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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last modified: 2015-03-19 03:33:11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및 생애
2. 데뷔
3. 예명
4. 유행어
5. 방송 중단
6. 전두환과의 관계 그리고 축구
7. 정주영과의 관계
8. 국회의원 출마
9. 흡연..그리고 사망
9.1. 이주일의 사망 원인은 흡연이 아니다?
10. 기타

1. 소개 및 생애

한국 코미디의 황제

대한민국코미디언 본명은 정주일.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미디계의 전설로 남은 사람.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경원대학교(現 가천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 데뷔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로 진출한다. 본격적으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년도는 1979년부터였다.[1]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하춘화가 나오는 극장의 사회를 맡고 있다가 폭발사고가 나자 하춘화를 업고 병원으로 뛴 것이 인연이 되어[2] 하춘화의 도움을 받아 방송계에 데뷔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이 사고 당시 이주일은 극장 천장이 붕괴되어 거기서 떨어지는 벽돌에 머리를 맞아서 후두부가 함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춘화에게 "내 머리를 디디고 내려와라!"라고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일은 "길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었던 내가 하춘화 덕분에 우리집을 샀다."라면서 오히려 하춘화를 자신의 은인이라 생각했다.# 사실 하춘화가 공연하는 그 쇼에서 이주일이 진행자가 된 이유는 하춘화가 "이주일이 아니면 안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였다.

작고한 코미디언 영춘은 일찍이 이주일을 보고서 'TV에 나오면 분명 뜬다'고 아쉬워했을 만큼 탁월한 익살꾼이었으나, MBC으면 복이 와요에 얼굴을 비췄을 땐 너무 못생겼다는 시청자들의 불같은 항의가 쏟아져 한큐에 잘렸다.

3. 예명

'이주일'이란 예명은 '딱 2주일만에 떴다고 해서 따왔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얽힌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TBC 코미디 프로그램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출연해서 맡은 배역은 의사였는데, 환자 역할 코미디언의 눈을 까뒤집어 보고는 "문명운명하셨습니다." 라고 한마디 할 뿐인 단역이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병실에 뛰어들어 오자마자 "운명하셨습니다!" 라고 외쳤고, PD가 카메라 뒤에서 '환자 눈이라도 까뒤집고 대사를 쳐야 할 거 아니냐?' 라는 신호로 눈을 까뒤집는 시늉을 하자 이 동작을 본 이주일은 그만 자기 눈을 까뒤집어 보이며 '운명하셨습니다'를 읊었다. 그것도 생방송에서...

일반적으로 보면 당연히 두 번 다시 TV 무대에 얼씬도 못할 수준의 방송사고였지만, 이 때 빵 터진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재차 출연하게 된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얼핏 보면 못생겼지만 자세히 뜯어보시면... 더 못생겼습니다."라는 대표적인 유행어도 이 때 직후에 나왔다.

4. 유행어

이상해와 콤비를 이뤄 보여준 판토마임[3]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수지 큐(Susie Q)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독특한 춤은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 춤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는 당시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증언에 따르면 "애국조회 마치고 '교실로 갓!'이라는 구령이 나오면 천 명에 가까운 전교생이 동시에 수지 큐 춤을 추면서 교실로 들어갔다니깐."(티비에서 방영한 이주일 추모 다큐멘터리 중)

그외에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따지냐~?", "콩나물 팍팍 무쳤냐? 일단 한 번 드셔보시라니까요.", "오~수지 큐!",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등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5. 방송 중단

활동 중간에 너무 못생겼고, 저질이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된 바 있다. 그 당시 이주일 외에도 대머리였던 연예인들이 방송에 거의 나오질 못했는데, 아마 29만원그 사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4] 이주일이 방송에서 퇴출되기 직전에는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그 영화에서는 바지사장으로 사기당하는 시골 총각으로 등장한다. 제목은 리빠똥 사장#. 일단 명목상 대머리라서 잘린 건 아니지만... 그 사람 관련 조크 가운데 이주일에 얽힌 것이 많긴 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그 사람이 미국 순방을 갔는데, 마중 나온 교포 가운데 한 어르신께서 반갑게 악수를 하며 '어이쿠! 이주일씨 먼길 잘 오셨습니다' 했다던가?[5]

