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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last modified: 2015-04-12 13:18:15 by Contributors

Contents

1. 멀티 엔터테이너 이정현
1.1. 연기활동
1.2. 가수 데뷔 직전 활동
1.2.1. 1999년 3월 12일 발매 : 구피의 3집 후속곡 게임의 법칙
1.2.2. 1999년 8월 20일 : 조PD의 2집 타이틀곡 Fever
1.3. 가수 활동
1.3.1. 1999년 10월 2일 발매 <Let's go to my ☆> - 와
1.3.1.1. 바꿔
1.3.2. 2집
1.3.3. 3집
1.3.4. 4집
1.3.5. 4.5집
1.3.6. 5집
1.3.7. 6집
1.3.8. 트리비아
1.4. 해외 진출
1.5. 한국 복귀 이후
1.6. 팬덤
2. 前 프로게이머 이정현
3. 농구선수 이정현
4. 남자 가수 이정현
5. 정치인 이정현

1. 멀티 엔터테이너 이정현

이름 이정현(李貞賢)
출생 1980년 2월 7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체 158cm, 40kg, O형
학력 개봉초-개봉중-명덕여고 2부 야간-성지고-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부
데뷔 1996년 영화 '꽃잎'
가족 5녀 중 막내
소속 에이바필름 앤 엔터테인먼트
팬카페트위터
한국멀티 엔터테이너(가수배우). 그리고 한국 최초의 테크노 전사.
원조 오리아나 한국의 레이디가가가 아니라 레이디가가가 미국의 이정현.

본래 연기력으로 크게 주목받은 아역 배우[1]였으나 1999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인 '와', '바꿔' 로 크게 히트를 얻어 그 해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왕을 차지했다. 신인상 덕후 각종 CF와 '반' 같은 후속곡이나 '줄래' 같은 이미지 체인징도 시도하는 등 2000년대 초반 여러 가지로 주목을 끌게 만들었던 연예인이다.[2]

CF 활동에서 큐트한 이미지로 밀고 나갔는데 KT 016 CF에서 "잘 자 내 꿈 꿔~" 하는 대사가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기도 하였다. 이 CF 속에서 조성모와의 분위기 때문에 열애설까지 터지기도 했다.

이후 중국에도 진출하여 꽤 많은 인기를 모았다. 이때 돈을 꽤 벌었는지 현재 강남구 도곡동의 최고급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체구에 얼굴만 보면 나이에 비해 성숙한 외모였다. 하지만 현재는 임수정보다 더한 절대 동안으로 작은 체구와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2015년 기준으로 방년 36세다. 게다가 빠른 80년생이다.

1.1. 연기활동

  • 1996년 4월 5일 개봉 꽃잎 (A Petal)


    장선우 감독의 작품.[3] 희극에나 나올 법한 광년이 같은 꼬마 여자가 포스터부터 시작하여 머리에 꽃을 달고 광기를 품은 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보여준다. 이때의 이정현은 노출까지 감행하는 등 지금과는 몰라볼 정도로 독기 어린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 중간에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여자 귀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그 유리를 머리로 깨고 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머리로 깼고 정말로 기절한 것이다(...).

    추가로 영화 내용을 몇 자 더 적자면 영화 초반부에서 장 역을 맡은 문성근에게 검열삭제당한 후 을 따라가려 하는 이정현에게 문성근은 "미친년아 꺼져!"라는 뉘앙스의 말을 외치며 돌을 던진다. 물론 미친년을 쫓기 위해 한 연출이였다. 그러나 실제로 문성근이 던진 돌이 이정현의 발에 맞았다!! 영화상에서는 편집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절뚝이며 문성근을 쫓아가는 이정현을 보며 연기력이 일품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성근이 처음 던진 돌은 화면상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돌이였지만 두번째로 던진 돌은 화면에서도 뚜렷히 보이고 약 어른 주먹의 절반 정도 크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처음 문성근이 던진 돌에 이정현이 실제로 깜짝 놀라서 왼쪽으로 피하고 문성근은 이정현을 피해서 재차 짱돌을 던진다. 그러나 진짜 놀라버린 이정현은 갈팡질팡하다 문성근이 돌을 던진 방향으로 이동, 발(아마 무릎이나 발목일 거라 보인다)에 정확이 들어맞는다. 때문에 다리에 가해진 심한 충격으로 실제 쓰러지게 되고 발에 맞은 돌은 이정현의 키만큼 튀어오른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어린 마음인지 영화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실제 절뚝이는 발을 이끌며 문성근을 쫓아간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그래도 이정현 본인도 너무 아팠는지 쫓아가다 쓰러지고 휘청거리는 등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감독이 컷 안 한 게 용하다

