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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다처제

last modified: 2015-04-03 18:24:36 by Contributors

목차

1. 설명
2. 한국의 경우
3. 진실
4. 동물들의 경우
5. 그 외


1. 설명

一夫多妻制, Polygamy.

한 남성이 여러 명의 여성을 아내로 두는 결혼 형태. 현대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라진 형태로 몇몇 국가에만 남아 있다. 마누라 잔소리가 2배 일처다부제의 반대 의미인 단어다.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는 나라들 분포도

일반적인 이미지는 중동의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이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불교국가인 미얀마스리랑카, 기독교 인구가 많거나 대부분인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아프리카 나라들과 인도 등도 일부다처제를 인정 내지 관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기니, 보스니아, 아제르바이잔, 알바니아, 터키튀니지만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다만 여기도 시골로 가면 볼 수 있으나, 정부기관이 알면 단속거리라고 한다. 한편 폴란드, 우크라이나, 베트남, 캐나다 등지에서는 헌법에다 일부다처제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과거부터 아내를 여러 명 거느리는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결혼하는데 드는 돈을 부담할 수 있음+가족을 모두 부양할 수 있을 만한 재력 등이 그 이유.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의 후궁 제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1] 다른 실용적 기원으로는 전란 때문에 남자가 엄청나게 준 상태에서, 생활환경의 피폐로 인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고아나 인척의 과부를 결혼한 남자가 대신 맡아 주면서 생긴 것. 17세기 독일의 어느 지방에서는 일부이처제가 의무였다고 하는데, 30년 전쟁의 여파로 성비가 남3:여5로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경우도 군대 증강과 인구 증가를 위해서 일부다처제를 의무화시킨 적이 있다[2]. 이슬람의 일부다처제 역시 근본적으로는 7세기 아랍에서 빈발했던 전쟁과 각종 사고로 가장이 죽은 경우, 가족의 아이들과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권의 경우 입양을 허가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쿠란에 따르면 4명까지 두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나 그보다 많이 두는 경우도 있다. 되려 초기 이슬람교에서 아내를 4명까지 둔다고 하자 당시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겨우 4명이냐? 불만이 가득했는데 당시에는 수십여명 아내를 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는 카자흐스탄에선 사이비 이슬람 신교 단체가 쿠란에선 아내를 4명만 두라고 했으니 그 다음 숫자부터는 다르게 여긴다면서 5번째 딸을 아내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다가 당연히 근친상간으로 쿠란을 모독한다는 기존 이슬람계 반발과 같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박살낸 적도 있다.

물론 아내가 많은만큼 돈도 많이 들어 대부분 많아도 2명 정도만 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도 드물어서 대부분의 이슬람 가정에서는 한 아내만 둔다. 수니파의 경우 4명 이상을 두진 않지만 시아파의 경우엔 조혼에 다섯명 이상을 넘겨 국제적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슬람교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는 것이지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성비 문제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위너들을 위한 정책 or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 이유로, 여성은 좀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선택'할 수있고 '선택'받지 못한 남자들은 자연히 도태되기 때문.

그런데 여성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단 하나뿐인 배우자 위치로 올라서지 못한다는 사실에 따르는 심적 고충을 감안하면 과연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상류층의 아내가 되었다가 남편의 연이은 간통 행각과 사실상 하인 취급하는 분위기에 질려서 합의이혼한 다음 일반 중산층 남성과 재혼한 여성도 있을 정도니까. 다만 일부다처제가 실행되는 사회는 부격차도 극심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반 중산층 남성'의 숫자도 적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극소수 부유층 만이 뭇 남성들이 흔히 꿈꾸는(…) 그런 일부다처를, 중산층은 보통 1~2명 정도를, 하위 계층/계급에서는 아예 결혼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즉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아내의 수는 남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일단 어떤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시행한다고 치면, 그 사회는 곧바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안정시킬 방법부터 고민하게 된다. 여러 아내들 사이의 갈등과 질투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날 수가 있기 때문.(…)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문화권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다. 다음은 그 중 몇몇 방법을 열거한 것이다.

  • 자매가 아닌 공동 아내들은 거처를 분리시키되, 자매덮밥 자매인 아내들은 함께 지낼 수 있게 한다.
  • 각 아내들은 모두 섹스와 경제권, 재산의 소유권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 가장 연장자인 아내가 가정 내에서 특별한 권위 또는 특권을 갖는 것을 인정한다.
    • 이와 함께, 어린 아내를 편애하지 않게 하는 관습이 동시에 시도될 수 있다.[3]

