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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록

Contents

1. 개요
2. 특징
3. 역사
3.1. 배경
3.2. 태동기
3.3. 7080 황금기
3.4. 비주얼계의 등장
3.5. 90년대 이후
4. 의의
5. 관련 항목

1. 개요

일본에서 제작/연주되는 록음악. 통칭 제이락[1]

2. 특징

주로 영미록의 조류를 따르면서도 일본식으로 바뀌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특유의 멜로디는 일본식 '요나누키음계'때문. 4도 7도음을 빼는 것인데 영미록에서 쓰는 펜타토닉 스케일과 일치하기 때문. 물론, 모든 일본록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인기가 좋았던 퀸,본조비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경향도 있다.

3. 역사

3.1. 배경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 서구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국가다. 이는 음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은 1920년대부터 재즈 풍의 음악이 수입되었고, 특히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자유분방한 풍조의 여파로 일본 대도시의 곳곳에는 댄스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댄스홀을 중심으로 서구식 대중음악이 퍼지기 시작한다.[2]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태평양 전쟁 발발을 거치면서 이러한 "귀축영미"의 음악은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적대국이 아니었던 아르헨티나의 남미 음악이나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 스페인의 음악은 계속 유입되었다. 이는 훗날 일본의 라틴음악 붐에 큰 자양분으로 작용한다.[3]

여하튼 이렇게 유입된 외국 음악들은 이후 일본음악의 유연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2. 태동기

패전 후 일본은 미군정의 지배를 받으며 급격히 "아메리카나이징"이 되어간다. 사실상 전쟁 전의 문화와 전쟁 후의 문화는 완전히 단절된다. 이제 일본은 개인이 멸사봉공하여 국가의 부속품으로, 국가가 움직이는 대로의 국가가 아닌, 개개인이 향락을 추구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는 국가로 변한다.[4]

1950년대부터 일본은 로큰롤 음악이 빠르게 유입된다. 엘비스 프레슬리, 빈센트, 척 베리등의 뮤지션들의 음악이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미소라 히바리랑크 나가이같은 엔카 가수들이 엄연히 메인스트림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양음악은 일종의 소스로 쓰였을 뿐, 그 자체로 새로운 음악이 되지는 못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시기에 로큰롤이 유행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양족이라는 일본식 디보이 서브컬쳐가 생겨났지만, 사실상 외양은 비슷했지만 로큰롤 자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이 당시 로큰롤을 잘 발음을 못해서(로-꾸운-로루 라로 발음해야했다...) 로큰롤이든 듬 앤 블루스건 죄다 "로카비리"(로커빌리)라는 이름으로 통칭해서 부르곤 했다고 한다(...).

일본의 록 음악은 1960년대부터 여명기를 맞이하게 된다.[5] 1950년대 후반부터 로커빌리 밴드들이 외국식 음악을 재즈클럽이나 댄스홀에서 연주하고는 있었지만, 비틀즈 붐이 불면서 비로소 일본식 록이 생겨난다. 이 시기에는 일본식 록 밴드를 GS(그룹 사운드의 약칭)라고 불렀다. 이러한 흐름은 196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사이키델릭 록이나 하드 록의 시대가 불기 전까지 일본식 머시 사운드 또는 비트 뮤직을 형성했다. 이 시기에 유명했던 밴드는 일본 GS의 패왕이라 불린 스파이더스, 타이거즈, 카나비츠등이 있다.[6]

당시는 음악 장르의 세분화가 진행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해서, 키 요시카와와 블루 코메츠 스파이더스처럼 비틀즈 일본 공연 전부터 직업적인 밴드로 활동하던 것부터, 사베지 와일드 원즈 같은 크 록 그룹, 아니면 타이거즈 템터즈, 카나비츠처럼 비틀즈롤링 스톤즈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친구를 모아서 결성 한 록 밴드까지 전부 "그룹 사운드"라고 불리고 있으며, 각 그룹의 음악성이나 표현성 등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GS 붐 초기에는 재키 요시카와와 블루 코메츠, 더 스파이더스, 더 사베지가 3대 인기 그룹이었고, 삼대장 GS 붐의 중후기에는 더 타이거즈, 더 템터즈, 옥스가 GS의 대표밴드라고 했다.

