에 뽑히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에 비하자면 무척 희귀한 경우다.[5] 그리고 현재까지는 대학교를 완전히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뒤, 월드컵을 거쳐 해외에 진출하여 각국의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다가 밴쿠버는 신생 팀이지만 은퇴한 가장 이상적인 축구인생을 살았던 유일무이한 선수.

비슷한 시기 허정무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발탁한 박지성과 더불어 당시 인터넷 게시판의 까임권 지분을 33% 차지했다. 나머지 한 사람은 효연...[6][7]

그러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의 활약으로[8] 평생 까방권을 받게 된다.

여담으로 월드컵 종료후 한달후 벌어진 2002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올스타전 최초로 자책골을 기록했다.


월드컵 후 거스 히딩크 감독에레디비지PSV 아인트호벤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과 함께 이영표를 네덜란드로 데려간다.[9]이적했다. 이적하자마자 맹활약. 2004년에는 에레디비지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2006 월드컵 당시 BBC에서 선정한 세계 수비수 8위에 오르기도 했다. PSV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4강을 견인하는 등, 박지성과 함께 맹활약한다.


2005년에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진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표도 같은 리그의 토트넘 핫스퍼에 입단하게 된다. 초기에는 뛰어난 기량과 과감한 오버래핑으로 토트넘의 주축으로 자리잡았으나 수비능력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10] 이후 2번째 시즌초부터 아수 에코토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4개월동안 벤치멤버로 전락 하였으나 에코토가 겨울에 열린 아스날전에서 폭망, 심한 멘붕을 겪게 된다. 그경기 후반부터 이영표로 교체되었고 이영표는 그경기에서 전과는 달라진 수비능력을 보여주면서 스카이스포츠로부터 "IMPROVED" 라는 호평을 받으며 이후 주전자리를 공고하게 지켜냈다.


하지만 이영표의 공격 능력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11] 급기야 2007/08 시즌에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력 외로 낙인찍혀 독일 1분데스리가 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게 된다. 이영표가 떠난 이후 후안데 라모스 감독은 토트넘을 한때 칼링컵 결승에서 첼시를 격파할 정도로 강팀으로 바꾸었으나 이후 급락한 성적으로 경질되고 만다.

2008/09 시즌 초반에 도르트문트에서 꾸준히 출전했지만 도르드문트의 레전드 데데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팀내 입지가 흔들리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로 이적했다.[12] 그리고 알 힐랄에서 축구를 가르쳤다.


사우디 리그를 씹어버리는 용표횽의 위엄.
용표횽의 포스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혼자서 뒤로 넘어지시는 상대편 센터백을 보라! 오오 영표 오오
2008년 11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이운재에 이어 센추리 클럽[13]에 가입했다.

2011년 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박지성과 함께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국대의 왼쪽 측면에는 헬게이트가...

2011년 2월 16일에 벌어진 FA컵인 크라운 프린스컵 8강전 알 아흘리 경기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득점에 실패했다.[14] 다행히 골키퍼 활약으로 겨우 4:3으로 팀이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팀의 크라운 프린스컵 결승 경기에서도 활약하며 팀은 대회 우승했다. 그 당시 결승이 이교도는 들어갈수 없는 메카에서 치루어 지는거여서 이영표를 포함하여 알 힐랄의 외국인 선수들이 참가를 못할뻔 했으나 왕자의 중재로 들어갈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메카에 들어간 최초의 한국인 이교도인 일지 모른다.

2011년 6월 알 힐랄과의 계약만료 이후 알 힐랄과 재계약하지 않고 거취를 고민하다 12월 6일 미국프로축구(MLS)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와 1+1 계약을 확정짓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였다.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장래 지도자로의 변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자신의 트위터에 티켓 필요한 밴쿠버 유학생들 연락달라며 새 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다.#

2012년 4월 29일에는 7년 만에 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프리킥 골이다.

