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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잔재론

last modified: 2015-04-08 19:35:55 by Contributors

Contents

1. 설명
2. 일본어의 잔재가 아닌 것
2.1. 언어 구조
2.2. 일상 생활, 단어
2.3. 국명, 지명, 역사
3. 일본어의 잔재인 것
4. 관련항목


1. 설명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어의 잔재가 아직도 한국어 안에 남아있다는 주장. 사실 한 언어가 외국어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본래 있던 단어나 표현을 외국어가 대체한다고 해서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1] 다만 한국과 일본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로 얽힌 복잡한 근대사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광복 이후 일본 잔재 청산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고, 그 연장에서 언어 속에 남은 일본어의 잔재도 문제시 되어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하게 접근하기에는 복잡한 양상을 띈다. 이런 저런 문제가 뒤섞여 있어서 파고들수록 새로운 사안이 많고 언어적 접근과 함께 역사적 접근이 상당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처럼 일본 제국주의 정신을 담고 있어서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어에서 온 말이 아님에도 오해받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순 우리말 토시처럼 일본어로 오해받는 한국어의 경우도 있고, 일본식 한자어라고 주장하는 것 중에 고려, 조선시대의 사료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경성(京城)과 부락(部落). [2]

문제가 복잡해진 건 역사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고, 계통적으로 유사점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3] 예를 들어, 한국어 ''과 일본어 しま(시마) 같은 단어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고대 문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백제가야 등 문화에 영향을 받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국립국어원에서 토박이말을 살펴보다 보면 의외로 소리와 뜻이 일본어와 유사한 것들이 많다. 또, 반대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국가 관계가 역전되면서 일본어 단어와 문장이 무수히 들어와 현대 한국어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령 '~하고 있었다' 같은 과거 진행형 표현은 개화기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유럽어 번역 문체가 일본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개화기 이후로 서양 지식의 유통 경로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일본식 한자어의 증가가 많이 이루어졌다. 일제의 강압적 식민 지배 이전에도 일본 서적을 들여오거나 일본 유학을 통해 일본식 한자어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유학생, 지식인등은 서양을 배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서적을 들여왔다. 이러한 것은 당시 청나라와 베트남도 마찬가지로, 이는 한문을 썼던 중국이나 베트남지식인과 유학생들도 일본의 번역서를 통해 대화를 도모한 까닭이다. [4] (중국의 정식 국명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과 '공화국'조차 일본의 번역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일본식 한자어의 유입은 모든 동아시아 한자권 국가들이 동일하게 겪고 있는 현상이다. [5] 다만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런 현상이 강화되었다. 한편에서는 일본을 통해 이런 용어들이 보급된 덕분에, 한중일 공통으로 쓰는 한자어가 많아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적어도 正義라 하면 중국어든 일본어든 (이제는 한자를 잘 쓰지 않지만) 한국어든 모두 의미가 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개화기에는 서적을 통한 글말의 영향이 대부분이어서 문체상 영향과 일본식 한자어/학술어의 수입만이 두드러졌으나, 조선이 식민지가 되자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조선인과 직접 접촉하게 됨으로써, 언어접촉에 의한 일본어 입말 유입이 이루어졌다. 쉬운 예로, 벤또(도시락), 사라(접시), 요지(이쑤시개), 바께쓰(바가지), 쓰메기리(손톱깎이) 같은 단어들이 있다. 영화, 드라마 속이나 나이든 어르신들 대화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부류의 단어들은 순 일본어가 많으며 발음 그대로 들어와서 쉽게 식별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해방 이후 언어순화의 1순위가 된 것도 바로 이 부류다. 이러한 류의 언어순화는 충분히 타당한 작업이었다. 나라 간에 교류가 있으면 외국어가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정상적인 교류가 아닌 식민 지배로 인한 역학관계가 있었고, 일본어 교육이 강제되는 등 강압적 상황 배경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격한 일본어 잔재론자들은 이렇게 일제강점기 때, 그것도 일본어에서 언어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에 치를 떠는 경우가 많으며, 단순한 입말, 어법, 발음을 넘어서 한국어에 유입된 모든 일본어를 완전히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어 잔재론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현대 한국어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서양의 근대 지식을 뒷받침하는 기본 어휘들이 대부분 일본식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서양의 근대 개념 어휘의 태반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으로 전파되었고, 당시에는 학술용어로 생소했을 단어들이 이제는 일상의 기본 어휘로 정착되어 뿌리를 내렸다. 예를 들어, '사회(社會)'[6], '정의(正義)'같은 기초적인 단어들이 모두 일본식 한자어이다. 이런 단어를 모두 바꾸려는 것은 빈대를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단어는 모두 일제의 잔재라는 논리는 지양해야한다.