그러나 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어찌되었건 간에, 일부다처제가 남아있는 나라들 근대화가 덜 이루어진 국가들에서 여성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각 부인을 공평하게 사랑하라는 계율[4]은 그저 계율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배우자가 '다수'가 됨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역시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상식적으로도, 배우자를 다수 거느리는 경우 각각의 아내를 '스테이터스'나 '재산'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인격적인 동반자나 반려로 여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부다처제 등에 대해 관대한 나라들 가운데에서는 아직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있는 등 고대종교의 악습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 일부다처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까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여성의 인권 경시의 풍조 자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의하면, 남성은 결혼을 원하는 여성에게 일정 이상의 자금을 주어야만 한다. 샤리아적 관점에서 결혼은 '신성한 계약관계'이며 반드시 신랑과 신부 본인의 자발적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슬람의 결혼은 결혼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신부측에게 지참금을 지급함으로써 유효화된다. 또한 쿠란에는 신부의 지참금은 오로지 신부만의 것으로 남편이나 신부측 집안 사람들이 맘대로 운용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남편과 아내의 사유재산권이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5] 결과적으로 아내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 지출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지참금은 남편의 3~4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현금 혹은 현물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것이 관례인데, 아내가 4명이라고 치면 최대 16년치 연봉을 일시불로 지급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슬람권에서 율법상 보장된 권리를 막을 수는 없으니 실질적으로 못 하게 한 것.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아프리카에선 이슬람이 아니라도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나라가 많다. 그 예로 남아공 대통령(2009년 취임)인 제이콥 주마는 2012년 시점에서 아내가 넷이다[6]. 2010년엔 부인이 3명이었는데, 이 때 영부인 자리에 아내 셋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남아공에선 이슬람은 극소수이며 주마도 공식적으로 기독교인이라 법적으로는 일부다처제가 인정되지 않는데, 관습법적으로는 허용되기에 큰 문제로 삼지 않는 듯하다.

이처럼 아프리카 여러 부족들은 부자이거나 족장같은 권력자는 아내를 무한으로 둘 수 있기에 자이르(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에 있던 바쿠바 족 자치구역, 스스로는 쿠바 왕국(Kuba kingdom)같은 이름인 쿠바는 Cuba라 다르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이 쿠바 왕국(1625~ 1900년대 초반까지 콩고민주공화국에 실존했던 아프리카 나라(벨기에의 무참한 침략으로 멸망했다.)를 이어받았다고 자칭하는 작은 나라이다. 뭐 실제로 바쿠바 족이 쿠바 왕국을 다스렸던 민족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여기 왕이던 르켕 왕이 현대에 보기드물게 진짜 하렘을 이룩한 적이 있는데, 60년대만 해도 르켕 왕은 아내를 무려 800명씩이나 둔 적까지 있다. 그는 식민지 시절에는 벨기에 측이 그냥 얌전히 바쿠바족을 다스리며 대들지 않으면 매달 돈도 두둑히 주고 당신의 왕권을 인정하겠다고 두면서 절대적인 왕권을 행사했다. 아들딸이 무려 2천명이 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벨기에로부터 이 나라가 독립한 60년대 들어서 자이르 정부가 이건 해도 너무하다고 그 부족마을로 가서 지나친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던 일[7]도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하진 못해도 여전히 엄청나게 아내를 두는 경우가 있는데 2000년대 후반에 케냐에서 마사이족 마을로 간 한국인 여행자는 아내를 30명이 넘게 둔 마을 촌장을 봤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촌장의 아들들도 각자 아내를 10여명씩 두고 있는데 그나마 촌장인 아버지(그것도 당시 나이가 84살이었고 마지막에 맞이한 아내는 19살이었다)가 가진 아내의 수를 넘기면 안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도 거저 아무나 아내를 저렇게 가지는 게 아니다. 주로 를 비롯한 가축이나 생필품을 지참금으로 아내의 집안에 내줘야 하는데, 아내의 외모와 여러가지를 따져서 지급할 지참금이 달라진다고 한다.

여행자가 아내에게 보통 주는 소가 몇 마리냐고 하자 마지막에 맞이한 아내는 꽤 미인인데 소 30마리를 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마을 보통 서민들은 소를 보통 몇 마리 수준으로 기르고 있었고 촌장의 집안은 2천마리가 넘는 소를 가지고 있었단다. 즉 여기도 지참금이 부족하면 마법사 되는 셈.

故 이태석 신부가 지내던 남수단도 마찬가지라서 남수단 다수 기독교인들도 이슬람욕해도 일부다처제를 욕하지 않고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이 아닌 전통풍습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덕분에 부족장이나 잘 사는 부자들은 아내를 여럿 데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역시 지참금으로 팔려나온 신세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성경에서도 일부다처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일단 솔로몬만 해도 아내가 700명에 첩 300명을 데리고 있었다. 다만 이건 솔로몬이 행했던 외교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영토를 넓히기보다는 이웃 나라의 왕족 및 귀족들과 사돈관계를 맺음으로서 그들을 자신의 속국에 가깝게 만드는 것.

다만 이런 동네도 전쟁에 휘말리고 남성이 감소하면 오히려 제도가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의 경우 여성이 간통을 해도 어지간해서는 경멸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8] 남성이 극히 부족하고 여성이 이거 저거 해야만 가정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요구를 무시하다가는 공동체가 망하기 때문이다.