2012년 7월 20일에는 대한민국 기준 나이 36세임에도 불구하고 북미 프로축구 리그(MLS) 전 경기 풀타임 연속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15] 이영표 선수의 몸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방증하는 셈. 프로로서의 모습은 국내 선수들 중에서는 당연 넘사벽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대한민국의 하비에르 사네티급.

그리고 현재 박지성과 함께 대한민국 축덕 네티즌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선수중 하나다. 팀내에서 중심을 잡아주던 고참들을 그리워하는 팬들은 이영표, 박지성 두사람이 은퇴할 당시부터 염려했던 일이지만, 현재 수비가 시망된 국대의 측면이 털릴때마다 "영표형 돌아와요ㅠ"라는 댓글을 각 포털사이트마다 심심찮게 찾아볼수 있다. 안정적인 수비면에서 크게 기여했던 그에 대한 축구팬들의 애정을 반증하는 사례. 하지만 사실 은퇴하면서도 고백했듯 프리미어리거라는 간판덕에 칭송받은 경향도 없지는 않다. 특히 피지컬이 떨어진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상대에게 안정적인 공격루트를 제공하는 경향도 있었다. 물론 현재 국대의 통풍 100% 보장되는 수비능력을 생각해본다면(...) 전성기가 지난 이후 그의 수비 능력도 충분히 역대 국대 수비수중 단연 탑클래스라고 할만한 것이며, 과대평가 받았다고 보는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2013년 10월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됐다. 그리고 2013년 10월 28일 공식 은퇴전을 치뤘으며 이 경기에서 주장 밴드를 차고 나와 90분을 소화한 뒤에 추가시간에 교체되어 나왔다. 교체사인 뜨자마자 박수 처주는 피치위의 동료들과 한번씩 포옹한뒤 마지막에 교체선수와 포옹하면서 피치위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사진을 잘 보자, 이영표 선수가 뛰었던 안양 LG 치타스, PSV 아인트호벤, 토트넘 핫스퍼 FC,보루시아 도르트문트,알 힐랄,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의 엠블럼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엠블럼이 이영표선수의 얼굴과 나란히 실려있다.
건국대 홍보모델이 됐다.

3. 점쟁이 예언자 해설로 데뷔


은퇴 이후 KBS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초롱팍 도사 활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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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 중 KBS뉴스 웹사이트에 메인에 걸려 있는 적절한 배너 이미지. 닥쳐 판단은 내가 한다

죽은 문어의 혼이 그에게 빙의되었다 카더라 혹은 전생이 노스트라다무스였다고 하더라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승리한 자.

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활약을 예고하며 마찬가지로 해설자로 데뷔한, 같은 2002 멤버인 송종국, 안정환과 경쟁구도가 성립되어있다. 2014년 1월 30일(현지시간 1월 29일)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해설자로 데뷔전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대표팀은 0:4로 대패.(...) 처음에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실드쳐주던 이영표도 결국 경기 종반에 가서는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마지막까지 보여줄 의무가 있다.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가나전에서도 4:0 완패를 당하자. 우리가 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네요.라는 명대사와 함께 최강 돌직구를 날렸다.

