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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모토 테츠조

last modified: 2015-04-04 10:25:3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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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일생
2.1. 태평양 전쟁
2.2. 전쟁 이후
3. 파일럿으로써 기행 수준의 기록들
4. 기타
5. 대중매체의 이와모토 테츠조

1. 개요

영전의 테츠

岩本徹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해군 전투기 조종사.

이와모토는 마치, 전투기를 타기위해 태어난듯한 남자였습니다.
岩本は、戦闘機乗りになるために生まれてきたような男でした
- 라바울 항공대 사령관 '시바타 타케오'-

최종 계급은 해군 중위. 1916년 6월 14일 사할린 출생 - 1955년 5월 20일 사망. 한국에서는 사카이 사부로에 비해 유명하진 않지만 그에 비해 모자랄 것 없는 인물이다. 8,000시간이 넘게 전투기에 탑승한 베테랑.
문서상으로 남아있는 격추수는 단독 격추만 80기, 본인이 남긴 수기에 의하면 202기. 제3자에 의한 기록상으로는 시자와 히로요시의 87~120기에 이은 일본군내 2위지만, 실질적인 격추수는 니시자와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 일생

학창시절 수학 계통의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꽃을 가꾸거나 독서가 취미인 등 굉장히 얌전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취미와 달리 상당한 열혈남아에 운동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 불같은 성격 탓인지 선생에게 대들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첫째는 도시로 가고 둘째는 죽었었기에 셋째아들인 그가 가업을 잇기를 바랐지만 그는 '저는 막내로 태어났기에 조국을 위해 한 목숨 바치겠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항공과에 들어갔다. 이후 35년에 항공모함 류조에 배치되고 다음해인 36년에 조종연습생으로 들어가 그해 말 사에키 해군항공대에 배치되게 된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그는 첫 출진 당시 난창 상공에서 4기의 적기를 격추했으며[1] 최종적으로 14기로 최다 공인격추기록을 세워 42년엔 훈장 다섯개를 받는다.

2.1. 태평양 전쟁

40년에 류조에 배치된 뒤 그는 맹훈련 끝에 즈이호의 전투기 부대로 이동해 후배들과 훈련에 힘썼고 그해 가을 쇼카쿠급 항공모함 두대로 구성된 5 항공전대가 구성된다.

그와 즈이호의 부대원들은 5항전의 창립 1기 멤버로 쇼카쿠와 즈이카쿠에 반으로 나눠 배치되었다.[2] 이후 계속 편성이 변경되어 이 항모 저 항모를 옮겨다니게 되었고, 진주만 공습 당시엔 즈이호의 파일럿으로 상공호위 임무만 전담해 전과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이와모토의 첫 전과는 인도양에서 카타리나 비행정을 격추한 것이 처음이었고 이후 그는 즈이카쿠 소속으로써 산호해 해전에 참여한다.

전투 당시 즈이카쿠는 선두기가 이륙이 늦어져 방공망이 흐트러져 있었는데, 이와모토가 이끄는 제로센 3기가 즈이카쿠를 노린 미 함재기 17기를 막아서서 F4F 와일드캣 한기를 격추하고 SBD 돈틀리스들이 즈이카쿠를 공격하는 것을 막아냈다.[3][4] 이 공격 직후 즈이카쿠는 스콜 아래로 들어섰고 미군의 공격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다음엔 쇼카쿠를 돕기 위해 스콜을 뚫고 이륙해 쇼카쿠를 노리는 미군의 함재기들과 싸워 결국 저승 문턱에 한발을 들여놨던 쇼카쿠를 살리는데까지 성공한다. 이후 쇼카쿠의 정비팀이 급하게 갑판을 수리하여 이와모토는 쇼카쿠에 착륙할 수 있었다.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5 항공전대는 공격대의 손실은 컸으나[5]]] 즈이카쿠의 승무원과 이와모토의 호위대의 손실은 전혀 없었고 즈이카쿠는 결국 단 한발의 피탄도 없이 살아돌아온다.

전투 후엔 일본으로 귀환해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라바울로 파견되어 격렬한 전투를 연이어 치루게 된다. 이때 제로센으로 헬캣과 4:1로 싸워 적을 전부 격추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중폭격기를 잔뜩 격추하는 등 라바울에서도 상당한 전과를 쌓는다. 테츠조 부임전엔 후에 라바울의 마왕이라 평가된 니지자와가 있었는데, 니시자와가 일본으로 귀환한지 한달만에 테츠조가 부임하였기 때문에 연합군은 우세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희생자를 치뤄야 했다.

