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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last modified: 2015-03-19 20:36:46 by Contributors

Contents

1. 한국개그맨.
2. 한국의 배우.
3.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4. 상주 상무 소속의 축구선수
5. KBS의 장애인앵커
5.1. 계약직 채용 논란
6. 최고다 이순신의 등장 인물


1. 한국개그맨.

이름 이창훈(李昌勳) [1]
출생 1955년 2월 19일, 서울특별시
신체 A형
학력 서라벌대학 연극영화과 (중퇴)
데뷔 1975년 극단 '창조'
가족 동생 이미영
종교 개신교

KBS 코미디대상 대상
임하룡
(1991)
이창훈
(1992)
이상해
(1993)


맹구 분장을 안한 이창훈씨.

본명은 이봉남. 본래 연극계의 인물이었다.[2]
원래는 KBS 단막극 코미디였다가 그가 나오던 시리즈부터 미니 시리즈격으로 하던 코미디 드라마 "사랑 주식회사"[3]에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서는 완전히 영구를 능가하는 팔푼이 캐릭터. 유머 일번지의 "맨손의 청춘" 코너에서 목욕탕 때밀이 "달룡이"라는 캐릭터로 "난 짜장은 정말 싫어. 난 짬뽕!"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리바이벌은 안해!"라는 유행어와 바보짓을 한 후에 (보통 이마를 칠만한 타이밍에) 손가락을 튕긴 후 양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치는 유행동작(!)[4]을 내보냈다. 이로 인해 짬뽕의 주가를 짜장면급으로 올리게 된다. 그 이후 "봉숭아 학당"에서 "이맹구"라는 캐릭터로 코미디계의 역사에 하나의 방점을 찍는다. 주 특기는 몸개그와 이야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그리고 양 손으로 선글라스를 흉내낸 모양을 만들며 외치는 배트맨이었다. 이 배트맨 동작 역시 유행동작이 된다.

그리고 이미지 관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막나가는 표정연기와 바보연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동작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철저한 바보짓은 심형래의 영구조차도 압도할 정도.

봉숭아 학당에 1대 맹구로 활약해서 오서방 오재미와 활동했으나 식품 위생법위반(정확하게는 주점에 미성년자 고용)으로 사퇴, 극중에선 등교길에 논두렁에 빠져서 입원했다고 나왔다. 이후 오서방 독주 체제로 가다가 후일 "정신이 돌아온 맹구가 귀환하다 머리를 부딪혀... 바보가 되다."라는 설정으로 다시 복귀한다. 초대 봉숭아 학당에서 진짜 마무리 된후 그동안 쩌리였던 하회탈 남희석이 제2대 맹구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이창훈을 따라가지 못해 잊혀지고 얼마 후 2대 봉숭아 학당은 불명예 종영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심현섭개그 콘서트에서 봉숭아 학당을 재현하면서 제3대 맹구(=심맹구)가 되었지만, 도저히 이창훈의 오리지날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도 이쪽은 나름대로 오래 버틴 편.

달룡이 캐릭터와 맹구 캐릭터가 너무나 강렬해서 이후에 그가 잡게 되는 역, 특히 진지한 역의 배역을 맡을때마다 "어울리지 않는다" 라는 혹평을 듣게 되고, 그에 따라 결국 설 자리를 점점 잃어 갔다. 거의 10년 가까이 맹구 때문에 고생했는데 본인도 맹구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듯. 실제 동작그만에 하사 계급을 달고 출연했었는데 매우 멀쩡한 사람으로 나오자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무척 많았다.[5] 미디 하이웨이에서는 암행어사 역이나 신혼부부 역을 맡기도 했는데 똑똑한 달룡이(...)에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은 역시나 혹평 일색이었다. 나중에는 이런 기믹을 역이용한 광고까지 등장할 정도.[6]

방송생활 말년에 KBS에서 방영했던 코미디 특집기획 '도망자'[7]에서도 굉장히 진지한 역할을 맡았는데, 사실 이 작품분위기 자체가 코미디치곤 상당히 어둡고 진지하긴 했다. 밥풀떼기로 유명했던 김정식을 비롯한 코미디언들의 정극 연기가 돋보인 작품.

지금은 종영된 작품인 KBS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보기 어려웠던 이창훈씨의 정극 연기.

사실 목소리는 꽤 멋지고 외모 또한 맹구란 이미지를 걷고 보면 고전적인 미남형이다. 실지로 코미디상 시상식등에서의 모습은 기절할 정도였음. 자신도 외모엔 자신이 있(었)다고 발언한 인터뷰도 있을 정도. 바보연기 만큼이나 진지한 역도 어울리는 희극인이지만 맹구를 그만 둔 이유도 정극연기를 위해서였고 스스로는 정극 연기에 대한 갈망이 굉장히 컸었다.