어쨌든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 매체에서는 일본어 잔재 청산의 논리가 상당부분 통용되고 있으며, 국립국어원이나 학계의 다수견해로 채택된 사례도 있으니, 몇몇 사례는 참고로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시중 고시 또는 공무원 수험서는 일본어 잔재인지 분명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고 진리처럼 싣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깨알같은 재정국어 여기에는 인터넷 맞춤법 검사기도 한 몫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일본어 잔재다!"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매우 많고, 대중들 역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안이 복잡한 만큼 모두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남한의 표준어나 북한의 문화어언어순화 운동을 격었으나 조선족들이 쓰는 중국 조선말은 언어순화 운동을 겪지 않았으므로 (그런 걸 할만한 통일된 주체가 없었다) 일본어가 비교적 많이 섞어있다는 점이다.

일본어의 잔재는 타이완에도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아저씨, 아줌마를 예로서 대할때 쓰는 호칭이 오지상, 오바상이며 최고를 이찌방((一级棒)이라 한다(…). 이외에도 많은데, 이쪽은 언어순화 운동을 안 하므로 안하고 미디어 매체에 그대로 나온다,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많이 섞여있다. 다만 이쪽은 이쪽말 자체의 구조가 워낙 어려운지라… 게다가 타이완은 일본 지배에 대한 감정이 좋아서 더 그렇기도 할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프랑스어를 쓰는 노르만족의 지배를 받아 불어의 어휘와 문법요소가 많이 남은 영어가 있다.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오늘날 진지하게 이러한 언어순화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일본어 잔재와 비교하기 어려운 게 '중세 시기'라는 점이다. 천년전의 언어 변화를 이제와 순화한다는 건 말 자체가 안 된다. (일본어 잔재 청산은 일제 강점기 35년 이후 바로 시작되었다.) 거기다 노르만 귀족들은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인으로 동화되었고, 전근대적 침략과 정복과정을 근대 제국주의와 동일시 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영어 자체가 한국어나 프랑스어처럼 어문 규범을 관리하는 주체가 없고, 변화에 관대한 편이다.

2. 일본어의 잔재가 아닌 것

몇몇 일본어의 잔재가 아닌 말들이 일본어의 잔재로 오해받는 이유는 네티즌들이 자주 이용하는 맞춤법 검사기가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적한 사례들의 대부분은 맞춤법 검사기를 통해서 퍼진 잘못된 정보들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는 한자어도 맞춤법 검사기에서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잘못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2.1. 언어 구조

  • 말 끝에 붙는 "~요"는 일본어의 잔재이다.
    → 일본어 종조사 よ 또는 조동사 よう와 국어의 보조사 요는 3개 다 기능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가요'라는 말에서 보조사 '요'는 '가'라는 반말을 존댓말로 바꿔주는 기능을 하지만 '行こうよ'에서 'よ'는 '行こう'의 권유의 의미를 강조할 뿐, 존대의 의미는 없다.

  • 효과를 /효꽈/로 읽는 등, 된소리가 늘어난 건 된소리가 많은 일본어의 탓이다.
    → 이미 조선시대부터 활발히 사용되던 "사이시옷" 현상이 확산된 결과다. 오히려 20세기 초반의 대세는 일본어의 무성파열음을 평음으로 적는 것이었다.(예를 들자면 山本(야마모토) - 야마모도) 다만 임진왜란이후 두음의 된소리화가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일본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2.2. 일상 생활, 단어

  • "야채"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므로 '채소'를 사용해야한다.
    → 근거없는 루머다. 해당항목 참조.

  • 오뎅”은 “어묵”으로 순화해야 한다.
    →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생선살을 으깨어 이것저것을 넣고 익혀서 응고시킨 음식’을 오뎅에서 어묵으로 순화하는 문제이다. 이 경우에는 순화하는 것이 맞다. 왜냐면 일본어에서 ‘오뎅’은 요리 이름이지 요리 재료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어 ‘오뎅’은 어묵, 묵, 유부, 곤약 등을 끓는 장국에 넣어 익힌 요리 이름이고, 어묵은 일본어로 ‘스리미(すり身)’이다. 한국어에서 오뎅은 의미가 변질되어 어묵을 가리키지 탕을 가리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음식점 메뉴의 안주 이름이 ‘오뎅탕’이며, “길거리 분식점에서 오뎅을 두 꼬치 먹었다.”라고 하는 등이다. 또, 부산오뎅은 부산에서 만드는 어묵이지, 부산식 탕요리 이름이 아니다. 이러한 오뎅은 어묵으로 순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순화함이 바람직하다.
    두번째로 일본의 탕요리인 ‘오뎅’을 어묵탕으로 순화하는 문제이다. 오뎅은 어묵을 비롯해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요리의 요리의 총칭으로서, 실제로 어묵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므로 어묵탕과 1:1로 대응하기 어렵다. 또 일본 사람들이 먹는 일본의 요리 이름을 우리가 순화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오뎅’이라는 일본 고유요리 이름을 인정하면 되고, 아무 문제 없다. 같은 맥락에서 소설가 박계주가 이런식으로 고유명사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운동을 비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고유요리 다쿠앙을 단무지로, 우동을 가락국수로 순화하는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서상 김치를 기무치로 발음만 바꿔도, 반발심리를 표출하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이다.(물론 이건 김치가 외국에서 기무치로 통용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에 의해 시작된 심리라 맥락이 다르긴 하다.)

