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이창동

last modified: 2015-03-05 02:04:48 by Contributors

Contents

1. 영화감독
1.1. 소개
1.2. 경력
1.2.1. 학창 시절
1.2.2. 소설가로 데뷔
1.2.3. 영화계 1기
1.2.4. 관료 시절
1.2.5. 영화계 2기
1.3. 외부링크
1.4. 필모그래피
1.5. 수상경력
2. 지명


1. 영화감독


"9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 문제작들이 수많은 캐릭터를 생산해냈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 대다수는 그야말로 트렌드로 왔다가 트렌드를 타고 사라졌다. 그런데 유독 이창동의 인물들은 다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정확히 찍힌 주민등록증 하나씩 지갑 안에 넣고 우리 주위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 씨네 21 前편집장 조선희

1.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소설가, 현 영화감독. 전직 문화관광부 장관(2003.2.27~2004.6.30).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국어 교사로 일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계에 뛰어들어 나이 40이 넘어 영화 감독에 데뷔했다. 데뷔작으로 국내 영화제 주요상을 휩쓸고, 한국 영화계 리얼리즘 계열의 장인으로 등극하여 찍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으며, 단 5편의 영화만으로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입지전적인 인물.

1.2. 경력

1.2.1. 학창 시절

1954년 대구 출생. 4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이상주의 좌파였던 아버지 때문에 유년 시절을 굉장히 가난하게 보냈으며, 그의 어머니는 한복 삯바느질로 6남매를 키웠다. 늘 빈곤했으나 그의 집안은 자존심과 명분에 관한 교육만큼은 철저했고, 방학 때마다 안동의 할머니 댁에 머무르며 관찰한 자연의 풍경과 소리들로 인해 미적 기준 역시 상당히 높아진다. 그래서 어릴적엔 지적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었다 고백했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훗날 그의 영화 철학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 당시에도 남달리 작문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편지를 잘 쓰는 걸로 동네에서 유명했다고 한다.지식채널e-소년은 달린다 편

대구고등학교를 거쳐 삼수 끝에 1975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은 10살 많은 큰형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연극판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한다. 비록 지방 극단이었으나, 그는 대구 지역에서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소문났었다.

1.2.2. 소설가로 데뷔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2년에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가로 데뷔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고 하며, 이는 이후 2000년작 장편영화 박하사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분단, 도시화, 산업화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던 그의 소설은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의식화되지 못한 민중들의 우매함에 대한 합리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소설에 주된 주인공들은 민중을 이끌고 계몽시키는 운동권 인물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분단의 비극에 희생된 보통 사람들 또는 운동권을 탄압하는 정권과 그 정권을 규탄하는 운동권 사이에 끼여서 생각없이 살아가다 민주화의 물결에 휩쓸리는 소시민 등이었기 때문이다.

1.2.3. 영화계 1기

이후 문단에서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을 받지만, 그 자신은 순수 문학이 가지는 힘에 회의를 느껴, 나이 40이 넘어 지인인 박광수 감독의 권유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각본과 조연출을 담당하였다.[1] 이 당시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소설가로는 유명했지만 영화 경험이 없는 이창동이 연출부도 아닌 조연출을 한다는 것 때문에 뒷말이 나왔으나 충분히 제 몫을 함으로서 증명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땡볕에 군중들을 모아놓고 찍는 씬이 있었는데, 박광수 감독이 설명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라, 그는 그들을 계속 땡볕에 둬야 하는지, 잠깐이라도 쉬게 해주어야 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없어 눈물이 났다고.

1996년에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시나리오 작가로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받았다.

1997년 한석규 주연의 '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평단에 큰 호응을 받으며 그 해 청룡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비롯, 국내 유수 영화제의 주요상을 휩쓸고,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았다. 당시 한참 신도시가 건설되던 일산신도시를 주 무대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 청년의 비극적인 삶을 리얼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얼마전(2012년 10월 기준) 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한국영화 2위에 선정되었다. [2] 이 때의 배역 이름인 "막둥이"를 본따서 나중에 한석규는 시나리오 공모전을 연다.