그의 주력 기체는 종전까지도 제로센이었지만 악전고투 끝에도 끝끝내 살아남았고 전쟁 말 전황이 악화되자 본토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온 후에는 다시 사카이처럼 병아리들을 훈련시키게 되었는데, 제자들에겐 "여러분의 훈련 가능 시간은 적습니다. 적기를 격추하려 욕심부리기보단 제 비행술을 배우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주의를 놓치지 마십시오. 적을 먼저 찾아내고 적이 사선에 들어오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면 됩니다. 그러면 격추될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대공포화는 어쩔 수 없습니다. 피할 도리가 없으니까 그땐 깨끗히 포기하십시오." 라고 하거나 기후가 좋지 않아 비행을 포기하고 돌아온 제자에게 "잘했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는 등 너그럽고 인자한 교관으로 받아들여졌다.

2.2. 전쟁 이후

종전 후엔 GHQ의 전범장교 색출에 두 번 불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이 때 공직추방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탓에 일반기업과 공장등에서도 GHQ의 눈치를 보느라 그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 동안은 '진실은 이렇다'라는 반군국주의 라디오에 불려가 선전을 요구받았으며[6], 이후 낙향해서 일본개척공사에 입사, 자신의 뉴스를 보고 연심을 품었던 여인과 결혼했지만 3일만에 홋카이도 개척단으로 떠났다. 그러나 심장병으로 1년 반만에 돌아왔고 이와모토는 이때 부인의 얼굴을 잊었다고. 전후엔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에 찌들어 살아서 가족들을 곤란하게 했다.
그렇지만 정의감 강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아서 이웃 결핵 환자의 시신을 전염이 무서워 아무도 건드리지 않자 콧구멍에 솜을끼고 혼자서 장사를 지내주었다. 손재주가 좋아 두 아이의 장난감을 손수 만들어줄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전까지는 토목, 농사, 양계, 과자노점등의 일을 하였으며, GHQ 철수 이후엔 간신히 방직공장에 입사하였지만 1년도 안되서 충수염을 장염으로 오진받고 대수술을 수술한 뒤 입원 중 허리통증으로 마취도 하지 않은채 늑골을 제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술을 받았고, 패혈증 발병으로 두명의 어린 자식을 남겨둔 채 1955년 38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병상에서 했던 마지막 말은 '건강해지면 다시 비행기에 타고싶다(元気になったらまた飛行機に乗りたい)'였다.

3. 파일럿으로써 기행 수준의 기록들


  • 그의 시력은 1.0으로 다른 에이스 파일럿들에 비해선 비교적 나쁜 축에 속했는데, 그는 이에 대해 "적기는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육감을 찍은 게 틀림없다 실제로 프로펠러에 반사된 빛이나, 무전기에 적의 전파가 간섭되어 생기는 주파수 끊김 등으로 적기를 찾아냈던걸 보면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 듯.

  • 야마토 자폭특공으로 유명한 45년의 키쿠스이 작전까지도 그가 탔던 제로센은 내구, 무장 등 개량이 된 당시 주력 제로센인 52형이 아니라 전쟁 초기의 22형 제로센이었다. 대체 어느 별에서 오셨어요?

  • 라바울에서 활약할 당시, 떡장갑을 둘둘 두른 미군의 폭격기들을 격추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지연신관이 장착된 3호 폭탄을 싣고 타이머를 맞춘 후 적기를 추월한 다음 투하해 적기의 기수를 박살내는 기묘한 전술도 종종 쓰곤 했다. 후배들에게도 가르쳐주려 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포기했다고. 이쯤 가면 정말로 종족이 의심간다

  •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이 개시되기 전날에는 미해군의 기동부대가 몰려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층부에 의해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단독으로 야간 강행정찰에 투입되어 적의 레이더 방공망을 뿌리치고 상륙정에 총격까지 가한 뒤 무사귀환했다. 문제는, 술을 마시던 도중 긴급히 명령을 받은터라 출격 당시 만취상태였다는 모양(…).

  • 전쟁 후반이 되면서 일본 과학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일본군의 무전기도 성능이 대폭 상향되었는데, 무전기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일본 전투기들의 가장 큰 약점인 붐앤줌[7]을 카운터치기 위해 무전기를 활용, 적기가 붐앤줌을 시작하면 편대원들을 저공으로 내려보낸 후 위아래에서 적을 포위해 격추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태평양 전쟁 내내 붐앤줌에 고통받던 일해항이 그걸 드디어 카운터치게 됐다는 소리다 단 발전된 무전기도 성능이 영 아니었는지 편대원들이 조금만 떨어져도 잘 먹히지 않아 자주 쓰지는 못했다.

  • 그의 격추기록은 에이스답게 정확한 기록이 많았는데 4월 28일. 아군의 도움 없이 제로센을 탑승하고 B-29를 격추했으나 충돌로 날개가 손상되었다고 기록을 남겼는데 진짜로 미군 기록에 해당 장소에서 당시 적기와 충돌했고 격추된 B-29가 한기 있었다.

