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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

last modified: 2015-04-14 23:02:16 by Contributors

日本航空123便墜落事故
Japan Airlines Flight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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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85년 8월 12일
유형 유압계통 불량
발생 위치 일본 마현, 다카마가하라 산 능선
탑승인원 524명
사망자 520명
생존자 4명
기종 Boeing 747-SR46
항공사 일본항공
기체 등록번호 JA8119
출발지 하네다 공항
도착지 사카 공항


목차

1. 개요
2. 상세
2.1. 출발
2.2. 발생
2.3. 결말
3. CVR(Cockpit Voice Recoder)
3.1. 탑승자 관련
4. 사고 원인
5. 사고 후
6. 삽질과 음모론
7. 예방?
8. 기타

1. 개요


사고 1년 4개월전에 찍힌 사진.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

1985년 8월 12일 발생한 단일항공기 최악의 참사

1985년은 민간 항공업계에서는 흑역사로 꼽는 해이다.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대형 항공 사고가 4 터졌다.[1]그러나 29년 후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데... 이 해 8월 12일 오후 6시 57분 경 JAL 소속의 도쿄오사카747-SR46/ 항공기 식별번호 JA8119가 도쿄에서 100km 떨어진 군마 현 부근의 다카마가하라 산 능선(오스타카노오네御巣鷹の尾根)에 추락하여 탑승객 509명과 승무원 15명, 총 524명중 단 4명만이 생존한 참사로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항공 사상 최악의 인명사고이다. 항공기 탑승객 총사망 순위로도 2위.(사망순위 1위는 테네리페 참사로 이쪽은 583명이 사망했다.)

2. 상세

2.1. 출발

사고가 난 기체 747-100SR은 747-100의 가능한 이착륙 횟수를 늘리고 이륙 최대 중량을 줄인 단거리 버전으로 일본 국내선의 다대한 수요를 만족시키고자 연료 탑재량을 줄이고 수송량을 극대화시키고 랜딩기어를 보강한 기종이다. 사고기에는 총 정원 528명중 524명이 탑승했는데 일반 747-100의 일반적인 3클래스 좌석 배열 정원이 366명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는지 알 수 있다. 사고일은 일본의 추석에 해당하며 일본내 2대 명절로 불리는 오봉(お盆) 전날로, 탑승객은 샐러리맨들과 귀향객,여행객들이었다.또한 기체는 그날 삿포로 1왕복,후쿠오카 1왕복 비행을 한 후 오사카에서 도쿄로 돌아온 다음 운행을 마칠 예정이었으며,이런 까닭에 항공기관사가 오랜 시간동안 탑승하고 있었다(도쿄~후쿠오카 왕복편으로 탑승).[2]


당초 이륙 예정 시각은 6시 정각이었으나 12분 늦은 6시 12분에 이륙. 이후 56분의 비행을 거쳐 오사카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당시 이 비행기는 부기장의 기장 승격 훈련을 겸하였기에 사사키 유타카(佐々木佑) 부기장은 기장석에서 비행기 조종을 지시했고 타카하마 마사미 기장은 부기장석에서 관제소와의 교신을 주로 맡았다. 때문에 아래의 교신 내용을 들어보면 기장이 교신을 담당하고, 엔진 출력 조종 등 원래 기장의 역할은 기장이 직접 하지 않고 부기장을 독려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기체의 모든 계기는 정상 작동했고, 연료는 약 3시간을 비행 할 수 있는 양을 탑재하였다.

2.2. 발생

이륙한지 12분이 지난 6시 24분에 고도 24000ft 상공에서 큰 폭발음이 들리고 후쿠다 히로시(福田 博) 항공기관사(FE)의 계기판엔 R5(오른쪽 5번째)도어의 경고등이 점등된다. FE는 이 도어가 떨어져 나갔다고 판단하고 조종사에게 알린 것이며 경고 50초후에 조종사는 트랜스폰더에 7700을 장입하여 비상사태를 알린다. 이건 민항관제용 레이더에서 비행기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코드를 발신하는 장비. 이륙하기 전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4자리 번호를 장입한다. 7500은 공중 납치(Skyjack), 7600은 무전기 고장, 7700은 기체의 고장이다.