  • 1997년 9월 13일 개봉 마리아와 여인숙 (Maria and the lnn)
    선우완 감독의 명작. 심혜진김상중, 신현준 주연인 영화.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의 어두운 면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다. 여기서 이정현은 심혜진의 딸인 마리아로 등장한다. 특별 출연한 박상민과의 파격적인 베드씬이 있다. 왜 파격적이냐 하면 개봉 시기와 그녀의 출생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정식 성인이라고 해도 빠른 1980년생에다가 겨우 고3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이다. 당시 은행나무 침대로 여성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던 신현준이 부모의 불륜으로 폐쇄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역할을 연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상중은 지능지수가 7살인 형 역할로 나왔다. 심혜진은 이들 형제를 유혹하여 여인숙을 차지하려는 천하의 개쌍년 역할을 맡았다. 영화 분위기가 에로틱하게 진행된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작품성도 좋은 편인데 하필 한석규접속과 추석에 개봉한 바람에 흥행 스코어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고야 만다.

이 외에도 1999년 <침향>과 2000년 <하피>가 있으며[4] 드라마 활동은 1996년 <마음을 열어>, 1997년 <일곱 개의 숟가락>에서 아역으로 활동하였다. 가수 데뷔 이후 성인 연기에도 발을 들였으나 2001년에 출연한 <아름다운 날들> 이외에는 한동안 드라마 출연작이 없다가 <대왕 세종>에서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로 출연했지만 성대 결절로 하차하였다.

2006년에는 최지우, 타케노우치 유타카 주연의 일드인 <윤무곡~론도>에서 최지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2011년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하였다.

2012년 '범죄소년'이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간만에 대한민국 영화 연기 복귀작. 도쿄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33살짜리 엄마 역할로 나왔다. 영화 평도 좋고 연기 평도 상당히 좋아서 한국어로 연기한 작품이 적었다는 게 아쉬울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배우로 활동했던 초기 영화 속에서 중견급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 미칠 듯한 연기력을 보였던 것을 기억해 배우로의 활동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있다. 또한 본인도 배우로의 복귀를 상당히 열망하고 있으며 일본 쪽에서 활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단 2012년 범죄소년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했으며 2014년에는 최종병기 활 김한빈 감독의 신작인 명량에도 출연, 연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그 김한빈 감독과 열애설이 떴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 중.

2015년 SBS 주말 드라마 '떴다 패밀리'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출연했다. 대왕 세종 이후 6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였지만, 시청률은 다른 방송사 주말 드라마에 밀려 참패.

1.2. 가수 데뷔 직전 활동

1.2.1. 1999년 3월 12일 발매 : 구피의 3집 후속곡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에서 메인 보컬인 이승광의 파트를 대역하는 컨셉으로 립싱크하는 형태로 출연하였는데 뮤직비디오 속에서의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이정현이 직접 부른 거라 착각하는 이들도 꽤 많았을 정도며 이 뮤직비디오 출연을 계기로 제작자들의 눈에 띈 그녀는 가수 데뷔로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1.2.2. 1999년 8월 20일 : 조PD의 2집 타이틀곡 Fever


이 곡에서는 피쳐링으로도 참여하였다. 이후 이정현이 가수로 데뷔하면서 이 곡도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지만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이기 때문에 묻혀있다가 재발견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정현이 처음 나왔을 때 '조PD fever에서 노래한 가수'라는 식으로 홍보했다.

1.3. 가수 활동

1.3.1. 1999년 10월 2일 발매 <Let's go to my ☆> - 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새끼손가락 마이크와 외눈박이 부채

대중들의 이목이 점차 수그러들 때쯤 정규 음악 프로그램에 복귀한다. 테크노 음악에 국악가 이태백의 아쟁 연주를 접목시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였으며 단조로운 테크노 리듬 속에 을 접목시켜 흥을 돋구는 등 음악적 시도가 돋보이는 앨범. 흔히 말하는 외눈박이 부채와 손가락 마이크로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시기 초등학생들도 이정현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클럽 음악은 모조리 테크노가 접수. 지금도 이정현 하면 1집 때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당시 대한민국인터넷 보급의 절정 시기였으며 IT 산업이 주도해 갔던 시기였던지라 그녀의 인기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사이버 시대를 맞이하는 시대상의 특이한 신비함과 융합되어 새로운 시대 - 새 천년, 밀레니엄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당시 '와'를 첫 선을 보이는 자리에서 저 퍼포먼스를 직접 본 관객들은 얼어붙었다. 저런 걸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2주, 3주 지날 때마다 '와'는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기 시작했고 결국 노래를 선보인 지 한 달이 넘기기 전에 1위를 찍고 말았다. 당시의 영상 자료를 찾아보면 중간에 절을 하는 퍼포먼스가 나오는데 이는 자신을 1위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뜻의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이정현은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방송 3사를 전부 석권한 뒤에 무대마다 전부 절을 해야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2010년대 기준으로 보자면 미래 사이버 세계를 넘어서 그냥 다른 차원의 노래로 보인다

참고로 영상에서 보이는 부채의 초록색 눈동자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대 당시 소품 중 비녀는 본인이 주운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직접 손질하여 사용한 것을 토토가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때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 및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요차트 1위를 석권하기도 했으며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게 된다.

