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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열

last modified: 2015-07-17 19:44:32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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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윤열(李允烈)
출생 1984년 11월 20일
국적/출신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구미시
키/몸무게 177cm, 65kg
혈액형 B형
가족 1남 1녀 중 둘째
종족 테란
ID NaDa
데뷔 2001년 Game-i 입단[1][2]
소속 IS(2001~2002.12)
KTF 매직엔스(2002.12~2003.12.23)
위메이드 폭스(2003.12.24 ~ 2010.9.16)
oGs(2010.9.17~2012.1.15)
compLexity Gaming(2012.1.16~2012.6.20)
Azubu[3]
별명 천재 테란, 머신, 테란의 황태자,
토네이도 테란, 수달, , 벼닉스,
살아있는 전설, 불사조, 겨울의 사나이,
발레리안 멩스크
SNS 트위터




온게임넷스타리그 4대(파나소닉), 7대(아이옵스), 10대(신한은행 시즌 2) 우승자[4]
골든마우스금뱃지를 모두 거머쥔 최초의 프로게이머[5]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고 가장 많은 승리를 한 스타크래프트와 e-sport의 전설[6].
역대테란다승 1위

Contents

1. 주요 경력
2. 프로필
3. 상세
3.1. 소개
3.2. 플레이 스타일
3.3. 등장
3.4. 전성기
3.5. 쇠퇴기
3.6. 다른 선수들과 전적 관계
3.7. 관광
3.8. 기타
4. 주요 활동/스타크래프트1
4.1. 2009년 프로 리그
4.2. 2010년 프로 리그
4.3. 2010년 개인 리그
4.4. 기타
5. 주요활동/스타크래프트2
6. 스타크래프트2 전향
6.1. 은퇴설
6.2. IEM 시범경기 뜬금 GG사건
6.3. 스타2 전향
6.4. KeSPA의 전격적인 은퇴처리
7. 은퇴 후
8. 기타
8.1. 파나소닉배 엄재경 사건
8.2. 안티
8.3. 연봉 및 인센티브 논란
8.4. KPGA 논란
8.5. 스타 골든벨
8.6. 벼친소
8.7. 출발 드림팀
8.8. 임빠
8.9.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
8.10. 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8.11. 이윤열의 별명 혹은 키워드


1. 주요 경력








2001년 매직스테이션배 네트워크 게임대회 우승 (2:0 문규준)
2001년 제2회 세계 청소년 문화축제 스타크래프트 게임대회 1위
2001년 iTV 한게임배 서바이벌 프로구단 리그 1위
2001년 한국통신 메가패스배 서바이벌 프로리그 1위
2002년 iTV 랭킹전 3차리그 우승 (VS임요환 3:1)
2002년 2002 KPGA TOUR 1차리그 8강
2002년 무한종족최강전 승리 (VS장진남 3:2)
2002년 무한종족최강전 승리 (VS욤 패트리 3:1)
2002년 무한종족최강전 승리 (VS성학승 3:1)
2002년 GhemTV 1차 스타리그 3위 (VS전태규 2:0)
2002년 무한종족최강전 패배 (VS이재훈 0:3)
2002년 Reebok 2002 KPGA TOUR 2차리그 (3:2 홍진호)
2002년 무한종족최강전 승리 (VS강도경 3:1)
2002년 WCG 2002 최종예선 8강 (VS한웅렬 1:2)
2002년 iTV 랭킹전 4차리그 우승 (VS변길섭 3:0)
2002년 GhemTV 2차 스타리그 8강
2002년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리그 우승 (VS박정석 3:0)


2003년 Stout/Baskin Robbins 2002 KPGA TOUR 4차리그 우승 (VS조용호 3:2)
2003년 KTF BIGI 4대천왕전 준우승 (1:2 임요환)
2003년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3:0 조용호)
2003년 KTEC배 2002 KPGA 위너스 챔피언쉽 3위 (VS박신영 3:1) [8]
2003년 GhemTV 3차 스타리그 우승 (3:0 강도경)
2003년 벼룩시장 FindAll배 GhemTV 챌린저 오픈 준우승 (0:3 홍진호)
2003년 Ting배 KBC 파워게임쇼 3위
2003년 여수 사이버 게임체전 4대천왕전 준우승 (0:1 홍진호)
2003년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2003년 핫브레이크배 온게임넷 마스터즈 우승 (3:1 한웅렬)
2003년 KBC 파워게임쇼 Ting배 3위 (VS박경락 2:0) [9]
2003년 Stout MSL 준우승 (0:3 강민)[10]
2003년 Mycube배 스타리그 16강
2003년 TG Trigem MSL 3위 (VS최연성 1:3)
2003년 2003 대한민국 게임대상 우수 게이머상

2004년 KTF Bigi 프리미어 리그 우승 (VS서지훈 2:0)
2004년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3 우승 (3:1 임요환)[11]
2004년 NHN 한게임배 스타리그 8강
2004년 iTV 7차 랭킹전
2004년 Hanafos Cengame MSL 준우승 (VS최연성 2:3)
2004년 질레트 스타리그 8강 (VS박정석 1:2)
2004년 스프리스 MSL 패자조 2회차
2004년 EVER 2004 스타리그 8강 (VS최연성 1:2)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 우승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2004년 KTF Fimm 프리미어 2004 리그 챔피언쉽 우승 (VS박성준 0:2)


2005년 KT-KTF 프리미어 2004 4위 (VS홍진호 0:2)
2005년 당신은 골프왕 MSL 준우승 (VS박태민 2:4)[12]
2005년 아이옵스 스타리그 우승 (VS박성준 3:0)
2005년 EVER 2005 스타리그 16강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 리그 1라운드 우승 (VS박성준 3:1)
2005년 UZOO MSL 패자조 3회차 (VS홍진호 1:2)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 리그 2라운드 8강 (VS임요환 1:2)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 리그 준우승 (2:3 홍진호)
2005년 CKCG 2005 스타크래프트 부문 준우승 (VS최연성 1:2)
2005년 블리즈컨 2005 스타크래프트 부문 3위 (VS박정석 0:2)

2006년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서울투어 우승 (VS김정민 2:0)
2006년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부산투어 준우승 (VS마조작 0:2)
2006년 WWI 2006 스타크래프트 부문 4강
2006년 WCG 2006 예선 4강 (VS박명수 0:2)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
2006년 WEF 2006 스타크래프트 부문 준우승 (마조작 0:2)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2 16강
2006년 IEF 2006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 (VS최연성 2:1)
2006년 제2회 CJ 슈퍼파이트 우승 (VS박정석 3:0)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우승 (3:2 오영종)
2006년 제3회 CJ 슈퍼파이트 준우승 (VS마조작 1:3)
2006년 E-Sport 진흥상(우수 프로게이머상) 수상[13][14]
2006년 2006 대한민국 게이대상#


2007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통산 최초 공식전 300승 달성 (vs 이학주)부상으로 크리스탈 마우스를 받았다.
2007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준우승 (VS마조작 1:3)
2007년 신한은행 마스터즈 우승 (VS마조작 3:1)
2007년 2006 대한민국 e-SPORTS 대상 테란 최우수선수상
2007년 곰TV MSL 시즌2 32강
2007년 2007 WWI 4강 (VS김택용 0:2)
2007년 Daum 스타리그 16강
2007년 IEF 2007 16강
2007년 WCG 2007 한국예선 16강 (VS염보성 0:2)
2007년 곰TV MSL 시즌3 32강
2007년 EVER 스타리그 2007 16강


2008년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2008년 곰TV MSL 시즌4 8강 (VS박성균 1:3)
2008년 곰티비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64강 (VS최윤선 0:2)
2008년 아레나 MSL 16강 (VS진영수)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6강
2008년 WCG 2008 한국 대표 선발전 24강 (VS손찬웅 0:2)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 36강 2차전 (VS정명훈 1:2)
2008년 블리즈컨 2008 스타크래프트 부문 준우승 (VS마조작 0:2)
2008년 곰TV 클래식 시즌2 64강 (VS조병세 1:2)
2008년 클럽데이 온라인 MSL 8강 (VS윤용태 0:3)



2009년 로스트사가 MSL 8강 (VS허영무 2:3)
2009년 곰TV 클래식 시즌3 64강 (VS김정훈 1:2)
2009년 아발론 MSL 32강
2009년 e스타즈 서울 2009 스타크래프트 헤리티지 준우승 (VS마조작 1:2)
2009년 블리즈컨 2009 스타크래프트 부문 4위 (VS마조작 0:2)
2009년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우승 (VS홍진호 3:1)

2010년 프로리그 통산 12번째로 100승 달성(vs 신재욱)[15]
(이상 스타크래프트:브루드 워)
2010년 Sony Ericsson GSL 오픈 시즌 2 8강
2010년 게인워드배 토너먼트 8강


2011년 Sony Ericsson GSL Jan. 8강
2011년 2세대 인텔 코어 GSL Mar. 8강
2011년 LG 시네마 3D GSL 월드 챔피언쉽 서울 16강
2011년 TSL3 16강
2011년 LG 시네마 3D GSL May. 4강
2011년 MLG Raleigh 4위
2011년 LG 시네마 3D 슈퍼 토너먼트 16강
2011년 펩시 GSL July. 16강
2011년 펩시 GSL Aug. 16강
2011년 Sony Ericsson GSL Oct. 32강
2011년 Sony Ericsson GSL Nov. 32강


2012년 HOT6 GSL Season 1 32강
2012년 HOT6 GSL Season 2 32강

2. 프로필

주종족은 테란.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활동할 때에는 위메이드 폭스 소속이었으며 안기효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하면서 전상욱에게 물려줬다. oGs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1월 계약만료 후 2012년 2월 16일 북미 게임단인 compLexity Gaming에 입단했다.[16].

2010년 9월 이영호 선수가 양대리그 동시우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7년 7개월 동안 유일한 양대리그 동시 우승자였으며 양대 동시 결승 진출 횟수만 2회. 지금은 사라진 iTV 스타리그 뿐만 아니라 겜TV 스타리그까지 우승하여 WCG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6월 19일 컴플렉시티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은퇴 소식을 알렸다. 사대천왕이나 서지훈급의 레전드 게이머들은 모두 소속팀에서 은퇴식을 치룬 반면, 나머지 4대천왕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과 달리 친정팀이 공중분해되어 이윤열을 송별할 단체가 없는 상황이어서 은퇴식이 아예 열리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2012년 7월 3일 tving 스타리그 2012 레전드매치 이후 온게임넷에서 은퇴식을 약소하게 치뤄주었다.[17] 앞으로 S.CULTURE라는 의류 쇼핑몰에서 모델을 하는 것과, 향후 e-sports 게임단에서 'MJ'라는 팀의 단장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종 목표는 CEO라고. 그리고 제대 후 여자친구와의 결혼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코흘리개 어린이 시절에서 어른이 되어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올드팬들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까.

은퇴 후에 MJ Team의 단장을 맡기로 했으나 취소되었고, 군입대 전에 아프리카TV에서 스타1 방송을 하며 조용히 보내는가 싶다가 Azubu의 스타크래프트2 팀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GSL 시상식에서 핫식스와 함께 공로상을 받으며, "한국 프로게이머들에게도 싸이강남스타일과 같은 한류 스타로써의 잠재력이 있다. 부디 게이머들이 자신의 모든 경기를 소중히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3. 상세

3.1. 소개

임요환황제라면 이윤열은 천재다. 임요환-이윤열-최연성으로 이어지는 3대 테란 본좌라인의 중견이며, 임요환 등장 이후 혜성같이 나타나, 뛰어난 컨트롤과 빈틈없는 게임운영으로 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강의 자리에 등극했다. 실제로, 전성기때는 별 연습을 안해도 마우스감만 살아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타판에서 홍진호와 더불어 천재로 꼽힌다. 특히나 그 당시 주로 쓰이던 맵인 '로스트 템플'에서 무적에 가까운 승률을 보였으며, '로스트 템플에서 앞마당 먹은 이윤열을 이길 방법은 없다'라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심지어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라는 말은 e스포츠계에서 하나의 격언처럼 쓰인다.