사고 직후 비행기가 상하로 요동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기장은 긴급 강하를 시도하면서 하네다 공항으로 회항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때 벌크헤드가 날아가고 수직 꼬리날개가 찢겨 날아가면서, 조종타면을 움직이는 유압액이 새어나가 조종 불능에 빠진다. 물론 항공기의 유압계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보통 다중 계통으로 구성하며 747의 유압계통 역시 4개의 채널로 구성. 하지만 JAL123은 불행하게도 4계통 모두 찢겨나가고 말았다.

2.3. 결말

조종불능에 빠진 직후, 조종사들은 플랩과 4개의 엔진의 출력을 조정하여 어떻게든 기체를 제어하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면 핸들이 고장나서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만으로 운전하는 상황. 그러나 13500 ft로 강하한 직후, 조종사는 결국 관제소에 조종 불능을 보고한다. 이후 기체는 약 30분 동안 불안정한 상태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이는 조종이 불가능한 기체의 기수가 위로 들리게 되면 고도는 상승하고 속력은 감소/ 어느정도 속력이 감소하면 기수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고도는 다시 하강, 속력은 상승/ 속력이 붙은 기체의 기수는 다시 위로 향하는 Phugoid,dutch roll,stoll 사이클 현상 때문이다.[3]

이 시점에 하네다 공항과 요코타 미군기지 활주로에서는 비상착륙을 준비하였으나 방향타 조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체는 몇 차례 선회하면서 후지산 방향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기수가 오르내리는 가운데 플랩이 상승하면서 결국 추력을 완전히 잃고 기체가 급강하하며 6시 56분 산에 수직으로 추락하였다. 충돌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일례로 타카하마 마사미(高濱雅己)기장의 시신은 거의 완전히 불타버려 확인가능한 치열 5개만 남은 아래 턱뼈로 신원을 겨우 확인했다.

3. CVR(Cockpit Voice Recoder)

일본 운수성은 비공개 자료였던 본 기체 조종실의 음성녹음자료를 1999년 11월에 모두 폐기처분하였다고 발표했는데, 누군가가 이를 녹음하여 2000년 8월에 방송국에 공개하여 큰 파장이 일었다. 아래가 해당 녹음자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듣도록. 무서운 내용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한 처절함이 느껴진다. 참고로 가까운 시일 내에 비행기를 탈 일이 있다면 절대로 듣지 말 것. 또한 재난 관련 PTSD가 있는 사람 역시 절대 시청을 권하지 않는다.

플래시 버전 한국어 영상판
CAP: 기장(타카하마 마사미) COP : 부기장(사사키 유타카) F/E : 항공기관사(후쿠다 히로시) ACC : 항공 관제센터 YOK : 요코다 진입관제소 APC : 도쿄 진입 관제센터

마지막 10초 전에 나오는 WHOOP! WHOOP! PULL UP! 멘트는 항공기 조종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경고음이다. 문서 참조.

3.1. 탑승자 관련

Example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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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코, 쯔요시, 치요코. 부디 사이좋게 힘내서 엄마를 잘 도와주거라. 아빠는 유감스럽지만 확실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이제 5분이 지났다. 이제 비행기는 타고 싶지 않아. 제발 신이시여 살려주세요. (공백) 어제 모두 모여 한 식사가 마지막이라니.. 뭔가 기내에서 폭발한 듯 연기가 나고 강하하고 있어. 어디로 어찌되는 건지. 쯔요시 확실히 부탁한 거다. (공백) (아이)엄마 이렇게 될 줄이야 유감이다. 안녕 아이들을 잘 부탁해. 지금 6시 반이다. 비행기는 회전하면서 급속히 강하 중이다. 정말 지금까지는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감사하고 있어.