그 뒤 이 곡을 이탈리아의 Bandido라는 클럽 DJ가 표절했는데 'Vamos Amigos'란 이 곡은 유럽 차트에서 1위를 할 만큼 굉장히 히트를 쳤지만 주요 멜로디며 코러스며 랩 등 대놓고 누가 봐도 표절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다 베꼈다. 이에 PD수첩에서 직접 이탈리아로 찾아가 Bandido와 인터뷰를 했는데 뻔뻔스럽게도 사과는 못할망정 오히려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당신 곡을 왜 베끼겠냐'란 태도를 보이더니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제시하자 '와'가 한국의 민요인 줄 알았다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늘어놓고 취재진이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알고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도중에도 Bandido와 매니저로 보이는 동행인이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하며 한국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5] 게다가 곡의 작곡가인 최준영에게 유럽 등지에서 '와'와 똑같은 노래가 잘 나가던데 혹시 와가 이 노래를 표절한 거 아니냐는 역표절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 곡은 국내에서 발매된 팝 컴필레이션 앨범에 버젓이 수록되어 관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후 국제 변호사를 선임해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을 세우자 그제서야 이탈리아 음반사가 표절 사실을 시인했으며 2009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이야기가 잘 되어 Bandido 측이 이정현 곡의 저작권을 구입해 이젠 문제가 해결된 모양.

또한 조PD, 그리고 정식 데뷔 전이었던 싸이가 프로듀서 겸 랩으로 참여했으며, 본 앨범의 수록곡 중 I Love X는 싸이 정규 1집 앨범에 리믹스되어 재수록되기도.

인트로, 아웃트로에 해당하는 -00001, -00002는 이탈리아어한국어를 반반씩 섞어서 만든 것이라고, 굳이 이탈리아어를 고른 이유는 발음이 예뻐서였다고 한다. 속표지에 이정현 본인이 직접 밝힌 내용.
1.3.1.1. 바꿔

레이디 오브 체인지 칼날여왕님 현실 재림

'와' 만큼이나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고 당시 활동하던 H.O.T.god의 인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당시의 한국 사회상+정치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인기곡(...)이기도 했으며 초등학생들도 따라했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정현 자신은 이 곡을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꿔를 활동한 시절은 2000년 1~2월 사이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임박한 시점이다. 즉 선거철이라는 소리. 이로 인해 선거에 출마한 수많은 국회의원 후보들이 이 곡을 이용하기 위해 최준영을 직접 찾아가는 해프닝을 빚었다(...). 거기다가 16대 총선은 대규모 낙천, 낙선운동이 있던 선거였기 때문에 후보들은 이 곡으로 홍보를, 반대로 시민단체는 그런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 곡으로 비난을 했다고 한다.

이 곡의 무대 의상을 당시 용가리를 제작 중이던 심형래가 도맡아 해준 적이 있다. 날개가 달린 뭔가 기계틱한 의상이 많은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저 날개는 한 쪽당 무게가 8킬로 정도였다고 한다. 거기다 이정현의 옷이 미달이에게 맞아서 미달이가 이 의상을 입고 바꿔를 립싱크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때 미달이의 나이가 10살(...).

데뷔 앨범에서 연달아 대박을 거두면서 1집 앨범 역시 초반부터 불티나게 팔리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최종 판매량은 53만장으로, 이정현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아있다.

1.3.2. 2집

이 외에도 2집 평화의 <평화>라는 곡에서는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근대 유럽풍 장교복으로 등장했으며,[6] 러시아에서 직접 뮤비를 촬영해서 뮤직비디오 촬영예산 100억이라는 이슈를 몰고 온 적도 있으며 이후 활동에서는 실제로 이집트에서 뮤비를 찍고 이집트클레오파트라 컨셉의 곡 <너>로 활동했다. 테크노 일색이던 노선을 약간 틀어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줄래>에서의 인형 같은 모습은[7] 이미지 체인지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다.

2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중간에 2.5집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촬영 스케줄과 녹음 일정이 많이 겹쳐 퀄리티 저하로 인해 발매를 취소했다.