2000년 1월 1일 2번째 영화 '박하사탕'을 발표했다. 대학시절, 자신이 겪었던 5.18 경험[3]을 바탕으로 역사의 광풍 속에 휘말린 한 남자의 삶을 처절하게 담았다는 평을 들었다. 원래 이 영화는 한석규가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스릴러를 하고 싶었던 한석규의 고사로, 그 때까지 영화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설경구를 주연으로 발탁했다. 그 전까지 처녀들의 저녁식사, 송어 등에 조연으로 나왔던 설경구는 이 영화 한편으로 충무로의 기린아로 등극한다. 이후 잇다른 흥행작에 출연, 한동안 '송강호','최민식' 과 함께 한국 남자배우 트로이카로 불리게 된다.[4]

이후 세 번째 작품인 '오아시스'가 200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FIPRESCI 상을 수상하며 점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이 작품은 사회 부적응자인 종두와 지체장애자인 공주가 사랑을 한다는 평범한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두 남녀가 가족, 사회에 철저하게 냉대를 당하고 박해를 받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조명한 영화이다.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의 첫사랑 순임 역으로 데뷔했던 문소리는 이 작품에서 지체자애인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실제로 네티즌들의 영화평을 보면 문소리가 정말 장애인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자주 보인다.) 그로 인해 충무로의 새로운 히로인으로 떠오른다.

1.2.4. 관료 시절

앞선 세 편의 영화를 만들고 난 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참여정부의 첫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년 4개월동안 재직한 후 2004년 6월에 사임한다. 취임식을 운전기사를 대동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싼타페 차량을 이끌고 출근, 직접 직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문화관광부 장관인이자, 영화인으로 스크린쿼터제 논의에 대해 장관 재직 초기에는 스크린쿼터 축소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퇴임을 앞둔 2004년 6월 돌연 입장을 선회하여, 당시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 위원들과 면담을 나눈 자리에서 '스크린 쿼터 축소와 관련된 영화인들의 입장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것을 두고, 당시 '스크린 쿼터 축소'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재정경제부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그가 입장을 선회한 것에 영화계 일각에서는 '배신자'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선회했다기 보다는 스크린 쿼터 축소를 막지 못해 정부의 입장만 전달하고 그 자신은 책임지고 사퇴했다는 평이 우세했다.

1.2.5. 영화계 2기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3년 후인 2007년 5월 4번째 작품 '밀양'을 발표한다.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연기력이 출중하다고 평가받던 전도연, 송강호를 주연으로 한 영화로, 원작은 소설가 이청준의 벌레이야기. 주된 내용은,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사는 신애(전도연)가 아들을 유괴당한 뒤, 종교에 귀의하면서 벌어지는 용서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로 전도연은 칸 영화제에서 한국배우 사상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아들을 잃고 개신교를 믿게된 신애로 분했고, 송강호는 그런 신애을 졸졸 쫓아다니는 카센터 사장 종찬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특히 종교를 믿지 않던 인간이 절망에 빠졌을 때 신에게 의지하는 과정과 그 주변인물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때 이 영화를 두고 개신교도와 비개신교도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포털사이트에서는 이창동의 영화 중 낮은편인 7점대의 평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개신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은 영화를 지극히 단선적으로 보는 것이라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 영화에 평점을 낮춘 사람들은 개신교 신도라기 보다 멋모르고 본 중학생들(이 영화는 15세 관람가다.)이 주범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3년후인, 2010년 5월 5번째 작품 '시'를 발표한다. 영화 '만무방'을 끝으로 15년간 작품을 하지 않고 있던 배우 정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20대 배우가 하나도 안 나오는 영화를 찍었다. 주된 내용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시를 배우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저조한 흥행스코어를 남겼다. [5]

그런데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거장 영화 감독의 제작을 지원하는 2회 마스터영화제작지원사업에서 신작 ''가 탈락해 이래저래 말이 많다. 1차 지원에서도 임권택 감독의 작품과 함께 동반선정이 유력했으나, 심사위원들의 평점 평균이 70점을 넘기지 못해 탈락했다고 한다. 근데 그 탈락 이유를 알아보니, 한 심사위원이 '시'의 각본이 '시나리오가 각본의 포맷이 아니라 소설같은 형식이라서'라며 "0점"을 줬다고 한다.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군.