한편 월드컵 본게임 시작 이후부터는 다른 해설자들과 차별되는 작두탄 무당해설(...)로 각광받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몰락을 혼자 예견했는데,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5대 1로 완패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영표의 예측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러 해외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한 경험과 국가대표로서 여러 국가의 팀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러본 오랜 경험으로 상당한 수준의 해설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정석적인 해설이라는 것. KBS 따봉월드컵의 빅매치 전망을 보면 해당 동영상의 4분 44초부터 5분 40초까지는 네덜란드의 선전을, 18분 30초부터 21분 10초까지는 스페인 몰락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D조 이탈리아 vs 잉글랜드 경기의 스코어와(2:1 이탈리아 승) 코트디부아르vs일본 경기의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히는 신들린 모습을 보여줬다.(2:1 코트디부아르 승) 문어의 뒤를 이어 펠레의 라이벌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거기다 문어와 달리 이 분은 스코어까지 맞췄다. 코트디부아르 경기에서는 국가대표로서 한일전 특유의 국민감정을 겪으며 뛰어야했던 선수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머리는 일본의 승리를 말하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원한다"라며 2:1 승리를 예측하고 해설중에도 코트디부아르를 노골적으로 응원하는 해설을 했다.제발 한국인이면 코트디부아르 좀 응원합시다 윌프리드 보니가 동점골을 성공시키자 너무 기쁜 나머지 득점자를 제르비뉴로 일순간 착각했는데, 뒤이어 나온 "제르비뉴면 어떻고 보니면 어떻습니까!!!"가 이 경기의 백미. 흑묘백묘론 코트디부아르의 찬스가 무산될 때마다 무의식중에 새어나오는 나라잃은 한숨소리는 덤이었다. 동료 해설위원 김남일이 장난삼아 코트디부아르에 임대 다녀왔냐며 지적하기도. 이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사실 대부분 한국인들이라면 한일간 특유의 감정탓에 일본이 지기를 바라는 입장이기도 하고, 크게 거슬리는 내용도 없었기에 그다지 크게 문제될게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네티즌들은 이영표의 해설 실력과 정확한 예상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는 반응이다.

굳이 무당해설이 아니라도 해설 능력 자체도 호평을 받고있다. 일단 발성이나 발음에서 다른 해설자와 비교했을때 큰 차이가 있다. 발음이 뭉개지지 않고 발성이 또박또박하고 큰 편이라 듣기 편하고 차분해서 전문적인 해설같다는 평가. 어쨌거나 이미 일부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문어 영표, 갓초롱으로 불리고 있으며 문어 파울의 후계자이자 이번 대회의 예언자 자리에 등극했다.(...) 소오름 코트디부아르 전에서는 해설 도중 드록바가 투입되는 장면에서 드록신이라면드록바라면 전세를 뒤집을수 있다고 하고, 10분 안에 동점골이 나오면 이후 코트디부아르가 추가골을 넣고 역전할 것이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 말을 내뱉은 후 정말로 본인의 말대로 되자 본인도 "이래도 되냐"며 놀라워하다 곧이어 "제가 뭐랬습니까"라 하였고, 함께 해설하던 조우종 캐스터 역시 "문어가 빙의한 것 아니냐"라고 드립을 날렸다. 여기에 킥오프할 당시 일본의 좌측 - 코트디부아르의 우측면, 나가토모 유토세르주 오리에의 매치업이 승부의 관건이라 전망했는데, 정말 오리에가 우측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트위터에서 특별한 예지능력이나 통찰력이 있는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홍명보호의 첫 경기인 러시아전에서도 "경기 70분쯤부터 기회가 날 것이다" "이근호가 한 건 할 것이다"라는 예상을 했는데 정말 68분에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었다. 평가전에서의 졸전으로 인해 이전까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정확한 예상을 해냈다는 것에 많은 팬들이 놀라워하는 중. 다만 홍정호가 빠지고 황석호가 투입될 것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2:1로 이길 것이라고 kbs 1대100 방송에서 이야기했지만 비겼다.

그리고 칠레-스페인전에서도 칠레가 스페인을 이길 것이라며 스페인의 브라질 월드컵 몰락에 대한 주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어... 오오 갓초롱 오오

2014년 6월 23일 브라질월드컵 한국vs알제리전를 앞두고 2:1로 한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그 예언의 반만 실현되었다. 전반 0:3, 후반 2:1. 결국 2:4 대패. 대신 같은 날 야구선수 류현진이 샌디에이고전 선발 등판하여 2:1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예지력의 절반이 이쪽으로 간건가....?? 난 한국이라고 했지 축구라고 말한적은 없다.[16]
그리고 알제리전 주목해야할 선수로 손흥민을 꼽았는데 1골을 넣기도 했고 멸망 수준의 한국팀에서 혼자 빛났다.

