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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last modified: 2015-04-15 19:16:31 by Contributors

日本人,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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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인종적 특성
3. 국민성과 문화
4. 한국과의 관계
4.1. 재조선 일본인
4.2. 재한 일본인
4.3. 재북 일본인
5. 기타
6. 행동방식
7. 일본인 캐릭터

1. 개요


좁은 의미로는 일본 국적사람의 총칭. 넓은 의미로는 아시아 특유의 종족적 특성을 지니며, 일본이라는 나라의 사회적, 정신적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일원을 총칭한다. 한국과는 지리적으로 몹시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과 더불어 이웃국가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단, 일본에는 외모, 문화에서 확연히 구별되는 아이누 민족이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아이누인은 일본 열도의 선주민이라고 하는 설이 있으며 일본 정부에서는 그들을 선주민으로 인정하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야마토 민족이란 표현도 있으나 잘 쓰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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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안경, 콧수염, 뻐드렁니, 훈도시, 게다가 일본인 남성에 대한 일반적인 스테레오타입인데(말하자면 나카무라), 이게 다 도조 히데키 때문이다[1]. 뻐드렁니, 꽁지머리, 기모노, 게다, 비음, 흰 화장 떡칠이라는 여성용 세트도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 왜 일본인을 매번 이렇게 묘사하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많다.[2] 간혹 중국인처럼 옵션으로 대머리(혹은 빡빡머리)가 따라붙기도 한다. 촌마게일본군, 그리고 한국보다 불교적인 이미지가 강한 탓으로 보인다.

일본이 아닌 일본인에 대해서 쓰는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도 꽤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때문에 일본인론 관련 서적은 항상 잘팔리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일본인이라고까지 해가면서 자신들에 대해 알려고 안달복달 하는 사람들도 일본인들뿐인데 자신들의 여러 요인에 의해 혼란스러운 자신들의 체성에 대해서 지식인 한정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이 항목을 수정하거나 추가하려는 위키인들은 이 점에 유의해서 추가하도록 하자.

2. 인종적 특성

남방계와 북방계를 특징이 합쳐져있다. 류큐민족들은 본토 사람들보다 더욱 남방계통에 가까워진다. 물론 최근에는 혼혈이 너무 많아 인종 간의 특색이 상당히 희미해진 상태.[3]

일본에 대한 가장 유명한 스테레오타입으로는 덧니가 많다는 것이 있다. 물론 이런 편견만으로 일본인들을 단정할순 없지만, 일본인들은 덧니가 난 사람을 상당히 좋아하긴한다. 그리고 이런 취향이 한국에 비쳐지는 일본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덧니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덧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친근함, 상징성,[4] 등이 있다. 때문에 굳이 교정을 하지 않거나 성형으로 덧니를 만드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덧니로 유명한 연예인은 이타노 토모미가 있다.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에 기반하여 일본인들은 덧니가 많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몇가지 가설이 돌고 있으나 그 가설이 확실하다는 근거는 없다. 대부분이 카더라 통신이거나 독자연구. 몇가지 메이저한 설을 얘기하자면,

  • 일본의 물에는 미네랄이 부족하여 가 부실해져 그렇다는 설. 비슷하게 물이 좋지 않은 영국인들도 치열이 고르지 못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어째서 뼈 전체가 아닌 이빨만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으며, 옛날이라면 모를까 현대에 들어서도 미네랄 부족같은 영양 불균형 때문에 치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 조몬인과 야요이인들의 혼혈 때문에 그렇다는 설. 인종적으로 지나치게 먼 인종끼리 혼혈시 기형이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데, 그렇다면 백인흑인, 혹은 백인황인의 혼혈아들은 치열이 작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혼혈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에 근거한 인종차별적 가설일 가능성이 높다

  • 근친상간으로 인한 열성 유전자의 발현 때문이라는 설. 혹은 좁은 섬나라에서만 있다 보니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이런 일이 생겼다는 설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섬에 산다고 근친상간 하는게 아니며 그렇게 따지면 영국인들도 근친상간하는 종족이냐는 소리도 있지만 그것은 일본인의 성풍습 및 결혼 관습과 영국인의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섬이라는 공통점만을 생각한 것이라서 무리가 있다. 하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없어서 그렇다는 설은 쉽게 반박될 수 있는게, 인구수와 국토면적으로 따지자면 인구가 더 적고 일본보다 땅덩이가 작은 조선에서 더 열성 유전자가 넘쳐났을 것이다. 이 점은 인구밀도에 상관없이 문화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근친으로 인해 발현한 덧니라는 열성유전자가 어떻게 한반도 보다도 넓은 땅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일본인들의 공통적인 형질이 될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 고기를 먹지 않고 야채나 과일도 부드럽게 해서 먹는[5] 식습관 때문에 그렇다는 말도 있다. 그 때문에 턱이 약해졌다는 것. 허나 이것은 용불용설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희박하며, 고기를 먹은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는지는 설명이 안된다.

