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巨正 혹은 林巪正
( ? ~ 1562 )
1. 개요 ¶
조선 시대에도 도적은 많았으나 임꺽정처럼 수차례 관군과 맞붙어 싸워 이겼을 뿐만 아니라 거의 한 나라를 뒤집어 엎을 정도로 활약했던 도적은 전무후무하다.
한글로는 임꺽정이라 불리지만 한자표기는 林巨正이라 표기한다. 후술하겠지만, 巨(거) 밑에 'ㄱ'을 붙여 巪(걱)이라고 쓰기도 한다.[1] 조선왕조실록에서는 '林巨叱正(임거질정)'으로 나타나는데, 叱(질)은 사이시옷을 나타내는 표기로, 이를 적용하면 '임것정' 또는 '임껏정'이 된다. 실제로 실록의 원문을 보면 '林 巨叱 正'과 같은 식으로 巨叱을 의도적으로 붙여 쓴 표기가 상당수 발견되는데, '㖚(붓[2])', '唟(것[3])' 등과 동일한 방식을 적용해서 읽으라는 의미인 듯. 실록은 세로쓰기이므로, 巨叱 역시 㖚, 唟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2. 초기 생애 ¶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 출신이었으며,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명확한 원인이나 시기는 알기 힘들지만 아마도 백정의 신분으로 겪는 차별과 혼란스러웠던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활동하던 무대가 되었던 명종 대에는 명종의 나이가 아직 어린 탓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와 그 동생인 윤원형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워지고 관리들이 부패하여 민생이 어려워졌던 시기였다.
임꺽정은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틈을 타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불평분자들을 선동하여 황해도 및 함경도를 중심으로 각지의 관아와 민가의 재물을 훔치며 종횡무진하였다. 이때 그 악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임꺽정이 한 고을에 나타났다 하면 짐을 나르던 사람들이 길을 나서기를 두려워하여 교통이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전한다. 흔히 을묘왜변 당시에 군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백정 신분 때문에 차별당한 것이 도적일을 하게 된 주원인이라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3. 전성기 ¶
이후 1559년부터는 제법 세력이 커져서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여 관리를 살해하고 그 재물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본격적인 의적 행위를 벌였다. 덕분에 백성들과 아전들이 임꺽정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임꺽정의 무리들과 내응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들은 임꺽정과 그 무리들을 숨겨주기도 하였으며, 관아에서 병력을 내보내면 도망치도록 도와주었다. 게다가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들마저도 죽임을 당하였다.
제법 큰 세력에다가 백성들의 지지까지 얻게 된 임꺽정 패거리는 점차 대담해져서 여러 지역에 신출귀몰 출몰하여 조선 전역을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이들은 곧 세력 범위를 넓혀 개성에 나타나는가 하면 1560년에 서울에까지 출몰하였다. 게다가 관가에 일당들이나 그 가족들이 잡히면 관가로 쳐들어가서 건물을 때려 부수고(...) 붙잡힌 일당들을 구출하는 일까지 있었으니 말다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임꺽정과 그 도적떼는 더이상 일개 도적떼가 아닌 반체제적 세력으로 간주되었으며, 조정에서 평산부와 봉산군의 군사 500명을 보내 평산에 집결한 임꺽정의 무리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임꺽정은 되려 관군을 무찌르고 군관을 살해하였으며 군마를 약탈해갔다.
결국은 임금인 명종이 직접 어명을 내려서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 등의 5도에 대장을 정하여 임꺽정을 잡도록 하였다. 또한 모든 관청에 명을 내려 자잘한 업무는 모두 쉬게 하고 임꺽정을 잡는데에 주력하라고 명할 정도로 임꺽정의 악명은 자자했다.
4. 최후 ¶
그러나 임꺽정은 체포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국을 헤집고 다니면서도 3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았다. 조정의 독촉을 받던 장수들과 포상을 노리던 고을 수령들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엉뚱한 사람을 잡아다 놓고 임꺽정과 한패라 하여 벌주고 고문하다가 사람 잡는 일도 여럿 있었다. 또한 이렇게 허위사실로 함부로 백성을 죽이거나 허위보고를 올리는 이들도 파직당하거나 유배당하는 등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이런 난리통 중에 1560년 12월, 임꺽정의 참모였던 도적 서림이 붙잡혔다. 임꺽정과 도적떼의 사정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었던 서림은 관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여 임꺽정을 추격하였고 차츰 도적떼들을 토벌하는데 성공한다.
