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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사격

last modified: 2015-10-28 17:17:57 by Contributors

Contents

1. 一齊射擊
2. 군함의 함포를 전부 발사하는 것
2.1. 범선 시대
2.2. 근대의 철갑선 등장 ~ 2차대전
2.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 一齊射擊

상부의 지시에 따라 지정된 다량의 화기를 정해진 목표에 동시에 사격하는 것. 일제사격 자체는 화기가 등장하기 전 인간이 장거리 사격 무기인 쇠뇌를 쓰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이미 등장한 개념이지만 일반적으로 일제사격은 전열보병이 활약하던 시기부터 소총 등 보병의 개인화기가 연사력을 갖추지 못했던 시기 내내 보병대의 주요 화력투사 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후에 보병의 화기가 연사력을 갖추고 정확하며 빠른 사격이 가능해지면서 보병의 화력투사 수단으로서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사실상 사라졌다.

보병을 제외하면 포병 등 포를 다루는 병과에서 주로 쓰였다. 아래에서도 등장하는 해군에서도 함포를 일제사격하곤 했으나 최근에는 함포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일제사격도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2. 군함의 함포를 전부 발사하는 것

2.1. 범선 시대

broadside

나폴레옹 시대의 대포는 제조기술이 후달려서 같은 9인치 대포라도 크기가 약간씩 달랐고, 포탄 또한 그러했기 때문에 포강과 포탄 사이의 틈, 유극이 너무 커서 화약의 밀어내는 힘이 탄에 전부 전달되지 않아 탄의 위력이 많이 낮았다. 물론 이거 맞으면 사람이고 이고 그냥 날아가지만 구조물 타격에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이 시기 군함들은 모두 나무를 주재료로 썼기 때문에 해전이 벌어지면 포를 쏘면 적함에 구멍만 뻥 뚫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나폴레옹 전쟁때 숙련된 사수들이 대포를 장전하는데는 약 2분이 걸릴 정도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포격이 그치고 나면 숙련된 병사의 경우 외벽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데도 그렇게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돛대가 부러질 수준으로 엄청난 포탄을 단시간내에 맞지 않는다면 포격전에서 빠져나간 다음에 얼마 있지 않아서 현지에서 응급수리를 한 다음에 다시 전열에 복귀해줄 수 있었다.

당시의 대포는 적함에 충격을 줘서 적 승무원이나 교전능력을 상실하게 하는게 목적이었는데도 실제로는 그냥 구멍만 뚫리고 끝인 경우가 많았다. 일단 포탄이 나무로 만들어진 벽을 뚫으면서 많은 파편을 발생시키긴 했지만 나무 조각은 밀도가 너무 낮았기에 치명상을 입히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시 대포의 기술수준으로는 1~2차 대전 시기와 달리 수면 밑의 함체를 타격할 수 없었고 대포의 사각도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흘수선을 타격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흘수선에 대포를 설치한다면 포구로 물이 들어온다. 실제로 3단포갑판을 갖춘 대형 전열함의 경우 파도가 심하거나 하면 맨 밑의 포문들을 열수가 없어 전투력이 제한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전열함이라도 대포를 다량 탑재하는 데는 비용과 자재 및 기술상의 문제가 많았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명한 빅토리호(트라팔가 해전당시 넬슨 제독의 기함)도 3단포갑판을 가지고 있지만 범선시대 최강의 해군국이던 영국 해군에서도 3단전열함은 얼마 없었고 대부분의 전열함은 프랑스의 테메레르급 74문형 전열함같이 2단포갑판을 가진 74문함들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4단전열함도 있었는데 이 사상최대의 전열함은 스페인의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함으로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해군에게 나포되었다가 예인도중 폭풍우로 인해 침몰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쏠 수 있는 대포의 숫자도 크게 제한되는 상황에서 이걸 드문드문 발사하면 적함에는 거의 타격을 못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측면에 설치된 수많은 대포를 순차적으로 또는 한번에 발사함으로써 적함 측면에 설치된 포를 날려버리거나 적함 자체를 걸레짝으로 만드는 전술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야전에서는 수리할 수가 없을만큼 커다란 손실을 일으키려는 게 일제사격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의 포격으로 침몰하는 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따금 후끈하게 달궈진 포탄이 화약고에 직격하거나 근처에 불을 붙이면 시밤쾅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격침시킨 쪽에서도 '불행한 사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포해야 더 돈이 되거든[1]

2.2. 근대의 철갑선 등장 ~ 2차대전

salvo

전탄발사와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 다르다.

해상의 포격전은 대략 러일전쟁 직전 무렵까지도 범선 시대부터 흔히 사용된 독립 사격(independent firing)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각 포탑의 포술사관이 발사한 포탄의 탄착을 관측하고 차탄의 조준을 수정하는 방식인데, 함포의 사정거리가 짧아 탄환의 명중지점을 목측할 수 있던 시절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기술의 발달로 함선의 속도가 빨라지고 함포의 사정거리가 길어지면서 원거리에 있는 적함을 발견하고 사격 후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오차를 수정할 동안에 적함이 한참 이동해있는 경우가 빈번해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드레드노트급 전함 이전의 구식전함들은 주포를 근거리에서 치명타를 먹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대신 등장한 것이 일제사격으로, 4문 이상의 함포를 동시에 발사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는 각 포탑 선이 아닌 함교에서 발사를 통제하게 되며 조준 수정 또한 각 포탑이 아니라 기함의 포술장이 맡게 된다.

