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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last modified: 2015-03-15 16:01:34 by Contributors

Contents

1. 시인(1900~1929)
2. 가수(1947년 ~ )
3. 야구선수(1989~2013)

1. 시인(1900~1929)

1900.1.1~1929.11.3

본관은 인천. 본명은 양희(樑熙), 아호는 고월(古月). 대구 출신. 1920년에 장희(樟熙)로 개명하였으나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사용한 것이 본명처럼 되었다. 아버지는 병학(炳學)이며, 어머니는 박금련(朴今連)이다. 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중학(京都中學)을 졸업하였다.

문단의 교우 관계는 양주동·유엽·김영진·오상순·백기만·이상화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 1929년 11월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대표작으로 <봄은 고양이로다>가 있다.

2. 가수(1947년 ~ )

대한민국의 포크 가수. 1947년 10월 3일 경기도 오산시 출신[1]이며 1971년 "겨울 이야기"로 데뷔하였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후 1971년 DJ 이종환의 추천으로 데뷔했다. "겨울 이야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 "자정이 훨씬 넘었네" 등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6년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었고, "그건 너"가 그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악 활동을 중지했다. 이후 옷가게 등을 운영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1989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 한인 AM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코리아를 설립, 개국하여 2003년까지 사장으로 재임하였다. 1992년 4월에 LA 폭동이 일어났었을 적에는 24시간 비상방송을 하며 교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중국계 운영권자로부터 주파수 사용권을 임차하여 방송하고 있었던 라디오 코리아는 운영권자가 임차료 인상을 요구해 임차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2003년 12월 31일에 방송이 중단되었다. 이후 라디오 코리아의 사장직에서 물러났고, 운영권자와 새롭게 주파수 임차계약을 맺은 다른 사업자에게 사실상 라디오 코리아를 넘기고 귀국했다. 귀국과 함께 귀농을 결심한 그는 경상북도 울릉군으로 이주하여, 경상북도 도민 및 울릉도 주민으로 등록되었다. 2010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강호동, 유세윤, 올밴과 토크쇼를 가지기도 하였다. 2011년 5월에는 30년 만에 내놓은 신곡인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싱글로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에는 "경상북도 자랑스러운 도민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6월에는 라디오 코리아의 초청으로 다시 로스앤젤레스라디오 코리아 방송국을 방문하였다.

지금의 중노년 세대들에게는 이름 석 자가 기억날 정도로 유명한 추억의 가수이며, 그가 부른 노래는 이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는 중이다.

영화 "쎄시봉"에서는 진구현성이 이장희 역할을 맡았다.

3. 야구선수(1989~2013)


LG 트윈스
이장희(李將熙)
생몰년도 1989년 10월 16일 ~ 2013년 7월 15일
국적 대한민국
신체 175cm, 75kg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서울가동초-배명중-경기고-동국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2년 드래프트 7라운드(LG)
소속팀 LG 트윈스(2012~2013)

LG 트윈스 소속 야구 선수. 동국대학교 졸업 후 2012년 7라운드(전체 62순위) 지명을 받아 LG에 입단해 2군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 활동했다.

올 시즌 퓨처스리그 42경기 출전한 이장희는 최근 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며 7타점 타율 2할5푼5리를 기록 중이었다. 프로야구 통산 기록은 퓨처스리그 93경기 출전, 타율 2할5푼9리 12타점 22득점 2도루. 그의 마지막 경기는 6월 27일 두산전으로 3타수 3안타(2루타 1개) 1타점 1볼넷으로 전 타석 출루에 성공했다.

내야 유망주로 1군 진출을 노릴 법했으나 2013년 7월 15일 주차장에서 실족사로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국대학교 동창인 노성호와 팀 동료인 정주현 등이 SNS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며 팬들을 더 슬프게 했다. ▶◀

2년후인 2015년 3월, 유족들이 건물주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리하여 배상을 받게 되었다. 법원은 건물주가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 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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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는 화성시였는데 이 지역이 그 당시 화성군 오산면에 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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