2. 한국의 경우

전근대의 한국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를 시행하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한 명의 처와 여러 명의 을 두며 쉽게 풀어쓰면 일부일처다첩제가되는 처첩제와 혼동한 것이고 정실 부인이 여럿 있는 일부다처제는 드물었다. 고구려에서는 왕이 2명의 비를 두었다고 하고 또한 고려에서는 왕이 여러 명의 왕후를 두었지만, 이러한 사례는 정치적인 고려 탓에 생겨난 예외이다. 일반인들은 경제적 이유로, 정략결혼이 보통인 귀족들은 자신들의 몫이나 정략결혼으로 인한 연대 효과가 줄기 때문에 할 이유가 없었다.

보다 자세히 논하자면,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처가와 사위 간 연대가 강했다. 부부별성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장인어른의 파워가 강했다는 의미다. 결혼 후 여자가 출가외인이 되는 것은 최근 300년 정도 일이고, 그 전엔 천 년도 넘게 차라리 데릴사위제에 가까웠다. 중국이나 중동 등등이 일단 결혼하면 딸은 거의 인연이 끊기다시피 하고 시집가서 남편이 죽으면 끈 떨어진 나룻배가 되는 것과 다르다. 남자 입장에선 결혼하면 최소 몇 년은 처가에서 살고, 이게 길어져서 처부모 삼년상 모시는 일도 허다했다. 장인 어른이 고위관직에 있으면 사위 자격으로 음서의 혜택을 볼 수도 있고, 재산상으로도 본가에서 물려받는 재산 못지않게 (아들 딸 구분없이 균분상속하므로) 처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인을 통해 상속받는 재산도 비중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다처제는 성립되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일단 결혼하면 'OO가의 사위'란 정체성이 상당히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동등한 정실 부인을 다시 맞이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거다.

그러나 여성의 권한이 커서 위와 같이 된것이 아니기에 은 있었다. 즉 장가든 후 메인 주거지가 처가가 되는 건 맞는데, 실질적으로 아내는 처가에서 계속 살고, 남자는 처가와 본가를 오가면서 산다. 이 대표적인 표본이 서울과 강릉을 오락가락했던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 같은 사람. 그리고 흔히 이럴 때 본가 근처에는 첩을 두고 사는 것이 고려~ 조선 중기까지의 상류층 남자의 생활상이었다. 소위 현지처(...)의 전통은 긴 역사 면면한 셈.

뭐, 처첩제든 일부다처제든 한 남자가 다수의 여자와 공식적으로 동거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단지 그 여자들에 대해 차등을 두느냐, 아니냐 뿐. 굳이 일부다처제 라고해서 무조건 같이 살아야 된다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애시당초 일부다처제는 각 처마다 하나의 집을 무조건 배정하도록 하여 마찰을 피하고 있다.

고려말, 거듭되는 전란으로 남녀 성비가 무너졌다든지 원래 해동땅은 음기가 세다든지(...)하는 이유를 들면서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제안을 한 대신을 도성 여인들이 욕보였다든지, 그 소식을 들은 여인들이 남편과의 동침을 거부하는 시위를 했다고도 전한다. 그런데 고려 말에는 일부다처 풍습이 확인되기도 한다. 특히 호족 출신으로 중앙에 진출한 사람의 경우 경처와 향처라 하여 고향과 개경에 처를 따로 두었다.[9] 종래에는 이를 고려 시대 전반의 풍습으로 확대시켰으나, 지금은 고려 말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주류이다. 조선 개국 후 일부다처제를 금하면서 여러 부인 중 누가 정실 부인이 될 것인지가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 말에 개화기 이후 처첩제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말그대로 부인과 남편이 한 명씩만 있는 일부일처제만 인정한다. 대한민국 국군 간부들의 경우 일부다처제 행위를 하면 축첩행위라는 혐의로 현역부적합심의 대상이 된다.

3. 진실

뭐 옛날이든 현재든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기는 해서 그렇다 치지만 은근히 기록이 많은 덕분에 에로게 등에서는 남자의 로망으로 포장되어 나오고 오덕뿐만 아니라 뭇 남성들중에도 이를 동경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영원한 장밋빛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허용이 되는 나라에서도 처를 여럿 두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매우 드문데, 여자쪽에서 그렇다하면 어느 정도까진 되겠지만 남자가 작정하고 그러하면 헬게이트를 볼 수 있다고. Nice boat. 아내들이 작정하면 복상사로 갈수도있을거같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우선 먼저 경제적인 면을 살펴보자.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사회 진출을 생각 하거나 경험한 사람 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한국의 일반 가정 기준으로 1처에 자식 둘만 딸려도 가장은 자신의 덕질에 들일 금액을 가급적 줄이는[10] 것부터 시작해 온갗 부분에서 넉넉하게 돈을 쓰기도 힘들고 거의 대부분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고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배려와 마음을 써야하는 당연한 일이 있는데 여기에 처가 넷에 1인당 자식을 2명만 둔다고 생각 해보자. 부양가족이 단숨에 12명이 된다. 게다가 그 12명이 각각 3명씩 거주할 수 있는 집을 도합 네 채 지어야 한다.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뭐 일단 재력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긴 할 거다. 빠삐용은 두 아내를 거느리고 그것도 자매덮밥을 했지만 따로 집을 지어준게 아니라 옆에 동굴을 파고 살았다. csi 라스베가스에서도 일부다처제 부부사건을 다룰 때 한 집에서 지내고 그것도 한방에 침대 2개가 있는 예를 보여준다. 미국몰몬교 지도자이자 아동 성범죄자 워렌 제프스는 대저택 하나에서 50여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article|default # 맹수와 사냥꾼에서도 천막 하나안에서 부인셋을 거느리고 사는 몽골인이 등장한다. 일부다처제를 한 집안에서 시행할 때마다 Nice boat 가 일어난다면 인류는 진화도 못했을 것이다. 당장 현존하는 대부분의 유인원류부터가 일부 다처제인데? 요약하자면 일부다처제도 당연히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대체로 아내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아무리 사정이 안 좋아도 집은 무조건 따로 마련해 주는 게 보편적이다.