당시 이창동 감독과 제작사 파인하우스 필름[6]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공식 입장은커녕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았는데, 황당한 건 이런 태도를 보고 영화진흥위원회가 '피해자인척 침묵을 지키지 말라'는 성명을 낸 것. 심사에 떨어진 사람에게 직접 떨어진 이유를 언론에다 밝히라고 요구한 꼴. 이 소식을 접한 파인하우스 필름은 뒤늦게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소송의 위험 때문에 서술 할 수 없지만,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이라면 눈치챘으리라. 아직까지 모르겠다는 위키러들은 당시의 영진위원장 조희문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7]

그리고 그 0점 받은 각본으로 2010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8]. 그러자 이번엔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유인촌씨는 기자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예의상 준거다."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당시 문화관광부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지만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동석한 기자 7명중 4명이 들었다며 확인사살했다. 이후 2010년 대종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서 시나리오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등 4개부분을 석권하기까지 했다. 그 심사위원의 표정이 궁금하다

살면서 고생이 많았다. 어릴 때는 가난, 삼수 시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아버지와의 갈등, 어린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현장에서는 지독하게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무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전도연이 밀양을 찍다가, 배우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촬영포기 선언을 할 정도. 특히 배우에게 이래라 저래라 식의 정확한 디렉션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컷을 외친고는 묘한 주문을 한다고. 같이 찍는 배우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감독은 제대로 설명도 안해주고 수십번씩 다시 찍고, 찍은 뒤에는 "뭐가 더 나오겠냐."하며 억지로 OK한다고 하니 돌아버릴 지경. 심지어는 컷을 외친 뒤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묻자 배우 뒤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에 감정이 없어서 컷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뭐야. 무서워.

그래서 그의 영화를 찍은 배우들은, 영화 촬영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를 굉장히 미워한다고.[9]

그러나 영화를 찍고 난 후에는 예외없이 평단에 호평을 받으며, 그 해 주연상을 휩쓸다시피 한다. 심지어 전도연은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뭐 거기다 흥행은 크게 안될지 몰라도, 배우들이 그전까지 가지고 있던 틀을 부수고, 새로운 면을 발산하도록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

그런 이유로 내로라하는 탑스타들이 함께 작업하기를 원하는 대표적인 감독.[11]

2013년에는 장준환 감독의 영화 화이를 제작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원빈, 설경구와 함께 차기작을 찍을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 하지만 본인이 시나리오에 만족하지 않아서 엎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2014년 1월 말부터 최근 시나리오 구성이 잘 풀리기 시작하는지 탈고가 다 된다는 루머가 디시인사이드와 여러 웹사이트에서 돌고 있다. # #2

1.3. 외부링크

시에서 주연으로 나온 윤정희와 인터뷰가 올라왔다.(#)



1.4. 필모그래피

1.5. 수상경력


연도수상작품
2011제4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2011제25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비평가상
2011제25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대상(황금시선상)
2011제5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감독상
2011제5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각본상
2010제6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작품상
2010제4회 아시아태평양 스크린어워즈 감독상
2010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최우수작품상
2010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
2010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상
2010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2010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2010제47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
2010제47회 대종상영화제 시나리오상
2010제19회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2010제19회 부일영화상 각본상
2010제63회 칸 영화제 각본상
2008제4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밀양
2008제2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감독상밀양
2008제2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작품상밀양
2007제 10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감독상밀양
2007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밀양
2007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최우수작품상밀양
2007제1회 아시아태평양 스크린어워즈 최우수작품상밀양
2006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
2003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오아시스
2002제21회 밴쿠버 영화제 치프 댄 조지 인도주의상
2002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최우수작품상오아시스
2002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각색상오아시스
2002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오아시스
2002제10회 춘사대상영화제 춘사대상오아시스
2002제10회 춘사대상영화제 각본상오아시스
2002제10회 춘사대상영화제 감독상오아시스
2002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오아시스
2002문화관광부 보관문화훈장
2002제59회 베니스영화제 특별감독상오아시스
2000제21회 청룡영화상 각본상박하사탕
2000제37회 대종상영화제 시나리오상박하사탕
2000제37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박하사탕
2000제8회 춘사대상영화제 각본상박하사탕
2000제35회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박하사탕
1998제 27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Netpac 특별 언급상)초록물고기
1997제18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초록물고기
1997제35회 대종상영화제 시나리오상초록물고기
1997제35회 대종상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초록물고기
1997제3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초록물고기
1997제3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초록물고기
1996제3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아름다운청년 전태일
1992제25회 한국일보문학상녹천에는 똥이 많다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 수준이다 ㅎㄷㄷ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꼭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으로 항상 꼽히는 이유가 있다.