전성기 시절 벌쳐로 신나게 흔들어서 상대가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어 놓은 뒤 쌓아놓은 무시무시한 숫자의 탱크부대로 상대를 말 그대로 휩쓸어 버려서 토네이도 테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다른 별명은 수달. 이윤열이 핸드폰광고를 찍었는데 그 핸드폰 모양이 조개(...)처럼 생긴데다가 스샷중 핸드폰을 가슴에 가져간 모양이 보노보노처럼 보여서 그렇다.(그런데 보노보노는 해달이다.) 그래서 이윤열이 패배하면 태조 왕건에서 견훤이 "수달이가 죽었어!"라고 외치는 동영상이 가끔 출몰했다.

포모스에서 양대 방송사 해설인 엄재경이승원을 모아놓고 인터뷰를 가졌는데, '모든 면에서 봤을 때 가장 강력한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에 두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이윤열을 지명하기도 했다. 특히 이승원 해설은 초기 geMBC 시절부터 MBC게임과 역사를 함께한 이윤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로스트사가 MSL 8강에서는 5경기에서 이윤열의 패색이 짙어지자 이승원 해설답지 않다는 말을 들을정도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윤열이 GSL에서 4강에 진출하자 결승에 진출하면 피켓을 들고 응원을 가겠다는 트위터를 남기기도 했다.

첫 등장부터 실력은 대단히 뛰어난 편이었으나 당시로써는 아직 어린 나이[18]였기 때문인지 마인드컨트롤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다소 있었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말을 할때 어버버하면서 수줍어하는 모습은 최강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IS부터 팬텍 EX 시절까지 이윤열은 단 한 번도 팀의 주장 역할을 맡은 적이 없다. 수년간 소년가장역을 맡았음에도.

당시에 임요환보다 비쥬얼이 딸렸다는 점(안티들 사이에서는 별명이 보쳉[19]테란이었다.)도 있고 방송리그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임요환 이후로 '최강자의 교체'였기 때문에 각종 팬들은(특히 임빠) 물론 관계자들에게까지 욕을 얻어먹을 정도였다.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방송사 게시판이 '이윤열을 죽여버리고 싶다' '이윤열의 재미없는 플레이가 스타리그를 망치고 있다'는 글로 도배되었을 지경이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이때 이윤열을 까던 레퍼토리는 이후에 최연성마... 그리고 이영호가 듣던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이기기 위한 플레이만 한다' '기계적이다' '최강은 이윤열일지 몰라도 최고는 임요환이다' '감동은 없다' 등등, 이 때문인지 이윤열은 방송에서 되도 않는 빌드를 괜히 시도하다 패한다던가 하는 일도 있었다.[20]

한때 천식으로 군면제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고 본인이 인터뷰 때 군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언급하고 있으며 스포츠Q 인터뷰에서는 공군 입대를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었다. 그러나 스2 전향으로 공군은 무리가 되었고, 상근으로 근무할 예정이라고 한다.

3.2. 플레이 스타일

스타일은 전성기를 기준으로 대체적으로 말 그대로 프리스타일. 천재 그 자체였다. 기본기가 워낙 뛰어났는데 2003~2004년에 이미 400에 가까운 APM과 240 전후의 EAPM을 가지고 있었다.[21] 이로 인해 컨트롤도 잘했고 물량도 엄청났으며, 다전제 판짜기에도 능했다. 타이밍 감각에도 뛰어났기에 목동저그를 무너뜨릴 수 있었고 프로토스전에서도 대단히 강력했다. 게다가 날빌까지 적절하게 섞어 쓸 줄 아는 게이머였기에 2007년 초반까지 정상급 게이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특히, 이윤열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바로 독창적인 병력 운용에 있었다. 특유의 손빠르기가 따라잡힌 순간에도 다른 테란과 차이를 보인 것은 바로 이윤열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타이밍과 독특한 전술적 능력에 기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외에 선구자적인 측면이라면 자원최적화가 있다. 이윤열이 최적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이 때문인데, 아마추어로 이름을 날리던 1.07 시절부터 이미 앞마당 확보 이후 6팩토리 자원최적화로 당시로써는 혁명적이게도 자원을 전혀 남기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어느정도는 그 자신의 높은 APM에 기반한 퍼포먼스였음은 감안해야하지만.

반면 전성기가 지난 후에는 초반 빌드에 있어서는 약점을 보였다. 먼저 삼신전 시절 박태민에게는 특유의 판짜기에 고스란히 말려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유의 전투력으로 전적에서는 5:5를 이루었으나 패러다임에서는 밀렸다고 볼 수 있다.[22] 삼신전 이후에는 지나친 SK테란 고집이 슬럼프의 또다른 이유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또한 토스전에서도 수비형으로 대세가 넘어갔음에도 타이밍 러쉬를 고집하는 바람에 2005년 이후 토스전이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서도 기묘한 테테전 역전승을 자주 거두기는 했으나 초반 빌드싸움에서는 매우 밀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러한 이윤열의 약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3.3. 등장

경북 구미 출신으로 본래 초등학교 시절(3학년 부터 시작)에는 정구 선수였다. 집안이 가난해서 다섯 식구가 한 지붕아래 산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정구 선수가 된 이유도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에만 올라가면 떠는 바람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최고 성적은 구미시에서 대회에서 거둔 3위. 그러다 중학교 2학년때 천식이 발견되어 더 이상 운동을 하면 위험하다는 말에 운동을 포기하고, 친구와 함께 PC방에 가서 만난 스타크래프트가 이윤열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스타크래프트에 재미를 붙인 이윤열은 곧 구미를 제패했고,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여러 대회에 참가한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고, 대부분의 대회에서 1,2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 때 이윤열이 만난 선수가 게임아이에서 우라싸야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소령이라는 게이머로, 리플레이가 없던 시절 이윤열의 스승이 되었다.

방송 경기 데뷔는 2000년도 iTV 고수를 이겨라에 출연해 최인규를 격파한 것으로, 이 때 이윤열은 나이스가이라는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기서 승리한 날 길드채널이 이윤열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이 때 방송경기 승리의 짜릿함을 느꼈다고 한다.

실력이 날로 성장한 이윤열은 충남대 서버를 제패하고 게임아이로 채널을 옮겼고, 여기서 상위 랭크에 오르며 게임아이 팀에 입단 제의를 받게 된다. 이윤열은 온라인에서 펼쳐진 입단 테스트에서 전승을 했고, 서울로 올라가 PC방에서 홍진호와 김종성을 이기며 송호창 감독과 계약을 했다. 2001년, 이윤열은 게임아이 주장원전을 포함해 각종 군소대회에 참여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윤열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2년 ghemBC(現 MBC게임)의 종족최강전이었다. 기본적으로 5전 3선제로 진행되는 종족최강전에서 이윤열은 무시무시한 승률을 거두었고 이때의 풍부한 5전제 경험은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에서도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이때 까이던 소스 중 하나가 이재훈, 주진철에게 당한 0:3 패배였지만 나중에는 다 갚아버렸다.

이 일로 MBC게임에 애정이 깊어졌는지 종족최강전에 출연하던 시절에는 스타리그의 챌린지리그와 종족최강전의 일정이 겹치자 '나를 키워준 겜비씨를 택하겠다'며 예선에 참가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 시절에는 방송사들이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보다는 자사 리그를 띄우려는 경향이 있어서 스케줄에 있어서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23] MSL 6회 연속 4강 진출과 센게임과 당신은골프왕MSL 결승전에서의 수많은 명승부 등, '당대 최강'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MBC게임을 만들어낸 거나 다름 없는 게이머. 이윤열이 없었다면 싱겁게 끝나버려 평가절하되었을 게이머도 많았을 것이다.

3.4. 전성기

전성기는 커리어상으로 볼때 3차례나 된다. KPGA, OSL, 겜TV 스타리그를 우승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던 시기를 제 1기, 2004~2005년의 삼신전을 제 2기, 그리고 신한은행 스타리그에서 2연속 결승에 진출, 신한은행 마스터즈 우승까지를 제 3기로 말한다.

KPGA 2차리그에서는 홍진호에게 0:2로 밀리다 3:2로 리버스 스윕하며 역전 우승, 3차 리그에서는 당시 임요환을 꺾을 정도의 실력자였던 박정석을 3:0으로 압승했다. 4차 리그에서의 조용호는 목동저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임요환을 다전제에서 꺾었고 신예 테란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리며 4강까지 진출한 김현진을 꺾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윤열은 1경기 아케론에서 벙커링, 3경기는 치즈러쉬, 5경기는 땡스팀이라는 극단적인 수로 3:2 우승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결승에서 2, 4경기는 중후반 운영이었는데 다 져서 파나소닉 OSL에서는 조용호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파나소닉 결승전에서 이윤열이 다른 방법으로 목동저그를 격파하는 해법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KPGA 4차리그 결승에서 날빌 위주로 준비했다면, 파나소닉 결승에서 이윤열이 가지고 나온 해법은 '타이밍'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선수들과 해설진이 저그맵 아방가르드에서 조용호의 우세를 점쳤는데 이윤열은 소수의 병력으로 우선 진출한 뒤 조용호의 추가 가스 멀티를 미리 차단하여 목동저그를 완전히 격파해버렸고 3:0으로 압승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GhemTV 3차 스타리그에서 강도경을 3:0으로 완파하며 그랜드슬램이라는 업적을 이룬다.

첫 전성기는 강민이 등장하면서 끝났다고는 하나, 끝났음에도 여전히 톱클래스의 승률을 유지하는 강력한 테란으로써 오랜기간 자리매김했다.[24] MSL로 개편된 후에도 스타우트배에서 전태규에게 0:2로 밀리다 역스윕을 하며 결승까지 올라갔고, TG삼보에서는 패자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전승준을 달성하기 위해 달리던 홍진호에게 패했다. 이윤열을 최강자 자리에서 완전히 끌어낸 것은 최연성이었다. 센게임배 MSL에서 괴수대격전, 머머전이라고 불리우는 당시 최고 수준의 테테전에서 최연성은 이윤열을 3:2로 격파하고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이윤열은 이 결승 후에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탓인지 눈물을 보였다.[25]

그러다 2005년 초, 최연성이 슬럼프에 빠지자 이때를 계기로 이윤열, 박태민, 박성준의 이른바 삼신전[26]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때 당시 열리던 개인리그는 2차 KT- KTF 프리미어 리그, IOPS배 스타리그, 당신은 골프왕배 MSL이었는데 이들은 이 리그들을 사이좋게 갈라먹으며 3파전의 양상을 띈다. 이윤열은 박태민을 준결승에서 리버스 스윕한 후 박성준을 아이옵스배에서 3:0으로 제압했으나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는 박태민에게 2:4로 패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박성준이 박태민을 제압했다. 이윤열은 2차 프리미어 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다. 그 외에도 MBC무비스배 팀리그와 2004 SKY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 모두 결승전에 오르며 양대 결승+양대 팀리그 결승이라는 경악스러운 기록을 세우나 아이옵스 스타리그만을 우승하는 것에 그친다.

아이옵스 스타리그 우승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까지 약 1년 반 동안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는데, 이 시기 양대리그에서 모두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지면서 3대 테란에서 밀려났다.(2005년 3대 테란은 임요환, 최연성, 이병민) 그 부진의 원인으로는 2005년 7월 18일에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것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 후기 프로리그와 2006 전기 프로리그에서 연속으로 다승왕을 땄다. 최악의 슬럼프 때 프로리그 다승왕이라니 흠좀무.