승객 중 한 명이 수첩에 작성한 유서 중 일부. 야마사키 도요코의 소설 '지지 않는 태양'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는데, 픽션이기에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이 유서는 그대로 나온다. 승무원들이 처절하게 노력하는 동안 승객들은 비행기 구석구석에 유언을 새기고, 마지막 사진을 찍어 남겨두었다.

  • "마치코, 아이들을 잘 부탁해." 라는 유서를 남긴 타니구치 마사카쓰(谷口正勝) 씨의 장남 아츠시(篤志) 군은(당시 13세) 아픈 엄마를 대신하여 혼자 가족을 대표하여 아버지를 모셔오겠다며 씩씩하게 현장에 왔다가 비보를 전해 들었다. 죽음의 개념조차 잘 다가오지 않는 어린아이가 혼자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고 충격에 빠져 비틀거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중계 되면서 일본 열도를 슬픔에 빠뜨린 바 있다. 훗날 장성한 아츠시 군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든든하고 근엄한 아버지라기보다는 항상 촐랑대는 좀 못믿음직스러운 아버지였는데 그런 아버지가 그 무서운 순간에도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힘을 주려고 가족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유서를 남긴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회고했다고.

  • 당시 9세였던 미야지마 켄(美谷島 健) 군은 고시엔이 보고 싶어서 오사카의 친척집을 방문하려 혼자 비행기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일본항공에서는 당시 어린이 VIP라고 해서 승무원이 현지 공항에서 보호자에게 직접 어린아이를 데려다 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켄 군의 어머니 미야지마 쿠니코(美谷島邦子 당시 38세) 씨는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데다가 친척들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준다는 이야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아이를 혼자 보냈다가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고. 이에 혼자 아이를 보냈다는 죄책감,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아이가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지에 대한 자책 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던 이 여성은 몇 번이나 죽으리라 결심했으나 분명 자신처럼 자책감에 살 희망을 잃어버린 유족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유족들에게 위로 전화를 돌렸고 이것이 후일 812연락회라는 유족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이 여성은 29년이 지난 2014년에도 생존 중이며 군마현의 산 속에 있는 아들의 위령비 앞에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과자를 사서 놓아둔다 한다. [4]

  • '위를 보며 걷자'로 아시아인 최초로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한 가수 사카모토 큐도 이 사고에 휘말려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더욱 안타까운 건 지인의 선거유세차 오사카로 향한 것인데 늘 이용했던 전일본공수의 여객기에 탑승하려했지만 하필 만석이라 할 수 없이 123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이외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67기생, 설조의 키타하라 요코(北原遥子 본명: 요시다 유미코吉田由美子)가 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장래가 촉망된 배우가 오사카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가다가 변을 당한 것이 안타까움과 가슴 아픈 슬픔을 금치못 했을 정도였다.

  • 이 사고로 당시 한신 타이거즈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도 목숨을 잃었는데, 때문에 한신 선수들이 우승 의지를 불태워 그 해 센트럴리그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다. 창단 50년만의 첫 우승이자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사망한 나카노 사장의 영전에 바친 선물인 셈(나카노 사장은 구단 사장으로 취임한 후 사망하기 하루 전날까지 경기를 마치고 로커로 돌아오는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었고,그의 사고 소식을 접한 선수들의 충격은 아주 컸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사고 이후로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일본 3대 도시권에서 이동 거리가 너무 먼 홋카이도/큐슈/도호쿠/오키나와 경기 및 해외 전지훈련 이외에는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으며, 오키나와와 해외 훈련을 제외한 세 지역은 선수 자율로 신칸센 등을 이용하여 이동하고 합류하는 것도 허용한다.

  •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으로 협박을 받던 하우스 식품 사장 우라카미 이쿠오도 사건 종결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읽고 오사카 본사로 가던 중 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그 외에도 일본에서 이름이 알려진 몇몇 인사들이 123편을 탔다가 목숨을 잃었다.