2014년 6월 27일 알제리vs러시아가 무승부를 하면서 16강 진출의 마지막 희망인 한국vs벨기에전에서 0-1로 패배하자 실망하면서(...)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 라며 폭풍간지의 멘트를 날린다

유명세를 타고 영국 BBC에서도 인터뷰했다고 한다. #

7월 1일 프랑스 vs 나이지리아 경기도 예상 적중하였다!. #

7월 9일 독일 vs 브라질 경기에서 예측에는 실패했지만 (이건 예측한 사람이 이상한 결과) 2번째인 클로제의 골이 터진 직후 잘못하면 브라질이 대패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고[17] 이에 대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연속적인 골이 터지면서 예측능력을 과시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7월 25일 '팀 박지성'의 일원으로 K리그 올스타전에 참가하였는데, 교체아웃되어 인터뷰 중 "우리 팀이 한 골 더 넣어서 비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언하자마자 2초만에 박지성이 골을 넣는 신기를 발휘했다(...).

10월 2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대 북한 결승전에서도 예상이 적중했다. 경기 전에 1:0 으로 이길 것 같다고 말했는데 진짜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연장전까지 가는 팽팽한 경기에 이영표가 "1분 안에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고 멘트를 하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골이 터졌다.(…)

해설 스타일은 모범생. 시청자들을 빵 터뜨리는 멘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 송종국, 안정환과 달리 본업인 해설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며, 나쁜말 못하는 성격 때문에 직접적인 비판이나 구체적인 해결책 제시가 없었던 차범근 해설위원과 달리 촌철살인 멘트나 이렇게 해야한다 지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목소리 톤도 한준희 해설위원처럼 중장년층이 듣기에 다소 시끄럽거나, 이용수 해설위원처럼 젊은층이 듣기에 좀 심심한 톤이 아니라 어느 연령대든 무난히 받아들일 만한 적당한 톤이다. 즉, 본인이 계속 공부하고 노력만 해나간다면 전연령을 아우르는 해설자로 대성할 조건이 충분하다.

사소한 단점으로 외국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간혹 아나그램화시켜 버리는 특징이 있다. 발레토리라던가, 샤리키라던가, 카예바라던가... 물론 해설의 본질에 영향을 끼칠만한 실수는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를 개그 요소로 받아들여 웃어넘기는 편이다.

4. 논란거리

4.1. 종교색


하단에 후술된 알 힐랄과의 계약조건 문제가 작성금지된 모 기자에 의해 대두되면서 이전부터 논란거리가 되었던 이미지가 확실하게 박혔다. 역시 종교문제로 경력이 화려한 고양 Hi FC의 감독 이영무와 함께 양대 종교쟁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으며, K리그 승부조작에 가담한 두 명의 전 국대급 금지어 축구선수와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급 드립을 치며 승부조작 범죄자를 옹호한 모 선수, SNS로 감독을 디스한 모 선수 등 온갖 문제를 일으킨 개신교 선수들의 이야기에 화이트 엔젤 사건, 성남 일화 천마와의 종교 대립 문제까지 나오면서(다만 최근의 매각 문제는 통일교의 후계자가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게 결정타이다.) 아예 개신교 자체가 금지어가 될 지경이다. 가끔은 이단 취급을 받는 개신교도까지 등장해서 같이 묶인다.