1562년에 임꺽정은 군관 곽순수와 홍언성 등의 토벌군들에게 포위당한다. 탈출할 길이 없어지자 임꺽정은 토벌군 복색으로 변장한 후 꾀병을 부리면서 은근슬쩍 뒤로 빠질려고 했는데 토벌군 병졸들이 이를 수상히 여겼고 때마침 서림이 임꺽정을 알아보고 토벌군에게 알리는 바람에 들켜 급히 도주하였고 추격하는 토벌대가 화살을 난사하였다. 임꺽정은 결국 여러대의 화살에 맞은 후 "내가 이렇게 된건 모두 서림 때문이다. 서림아! 서림아! 니가 어찌 관군에 투항할 수 있느냐?" 라고 서림을 질책한 후 사망하였다. 다만 이 내용은 야사인 <기재잡기>에 실린 내용이고 실록에는 없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사로잡힌후 15일 후에 참형에 처해졌다고 하지만 정작 실록 등 당시 기록에는 임꺽정이 처형당했다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다. 다만 기재잡기에 위에 서술된 것처럼 임꺽정이 사살되었다는 내용이 존재하고 실록에는 임꺽정이 이미 생포중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임꺽정은 관군과의 대치중에 전사한것이 분명하다. 임꺽정이 처형당했다는건 그저 백과사전에 나온 대표적인 오류일 뿐이다. 그러나 기재잡기는 신빙성에 다소 문제가 있는 야사이며, 실록에는 큰 도적인 임꺽정이 잡혔다는 내용뿐 사망했다는 말은 없다. 따라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고 보는편이 합당할 수도 있다.
서림에 대해선 도적이라는 걸 용서해주고 살려주는 것이 상이라서 그 이후 행적은 전해지는 게 없다. 다만 이런 케이스는 대부분 관청에 소속시켜서 계속 감시했다. 실록에서도 서림을 방면하되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포도청에 소속시켜 대장의 명을 받들게 하라는 것으로 처우를 결론짓는 것을 볼 수 있다.
5. 평가 ¶
도적 두목 치고는 용맹함이 상당해서 추격해온 관군과 직접 맞부딪혀서 무찌른 일도 있었고, 계략을 짜내 관군을 엿먹인 일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눈덮인 산에서 관군들에게 쫓기게 되자 일부러 신발을 거꾸로 신어서 발자국을 남겨 되려 도적떼를 쫓던 관군들이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게 만들기도 하였다(...). 당시의 그저 그런 무식한 도적떼와는 달리 전투력이 상당하고 교활한 편이었다. 게다가 리더쉽과 카리스마도 상당했는지 상인이나 농민, 백정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임꺽정의 휘하로 몰려들어 도적이 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적을 고변하는 자는 배를 갈라 버리는 무시무시한 협박도 했다하니 역시 도적은 도적.
당대의 명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일단 임꺽정을 가르켜 희대의 흉악범 정도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록을 편찬한 사관은 임꺽정과 같은 도적이 나타나 날뛸 수 있었던 것도 다 나라가 혼란하기 때문이라고도 하였다. [4]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또한 흉악범이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천민치고는 나름대로 능력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오합지졸 도적 무리를 이끌면서도 관군을 발라 버렸고, 몇년동안 잡히지도 않으면서 전국을 휘저으며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만 봐도 범상치않은 도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민간 설화에서는 의적으로 많이 묘사되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비록 당대에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기도 했다지만 이는 그저 임꺽정이 평소에 꼴보기 싫던 탐관오리와 부자들을 박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랬을 뿐이다. 실제로는 도적들이 다 그렇듯이 백성들이나 행인들도 약탈 대상이었다.(...) 다만 실제로 임꺽정이 의적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며, 초창기에 자주 하던 민가 약탈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행위에 호응해주는 백성들을 인식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6. 그 외 ¶
임꺽정의 가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그의 아내가 붙잡혀 관아의 노비가 되는 일도 있었다. 임꺽정은 아내가 노비로 일하고 있는 곳을 습격하여 구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또한 임꺽정에게는 가도치라는 형이 있어 함께 도적질을 하고 다녔는데, 관리들은 임꺽정을 잡아 포상을 받고 싶었던 욕심이 컸던 나머지 가도치를 사로잡은 후에 고문을 가해서 스스로를 임꺽정이라고 자백하게 만들고는 '임꺽정을 잡았다'라며 그를 한양으로 압송하였다. 이때 가도치는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상경하자마자 죽는 바람에 정말 모두가 속아넘어갈 뻔 했지만 가도치와 대질한 서림의 증언으로 인해 속임수였음이 탄로나면서 파직당하였다.
또한 어찌 보면 조선판 갱스터물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밑바닥 인생이 세상에 울분을 토하고, 무예에 출중한 의형제들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다가 내부의 배신자로 인해 사망하는, 아주 완벽한 고전 갱스터물과 같은 삶을 살았다.러시아판 임꺽정이 출현
더불어 이름이 꺽정인데, 한자로 표기가 어려워 클 巨에 밑에 ㄱ을 붙여 巪이라는 새 문자를 만들어 표기했다고도 한다. 여튼 巪은 사람이름 걱으로 매우 잉여한 한자지만 임꺽정 덕분에 잉여한자치곤 꽤 인지도가 있는편. 매우 초급적인 한자에 조어 방식도 매우 쉬워서 외우기도 매우 쉽다.