여기에 협차(straddle)사격이라는 방식을 동원해 명중율을 올리는데, 이것을 일제사격과 조합하면 전함등의 대형선박이 3-4척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역에 주포탄이 밀집해서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해당 구역내에 적 함선이 들어가거나, 적 함선이 해당 구역내에 들어가도록 편차를 조정하면 확률적으로 최소한 1-2발 이상의 주포탄이 적 함선에 명중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4-5발 이상의 주포탄이 동시에 명중돼서 적 함선이 전투력을 일시에 상실하고 불타면서 떠돌아다니는 표적으로 전락하게 된다. 즉 일종의 맵병기가 되므로 함포의 명중율을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일본군은 이 전술로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을 격파하고 해전에서 승리하여 전쟁 전체를 간신히 승리로 이끌었지만 정작 일제사격과 협차를 제대로 고안한 것은 해당 해전을 지원하고 참관한 영국이었다. 오히려 일본은 일제사격방식이 실전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교호(交互)사격이라는 방식을 개발한다.[2] 해당 방식은 한번의 사격에 발사가능한 함포중 절반만을 발사하고, 이 사격의 결과를 관측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나머지 절반의 함포를 발사하는 방식으로 협차에서의 맵병기적인 범위 공격보다는 명중률을 끌어올려서 직격탄을 맞추기 위한 사격 방식이었으며 적어도 연습전에서는 명중률이 좋게 나왔다. 그리고 헛갈리게도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군의 '일제사격(斉射)'은 기본적으로 이 교호사격을 의미한다.

하지만 교호사격은 빠른 속사가 가능한 보조함의 소구경 주포같은 경우에는 유용한 사격방식이었으나, 주력함이 담당하는 장거리 포격전의 경우에는 실전에서는 수상기나 광학장치를 쓴 사격관측이 어려워서 목표에 대한 정확한 탄착수정이 힘들고, 한 번에 발사하는 포탄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협차가 발생하더라도 명중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실제로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열강들이 감안한 주력함의 주포 문수는 8문에서 12문 사이였는데, 이는 연구결과 협차가 발생하면 명중탄이 제대로 발생할 확률이 8발부터 시작하며 12발까지 확률이 상승하다가 12문을 넘으면 확률이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호사격을 하면 주포 12문을 탑재한 함선은 6발, 8문을 탑재한 함선은 4발만을 발사하게 되므로 명중탄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6발 정도라면 영국의 순양전함도 6문의 주포를 탑재한 경우가 있으므로 전혀 명중탄이 안나올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으나,[3] 4발이라면 사실상 전(前)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일제사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들 구식함선들은 사격통제장치를 최신형으로 바꾸어도 일제사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답이 안나오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시대는 이미 변화해서 1차대전 때부터 등장해서 2차대전 무렵에는 실용화가 완료되었으며 기본적으로 함재기의 다수 탑재 및 이함/착함이 가능하여 전함 함포의 사정거리를 압도하는 작전반경을 지닌 항공모함이 전장을 배회하게 되었다. 게다가 정작 일본군은 진주만 공습으로 스스로 항공모함의 가치를 입증했으면서도 거함거포주의와 교호사격, 함대결전같은 사상에 목을 매다가 깔끔히 망했다.

2.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는 함선의 주포 자체의 구경이 소형화되고 자동장전장치를 채용해서 분당 발사율이 높아졌으며, 함포 자체가 상륙작전 지원용이나 근거리나 중거리에서 고속정 같은 작은 적의 기습을 방어하는 역할을 더 많이 수행하게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조준 및 착탄수정을 레이더와 각종 전자장치가 수행하기 때문에 일제사격방식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또한 현대 군함들의 함포는 소구경인 57~130mm가 주류이고 이런 소구경 함포들은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가 없던 초보적인 광학기기와 계산법만을 사용하던 19세기 시절에도 명중률은 6천미터에서 40%대였다. 좀더 좋은 관측/계산 장비를 사용하면 동일 사거리에서 70% 이상의 명중률이 나오는데, 이런 소구경포들은 확률적 계산에 의지하는 일제사격법이 없어도 상당히 높은 명중률이 나온다는 이야기.

게다가 현대 군함들이 장비하는 함포는 고작 포탑 1기의 단장포가 주류이고 2연장 주포탑 1기를 사용하는 경우조차 드문 편이다. 따라서 일제사격을 하고 싶어도 못하며, 현대의 군함은 함포의 위력을 발사속도를 늘리고 유도포탄을 도입하는 방법으로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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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영국해군의 경우 적함을 나포하면 해당 함선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여 함장 및 승무원들에게 '포획상금'으로 분배해줬다고 한다. 이때 가치를 8등분하여 함장 한사람에게 1/8을 주고 수백명의 승무원들에겐 2/8가 주어졌다고 하는데 영국해군 역사상 가장 많은 포획상금이 주어진 사례때 함장은 백수십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거액을 받았고 승무원들도 1인당 약 48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는 대박을 냈다고…. 물론 로또맞은 함장과 승무원 외에도 영국해군 입장에선 새로운 군함을 얻는 것이니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었다. 이것을 "나포 포상금" (prize money)이라고 하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쪽을 참조.
  • [2] 실제로 쓰시마 해전에서는 일제사격은 거의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전투가 진행되면서 상부의 명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각 포탑별로 개별사격한 것이 오히려 명중률이 높았다.
  • [3] 영국도 이 문제 때문에 골치아팠고, 이후의 주력함은 순양전함도 최소 8문의 주포를 장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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