프리미어리그를 보러가다라는 책자에 따르면 농담조인지 몰라도 불교 신자인 후배 박지성을 교회에 나오게 하려했다는 말을 했다가 영국에서도 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잉글랜드 기자가 당신은 축구선수인가? 선교사인가? 하며 아리송해했다고.. 아무래도 종교 때문에 전쟁을 벌였던 곳이라 이런 농담(?)에 대하여 안 좋게 볼만하다. 근데 그도 자서전에서 밝히길 자신도 믿기전에는 무신론자였었고,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이해를 한다고 언급했으나 정작 본인은 이래놓고 인트호벤에서 같이 뛸 때 불교 신자인 박지성을 계속 전도하려 하여 같이 식사할 때마다 기도를 해서 박지성과 그 가족이 상당히 불편해했는데도 그만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글러먹은 강요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2006년에 측면 수비수를 구하던 AS 로마미도와의 맞트레이드로 이영표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계약 막판에 이영표가 종교적인 이유[18]로 거부하면서 이적이 불발, 토트넘 운영진의 미움을 받게된다. 이 때 국내에서는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라서 안 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어째 알 힐랄 이적을 볼때 아닐지도….이영표가 쓴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중에서 만약 내가 오늘 로마에 안간다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마음에서 이전의 불안감이 없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단순 변심이라고는 추측 할 수 밖에 없을듯, 그런데 이게 이것대로 문제인게, 이미 이적 합의 다 끝나고 로마는 주전 풀백인 레안드로 쿠프레까지 팔아놓은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파토나니 이영표나 토트넘도 손해였지만 로마는 피봤다.[19] 더불어 알 힐랄에서 골을 넣고 기도 세레머니하면 어찌되느냐? 말도 많았는데 결국 거기선 골을 넣고 그냥 동료들과 같이 기뻐하는 세레머니로 스스로 알아서 삼가하고 있다. 그랬다간 퇴출

그러나 알 힐랄로 가면서 벌인 짓거리로 결국 종교 꼴통 인증에 국제적 분쟁을 일으킬 뻔한 일을 벌였다. 알 힐랄로 이적하면서 계약조건으로 이영표는 자기가 지정한 사람들에게 입국 비자를 받아내달라는 조항을 내걸었다. 구단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는데 알고보니 이영표가 지정한 사람들은 개신교 목사와 선교사들이었다. 이슬람 국가의 본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개신교 선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안다면 충격과 공포...[20]만약 알 힐랄 구단에서 이를 알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조건이었다.심지어는 이 사실을 방송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밝히기까지 했다.http://cms2.cgntv.net/index.asp?gid=0201&pid=2134&vid=76270. 하지만 이영표의 저런 뻘짓은 결국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 구단에선 이후로 통역같은 정말 필요한 인물도 선교사인지 검증하고 들여오도록 만들어 스스로 사우디아라비아 선교를 더 가로막게 했다.

4.2. FC 서울과의 관계

이영표가 FC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에서 활약 후 아인트호벤으로 이적을 하였으며 그 후 안양 LG 치타스는 2004년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하여 FC 서울이 되었는데 안양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이영표가 "나의 친정팀은 죽었다"며 FC 서울을 디스했다는 정체불명의 소문이 한때 나왔지만 이는 2011년 이영표가 FC 서울 복귀를 사양하며 밝힌 인터뷰에서 FC 서울은 "내가 프로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준 고마운 팀이다. 서울이었기에 선뜻 답을 주기가 더욱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준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친정팀 서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라는 요지의 인터뷰 기사로 희대의 뻘소리임이 입증되었다. 기사링크 이영표 "서울 복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터뷰 항간에 의하면 국축갤에서 이영표 선수를 이용해 FC 서울을 디스하기 위해서 지어낸 얘기라고 한다.

한편 밴쿠버에서 마지막 선수생활 은퇴 후 FC 서울에서는 2013년 이영표의 선수 경력 은퇴 기념 초청행사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영표는 실상 안양 LG 시절에서만 뛰었고 FC 서울 시절에서는 뛴 적이 없는 선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FC 안양이 창단되고 이영표가 FC 서울 보다 FC 안양FC 안양도 안 뛰기는 마찬가지에 FC 서울은 그래도 연봉이라도 주기라도 했지만, 친정팀처럼 생각해 주길 바라는 일부 안양팬과 FC 서울 안티팬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FC 안양의 이영표에 대한 유니폼 헌정 행사는 무산되었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선수 은퇴 기념 행사는 성공리에 끝마쳤다. 당시, 이영표는 안양 LG 시절 자신의 번호이자 현재 FC 서울 수호신에게 헌정된 12번이 마킹된 FC 서울의 유니폼을 들고 따봉을 하며 즐거워하였으며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서 FC 서울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은퇴소감을 전했다.기사링크 ‘친정팀서 은퇴식’ 이영표, “FC 서울 응원하겠다”