이후 2006년에는 오영종과의 결승에서 승리하고 골든마우스까지 최초로 수상하며 스타 프로게이머 사상 가장 영예로운 게이머가 되지만 이윤열이 결승까지 진출하며 만난 상대들의 당시 테란전 성적이 모두 30% 이하라 희대의 천운 우승이라는 폄하를 받기도 했다. 한때 이것 때문에 '천운열', '이운열'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도 결승전이 접전을 보여준 명경기라 어느 정도 인정은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결승전에서 테란이 프로토스에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여서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특히 5경기는 이윤열 클래식이라 하여 드랍쉽 견제 이후에 들어가는 타이밍 러쉬가 성공한 경기인지라 명경기로 꼽는다. 역대 명경기하면 한 번쯤은 나올 정도.(골든마우스 수상의 상징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27] 오영종은 원팩 원스타를 잘 막았음에도 상대 체제를 파악한 이윤열은 엔베와 터렛을 생략한 5팩 타이밍 러쉬로 한방에 끝내버린다. 무엇보다 한방의 교전에서 탱크는 세마리씩 드라군 밀집지역을 포격하고, 벌쳐로는 탱크에 달라붙는 질럿 제거가 완벽했다. 시종일관 오영종 유리를 외치다가 벙쪄버린 해설진이 백미. 이후에 이윤열은 이 대회를 회고하며 자신의 최고의 대회라고 하고, 노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골든마우스가 만들어졌을 때, 수상자는 박성준, 최연성, 임요환 중에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 양대 PC방까지 떨어진 이윤열이 탈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승에 올라오는 과정 자체는 천운이라 까이긴 했지만 결국 결승에서 명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이 영광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수상소감은 큰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얼마 후 같은 맵 타우크로스에서 박영민에게 패해서 기분이 묘했다고.(...)

이윤열은 바로 다음 리그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에서 임요환 이후 사상 최초로 스타리그 우승자 징크스를 씹고 결승에 진출 마재윤을 만나는데, 8강 박명수, 24강 박영민을 제외하면 결승에 갈 때까지 테란만 만났다. 이때는 테란전은 최고 수준이었으나 토스전은 5할이 채 안되는 승률이어서 결승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8강에서 박명수를 잡고 4강에 갔다. 하지만 테란맵이 많아 비난받아야 했다. 롱기누스 2, 리버스 템플 때문. 이 시기 이윤열은 12월 랭킹 사건으로 인해 철저하게 '구세주' 마모씨를 상대하는 '악역'으로 스토리가 짜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4강에 오른 변형태한동욱 역시 저그를 무너뜨리고 왔음에도 다른 테란들이 받은 욕의 몇 배를 더 얻어먹어야 했다. 물론 스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달빡이들과 마빡이들이 싸웠다.

마재윤에게 질 때는 경기 전 팬카페에 쓴 일기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라고 했다가 패배하여, 이 시합은 일명 벼베기 관광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윤열의 별명으로 가 쓰이게 되었다.[28] 단순히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4경기 막판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 스갤러들은 이를 "벼 세레모니"라 불렀고 여기에서 라는 별명이 확정.

이윤열 본인도 '가장 기분 좋지 않은 결승전'으로 꼽는데, 경기 전에 결승에 벌써 10번 오르는 선수가 인터뷰에서 "저...저는 전설로 남고 싶슾셒슾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29] 경기 내용도 발렸고. 맵이 1,5경기가 롱기누스, 2경기가 네오 알카노이드에 3경기는 리버스 템플이었는데 패해 사상 최악의 결승전이 되고 말았다. 특히 3경기에서는 결승전인데 커맨드가 먹히며 "이제는 앞마당 먹힌 이윤열이네여"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2주 후에 이윤열은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새로운 테테전 최강자로 떠오르던 변형태를 꺾고 결국 마모씨에게서 승리를 거두면서 3차 전성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마재윤이 3.3 후로 맛이 갔다는 평도 오가지만[30] 저그전 스페셜리스트인 한동욱을 이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당시 마서스가 쓰던 장판파를 후반 운영으로는 막을 수 없다 생각한 이윤열은 즉흥적인 빌드 위주로 경기를 준비해와 승리한다. 이 때가 마지막 전성기라 볼 수 있다. 마재윤이 계속되는 테란맵 때문에, 같은 패턴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이윤열의 즉흥적인 빌드 위주 판짜기는 KPGA 4차에서도 이미 조용호를 상대로 등장한 바 있는데, 신한 마스터즈는 일종의 데자뷰였다. '무난히 흘러가면 이긴다'는 생각에 조용호가 목동저그에 취했다가 날빌에 패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재윤도 자신이 만들어낸 승리 공식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윤열의 찌르기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3.5. 쇠퇴기

이후로 2연속 그랜드 광탈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이후의 곰TV MSL 시즌4에서는 광탈을 피하기 위해 조지명식에서 탑시드였던 후배 박성균에게 첫 진출한 신인을 자신의 상대로 지명하도록 사주했다. 다만 이걸 가지고 그렇게 까이지는 않았는데 우선 올드들이 대대로 몰락하던 시기이다보니 이윤열을 응원하는 사람이 늘었던 것도 있으며, 2번이나 광탈을 하다보니 이제 좀 올라가야지!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후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박성균에게 4:0으로 처참한 관광을 당했다. MSL 8강은 5판 3선승제라서 3:0 이상이 불가능 하지만 박성균은 3:1로 이윤열을 이기면서 자신이 진 한 경기마저 다 이겨 놓고 마치 일부러 다 꼴아 박는 듯한 양상을 보여 4:0 관광 경기라고 평한다.[31] 이 사건은 이윤열이 경기 당일날 아침에 "1경기 져주는 거 알지?"라고 박성균에게 말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더 유명해졌다.[32]

다음 대회인 아레나 MSL 2008에서는 32강에서 첫경기에서 프영호에 1경기에서 패했지만 패자전에서 이병민, 최종전에서 서경종을 연달아 꺾고 16강 진출. 16강에선 진조작에게 2:1로 패하며 탈락.

다음 대회인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선 김동건을 격파하고 8강에 진출하지만, 8강에서 당시 기세가 올라있던 육룡 중 한 명이었던 윤용태에게 3대 0으로 스윕당해 탈락. 그것도 건물 하나 못 부수고 무기력하게 무너진 관광이었다. 이 때가 어드밴티지 없이 치러진 양대 리그 공식전 다전제에서 처음으로 0:3 패배를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윤열의 스타2 전향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양대리그 다전제 0:3 패배가 되었다.

로스트 사가 MSL에서도 8강에 진출하였으나 8강 상대는 테란전 강자이자 역시 육룡 중 한 명인 허영무. 결국 끝까지 분전했으나 3:2로 패배했다. 하지만 당시 팬들 대다수의 의견은 이윤열이 엄청난 선전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올드게이머가 당시의 허영무에게 단 1경기라도 따낼 수 있겠으며, 당시 테란전 최고의 포스를 뿜어내던 허영무에게 5전제에서 이길 수 있는 테란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예상을 무시하고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1세트를 가져갈 때만 해도 정말 그가 4강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올드팬들이 많았다는 후문. 결국은 허영무의 날빌에 두 세트를 내리 내주고, 날빌로 복수하며 한 세트 따라가지만, 긴장한 탓인지 마지막 세트에서는 초반부터 흔들리며 끝내 무너지고 만다. 패배 후에 눈물을 보이는데, 본 리그 진행중에 꾸준히 인터뷰에서 '우승이 목표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을 정도로 간만에 불타오른 모습이었기에 여러모로 안타까웠던 장면. 이 무렵 프로리그에서도 잠깐이나마 살아난 모습을 보이며 한참동안 쓰였던 별명이 바로 '살아있는 전설'.
안타깝게도 이 허영무와의 분전은 이윤열 최후의 불꽃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프로리그 1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이후에도 프로리그에 간간히 모습을 보이며 아직은 안죽었다는 것을 종종 보여줬지만 스타2 전향으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1에서 이어지던 이윤열의 전설은 끝을 맺었다.

이영호에 밀려 퇴물 취급받던 2008년도에도 양대리그에 모습을 보이고 (2008 에버 스타리그, 클럽데이 MSL등) 택뱅리쌍이라는 세력 구도가 정형화되어가던 2009년에도 개인리그 8강에 드는 등 '본좌라면 마지막까지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퇴장한 좋은 사례가 되겠다. 스타판의 첫 번째 전설인 임요환이 2005 So1스타리그에서 준우승 한 이후 개인리그 수상 경력이 없어서 아쉬운 점과는 분명 대비되는 부분. [33]

3.6. 다른 선수들과 전적 관계

이윤열/라이벌 항목 참조바람.

3.7. 관광

임요환과 더불어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지간해서는 GG를 선언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이래저래 게임 내적으로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 스타판 최고의 관광명소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 자주 회자되는 것들만 추려봐도 아이우 관광, 원기옥 관광[34], 알포인트 밀봉관광, 리템 커맨드 관광, 1킬 관광, 오리지날 관광등 참으로 다양하다. 별도의 항목을 개설해도 될 정도다. 마재윤에게는 결승전에서 커맨드센터까지 먹히는 굴욕을 당했다. 김택용에게는 슈퍼파이트에서 당한 스카웃 관광과,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 김택용의 유닛을 겨우 하나 Kill한 '1킬 관광'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조지명식 에서 김택용과 이윤열이 서로 도발하며 김택용은 다시 스카웃을 뽑아준다고 했고 이윤열은 핵을 날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김택용이 패스트 다템으로 무난하게 승리했다.

물론 이중에는 '이윤열이기 때문에' 관광으로 희화화되는 경우도 많다. 다른 게이머가 했으면 웃음거리가 안되지만 유명 게이머이기 때문에 까가 많아서 이야기가 자주 되는 것. 예를들어 이윤열도 신조작을 상대로 전진배럭으로 1킬 관광을 보낸 적이 있지만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신조작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이제동이 패배할때마다 무소유니 자동문이니 하면서 까이는 거랑 비슷.

하지만 그만큼 버텨서 이긴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대이재훈전(그 유명한 50게이트 사건 때의 일이었다.)이나 신 개마고원에서 한승엽 선수와의 장기전 등이며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서는 탈락 위기에서 이학주, 이재호, 이성은을 상대로 계속해서 믿을 수 없는 역전극을 선보인 바가 있다. 박성균과의 블루스톰 3경기 역시 놀라운 역전극. 이승원 해설이 해설하면서 눈물이 다 날뻔한 경기로 꼽기도 했다. 철의 장막에서 벌어진 팀플에 출전했을 때에는 팀 동료 안기효가 엘리되었는데도 혼자 버티면서 물량을 모은 뒤 타이밍 러쉬로 임요환의 본진을 급습해 초토화시킨 다음 박태민까지 물리치며 희대의 역전극을 만들어냈다. 이 대역전패로 인해 임요환-박태민 팀플은 스갤의 3대 개그팀플 중 하나로 까이고 있다. 철의 장막 항목 참조.

3.8. 기타

다전제에서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게이머로 유명했다. 게임 외적인 멘탈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이머였지만 게임 내적으로는 매우 단단한 선수. 선수 생활 말기 윤용태에게 셧아웃 당하기 전까지 공식전 셧아웃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35] 더욱이 리버스 스윕의 대가로 유명했다. KPGA 2차 결승에서의 홍진호, Stout배 4강에서의 전태규, IOPS배 4강에서의 박태민 등 이윤열을 궁지로 몰아넣고도 최후의 순간까지 나오는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에 밀려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36] 리버스 스윕 3회로 가장 많은 기록을 세운 선수이다.