  • "닭도리탕"의 "도리"는 일본어로 새라는 뜻으로, "닭볶음탕"으로 순화해야한다.
    → '도리'라는 말은 '도려내다'의 어원으로, '닭을 도려내 만든 탕'이 "닭도리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닭새탕'이란 말을 일본어로 직역하면 '니와토리토리토우'(鶏鳥湯)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가 된다. 이 경우, 새로 만든 탕이라서 "とり"가 붙었다면 길짐승인 토끼를 사용한 토끼도리탕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으로 육식 금지령이 풀리기 이전에도 일본인들이 토끼는 먹었는데 이 때 일본인들이 쓰던 핑계가 "토끼는 다리달린 새다"라는 것이다(채식주의 참고). 하지만 위 닭도리탕과 토끼도리탕은 어원이 같으므로 토끼도리탕에서 도리가 새라는 것도 말이 안되는 건 같다.
    사실 닭도리탕의 자세한 어원에 대해서는 전혀 연구가 되어있지 않으며, 이 요리가 일본에서 기원했다거나 일본의 영향으로 요리 명칭이 정해졌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본고장인 한국 발음을 최대한 따라하려고(!!) "닷토리탕"(タットリタン)이라고 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반적인 인식대로 판단하여 닭볶음탕 편을 들었다. 국어원이 판단한 것이 일반화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닭볶음탕이란 이름 그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게, 일단 닭도리탕을 만들 땐 볶는 과정이 없다(…). 닭도리탕 만들려다가 괴상한 음식이 탄생

  • 감사(感謝)는 일본사람들이 사용한 어휘다.
    → 중국의 전근대 문헌에도 보이는 표현이며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빈도의 증가는 일어의 영향일 수 있지만 원래 국어에 있던 표현이다.

  • 왕녀(王女)는 일본에서 만든 정체불명의 한자어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올 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서인 사마천사기, 진수삼국지 등에도 많이 나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왕녀나 공주란 한자어 대신 '히메(姬)'라는 고유어를 더 자주 쓴다. 원래 천황제이기 때문에 황녀라면 몰라도 왕(王)이 들어가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 "에누리"란 말도 일본이 만들었다.
    → 옛날부터 잘만 쓰이던 순우리말이다. 뺑소니, 사타구니, (후술할) 토시 등도 비슷한 경우인데, 받침 없는 음절이 여럿 나오다 보니 발음이 일본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괜한 의심을 사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에누리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널리 쓰이고 있는 할인(割引)이 순일본말에서 온 단어이다. 일본식 한자어 참조.

  • "구두"라는 말도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 일본어로 신발을 의미하는 くつ(靴)와 발음이 비슷해서 나온 주장이지만 어원이 불분명하다. 일단 공식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일본어 くつ(靴)를 어원으로 보고 있고, 그 이후에 출간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다음에서 제공)에서는 어원이 분명치 않으나 くつ(靴)가 어원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되어 있다. 이전 서술에는 백제 시대부터 쓰던 말이라고 되어 있었다. 몽골어에서 번역된 말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 #1#2 이 글에 따르면 일본의 어원 검색 사이트에 くつ(靴)의 어원이 한국어 구두에서 온 말 뭐지? 순환논증? 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오히려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넘어간 말일 가능성도 높다.

  • 산보(散步)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 한자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던 단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한시에 숱하게 발견되는 산보라는 단어들이 명확한 증거가 된다. 정작 강점기에 산보보다 고급하게 인식된 단어는 하이킹이나 조깅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외국어를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마 구한말 외국어시험 때문에 자살까지 했던 사례가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자

  • 을 뜻하는 민초(民草)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 조선시대 문집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인 권근이 개국공신 조준을 찬양한 시에 民草望霖雨 灼知天命歸(민초들이 단비를 바라듯 하였거니 천명이 돌아가는 것을 알았으므로)라는 표현이 나타나며 성종 때의 학자인 이석형의 문집 '저헌문집'에도 民草已從風草偃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 표현은 중국의 고전 시경의 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초상지풍초필언 수지풍중초부립: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풀은 바람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이라는 표현을 어레인지한 표현이다.