이를 두고 FC 서울을 안티들이 많은 反 FC 서울 사이트에서는 이영표에 대해 이제 안양 축구팬들과의 관계는 요단강을 건넜다느니, 무슨 GS 회사원이냐며 이영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하였지만 이영표 본인이 FC 서울을 친정팀으로 생각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건덕지가 없기에 큰 공감을 얻을 수가 없었으며, 그 후 2014년 우리동네 예체능의 FC 서울과의 친선경기 등등 계속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4.3. 말말말

  • 2011년 국가대표 축구팀이 부진하자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박지성 복귀 가능성을 말했지만 박지성측에서 바로 부인했다.
  • 2012년 병역연기를 한 박주영을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로 두둔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 윤빛가람 이적 문제와 관련해서 뜬금없는 훈장질로 비난을 샀다.
  • 2012년 6월 14일에는 트위터에 해괴한 논리로 개신교가 진짜 종교라는 뻘소리를 늘어놓아서 역시 까임을 받고 있다.
  • 최근에는 계약 1년 연장을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어놓고 K리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서 국내축구를 다루는 커뮤니티에선 이영표의 말이 한창 화제가 되었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일지 몰라도, 10년 넘게 대한민국 축구계를 떠났던 인물이 현장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원론을 앞세우는 것일까? 그야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했다.
  • 2012년 축구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 올랐던 안양시 시민구단 창설에 대해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정작 K리그에서는 역시나 같은 개독교 집단 고양 Hi FC를 지지하겠다고 한다. # 모종의 계약이 있었던건지 고양 Hi FC에서는 이영표의 얼굴이 박혀 있는 2013 시즌권을 판매했다.
  • 2013년 2월 이번에는 K리그 시즌권이 자기가 뛰는 캐나다보다 싸다는 이유로 K리그를 깠다자기 소속팀의 시즌권 가격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모 스포츠 일간지에서 이 떡밥을 물어서 K리그 공짜시즌권[21]을 깠다. 이에 팬들은 왜 그런 트윗을 해서 언론에 K리그를 깔 소지를 제공했느냐며 또다시 이영표를 까기 시작했다.
  •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와 안양 LG(현 FC서울)의 경기를 했을 때 이임생 선수와 갈등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수정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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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2] 다만 학교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다녔다.
  • [3] 이 크로스를 코쿠가 헤딩으로 넣어서 잠시 희망을 가졌었..
  • [4] 다만 김동진이 흥할 때는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오른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러나 김동진이 쓰러진 뒤로 다시 왼쪽으로 복귀했다.
  • [5] 잘 모르고들 있는게, 이영표 청소년 시절에 이영표보다 더 주목받던 선수가 있었다. 양현정이라고, 이 당시 이관우와 함께 199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우승에 공헌했고, 1997년말에 국가대표 상비군으로도 발탁되었다. 이 당시 차세대 윙어는 박진섭-양현정으로 여겨졌지만, 양현정은 잦은 부상을 겪으며 기량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십자인대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을 맞았고, 한때 무명이었던 이영표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빛을 발할 동안 K리그에서... 그것도 부상 때문에 얼마 뛰지도 못하다가 베트남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로 은퇴해서 지도자가 되었는데, 현재 동티모르 청소년 대표팀을 맡고 있다.
  • [6] 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올림픽 대표팀 시절에 이영표의 플레이도 상당히 훌륭했다. 일본 올대에게 1-4로 처참하게 발릴 때 이영표가 있었으면...했을 정도. 특히 이당시 이영표는 윙백이 아닌 윙어로 공격성이 강해서 골도 잘 넣었다. 특히 중국에게 강했는데, 중국 대표팀과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다.
  • [7] 실제 히딩크가 부임하고 초창기 박진섭과 박재홍, 박동혁등 허정무호에서 주전을 맡았던 젊은 선수들이 거지같은 체력이라고 우수수 잘렸을때도 이영표는 살아남았다. 이영표가 살아남을 것은 축구팬들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고, 박진섭이 뜻밖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 박진섭은 박주영이 나타나기 전까지 천재소리를 듣던 유망주였지만, 체력이 모자라고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강판, 이후 그의 자리를 꿰어찬 선수가 바로 지아네 아빠 송종국이다.