  • 제로센을 타고 적에게 난도질 당한 뒤 생환한 적도 있다. 일본군이 야마토 정신을 그렇게 강조한 이유는 제로센의 골조가 사이코 프레임이라서 그렇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좋은 사나이였다.

4. 기타


80기라는 격추수는 독일의 에이스들에 비해 밀려보이지만, 그가 탄 것은 엄연히 제로센이다. 그걸 타고 60기 넘게 적을 격추했고 종전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저 산호해 해전의 기록과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기록 중 F6F 헬캣과 4:1로 싸워 이긴 기록 등 공식으로 인정받은 기록에 뉴타입 수준의 기록들이 있으니 말 다한 셈. 게다가 80기의 격추수가 사실 1944년 6월에 집계된 기록인 점 등을 보면 실제 그의 격추수는 에이노 일마리 유틸라이넨의 94기를 넘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타 일본군 에이스들처럼 자살돌격 카미카제에 대해선 아주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죽으면 끝이다. 전투기에 오르는 건 몇번이나 날아올라 적기를 떨어트리기 위해서다. 난 죽어도 이 전투기에서 싸우다 죽는다.'라며 강하게 카미카제를 비판했다.
또한 부하들과 정비병들은 물론 상관에게까지 신뢰받는 인물이었다. 사카이 사부로와는 다르다 특히 탑승자와 정비병은 일체라는 '탑정일체'를 늘 강조했으며 정비병들을 늘 우대해주었다. 전투에 관해 그가 남긴 말 중에 "적이 나보다 몇배 많든 무섭지 않지만 엔진 트러블 앞에선 어쩔 수 없다."라는 말도 있다. [8] 그 덕이었는지 전쟁 말기 정비불량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던 와중에도 그는 정비불량으로 사고를 겪은 적이 없었다. 여러모로 사람됨이 우수한 인물.

평소에는 조용했고 체격도 왜소해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아저씨였지만, 전투기에만 타면 갑자기 생기가 넘치는 성격으로 바뀌고 혹자는 살기마저 느꼈다고 한다. 만화에 나오는 운전대 잡으면 사람이 바뀌는 캐릭터의 원조

여담으로 이런 기묘한 설도 있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그가 근무했던 항공모함 셋이 다 모 게임에서 빈유로 묘사된다. 사카이도 그렇고 이분들 참 만화처럼 사셨다 사람됨은 우수한데 성적 취향이 안 우수했던 것 같다?

5. 대중매체의 이와모토 테츠조

  • 스트라이크 위치스의 등장인물중 하나인 카모토 테츠코의 모티브가 바로 이와모토이다. 유명한 파일럿이라면 그 누구도 팬티모에선을 피할 수 없다! 실제 활약상과 같이 스트라이크 위치스 세계관 내에서 "후소 최강의 마녀" 타이틀을 가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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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기 격추에 1기 격추 추정이기에 5기를 격추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이 경우 첫 출격에서 에이스라는 희귀한 사례가 된다.
  • [2] 후일 그는 이때의 맹훈련이 후일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 [3] 당시 급강하 폭격기의 편대를 이끈 요크타운 폭격대 소속의 월레스 쇼트 대위는 '급강하 개시, 급강하 중, 그리고 끝났을 때마다 계속 제로센이 우리를 막아섰다.'라고 증언했다.
  • [4] 글로 써놓으니 한줄로 끝이지만, 실제로 이걸 하려면 일정 이상 가속도가 붙으면 박살나는, 기골 강도가 약한 초기형 제로센으로 한계가속도를 넘지 않고 칼같이 속도를 조절하며 급강하 폭격기를 쫓아가 방해했다는 이야기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는 어지간한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수준.
  • [5] 예상 외의 큰 손실에 이와모토는 '지금껏 이렇게 많은 전우를 한번에 잃은 적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간 나중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
  • [6] 이와모토는 군국주의자는 절대 아니었지만 파일럿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군인상이었기에 불명예스러운 딱지와 더불어 꼭두각시처럼 휘둘리는 것은 치욕이었다.
  • [7] 급강하하며 일격이탈, 이후 이때 얻은 가속도를 바탕으로 급상승하여 다시 일격이탈을 반복하는 전투 기술. 일본 해군항공대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은 중기형까지는 기골강도가 약하고 무게가 가벼워 이 붐앤줌에 당대 주력 전투기들 중에선 상당히 취약했다. 후기형에선 기골 강도가 강화되어 좀 나아졌지만.
  • [8] 「5倍や10倍の敵など恐くはない。ただし、エンジントラブルだけはどうしようも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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