    Example.jpg
    [JPG 그림 (112.46 KB)]


  • 당시 주간 아사히의 표지. 주인공은 당시 생존자 4명 중 한 명인 카와카미 케이코(川上慶子).

  • 국제 결혼한 영국인 킴블 매슈즈와 니시구치 마사코(西口昌子)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이 비행기를 타다가 변을 당해 주위를 안타까움을 자아냈었다.

4. 사고 원인

추락한 항공기는 사고 7년 전 1978년 6월 2일 이타미 공항에 착륙중 테일 스트라이크(착륙이나 이륙중 과도하게 기수를 들어올려 꼬리부분이 활주로에 부딪히는 사고)로 후미에 손상을 입어 제작사인 보잉에 정비를 의뢰한 기체였다. 벌크헤드라고 부르는 비행기의 기압을 유지하는 격벽이 손상을 입어 일본 항공에서 수리할 수 없었기 때문.

그런데 보잉의 기술자는 이를 수리하면서 규정상 두 줄의 리벳이 박힌 이중 철판으로 동체와 고정하도록 한 것을 한 줄의 리벳이 박힌 이중 철판만으로 고정하였다. 이후 계속된 비행에 따른 기압 변화로 인한 금속피로를 이기지 못해, 이 벌크헤드가 터져나가버리면서, 비행기의 방향 안정성을 유지하는 수직 꼬리날개를 날려버렸고 , 이 때 방향타면을 움직이는 동력을 제공하는 유압의 분배기인 토크 박스를 터트려 유압이 새어나가게 되었고 결국 유압과 조종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사실 78년 테일 스트라이크로 인한 동체의 변형이 수리 후에도 남아 사고 직전까지 캐빈 뒤쪽의 화장실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든지, 바람이 새어든다든지 휘파람 소리가 나는 등의 결함이 있었다고 한다. 이건 당연히 정상 기체가 아니며 벌크헤드가 터지지 않았더라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사고가 날 기체였다. 이를 폐기처분하지 않은 일본 항공도 정상이 아닌 것.


벌크헤드의 위치와 추락하기 전 아마추어 사진가가 찍은 사진에서 JAL123을 확대한 모습. 수직 꼬리날개 전체가 날아간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사고의 주원인은 벌크헤드 파손이지만, 이후 폭발적인 감압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폭발적인 감압이 없었다고 하는 측에서는 조종실 음성기록을 근거로 산소 마스크 착용할 여유가 있었음을 지적하지만, 폭발적인 감압이 일어났다고 해도 무조건 그 직후 기내의 사람들이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 보통 이 상태에서는 순간적으로 수증기 응결이 일어나므로 감압을 알 수 있으며 자동(수동 가능)으로 산소마스크가 좌석 근처에서 터져 나온다. 때문에 아무리 감압이 일어나더라도 의식을 잃기 전 산소마스크 쓸 정도의 여유는 있다.

5. 사고 후

일본 측은 사고 원인 조사 후 보잉을 형사고발하였으나 기각당했다. 일본 항공은 피해자 측에게 총 7억 8천만엔을 배상하였으며 회장은 퇴임하였고, 사고의 주역 정비 총담당자는 자살하였다. 만일 정비 총담당자가 진심으로 사죄후 처벌받고 살아 있었다고 해도, 위버링겐 상공 공중충돌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관제사가 유족에게 살해당한 사례처럼 유족들에게 습격이나 살해를 당했을 가능성도 많다.

또한 보잉 측의 정비가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항공은 보잉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소문에 한동안 시달려야만 했다. 보잉이 주요 고객인 일본 항공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을 "뒤집어 썼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고. 항공 사고 수사대에 따르면 당시 일본에서는 일본 항공에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였다고도 전한다.