이러한 흐름은 사이키델릭 록을 거쳐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이어진다. 몹스(The Mops), 라워 트래블린 밴드, 외도(外道. 게도우)등의 밴드들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밴드들이다. GS 붐의 소용돌이에 있던 일부 뮤지션들은 '자기 길을 찾아' 가게 되어서, 포크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으로 전이된다. 이때문에 당시 GS 밴드를 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레코드 회사에서 시켜서 한거지 내가 원하는 음악은 따로 있었다"라고 과거부정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본의 포크 록은 60년대 후반 사회적인 저항의 분위기를 타고 크게 성장한다. 카미 칸이나 이노우에 요스이같은 뮤지션들이 이 시기에 음악적 캐리어를 시작했다.

재미있는것은 일본은 한국에는 별로 없던 글램 록 성향의 밴드들도 꽤 있었다는 것이다. 튤립스는 아예 시 뮤직같이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고, 운타운 부기우기 밴드는 글램록에 영향받은 소울풀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때 일본의 현대적인 록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자와 에이키치의 밴드 캐롤(캬로루)가 등장하게 된다.

70년대부터 핫피 엔도를 분수령으로 적극적으로 일본식의 음악이 아닌, 보다 영미권의 원형에 가까운 음악이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펑크메탈 등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록 씬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69년에 데뷔하여 현재의 일본 록 콘서트, 라이브하우스 문화에 큰 족적을 남긴 RC석세션, 1970년대 초의 The Alfee[7]나 말부터 활동한 쿠와타 케이스케가 이끄는 일본 국민 밴드 Southern All Stars[8] 등 일본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문화 현상으로까지 불렸던 록 밴드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3.3. 7080 황금기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일본 록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걸출한 밴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일본 하드록 계의 시초라 할 수 있는 LAZY를 필두로 해, LAZY 출신의 걸출한 기타리스트인 타가사키 아키라와, 일본 메탈계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니하라 미노루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LOUDNESS[9], 일본을 넘어선 최고의 보컬리스트 겐키 히토미와 거물 기타리스트 쿄지 야마모토가 이끌던 VOW WOW[10]등이 해외 진출까지 하며 일본 록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EZO등의 밴드는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너부터 활동하며 당대 최고 인기의 밴드인 건즈 앤 로지스와 함께 투어를 돌기까지 한다.

일본 국내에서도 사카모토 에이조라는 거물급 보컬리스트를 주축으로 한 Anthem, 거물 보컬리스트 히무로 쿄스케와 초일본급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이끌던 BOØWY[11], 그 외에도 44MAGNUM, ZIGGY 등의 밴드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또한, 80년대에 접어들면서 DEAD END[12], 세이키마츠, 겐이스등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 밴드들도 나타나서 일본 음악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80-90년대의 시기는 소위 밴드 붐 시대라 일컬어지며 수많은 록밴드들이 데뷔하게 된다. 그 중 밴드 고산케(バンド御三家) 로 꼽히는 블루 하츠, The BOOM[13], 유니콘이 특히 두각을 드러냈으며, 8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일본의 팝 록을 대표하는 최고의 인기 밴드인 B'z[14]도 일본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유명 미국 기타리스트가 이들과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할 정도.

3.4. 비주얼계의 등장

80년대말부터 90년대 초까지는 TV 출연등 매스컴에 활발히 노출한 록밴드인 X JAPAN 등이 등장하여, 이때 활동한 X JAPAN, BUCK-TICK등의 영향으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소위 '비주얼계'라고 하는 화려하게 분장한 밴드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15] 기행으로 알려진 근육소녀대도 활동 개시 시기상으로는 이들과 비슷하며, 이들과는 사이가 나쁜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90년대 후반부터 몰락하기 시작한 비쥬얼 록은 현재는 완전한 몰락의 길을 걸어, 예전의 명성을 전부 잃은 상태이다. 특히 일부 상업적인 밴드들의 심각한 병크로 인하여 음악은 안되는데 얼굴로 밀어붙이는 밴드라는 식의 평도 생겨서, 비주얼계라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사용될 정도. 자세한 내용은 비주얼계 문서 참조.