결국 자신이 만들어 낸 맹구라는 캐릭터의 후광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방송활동을 접고 만다.[8] 또한 원래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에는 경제적 사정도 있었다고 하고, 본래 방송보다는 무대공연, 즉 연극에 애착이 큰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방송활동을 중단한 뒤에도 많은 연극무대에 참여해 왔다.

노모가 병에 걸려 드러눕자, 모든 사회활동을 포기하고 산을 쏘다니며 약초를 캐서 어머니에게 바쳤던 훌륭한 격자라고 한다.

본인 또한 폐암으로 투병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수술 후 건강을 되찾아 연극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병상에서 일어선 직후에는 김태희, 양동근 주연의 영화 랑프리에도 우정출연하기도 했는데, 맹구의 모습을 보인건 아니고 자칭 '경마전문가'로 말만 떠벌떠벌하는 개그캐릭터로 나왔는데 얼굴을 보고 "어? 맹구?"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관객들이 스탭롤 올라가는거보고 역시나!!! 했었다고...


이 분의 여동생이 같은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미영씨고(물론 한때 오빠의 캐릭터로 인해 본인도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조카는 티아라전보람. 다시 말해 전영록의 처남이었다.(지금은 이혼했으니, 연은 끊어졌지만...)
같은 바보연기 라이벌이었던 심형래에 비하면[9] 지금은 그냥저냥 무난하게 살고있는듯 하다.

덤으로 맹구 이름으로 여럿 어린이 영화나 비디오 영화에 나왔는데...지금 보자면 아주 표절 및 매드비디오에 가까운 물건들이 넘쳤다. 맹구와 북두신검(극장영화)이라든지... 맹구짱구 스트리트 화이어(비디오 영화)라든지 이런 영화에서도 작내의 오리지널 캐릭터랍시고 집어넣은 맹구 캐릭터로 나왔었다. 어린이 영화배우로 이창훈을 주로 기용한 사람이 왕룡. 남기남영구를 쓰는만큼 나는 맹구를 내세우겠다 드래곤볼의 어린 오공 머리를 재현한(...) 당시 아역배우 허성태같이 왕룡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정도는 아니지만 왕룡의 필모그라피를 감안하면 명예 왕룡사단수준으로 이창훈을 굴렸음을 알수가 있다.

2. 한국의 배우.


1966년생으로 MBC 주말 드라마 엄마의 바다의 윤상규[10] 역, 정현웅 원작의 전쟁과 사랑의 김남천 역으로 알려진 배우, 단향꽃무에서 박진희의 첫사랑 역으로, 야인시대에서 하야시역으로 이산에서 사도세자로 잠깐 출연했다. 서동요에서는 주인공 서동의 스승 목라수 역으로 출연했는데 드라마 상에서 꽤 중요한 조연이었다. 현재는 주로 일일 연속극, 아침 드라마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우유부단한 바람둥이 역할을 자주 맡고 있다. 순풍산부인과에도 출연했으며 그 당시에 송혜교와 스캔들이 있었다.

90년대 초반 신인시절에는 1번의 인물이 워낙 대세였기에, 신인으로서 자기 소개 할 때면 항상 맹구가 아닌 탤런트 이창훈으로 기억해달라는 멘트를 빼놓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1번의 인물 덕분에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기 쉬워서, 오히려 신인시절 인지도에 있어서 많은 이득을 본 것도 사실이다.

전쟁과 사랑 촬영때 미스 필리핀과 키스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개그.

사실 위키페어리들 세대에게는 그닥 인지도가 없는 배우이지만 신인시절이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병헌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재목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를 기억하는 30대 중반 이상 시청자들에게는 인지도가 꽤 있는 배우. 내가말여 MBC 주말드라마에서 고소영과 투톱 차면서 시청률 1위 한 적 있는 사람이여!

결혼을 엄청 늦게 했다. 결혼(초혼)한 나이가 당시 43살. 이 때문에 도둑 됐다. 아내와 나이차가 16년이나 나며 미스코리아에 출전했던 여자이다. 이 때문에 본인이 5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큰딸은 고작 5살에 불과하다. 또한 배우 이원종과 동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많은 이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16.jpg
[JPG image (13.15 KB)]


후배 탤런트 중에 엄태웅이 외모나 분위기에 있어서 그를 많이 닮았다는 의견들도 있다.

학교 시즌 1, 2에서는 학생들 편에 서는 담임 선생님 '이재하' 역을 맡기도 했다.