남자들은 모자보다 두건을 더 선호한다.[6] 또한 온화한 기후 영향으로 인해[7] 대체적으로 한겨울에도 얇은 코트를 입는 경향이 강하다.[8] 안경도 테가 얇은 것을 선호하는 편.

유전적으로는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의외로 한국인과 몽골인의 차이점은 크다. 선사시대에 남쪽에서 올라온 동남아 계통의 수렵 민족이 일본 열도에 정착하였으나(조몬 문화), 중국,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이주하거나 혹은 소수가 이주해서 대량으로 인구증가된 야요이인과 같은 계열의 농경 정착민이 이들을 몰아내거나 일부 흡수해서 현재의 일본인(야요이 문화와 그 이후)이 되었다는 학설이 우세하다. 실제 유전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론 한국과 유사하나 아이누족에게만 있는 유전자가 서부 일본인들의 20% 정도가 나타나고 있고, 동쪽으로 갈수록 높아져 심하겐 5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유전적인 증거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야요이 문화 이후 삼국시대까지 있었던 수 차례의 한국인 이민과 긴밀했던 정치, 문화적인 정황 등으로 봐서도 상당히 설득력이 높다.

다만 일본어한국어의 유사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으로, 이러한 주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일본-백제-고구려 계열의 언어신라의 언어가 상이했는데, 삼국통일로 인해 라어가 현대 한국어가 되었기 때문이란 설을 주장한다. 다만 워낙 제어, 고구려어가 적게 남아있기도 해서 입증하기가 곤란하다.[9][10]

물론 불행했던 역사 때문에 대다수의 일본인과 한국인은 이러한 사실을 싫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펼쳤던 내선일체의 악영향으로 이러한 것을 언급하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이러한 가까우면서도 서로 증오하는 경우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같은 이면서 반목하는 유대인아랍인들을 연상케 한다고 표현했다.[11] 반면, 아이누족이 한반도에서 온 정착민 이전의 조몬 문화를 이룩했던 원주민과 관계가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아이누족은 백인과 같이 체격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체모가 많지만 의외로 유전적으로는 구황인종계열로 그다지 닮지 않았다.

3. 국민성과 문화

국민성은 한마디로 딱 잘라서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이는 일본인의 인구가 대단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도농간의 차이가 한국만큼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속마음을 잘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도무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음흉한 사람, 소심한 사람 등 아무튼 긍정적으로 비춰지진 않는 성격. 하지만 굉장히 유명한 사건들을 보아할 때 《국화와 칼[12] 정도가 일본인의 국민성을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도 있다. 어제까지 죽창을 들고 덤비던 일본병사가 가이드를 맡아서 자신들을 안내하자 한동안 불안해했다는 미군병사들의 얘기나 어쨌든 서양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불가사의한 국민성이다. 사실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 같은 동양권 사람들이 봐도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국민성이다.

그러나 실증적 연구가 부족한 국화와 칼을 너무 맹신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1차 세계대전과 크리스마스 휴전이 위 일본인의 국민성과 비슷한 사례로 언급되어 있었으나, 크리스마스의 상징성과 특수성, 그리고 유례없이 장기간 이어졌던 1차 대전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위의 미군병사의 사례와는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절대 다수가 크리스마스 휴전 이벤트를 벌인 것도 아니고 휴전을 했던 전지도 대부분 이틀 이내로 끝내고 이내 전투를 벌였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려는 일명 '메이와쿠(めいわく, 迷惑)' 문화가 있다. 일례로 전철이나 엘리베이터와 같이 낯선 사람들과 이용하는 곳에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으며 휴대폰 통화조차 삼간다. 그래서 일본인이라고 하면 우수한 질서의식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는 전국시대, 에도 막부 시대의 부터 전해진 관습의 영향이 크며 이러한 모습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지메, 일본군 등이다.

특히 일본인하면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와 혼네(本音, 속마음)가 유명하다. 이것은 일본인 특유의 와(和)를 강조하는 사회성등에 비롯된 전통적 사회규범으로 우리나라를 포함 외국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이해하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회규범은 개인의 주장은 최대한 억제하면서 집단내의 대립을 피하고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희생하여 원만한 인간관계와 집단의 단결을 강조하는데 사회규범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다테마에를 정면으로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그 결과 많은 경우 상대의 진정한 마음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지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의식구조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눈에 띄게 대접이 다르거나 목소리가 낮거나 하는 식으로 눈에 띄는 다테마에를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인보다 더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다테마에라는 것은 딱 부러지게 공격적인 말을 하는 것을 꺼리는 것정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인은 진심을 털어 놓아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보다는 표면적인 원칙만을 강조하는 쪽을 택하는데, 이것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규범덕분에 국제사회에서 일본사람들은 상대의 부탁에 대해 사실은 거절할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딱잘라 노(NO)라고 확실하게 거절하지 못하여 싫어도 싫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종종 받게되었고 이 탓에 외국에서는 일본 기업과 계약을 맺을때 "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다테마에)을 듣고 계약 성사가 눈앞인 줄 알고 희희낙락했다가 이후 확인 전화 시 "그런 대답 한 적 없습니다"라는 말(혼네)을 듣고 배신감과 좌절을 느낀적이 많다고 한다.[13]