3.5. 90년대 이후

이후 90년대 음악을 대표하는 Mr.Children이 등장하여 새로운 일본 음악의 방법론을 제시하며, LUNA SEA[16], 범프 오브 치킨, ASIAN KUNG-FU GENERATION, 라르크 앙 시엘, GLAY등 걸출한 밴드들이 일본 음악계를 이끌어 왔다.

그런 한편 주목은 받지 못했어도 하드코어, 펑크 록 밴드들이 꾸준히 불어났고, 오늘날 일본 인디/언더 록 씬의 주류는 하드코어 밴드들이 되었다. 반면, 일본 메이져 음악계에서는 일본식 팝 펑크와 얼터너티브 록, 그리고 포크 록 등이 주로 퍼져있다.

여담이지만, 애니메이션 음악에 비주얼계 출신 밴드를 쓰는 경우도 많다.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의 주제가를 부른 라르크 앙 시엘이나, 흑집사의 주제곡을 부른 SID 등등. 반면 데스노트처럼 Maximum the Hormone 같은 코어락 계열 밴드가 주제가를 맡는 경우도 간혹 있다.[17]

진짜 여담으로, 락 비트를 사랑하는 μ's 작곡가들 답게, μ's의 노래 중에도 이쪽 노래가 많다.

하지만 작정하고 파는 음덕들에겐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9mm Parabellum Bullet이라든가, Maximum the Hormone, RADWIMPSThe Back Horn, ELLEGARDEN 등 모두 잘 알려져 있다.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블러드 스테인 차일드도 세계적으로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편이며, 파워 메탈 밴드인 Galneryus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비주얼계 출신[18]dir en grey도 외국 유명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록씬은 굉장히 규모가 거대하여, 수천개의 록 밴드들이 활동하며 공연하고 있고, 전국의 공연 클럽 숫자, 그리고 그 록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또한 인디씬의 경우도 The pillows처럼 음악성만 있다면 명성과 팬과 상당 규모의 음반 판매량을 기대할 수도 있다[19]. 세계에서 록씬 규모가 제일 큰 국가는 미국, 영국 다음에 일본이다.[20] 이건 굳이 록 음악 뿐 아니라 음악 시장 전반 규모로 봐도 마찬가지다. 핀란드에서 메탈이 대중적이라곤 하지만 경제 규모 때문에...

4. 의의

록 밴드에 의해서 일본 음악계가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 일본 대중음악계는 한국 음악계와는 상당히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심지어 힙합이나 댄스 등 다른 음악을 하는 팀들도 록 밴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아이돌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날렸던 층쿠도 SharanQ라는 팝-락밴드 출신으로 오리콘 차트 1위까지 해봤고 아직까지 당시의 유명곡인 single bed는 40대 이상에서 애창곡 중의 하나이다. 코무로 테츠야 역시 globe 이전에 밴드를 경험한 바 있으며, 동시대의 유명한 프로듀서 중 하나인 후지이 후미야 역시 80년대 후반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checkers라는 밴드의 보컬 출신으로, 인디즈에서도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고 메이저씬에서 대박을 쳤다.

또한 애니송 전문 레이블인 란티스의 사장인 이노우에 슌지도 바로 7080 황금기에 활동을 개시해 지금까지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밴드 LAZY의 키보드 출신이다.