  • [8] 당시엔 쓰리백을 사용한 대표팀에선 측면 미드필더로 나서 대회 기간 내내 맹활약했다. 특히 예선 3차전에서 루이스 피구가 이끌던 포르투갈 대표팀을 좌영표-우종국의 미칠듯한 컴비네이션으로 도륙내 버렸다.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골로 기억되는 그 날의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영원히 잊을수 없는 추억이다. 뿐만 아니라 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의 헤딩 골든골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만 결승골 도움 2개를 기록한 것. 흠좀무.
  • [9] 이 때 박지성은 정식 입단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영표는 6개월 임대 후 완전 이적 계약 여부 결정이었다. 때문에 이영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매우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 [10] 네덜란드리그와는 달리 EPL 은 수준이 더 높다. 특히 킥이 발달한 EPL에서 크로스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기에 수비수는 상대방이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반면 네덜란드 리그는 크로스를 올려도 별로 위협적인 크로스가 드물기에 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막을 필요성을 못배운다. 이영표는 네덜란드리그에서 하던 것처럼 상대방이 크로스 올리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였다.
  • [11] 원래 크로스 킥력이 부족하고 정확도가 낮아서 드리블 돌파후 이어지는 낮고 빠른 크로스라면 몰라도 상대를 제치면서 올리는 높은 크로스는 위협적인 경우가 많지 않았다. 높은 크로스는 EPL은 커녕 k리그에서도 잘날 게 없는 수준. 일명 아리랑 크로스. 또는 두둥실 크로스.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왼쪽 윙백이면서도 왼발로 크로스를 못올렸다는 점이다. 그것도 네덜란드 리그에서 뛸때는 분명 왼발로도 크로스를 올린적이 적지 않은데 EPL로 가면서 왼발에 부상이 있는지 갑자기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오버래핑후에 왼발로 바로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고 뒤로 방향을 바꾼 다음에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니 공격템포가 죽고 성공할리가 없었다. 상대방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공간으로 크로스를 못올리니 이영표의 오버래핑 공격은 성공할수가 없었다.
  • [12] 이영표 본인의 발언에 의하면 도르트문트에서도 재계약을 원했다고 한다. 데데도 다음 시즌을 끝마치고 브라질로 복귀했고, 복귀할 거라고 천명하고 있었으니만큼.
  • [13]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 [14]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마지막키커로 나갔다가 실축 한 적이 있었다.그리고 이동국은 군대를...
  • [15] 7월 20일 기준 21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
  • [16] 이건 예언예측이라기보다는 립서비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느나라의 해설이 자국민들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안될거야 아마'라고 할수 있을까?
  • [17] SBS의 차범근, MBC의 송종국 안정환도 이 시점에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 [18] 책에서도 언급하였는데 에이전트?(확실치 않음), 당시에는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어서 이영표는 빅 크리스천 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게 와전된 형식인 듯. 거절한 이유.
  • [19] 근데 결과적으로 대신 주전 풀백 먹은 토네토가 더 잘하기는 했다(...)
  • [20]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는 개신교 선교는 불법이다. 국가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하는 국가도 있다.비자를 받아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은 개신교 목사 및 선교사가 합법적으로는 입국비자를 받지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실상 구단을 속여서 이용한 셈이며 법률을 고의적으로 어긴 것.
  • [21] 물론 "공짜시즌권"이라는 것은 없다. 공짜표 & 시즌권이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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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0-29 1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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