따라서 이런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도 아내를 여럿 맞이 한다는건 한 마디로 부의 상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꾸란에서도 '정 할거면 이런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까지 해도 되겠지만, 대신 모든 아내에게 같은 대우를 해 줘야 하고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떫으면 그냥 하지 마라. '라고 적혀 있다.[11]또한 기존 아내의 허락[12]을 받아야 하고 신 앞에서 차별 안하겠다는 확언을 해야 한다.[13]

그리고 세금도 대폭 늘어난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행전문가가 정말 힘들게 이집트[14]에서 아내가 둘인 부유한 사업가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건 좀처럼 어려운 일인데,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이슬람권 나라들에선 외국인들이 취재하는 것을 이슬람 모독으로 연결한다고 기분 나빠하기에 외국 언론이나 여러가지 취재가 자세히 된 게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아는 이집트 인맥을 통하여 사진은 안 찍고 자세한 건 일절 밝히지 않은 조건으로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단다. 그 사업가 말에 의하면, 해외 출장을 가서라도 선물을 반드시 2개를 같은 것을 사줘야 한단다. 하나라도 다르면 서로가 상대 쪽 선물이 더 좋게 여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내를 2명 두자 세무소 직원이 와서 그만큼 수입을 인정받으시니 세금이 늘어난다고 정식 통보까지 하더란다. 뿐만 아니다. 이집트에도 여성부가 있고 여성부 직원이 와서 두 아내를 만나는 자리에서 남편이 한 아낼 차별한다면 이를 알리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이는 이혼 사유가 되기 때문. 그 사업가도 아내가 둘인 것에 환상 가지지 말라고 쓴소릴 하는데, 그게 절대로 배부른 투정이 아니라는 것을 표정만 봐도 알겠다고 썼을 정도다. 당연하지만 정상적으로 한명이랑 결혼하면 될걸 처음부터 잘 생각했어야지 멍청하게

우리나라 어느 스튜디어스가 쓴 책자에서도 아랍권 한 나라에서 아내를 둘 데리고 있던 한 현지인 남성이 면세점에서 똑같은 고급 기념품을 원했는데 하나밖에 없어 면세점에서 난감해하던 걸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다른 걸 사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그 남성은 "안돼! 두 아내에게 공평하게 대하자면 같은 것으로 사줘야 한단 말이오!"라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래도 사정을 이야기하자 마지못해 아내 둘에게 그럼 같은 값으로 둘이 원하는 걸 고르라고 하여 최대한 비슷한 값으로 두 사람이 원하던 걸 고르고나서야 비로소 그 남성도 미소를 보이며 수고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정력을 소비하는 일이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루 이틀 자주 해대면 1년도 못가서 남자는 힘이 떨어지고 몸이 늘 피로하며 생각도 하기 힘들어 지고 피로가 축적되고 몸이 불편해지니 점점 시원찮아지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한명을 상대로도 낮에 일을 하면서 생긴 피로와 휴식에 대한 조절을 잘 해주어야 즐거운 부부 생활이 간신히 성립되는데 이 정력 소비 행위가 두배만 되어도 밤에 힘을 2, 3~4배로 더 많이 써야 부부간의 즐거움이 무너지지 않는다. 즉, 어지간히 절륜한 정도로는 턱도 없다(…). 당신이 부와 정력 모두를 쥐고 있는 특출난 이가 아니라면 자매덮밥이니 하렘이니를 동경하는 것은 그냥 상상, 망상 정도로 끝 내는 것이 좋다. 아니면 성생활이 완전 배제된 현실 하렘이라던가. 그 정도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현실로 용인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이루어진다 쳐도 온갗 문제로 인해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의 경우 각 아내마다 집을 따로 사줘야 하기 때문에 부자 아니면 힘들고 또 복수의 아내와 한번에 동침을 하는 건 샤리아로 금지하기 때문에 하다가 걸리면 작살난다. 애시당초 이슬람권은 일부다처제를 권하지 않는다. 단지 막지 않을 뿐. 그래서 일부다처제가 있건 없건 대부분의 무슬림은 한 아내에게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다처제의 또다른 문제점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것은 바로 일부다처제를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시행을 할시 결혼을 못하는 남자들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