이는 항시적으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여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일본사람의 대인관계의 습관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언어라는게 문화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으로 볼때 이러한 표현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며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오해를 유발하게 되면서 발생한 문제로도 볼 수 있다. 90년대에 이르러 국제사회에 일본이 집중 조명을 받게 되면서 혼네를 감추는 것이 국제사회에서의 통용되기는 어렵고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며 이러한 다테마에에 대한 부분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개인주의더치 페이가 당연시되고 있다. 실제로도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리 식당에서도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켜서 먹는 경향이 강하며 애초에 이 사람들의 식사 문화를 설명하는 단어가 이치닌마에(一人前)일 정도이다.

한국인이 자기 나라 사람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자주 부르는 것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 사람을 '일본인'이라 객관적으로 칭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서도 이를테면 터키, 그리스 같은 남유럽국가나 중동, 동남아시아지역의 전통적인 공동체문화가 남아있는 지역에서는 자신의 나라를 부를때 우리나라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의 경우는 문화가 많이 개인주의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위생관념이 보편화된 요즘은 그렇게 특이할 것도 없지만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게 당연시되던 옛날[14] 엔 목욕이 습관화된 일본인들이 상당히 특이하게 비쳤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과 달리 오랜 기간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내세적, 철학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고[15]자기가 처한 처지에 그냥 사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16]

그리고 언어 전체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매우 짙다. 이는 조선 이전까지 불교국가였던 한반도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불교적인 어휘가 더 자주 쓰이고 많이 쓰이는 것은 일본이다. 특히 범어같은 경우엔 더욱 그렇다. 대체로 유교와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대한민국과는 대조적인 편.

4. 한국과의 관계

국제적으로 봐도 이웃나라 국민끼리 사이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선례를 충실히 따라 한국인과는 감정이 좀 있다.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역사 때문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경술국치로 식민지 경험을 한 굴욕적인 역사가 잊혀지기에는 시간이 아직 덜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일본, 내지는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일수록 강하며 젊은층은 일본의 문화가 개방되면서 상당히 완화,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경도되어 나아가버리는 경우도 있는 편.

일본 애니메이션과 야동을 많이 본 한국 남자 덕후 들에겐 일본인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인 성진국! 이미지가 있어 환상을 품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일간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한일 커플이 많이 맺여지는 추세. 또한 일본 남자와 결혼하는 한국 여자들도 8,90년대와 지금과 비교하면 5배 이상으로 증가했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라, 국민성을 떠나서 개개인의 성격은 천차만별이고, 이런저런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불화를 겪는 경우도 많으니, 지나친 환상은 독이 된다는 것을 유념하자. 실제로 mixi나 아메브로 같은 일본 블로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글을 찾아보면 넘쳐나는 시집살이 한탄을 볼 수 있다(...).[17] 또 부부에 따라 다르지만 한일 정치관계나 한일 스포츠 결과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미묘하게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한국인 신랑이나 신부 부모들 중 조상이 일제에게 억압을 당했거나 본인 역시 일제에게 치욕 등을 당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입장을 내기도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일본놈과는 절대 안 된다, 그놈들은 우리 조상에게 억압을 가했던 놈들인데 조상들을 또 한 번 옥죌거냐는 등 역사적인 사유가 많은 편이었고 부모세대 대부분이 일제 때 태어났거나 일제를 경험한 부모로부터 일제의 죄악을 바로 들었던 입장이라 일부 한국인 신랑이나 신부 부모 사이에서는 경우에 따라 이런 사례가 있기도 한다. 개중에는 일제의 죄악 때문에 일본놈을 증오한다는 경우도 있어서 부모의 역사관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중국인이나 동남아인 출신 신랑이나 신부의 입장에서는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이기도 하다. 광복을 한지도 겨우 70년이 되었고 현재도 일제의 죄악을 알고있다는 노년 세대들이 생존해 있는 입장이라 한일 커플의 경우 일제를 경험한 부모나 그 부모로부터 일제의 죄악을 알고 있어서 일본을 증오하고 있는 부모세대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인터넷의 발달로 그 동안 일본일본인에 대해서 별 악감정을 갖고 않았던 한국인 일부에서도 일본에서 혐한감정 소식이 올라온 뉴스기사를 보고 곧바로 혐일 네티즌들과 동급으로 반일감정혐일정서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도 없고 일본인과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일본에 대한 소식은 거의 미디어쪽에 의지하는 편이라 미디어의 이런 소식을 듣고나서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를 알게 됐다고 곧바로 혐일 인식을 가지며 일본인을 혐오하는 사례가 있기도 하였다. 이들의 경우는 미디어보다는 실제로 일본인으로부터 나쁜 경험 등을 가진데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 잘 몰라서 미디어로 접하게 된 후의 경우는 이런 미디어의 소식만 믿고 다른 한국인들 앞에서 일본을 무분별하게 헐뜯는 험담을 늘어놓거나 일본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 일본과 일본인은 나쁜 놈들만 사는 나라라는 나쁜 인식만 심게 해주는 결과가 되고있다. 이런쪽의 사람일수록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혐오감이 갈수록 더해져서 인터넷 뉴스 댓글이나 SNS에 혐일 댓글이나 혐일 트윗 등을 자주 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일제 시대 중심으로 반일적 표현이 많은 매체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이런 사람일수록 찌라시와 보도에만 의지한 나머지 완전히 혐일 성향의 한국인으로 성장하며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는 악순환이 되기도 하는데 일본에서 비슷한 악순환을 보여주는게 재특회한 초딩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감정들도 꽤 사그라들고 있는 추세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정말 잘 맞는다. 하지만 비즈니스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상대로 일본인들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18] 그리고 외국의 학교를 가보면 한국인들이 중국인과 같은 다른 동아시안보다 일본인과 편하게 지내는 편이다. 물론 케바케. 이로 인해 어릴 때 외국에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은 일본인에 대해 기존 거주민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다. 친일까지는 아니고 그저 현재의 일본인과 과거 일제 시절에 저지른 과오를 분리해 생각한다 보면 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영주자가 증가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남성에 비해 여성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19].

