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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

last modified: 2014-11-21 23:03:13 by Contributors


1862년 7월 27일~1916년 11월 1일.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시절의 소설 작가, 친일파. 1862년 7월 27일 ~ 1916년 11월 1일. 호는 국초(菊初). 경기도 음죽(陰竹) 출생.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일본 관비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도쿄정치학교 강생으로 입학한 1900년까지의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유학 시절 우수한 성적을 기록해 러일전쟁 일본 해군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종군하면서부터 출세길이 열린다. 전쟁 이 후 일본 통감부의 추천으로 실세 이완용과 인연을 맺어 종전 후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들어간 것.

이 후 이완용의 추천으로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을 맡게 되었고, 이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신소설 집필에 들어간다. 만세보에 〈란봉〉 등 친일 소설을 연재하고, 1908년에는 각사라는 서양식 신파극 극장을 만들어 친일 희곡 〈은세계〉를 상영한다. 이 공(?) 때문인지 한일합방 이 후 총독부로부터 성균관 대사성직에 임명되어서 죽기 전까지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친일에 물들지 않은 비슷한 시기의 신소설가 해조 선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언어 강의 때 이 사람의 작품이 나오면 항상 "친일파이긴 하지만, 개화의식을 고취시킨…" 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미 80~90년대 교과서에서부터 친일파이니까 개화의식을 고취한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아니 그러자면 이광수는? 이런 반론도 많았으며 이해조를 재평가하자는 말도 많았다.

작품 내적으로 주인공의 미국 유학 부분은 "화성돈(워싱턴음역)에서 선진 사상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한 마디로 대충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이해조의 작품을 비롯해 당시 신소설 대부분의 작품에서 유학가는 장면은 이런 식으로 묘사된다[1] 당시 유학이란 개념은 선진국에 갔으니 당연히 선진문물을 배워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는 지극히 단편적인 사고였고, 따라서 유학해서 배우는 신학문의 실체와 그 구체적인 실천 과정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당시 집필을 하던 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신소설에서의 유학이라는 것은 일종의 수사적 장치처럼 행위의 구조 속에 끼워넣은 것이다[2].

이인직이 친일파 중에서도 자발적이고 악질 친일파라고 해서 그가 신소설이란 장르의 선구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찌됐든「혈의 누」는 1906년 6월에 발표됐으며 이는 최초의 신소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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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해조의 「구의 산」, 「춘외춘」, 「화의 혈」, 최찬식의 「안의 성」 등. 당시 유학장면이 나오는 신소설 치고 그 세부행적을 자세히 묘사하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 [2] 「한국현대문학사 1」, 권영민, 2002, 민음사,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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