  • 산꼭대기라는 의미의 정상(頂上)이라는 단어는 일본식 한자어다.
    → 고려 말엽부터 쓰인 한자어다. 자세한 것은 정상 항목 참고.

  • 대하(大蝦)는 일본어 오-에비(おおえぴ)의 일본식 한자 표기이므로 '왕새우'로 순화해야 한다.
    → 대하라는 단어 역시 조선시대 기록에 숱하게 나온다. 특산품으로 대하를 바쳤다는 공문서에 大蝦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서 각 지역의 특산품이 대하라고 소개하는 기록에서도 제대로 大蝦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어에서는 다이쇼 시대에 처음 먹기 시작했다고 해서 타이쇼에비(大正海老)라는 말을 쓴다.

  • 도합(都合)은 일본어 つごう의 한자표기이므로 ‘합계’ 등으로 순화해야 한다.
    → 도(都)가 ‘모두’이고 합(合)이 ‘합하다’이므로 ‘모두 합하여’라는 뜻의 지극히 정상적인 한잣말이다.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 일성록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며 어떤 물품들의 총합을 표시할 때 사용했다.

    留本道應給倭人之數一千同, 納本曹應爲經費之用者四百餘同, 因傳敎分付, 貿銀之數四五百同, 都合二千六百餘同
    본도에 남겨두었다가 왜인들에게 지급해야 할 1천 동, 본조가 받아들여 경비로 써야 할 것 4백여 동, 전교로 분부하신 데에 따라 은을 무역할 대금 4, 5백 동 등 도합 2천 6백여 동에 달합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1618년 4월 12일 기사에 호조에서 올린 보고

  • 애매하다는 일본식 한자어이니 모호하다고 써야한다.
    → '애매(曖昧)'와 순우리말 '애매'가 있으며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한자어(曖昧)는 희미하여 확실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순우리말 '애매'는 '애꿎다,억울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자어(曖昧)의 경우 실록에서도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前日上言聽納之說, 獲蒙兪允。 雖臣等識淺才疎, 豈敢以曖昧之說, 仰干聰聽?
    “전일에 상언(上言)한 바, 간언(諫言)을 들어주어야 된다는 설(說)은 윤허(允許)를 얻었는데, 비록 신 등이 견식이 얕고 재주가 쓸모없지마는, 어찌 감히 애매(曖昧)한 말로써 우러러 임금에게 듣기를 요구하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 태조 2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11월 14일(신묘) 기사
애초에 애매와 모호 둘 다 아주 작은 수를 가리키는 불교용어다.
다만 일본에서는 '애매모호' 로 같은 뜻을 가진 단어를 중복해서 쓰고 있다. 즉 애매모호하다 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이 맞다.

  • 농악은 일제가 조선 음악을 천대해서 만든 말이다.
    → 한동안 학계에서도 농악이란 낱말이 1936년 일본인 학자 무라야마 지준의 '부락제'에서 처음 나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는 일본 전통 탈극인 능악(能樂노카쿠)을 연원으로 한 일본식 음악조어로 만들어졌단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농악은 편안하다. 또한 모두의 음악이 각기 절주가 있고, 조리가 있다. 난잡한 듯하여도 난잡하지 않다. 나는 곧 농악과 군악을 심히 즐겨한다.'
    -- 18세기 문인 옥소 권집의 문집

'대개 시골에서는 여름철에 농민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논을 맸다. 이것을 농악이라고 한다.'
-- 1890년 황현의 매천야록

'야삼경에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크게 울리며 말하기를 모두 한 무리를 유지해 가락암으로 가서 화적을 물리치자고 했다'
-- 1894년 충남 서천의 유생 최덕기가 쓴 일기
등 농악은 조선시대부터 이미 보편화된 단어다. 지역에 따라 풍물(風物), 풍장, 매구, 굿, 두레, 걸궁, 걸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당시 사대부들의 문헌에는 농악이 주로 많이 쓰인 편.

  • 점호는 일제의 군사용어이다.
    → 일제시대 군사용어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허봉(허균의 형)의 문집 하곡집에 이미 쓰여졌다. 그 밖에 일제 군사용어는 조선시대 부터 있었다는 글