여담으로 지난 앨범의 조PD, 싸이에 이어, 양현석 Perry 등의 YG 소속 인물들, 이현도 등의 힙합 뮤지션들이 프로듀서로 모습을 드러냈다. 1집의 대성공으로 이전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게 앨범이 제작되었는데, 아마 이정현 역대 앨범을 통틀어도 이만큼의 투자를 한 앨범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앨범에 공을 많이 들였고, 활동곡도 유일하게 네 곡씩이나 된다.(너, 평화, 줄래, 잘먹고 잘살아라) 너의 경우 음악방송에서 2주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줄래 역시 상위권에 랭크되면서 이전의 인기를 이어갔지만, 투자가 워낙 많이 된 탓에 그리 큰 수익을 얻은 앨범은 아니었다. 특히 평화의 경우 애초에 타이틀곡을 염두해두고 상당한 규모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지만 결국 '너'로 바뀌면서 제대로 활동조차 못할 정도였다. 최종 판매량도 38만장으로 전작에 비해 15만장이 감소하였다.

1.3.3. 3집

3집은 2집이 발매되고 1년 5개월이 지난 2001년 11월에 발표했는데 타이틀곡 <미쳐>에서는 마술사 컨셉으로 등장했다. 이 해에는 대부분의 댄스 가수들이 R&B 가수들한테 밀려 전반적으로 하락세였는데 이정현도 피해갈 순 없어서 <미쳐>는 공중파 음악방송 TOP 5에 겨우 걸쳤다(...). 하지만 후속곡 <>을 들고나와 흥겨운 멜로디에 중독성 강한 댄스로 다시 인기를 회복했고 본래 1월까지 활동하려던 계획을 늘려 3월까지 활동하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사실 하락세의 원인은 타이틀곡의 컨셉에 있었다. 원래 타이틀곡으로 예정되었던 <수리수리 마수리>를 급하게 접고 <미쳐>로 타이틀을 잡았다고 하는데 의상만 마술사 컨셉이지 이정현 특유의 퍼포먼스가 거의 소멸되고 그냥 흔한 섹시 여가수의 무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전보다 임팩트가 떨어졌었다.

1년 반이라는 긴 공백기 동안 브라운아이즈, 왁스라는 혜성이 등장하면서 가요계의 판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발라드가 점점 강세를 띄는 기간에 컴백, 특히 온갖 차트를 씹어먹던 리즈시절의 god와 활동이 완전히 겹치면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원래 '수리수리 마수리'를 타이틀곡으로 하려고 했지만 앨범 발매를 앞두고 급히 '미쳐'를 타이틀로 정했는데, 컨셉은 수리수리 마수리때의 마술사 컨셉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바람에 곡과 컨셉이 따로 논다는 평이 많았다. 그나마 '반'이 기존의 테크노 리듬에 복고적 분위기를 입고 신나는 댄스곡으로 나이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오랫동안 인기를 얻으면서 체면치레는 했다. 그러나 한방에 확 터뜨리는 인기가 아니여서 1위를 하지 못했다. 음반판매량도 20만장에 턱걸이하면서 전작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타이틀곡으로 망할 뻔하던 것을 반으로 회복한 셈인데, 이 때문에 다음 앨범의 음악적 방향은 '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1.3.4. 4집

이정현은 대학 생활을 동행하며 4집 준비에 들어가는데 8개월의 공백기 끝에 2002년 11월 야생녀 컨셉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후크송의 시초라고 할 만한 타이틀곡 <아리아리>는 꽤 많은 인기를 누렸고 1위 후보까지 올랐지만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에 밀렸다 무대에서 백댄서들과 밀가루를 얼굴에 바르는 퍼포먼스도 했었다. 역시 참신하다. 후속곡 <달아달아>에서는 전통 무예로 변신하여 무대에 대형 붓을 가지고 나오기도 했고 4집으로 전작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부터 동안과 꿀피부가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한다. 야생녀, 전통무예를 하긴 하는데 꽃다운 10대 소녀의 포스가 풍기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기와는 달리 앨범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3집의 미쳐가 반응이 저조하고 반이 뒤늦게 순풍을 달고 히트하면서, 당시 복고적 분위기의 클럽풍 노래였던 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앨범 전반적으로 나이트에서 나올 테크노 리듬이 도배되어 있는데 당시 발라드, R&B가 강세를 보이던 가요시장에선 한물간 사운드 취급받는 장르였다. 그런데 파격을 상징하는 이정현이 이미 진부해져버린 테크노로 도배하며 싸구려 나이트풍의 노래들을 주 무기로 사용했으니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활동곡 '아리아리'와 '달아달아' 모두 각각 야생녀, 전통 무예라는 컨셉이었지만 음악적으로는 다른 가수들이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흔한 테크노 사운드였다. 음반판매량은 17만장으로 전작에 비해 소폭 감소하였고, 더이상 테크노로는 앞으로의 활동을 할 수 없을거란 판단을 했는지 이후 앨범에서 테크노는 완전히 지워졌고, 따라서 이정현의 아이덴티티였던 테크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앨범이 되었다. 더불어 이정현이 마지막으로 랩을 했던 앨범이자, 후속곡 활동을 했던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다. (더블 타이틀이었던 2009년 미니앨범은 예외)

그런 이정현 4집에 숨겨진 명곡이 있는데 토와 테이가 작곡한 <Brighter Than Sunshine>이다. 또한 <Time Machine>이라는 곡은 나이트풍 댄스곡이 아닌 그럴듯한 업리프팅 트랜스이다.