결국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에 다시 코미디언으로 복귀했다. 방송에 복귀할 때는 TBC의 후신격인 KBS2가 아닌 MBC의 요일 밤의 대행진으로 했다.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동안에는 극장식당 무랑루즈, 초원의 집 등의 밤무대 에서 활동했는데, 지금보다 밤무대가 훨씬 비중도 크고 돈도 많이 벌던 시절이라 그의 지존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밤무대의 제왕이었다. 1980년대 초 전속금 1억[6], 연예인 납세 1, 2위를 다툴 정도. 쉽게 말하자면 80년대를 풍미한 트로이카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정도는 되어야 이주일 비슷하게 벌었다. 이 기간동안 이주일을 TV에서 볼 수 있는 건 위에서 말한 밤무대 식당들의 광고 뿐. 이 식당들 광고에서 유행한 유행어가 "일단 한번 와 보시래니깐요~!"

당시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이주일의 개그를 직접 목격한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주일의 진짜 지존 개그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그런 건전개그가 아니라 밤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EDPS." (....) [7]

6. 전두환과의 관계 그리고 축구

자서전으로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가 있다. 그런데 자서전 내용 중에서 자신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자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경애하며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전두환과 이주일이 축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일은 춘천고 시절 축구선수로 뛰었으며, 춘천고 동창생이 바로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박종환 감독이다. 박종환 감독과 인연으로 전두환과 만났고, 이후로도 줄곧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 그것 말고도 방송출연 금지 크리를 맞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당시로서는 방송출연보다 벌이가 좋은 밤무대에 전념할 수 있었고, 생계에 지장은 커녕 방송에서 얻은 지명도와 방송에서는 볼 수 없다는 희소성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경제적으로는 윤택해졌기 때문에 전두환의 조치에 불만을 크게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예능 프로에서 최병서가 이주일과 함께 술을 마시다 뜬금없이 '전두환 대통령님께 억울함을 호소해야겠다.'며 오밤에 집에 찾아갔더니 흔쾌히 맞이하며 술상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왔다고 하는 일화를 밝히기도 한 걸 보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듯 하다.

그밖에 잔디구장 건립기금으로 1천만원을 내기도 했고, 연예인 축구단인 무궁화 축구단 단장을 지낸 바 있으며, 상기했듯, 2002년 월드컵 당시 투병 중인 몸을 이끌고 직접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였다.[8]

7. 정주영과의 관계

그는 현대그룹 명예회장인 왕회장으로 불렸던 아산 정주영과도 친분이 있었다. 같은 강원도 영동지방 출신이었던데다가[9] 1915년생인 왕회장보다 나이가 30살이나 어렸지만 의형제로 보일 정도로 친분을 가졌으며 이같은 인연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주일에게 정치 한 번 해보는게 어떴냐고 제안하던 사람 역시 왕회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미국 LA에서 이루어졌으며 당시 왕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홍보를 위해서 LA에 방문하였던 것으로 알려졌고 바로 이 때 LA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때였고 다음 개최지가 서울이었기 때문에 서울올림픽 홍보를 위해서 방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고로 그는 왕회장이 창당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당원으로 활동하고 1992년 14대 대선 때 왕회장의 유세를 지원하고 상대방 후보로 있던 김영삼, 김대중을 강도높게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왕회장은 특히 김영삼을 강도높게 비난하였던 편으로 이주일 개인상으로 김영삼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왕회장의 뜻이 그렇고 왕회장 지원유세로 나왔던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 개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8. 국회의원 출마