  • 근성은 일본 곤조에서 유래한 단어
    1492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시문집을 편찬한 동문선에 '근성이 작아…'란 대목이 있다. 그리고 조선 정조때 간행된 홍재전서의 무인기문에는 '그의 충의의 근성은 평소에 온축된 것', 화평귀주 치제문에 '효우근성(효성과 우애가 타고난 천성)'이란 기록이 있다. 옛날에도 타고난 성질이나 천성 또는 뚝심,배포,끈기와 비슷한 의미로서 현재 사용되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부락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부락(部落)은 조선왕조실록에 422회 등장하는데, 거의가 ‘야인’,‘평안도’, ‘왜인’ 등과 함께 등장한다. 즉 오랑캐(조선인 눈에)의 마을/촌락은 ‘부락’으로 지칭한다는 얘기. 중국 쪽에서도 비슷한데, 그네들 어휘 해석으로는 ‘원시사회에 혈연이 가까운 씨족 종족 등이 모여 형성된 집단’을 부락이라 칭한다. 결국 비슷한 의미이며 조선시대 사람들은 여진족이나 왜인들을 미개인(원시인)으로 간주했으므로 그네들 마을을 특히 ‘부락’으로 칭한 것이다. 일본은 특이하게 근대에 와서도 ‘부락’이라는 용어를 자국민 일부에게 사용했는데, 일본 국내에서 차별받는 천민들 마을을 특히 部落이라 불렀다. 이것이 역으로 한국으로 알려져, 부락이 일본어 잔재라고 말하는 선무당들이 생겼다. 다만, 만약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 마을만 특히 부락이라 불렀다면 그건 차별적 용어가 맞다. 허나, 部落이라는 어휘 자체는 한서(漢書)나 신당서(新唐書)에도 등장하는 만큼, 조선왕조실록 또한 물론이고, 굳이 일본어 잔재라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8,90년 전에 조선의 문인들의 문예동인지(同人誌) 이름으로 부락이 들어간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요즘도 잘만 쓴다), 이들은 과연 조선식의 ‘오랑캐/미개인 모임’이라는 의미로 썼을까? 아니면 일본식의‘천민집단’이라는 의미로 썼을까? 이들은 소위 문인(文人)으로서, 글을 파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비하하는 그런 이름을? 답은 자명하다. 바로 ‘혈연이 가까운 씨족’을 상기하면,‘혈연에 비할 만큼 친밀한, 동인(同人)들의 모임’이라는 의미. 친밀감 일체감의 강조이다. 애초 일본에서도 부락이 차별 용어로 자리 잡게된 건 피차별부락민을 줄여서 부락민이라 부르면서 부터다.(아바타와 비슷한 경우.) 그 이전에는 한중일 다 집락을 가르키는 표현으로 썻다.

  • "토시"는 일본식 표현으로 덧소매로 순화해야한다.
    -> 완전히 잘못된 지식. 토시는 순우리말이다. 덧소매 형태의 의복을 가리키는 일본어 중에 토시라는 말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국립국어원은 레그 워머를 "다리토시"(...)로 순화할 것을 권장한다.

  • 일본어로 '결정'을 뜻하는 단어 '오키마리'(お決まり)에서 '오케바리'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오케바리'의 어원은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단지 '단어도 비슷하고 뜻도 비슷하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다. 'OK. Buddy.'라는 영어 문장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 한국어 "나란히"와 일본어 "나란비(並び)". 나란히 늘어놓는다는 뜻이 비슷하고 발음도 나란히 듣고보면 비슷하지만 각각 나란히 자국의 고유어이다.참조

  • 모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멘붕도 일본 AV 단어라 카더라 #

  • 미상은 일본어 미상(みーさん)에서 온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옮겨온 단어는 일본식 한자어 참조.

2.3. 국명, 지명, 역사

이를 볼 때 해방 후 게르만어 계통의 직계인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 관여하는 바가 많았던 해방 이후 미국이 자주 쓰면서 굳어졌다는 추측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사용한 한국의 공식 영문 명칭은 "조선"의 일본어 발음인 "Chosen"이었다. 또한, 당시 일본의 영문표기도 "Japan"이 아닌 "Nippon"이었기에 C를 K로 바꾼다 해도 알파벳 순서상에서는 변화가 없다. 정작 조선 정부는 그 직전 왕조의 이름이 공식으로 쓰이는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겨 "Chosun"이나 "Empire of Dai Han"으로 표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홍보 부족으로 실패한 후에도 내부 기록은 자기식으로 할 정도였다.


  • 한반도(韓半島)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반쪽짜리 섬으로 비하하기 위하여 붙인 잔재이므로 한근지(韓根地)라고 불러야 한다.
    -> 라틴어 paeninsula 혹은 그에서 유래한 영어단어 peninsula의 한자 차용어이다. 형태소를 분석하면 paene(almost)+insula(island)로 pen(paene) 부분을 半으로, insula를 島로 대응해서 단어를 만든 것. 참고로 독일어로는 Halbinsel인데 Halb는 반, Insel은 섬.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半島라는 표현을 공통으로 쓰고 있으며, 일본어에서도 발칸반도, 스칸디나비아반도 등 半島라는 표현을 매우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을 비하한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반도가 일본어에서 처음 번역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半島의 어원에 대한 분명한 출처가 있다면 출처를 밝히고 일본식 한자어 항목으로 옮길 것