3.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생 : 1984년 11월 4일
키/몸무게 : 187cm, 75kg
출신지 : 경기도 광주시
혈액형 : AB형
소속 : SouL(現 STX SouL) → 동양 오리온(現 SKT T1) → 삼성전자 칸
종족 : 저그
ID : sigamari, Zerglee,
별명 : 팀플마스터, 쩌그리, 성시경저그, 아드레날린 저그, 넥서스 브레이커
팬카페 : http://cafe.daum.net/zerglee


수상 경력
  • 코카콜라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리그 Mega Match 8강 풀리그
  • KTF EVER 2003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결승전 MVP)
  • LG IBM MBC GAME Team League 우승
  •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준우승
  • Tucson MBC GAME Team League 우승
  • 스카이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우승
  • 스카이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팀플전 다승왕
  • 스카이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우승
  • 스카이 프로리그 2007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 제1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 최우수 팀플레이상 (이창훈,박성훈)
  • 제2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 최우수 팀플레이상 (이창훈,박성훈)

이창훈은 2001년부터 활동했던 1.5세대[11] 프로게이머였다. 2001년 SouL(現 STX SouL)에 입단해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지만 2002년 팀을 나온 후 무소속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동양 오리온(現 SKT T1)이 창단되면서 동양 오리온에 입단하였다.

현역시절 뛰어난 팀플레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라기 보다 무적이었다. 넓은 시야와 함께 누구와 팀을 맺어도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었고 간혹 다른 종족을 플레이해도 지지 않았다. 타팀 입장에선 팀플 1승을 거져 가져가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래서 '팀플마스터'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팀플이라는게 선수의 명예를 올릴 수 있는 개인리그에서는 활약할 수 없다보니 개인전에 갈증을 느꼈고 결국 2005년 3월 SKT T1에서 삼성전자 칸으로 이적한다.[12]

그런데 삼성전자 칸에서는 오히려 이창훈을 잘 구슬려서(...) 좋은 대우와 함께 가히 팀플 감독급의 권한을 부여해서 팀플 본좌로 거듭나기에 이른다.[13]

지금은 은퇴했는데 은퇴했던 시기 즈음에 성적이 좋지 않았고, 당시에 프로리그에서 팀플레이 폐지와 맞물려있다고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창훈 은퇴는 프로리그 팀플 폐지보다 한 시즌 앞, 08 전기리그 이전인 2008년 3월 25일이였다. 즉, 팀플 폐지 때문에 은퇴한 건 아니다. 팀플 전담만 하다보니 개인리그는 도통 하지 못했던 것이나 팀에 가져다준 무수한 승리에 비해 받은게 그다지 없는 것 등 그 초월적인 실력이 이래저래 아쉬운 선수. 게다가 삼성전자 칸은 이창훈 은퇴 후에도 그가 키워낸 이재황 - 박성훈(혹은 임채성) 팀플 콤비가 활약하며 08 전기리그에서 우승했고, 그 다음 시즌부터 팀플이 폐지돼서 이창훈의 공백을 아쉬워하는 팬은 없었다. 안습.

은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연봉 액수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금액을 떠나 프론트 측에서 선수들이 그동안 해온 것에 대한 공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e-sports판에 큰 실망을 느꼈고, 이로인해 은퇴한다고 밝혔다.#

팀플 스타일은 전통적인 저그 오더, 즉 커맨더 스타일. 기동성 좋은 저글링과 시야 넓은 오버로드를 통해 전장을 관찰하고 적절한 오더를 내리는 타입이다. 박성훈과 호흡을 맞춘 훈훈조합이 있었으며, 그가 따로 키워낸 이재황, 임채성도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박정석과의 악연이라면 악연이 있다. 처음으로 열린 프로리그에서 한빛 스타즈동양 오리온이 맞붙었었는데, 오리온은 전격적으로 이창훈을 3경기 기요틴에 출전시켰다. 한빛측의 선수는 박정석. 이창훈은 더블 레어 전략으로 빠른 오버로드 업그레이드를 통한 드랍을 노렸다. 박정석이 정찰을 위해 질럿을 상대방의 본진으로 보냈을 때, 하필 중립동물에 막혀서 질럿이 들어가지 못해서 더블 레어를 확인하지 못해서 결국 드랍에 휘말려 3경기를 지고 말았다. 그 후로 박정석은 중립동물은 보는 족족 죽인다고...

지지를 칠 때 오타를 내서 그 것을 입력한 적이 있다.(...)

주훈감독이 아듀 MBC 게임에 나와서 말하기를 동양 오리온 시절에 차가 프라이드 한 대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퍼졌다고. 그 이유 중 하나로 최연성, 이창훈 같이 덩치 큰 애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차가 버티지 못했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프로필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도 키가 매우 큰 편이다.

현재 oGs 소속으로 스타크래프트 2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이후의 근황에 관해서는 추가바람.