원래부터 애연가였지만, 1991년 11월 외아들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더더욱 담배가 늘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사위가 상주로 나와야 했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고 3일 후 SBS 개국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씨와 철언 씨의 관계 개선을 해내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태연하게 청중을 웃긴 일화는 유명하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통일국민당을 결성하였을 때 처음에는 참가할 듯하다가 마음이 심란해져서 홍콩을 다녀온 이후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노구를 이끌고 그 날 이주일이 게스트로 출연한 SBS 본사[10]에 가서 10시간을 기다렸다. 이주일이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방송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뒷문으로 빠져나간 뒤인지라 정주영 회장은 헛걸음한 셈이 되었지만, 국민들에게 '정주영은 아직 늙지 않았다'는 믿음을 퍼뜨린 사건이었다. 결국 이주일은 왕회장의 노력을 차마 못 본 체 할 수 없는지라 출마를 결정하게 되었고 당당히 경기도 구리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국민당은 '당원이 1000만인데 득표수가 400만에 못 미치는' 기현상[11]과 함께 푸시식 가라앉았고, 도중에 민주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주일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정치판과의 인연을 끊었다. 이 당시 연예계에 복귀하며 뱉은,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는 말은 전설로 남았다.

다시 연예인으로 돌아온 이주일은 확실히 국회에서 코미디를 제대로 배웠는지 복귀 뒤에는 꽤 수위 높고 풍자성 강한 개그를 선보였다. 너무나 강렬해서 방송심의위원회에서 경고를 수 차례 받았을 정도. 하지만 흑역사도 있었으니... 링크

9. 흡연..그리고 사망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에 두 갑씩 피웠습니다. 하~ 이젠 정말 후회됩니다."
"흡연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국민 여러분. 담배, 끊어야 합니다."

그러나 심한 애연가였던지라 갑자기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더니 폐암 투병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2002년 1월부터 금연 광고를 하기 시작하여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에 두갑씩 폈었습니다."라고 호소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금연하도록 권장하였으며, 살아있을 때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활약하는 걸 꼭 보고 싶다며 몇 달만 더 살고 싶다고 염원했다. 적어도 2002 한일월드컵은 휠체어를 타고 관람하여 그 바람은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2002년 8월 27일 결국 폐암으로 사망했다.

어려웠던 7~80년대 국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으며 사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그런데 그 이유인즉, 코미디언으로서의 업적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금연운동에 기여한 공로(...) 어쨌건 이주일의 메시지는 역대 금연 광고 중에서도 가장 높은 효과를 냈다고.

9.1. 이주일의 사망 원인은 흡연이 아니다?

병석에 누워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방송국에서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당시 이주일은 내 병은 담배와 관련이 없다는 말을 했으며, 사후 이주일의 사인이 "선암"(폐에서 발생하는 암의 일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KT&G 관계자 및 골수 애연가들은 "죽기 전에 좋은 일 하겠다는 뜻은 알겠지만, 안 그래도 무시당하는 우리까지 물고 가느냐."며 고인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 지식이 잘못 알려진 것인데, 폐암은 총 네 종류(소세포암, 편평세포암, 큰세포암, 선암)가 있고, 이 중 선암은 80년대 말까지 다른 폐암에 비해 여성/아동에서 많이 발생해서[12] 흡연과 무관하지 않느냐는 말이 의학적인 통설이었다.

선암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폐암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은 흡연을 해도 폐암에 잘 안 걸린다'라는 미신까지 흡연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국민 보건 사업을 위한 암발생 실태 조사에서 국내의 선암 역시 흡연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이 밝혀졌고, 동시에 미국와 유럽에서도 선암과 흡연의 발생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나오면서 선암은 흡연과 무관하다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가 되었다. 즉 고 이주일씨와 선암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 되었다.

10. 기타

  • 90년대 이후 코미디언들의 세대 구분법은 이주일과 코미디를 해 본 사람안 해 본 사람으로 나뉜다고도 한다. 즉, 2010년대 현재 희극계에서 중고참급이라고 하는 이들도 이주일과 같이 코미디를 해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 이주일은 이덕화, 조용필, 병서와는 분야와 나이를 모두 초월한 절친이었다. 미국에서 후배들과 순회공연이 끝나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중 사진기가 없어서 근처 상점에 들렸을때 이주일이 병서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야 카메라가 영어로 뭐냐?" 알면서 그렇게 캐므러? 이덕화는 이주일이 죽기 직전에 시한부 인생인 이주일에게 가발을 맞춰주기까지 했다.

  • 정치인 회창과 목소리가 굉장히 흡사하다.

