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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last modified: 2015-03-19 14:30:1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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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대한민국의 연예인
2.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1. 대한민국의 연예인



젝스키스
블랙키스 화이트키스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
젝스키스 멤버.

동생으로 SWIT, 가당 출신의 이은주가 있다. 즉 매부가 양현석이다. 어린 시절 형사였던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이혼하는 등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신문배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병이 있으시던 어머니 병원비를 대는 등 거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길에 나가서 버려진 고무줄 같은 것들을 싹 다 주워왔다고 한다.

젝스키스 멤버로 발탁될 당시 김재덕과 함께 부산출신의 댄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강심장에서 은지원이 소속됐던 블랙키스 멤버 중 유일하게 복근을 자랑한 남자.

젝스키스 해체 후에는 솔로 앨범을 몇 장 내긴 했지만 별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한 때 충전이라는 곡의 ''booming then I fly'라는 부분을 서민정이 미친듯이 웃으며 '부밍데라'라고 따라 불렀다가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된 적은 있다. 하지만 초점은 서민정이 음주방송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맞춰졌었고 곡 자체의 인기는 그야말로 망했어요... 군대 대신 병역특례에 의한 산업기능요원으로써 메가 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하며 이 당시 메가에서 판권을 가져와서 제작하던 메탈슬러그 4의 사운드트랙이나 추후 서비스를 개시한 포포루의 카드 일러스트 등을 맡았다.

특히 포포루의 전신인 메가랜드 오픈시 메가에서는 이재진을 쿠사나기 쿄와 가장 닮은 연예인으로 선정, 이재진을 코스프레시켜놓은 사진과 함께 각종 홍보를 하기도 했다.

사실 잘 알려져있지 않겠지만 한 때 이재진의 꿈은 만화가였으며, 만화가 이빈이 가요계가 배경인 ONE을 그릴 당시 이재진과 만나 담소를 나눴던 적이 있다. 또한 인간극장 비스무리한 프로그램에서 일러스트를 보여주며 앞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애초에 데뷔때 고등학생이었는데 다니던 고등학교는 부산 공예고등학교(현 부산 디자인고등학교)였고 실기시험 보고 들어갔다. 젝스키스 자서전에 보면 입학 실기 시험 볼 때 빨래집게 그려서 합격했다고 한다. 병산업체에서도 그래픽 쪽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프로그래밍에 참여한 것이 아닌 것이라는 이유로 같이 병역특례비리에 휘말렸던 싸이 등의 동료 연예인과 함께 군대 다시 가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재진의 경우는 싸이랑 비교되기는 좀 억울할 만도 한 게, 싸이처럼 투잡을 뛴 것도 아니고 빽이 있어 회피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대체 복무 기간에 컴퓨터를 이용한 일러스트레이션쪽으로는 제대로 성실히 일했으나, 원래 목적인 전산 쪽에 해당이 안된다는 이유로 재입대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메가 앤터프라이즈라는 회사는 이후 하루아침에 회사가 없어지는 상황을 발생시키며 서비스를 하던 포포루등 기존의 라인업도 완전히 사라진다. 메가 앤터프라이즈는 한때 핑클등의 게시판 관리도 맡았던 적이 있으며 연예계와 게임계를 걸쳐서 뭔가 해보려고 했던 기업이었다. 이재진은 여차저차 이곳으로 끌려 들어와 각종 홍보에 간간히 이용되고 회사의 공중분해와 기타 상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측면이 많다. 당시 메가 앤터프라이즈에 다닌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회사에서도 꽤 얼굴을 볼 기회는 많았지만 정말 성실하게 근무한 것인지는 같이 다니던 사람들도 잘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메탈 슬러그 개발팀과는 층이 달랐던 문제도 있지만 메탈 슬러그 자체가 진행된면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엔 부친상을 당하고, 2008년에는 거의 절대적인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재입대 불과 몇개월 전 간경변 악화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우울증이 절정에 다른 것으로 추측된다. 현역 입대 후 정신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왔으며, 치료 목적으로 휴가를 나간 뒤 무려 한달 여 도피를 하다가 결국 붙잡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예인이라고 참작하지 말라던 의견이 있었는데, 위의 제시한 안습의 인생을 보자니...씁쓸하기는 하다. 그는 10살도 채 안된 어린나이부터 어머니와 여동생들 돌보는 소년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젝스키스로 활동하는 동안과 해체 후 솔로 활동시기까지 항상 성실의 아이콘으로 평가되었었다. 힘든 연예계 생활을 버텨나갈 이유가 됐던 어머니를 잃은 그가 극심한 우울증세를 안은 채 재입대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사실 가혹한 일이었다. 애초에 잘못이 있다면 그에게 지나친 처사를 내린 높으신 분들이 더 비난받아 마땅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후 보직 변경을 원하며 스스로 수색대에 지원. 더는 별다른 소란없이 군 생활을 하다가(물론 근무이탈 기간인 33일만큼 더 했다) 2010년 8월 10일. 결국 전역에 성공했다. 앞으로는 보다 행복한 삶이 되기를...