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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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제이락은 일반적으로 80년대 이후의 일본 락을 가리킨다. 이 문서에서는 일본 전반적인 록음악덕질을 설명하였다.
  • [2] 여담으로 이 시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재즈풍의 음악이 대 유행했다. 당시 슈퍼스타였던 무용가 최승희가 재즈 음반을 취입할 정도였다. #
  • [3] 1950년대 한국에 차차차 붐이 불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 [4] 일본의 군국주의파시즘과 다르다는 평가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파시즘은 대중적 지지가 분명히 있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는 사실상 권력자들 사이에서 치고박고 쿵짝이 맞아서 결정된 것이고, 개인들은 그저 대세에 따라 휩쓸려 다녔다. 그리고 이런 점은 일본의 약소민족 행세를 뒷받침하는 좋은 핑계가 된다
  • [5] 이 점은 한국에서 부러운 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한국이 낮은 경제력과 검열로 인해 외부의 문화가 잘 유입되기 힘들었던데 반해 이들은 당시 경제력도 있고 검열도 약했기 때문에 외국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유입된다. 심지어 1966년에는 비틀즈도 투어를 온 적이 있다. 그래서 공연에 목마른 한국인들은 떼창을 하고 외국밴드가 넘쳐나는 일본은 공연때 시큰둥
  • [6] 당시 일본 GS 밴드들의 이름은 여러가지로 일본식 카타카나 발음으로 쓰여져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옮길때 엄청나게 기기묘묘하게 발음이 괴상해 지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 있어서 통일된 표기법이 필요하므로 이에 관심있는 위키러들의 수정바람. 근데 GS따위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안될거야 아마
  • [7] 해산 및 활동중지 없이 지금도 멤버들의 솔로활동과 병행해 활동 중이다.
  • [8] 활동 중지 선언만 했을 뿐인데 일본 주가가 오르내렸을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유명인 중 다수가 이들의 팬임을 밝히고 있다.
  • [9] Crazy Night라는 싱글은 일본 빌보드차트 74위까지 오른다.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던 동양 록 밴드.
  • [10] 영국에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 음악만 듣고 영국 밴드인줄 알았다가 일본 밴드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 [11] 비주얼적 컨셉이나, 창법 등에서 이후 등장한 비주얼계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래 DEAD END와는 달리 메탈 계통의 음악을 하는 비쥬얼 록 밴드보다는 모던록 성향의 밴드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LUNA SEA역시도 히무로 쿄스케의 창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12] 쿠로유메의 키요하루, BUCK-TICK의 사쿠라이 아츠시 등이 영향받았음을 공언하고 있으며, LUNA SEA 등도 언급만 안할뿐 다대한 영향을 받음
  • [13] 보컬로이드 KAITO의 커버로도 유명한 시마우타(島唄)가 대표곡이다.
  • [14] 일본 최고의 인기 록밴드로서, 일본 통산 8000만장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하여,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가진 밴드.
  • [15] 물론 이러한 스타일은 이들 전의 세이키마츠D'ERLANGER 등의 밴드들이 존재하였으며, 대중화 시킨것이 이들이라는 뜻이다.
  • [16] 다수의 공연관련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90년대의 일본식 멜로디가 강조된 하드록 스타일을 확립, SIAM SHADE의 드러머가 루나시의 로디 출신으로 영향받음을 공언.
  • [17] 간혹 하드록 밴드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맡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SIN의 오프닝인 Pray를 맡은 LAZY. 그런데 이 경우는 약간 괴랄맞게도 당시 작품의 음악 담당인 이노우에 슌지가 밴드 키보디스트였던지라...게다가 의외로 이노우에 슌지는 해체 후에 음악 프로듀서로 뛴 경험이 많아서 이후 자기가 회사를 차리고 나서는 여러가지 활동을 한다.
  • [18] 그러나 dir en grey는 현재 비주얼계라는 말에 질색팔색한다.
  • [19] 일본에선 아예 인디즈 씬이라는 나름 독자적인 씬도 형성되어 메이저 못지 않은 활동을 할 수도 있을 정도.
  • [20] 경제적 규모로만 보면 영국과 거의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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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0-18 11: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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