2. 지명

전라남도 나주시 이창동이다. 한자로는 二倉洞이다.
----
  • [1] 이 영화의 조연출들이 지금은 유명한 감독들이 되었는데 이창동을 포함,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인어공주'의 박흥식, '킬리만자로'의 오승욱, '복한 장의사'의 장문일까지 조연출 5명이 훗날 감독이 되었다.
  • [2] 1위는 8월의 크리스마스, 두 작품 모두 주연 배우는 한석규.
  • [3] 이 경험은 시위에 참가했던 경험이 아니었다. 5.18 당시 경북대학교 4학년이었던 그는 대구에서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이후 자신이 희희낙낙하며 놀던 그 순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학살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 [4] 반면 한석규는 이 영화 대신 심은하와 함께 스릴러물 '텔 미 썸딩'에 출연했으나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고, 이후 2002년 '이중간첩'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3년을 쉬었다. 그 기간동안 들어온 수많은 시나리오 중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박하사탕을 놓친 것은 두고 두고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한석규가 고사할 당시, 이창동 감독은 직접 찾아가 한석규를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만약 그 때 한석규가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한석규의 롱 런은 훨씬 길었을 것이다라는 예상도 있다. 물론 설경구라는 걸출한 배우는 훨씬 뒤에 발견했겠지만.
  • [5] 이 영화를 제작한 파인하우스 필름의 대표는 그의 친동생인 이준동씨다. 그는 이 영화 개봉전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이창동 감독의 작품이 한 번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실패로 이창동은 난생 처음으로 투자 받지 못해,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창동 본인도 영화 만들기 전에 아마 안 팔릴것 같다라고 얘기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 [6] 위에도 적었지만 친동생이 대표로 있는 영화사로, 밀양으로 처음으로 크레딧을 올렸다. 사실상 이창동 소유의 영화사라 할 수 있다. 이창동 영화 이외엔 호러 (!!) 영화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를 만들기도 했다. 이창동과 이준동이 제작에 관여했다고. 원래 이창동 감독은 제작에 자주 참여한다. 고양이 이전에도 그는 하정우 주연의 두번째 사랑, 김새론 주연의 여행자 들을 직접 제작했다. 파인하우스 필름은 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사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해 고양이, 화이, 도희야를 제작했다.
  • [7] 당시 영진위원장 조희문은 교수 채용 비리로 구속되었다. #
  • [8] 늘 그렇듯 칸영화제 수상하고 나니깐 영화진흥위에서는 '오해'라며 해명하였다. 근데 그 해명 내용도'우리가 0점준건 각본이고 상을 받은것은 영화화 된 각본이였다, 그러니까 오해없으시길'이라는 말도안되는 소리로 횡설수설이었다.
  • [9] 정희는 예외. 윤정희가 대선배이기도 하지만 워낙 밝아서, 그 기운을 그가 받아들였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촬영장에 응원차 찾은 문소리를 비롯한 이전에 작업했던 배우들은, 그가 무릎을 치며 OK를 외치는 걸 보고 황당했다.
  • [10] 류승완 감독은 이창동 감독이 배우들에게서 그런 연기를 뽑아내는 비결을 영화 '오아시스'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배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원하는 게 나올때 까지 찍는다.;'.
  • [11]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심심찮게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전도연은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이창동이 감독하고 송강호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승락, 윤정희는 시나리오도 다 쓰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말에 굉장히 기뻐했다고 한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05 02:04:48
Processing time 0.1978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