이 사고로 인하여 일본 항공은 물론 전 일본 항공 업계가 큰 손실을 입었다. 일본 국내선의 수요는 25%나 감소했으며, 이마저도 많은 이들이 일본 항공 대신 전일본공수로 갈아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사고 이전에도 일본 항공은 경쟁사인 전일본공수보다 신뢰가 떨어지는 상태였고 국내외적으로 추락사고가 많았으며 당장 이 사고로 사망한 사카모토 큐도 원래는 일본 항공을 믿지 못해 전일본공수의 비행기를 타려고 했을 정도이다.

다만 이 사고의 충격이 워낙 컸던지 일본 항공은 이 사고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원가 절감을 이유로 정비를 아웃소싱하는 상태이며, 이 사고 20주기 기념으로 위령제를 지낸 2005년 8월 12일에 호놀룰루로 가던 JALways(JAL소속의 저가항공사)의 DC-10이 이륙 직후 엔진 고장으로 화염을 내뿜으며 부품을 시가지에 떨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6. 삽질과 음모론

일본 정부는 퍼붓는 비, 산에 추락하여 구조하기 불리한 지형, 저녁무렵에 추락하여 시계가 확보되지 않기에 결국 추락 후 12시간이 지난 아침에야 구조활동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이는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자위대 헬기 조종사가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추락 직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많았고 헬기 소리가 들렸을 때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헬기는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 돌아가 버리고 결국 생존자 상당수가 비까지 내리는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숨졌다고 한다.

아래는 사고 당시의 보도와 이후 이어진 무수한 썰을 정리한 것이다. 다만 당시 일본의 보도매체들이 구조를 주도한 자위대와 미군의 정보통제 속에서 온갖 추측성 정보를 바탕으로 보도를 했음은 감안해야 한다. 추락현장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중성자폭탄에 의한 테러라는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

  • 추락 확인 직후, 미 공군의 C-130 수송기가 탐색에 나서 20분만에 기체를 찾아냈으며, 탐색구조헬기가 2시간 후에 기체 추락 현장에 도착했다. 즉시 가장 가까운 주일미군 기지인 요코다 기지에 경보를 발령했고 주둔중인 미해병대는 구조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 허가를 요청하였지만, 구조활동은 자위대의 책임이라며 거절하고 탐색구조 헬기의 이탈을 요구했다.

    당시 미군측의 요청은 '우리가 당장 달려가서 구조를 개시하겠다'가 아닌 '많은 부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사태이니 의료반과 헬기를 준비해두었다'였다는 모양이고 이에 자위대 측은 '감사한다. 대기 바람.'이라 답했을 뿐이라는데, 사고 직후 미군의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던 것도 사실이고 이 헬기가 구조활동을 개시하기 직전에 상관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라는 당시 구조헬기 승무원의 증언이 있으며 이 사실에 대해 함구령까지 떨어졌다고. 이 철수명령에 자위대가 관여했는지는 미지수.

  • 도쿄공항에서 자위대측에 구조대 파견요청을 한 것은 비행기가 추락한 후 약 2시간이 지난 시점. 이유는 '정확한 추락지점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구조요청을 낼 수 없다.'였다고. 그나마 123편에 문제가 생겼다는 정보는 추락 이전부터 자위대측에 전해진 상태였고, 덕분에 자위대의 대책본부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개설돼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항공자위대의 탐색구조헬기가 추락 후 1시간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해당 헬기의 전문분야는 해상구조였고 적외선 장비 등의 야간구조 장비를 탑재하고 있지 않아 생존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철수.

    덧붙이면 자위대의 제1공정여단의 여단장이 사고지점의 야간 강하를 제안하지만 기각당했다. 이 제1공정여단장은 정부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독자적으로 부대를 움직였기에 모반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훗날 좌천되었다.

  • 헬기로 추락지점을 파악한 항공자위대가 지상자위대에 추락지점에 대한 정보를 전했지만, 항공자위대와 지상자위대의 지휘체계가 판이하게 달라 지상자위대가 정확한 추락지점을 파악하고 도보로 도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고 만다. 추락지점 파악에 민관경이 모두 투입됐지만, 서로 추락지점에 대한 정보가 달라 구조대를 혼란에 빠뜨렸을 뿐. 결국 구조대가 도보로 추락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추락 후 14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9시.