가뜩이나 남녀의 보편적인 성의 비율 같은 것은 남자 쪽이 조금 더 많이 태어나는 게 자연적인 현상인데(약 106:100 정도 된다. 물론 남자들은 많이 태어나는 만큼 또 쉽게 죽어나가는 편이지만 2007년도 경에 나온 외국의 조사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4천만명 정도 더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남자가 4명, 아니 2명의 여성과 결혼을 한다고 쳐도 어딘가의 어떤 남자 둘, 셋 이상이 결혼을 할 기회와 상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즉 이 때문에 남성들이 불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로도 바로 이집트 같은 경우가 보도되기까지 했다. 외국 기자들 카메라 앞에서 나온 이집트 남성들은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돈많은 자들은 아내를 넷이나 두는데, 우린 아내 하나 두기도 벅차다!" 그래서 외국 여성에게 치근거리면서 치한 짓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혹시 하나 걸려서 결혼하면 비 이슬람 신자인 외국 여자들은 지참금을 요구하지 않으니 이들 입장에선 땡잡은 셈이지만 사실 이건 로또와 같은 확률이고, 되려 여자관광객 자칫 잘못 건드리다가 경찰이나 사복경찰에게 걸려 작살나기 십상이다.

해외 여행자들이 이런 치근남들을 피하고자 반지를 낀다든지 유부녀로 위장하고 들어온다고 반지를 끼거나 남자들을 데리고 와 남편이라고 말해도 결혼사진 보여달라며 치근거리는 이집트 남성들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인 신혼내외가 이집트 여행가서 이런 치근거리던 호텔 종업원을 만났는데 빡돈 남편이 멱살잡고 '내가 남편인데, 어디 경찰서 가자.'라고 분노하자 종업원이 굽신거리며 빌었는데 그 호텔 사장이 와서 사정을 듣더니 죄송하다면서 그 사죄로 하루 식비를 받지않았다고 한다.[15] 그대신 그 직원은 사장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하더니만 그는 며칠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 내외가 그 호텔에서 나올 때 그 치근거리던 종업원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지나가는 걸 봤는데 다른 직원이 말하길, 사장이 뜨거운 불벼락을 내려 그 직원의 정신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고 한다. 이럴 경우엔 경찰도 사장의 손을 들어준다면서.

위에 나온 나라 가운데 여성이 엄청 불평등한 나라인 파키스탄도 부자거나 하다못해 그 지역에서 그나마 제법 힘이 있는 수준의 권력자가 아니라면 일부다처제가 극히 어렵다. 파키스탄을 여행한 한국 여행자 책을 보면 파키스탄에서 길을 잃어서 정말 외딴 마을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 외딴 마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들 투성이였고 우리네 중산층 수준의 촌장이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부자였다. 그리고 촌장은 아내가 셋이었고 마을 사람들 상당수는 노총각이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저런 걱정 절대 없는 이들이 있으나 이들은 극소수에서도 극소수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파이잘 왕이라든지 여럿 왕들이 아내를 수십여명 두었는데, 물론 공식적으로 어디까지나 4명까지만 허용하기에 많은 아내들 자료를 두둑히 주고 이혼한 다음에야 새 아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여러 모로 힘든 게 일부다처제니, 혹시 여러분의 주위 친구 중에서 일부다처제를 부러워하는 남성이 있다면,무표정하게 이 한 마디만 해 주면 된다. "너 각오는 되어 있어?" 어차피 허용해 줘도 못할 테니까. 상식적으로, 다처제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남자는 극소수의 엄청난 위너(…쯤은 되어야 가능한 것에 불과하며 재력만으로도 이미 힘이 겨운 경우가 더 많고 선택받지 못하게 되는 나머지 남자들은 체감상 위기감만 높아질 것이다. 물론 여성들의 눈높이가 일부다처제가 없다고 변할 리는 없으니 실질적으로는 제도가 있으나 없으나 결혼 못하는 남성이 다수겠지만 일부다처제가 있다는 것 자체로 불만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성들이라고 해서 좋아할 수 있을까? 물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시 반대 입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당장 여초 현상이 극심하다는 체첸에서조차 일부다처제 도입은 결국 여성들의 극렬한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정도.

한국인 대학생들이 전세계 대학을 찾아가서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현지 대학생과 여러 이야기를 나눈 걸 쓴 <캠퍼스 로드>라는 책에 나온 일화에 따르면, 이란 테헤란 대학교에서 남여학생들과 대화하다가 일부다처제 이야기가 나오자 남학생들은 돈만 있다면 꿈꿀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 여학생들(참고로 테헤란 대학교는 여성의 입학 비율이 더 높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어떤 여학생은 이런 말을 한 남학생에게 화를 내면서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16]

굳이 극단적인 것만을 예로 들지 않아도 여성에게 결혼의 기회가 주어져도 경쟁자가 없는 것과 달리 집안에서도 신경을 써야만 하며 남편의 애정을 받기 위해 써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지기 쉽다. 즉 부자의 세번째, 네번째 아내라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닌 셈. 물론 그만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만큼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하겠다. 선택은 여성들의 몫이다.

