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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last modified: 2015-04-05 17:36:48 by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2. 대한민국축구선수 1
3.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2
4. 이런 영웅은 싫어등장인물
5. 중국의 전통악기
6. 조선의 12번째 국왕 인종의 이름
7. 조선의 16번째 국왕 효종의 이름

1.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1973년 4월 24일생.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리베로였다. 존칭은 월드 리베로.

2013년 현재 아산 우리카드 한새의 코치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65cm였을 정도로 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키가 컸기 때문에 이 이유 하나만으로 배구부에 들어갔다. 이후 이리 남성중학교에 진학하여 배구를 계속하지만 중3 때 180cm을 찍은 이후 키가 180cm에 고정됐다 카더라. 키가 안 자라는 통에 이리 남성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신진식과 함께 좌우 쌍포로 활약하며 남성고가 전국대회를 싹쓸이 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명지대학교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물론 당시는 전문 리베로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강만수 감독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현대자동차서비스에 계약금 7천만원을 받고 입단, 이후 성재와 더불어 수비전문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리베로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이후로 국내 리그는 물론 국제 A매치에서 매년 수비 관련 부문을 휩쓸며 2001년 여오현이 등장하여 이호의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계속 부동의 국가대표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의 성적은 더이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후옹과 함께 지독한 콩라인 시절을 보내다 김호철 감독이 취임한 뒤 2005-06시즌과 2006-07시즌에 우승을 하고 은퇴했다.

이후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코치 시절에 이렇다 할 리베로를 키워내지 못했다는 박한 평가를 받은 후 경질되었다. 2012-13시즌에 플레잉코치로 현대캐피탈에 복귀했다. 선발 리베로는 아니고 세트 중반 로테이션 상 후위에 빠지는 센터와 엮여 교체되는 교체요원이 그의 포지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당했고 결국 시즌이 끝난 뒤 다시 은퇴한 후 우리카드의 코치로 옮겼다.

2. 대한민국축구선수 1


전북 현대 모터스 No.5
이호 (李浩 / Lee Ho)
생년월일 1984년 10월 22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 서울특별시
포지션 미드필더
프로입단 2003년 울산 현대
소속팀 울산 현대 (2003~2006)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6~2009)
성남 일화 천마 (2009)
알 아인 FC (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
울산 현대 (2011~2014)
상주 상무(임대) (2013~2014)
전북 현대 모터스 (2015~ )
국가대표 경력 24경기 / 0골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알렉스
MF
염기훈
MF
이호
MF
최진수
MF
김영후
DF
최철순
DF
김형일
DF
이재성
DF
오범석
GK
김호준

중동고등학교를 중퇴하고 2000년 브라질 크루제이루 EC의 유소년팀에 입단하고 2002년에는 이탈리아 AC 키에보 베로나의 입단테스트에 합격했지만 비유럽권 선수 보유 제한규정에 걸리면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03년 K-리그울산 현대에 입단한다. 이후 김정우와 함께 울산의 중원을 책임지며 2005년 K-리그 우승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당시에는 파이팅이 돋보이는 수비와 괜찮은 패싱 능력으로 '대한민국제라드' 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김남일의 뒤를 잇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2006 독일 월드컵을 1년 앞두고 국가대표 감독에 취임한 딕 아드보카트의 눈에 들어 국가대표에 발탁되었고, 그 해 10월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이후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중용되면서 월드컵에서도 예선 3경기 모두 선발로 출전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에서 수비 상황에서 공을 커팅한다는 것이 빗맞아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연결되어 추가골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고,[1] 이 실수로 인하여 선제골의 빌미가 된 프리킥을 제공한 박주영과 함께 상당히 까였다.

Lee_Zenit.jpg
[JPG image (69.21 KB)]


월드컵이 끝난 직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호와 김동진 두 명의 한국 선수를 데려가게 된다. 하지만 이호는 주전 경쟁에 실패하면서[2] 2009년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 3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성남에서 35경기를 뛰면서 팀의 K-리그 준우승에 일조한 후 2010년 아랍에미리트 클럽인 알 아인 FC로 이적했지만[3], 반 시즌만에 J리그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1년 친정 팀 울산 현대로 돌아온 후 2012년 팀의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일조했고, 군 복무를 위해 12월 17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2년간 상주 상무에서 뛰게 되었다. 은지와 결혼하였다. 2014년 종료 후 자유계약자가 되었다. 2015년 2월 15일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3.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2


이름 이호 (李虎 / Lee Ho)
생년월일 1986년 1월 6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 경기도 김포시
신체조건 187cm / 82kg
포지션 센터백
학교 대곶초-통진중-안양공고-경희대
소속팀 강원FC (2009)
대전 시티즌 (2010~2014)
안산 경찰청 (임대)(2013~2014)
싱타루아 (2015~ )

2009년 강원 FC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으나 1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0년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첫 시즌에는 7경기에 출장하며 조금씩 출전기회를 늘려갔고, 2011 시즌 25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획득하였다. 2012 시즌에도 23경기에 출장하였고, 시즌 후 경찰 축구단에 입대하여 2013시즌 25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하였다. 2015년 1월 20일 태국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싱타루아로 이적하였다.

5. 중국의 전통악기

얼후 참조.

6. 조선의 12번째 국왕 인종의 이름

7. 조선의 16번째 국왕 효종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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