일본에서 보는 한국도 그리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일본인에 비해 이 심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툭하면 사죄 보상 타령하며 시비 붙인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전혀 이해가 안 가지만 일본의 장년, 노년층 중에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비슷하게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일본인이 다 잘 살았던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대다수의 일본인들 역시 당시 체제하에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20].

정치는 명목상 민주주의 체제였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장식일 뿐 치안유지법 때문에 사실상 귀족 중심의 독재와 지역연고 코드인사로 굴러갔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2.26 쿠데타 이후 도조 히데키가 장악하는 군부 독재 체제로 바뀌면서 더욱 막장으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전쟁을 일으켜 식민지를 수탈한 돈은 군부와 재벌 호주머니로 들어갔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인구 급증과 급격한 공업화의 부작용으로 일본 국민 대다수의 생활 수준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서민들은 만주, 몽골, 중국 등지의 개척단에 반강제로[21] 끌려나갔고,[22] 태평양 전쟁에서는 결국 패망하게 된다. 패전 후에는 식민지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이 소련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중국, 한국 등에 강제로 남아 수모를 겪었다. 그나마 한국은 국교 정상화가 빨라서 60년대, 중국은 국교 정상화가 된 80년대에야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잔류 일본인들은 생사조차 불분명해졌다. 미군의 폭격으로 본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는 GHQ 군정 하에서 1958년 전쟁 전 경제수준 회복선언을 할 때까지 반식민지 상태를 13년 정도 경험한다. 미국이 일본을 농업 국가로 만드려다가 한국전쟁 덕분에 부활했다. 사실 냉전 당시 제 1세계 대부분의 공통점이 미국으로 인해서 부활한 것이다. 유럽마셜 플랜으로 일본한국 전쟁으로 한국베트남 전쟁으로.

물론 당시 일본인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식민지였던 조선인이나 중국인의 생활수준보다야 훨씬 나았고, 생활이 어려워 개척하러 갔다는 농토 역시 식민지 주민으로부터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지만 일본 국민도 전쟁으로 인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았으며 군부시절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물론 극우 네오나치들은 제외하고 좋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였던 1910년 이후부터는 식민지 및 속령지역이었던 한반도에 일부 일본인들이 이주를 해오며 살았던 적도 있었고 넓게는 중국 대륙까지 이주하여 '왜인촌(倭人村)' 이라는 집단촌까지 형성했다는 일설도 있었다.[23] 일제강점기 때만 했어도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국역(國域)이 반도에까지 늘어났다며 본토를 떠나 아예 한반도로 이주하여 집단촌까지 만들었고 군경(軍警)까지 주둔했지만 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해방이 되면서 모두 본국으로 쫓겨났거나 일부는 한국인들에게 발각되어 맞아 죽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을 나눠줘서 고마웠다고 수기에 쓰기도 하였였다. 그러나 일부 일본으로 돌아가던 일본사람은 높은 비율로 일본인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에 움직이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했다고 한다. 당시 돌아가지 못한 일부 일본인은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눈치 때문에 아예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 행세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망절씨 항목 참고) 이 역시도 케바케로 일본인 처 모임이 각 지역별로있다. 이 할머니들은 일본국적을 유지한 채로 계속 한국에 살고있는 분들이다.