  • 일본 정부는 사고가 난 직후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인명구조보다 사고 기록 수집을 우선시했다. 여기에 상술한 구조대 도달 지연까지 겹치면서, 사고 직후 도착한 의료진들은 많은 이들이 쇼크와 추위로 사망했음을 확인한다. 추락한 직후 비가 내려 큰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 의외로 많은 사람이 살아 남았으며, 상기 항목에도 나오는 생존 승무원 가와카미 게이코의 증언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의 신음이 들렸고, 한 남자아이와 그의 어머니가 서로를 애타게 부르는 것도 들었다고.

  •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서투른 사고 처리를 두고 자위대의 오인으로 인한 격추, 무인기와의 충돌, 또는 미국이 알면 좋지 않은 물건을 화물로 싣고 있었다는 등의 음모설도 돌았지만, 대개는 그냥 관료들의 멍청한 병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몇십 년 후에 발생한 또다른 대사건에서도 여전한 것을 보면 이쪽이 맞는 것 같다.(...) 구 제국 일본군에서부터 이어지는 이 유구한 전통

7. 예방?

이 사고 이후 조종사들을 모아서 모든 유압이 상실된 상태의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을 시뮬레이션하였는데, 단 한 명의 조종사도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키지 못했다. 참고로 모든 유압을 상실한 기체가 그대로 추락하지 않고 아무튼 착륙이라도 한 경우는 1989년 7월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와, 2003년 11월 22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하는 DHLA300 화물기가 이라크 반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당해 왼편 날개 일부 손상으로 3계통의 유압을 모두 상실한 후 바그다드 국제 공항에 비상 착륙한 두 건 뿐이다. 이외에는 미국의 B-52 스트라토포트리스 폭격기도 비행시험 중 수직 꼬리날개가 통째로 뜯겨나간 일이 있었으나 이쪽은 유압 계통은 온존하여 제어가 가능했고 무사히 착륙하였다. 해당 문서 참조.

비행업계는 유압이 상실되었을 때 비행기가 엔진의 출력만을 통하여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으나 항공기가 유압이 나갈 확률은 극히 드물다는 이유로 이의 채용은 항공사 자율에 맡겼다. 그리고 이 장비를 장착한 항공사는 2014년 시점에도 한 곳도 없다. 다만 이는 항공업계의 안이함 때문만은 아니고 이 프로그램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의 골자는 모든 유압이 나간 상태에서 좌우 엔진 출력으로 선회하고 상승과 하강을 조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것이 다 정상인 상황에서 '유압회로'만 전멸한 경우에 쓸 수 있다. 복수 유압회로가 전부 전멸하고도 기체의 모든 부분이 완전하며 무게중심이 쏠려있지 않고 연료 상황도 무게중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일 때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쉽게 말해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는데 정면 충돌한 두 차량이 범퍼, 차체, 도색 등 모든 부분이 말짱하고 차량유리만 깨진 경우와 흡사하다.

JAL123편이 유압 계통 완전 소실 후에도 30분이나 비행한 것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이 때문이다. 만약 비행 균형 유지에 이상을 끼치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사고발생 직후 회복불가능의 회전을 일으켜 즉시 추락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런 걸 설치하느니 그냥 유압회로를 한 줄 더 깔든지, 예비 작동유 탱크를 하나 더 설치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8. 기타

  • 추락 후 30분이 지나고 나서 일본 방송에 속속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TV 아사히(ANN)에서는 쇼프로그램 중이었는데 자막으로 479명이 탄 하네다발 오사카행 일본항공 여객기가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했고, 쇼프로가 끝난 후 뉴스 속보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소식을 전했다.
    니혼 TV(NNN)에서는 막 쇼프로가 시작되고 남녀 진행자가 참가자를 소개하는 시점이었다. 문제는 이 쇼프로가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남자 진행자가 '잠시 긴급 뉴스 때문에 뉴스 스테이션(스타디움?)으로 장면 바꾸겠으니 ㅈㅅ'이라고 말하고 보도국으로 장면이 전환되었다. 그 짓을 쇼프로 진행 중 3~4번 하다가 종료 후 바로 뉴스 속보 프로그램 행.
    NHK에서는 다큐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는데, 자막으로 속보를 내보내고. 속보 프로그램을 편성해 '여객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라는 방송을 하였다.