테막 선수들을 많이 만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나 선수 생활 말기에 진출한 개인리그에서 대진운이 따라준 것으로 인해 이윤열은 대진운빨이다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사실 전성기 시절에는 오히려 대진운이 나쁜 축에 속한 선수였다. 조지명식에서는 기량이 하락한 2007년 말 이후를 제외하면 항상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했던 선수인지라 어지간한 우승자급 선수들을 죄다 불러모으기로 유명했다. 파나소닉 OSL 우승 후에 열린 올림푸스 OSL에서는 임요환, 박경락, 이재훈과 조를 편성했고, IOPS 스타리그 우승과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우승 후에는 최악의 천적이었던 최연성을 자기 조에 데려오기도 했다. 곰TV MSL S2에서는 최연성, 이승훈, 박성준, 곰TV MSL S3에서는 김택용, 최연성, 이영호와 같은 조가 되었다. 구룡쟁패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강민, 차재욱, 마서스와 같은 조가 되었고, 아이스테이션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전상욱, 강민, 서경종과 같은 조였다. 2007 3차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박모씨, 마서스, 고인규와 같은 조가 되었다. 특히 하부리그에서 강민, 마서스와 자주 만나면서 리그 흥행을 염려하는 관계자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투나SG(SG패밀리), 팬택부터 시작해서 위메이드 폭스까지 오랜 기간 동안 소속팀의 유일한 희망이던 선수였지만, 언젠가부턴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지금은 전태양이 소속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이병민박성균, 더 나아가서는 전태양의 스승이다. 박성균 결승전 때는 박성균보다 오히려 그가 장렬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었다. 이병민은 이윤열과 함께 있던 팬택 시절만 해도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KTF 매직엔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했으나, 김철 감독 부임 이후 김철 감독의 미움을 사 소리없이 은퇴해 버렸다. 전태양의 경우는 입단 이후부터 이윤열과 박성균의 집중지도를 받았으나 한동안 꽃을 피우지 못하다가 언젠가부턴 이제동, 송병구를 잡아내고 이영호와 대등한 경기를 할 만큼 선전하고 있다.(하지만...전태양은 아직도 기복이 있는 편.)

04-06년까지는 그야말로 팬택의 등불, 희망으로 원조 소년가장이었다. 스폰서 팬택과 위메이드조차도 결국 이윤열을 보고 스폰을 한 것을 생각하면 스타성과 성적 모두 이윤열에게 달려있었다. 07 후기리그 이후로는 후배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윤열의 스타성이 위메이드의 인수 계기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위메이드 폭스의 모든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2005년에는 팀플+개인전 최소 2경기를 뛰었고, 2006년 전기리그 팬택이 거둔 6승 4패 중에 5승이 이윤열의 하루 2승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가장 유명한 혹사로는 2004 그랜드 파이널+아이옵스 스타리그+2차 프리미어 리그+당신은 골프왕 MSL+MBC 무비스 팀리그를 한 기간에 소화해낸 것이 있다. 참고로 프리미어 리그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결승전에 올랐으며, 프리미어 리그는 4강전. 선수의 혹사란 개념이 없던 시기인데도 송호창이 이윤열을 너무 부려먹는 게 아니냐는 질타를 받을 지경이었다.[37] 단기 혹사로는 박성준, 장기혹사로는 이윤열. 하지만 이후 이제동이영호의 근 몇년 동안의 눈부신 혹사(...)로 인해 소년가장 이윤열은 많이 퇴색되었다.

또한 같은 팀에 있다가 KTF로 이적한 이영호 역시 이윤열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팬들이 있었으나, 이윤열이 직접 "이영호 선수에게는 가르친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영호의 증언에 의하면, 직접적으로는 배운 게 없긴 하지만 어깨너머로 게임 내에서의 센스를 배울 수가 있었다고. 그래도 제자라 부르기엔 좀 모자라긴 하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의 판단력, 빌드 조립으로 상대를 완전 묶어놓고 관광보내는 이영호와 뛰어난 기본기와 동물적 감각으로 게임하는 이윤열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오히려 빌드보다는 병력운용으로 승리를 가져가는 이윤열과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은 박성균. 그나마 이것도 같은 팀이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에 가깝고, 정작 이윤열 본인은 이영호도 박성균도 자신의 제자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팬택 연습생 시절의 이영호가 만든 빌드를 이윤열이 배워 경기에 쓰기도 했고, 박성균에게 토스전을 많이 배운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가르친 게 없는데 제자라는 말을 들으면 본인들이 기분이 나쁠 것이니 자제해달라며 그런 식이라면 자기도 IS 시절에 임요환에게 배운 것이 있으니 임요환의 제자라고.

2008년 6월 14일 프로게이머 최초로 공식-비공식전 합산 1000전을 달성했고 1000전째 경기에서 당시 KTF(현 KT) 소속이었던 배병우를 상대로 오델로에서 승리했다. 당시 빠르게 테크트리를 확보한 뒤 앞마당 뒷 언덕 지역을 막고 시즈탱크 드롭을 감행하는 독특한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 재경기 판정이 내려져서 전략 노출의 위기에 몰렸지만 같은 전략을 다시 한번 작렬시키면서 승리.

총 전적 1000전까지의 기록은 627승 373패(승률 62.7%)였다. 한때 세종족전 공식전 승률 모두 6할대였지만 2008년 이후로 승률이 급감하면서 현재 테란전과 프로토스전이 5할 후반대로 내려온 상태. 결과적으로 공식전 통산 승률은 50% 후반대를 기록했다.

"모든 기록은 이윤열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공식전 최다승, 최다 우승 등의 기록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있었으나 프로리그의 경기수가 엄청나게 늘면서 결국 이제동에 의해 최다승 기록이 깨졌다. 최다 우승 기록도 이영호에 의해 따라잡혔다. 아직 준우승 횟수까지 포함하면 양대리그 커리어는 더 위지만 이영호에게 있는 WCG 금메달이 없다는 이유로 종종 커리어 관련해서 키배가 벌어진다. 사실 커리어 외적인 부분으로 가면 포스, 꾸준함 양면에서 이영호의 데이터가 압도적이지만 이윤열의 주 활동 시기는 테란(및 다른 종족들)의 운영이 완성되기 전의 발전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선수를 직접 비교해서 다른 쪽을 까내리는 짓은 무의미할 것이다.

강민의 올드보이 7화에서 위메이드 폭스 10인 중 유일하게 강민에게 졌다.

4. 주요 활동/스타크래프트1

4.1. 2009년 프로 리그

2009년 12월 28일 그동안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에서 최초로 출전이 결정되었다. 상대는 또 홍진호. 벙커링 및 몰래팩토리가 모조리 막히며 무력하게 패배했다. 다른 팀원들이 전원 승리해서 팀은 승리했지만 그 때문에 더욱 패배가 두드러지는 안습한 일이.

4.2. 2010년 프로 리그

최근 공군 ACE 이적설 즉, 입대 이야기가 나오는 중, 3월 7일 선봉출전이 확정되었다(!). 오오?!

그리고 투혼에서 상대인 고강민을 절묘하게 잡았다? 역시 테막 고강민. 하지만 2세트에 나온 김대엽에게 패배. 그래도 프로리그 97승을 달성하였다

4월 17일, eSTRO와의 경기에서 팀이 1:2로 뒤져있는 상황. 상대는 이영호에게 통산 100패를 안겨준 신대근인데...

이겼다! 신대근의 뮤탈리스크를 '발키리'로 잡아버리고, 심지어 마인대박까지 터져주는 운까지 작용해주었다. 이게 다 올드의 귀환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투혼의 가호!

4월 26일, STX SouL과의 에이스 결정전에서 등장했다. 상대는 구질라. 그러나 김구현이 셔틀을 하나 보내서 4질럿을 본진에 드롭하자, 전선에서 벌처가 전부 본진으로 달려갔고, 그 틈을 타 질럿들이 시즈탱크에게 붙어, 완벽하게 전선이 밀려버렸다. 이후, 김구현의 리콜이 여러 번 작렬하면서 결국 GG. 애석하게도 여전히 98승이었다.

6월 16일 프로리그 화승 OZ와의 3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1 상황에서 출전해 구성훈과 맞붙었다. 초반 위험을 잘 버텨내고 탱크와 골리앗으로 상대의 앞마당 지역을 조여버려 진출로를 막아버린 다음 멀티의 우위와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드랍쉽 싸움에서 계속 이득을 거두며 잉어를 그물로 옴짝달싹 못하게 묶었다전성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프로리그 통산 99승 달성. 1승만 남았었다.

6월 26일, 프로리그 이스트로전에서 1:0으로 팀이 이기는 가운데 2세트에 출전해 신재욱과 맞붙었다. 이윤열은 2팩토리 타이밍 러쉬를 준비하며 드라군으로 압박하는 신재욱에게 시즈탱크 1기만 보여주어 2팩토리임을 숨겼고, 이에 속은 신재욱은 앞마당을 먹으며 리버를 준비했다. 그리고 시즈탱크 3기를 모아 들어간 이윤열의 타이밍 러쉬에 GG. 마침내 프로리그 1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7월 12일, 삼성전자 칸과의 경기에서 2세트에 출전해서 삼칸테란의 당시 새싹을 짓밟았다. 드랍쉽 운용과 기동성 그리고 발빠른 타이밍까지 마치 이윤열의 전성기 시절 테테전을 보는 듯 했다.

이제는 스타2로 전향하게 되면서 다시는 프로리그에서 그의 경기를 볼수 없게 되었다.

4.3. 2010년 개인 리그

2010년 2월5일 양대리그 예선에서 탈락 해버리는 수모를 겪는다. 온게임넷(대한항공)예선에서는 첫경기를 잡았지만 2, 3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4.4. 기타

7월 13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A조 첫 경기에서 강민비범한 경기력을 보이며 가까스로 강민을 이겼다. 가까스로

7월 14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A조 두번째 경기, 이번에는 박용욱을 상대했으나 정말 비지땀 뻘뻘 흘려가며 간신히 잡았다. 이쯤되면 은퇴한 강민과 박용욱의 현역 복귀를 재촉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4강전에서 임요환마저 꺾고 결승에 올라갔지만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던건 운명의 상대 . 다시 벌어진 곡물록에서 1경기를 가볍게 이겼지만 결국 2, 3경기 모두 베이며 패배하고 준우승에 머무르게 되었다.

여담으로 결승전 이전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웃음)이라는 멘트를 날렸으나 또 패배. 역시 그는 영원한 벼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쯤되면 즐기는 수준(…).

그리고 블리즈컨 2009에서는 조병세를 이겼으나 , 에게 져서 탈락했다.

5. 주요활동/스타크래프트2

이윤열/스타크래프트2 항목 참조바람.

6.1. 은퇴설

2009년 말 느닷없이 은퇴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세로드립으로 떠나기전 마지막 대회 라고 써놓은게 알려졌는데 그 뒤에 출연한 뒷담화에서 그 당시 실제로 95%까지 은퇴를 생각했었다고 고백했다.

떠오르지 않아..

"나"라는 사람..

기차 타고 다니선 시절이..

전철 타고 떠났던 시절도..

마치 얼마 전 같은데..

지금은 뭘 하고 잇는 걸까..

막막한 상황이기도 하고..

대단한 일도 못해봤는데..

회의감이 들지만 최선을 다해보자..

Don't Remember me..

당시. 평소에 이 사람에 대해 깔 거 안 깔 거 다 까대던 스갤조차 은퇴만은 안된다 분위기. 어쨌든 2009 IESF 전설의 귀환에서 홍진호를 잡고 3:1로 우승했다.