4.1. 재조선 일본인

19세기 말에 한반도에 일본인은 수백명 수준이었으나 1945년 일제의 패망 직전에는 60만이었다. 일본이 패하자 이들은 미군정에 의해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런 이들을 히키아게샤라고 불렀다. '조선을 떠나며'를 읽어보면 일본이 8.15 광복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반응을 묘사한 단원을 읽어보면 상당수가 한시바삐 조선을 떠나야한다는 심정이었지만 그들이 낳은 자녀들, 특히 조선에서 출생해서 터전을 잡고있던 다수 재조선 일본인 2세들은 자신들이 왜 떠나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원산지역에는 일본인 촌이 있어서 자체 치안은 물론이거니와 학교등의 편의시설이 들어있어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모여사는 지역이 있었는데. 광복이 되어 많은 조선인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조선인들이 이렇게나 많았나?"(...)라고 할 정도로 분리된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미군정이 이들이 반출할 수 있는 재산을 제한했기 때문에 대부분 야반도주 하듯이 조선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일본에 돌아와서도 냉대를 받아야 했던 것이 전시동안의 궁핍한 생활과 공습에 대한 대피로 피폐해진 본국인들과는 달리 그래도 식민지에서 태어나 삶의 터전을 일구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던 재조선 일본일들은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고 그나마 갖고들어온 재물 상당수를 여러가지 명목으로 떼어야 했으며 특히 그들의 자녀들은 놀림감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자녀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자며 보채는 것을 달래야 했었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본국의 경제상황이 막장이었는지라 구직도 불가능했고 이러다보니 임시거처였던 수용소가 영구거주지로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여기에 '인과응보'라고 빈정대는 본국인들의 경멸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4.2. 재한 일본인

패망 후 대부분의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한일 혼혈인 아이나 일본인 아내 등이 일부 남았다. 한국전쟁 당시 해상보안청GHQ의 지시로 소해정을 파견했고 보안청 직원들이 상륙하기도 했고 노무자들이 항구 등에서 미국의 군사물자를 나르기 위해 들어왔다.

한일 수교 전에 양국은 대표부를 설치했고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1965년에 한일수교가 이뤄지면서 일본인 외교관과 상사 주재원 등이 들어왔고 관광 목적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도 생겼다. 통일교 소속으로 영주권을 얻은 일본인도 있다.[24]

2013년 8월 31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민정보과 월보에 따르면 일본인 유학생은 2,781명(유학 1,714명/한국어 연수 1,067명)이며 한국인의 배우자(결혼이민자)[25]는 12,104명(남성 1,174명/여성 10,930명)이며 취업자격 체류자 1,782명(불법체류자 2명 포함)이며 단기체류자 23,462명[26](불법체류자 499명 포함)이며 등록외국인[27] 23,194명(불법체류자 363명)이다. 체류 일본인의 숫자는 47,443명(불법체류자 875명)이다.

4.3. 재북 일본인

패망 후 한국과 상황이 비슷했으나 별 탈 없이 일본으로 돌아간 한국의 일본군과 달리 재북 일본군인은 소련군에 의해 끌려가 포로가 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부 한일혼혈이나 일본인 아내가 잔류했다. 이들은 잔류 일본인이라 부른다. 이들의 규모는 약 1400명 수준이었다.

그 외에 북한 공안 당국에 의한 납북 일본인[28]이 있고 재일교포 북송 당시에 한국인 남편이나 아내를 따라간 일본인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지닌 혼혈아 등이 북한에 있다. 일본인 배우자의 숫자는 약 1800명으로 추정한다.

5. 기타

영어로 일본인을 비하하는 명칭은 Japs이며 이 단어는 공습하다, 몰래 공격하다라는 뜻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주만 공습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 때문인지 나라 이름을 로마자 머릿글자로 쓸 때도 KOR, FRA, AUS, BRA처럼 웬만해선 앞의 3글자를 따서 쓰는 것과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JAP라고 안 쓰고 JPN이라고 쓰고 있다. 2차 대전 중에는 Tojo[29]라는 명칭도 쓰였으나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덤으로 2차 세계대전 즈음의 여러 미국산 프로파간다에서는 일본인들이 말끝마다 Please, please를 연발하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30]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일본인이 경어를 표현하기 위하여 please를 여기저기 집어넣어 말하던 버릇을 과장해서 비꼰 듯.[31] 한국에서는 일본인 비하 명칭으로 왜구, 왜노가 있다.

고래 잡아먹는 야만인이라는 인식이 환경보호단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32] 멸종할 수 있으니 먹지마라고 그렇게 말해도 듣는 척도 안해서 그런 듯(...) 근데 일본에서 먹으려고 잡은 고래보다 서양에서 기름짜려고 죽인 고래가 더 많다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고래잡아먹는게 야만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사회에 따라 먹는 음식과 안먹는 음식이 다를 뿐이다. 결국 남는 건 멸종위험성인데, 이건 논란이 좀 있어서(...).고래항목을 참조하자.

매운맛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강한 향신료가 별로 없는 일본 요리의 특성에서 유래한 점이라 카레도 상당히 부드럽고 달게 만드는 편이다. 물론 예외는 있기 때문에 매운맛을 즐기는 일본인들도 있다.