4. 상주 상무 소속의 축구선수


상주 상무 No.15
이창훈 (李昶勳 / Lee Chang-Hoon)
생년월일 1986년 12월 17일
국적 대한민국
포지션 미드필더
신체조건 171cm
프로입단 2009년 강원 FC
소속팀 강원 FC (2009~2011)
성남 FC (2011~ )
상주 상무 (2015~ , 군복무)
2011년 김진용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강원 FC에서 성남으로 이적했다. 측면 공격수로 주로 출전했으며 성남에서나 강원에서나 후보에서 주전을 넘나드는 정도의 위상. 2014 시즌에는 20경기에 출장해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에 입대한다.

5. KBS의 장애인앵커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앵커
2011년 하반기의 KBS 장애인 앵커 공개채용을 통해서 뽑힌 1기 앵커. 당시 경쟁률은 523:1. 시각장애인이고 생후 7개월때 뇌수막염으로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2011년 11월 7일부터 평일 정오에 방송되는 KBS 1TV 뉴스12에서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하였다.

5.1. 계약직 채용 논란

2013년 3월에 2기 장애인 앵커인 홍서윤 씨(지체장애 1급)가 뽑히면서 이창훈 씨를 재계약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처음에 1년 계약직이라고 알리고 뽑은 건 맞지만 굳이 2기 앵커를 뽑으면서 1기 앵커를 자를 필요가 있었냐는 것. 일각에서는 최초 장애인 앵커를 뽑았다면서 방송사 이미지 메이킹용이 아니었냐는 의혹까지 일어나고 있다. 1기는 최초 장애인 앵커, 2기는 최초 장애인 여성 앵커, 그럼 3기는 최연소 장애인 앵커라도 뽑으려는 것이냐? KBS측에서는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입장 외에는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는 상황. 무슨 장애인 직업체험도 아니고...

6. 최고다 이순신의 등장 인물

배우 정동환이 연기한다. 최고다 이순신의 이창훈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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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명은 이봉남이다.
  • [2] 초대 객모독 주연. 거기서도 엄청나게 웃겼다고 전해진다
  • [3] 흘러간 옛 사랑, 아쉽게 헤어진 사랑을 찾아주는 회사를 배경으로 된 코미디 드라마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 드라마ㅡ미국 드라마 "사랑을 찾아줍니다" 란 제목으로1980년대 KBS-1 심야드라마로 하던 드라마 설정과 여러 에피소드를 그대로 베껴 만들었다...물론 몇몇 에피소드는 독창적이긴 했지만. 사실 당시 이 드라마 끝난지 몇 해 안되었기에 이 드라마를 기억하던 이들도 꽤 되었다.
  • [4] 말이 아닌 동작이 유행한 것은 아마도 이것이 처음일듯.
  • [5] 근데 각기 개성적인 원 내무반 친구들에 비해서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이상한 역할이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장동민이 멀쩡한 연기를 하면 관객이
  • [6] 하바드라는 학생용 책걸상 광고에서 아주 멀쩡한 이창훈씨가 상품 소개를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 목소리(의 성우)로 "에이~ 분위기 너무 잡는다~!" 하면 특유의 맹구 표정으로 "하바드니까." 라고 광고를 끝맺는데, 표정은 영락없는 맹구인데도 목소리는 여전히 멀쩡한 이창훈 옹의 목소리인 게 압권.(...)
  • [7] 도망자 Plan.B와는 무관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1969년 김종래 원작만화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의원인 윤태호(이창훈 분)가 억울한 살인누명을 쓴채 포도대장(김정식 분)에게 쫓기는 한편 유일한 사건의 단서인 목점여인을 찾는 그야말로 쫓고 쫓기는 한국형 스릴러였다. 원작만화는 2003년에 애장판으로도 출간된 바 있다.
  • [8] 어떤 한 캐릭터가 너무나도 대박을 치면 그 후광이 후에 경력에 악영향을 주는 건 드문 경우는 아니다.
  • [9] 심형래는 영화찍는다고 15년 넘게 삽질하다 망해서(...)
  • [10] 김경서(고소영 역)의 남편
  • [11] 보통 99~2001년 데뷔한 선수를 1세대, 2001~2002년 데뷔는 1.5세대, 2003년~2006년은 2세대, 2007년 이후를 3세대라 칭한다.
  • [12] 이 이적에 대해서는 다른이야기도 있는데 다름아닌 최연성과 사이가 안좋아서 티원을 떠났다는 카더라가 있다. # ## 그당시 스덕들사이에선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는데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 [13] 반면 SKT T1은 팀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타 팀에서도 이창훈같이 팀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게이머가 없었기에 괜찮았지만 07 전기리그부터 타팀에서도 팀플 전담 조합을 만들어내자 SKT T1은 한동안 전담팀플이 없어 고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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