6.2. IEM 시범경기 뜬금 GG사건

2010년 8월 21일(한국시간으로) 이윤열은 독일 IEM에서 스타크래프트2 번외 경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1경기를 지고, 2경기를 이긴 상황에서 3경기가 시작되었는데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가 갑자기 뜬금없이 GG를 치고 나가버렸다. 모두들 황당해하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이 많았는데 팀리퀴드에서는 KeSPA가 이윤열이 스타2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윤열에게 연락해 그만 두라고 한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고, 이에 국내 언론사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기사를 썼으나 관련기사 최초에 이 기사의 내용에서 경기 중단 원인을 네트워크 문제라고 적었다가 스타크래프트2에서 네트워크 문제가 발생하면 화면에 안내문이 뜨는데 그런 안내문이 없었다는 반론이 제기되자 현지에 예정된 다른 행사 참여 때문이라고 기사 내용을 바꿔 기사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이제는 포모스마저 언론플레이의 마수에 놀아나다니...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ESL 홈페이지의 VOD 제공란에는 한때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Update: There will be no VoD of the match, since Kespa didn't officially allow NaDa to play a showmatch.

이 말을 해석하자면 KeSPA가 NaDa(이윤열)의 시범경기를 허가하지 않아 VOD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ESL 측의 VOD 재전송 등에 KeSPA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유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더 의심을 살 만한 것은 이 멘트마저 얼마 후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기사화되어 증거는 남아 있다. 관련기사를 참고하시라.

결국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이후 이어진 이윤열의 소양교육 불참과 포모스가 제기한 유명 프로게이머 스타크래프트2 전향설# 등과 연관되며 e스포츠 팬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년 가까이 지난 2011년 7월에 팀리퀴드와의 인터뷰에서 오해가 있다며 더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경기를 계기로 스타크래프트2로의 전향을 마음먹게 되었다고.

6.3. 스타2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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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스에서 톱스타 프로게이머 3명이 스타2로 전향한다는 기사가 떴다. 사진의 실루엣으로 추측한 선수는 임요환, 박성준 그리고 이윤열. 박성준은 이미 공식적으로 전향을 선언했고, 임요환은 서기수의 채팅으로 스타2를 하고 있는 것이 알려지도 했다. 시범경기에서 스타2를 플레이하긴 했지만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이윤열이 팀을 나가 스타2로 전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2010년 9월 17일, 이윤열이 스타2로 전향할 것을 밝혔다. 위메이드 폭스 측에서는 필사적으로 잡으려고 했으나 본인의 의사가 확고해서 잡을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IEM 시범경기 뜬금 GG사건 이후로 결심을 한것으로 보인다. 고로 주장 자리는 전상욱이 물려받게 되었다.

GSL 2시즌부터 스타2 리그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그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보자. 기사의 3인 중 마지막 남은 1인이었던 임요환도 기존 소속팀 SK텔레콤과 재계약 하지 않고 스타2로 전향했다.

벌써 KeSPA언플이 시작되는 건지 영예로운 프로게이머에서 상금사냥꾼이 되었다는 기사 따위가 나오고 있다. 친 KeSPA 성향의 언론들이나 스타크래프트1 e스포츠의 기득권을 계속 가지고 싶었던 진영에서는 이윤열을 e스포츠판의 물을 흐리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린 셈이다. 이윤열의 스타크래프트2 전향을 폄훼하려는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이득과 맞지 않으면 이윤열 정도의 드높은 위상과 기록을 가진 선수조차 언론과 KeSPA에서 언제라도 헌신짝 취급할 수 있다는 그들의 야비한 본성만 깊이 각인시켜주고 말았다.

만일 이윤열이 안정적인 돈이나 기득권이 욕심 났고 자신의 경력을 살려 군대를 가고 싶었다면 그냥 재계약 하고 위메이드 폭스 주장 자리에 눌러 앉아 있다가 내년에 때가 되면 공군 지원하면 되는 일이다. 더욱이 공군 에이스 입대도 사실상 내던지고 도전한 이상 나이로 볼 때 2011년에 영장이 나올 것이 99%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윤열의 도전은 길어야 반년 혹은 1년 안쪽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도 까대고 있으니 정말 UNN들은 답이 없다.

최고의 올드게이머이자 e스포츠의 아이콘 중 한 명이고, 그대로 이 판에 남아있었으면 공군으로 복무할 것이 확실시되고 한 해 2억 5천[38]까지 받던 역대 최고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공군지원까지 사실상 포기하고,[39] 시드도 없고 예선을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이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부대껴 64강 토너먼트를 생고생하며 뚫어서 우승해야 겨우 상금 1억을 타는 GSL에 참전하겠다는 선언을 가리켜 언론들이 '돈과 기득권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 봐도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다.

어쨌든 이윤열은 임요환에 이어 예선을 뚫고 GSL 시즌2 본선에 진출해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스타 2에도 통한다는 듯이 시종일관 막강한 물량으로 상대 선수들을 제압하고 8강에 올라 임요환과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로 2008년 마지막 대결 이후 2년만의 대결이다.

결승전에서 누굴 만나길 기대하냐는 질문에 임요환이라고 대답했는데 8강에서 만난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 그래도 이 판에 있으면 몇번이고 다시 격돌할테니 전초전으로 생각하면 될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황제 VS 천재가 8강에서 이뤄진건 조금 아쉽긴하다. 당시 이윤열은 점퍼를 벗으면 이긴다는 설이 있을정도로 gsl에서 점퍼를 계속 벗으며 올라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요환광 경기에서도 점퍼를 벗었다 ~결과는 패배~

6.4. KeSPA의 전격적인 은퇴처리

그리고 2010년 10월 5일. KeSPA는 공시를 통해 이윤열을 은퇴시킨 후 아마추어로 강등시키며 자신들이 e스포츠 협회가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게임단 협회임을 만천하에 인증했다. 물론 이윤열이 계약 만료 후 팀과의 계약이 없는 상태이니 프로게이머 자격상실이 구단과 선수의 합의하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장재호, 박준, 윤덕만 등의 위메이드 폭스 소속의 워크래프트3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팀에서 나오는 일도 없이 스타2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윤열과 같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를 KeSPA가 유무형의 압력으로 틀어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다가 팀을 떠나 이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자격이 없는, 스타2 전향을 선언한 선수들 중 장민철, 서기수, 박성준, 정종현 등은 프로게이머로 검색되고 은퇴 공지도 없었던 상황이었다(단, 김원기는 과거에 이미 자격을 반납한 사례가 있으니 검색될 일이 없다.). 그런데 이윤열에 대해서만은 유독 속전속결로 은퇴 공지가 나오고 다른 은퇴선수들과는 달리 KeSPA 홈페이지의 DB도 속전속결로 지워버린[40] 이유는 무엇일까? KeSPA의 손아귀를 빠져나온 이윤열을 자기들의 권한으로 아마추어로 격하시킨 것은 이윤열에 대한 보복과 동시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을 자기의 손아귀에 장악하기 위한 성격이 짙어 보인다.

당연히 협회는 그동안의 업보 플러스 이번 건으로 또다시 나노 단위로 까이고 있다. 이제는 개념머리 싹 틀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 따윈 없다. KeSPA는 다음 날 해명기사를 통해 본인의사에 의한 은퇴라고 해명하였고 최근 은퇴한 다른 선수들의 DB들도 부랴부랴 숨겼으며 어떤 커뮤니티에는 직접 관계자가 나타나 해명까지 하는 등, 이윤열에 대해서 감정적인 일처리를 한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묵인하고 상당 기간 프로게이머로 놔두고 있었던 GSL 참가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41] 이윤열에 대해 즉각적인 처리를 한 것이 정상적인 일처리라고 보기는 많이 민망하다.

평소에 선수의 자격조건 관리와 기록 관리를 개판으로 하다가[42] 유독 이윤열에게만 빠릿빠릿한 일처리를 한 것은 괘씸죄라는 명시적인 증거는 없을지언정 사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일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43] 그간 KeSPA가 선수들의 자격관리와 기록에 대해 취해온 안이하고 부실한 관리태도와 스타크래프트2를 배척하는 KeSPA의 태도, 그리고 다분히 감정이 섞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윤열에 대한 KeSPA답지 않은(…) 재빠른 일처리는 e스포츠 역사 안의 부끄러운 에피소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UNN에서는 가뜩이나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윤열의 은퇴처리에 대해 "규정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프로게이머 자격을 잃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라는 병크를 날려 능욕한 것.링크 이 사실에서, 권력과 언론이 결탁하면 사람 바보 만드는 것 정말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향한 선수들이 먹을 이유가 없는 욕들을 먹고, 게다가 그 욕들을 그 중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았던 이윤열이 앞장서서 다 먹고 있는 광경 때문에 이윤열의 팬들을 비롯한 e스포츠 팬들의 분노는 갈수록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얼마 안 있어 임요환이 스타2 전향을 선언하며 이윤열을 비롯해 먼저 희생한 후배들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스타1을 그만두고 스타2를 하는 것이지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이제 병크 날리던 KeSPAUNN들은 임요환에게도 '배신자' 운운하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스타크래프트2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

7. 은퇴 후

상기한대로 2012년 6월 19일에 은퇴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설마 싶었는데...

# 이렇게 돼버리면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44]

누구와는 달리 범죄를 저지른 것도 없으니 은퇴 후에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 의견이 없지만 온게임넷의 마지막 스타리그 당일날 현장 관람을 안하고 아프리카 방송을 한 것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 복귀선언을 할 예정인지 아프리카TV에서 피어 온라인 게임방송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후에는 스타1 방송을 종종 하고 있다. 물론 게임을 오랜 기간 접었다보니 기존의 스타1 BJ들에 비해 딱히 실력이 뛰어나진 않은 편.

아주부 공식 홈페이지의 개인 스트림 채널을 통해서도 간간히 방송을 하고 있다. 딱히 방송이라기보단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즐기고 있는 게임을 묵묵히 내보내는 중. 스타2 캠페인이라든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든가.

2013년 6월 기준으로 아프리카에서 저녁 방송을 하고 있다. 주로 리그 오브 레전드나 스타크래프트 1을 하는데 일반 아프리카 BJ들처럼 마이크와 여러 BGM 등을 사용하며 떠들썩하게 방송하는 중. 다 좋지만 옛날 벼팬들은 가급적 보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조금 안타까울 수 있다.

2013년 7월 16일,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5주 훈련 후 고향인 구미시에서 상근예비역 복무 예정.
훈련소 당시 다른중대에도 이윤열이 입대했다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팀이 해체된 상황이라 별 상관은 없지만 아주부에서 매니저로 일했던것은 자신과 맞지않아 군입대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그만뒀다고 한다. 제대이후 어떤 일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듯하다.

8. 기타

조용호가 CYON MSL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전, KTF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게이머였다. 임대이긴 했지만. KTF는 그분의 팀이라 그런지 조용호 우승 이전에는 강민, 박정석 등 그 어떤 게이머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위메이드에서 그를 소재로 한 윤열베어라는 테디 베어 상품을 만들었으나, 그의 별명과 연동되어 벼베어라 불리며 비웃음만 당하는 중이다(…). 그래도 워낙 귀엽게 나와서 그 팬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듯.

팀리퀴드 양덕들은 이윤열의 몸메에 반해서 250페이지짜리 쓰레드를 써질럿다 Nada's Body

화장으로 떡칠된 얼굴에 커다란 귀걸이를 한 이윤열 사진이 퍼지면서 거기에 각종 공주캐릭터나 여자연예인의 몸을 합성해 만든 윤열공주라는 짤방이 스갤 2대 혐짤로 등록되었으며 윤열공주라는 구호는 이유없이 타 갤러리를 공격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김풍내일은 럭키곰스타라는 작품에서 이름만 등장한다(여고생이 항상 얼굴을 가리는 피켓에 적힌 이름). 스타판은 이상하게도 카메라가 관중을 비추면 여성 팬들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는데, 그것을 풍자하기 위함인 듯 싶다. 사실 카메라가 피켓을 든 관중을 중심으로 비추기 때문에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뿐. 생각해보면 명색이 전파를 타는 방송인데 얼굴이 적나라하게 나가는 것도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근데 사실 네이버 연재전 김풍의 홈페이지에 연재됐을 당시 위에 서술된장면에는 이윤열대신 임요환이 들어가있었다. 뭥미?