일본인들은 가 작다는 인상이 있는데 사실 통계 수치로 봐서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평균키는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17세를 기준으로 남녀 모두 3cm 정도 한국인이 크다.2002년 조사 물론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니라고 하는 건 개인간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몇 천만명의 평균으로 3cm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큰 차이[33]라고 할 수 있다. 오덕캐들의 설정이나 일본 아이돌의 키가 한국인이 볼 때 꽤나 작은 편이라[34] 이런 인식이 퍼진 듯하다. 조금 작긴 하지만 완전 호빗은 아니라고만 알아 두면 된다. 그리고 골격 자체가 한국인의 뼈보다 일본인의 뼈가 더 얇아서 더 왜소해보이는 경향이 있고 일본인의 키 편차[35]는 한국의 그것보다 더 심하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꽤 작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이 한창 경제발전하고 있던 시절에 태어난 일본인과 한국전쟁 이후 배고픈 시절에 태어난 한국인의 키를 비교해보면 동세대의 일본인이 더 크다. 이런 키의 역전 현상은 현재 40대부터 80대까지 수십년 넘게 지속되었다. 예를들어 2008년 한국 산자부와 일본 문부과학성통계 기준으로 일본인 40대 평균키는 171.1cm이지만 한국인 40대 평균키는 168.6cm이다. 50대는 일본은 168.8, 한국은 166.1. 사실 성인 40대-80대까지 인구 통틀어서 키평균을 내보면 해방이후 2011년 지금까지 계속 꾸준히 일본남성이 한국남성보다 키가 컸다.[36] 한국 남성이 일본남성 평균키를 역전하기 시작한 40세 이하를 제외하고는 그 윗세대는 꾸준히 일본남성 평균키가 한국남성보다 컸기 때문. 어쩌면 수십년 동안 꾸준히 있었던 일본인은 왜소하다는 생각은 사실 편견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의 평균키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보다 크다.

하지만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작은 편이었다는 것은 맞다. 일제 때 신체조사를 보면 한국인 어린이가슴둘레는 더 적었지만 키가 5~7cm 더 컸다고 나온다(출처 역사신문 6권, 사계절출판사.). 또한 구한말 조선과 일본을 여행했던 영국 여행작가 비숍 여사 역시 저서에서 '한국인은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더 크고 잘 생겼다'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일으켰던 른스트 오페르트는 한술 더 떠 "조선인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피부가 희고 키가 큰 걸 보니 백인의 후예인 듯."이란 개드립도 했다. 이는 과거 일본은 불교 도입 이후 육식금기로 인해 필연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부족해지면서 일본인들의 성장에 악영향이 오고 더군다나 근대 이전에는 일본의 세율이 한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높다보니까(이른바 칠공삼민, 70%는 국가와 영주가 떼먹고 나머지 30%는 농민이 가져간다. 여하튼 이러한 고세율덕분에 일본이 빨리 근대화할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긴하다.) 일반인들이 먹는량도 별수없이 줄어들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인보다 키가 작아질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런 자료도 있다.
japanese_korean_height_1937_colored.jpg
[JPG 그림 (66.71 KB)]


그러니까 이를 해석해본다면 6.25전쟁 후 안그래도 좋지않던 한국인들의 영양상태가 더더욱 나빠졌고, 일본인의 영양상태가 빠른 경제성장 덕분에 평균신장에서 앞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서 확실히 키 차이가 많이 줄어들긴 했는데 실제로 산업화 국가중에서 일본이 2차대전 이후(160cm에서 171cm로) 가장 많이 자랐다고 하니까.

마술마법과 동의어로 사용하며, 무대마술은 테지나(手品)라는 말로 따로 부른다.

타 국가 사람들보다 비교적 목소리 톤이 높다는 이미지가 있다.[37] 물론 죄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보니 애니메이션 더빙에서도 귀엽고 앵앵거리는 목소리가 많은데 한국인이나 서양인을 비롯한 비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좀 싫어하는 감이 꽤 있다. 그래도 서양에서는 소비자가 좋든 싫든 꾸준히 영어 음성을 넣어주는 회사가 있거나 프랑스독일처럼 아예 자국어 더빙만 방영하게끔 법으로 못박는 나라도 있기 때문에 사정이 좀 낫다만 대한민국은 어린이 채널로 바뀌고 그 동안 해 왔던 고연령층 애니메이션 더빙도 중단하고 아예 더빙 자체를 포기하거나 개국 때부터 더빙 따위 내다버리고 자막 동시방영에 올인하는 등 더 이상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국어 더빙을 듣기가 힘들어져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려면 싫어도 무조건 일본 성우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성우 목소리가 싫으면 영어 공부도 할 겸 북미판 더빙을 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성우빠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톤의 높음이 좀 심해서 한국어 더빙판뿐 아니라 그 외 외국 더빙판들을 보면 '캐릭터들 목소리가 일본 원판보다 5살 많아보이는 건 기본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라별로 언어, 발성이 다 다른 탓이지 성우 목소리가 캐릭터 연령대에 아주 심각하게 벗어나지 않은 이상 단지 원판보다 비교적 성숙해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스 캐스팅으로 치부해 버리는 건 옳지 않다.


