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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last modified: 2014-11-27 09:51:31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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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04.10 ~ 1956.09.06
한국서양화가.

Contents

1. 작품 세계
2. 가족 관계
3. 참고자료


1. 작품 세계

살아생전 소를 많이 그렸는데, 어렸을 때부터 소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 그릴때는 하루종일 소만 바라봤다고 한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흰소'(1954년 작)가 있는데 이것은 백의민족이었던 한국을 의미했다. 그림을 보면 소가 말라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해 있는데 당시 6.25 전쟁이후로 먹고 살기 힘들었던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중섭의 그림 '황소'는 2006년 35억 ~ 45억원 가격대로 경매에 오르기도 했는데, 정작 생전에는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6.25 전쟁을 직격탄으로 맞은 세대라...., 제주도로 피란 간 때의 경험이[1] 창작에 도움이 되기는 했다지만 어쨌거나 안습. 부두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다가 이마저도 건강 문제로 여의치 않게 되자 당시 담배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간신히 1955년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전시회를 열었지만, 1년 뒤에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이중섭의 무덤은 서울 중랑구 우리공원묘지에 있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후에는 그 진가를 인정받아 작품이 고가에 거래된다는 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되는 예술가.

고가의 거래에 대한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이중섭이 피난 생활을 했던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그의 작품들을 모은 전국 유일의 중섭 미술관이 있는데, 2002년 개관했을 당시 진품을 단 한 점도 소장하지 못한 채 리플리카(복제화)를 전시해야 했다. 2013년 현재도 이중섭 미술관의 소장품 중 '황소' 등 이중섭의 대표작 상당수는 리플리카 신세이다.




2012년 4월 10일 탄생 96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구글 두들. '흰소'를 로고화했다.

참고로 이중섭은 서명을할때 항상 풀어쓰기로 서명을 했다고한다.

2. 가족 관계

광복되기 바로 전에 결혼한 그와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는 금슬이 좋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마사코는 결혼한 후에 이남덕이라는 자신의 한국식 이름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1952년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마사코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했으며 그 때문에 둘의 결혼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죽을 때까지 가족과는 거의 만나질 못한 채, 한국에서 홀로 막노동을 하면서 틈틈히 그림을 그렸다. 현대판 기러기 아빠랑 비슷한 처지인 것. 이로 인해 그가 간간히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나 그림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편 첫째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안타까워 했으며, 때문에 아들이 관 속에서도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발가벗은 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을 많이 그렸다[2]-어디까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그림에는 복숭아 등 동양화에서 장수나 복을 상징하는 사물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의 사후, 이중섭의 둘째 아들 이태성(야마모토 야스나리)이 2005년 3월 16일 첫 공개해서 경매에 내놓은 그림 8점이 2005년 10월 가짜로 밝혀져서 파장이 일어났다. 이를 기점으로 이중섭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있었다. 한국미술품평가원에 따르면 이중섭이 위작이 가장 많은 작가라고 한다. 187건의 감정 중 무려 108건이 위작이고 진작은 77건, 감정 불능 2건이었다. 의뢰된 작품의 58%가 가짜였던 셈이다.#

3.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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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도 이 피난 생활이 이중섭에게는 그나마 가장 평화로운 삶이었다고 한다. 서귀포시에는 그가 가족들과 피난 생활을 했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고, 당시 집주인이셨던 김순복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
  • [2] 이 그림들은 그저 '벌거벗었다'는 이유 때문에 춘화로 취급되어 정부에서 철거해 버리기도 했다. 어린이에 대해서 너무한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정부가 누구 휘하였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일은 당연하게 자행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 아니 그 시절보다도 오히려 더 퇴보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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