인하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04학번으로 특례입학을 하였지만 정작 학교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었지만 언젠가부터는 학교에서 종종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스타2 리그 경기가 없을 때는 학교에 나오는듯.

2009 아발론 온라인 MSL 2009 조지명식에서 놀라운 댄스로 NDS를 차지했다(세레모니상). 벼봇춤 시즌2. 2pm 의 노래에 맞춰 한층 더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아름다운 춤을 선보였고 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동안 손발을 펴지 못했다. 하지만...그 날 2PM의 'Again & Again'은 조지명식 등장음악으로 세 번 나왔는데, 그나마 이윤열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안 그랬으면 세레모니상을 줬을 리가...아무튼 리그는 광탈했다.(...)[45]

2009년 7월 4일 토요일 LG 트윈스vs두산 베어스전 시구를 했다. 김현수바보미소로 맞이해주며 악수도 청했다. 근데 스타대결 이벤트는 LG팬과 같이...

2010년 2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항공 호주편의 CF에 같은 팀 소속저그 김준호(동명이인 개그맨과 혼동하지 않길 바람.)와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항공측의 캐스팅 이유는 차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스폰서가 된 대한항공이 이를 홍보하기 위한 것과, 20~30대층에게 여행의 로망을 어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2월 5일 진행된 대한항공 스타리그 예선에선 탈락해버렸다...

그리고 켠김에 왕까지의 희생양으로 선택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했다.(...) 자세한 건 켠김에 왕까지 항목 참고.

쇼핑몰 사업으로 나다몰을 열었으나 폐쇄되었다.

인터뷰를 참고하면 oGs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합숙을 하지 않고 따로 생활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팬카페 등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프로게이머 생활 연장 등을 위해 학업에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팀리퀴드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학업 등의 이유로 하루에는 5-10게임정도로 연습량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방학동안이나 대회가 가까워지면 연습량을 크게 늘렸다는 듯.

8.1. 파나소닉배 엄재경 사건

이윤열이 최초로 진출한 스타리그였던 파나소닉배 스타리그 8강에서 이윤열조용호가 맞붙게 되었다. 여기서 이윤열은 드랍쉽 전략을 꺼내들었고 이것이 막히자 빠르게 GG를 선언했는데[46] 경기가 끝난 후 중간 광고 시간에 해설위원들의 잡담이 그대로 송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때 김태형 해설위원은 '윤열이는 전략이 안먹히면 GG를 너무 빠르게 치는 경향이 있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엄재경 해설위원이 쟤가 저래서 인기가 없는거야라고 발언해버려 이 한마디에 커뮤니티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스타리그 위주 스토리텔링을 만들던 엄재경 입장에서는 스타리그의 스타였던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할만한 선수가 스타리그가 아닌 외부에서 온 게이머였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있는데, 엄재경같은 경우는 '내 생각일 뿐이며, 윤열이가 앞에 있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어쩌면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까인 최초의 선수가 아닐지.

8.2. 안티

이윤열은 프로게이머 가운데서도 전성기 시절 특히안티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윤열같은 최고 인기 선수라면 팬도 많으니 안티도 많은건 당연하겠지만, 이윤열은 안티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윤열은 착하고 순한 이미지에다가 게임 외적으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적이 없는데도[47] 안티가 심하게 많은 것은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윤열이 스타급 선수들을 많이 이겼기 때문이다. 데뷔 초부터 임요환이후 최강의 테란이라는 이유로 임빠들에게 견제를 받아왔으며, 홍진호를 꺾고 우승했다는 이유로 콩빠들에게도 까였고, 박정석에게 강하다는 이유로 등빠들에게도 까였다. 게다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에서 오영종의 가을의 전설과 우승을 막았다는 이유로 오영종 빠와 백만프로토스빠들 까지 적으로 돌렸다. 게다가 2006년 12월 케스파 랭킹 사건[48]+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선 찌질파이트로 인해 마서스의 마빡이들까지도 이윤열을 신나게 깠다. 이겨도 까고 져도 까면 어쩌라는 거야? 이로인해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를 통틀어 주인공 자리에 올라본 적이 별로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윤열은 임요환 유니버스에 의한 누가 포스트 임요환 논쟁에 가장 크게 희생당한 선수이다. 2006년 이후로 본좌라는 떡밥이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최고의 큰 이슈가 되던 시절처럼 한때는 포스트임요환 떡밥이 커다란 이슈였다. 이윤열은 임요환이 건재하던 시기에 바로 다음 세대에 등장했고, 같은 종족인 테란이라는 점과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커리어와 막강한 실력을 가진 탓에 임요환이 구축한 임요환 유니버스를 무너트릴 수 있는 위협적인 선수로 인식 되었다.
그러므로 악질 임빠들의 증오를 가득 살 수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어떻게든 까기 위해 이윤열 경기에는 감동과 재미가 없다. 오로지 승리를 하기 위한 기계같은 플레이만 한다라는 악의적인 말에 무척이나 시달렸다.

이 점을 의식한 탓인지 2003년 초반의 이윤열은 자신의 플레이를 하기 보단, 도저히 이해할 수 빌드를 올려 게임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승률이 떨어졌다. 결국 이윤열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임요환이 침체기에 이르러 2004년 초반에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임요환마저 결승전에서 꺾어냄으로써 인정을 받긴 했지만, 최연성이 이미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으며, 최연성은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하여 임요환의 팬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뒤 이윤열은 '본좌결정전'이나 다름없던 센게임배 MSL 결승전에서 최연성에게 패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본 실력과 업적에 비해 오랫동안 과소 평가를 받아왔다.


이윤열이 안티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벼멸구로 대표되는 악질 팬덤 때문이기도 하다. 즉, 빠가 까를 만든다에 해당하는 케이스. 이윤열의 악질팬덤 벼멸구들은 2006년 이윤열이 골든 마우스를 수상하자 갑자기 나타나 스갤등지에서 정도가 심하게 찌질댔고, 때문에 이윤열은 별다른 잘못이 없는데도 신나게 탈곡 당해야 까여야만 했다. [49] 하지만 이윤열에게 안티가 많았던 것도 대략 2007년 ~ 2008년 정도까지의 이야기고, 이윤열이 올드게이머임에도 성실히 활동을 이어가자 이윤열의 그 많디 많던 안티도 서서히 줄어갔다. 덧붙여 벼멸구들도 점차 박멸됐다.

8.3. 연봉 및 인센티브 논란

어느 선수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길었던 전성기에 비해 선수 생활 외적으로 원하지 않은 방향의 굴곡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연봉 논란인데 2004년 창단한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팀의 스폰서 팬택은 이윤열에게 역대 최고의 연봉 계약을 약속했고, 언론에 3년 6억, 즉 연봉 2억이라는 액수가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후 이윤열의 연봉이 1억 2천밖에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공분을 샀다. 이 때문에 한때는 송호창 감독이 이윤열의 연봉을 뜯어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우승 당시 우승상금 4천만원 중에 20%를 코칭 스탭에게 인센티브 명목으로 부여한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이 시절 다른 팀들은 오히려 우승하면 상금의 100%를 인센티브로 추가로 지급하던 것과 대조적. 기업 스폰서가 선수의 상금을 뜯어가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8.4. KPGA 논란

이윤열이 이룬 커리어에 대해 가장 많은 흠집이 가해지는 것은 바로 KPGA 투어에 대한 논란이다. 이윤열이 이룬 KPGA 2차~4차 투어의 3연패 기록은 MSL 3회 우승자로 인정받아 금뱃지를 받았으나, 프링글스 MSL S2에서 MBC게임이 이윤열과 임요환을 우승자로 인정하지 않은 바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이윤열의 안티들은 '프로골퍼 이윤열' 등으로 이윤열의 우승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KPGA 투어에 가해지는 비판은 'MBC게임이 인정한 적 없다가 임요환을 초대 우승자로 세우려고 인정한거다' '스타리그에 비해 위상이 훨씬 떨어지던 대회였다' 등이다. 이것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KPGA 투어는 스타리그에 비해 우승 상금이나 인지도 면에서 떨어졌으며, 프링글스 MSL S2에서 우승 기록을 부정한 바가 있다.

그러나 MBC게임이 KPGA 투어를 전혀 인정한 적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장 1회 MSL인 Stout배에서 4차 KPGA 투어의 우승, 준우승자였던 이윤열과 조용호는 시드를 받았기에 KPGA 투어와 MSL간의 연속성은 증명된 것이며, 조추첨식에서도 이윤열은 3회 우승자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도 이윤열의 결승 진출을 4연패 도전으로 포장했다. 또한 당신은골프왕 MSL에서도 이윤열을 6번째 결승 진출이라고 하는 등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바였다. KPGA 투어가 스타리그에 비해 명백히 인지도와 규모 면에서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당대의 KPGA 투어의 경우 최소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양대리그로 인식받고 있던 것 또한 사실이다.[50] 당장 최연성만 해도 MSL의 3회 우승을 달성하고도 마씨와 같이 스타판의 역사를 개편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최연성 스스로가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MSL이 당시로써는 스타리그에 비해 마이너한 리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링글스 MSL S2에서 단 한번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전에 우승기록이 전혀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식으로 운운하는 것은 곤란하다.

애초에 MSL의 위상이 치솟은 것은 본좌론의 힘에 기인한 것이 크다. 마씨의 팬덤이 마씨의 스타판에서의 마씨의 위치를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낸 본좌론은 팬들의 숫자를 고려한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었고 이 때문에 사대천왕이라는 이름의 임요환 유니버스에서 본좌론이라는 마씨 유니버스를 이어가기 위해 선택된 것이 MSL과 스타리그의 양대리그라는 커리어이다. 스타리그와 MSL이 진정한 의미에서 동등한 위치를 갖게 된 것이 2006년에 이르러서인 것이다. 여기에 본좌론을 지지한 선수의 팬덤으로써 스타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임요환이 선택된 것이고, 임요환과 마씨 사이의 연계성을 잇기 위해 MSL의 바로 이전 대회였던 KPGA 투어를 본좌론의 프레임 안에 끼워넣은 것이다. 이 본좌론 떡밥을 뒤늦게 장사에 이용해먹기 위해 MBC게임이 프링글스 MSL S2에서 한 번 부정했음에도 임요환과 이윤열을 우승자로 내세운 것이고. 따라서 본좌론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는 양대리그를 인정한다면 KPGA 투어는 당연히 인정받을 수밖에 없으며, 양대리그라는 프레임을 부정한다면 수많은 대회의 우승 기록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니 깎아내리는 것 자체가 모순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MBC게임이 마지막 방송에서 우승 기록을 인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8.5. 스타 골든벨

스타 골든벨에 출연하기도 했다. 서지수, 홍진호, 서지훈, 박정석 등 다른 게이머들도 종종 출연해왔던 스타 골든벨이라 그 영향으로 출연한듯.

방송에서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정종철이 "이윤열은 마우스를 쥐면 편안해 할것"이라고 드립을 치는 모습 정도가 부각됐다. 프로게이머 비하 발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장면이라 정종철이 그닥 까이거나 하진 않았다. 정종철 자체가 연예인 게임단의 창설 멤버인 등 게임에 관심을 가져오기도 했고.