6. 행동방식

일본/문화 항목 참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 을 먹기 전에 합장한다.
    • 이와 살짝 다르게, 진심으로 부탁할 때 합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만화애니에서 이런 묘사를 많이 한다.
  • 인남캐의 경우에는 손을 세로로 코 앞에 든 후 '와루이'나 '고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7. 일본인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제외.만약 해당국 포함하면 이 항목은 터져나갈것이다 단 배경이 일본이 아니거나 일본인 캐릭터가 적어서 일본인인 것이 캐릭터의 특징이 되는 경우는 적는다. 이런 경우 이름 옆에 ★을 표시하자.

대충 일본인 이름을 지을 때 쓰는 대표적인 이름으로 나카무라야마모토가 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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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위의 두번째 제 2차 세계대전당시 발행된 슈퍼맨 만화 컷 만 봐도 이러한 이미지가 이미 미국에서 정형화 돼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 [2] 하지만 전자의 경우 뻐드렁니를 제외하면 일본 국내에서 친근한 아버지 혹은 아저씨 이미지로 통하기도 한다. 사자에상의 나미헤이나 아따맘마아빠가 그 예시.
  • [3]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이 순혈이라는 착각은 금물. 사실 애당초 '순혈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이다.
  • [4] 덧니는 이나 미숙함 등을 상징하고, 일본인들은 이런걸 상당히 좋아한다
  • [5] 한국인들은 주로 아삭거리는 식감을 좋아하지만, 일본인들은 정반대로 살살 녹는 식감을 좋아한다. 일본에서 한국식 참외가 도태된 이유 중 하나.
  • [6] 물론 모자를 쓰는 남자들도 많다, 다만 한국에 비해 두건을 착용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어있다.
  • [7] 도쿄의 2월 평균기온은 위도가 비슷한 전주보다 훨씬 높으며 한밤중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 [8] 초등학생 이하 남자아이들이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 [9] 백제어와 고구려어가 원체 적게 남아있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 말이 안 된다. 영국의 역사를 보면, 프랑스 출신(정확히는 노르망디 출신)의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정복한 이후 영국에서는 적어도 4백년 동안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였다(영어는 하층민들이 쓰는 천한 언어로 취급받았다. 이에, 백년전쟁 시기에는 제발 영어 좀 사랑하자는 왕명이 잇달아 나오기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해 한반도에 사는 모두가 신라어를 쓰게 됐다면, 왜 프랑스인에게 정복당해 그들의 지배를 받는 영국인들은 프랑스어를 쓰지 않게 된 것일까?
  • [10] 또한 스페인의 지배를 2백년 가량 받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국가들도, 비록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원래 쓰던 언어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라가 백제인과 고구려인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한 건 맞지만, 언어라는 게 인위적으로 하루아침에 싹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11] 사실 민족적인 혈통만 비슷할 뿐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이유로 반목하다 못해 아예 남남으로 갈라서서 증오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꽤 흔한 일(...)이다. 당장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 [12]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외국에서는 일본인을 가장 잘 나타냈다는 평을 듣는다. 여담이지만 저자는 일본을 방문한 적도 없는데 저 책을 써냈다. 흠좀무.
  • [13] 사실 몇몇 일본인조차도 이런 문화에 대해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은근 있다.
  • [14] 기독교가 지금보다 생활 전반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중세유럽에선 몸에 떨어지는 먼지마저도 신의 성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 [15] 모노노아와레, 와비-사비
  • [16] 이를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고 한다.
  • [17] 이건 굳이 한일 결혼이 아니더라도 항상 유념하자
  • [18] 특히 인종의 용광로 미국에 이러한 현상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반면 비즈니스 쪽 종사자들이 꼽은 최악의 비즈니스 상대는 개인차는 있지만 아르메니아인을 최악의 비즈니스 상대로 많이 꼽는다.
  • [19] 대부분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배우자들이다.
  • [20] 당장 군국주의시절의 일본은 한국의 5공화국시절과 거의 맞먹는 막장이었다. 군사독재의 패악이 창궐하던 때였으니..
  • [21] 지역마다 인원을 할당해서 할당된 인원을 채우지 못할 경우 세금 감면을 안해주거나 자치단체 보조금을 깎았다.
  • [22] 이 때 떡밥으로 내건 것이 세금 감면, 농토 지원(물론 중국인과 조선인에게서 빼앗은...), 군 면제였다. 하지만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이후에는 농토 지원 그런거 없고, 개척단이고 뭐고 얄짤없이 다 징집해갔다.