  •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 속 영원한 루저 나카무라가 자위대에 있을때 이 사고의 처리에 참가했다는 뻥을 쳤다.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처음 작품을 그릴 당시에는 나카무라가 직접 경험담이랍시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중에 들춰보니 그 이야기는 나카무라의 선배의 경험담으로, 나카무라 본인은 파견나간 적이 없었다. 뽀록 난 후 나카무라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JAL123기 관련 자료와 위 만화를 실은 겐분 매거진 특별호가 발매되었으나 어디까지나 작가 개인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자료집 용도로는 다소 부족한 편. 이외에 JAL123기 파편과 희생자들 사진이 실린 사진집이 발매된 적도 있었으나 엄청난 항의에 못이겨 바로 절판되었다. 넷상에서는 이 사진집에 실린 사진을 구할 수 있으나 실제 희생자 사진을 적나라하게 실었으므로 열람은 권하지 않는다.

  •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클라이머즈 하이" 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도 있다.


  • 한국에서 본 사건를 소재로 한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루(淚)-그대가 힘들면""이라는 이름으로 2001년 말에 제작되었다. 앨범 발매 전에는 약 6~7분 가량의 긴 분량의 버젼이 엠넷 등의 케이블 방송에서 파일럿 형식으로 사전 공개 되었다. 사고과정이 조금 더 상세하게 묘사되어 조종사들이나 탑승객들의 모습이 조금 더 비중있게 나오며, 이의 배경음악으로 '루'의 MR 파트가 중간에 추가로 삽입된다. 하지만 후에 나온 버젼에서의 시작과 끝부분에 들어가는 신문보도나 희생자를 위한 추모 문구가 없던지라, 해당 항공사고를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냥 뮤직비디오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극본 정도로만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앨범 발매 이후에는 위의 영상과 같은 원곡의 길이에 맞춰 재편집되고 전반부의 신문보도 자료와 후반부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문구가 추가로 삽입된 5분짜리 버젼으로 정리되었다.10년 전 고수하지원의 풋풋했던 시절 이 사고로 한국인도 여섯 명이 희생되었으며 그 중 한 명이 위 뮤직비디오에서 하지원이 연기한 인물인데, 이 인물이 가수 루의 소속사 사장의 조카인 故 이혜경 씨라는 사연이 1집 활동 당시 소속사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 초반부에 하지원의 배역 소개에서 한문 자막으로 나오는데 실제 인물의 본명이다.

    실제 이 인물은 재일교포로 홀로 항공편에 올랐다가 안타깝게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으나, 사귀던 애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은 뮤직비디오에서의 극적인 연출을 위한 설정이었을 뿐 모델이 되는 故 이혜경 씨는 당시에 애인이 없던 평범한 20대 아가씨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수가 맡은 이혜경씨의 애인으로 나오는 김태우라는 캐릭터는 사실 가공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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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명 이상 사망자 발생 사고를 기준으로 해서 저 중에는 빠졌지만 베리아 항공 610편 추락사고타항공 191편 사고 또한 큰 사고였다.
  • [2] 부기장은 다른 비행기에서 기장 승격 시험을 마친 다음 123편을 타게 됐고,기장은 그날 첫 비행이었다.
  • [3] 이 때문에 몇몇 승객들이 남긴 유서가 다소 휘갈기게 적혀 있다.
  • [4] 사카모토 큐 항목에 언급된 '천국에 있는 내 아이에게'라는 드라마가 이 여성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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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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