2011년 2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려 했으나 한 달 후,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 그만둔 뒤 한국에서 계속 백수(...) 활동을 하다가 결국 매부인 양현석의 도움을 받아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차려 운영 중이며[1],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 연예계로 복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2. 대한민국의 배드민턴 선수


오른쪽이 이재진, 왼쪽이 황지만

이름 이재진
생년월일 1983년 1월 26일
국적 한국
출신지 밀양
출신학교 밀양고 - 원광대학교
신체 사이즈 178Cm, 70Kg
소속팀 밀양시청(2005~ )

수상 경력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남자복식)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남자단체)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은메달(남자단체)
세계선수권 -
BWF 마스터즈 -
투어대회 우승 7회(남자복식)
6회(혼합복식)
토마스/우버컵 2위(2008)
수디만컵 3위(2001, 2005, 2007)

2008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동메달리스트.

1983년 1월 26일 생이다. 고향은 경상남도 밀양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라켓을 잡기 시작해서 선수로서 생활했는데, 주로 이름을 알린 것은 복식. 특히 지금은 이용대와 호흡을 맞추는 정재성과 먼저 호흡을 맞춘 선수가 바로 이재진이었다. 원광대학교 시절인데, 이 당시만 해도 철저한 무명의 선수. 이 때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이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문-하태권 조를 누르면서부터였다.

그 뒤 이용대가 등장하면서 조 개편이 이뤄져, 이재진은 고향 후배인 황지만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효정과 함께 했던 혼합복식도 빠지고 남자 복식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는 세대교체 와중이던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32년만에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따른 개편. 전반적으로 남자 복식에서는 제 2의 조합에 가까웠지만, 2007년 독일 오픈 우승 등, 꾸준한 성과는 내고 있었다.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대를 모았던 이용대-정재성 조가 조기 탈락하는 가운데 이재진-황지만 조는 4강까지 살아남았다. 비록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3,4위전에서 덴마크 조를 상대로 2:1의 승리를 거두면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살짝 비켜있던 선수들에게는 가장 기쁜 순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실업팀 선수로 뛰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 유지를 위해 복싱을 시작했는데, 2011년 관장이 한 번 실력이 괜찮으니 재미삼아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했는데, 프로복싱 신인왕전 1차전에서 이겨버렸다!!!! 선수 본인도 깜짝 놀라서 자신은 배드민턴을 계속 할 거라면서 2회전은 기권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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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매부인 양현석 소유의 건물에 개업했으며, 홍대 한복판으로 공시지가가 평당 1억이 넘는 곳이다. 흠좀무
  • [2] 근데 어차피 복싱인구의 감소로 더 파이팅처럼 신인왕전에 대단한 선수들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슨 종목이던 국가대표 출신이면 신인왕 1차전 정도는 어지간하면 이긴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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