  • 서울특별시의 옛 이름인 경성(京城)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이며, 이 영향을 받은 경부선, 경의선, 경인선 같은 철도나 도로의 노선명에 붙은 '경(京)'은 모두 순화해야 한다.
    -> 경성이란 이름은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 시대 문헌에도 자주 등장한다. 조선 시대 서울의 행정구역상 정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지만, 이 외에도 서울(한성)을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이 있었다. 잘 알려진 한양(漢陽)을 비롯해 경조(京兆), 경락(京洛),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도(京都), 장안(長安), 수선(首善) 등 다양한 별칭들이 있었다. 경성도 그중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쓰였다.
    경부선, 경의선 등의 철도 노선들이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된 근대에 부설된 점을 들어 이러한 노선명도 일제의 잔재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다. 단지 수도, 즉 서울을 뜻하는 의미로 한자로 京이라 적은 것일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경기도(京畿道), 경시서(京市署)[7], 경강 상인(京江商人)[8] 같은 단어도 일제의 잔재가 되어버린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에 해당되는 한성판윤 역시 경조윤(京兆尹) 또는 경윤(京尹)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다. 게다가 경인선(1899), 경부선(1905), 경의선(1905)의 경우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되기 전에 개통되고 명명된 노선들이다. 도시 이름이 아직 경성으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철도 노선명에 경성의 경을 넣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즉, 상기한 철도 노선명의 경은 경성의 경이 아닌 수도(서울)라는 의미로서의 경이 맞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징후선(京湖線), 징광선(京廣線) 등등 수도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철도 노선명에 경(京)자가 들어간다. 중국 수도 북경의 여러 이름 중 하나가 과거도 지금도 징청(京城) 즉 경성이다. 그러므로 경(京)자가 들어간 노선명이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 '이조'(李朝)는 조선을 깎아내리기 위한 표현이다.
    -> 베트남 의 경우 국호는 바뀌지 않고 왕족의 성만 바뀌었는데, '진조', '이조'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다(베트남/역사 항목 참조). 고조선, 위만조선 등까지 고려한다면 "이씨조선"이란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게 된다. '이씨조선'이란 명칭이 단순히 비하적 의미만을 지니고 있다면 '기자조선', '위만조선' 또한 깎아내리기 위한 표현이라는 말이 된다.
    삼국지의 삼국을 표기하는 '조위', '유촉', '손오', 또 후에 등장하는 '유송' 등도 잘만 쓰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통일왕조의 경우에는 이당이나 조송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지만, 실제로는 가끔 통일왕조인 당나라도 이당으로, 통일왕조인 송나라도 조송으로 이렇게 불렀다. 그러한 표현이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당이나 송이 압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특히 李唐의 경우 남송대의 유명한 화가와 이름이 일치하여 혼란을 주기 때문에 왕조국가로서의 당의 별칭으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송나라의 경우 유송-조송으로 구별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유송-북송/남송 아니면 유송-양송兩宋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역사학자인 진인각(陳寅恪)이 "화하(華夏)민족의 문화는 천 년 동안 변천을 거치면서 조송(趙宋)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고 한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안 쓰이는 말도 아니고 비하의 의미로 쓰는 말도 아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을 한반도를 일컫는 지역명으로 사용했으므로, 왕조명(선왕조)을 지역명(조선)과 구별할 필요도 있었다. 현재 북한에서도 스스로 조선이라 부르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서 여전히 리씨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려왕조가 우리 민족 역사 전체인 Korea의 뜻이 있어서 왕건의 고려왕조를 왕씨고려라 부르기도 하는데 물론 비하가 전혀 아니다. 구분하기 위해서일 뿐. # 다만, 이조라는 표현을 현재 남한땅에서는 굳이 쓸 이유는 없다.

  • 친왕(親王), 각하(閣下) 등의 호칭이나 경칭도 일제가 만든 단어이다.
    -> 친왕의 경우 대한제국영친왕, 의친왕 등의 '친왕'이 일본의 친왕제도를 본뜬 것이라 하여 '영왕', '의왕'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틀렸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청나라의 섭정왕 도르곤도 '예친왕'이었는데? 친왕이란 칭호는 당연히 중국에서 나온 것이다. 청나라도 지배한 일본? '영왕'과 '의왕'의 이름도 당연히 '친왕'의 이름이다.[9] 그러나, 황자 책봉 시 정식으로 받은 이름은 '영왕'과 '의왕'이다. 즉, "이강(李堈)은 의왕(義王)으로 삼고 이은(李垠)은 영왕(英王)으로 삼았다."[10]
    각하도 마찬가지. 일제강점기 이후 그 잔재로 역대 권위주의 대통령들의 경칭으로도 쓰인 점을 들어 '각하'라는 호칭도 일제의 잔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본에서 자주 쓰인 것은 맞지만 단어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이나 세손을 각하라 칭한 적도 있으며, 중국에서도 청나라 때 이홍장이 '북양대신 각하'로 불렸다.