뭐 가끔은 여성이 이해해주기도 하고 되려 남편에게 아내를 또 맞이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환경이라든지 여러 모로 특별한 경우가 있기 때문.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항목에서도 나온 프랑스 만화 겸 사진집 모음인 평화의 사진가(국내에서도 정발되었다)에서도 이런 게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에 간 프랑스 여성이 험한 산가에 사는 어느 여인을 만나 친하게 지냈는데 3년 뒤에 다시 가보니 그녀에게 낯선 젊은 여자가 곁에 있기에 친척인가요?라고 물어보니 "내 남편의 2째 아내에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거 아닌가?

프랑스 여성은 그리도 사이좋던 내외에서 왜 둘째아내를 맞이했나 했는데 그 첫째 아내가 말하길, "내가 2째 아내를 빨리 맞이하라고 남편에게 말했죠. 그러자 남편은 뭔 헛소리야? 라며 거부했고 그래도 내가 1년넘게 끈질기게 설득하여 남편이 백기들고 2번째 아내를 맞이했어요." 라며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다만 이같은 경우에는 산가 마을이라 여성이 좀처럼 없고 다른 여성이 나이가 훨씬 많아서 이 첫째 아내가 와로워서 못 견뎌서 친구 겸 한 식구로 받아들이고자 남편에게 1년이나 설득했던 거였다. 물론 이 남편은 그 지역에서 제법 부자였기에 아내가(양과 말이 100 마리가 넘는터라 큰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저렇게 새 아내를 맞이하라고 할 여유가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드물다.

2012년 8월 나이지리아에선 아내가 5명인 어느 사내가 6번째 아내를 들이자(무슬림인지 기독교도인지는 불명이지만 아내 수를 보면 둘 다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내 모두가 분노하여 다같이 칼을 들고 남편을 위협해서 묶어두고 한 명씩 성관계를 가진 다음에 찔러 죽이고 달아난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국내에서도 보도되었으나 이는 틀린 정보로 보인다. 위에 5명의 부인에게 강간당하고 복상사한 기사가 와전된 듯 하다.

모로코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까다롭게 허용했다. 국왕인 무함마드 6세부터 귀족이나 명문집안 딸이 아닌 여성과 결혼하면서 공식적으로 "알라 앞에서 맹세하거늘 짐은 오로지 그녀만을 아내로 받아들일뿐이다." 라고 선언하면서 2018-10-16 현재까지도 아내를 한 사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법하다. 게다가 왕이 대놓고 알라 앞에서 맹세했다고 하니 그녀가 죽지 않는한 그녀만을 아내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니. 여하튼 모로코에서 법적으로 2번째 아내를 들이자면 첫번째 아내에게 허락을 맡은 다음에 법정에서 최종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남편의 수입 여부, 첫번째 아내를 협박했는지 여부 같은 걸 법정에서 자세하게 조사한 다음에서야 허락하는데 이게 1년 이상이 걸리고 당연히 돈이나 여러 모로 깨지니 웬만한 부자 아니라면 어림도 없다. 당연히 아내가 3번째 아내를 받아들일때도 똑같이 이 모든 과정을 두 아내를 상대로 되풀이한 다음 역시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모로코에선 일부다처제는 정말 부자거나 권력이 빵빵한 사람이 아니라면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덤으로 왕실 눈치를 봐서 그냥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인데 한 왕족은 폐하가 알라의 이름을 들고 맹세하는데 다른 왕족이 눈치없이 아내를 여럿 두면 아무래도 그렇지 않느냐며 자신도 아내를 하나만 두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던 적도 있다.

아랍 에미리트에선 현지인 남성과 결혼한 미국인 여성이 남편이 세월이 지나자 동의도 없이 2번째 아내를 맞으려 했다가 친형들에게 두들겨 맞고 친가에서 2번째 결혼은 없었던 일로 만든 바 있다고 한다. 첫번째 아내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둘째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무효라고 한다. 이 경우 남자가 결혼할 때 쿠란을 대고 알라에게 가문의 명예를 걸고 일부일처를 약속하면서 비디오로 증거를 남겼는데, 큰형이 신에 대고 가문의 이름을 건 약속을 어긴 것에 대노한 것. 이 여성을 아랍에미리트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에게 그 미국인 아내는 그게 20년도 넘었지만 그걸 이야기하면서 지금도 남편을 놀린다. 즉 아무나 무턱대고 무슬림이라고 일부다처를 할 수 있다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무슬림은 한 아내와만 평생, 조용히 살아간다.

이런 반면에 한국에서 외노자로 일하다가 다친 방글라데시 남성에게 한 교회에서 성금을 모아 천만원이 넘는 그들에겐 엄청난 큰 돈을 마련해주었는데 그 돈 가지고 고향에서 둘째 아내를 맞이했다는 걸 자랑해서 돈 마련해준 목사를 데꿀멍시킨 일화도 있다.