  • 걷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거리가 50m를 넘어가는 곳이라면 자동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 자유북한방송에서 내놓은 만화 김정은에 의하면 남한방송을 즐겨보던 김정남[13]어렸을 때 이주일을 데려오라고 땡깡을 부려 측근들이 충공깽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이주일은 남조선에 있으니 못 데려 온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남조선이든 달나라든 그건 내 알바 아니니 데려오라!"고 들어먹질 않아서 김일성에게 보고하니 "알아서 해라"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명령이 내려왔다고. 결국 양강도에서 이주일하고 가장 닮은 농민을 찾아내서 분장/연습시켜 제법 비슷하게 따라할 정도가 되자 김정남 앞에 데려가 공연했다고 한다. 김정남은 20분 동안 말없이 공연을 보더니 "연극 하느라 수고 많았다."라고 가짜 이주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도 칭찬하고 그 농민에게 술과 양복을 내렸다 카더라. 이 증언은 김정남의 이종사촌인 탈북자 한영[14]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다만 결말은 다른데 칭찬한 위의 서술관 달리 이한영은 김정남이 가짜라면서 마구 땡깡을 부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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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이전 TBC의 코미디 프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지만, 본 방송에서 지나치게 긴장하여 실수를 연발하는 통에 잘리고 말았다(...).
  • [2] 하춘화는 경상에 그쳤지만 정작 이주일 본인은 후두부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어 수개월동안 입원해야 했다.
  • [3] 일본의 유명 코미디그룹 더 드리프터즈 소속의 시무라 켄토 챠 콤비의 코미디를 표절한 것.
  • [4] 덧붙이자면 그 사람을 닮은 배우 박용식은 그 사람을 닮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한동안 방송을 쉬어야만 했고, 방앗간을 운영하며 참기름을 팔아 근근히 생활하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건 이후 MBC의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그 사람의 연기를 맡게 된다.
  • [5] 일부 증언에 의하면 전두환 정권 초기에 사회 분위기를 휘어잡는답시고 시범 케이스로 언론탄압을 하던 와중에 이주일에게 '저질 코미디언' 딱지를 붙여 퇴출시켰는데, 정작 전두환 본인은 이주일이 자취를 감추자 "아니 그 웃긴 양반 요즘 왜 안 나와?"라면서 의아해했다고. (...) 전두환이 작정하고 내막을 파악했다면 알아서 긴 담당자는 모가지 이후 아래쪽에 써 있듯 춘천고 동기생인 박종환 감독을 통해 전두환과 친분을 쌓게 된다. 이유는 전두환이 이었기 때문.
  • [6] 이 돈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 당시 택복권 1등 당첨금이 이 액수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로또에 혼자서 1등 당첨되었을 때 받는 액수와 느낌이 비슷한 돈이다.
  • [7] 약한 예를 들자면, 수캐가 소변을 볼 때 한 쪽 발을 드는 이유는?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 [8] 다만 그 이전 히딩크 감독을 꽤 까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박종환이나 다른 축구인들도 엄청나게 까던 일이라서 그를 비난할 건 못된다. 정확히는 "히딩크란 사람 하나에 너무 의존한다. 그에게 줄 돈으로 유망주 발굴을 해야할 거 아니냐? 감독 하나 바꿔서 월드컵 얼마나 잘하겠느냐?" 인터뷰했는데... 막상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실현시켰으니(...) 아니, 유망주 발굴 운운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는 해외에서 뛴 지도자를 빼놓고는 대다수가 무시한 것은 2002 월드컵 전까지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몰랐지만...
  • [9] 아산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이주일의 고향인 강원도 고성과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이다.
  • [10] 당시에는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었다.
  • [11] 국민당 당원수에 허수가 많았다는 뜻. 이웃, 친척, 친구가 국민당 입당신청서에 그냥 이름만 올려달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허락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 [12] 그러나 선암만 놓고보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 노년 남성이다.
  • [13] 원래 김씨 일가들은 남한 방송 정말 좋아했다. 김정일도 술만 취하면 나훈아, 이미자 등의 남한 노래를 불러댔고 누가 북한 노래 부르면 재미 없으니 여기선 부르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 [14]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했다가 간첩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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