1.3.5. 4.5집

4집 활동을 마치고 그 해 여름(2003. 07)에 'Summer Dance'라는 곡으로 컴백했다. 기존의 강렬하게 쎄 보이는 컨셉과는 달리 상큼하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지 변신을 했는데, 강렬한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곡이었다. 다만 스페셜 앨범이어서 그랬는지 쿨이라는 경쟁자가 있어서였는지 반응은 뜨뜻미지근한 편으로, 망했다고 하는 미쳐보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음악방송에서 7위 안에 들어가는 정도로 나름대로 괜찮은 인기를 이어갔었고, 현재까지는 이정현의 음악 커리어에서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할 정도는 된다. 이 이후의 곡들 반응이 워낙 시망(...)이었으므로...
앨범 판매량은 5만 5천여장. 4집의 1/3 수준에 그쳤지만, 5집보다는 많다...

1.3.6. 5집

다음 해인 2004년에 발표한 5집 <따라해봐>에서는 2집 때 시도하려던 라틴 컨셉을 시도했는데 결과물은 세뇨리따 컨셉이다(...). 하지만 문제는 노래가 너무 뽕삘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노출이나 섹시한 안무, 퍼포먼스 등을 선보였지만 노래가 너무 뽕삘이었기에 너무 안 어울렸다. 그래도 대중적으로는 괜찮은 멜로디를 지녔기에 소소하게 인기를 누리긴 했다. 하지만 활동을 시작한 지 1달 정도 되었을때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되어 후속곡도 없이 5집을 급하게 마쳐버린다.

소속사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와중에 일본 진출을 하면서 활동은 겨우 한 달밖에 못한 비운의 앨범.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싱글이 없었고 앨범 위주였기에 보통 컴백하면 후속곡까지 포함해서 3~4개월 동안, 타이틀곡은 두 달 가량 활동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지금처럼 5주 활동 후 후속곡 없이 종료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덕분에 홍보조차 제대로 안 되어 인기를 누릴 여건을 못 만들었다.

그러나 계약 탓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컨셉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라틴 댄스는 이미 4~5년 전에 백지영, 홍경민이 같은 컨셉으로 재미를 봤고 박미경, 소찬휘도 시도했던 컨셉이었다. 참신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물간 유행을 뒤늦게 따라한 듯한 인상만 주었고, 결과적으로 진부하다는 혹평을 듣게 되었다. 기대 이하라는 말은 3집부터 조금씩 흘러나오던 이야기였지만 이 앨범에서 더욱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이 무렵부터 이정현이 컨셉 고갈이 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초반부의 강렬함을 원했던 팬들에게 전혀 만족을 주지 못했던 앨범. 그리고 이 기우는 다음 앨범에서 제대로 비수를 꽂는다(...). 앨범 판매량은 2만 8천여장이 나왔는데, 집계 첫 달에 저 판매량을 찍고 2004 최종결산에 등장하지 못한 것을 보면(당시 마지막 순위인 100위가 2만장이었다.) 실제 판매량은 2만장 내외에 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터차트에서도 2만 5천여장에 그쳤다.

1.3.7. 6집

정규 6집 타이틀곡 <철수야 사랑해>는 지금까지의 이정현 음악 활동 커리어에서 빼내고 싶을 정도로 정말 무미건조한 컨셉과 노래로 정말 대차게 망했다. 사실 본래 6집도 파격적인 컨셉을 생각했었으나 "항상 파격적인 컨셉을 밀고 나가던 이정현이 반대로 얌전한 컨셉을 시도하면 역으로 참신하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한다. 결국 그 생각이 망하는 지름길이... 그렇게 6집 활동을 마감했다.

그래도 아무 화제 없이 조용히 흘러갔던 5집에 비하면 대중적으로 호기심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철수야 사랑해'라는 특이한 타이틀, 병맛 넘치는 가사와 뮤직비디오 때문에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화제성과 대중적인 관심도만 보면 5집보다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정작 수입과 직결되는 음원, 음반이 시망이었다. 음악방송 순위에서도 최초로 10위 안에 들지 못했을 뿐더러 음반판매량은 고작 6천장에 그쳤다.

1.3.8. 트리비아

바비인형 덕후로 알려져 있다. 집에 꽤 많은 양의 바비인형을 콜렉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도 이걸 잘 활용해서 '줄래'와 'V' 뮤직비디오 등에서 바비인형을 이용한 연출을 하기도 했다.