  • [23] 일부는 일본 패망 후 잔류하여 일본계 중국인이 되었다.
  • [24] 결혼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일본인 영주권자의 대다수는 통일교 신자다.
  • [25] 뭐 당연한 얘기지만 결혼 이민자들은 대부분 등록외국인이다. 일본인 결혼 이민자 가운데 600명 정도가 귀화했다. 상당수는 통일교 신도.
  • [26] 90일 미만 체류자.
  • [27] 90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으로 지문 날인을 해야 한다.
  • [28]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미귀국 납치피해자는 12명이고 행방불명자는 470명이다.
  • [29] 당연히 도조 히데키 때문에 생긴 비하어이다. 콜 오브 듀티 5에서도 일본인들을 Japs가 아닌 Tojo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 [30] 발음을 '플리즈'가 아닌 '프리즈'에 가깝게 하면 더욱 완벽(…).
  • [31] 정작 please는 한국어나 일본어의 경어법과 100% 대응하는 표현이 아니다. 부탁을 목적으로만, 그것도 잘 안 들어줄 것 같은 내용을 부탁할 때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표현.
  • [32] 사우스 파크에선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떨군 게 돌고래라고 뻥쳐서 이걸 믿고 돌고래나 고래들을 죄다 학살하는 등신들이라고 묘사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근데 트레이 파커 부인은 일본인이다(...) 흠좀무(...)
  • [33] 한국인 남성 평균보다 3cm 크면 176.5~178cm인데 이는 러시아,프랑스,영국,북부 이탈리아의 남성 평균키와 비슷하다. 반면 일본 남성 평균보다 3cm 작으면 167.5~169cm인데 이는 중국 남부, 인도 북부, 말레이시아의 남성 평균키와 비슷하다.
  • [34] 분재도 그렇고, 얘네들은 작은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당장에 각종 서브컬처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프로필만 봐도 한국과는 달리 170cm 이상의 캐릭터는 거의 천연기념물급이다. 나와도 외국계라든지, 운동계라든지, 키 큰게 콤플렉스라는 설정이 거의 붙어있다. 현실에서는 모 여성 성우가 한국에서라면 별 논란도 안될 장신 논란이 있고, 평균키 170cm 이상의 여성 아이돌 그룹이 한국에서는 몇몇 있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희귀하다. 하지만 어지간한 한국 여자 아이돌들의 키를 쌈싸먹는 일본 여자 아이돌 같은 예외도 있다. 남성은 그나마 이런 심리적 커트라인(?)까지는 없지만 전투, 격투, 스포츠계를 제외한 서브컬처의 남성 캐릭이나 현실에서 남성 아이돌들의 신장을 살펴보면 티가 충분히 날 정도의 차이를 알 수 있다.
  • [35] 180cm에 육박하는 장신도 한국 못지 않게 많지만 165cm도 안 되는 단신은 한국보다 훨씬 흔하다. 한국에서 160cm대 남성은 깔창과 높은 굽의 신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 수준이지만 일본은 150cm대 남성도 작은대로 잘 지내기 때문에 편차가 훨씬 도드라져 보인다.
  • [36] 일본은 20대 연령층 청년과 40대 중후반인 중년이 같이 서 있으면 별로 차이가 없는 편이다.링크에 따르면 일본 20~24세 청년층의 평균키는 172.0cm. 중년층은 171.1cm. 반면, 한국은 20대 남성 평균키 173.7cm, 40대 남성의 평균키는 168.6cm으로 차이가 크다.
  • [37] 반대로 일본인들은 한국인 목소리가 꽤 낮고 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일본 구글 검색창에 '한국인 목소리'라고 치면 허스키가 자동 연관검색어로 뜬다(...)
  • [38] 일본 국내에서는 야마다가 대표적이다. 관공서나 은행의 서식 예시에 한국에서 홍길동/성춘향이 널리 쓰이듯, 일본에서는 야마다 타로(山田太郎)/야마다 하나코(山田花子)가 많이 쓰인다.
  • [39] 이 둘은 혼혈이다.
  • [40] 과거에 일본에서 아마츠미카보시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 [41] 마블이 고지라의 저작권을 구입해서 크로스오버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고지라는 마블의 본편 세계관인 지구-616에 존재한다
  • [42] 몸만... 자세한 건 사이록 항목 참조
  • [43] 무한도전에서 왜구, 야마모토 등 일본인 기믹이 있다.
  • [44]미스터 초밥왕》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가 모델. 그외에도 초반부분의 밥관련 에피소드에서나 복어 관련 에피소드에서 동명이인의 스즈끼란 인물들이 등장한다.
  • [45] 예외라 함은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인 캐릭터를 말한다. 이 경우는 대체로 우호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 [46] 신연예인지옥 외전2나 신연예인 지옥 외전6 모나크 1부에 등장한다. 정지혁 병장은 그를 딸딸이 부대라 부른다.
  • [47] 그는 3시즌에서 스모모습을 해서 한국에는 미방영된다.
  • [48] 1시즌에서 닌자로 인간이 아니라 잡귀다. 나중에는 비만닌자,쇼군같은 잡귀들이 나온다.
  • [49] 프랑스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도 애니맥스에서 잠시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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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19: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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