8.6. 벼친소

2009년 2월 28일 MBC의 예능 프로그램 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스친소)에 이혁재의 후배(이혁재는 인하대 출신)로 이윤열이 출연하여 소녀시대와 소개팅을 했다. 이혁재가 말하길 원래 촬영일에 경기가 있는데 소녀시대가 소개팅 상대란 소리에 후배에게 맡기고 바로 뛰어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배는 처참하게 관광패.(…)

시작부터 커피샵에 들어가 마린 흉내를 내는 미션에 걸려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나는 마린이다 두두두두'(…) 그러나 정작 소녀시대 및 진행 MC 및 주 시청자인 10대 여자애들은 스타에 별 취미가 없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여 더 굴욕.


그리고 장기자랑 시간에 보여준 봇춤으로 추가 굴욕을 당한다. 양동근의 노래 '목길'에 나온 댄스(1분 46초부터)를 시도한 듯 한데... 현실은 시궁창 여기서 왠지 "윤열아 이게아닌가"라는 자막이 나와 MBC에 이윤열 별명이 벼인 걸 아는 사람이 있음을 알림과 동시에 굴욕을 증폭시켰다. 이 춤은 일명 벼봇춤으로 명명되어 콩댄스에 이은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은 코너 4인용 식탁에서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테이블이 철수되는 굴욕을 당했다. 그냥 당해도 안 억울한데 왠지 이 살짝 간만보고 다른 방으로 가버려서 더 굴욕.(…)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는 갑자기 예능인 붐이(이 프로그램에선 일명 코봉도사로 통한다.) 이윤열은 16강에서 그칠 것이라 농담을 던졌으나 이혁재가 이윤열이 16만명 넘는 팬클럽도 지닐 정도라고 하자 바로 8강 진출 축하드린다고 급변했다.(...) 재미를 위해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이 농담은 정말 실현되어서, 붐의 저주로 회자되게 된다.[51] 탈락 예언 말고도 붐은 "연봉이 4억인데 PC방비만 3억" 그럼 가수는 노래방비만 3억이냐?, "30년 전에 유행하던 춤을 추고 있어요!" 같은 스타팬, 특히 벼빠라면 기분이 상할만한 거친 농담을 거침없이 내뱉었고, 그럴 때마다 벼는 여물어갔다.

이렇게 이윤열은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날 가능성이 없는 굴욕 방송을 진행했으나...마지막에 구애했던 유리, 수영 커플에게 선택받아 1일 데이트를 하게 되는 대반전을 연출했다.(…) 이때 유리의 대사 당신의 모니터 & 키보드가 되고 싶어요. 윤열오빠~♡ 저도 내일부터 스타크래프트 시작할래요 ^ㅁ^(…) 이로서 이윤열에겐 천운이 따른다는 것이 다시금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해 어차피 스친소는 대본이고 윤열이는 망했는데...

이 방송 방영 이후 스갤은 폭발했고 수많은 스갤러들이 소시갤을 털러 갔다. 그리고 은 수많은 스타팬들의 증오를 사게 되었다. 글자가 같다는 이유로 한순간 네이버 이 털리고 붐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이민호 갤러리가 털리는 괴사태가 벌어지기도. 붐의 망언 덕분에 스갤러들은 이윤열의 부친상 이후 4년 만에 최초로 벼빠와 벼까가 하나될 수 있었다. 또한 스갤러들은 이 방송을 벼친소로 칭하며 벼친소의 방영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해 추모하였다. 다만 붐 측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항의를 게시판 도배와 같은 옳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 것은 잘못이다. 이후 스친소 측은 이에 대해 사과문을 게재했으며, 이윤열 측에서도 괜찮다는 공식 의사를 밝혔다.

문제의 스친소 방영 이튿날, 이윤열은 프로리그에서 임진묵에게 대역전승을 거두는데, 이를 중계하던 김철민 캐스터 이하 중계진은 "이윤열 선수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거에요 붐을!!" "임진묵 선수가 경솔했어요!!" "마치 로보트같은 강인한 모습!!" "스치면 소멸이에요, 스친소에요!!" "gee gee gee gee 받아내나요?!" 등의 어록을 쏟아내며 그야말로 드립의 향연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벼봇춤은 플래쉬로 만들어져서 보고 있는 사람의 손발을 오그라트리는 마의 영상으로 화했다. 1분간 보고 있으면 주화입마가 오는 영상.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스동갤의 관문으로 등극하였다.

8.7. 출발 드림팀

2010년 10월 10일에는 구미 E스포츠 홍보대사 자격으로 KBS 출발 드림팀에 출연했다.

과거 프로게이머를 개 무시했던 초창기 드림팀과는 달리 앞의 인터뷰에서 구미를 대표하는 스타 프로게이머라면서 나름 포장해줬다. 장애물 레이스에서는, 너무나 조심스럽게 플레이를 한 까닭에 2분 가까이 장애물에서 고전하다가 힘이 빠져서 탈락했다. 인터뷰등을 포함해 드림팀 방송시간동안 단 4분가량 나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춰지긴 했지만, 하필 이 편에서는달인이 드림팀에서 활약한 첫 회였기 때문에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달인과 비교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다른 게이머들도 두명정도 출전했지만 두 사람 다 E스포츠계에서도 인지도가 너무 낮은 선수들이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안습.

8.8. 임빠

최고의 전성기 시절 임빠들에게 폭풍처럼 까여서 달빠 중에도 임요환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윤열은 임까인 달빠들조차 인정하는 임빠다(…). 최연성의 임빠 포스가 너무 강해 묻혔지만 인터뷰에서도 항상 '요환이 형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겠다'라고 말하는 등, 항상 임요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8.9.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

6월 28일 방송분, 10회차 녹화분에서 홍진호의 게스트로 참여한다. 해당 제목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었기에,[52] 꽤나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리저리 휘둘리고 칩을 빨리 소진해버리는 바람에 홍진호에게 큰 도움 주는 정도가 아니라 홍진호를 탈락 위기로 몰아넣었다.(...) 홍진호 우승의 최대 걸림돌은 이윤열이었을 지도... 홍진호가 방송 내내 지략가로 활약하면서 프로게이머의 인식을 드높였던 것과 달리, 이윤열은 이리저리 해메면서 그런 인식을 박살낸 셈이다(...)

그리고 방송 중간중간 이윤열에 관한 자막이 여럿 나왔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 '앞마당에서 대기중'등등 제작진중에 스갤러가 있는듯 깨알같은 재미를 주긴 했다..

그나마 데스매치였던 전략 윷놀이에서 홍진호를 도와 생존시켰다. 이때 그나마 데스매치에서조차 졌으면 이윤열은 콩빠들과 스덕들에게 역적취급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윤열이 '천재테란'이라고는 하지만 쑥맥기질도 있고, 어버버한 일면도 있는데[53] 이는 분명 정치력과 인간관계 능력이 중요한 '더 지니어스'에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 이윤열을 무리하게 초청한 홍진호의 잘못이라는 시각도 있다. [54]

8.10. 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7월 9일 방송분에서 홍진호, 강민과 함께 게스트로 참여, 8개월간의 회사원 생활등의 은퇴 근황을 이야기했다.