이정현의 가수로서의 활발한 활동은 그의 연기력이 큰 일조를 하였다. 지금이야 다시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바꿔'의 무대의상과 안무마저 당시에는 카리스마 여전사라며 평가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눈빛 연기와 무대 장악력을 보였고, 앨범 때마다 수많은 컨셉의 변화를 줬음에도 전혀 무리없이 소화하고 가요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절륜한 가창력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의 하이톤을 댄스 음악에 맞춰 이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던 여성 가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시절이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걸 보여주며 대중이 자신에 기대하는 요구를 만족시키던 이정현은 엄정화에 이은 2세대 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각 곡에 대한 무대 컨셉과 그에 따른 의상 컨셉 등을 직접 고안하고 프로듀스하는 모습들 때문인지 '한국의 레이디 가가'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기도 하는데, 실제로 아리랑 TV에서 했던 인터뷰를 보면 <와>의 핵심 컨셉트였던 동양적인 분위기, 외눈박이 부채, 새끼손가락 마이크 등을 프로듀서가 아닌 이정현이 직접 고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톡깨놓고 보면 레이디 가가의 데뷔보다도 10년을 더 앞서서 이런 무대를 선보인 것이니 '한국의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 레이디 가가가 '미국의 이정현'이라고 해야할 판.

1.4. 해외 진출

이정현은 한류 1세대로 통할 정도로 2000년부터 해외 활동을 시작했는데 시작점이 중국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출한 베이비복스H.O.T.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이때까지는 중국에서 정식으로 활동하는 건 아니고 그냥 한국 가수가 중국에서 자주 공연을 하는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중국어로 된 앨범을 낸 건 2008년이었는데 타이틀곡 <Love Me Love Me>가 중국 내에서 <와>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각종 CF, 콘서트, 영화 등으로도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중국엔 이정현 폰과 이정현 냉장고 등이 나올 정도. 하지만 이런 바쁜 활동으로 인한 성대결절로 대왕 세종의 주요 배역에서도 내려와 하차를 해야했다. 오프닝만 봐도 이정현은 주요 인물인 궁녀에서 빈이 된 신빈 김씨로 나오지만 불과 3개월 만에 하차.


2004년에는 일본에도 진출했는데, <와>를 일본어 버전으로 편곡하고 재녹음해서 발표했다. 그렇게 싱글만 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나 싶더니 데뷔 무대를 홍백가합전에서 치룬다.[8] 그렇게 첫 싱글은 일명 홍백 버프를 받아 꽤 화제가 되었으나 오리콘 차트 26위에 그쳤고 그 다음 싱글은 70위대로 떨어졌다. 결국 한 세 달 정도 활동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일본 오리지널 곡인 <Heavy World>는 팬들에게 사랑받는다.

트리비아로 홍백가합전 당시 이정현은 붉은색의 한복을 입고 출연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홍백가합전은 연말 행사라는 성격상 일본 가수들이 기모노를 입고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현이 한복을 입은 것과 연결시켜서 '일본 방송사에서 기모노를 입으라고 강요하였으나 이정현이 이를 거부하고 한복 착용을 강행했다'는 루머가 있다. 이정현 본인은 '일본 방송에 한복을 입고 나오는게 두렵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와는 별도로 정말 일본 방송사에서 기모노를 강요했는지는 미지수. 이정현의 저 발언도 실제 일본 방송사의 압박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비롯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당시 일본에서 이정현의 한복 착용에 대한 논란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1.5. 한국 복귀 이후

2009년 새 앨범을 들고 복귀했다. 카리스마 컨셉의 타이틀곡 'Crazy(E-TRIBE 작사, 작곡)'보다 귀여운 콘셉트의 서브 타이틀곡 'Vogue Girl (It Girl)[9](김이나 작사, 이민수 작곡)' 위주로 활동했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햅번 등의 코스프레를 한 적도 있다. 'Crazy'는 과연 퍼포먼스의 여왕다운 무대를 펼쳤으나 노래가 대중적이지 못했는지 화제만 되고 정작 흥행에는 실패했다.

2009년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가요제에서 전진과 듀엣 카리스마로 출연 당시 심사위원인 무한도전 에어로빅 특집을 도와(?)준 염정인씨는 그룹명 카리스마를 마음에 들어했다. 성적은 금상. 사실 그룹명 덕을 본 거다. 물론 음악 역시 우수. 작곡은 SG워너비 전담(?)인 안영민씨. 당시 안영민이 샘플곡을 들려주자 3초만에 커트 쳐버렸고 아예 기계를 뻑나가게 했다.

이후 중국에서 대하사극 '공자'에 출연했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정현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공항 X 레이에서 실총과 유사한 물건이 포착되어 세관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실총은 아니고 악세사리다. #

2010년 7집 컨셉을 007로 고퀄리티 티져를 공개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이번엔 시대를 역행한 촌스럽디 촌스러운 타이틀곡 '수상한 남자'가 또 대차게 망했다. 문제의 파격적인 퍼포먼스 7로 승부하려다가(...)