  • 한강, 금강, 영산강, 남산, 북한산, 중랑천은 일제가 지은 이름이다.
    -> 모두 실록에 나오며, 조선 시대부터 이미 사용된 이름이었다. 한강을 예로 들자면 옛 서울의 이름인 '한산주', '한주', '한성', '한양'이란 말 자체가 한강에서 따온 이름인데 정작 강 이름을 나중에 일제가 붙였을 리는 없다. 더군다나 중천은 변중량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도 있다[11]. 북한산(삼각산)의 경우는 고구려의 남평양을 북한산으로 부른다는 기록으로 보아 지명 자체가 산의 이름으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신라 때는 부아악 부왘이 아니다. 은 負兒岳이라고도 불렀다. 다만 청계천은 원래 개천으로 일제 강점기 때 생겨난 어원이 맞고, 백악산이라고 불리던 악산은 일제 강점기의 이름인지 의심은 받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 세종실록의 한성 관련 자료 참고.

  • '숭례문'의 명칭 '남대문'은 일제가 깎아내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 실록에도 숭례문의 속칭이라 되어 있으며, 실록 다른 부분에서도 숭례문이라는 명칭보다 남대문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나온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aa_10509024_002
여기서 속칭의 속은 저속함이 아니라 일반이나 민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하가 아니다. 일반적 공식적인 기록인 실록조차 이럴 정도니 사실상 민간에서 숭례문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이 숭례문과 흥인지문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일본식 잔재를 없애려는 의도가 아니라 전국에 동대문이니 남대문이니 하는 지명이나 문이 많아서 명확히 구분 지으려는 의도이다. 다만 서대문은 원래는 신문(新門/새문)이라고 불렸고, 허물어진 뒤 일본인들의 입말에 오르내리면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새문안'이란 이름이 대표적.

  • 을미사변 이나 을사조약은 일제의 시각에서 본 용어이므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나 '을사늑약'으로 불러야 한다.
    -> 을미사변은 한국 측의 이름으로, 끔찍한 사건을 돌려 말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1차 왕자의 난 같은 참변들은 흔히 '사냥'이라고 불렸으며, 민 씨들이 세운 을미의 변이라는 이름이나 매천 황현이 쓴 '을미년의 변'도 있다. 을사보호조약의 경우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을사조약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2차 한일협약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정말 문제가 있다.

  •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의 이름에서 邯을 '감'이라고 읽는 것은 일본의 영향이므로 '강한찬'이라고 읽어야 한다.
-> 이 역시 잘못 퍼진 루머. 자세한 것은 강감찬 항목을 참고할 것.

  • 산본야마모토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산본신도시조선시대부터 과천현 남면 산본리였기 때문에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다. 여담으로 산본역에도 야마모토와는 무관하다고 역사 내 안내판에 쓰여있다.

  • 인왕산, 의왕시 등의 旺은 일제가 덴노를 기념하고자 억지로 王에서 旺(= 日+王)으로 바꾼 것이므로, 王이 올바른 표현이다.
    -> 지극히 우리나라 중심적으로 생각한 잘못된 루머. 일본에서는 반드시 '天皇'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日王'이란 단어를 매우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日王'으로 표기하는 우리나라 언론사 측에, 이를 '天皇'으로 표기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정도. 그런 일본이 지명에 들어간 王을 旺으로 고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기네들의 덴노에게 빅엿을 먹이는 행위다. 더욱이 과거 문헌에서는 지명 표기에 旺을 사용한 사례가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 어처구니없는 오해로 인해 지명에서의 퇴출이 잇따르고 있는 불쌍한 한자.