8.11. 이윤열의 별명 혹은 키워드

  • 겨울의 사나이 : 겨울 시즌에 유독 강해진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실제로 이윤열은 커리어의 대부분을 겨울 시즌에 쌓았다. 대항마(?)로는 박성준의 여름의 사나이가 있다.
  • 수달 : 얼굴이 보노보노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 하지만 사실 보노보노는 해달이다. 포모스에서 진행한 30문 30답 박태민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라는 듯...했으나, 박태민이 이윤열과 만났던 2005년경 이야기고 김정민의 스팀팩에 나왔을 때 따르면 나중에 수달을 찾아보고나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 싶습셉습 :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의 결승전 사전 인터뷰에서 '전설로 남고 싶습니다'라고 해야되는데 발음이 새서 '전설로 남고 싶습셉습니다.'라고 한 말실수에서 나왔다. 싶습셉슾, 십습셉습이라고도 한다.
  • 토네이도 테란 : 토네이도처럼 상대를 휘몰아쳐서 승리를 얻어내는 모습으로 붙여진 별명. 화면 가득 덮는 탱크 부대가 압권이었다.
  • 천재테란 : 데뷔 당시, 어린 나이에 출중한 실력과 훌륭한 게임 센스를 보여주어 붙여진 별명. 프로게이머 사이에도 이윤열의 재능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2013년 7월 9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서 홍진호는 이와 관련된 일화를 이야기했는데, 이윤열이 결승전에서 게임 사운드도 듣지 않고 MP3로 음악을 들으며 우승을 했다는 것.
  • 머신 : 전성기 시절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지막지한 생산력과 빠른 멀티태스킹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졌다. 사실 초기에는 비하적인 의미였다. 안티들 사이에서 최강자들이 으레 듣고는 하는 '기계적인 플레이'라고 까는 바람에 붙여졌던 별명. 이것이 삼신전 시절에 '신'으로 끼워맞추다보니 긍정적인 의미가 돼버린 것이다.
  • : 마재윤과의 대결 직전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졌다. 그 뒤로 다른 모든 별명을 제치고 이윤열의 아이덴티디가 되었다.(…) 추후 티빙스타리그 레전드 매치때 엄재경이 '벼는 언제, 어떻게 생긴 별명인가?'를 계속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 살아있는 전설 : 별명이라기보다는 칭호에 가깝다. 거의 모든 올드게이머들이 전멸하는 상황에서도 데뷔 10년차가 된 이윤열만은 MSL 시드를 따는 등 개인리그에서 올드게이머들 중 유일하게 분전하는 모습 때문에 MSL 중계진 및 언론에서 부여한 칭호.
  • 불사조 : 살아있는 전설과 마찬가지. 단 이것은 엄재경 해설위원 등의 온게임넷 중계진 쪽에서 시작되었다.
  • 벼닉스 : 벼 + 불사조(피닉스) 의 합성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벼라는 별명과 피닉스라는 찬양을 합쳐 부른다. 스1에서의 롱런은 스2에서도 여전한데, 2011년부터 치러진 정규 GSL투어에서 2012년 HOT6 GSL Season 2까지 총 9번의 대회에서 모두 최상위리그인 코드S에 출전했다. 이윤열 외에 9회 연속 코드S에 출전하는 선수는 임재덕김영진, 정종현 뿐이다. 이후 임재덕이 10회 연속 코드 S 기록을 세워 GSL에서는 코드 S 10연속 진출한 선수를 위해 '임재덕상'을 만들었다. 이윤열도 커뮤니티에서 부르는 별명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 앞마당 먹은 이윤열 : 별명이라기 보단 관련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거의 격언처럼 쓰이며[55] 앞마당만 먹었는데도 무시무시한 생산력을 보여주며 로템에서 무적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온 말. 전성기에는 '물 만난 고기', '이길 수 밖에 없는 상황'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네이버 완성검색어에도 나온다. 또 야구 기사에도 나왔다. "올 포스트시즌에서 '선취점 먹은 샌프란시스코'는 전성기 시절의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나 다름없다".
  • 테란의 황태자 : 예전에는 이윤열 하면 절대적으로 쓰였던 말이지만 지금은 팬들이 싫어해서, 특히 임요환하고 비교하는 것 같다면서 묻혔다. 지금은 간간히 쓰이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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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Game-i은 이후 화승 OZ의 전신인 IS와 합병했다.
  • [2] 다만 이쪽은 프로게이머로서의 데뷔고 아마추어 시절인 2000년 iTV 고수를 잡아라를 통해 이미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참고로 당시 상대는 최인규이며 이윤열이 승리했다.
  • [3] 매니저. 여담으로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했을때, 원래 코치직으로 제안받았지만 본인이 회사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프런트로 들어갔다고 한다.
  • [4] MSL 2대 우승자. MSL의 전신에 해당하는 골프왕KPGA리그를 2,3,4차 연속 제패하면서 4개 중 무려 3개나 우승해버렸다.
  • [5] 이윤열과 이영호 단 2명만이 갖고 있는 대기록이다.
  • [6] 비공식포함 총전적 1157전 708승 412패 승률 61.2%
  • [7] 리그 3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통합해서 기재함
  • [8] 4강에서 임요환에게 3:1로 패하고 3,4위전을 해서 3위를 차지했다.
  • [9] 임요환에게 4강에서 0:2로 패배하여 내려옴.
  • [10] 승자결승 어드밴티지 1승으로 인한 스코어. 실제로는 0:2. 이 경기 이후 승자결승 1승 어드밴티지가 과도하다는 논란이 있었고 이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폐지. 지못미.
  • [11] 결승전 2차전까지 15연승이었고 총전적 16승 1패로 우승. 즉흥적인 빌드와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타이밍으로 승리하는 '천재 이윤열'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리그다.
  • [12] 최초로 7전제 결승전이 치러진 MSL. 이윤열은 이전에 승자결승에서 이미 3:2로 박태민을 꺾은 바가 있지만 정작 결승전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이후 7전제 결승전은 현재까지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워낙 재밌는 결승전이었기에 호평받았다.
  • [13] 이 상은 당시 12월 기준 KeSPA 랭킹 1위에게 주어지는 상인데 KeSPA의 병크로 인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마조작이 아닌 이윤열이 12월 랭킹 1위가 되었고. 그로 인해 KeSPA가 아닌 이윤열만 마서스 팬에게 신나게 까였다. 특히 랭킹 발표 당일날 열린 3회 슈퍼파이트에서 이윤열이 1:3으로 패하면서 마모씨의 팬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이 분위기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 결승과 3.3 혁명으로까지 이어져 이윤열이 임요환 이후 최초로 디펜딩 챔피언으로 결승에 올라가고도 개무시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마모씨는 3.3 혁명을 당하며 7일 천하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시기동안 강민이 그토록 패하면서도 성전이라며 응원받던 것과 달리, 이윤열은 완전히 악역으로 취급받았다.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황이고 KeSPA의 병크 하나만 추가되었다.
  • [14] 아이러니한 것은 신인 시절 그토록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미움받던 이윤열이 오히려 이 시기에는 협회의 버프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이후 펼쳐진 대결에서 마조작이 승리하며 훌륭하게 악역(...)을 소화해냈다. 러나 그랬었던 마재윤...
  • [15] 꽤 오랫동안 '가장 100승에 가까운' 선수였으나 08-09 프로리그부터 총 경기수가 엄청나게 많아지는 가운데 자신의 출전수는 확 줄어들어 밀리고 밀려서 12번째가 되었다. 덧붙여 첫 번째는 한참 그가 안 나올 때 공군에서 틈틈이 승을 챙긴 박정석이 챙겨갔다.
  • [16] 장민철과 마찬가지로 슈로엣 코만도의 개인지원을 받았었다.
  • [17] 사실 방송사에서 은퇴식을 치뤄준다면 MBC 게임에서 치뤄주는게 맞았겠지만 엠겜마저 없어졌으니...
  • [18] 데뷔 시절에는 아직 학생이었고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방학이면 서울로 올라와 대회에 참가하곤 했었다. 그래서 방학테란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 [19] 당시 한국생활을 하는 중국출신 방송인으로 '보쳉'이 있었는데 이윤열이 보쳉하고 닮아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 [20] 이 때문에 이윤열과 유사한 사례의 후계자로 이제동을 꼽는 경우도 있다. 2008년~2009년 이영호의 각성 전까지 가장 많은 커리어를 쌓고 활약을 보였음에도 이전 최고의 저그였던 마서스의 팬 마빡이들과 이제동에게 패한 선수들의 팬에 의해 수많은 폄하를 받았다.
  • [21] 블리즈컨 2008에서는 EAPM이 260이 나오기도 했다.
  • [22] 삼신전 이후 더욱 강력해진 저그전을 선보인 최연성이 심리전과 정제된 빌드를 앞세워 이윤열같은 손빠르기가 없음에도 박태민을 무난하게 압살해버린 것과 대조되는 부분.
  • [23] 이로 인해 이윤열은 온게임넷 측의 배려로 차기 시즌 챌린지리그 시드를 받게 된다.
  • [24] 02, 03, 04년 연속 트리플 60 달성. 덧붙여 MSL로 한정할 경우, KPGA 2차부터 당골왕까지 3위 이내에 못 들었던 시즌은 SPRIS배 한 번 뿐이었다는 경악스러움을 보여준다.스타리그 광탈은 자주 했지만 그냥 넘어가자
  • [25] 이때 가장 회원수가 많던 안티카페도 폐쇄됐다고 한다.
  • [26] 이윤열은 '머신', 박태민은 '운영의 신', 박성준은 '전투의 신'.
  • [27] 사실 진짜 명경기로 유명한 건 1세트의 타우크로스 혈전. 서로 100%의 경기력으로 부딪힌 끝에 오영종이 이겼다. 참고로 이 5세트의 경우 막판 오영종의 발컨 한방이 결과에 결정적이었다.
  • [28] 신한은행 시즌 3의 경우 커맨드 관광과 엄전김의 명언, 패배로 고개 숙이는 모습(벼 세레모니)로 인해 희대의 개그결승전이 되었다.
  • [29] 전용준 : 이윤열 선수도 한 말씀 끝으로!! 이윤열 : 전 전설로 남고 싶셉습니다. 꼭, 반드시 생리하겠습니다.
  • [30] 하지만 그것은 마모씨 팬들의 불필요한 쉴드라고 보는 것이 맞다. 3.3의 임팩트가 크긴 했지만, 실제로 심각하게 맛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 후에 MSL에서 벌어진 이성은 선수와의 다전제 이후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3.3 이후에도 이성은과의 경기 이전에는 팔진도와 같은 저그가 불리한 맵에서 뛰어난 하이브 운영을 선보이며 테란을 격파한 경기를 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허나 그런 강한 모습도 마조작 스스로 말아먹고 말았다.
  • [31] 하지만 이윤열은 배틀을 준비하면서 탱크로 자리잡고 기다리는 상황이었기에 박성균이 때려박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승원은 중계하면서 눈물이 날 뻔했던 경기로 꼽았다.
  • [32] 후일 이 경기는 접스타 의혹을 받게 된다. #
  • [33] 근데 임요환은 SO1 스타리그에서 준우승 할 때 이미 나이가 26이었고 나중에도 프링글스 MSL 8강까지 가긴했다. 문제는 군 입대 때문에 흐지부지 되었단거지만...
  • [34] 알카노이드에서 김원기 당시 이스트로 선수에게 깨졌던 경기인데, 한 가지 어이없는 것은 이 패배가 이윤열이 알카노이드 시리즈에서 당한 유일한 공식전 패배라는 것이다. 이 맵에서의 이윤열의 전적은 와이고수 전적기준 13승 1패이기 때문에 이 정도면 나다노이드 뭐 이런 식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그 원기옥 관광 한 경기의 임팩트가... 비공식전 합쳐도 슈퍼파이트에서 마모씨에게 당한 1패 외에는 없어서 16승 2패다.
  • [35] 비공식전은 몇 번 있다. 이재훈, 주진철, 홍진호(!) 등. 강민에게 스타우트배에서 당한 것은 승자 어드밴티지 1승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0:2 패배.
  • [36] 여담이지만 '성준모의 GG후 토크'에서 밝히길 IOPS배 4강에서 박태민은 무조건 3:0으로 끝내는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3경기에서 이윤열에게 패해버렸고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고.(...)
  • [37] 사실 송호창의 혹사 논란이 있던 이유는 경기 외적으로, 그러니까 각종 행사에 이윤열을 끌고 다녀서 연습할 시간까지 부족하게 만들었기 때문...
  • [38] 3년간 7억 5천. 하지만 실제로 받은 연봉은 1억 8천 정도라고 백지영의 피플 인사이드 출연 당시 본인이 직접 이야기 했다.
  • [39] KeSPA가 스타크래프트2를 배척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활동하려면 프로게이머 자격을 내놔야 한다. 더욱이 공군 에이스는 지금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을 받을 계획조차 없다.
  • [40] 2010년 10월 5일 검색시 그 전날 은퇴한 하이트의 김학수와 9월 30일 은퇴한 정종현. 이재훈 등의 다섯 명의 은퇴 선수들의 DB는 그대로 프로게이머 란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KeSPA의 선수 기록관리는 평소에 매우 허술한 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윤열만은 마치 승부조작자들의 DB를 즉시 삭제한 것처럼 공지가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선수 검색기록에서 DB를 전격적으로 삭제시켰다. 진기록, 명기록에서의 소속은 위메이드로 그대로 남겨두었을 만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그리고 10월 6일에야 다른 은퇴선수들의 DB도 삭제시켰다.
  • [41] 대표적인 경우는 임요환이나 신상호 등.
  • [42] 모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 KeSPA 직원에게 협회가 주최한 워크래프트3 리그의 기록은 왜 없냐고 물어봤더니 '공인리그가 아니라서 공식기록에 넣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 후 곧바로 자신들이 공인리그로 인정하는 스페셜포스 리그의 기록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역관광당했다.
  • [43] 그리고 이번 일로 은퇴 프로게이머의 DB를 비공개 처리하는 협회의 처리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팬들의 의견은 은퇴선수의 기록도 분명한 역사인데 왜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사실 그 말이 맞다. 다른 프로스포츠만 보더라도 은퇴선수의 기록 자체를 비공개 처리하고 진기록 명기록 같은 자투리 쪽에나 남겨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 [44] 사실 '나다몰' 홍보와 팬서비스 차원에서 2011년경에 아프리카로 스타2방송을 한적이 있다.
  • [45] MSL의 '팀별 프로리그 최상위자 1인 예선 면제/2패 탈락 예선 강등'이라는 희대의 병크로 인해 예선으로 바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 일로 이성은, 이윤열 등을 비롯한 MSL에서 볼거리를 만들어내던 선수들이 대거 탈락했다는 것. 결국 팀별 예선 면제의 부작용이 불거지며 이 제도는 다시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하지만 이윤열은 이후로 예선을 뚫지 못했다.
  • [46] 믿기 어렵겠지만 이윤열은 데뷔 초에는 GG가 빠른 선수였다.
  • [47] 대표적으로 임요환의 각종사건이라거나 최연성의 이중계약 사건, 그리고 마서스....
  • [48] 전적상으로 볼때 조작범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뜬금없이 이윤열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윤열은 이 해 2006 e스포츠 진흥대상을 수상한다. 설마 이걸 예상한건가?, 협회에게 그런 안목이 있을리 없지.
  • [49] 2007 스갤 어워드의 찌질이 항목에 등극한 '머신'도 벼멸구다.
  • [50] 물론 스타리그>KPGA라는 인식은 여전했다. 이런 의식은 프링글스 MSL에 이르러서야 본좌론 떡밥으로 양대리그란 말이 튀어나오며 스타리그=MSL이라는 인식이 확고히되었다.
  • [51] 이 방송 다음주 토요일은 로스트사가 MSL 8강전 이윤열VS허영무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윤열은 허영무에게 3:2로 패배했고 붐의 저주는 현실이 되었다.
  • [52] 소속팀에 해당ID를 사용하는 프로토스 유저도 있지만 넘어가자.
  • [53] 스덕들사이에서도 이윤열의 어버버한 모습은 분명 놀림감이다.
  • [54] 홍진호는 똑똑하지만 사람 대하는걸 잘 못하는 이윤열은 차선이었고, 기가 세고 잔머리가 좋은 대마왕 강도경을 더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진이 인지도가 더 높은 이윤열의 출연을 원했다고. 참고로 제작진이 가장 원한 게스트는 임요환. 그리고 임요환은 다음 시즌플레이어로 출연하게 된다.
  • [55] 엄옹이 방송에서 "이젠 거의 속담처럼 쓰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정말 속담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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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7-17 19: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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