2013년 7월 22일 싱글로 컴백한다 곡명은 V. 놀랍게도 뮤직비디오 감독이 박찬욱이다. ㅎㄷㄷ...뮤비 티저로 보아선 유령신부 같은 기괴한 느낌일 거라고 예상되었으나 사실은 톡톡 튀는 호러 코미디 컨셉이다. 뮤비에는 2013년 개봉 목표로 제작중인 영화 '명량'에서 호흡을 맞춘 진구가 출연한다.

한편 컴백 바로 전주 뮤직뱅크에서는 뮤비 티저들을 센스 있게 편집하여 컴백 예고를 했으나 음악중심새파랗게 어린 젊은 후배들만 f(x), 비스트의 컴백 예고만 했다. 한편 엠카운트다운의 경우 결방으로 예고를 할 수 없었다. 무대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출연하며 탁한 색의 옷을 입은 백댄서들과 함께 호러하면서도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V' 활동 중 음악중심에서의 대우가 영 좋지 않은데 첫 주에는 야외무대였는데 관중석을 표정이 뚱하고 시큰둥한 관중만 잡아서 안타까웠는데 8월 10일자 방송에서는 기어이 팬들이 뿔났다. 3분 16초 정도밖에 안돼는 노래를 잘라먹었는데 그나마도 당사자인 이정현한테는 사전 예고조차 하지 않은 탓에 2절에서 갑자기 노래가 중간이 끊기고 넘아가자 안무팀도 이정현도 안무를 틀리는 실수를 했고 사전녹화였었기에 다시 부탁했으나 싸가지 밥 말아 처드신 PD는 거절했다. 중후반의 무대를 보면 당황한 모습이 드러난다. 팬덤 내에서는 음악중심이 아니라 거의 악의 중심악의 축으로 찍혔다.

그래도 아직 중국에서는 인기가 있는 모양이고 레이디 가가에게 러브콜을 받아 계약도 체결했다고 하니 상황을 두고 보는 게 좋을 듯.

여담이지만 데뷔한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 정말 안 늙는다. 30대 중반에 들어섰는데도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을 정도다. 절대 동안의 극치. 실제로 담배를 대단히 멀리한다고 한다. 담배 대신 방부제 잡수세여?

2014년 12월 20일, 무한도전 토토가에 섭외되었다. 변함 없는 초 절정 동안을 보여주며 무도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게다가 당시 등장한 멤버들이 동갑인 하하를 제외하고 전부 오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부르는데 이 말투가 오빵~이라 멤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정신 차려. 당신들 유부남이야 그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귀여운 모습만 이슈되지는 않았고 아이디어북[10]을 내놓으면서 무대 설정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는 등 가수로서도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이 날 방송에서는 3,000만원 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카페 바닥에 서슴없이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 많은 여성 시청자를 멘붕에 빠뜨렸다. 또한 입고 나온 야상 역시 1000만원 대의 제품[11]이다. 그리고 본공연에서는 소품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 쓰는 공연 장인의 모습을 보여줘 무대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여담으로 화면에 잡힌 이정현의 방 거실에는 플레이스테이션 3가, 그것도 참치가 있어 뭇 겜덕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더해서 레고까지, 그것도 테크닉 42009가 방부 처리의 비법은 덕질?

1.6. 팬덤

다음에 있는 공식 팬클럽 명칭은 'Feel2ya(필이야)'.

풍선 색은 데뷔 때부터 금색(골드) V활동 들어가면서 풍선과 함께 처음으로 응원봉을 제작했다. '와' 시절의 모습을 간략히 나타낸 마크와 영어로 'LEE JUNG HYUN, I LOVE AVA[12]'라고 쓰여있다.

팬덤계 사이에선 전설로 꼽히는 팬덤.#

3집 반 활동 시절 엠넷 방송에서 고무장갑 응원을 했던 카밀리아보다 한 발 앞선 목장갑 응원을 선보였는데 이때 팬은 맨 앞에 앉아있던 4명 뿐이었다. 근데 이 팬 4명이서 웬만한 아이돌 팬덤들 씹어먹은 엄청난 목청을 자랑해서 전설의 응원 영상으로 손꼽힌다. 이 덕분에 방송 카메라도 보고 감동받아 이들을 두 차례나 잡았으며 이후 우스갯소리로 도는 게 '이정현 팬 2명이면 타 가수팬 50명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한 '미쳐' 활동 때는 카메라로 추정되는 마이크가 이정현의 턱으로 돌진해 가격한 사건이 있었는데[13] 해당 방송국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거의 폭주하다시피 보내 서버가 다운되어서 결국 사과문까지 받아낸 전적도 있다.