일부다처제의 문제점은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일부다처제의 최대 수혜집단은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기득권층일 텐데, 그런 기득권층이 오히려 자발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선택하게 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온 것. 이렇게 본다면 일부다처제가 일부일처제보다 집단과 사회의 생존 및 전반적인 삶의 질에 대한 기여도가 확실히 열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4. 동물들의 경우

사자물개 등이 일부다처제를 한다. 사자는 한 마리의 숫사자가 대략 10여 마리의 암사자를 거느리는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는 집단생활을 하고 있으며 숫사자가 죽게 되면 다른 숫사자가 들어와서 집단이 유지된다. 애초에 숫사자들끼리 싸워서 혼자 독식하는 시스템이며 암사자들을 거느리지 못하는 숫사자는 혼자 산다. 물개의 경우는 사자보다는 심각한데 한 마리의 수컷이 거진 100마리 다 되는 암컷들을 거느리고 살기 때문에 그 무리에서 수컷이 죽으면 그 종족은 망하고 만다. 예전에 해구신을 얻기 위해 수컷 물개를 사냥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물개 부족(?)들이 멸족하기도 했다. 다른 동물들의 일부다처제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추가바람.

5. 그 외

90년대 후반 국내 모 심령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6.25 전쟁 때 피난을 오던 실향민 남자가 도중에 부인과 아이를 잃고 몇년 후에 재혼을 했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부인과 아이를 다시 만났다. 처음엔 기뻐하다가 이내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두 집 살림을 하다가 결국에 들통났다. 어찌어찌 해서 두 부인을 끼고 살게 되지만, 틈만 나면 마누라들이 머리 끄댕이 잡고 싸워서 대폿집 마담과 바람이 났는데(...)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부인들이 남편과 마담 둘 다 쥐어 팼다.
남들의 부럼을 받았지만, 본인은 죽을 때까지 하나도 안 좋아...라고 했다고. 얼마나 시달렸는지, 죽은 뒤에는 자식들 꿈에 유령으로 나타나서는 마누라들 무덤과 좀 떨어진 위치에 무덤을 이장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참 적절하게도 "아버지는 DMZ"였다(...).

티베트와 같은 지방, 특히 유명한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도 나온 라다크에선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를 모두 허용하기도 한다.

공산주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은 다부다처제라고 할 수 있는, 난혼이라는 단계가 원시시대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20세기 이후 인류학에서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말 이후로 애정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허용하자는 말이 있다. 간혹 지나치게 개방적이다 싶은 사람들은 다처다부제를 허용하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두 여자가 한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거나 반대로 두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지만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 유교 문화나 이슬람과 다른 부분은 다수의 쪽이 원한다는 점.

근데 남녀 평등 이론에 의하면 당연히 둘 다 허용해야 할 터이고.... 그러면 한 남자의 아내의 남편의 아내의 남편의 아내가 그 남자의 아내와 같은 상황이 등장할지도....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개인주의가 강화되는 선진국에서는, 혼외자의 권리가 혼내자와 거의 같이 취급되게 되고 사실혼 관계의 권리도 강화되는 흐름을 거치면서 점차 결혼 자체가 '단순한 등록'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혼을 했을 경우 어떤 배타적인 이득이 있어야 제도로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비혼이나 혼외 관계에 대한 인권적 배려를 강화하면서 결혼 제도의 의의가 희박해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다처제를 행하는 남자들의 수명이 12% 더 길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가설은 일부다처제에선 남자가 젊은 아내와도 관계를 맺어야 하기에 건강관리를 더 신경쓰게 되기에 그렇거나, 아내가 많은 만큼 아내가 남편 뒷바라지 하기가 편하거나 하는 두가지가 있다. 보면 알겠지만 일부일처제라도 남자가 자기 관리 잘하면 되는거다(…). 또는 걍 능력되는 남자만 일부다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이 늘어나거나, 혹은 그만큼 건강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개인주치의를 둘 수 있을 정도의 재력가라면 어지간해서는 90살 넘긴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경우는 남녀 평균수명 상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부다처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남자의 평균수명이 여자의 절반밖에 안되기 때문에 오래도록(?) 살아남는 여자들이 많으며, 이 여자들이 과부 신세를 모면하게 하기 위해 일부다처제를 한다. 그런데 이 부족의 경우 현실은 시궁창인 것이 남자의 평균수명이 26세, 여자의 평균수명이 40세라 한다.

일종의 환상이라 그런지 미디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카니발 판타즘의 경우 주인공이 히로인들과 그야말로 문어발 데이트 약속을 잡았는데 이것도 일부다처제라 하면 일부다처제.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꼼수를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이후 발각되면서 말 그대로 작살이 났다.