3. 일본어의 잔재인 것

  • 일본식 한자어

  • 관형격으로 사용되는 ~적的
    -> 이전 서술과는 달리 일본어의 잔재가 맞다. 이하 서술은 2012년논문 「한·중·일 삼국의 '的'에 대한 대조 연구」(아시아문화연구) 참고하자. 일본어의 잔재라고 하기엔 과격하고, 이미 일상적인 한국어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일본어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다. 중국어의 관형격 표지 "底・的"이 기원인 것은 맞으나, 일본어에서 -tic과 的(teki)의 발음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어의 的과 기능차이가 큰 접미사를 만든 것이다. 일본인 아라가와(荒川)의 角川外來語辭典에 “메이지 초기에 야나가와(柳川春三)가 처음으로 ‘-tic’에다가 ‘的’이라는 한자를 갖다 붙였다”고 되어 있다. (서재극, 「개화기 외래어와 신용어」, 동서문화 4, 계명대학교 동서문화 연구소, 1970, pp.95-96.) 현대 한국어에 널리 쓰이고 있는 한자 접미사 ‘-적’은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자들이 처음으로 당시의 일본 말ㆍ글을 흉내내어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용석, 「접미사 ‘-적(的)’의 용법에 대하여」, 배달말 11, 배달말 학회, 1986, 73.) 그렇기 때문에 일본식 용법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的의 용법은 한국어나 일본어와 큰 차이가 난다. 일단 한국어에서는 명사만 '-적'과 결합하고, 일본어 的은 명사에 더해 명사구나 인용구까지 결합가능한데, 중국어 的은 형용사나 동사를 비롯하여 여러 품사와 결합하며, 용법도 다양하다. 또, 중국어의 的은 조어력이 크지 않고 제한적인 반면, 한국어의 '-적'이나 일본어의 的은 남용되는 것이 문제시될만큼 조어력이 크다.
    의미적으로는 겹치는 부분이 있고 겹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차이점을 분명히 서술하기가 복잡한 편이다. 중국어 的의 경우 의미가 다양하긴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소유를 나타내는 조사 '-의'나 관형화소 '-ㄴ,ㄹ'[12] 로 대응시킬 수 있는데, 한국어 '-적' 또한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중국어 的과 1:1 대응이 된다.[13] 하지만 한국어에서 '-적'이 '어떤 성질을 가지다'라는 의미인 경우 바로 대응이 되지 않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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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두 세력이 접촉할 때, 국력과 같은 힘의 차이가 있으면 언어도 그 영향을 받아 의도치 않게 종속되거나 사멸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경계할 필요는 있다.
  • [2] 옛 문헌 검색 페이지들을 통해 찾아보면 이 두 단어가 많이 나온다. 다만 부락같은 경우엔 마을을 뜻하던 말이 일본의 부락민으로 인하여 그 뜻이 변하기도 하였다. 부락은 촌락이나 읍락같은 다른 한자어나 동네, 고을같은 우리말도 두루 있다.
  • [3] 단, 현재 언어학 계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 [4] 유명한 예로 '경제'라는 economy의 번역이 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이 단어를 《사기》에서 유래한 理材라고 번역하고 일본인들은 《대학》의 '경세제민'이라는 표현에서 차용한 經濟라고 번역했다. 이재가 이코노미의 원의미와 실제적 의미 모두를 살린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돈벌이라는 표현보다 진중한 가치를 내재하는 경제가 압도적으로 통용되면서, 이재는 치부의 표현이 되고 경제가 economy를 의미하게 되었다.
  • [5] 이전 서술에 따르면 "심지어 한자종주국인 중국 마저도 일본식 한자어가 6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중국어 한자 단어의 60%가 일본식 한자어란 얘기는 도시괴담스러우므로 출처요망. 위키백과의 '일본제 한자어' 항목에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일본식 한자어가 본래 쓰던 한자어와 경쟁하여 도태된 경우가 많다는 서술이 존재.
  • [6] 실례로 일제강점기 즈음에도 신식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회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다. 현진권의 단편 "술 권하는 사회"에 주인공 부인이 사회라는 단어 자체를 못알아듣고 술집 이름인가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해당 등장인물이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이지만, 현대 한국인의 경우 아무리 교육을 안 받아도 다 자란 성인이 사회라는 단어를 모를 수가 없음을 생각해보면, 당시에 생소했던 일본식 한자어가 이제는 완전히 뿌리 내렸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 [7] 조선시대 한성의 시전(市廛, 오늘날의 시장) 업무를 맡던 관청.
  • [8] 경강(京江)이란 한강의 서울 일대 유역을 가리키던 별칭이다.
  • [9] 조선왕조실록 고종 40권, 37년(1900 경자 / 대한 광무(光武) 4년) 8월 8일(양력) 3번째기사 친왕봉호망단자를 둘째 황자의 칭호는 의 자, 셋째 황자는 영 자를 쓰기로 하다
  • [10] 조선왕조실록 고종 40권, 37년(1900 경자 / 대한 광무(光武) 4년) 8월 17일(양력) 1번째기사 중화전에 나아가 황자를 책봉하다
  • [11] 량(良과 梁이 혼용된다)자가 랑(浪)자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일제 잔재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랑 대신 량을 고집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편이다.
  • [12] 健康的休息場所(건강적휴식장소) vs. 건강한 쉼터
  • [13] 예를 들어, 외부적 압력(外部的壓力), 정신적 지주(精神的支柱), 사회적 문제(社會的問題) 와 같은 단어들은 한국어와 중국어가 동일.
  • [14] 한국어 '교육적 효과'(ex. 게임의 교육적 효과 = 게임이 가진 교육스러운 효과)는 중국어 敎育上的效果가 된다. 중국어에서 敎育的效果는 교육행위 자체의 효과 즉 '교육의 효과'라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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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8 19: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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