'V' 활동 당시 크레용팝 팬덤과 마찰이 일어날 뻔 했다. 엠넷 무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이정현의 'V' 무대가 시작됐는데 팝저씨들의 '크! 레! 용! 팝!'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그대로 전파를 타서 논란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정현의 무대는 사전녹화본으로 녹화본이 틀어진 상황에서 실제 무대 위에선 아직 크레용팝이 있는 상태였고 그때 응원 소리가 이정현의 무대에 섞여 들어간 것이었다. 크레용팝의 팬덤은 사과의 의미로 이정현 'V'의 노래 응원법을 외워 타 무대에서 응원해주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공연에서는 '와' 이정현이 쓰는 부채의 축소판 600개를 제작하여 관객에게 미리 나눠줬고 이정현이 '와' 를 공연할 때 관객들이 이 부채를 들고 이정현의 춤을 따라하면서 공연장을 한껏 달구는 데 성공. 역시 가수나 그 팬이나 클래스는 영원한 듯.

2. 前 프로게이머 이정현

이정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도 있었고 스타크래프트에도 있었다. 현재는 둘 다 은퇴했으며 자세한 건 항목 참조.

3. 농구선수 이정현

현역 농구선수로는 남자 선수도 있고, 여자 선수도 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4. 남자 가수 이정현


1966년 출생. 1과 동명이인. 호주 교포 출신으로 1988년에 데뷔했다, 지금은 1의 성공으로 많이 잊혀졌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가 몇몇 있는 8, 90년대 추억의 가수. 가끔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흐르곤 한다. 당시에는 제법 인기를 끌었는데 2집이 히트 칠 무렵에 한 여성 스토커에게 시달리던 일도 있었다.

1989년 당시 인기 쇼프로그램 KBS '젊음의 행진'에서 이상은과 함께 MC를 보기도 했다. 당시 영상을 이상은 항목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곡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1990), '그 누구보다 더' 등등 30~40대들은 이정현하면 2보다 1을 기억할 것이다.

웃기게도 노래방에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부르면 노래방 기계 화면에 나오는 영상은 1번 항목의 그 여자 이정현이 '바꿔' 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코미디언 이용식의 조카이다.

1992년 3집 음반을 발표한 뒤에는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로 주로 활약하고 있다.

5. 정치인 이정현


정치인은 원칙적으로 작성제한 대상이나 동명이인이므로 기본적인 사항은 서술합니다.

새누리당 소속 18대, 19대 국회의원.

1958년 9월 1일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에서 태어났다.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민주정의당에 당직자로 입당, 구용상 전 민정당 의원 및 전남지사의 총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18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였고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낙선했지만 39.7%라는 고무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고향인 곡성군에서는 70%의 몰표를 얻고 순천시에서도 선전하면서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첫 국회의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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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꽃잎이 개봉했던 96년 그 해에 이정현은 양대 영화제라고 불리우는 대종상과 청룡영화제에서 모두 신인상을 거머쥐며 순식간에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다.
  • [2] 이 무렵 음악 프로그램의 순위권은 대부분 여성 싱글 가수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연예계 여성 싱글은 이정현, 김현정, 백지영, 박지윤, 제이 등이 독식하고 있었다. 아예 다섯 사람만으로 구성된 BIG 5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짜서 단독으로 내보냈을 정도.
  • [3] 이 감독의 커리어는 정말 범상치 않다. 위키니트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계시는 희대의 괴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유명하다. 해당 항목 참조.
  • [4] 공포 영화로 이정현이 가수로 뜬 다음 출연한 첫 영화기도 하다. 그 당시 등장한 듀오백 의자도 이걸 밀었지만 금새 묻혔다.
  • [5] 이때 시기는 2002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꺾은 이후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내에서 한국에 대한 문화 등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 [6] 이 시기 남북정상회담 시기와 맞물려 그녀의 무대 퍼포먼스는 한반도기가 펄럭였다.
  • [7] 이정현의 인형 안무도 파격적이어었지만 푸콘 가족을 연상케 하는 가면을 쓴 백댄서들도 인상적이었다고.
  • [8] 홍백가합전은 일본 가수들도 쉽게 출연하기 힘든 방송이다. 이병헌최지우가 주연으로 분한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출연이 가능했다고 한다.
  • [9] 방송에서는 제목이 'Vogue It Girl'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원래 곡 제목이 특정 잡지 이름과 같아서이다.
  • [10]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거의 김장훈 콘서트 수준의 무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정현의 설명을 들은 무도 멤버들이 '이걸 어떻게 만들지?' 식의 표정을 지을 정도.
  • [11] 21드페이
  • [12] 이정현의 영어 예명. 발음은 '에이바'.
  • [13] 하지만 이정현은 턱에 맞고도 대단한 프로 정신으로 무대를 끝까지 이어나갔다. 흠좀무. 괜히 '독한 여자라 하지마'란 부분이 들어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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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2 13: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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