2010년대 일본 서브컬쳐계에서는 2010년대부터 일본의 초저출산률 및 인구 감소를 핑계로 근미래에 정부에서 일부다처제를 도입한다는 설정을 꽤 자주 차용하고 있다. 물론 일처다부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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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이 때문에 한 아내에게만 충실하고 검소하기까지 한 왕들조차 일부러 후궁을 한두명씩 두기도 했다.
  • [2] 그리고 그 아들인 프리드리히 2세는 한 술 더 나가서 간통죄성범죄를 범죄 항목에서 제외시키고 애초에 사전에서도 지워버렸다. 심지어 근친상간까지 허용했다는 말이 있으니 그야말로 흠좀무.
  • [3] 예를 들자면, 남편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의무적으로 최고령 아내의 방에서 묵게 하는 관습 등이 있다. 남편 입장에선 좀 아쉬울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아내들 간의 분쟁과 알력을 방지하려는 것.
  • [4] 물론 일부다처제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 만든 계율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거의 사람들조차도 일부다처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 [5] 물론 대부분의 법들이 그렇지만, 그 법을 해석하는 인간들의 정신상태에 따라 법의 본래 취지는 훼손되는것이 대부분이다. 지참금을 받은 신부가 친정에 그 돈을 증여하는 형식으로 빼앗기도 한다. 어린 딸을 '팔아'서 지참금으로 가계빚을 해결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를 보자! 그 밖에도 친정이 지참금으로 살아가는 건 뭐 이슬람이 아닌 인도 힌두교 및 동남아 불교 지역(기독교로 개종해도 이 인식은 여전하다고 한다)에서도 엄청 자주 있는 일이다.
  • [6] 참고로 그에겐 사별한 부인과 예전에 이혼한 전(前) 부인이 있다. 그래서 현재의 아내의 숫자보다 결혼 횟수가 더 많다.
  • [7] 군대로 밀어붙여서 협박하듯이 없애려다가 부족이 저항하면 양 측 피해가 클테니 아내들에게 자발적으로 뜻을 밝히자고 합의를 봤다. 르켕 왕은 400명으로 줄이겠다고 한발 물러났으나 결국 700명이 넘은 아내들이 이혼하고 싶다고 뜻을 밝혔고 결국 자이르군이 나서서 억지로 그녀들을 이혼시켰다. 르켕 왕은 분개했으나 그래도 10%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엄청나다. 참고로 60년대 당시 그의 나이는 70대였으며 이 쿠바 왕조라고 불리던 바쿠바족 지역 인구가 5만명이었는데 여기서 2천여명이 아들딸이었으니...
  • [8] 예외는 이스라엘 혹은 친이스라엘 매국노가 간통 상대였을 경우. 그런데 이건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에서 매국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명예살인으로 보기는 좀 어렵다.
  • [9] 대표적인 경우가 조선 태조 이성계로 고려 말 그는 중앙정계에 진출한 후 지방의 본가에는 신의왕후 한씨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개성 유력자의 딸인 신덕왕후 강씨와 결혼해서 살았다.
  • [10] 온라인 게임에 매달 한 몇만원 쓰는 정도만 허용된다.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이 경우 몇년씩 잡고 플레이해도 기껏해야 그 엄청난 직종 중에 한둘만 귀족으로 올려서 제대로 써먹는 정도고, 정말 다양하게 즐기기는 어렵다.
  • [11] 정확하게 말하면 "너희들은 결코 많은 아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다. 이므란(가족)장을 읽어보자. 한마디로 일부다처제 하지 말라는 소리다.
  • [12] 아내의 집안이 권력자거나 부유층이라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참고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두 아내를 둔 어느 부자가 세번째 아내를 두 아내 몰래 맞이하려다가 두 아내가 이걸 알고 유리컵과 병으로 남편 얼굴을 까서 병원으로 보내 수십바늘을 꿰매게 한 실화까지 있다. 이 두 아내의 친정집도 꽤 부자였으며 사우디 법원은 남편의 잘못을 탓하며 두 아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있는 동넨데! 그 밖에 파키스탄에서도 아내가 거부하는데도 새로운 아내를 계속 맞이하려고 강요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어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고 역시 무죄로 판결난 실화도 있다. 웃긴 건 이런 동네는 오히려 이슬람 율법을 칼 같이 준수할수록 여성 인권이 잘 지켜진다는 것이다. 명예살인만 해도 파키스탄 현지 관습으로는 당연한 거지만 샤리아를 FM대로 적용하면 당장 사형이다.
  • [13] 물론 근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국가일 경우에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형해화된 계율로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여성의 인권은 시궁창에 처박힌다.
  • [14] 그나마 이슬람권 내에서는 그럭저럭 여권이 존중되는 나라다. 사실 세속의 전통이 오래 된 상황에서 가난한 이슬람 국가일 경우 여성들의 인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애시당초 열악한 여성 인권 자체가 남편이 갑인 동네여야 가능한 거니까.
  • [15] 경찰에게 가는 것보단 이게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 자칫하여 경찰오고 수사받다가 자칫하면 이런 숙박시설이 영업금지를 한동안 당할 수도 있다.당연히 피해가 훨씬 크니까 하루 식비 안 받는 게 싸게 먹히는 셈.종종 해외여행 블로그나 책자에서도 이런 숙박시설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로 경찰에게 신고하면 며칠에서 길면 한달까지 영업정지당한 경우가 간혹 나오는데 사장에게는 엄청난 피해가 되는 셈이다.
  • [16] 다만 테헤란 대학교에 갈 정도면 여성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이슬람권이라지만 낮은 지위의 남성이 높은 지위의 여성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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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3 18: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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