7.1. 소설류 ¶
사실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홍명희 임꺽정 이외에도 많다. 홍명희 금서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김용제의 임꺽정(1961), 허문녕의 거도 임꺽정(1961) 같은 소설인 나왔던 것이다.
최인욱의 임꺽정은 1962년에서 1965년 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소설의 연재가 끝나자 서울신문의 판매부수가 2만부나 떨어졌을 정도로 당대의 인기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명희 임꺽정의 봉인이 해제되자 마자 이런 작품들이 모조리 쓸려나가서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보면 홍명희 임꺽정의 파괴력이 대단하다는걸 알 수 있다.
7.2. 장편소설 임꺽정 ¶
벽초 홍명희의 장편 소설. 1928년 11월 21일부터 1939년 3월 11일까지 〈조선일보〉에 발표되고, 이어 1940년 〈조광〉 10월호에도 발표되었으나 미완으로 끝났다. 봉단(鳳丹)편·피장(皮匠)편·양반편·의형제편·화적편 등 5편으로 나뉘어 있다.
저작자 자신이 영웅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는지, 작중 초반은 임꺽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연재 초기당시 독자들의 항의가 많았기도 하였다.
벽초 홍명희가 월북을 한 관계로,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복사해서 돌려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홍명희가 임꺽정을 신문에 연재할 때의 인기는 매우 대단해서, 신간회 활동을 빌미로 홍명희가 수감당해 연재를 중단하자 소설을 연재하게 해달라는 편지가 총독부에 빗발치듯 몰려왔다. 결국 홍명희는 감옥 안에서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관원들도 이 소설에 푹 빠져서 홍명희가 쓴 원고를 조선일보 측에 보내기 전에 돌려 가며 읽었다고 할 정도.
홍명희가 임꺽정을 신문에 연재할 때의 인기는 매우 대단해서, 신간회 활동을 빌미로 홍명희가 수감당해 연재를 중단하자 소설을 연재하게 해달라는 편지가 총독부에 빗발치듯 몰려왔다. 결국 홍명희는 감옥 안에서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관원들도 이 소설에 푹 빠져서 홍명희가 쓴 원고를 조선일보 측에 보내기 전에 돌려 가며 읽었다고 할 정도.
홍명희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임꺽정에 대한 전설을 채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도적이나 호걸에 대한 이야기를 얻었으며, 그 민담들의 결집체가 된 것이 바로 임꺽정이라고 한다. 사실 저자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수호지에서도 많은 걸 따왔다고 한다. 실제로 청석골두령들의 모습을 보면 양산박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적 정서를 드러내는 토속적인 구어체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기록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 문학을 연구한 어느 일본인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져가는 조선의 문화를 소설 속에 보존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비평을 하기도 했다. 역사학도이자 소설가인 초록불은 '대학생 때 <임꺽정>을 읽고 이 작품만큼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조선시대는 작품의 영역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장길산>도 좋은 작품이지만 <임꺽정>처럼 그 시대의 세세한 문화를 담아내진 못했다.'고 평한다.
소설속에서 주인공 임꺽정은 젊은 시절 스승 양주팔을 따라서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역사속 실존 인물들을 스쳐지나가는 식으로 만나는 에피소드들이 여러개 있다.
예를 들어 어린시절의 이순신을 만나 호통치는 장면, 토정 이지함을 제주도 가는 길에 만나는 장면[5], 이지함과 남명 조식이 만난 자리에서 이지함이 임꺽정을 평하던 장면, 남산 밑에서 초막을 짓고 인종을 방자하던 윤원형을 만나 죽도록 패주는 장면, 백정이던 임꺽정이 귀양가던 양반 이해(이황의 형)가 장독으로 죽자 관을 구해 시신을 안치하고 이를 고맙게 여긴 이황이 직접 임꺽정을 찾아오는 장면 등등
화적편에서 미완으로 끝났다. 왜 미완으로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설이 분분하다. 일제가 전시체제로 접어들면서 조선 문화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절필했다는 견해가 유력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한동안 북한에서 홍명희가 그 후의 내용을 써서 완결지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최근 남북교류의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손자 홍석중 씨의 말에 따르면, 광복 후 주위에서 소설을 완결 짓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홍명희가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의 상상에 남겨두고자 한다'고 말하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비평론적으로 볼 때 이미 임꺽정 무리의 몰락이 확실시 된 상황까지 써진 이상, 특별히 그 뒤의 내용이 필요없다는 견해도 있다. 관군을 피해서 대부분의 두령과 그 수하가 구월산으로 이동하고, 혼자 남은 오가가 청석골에 남아 있다 뿔뿔히 흩어지는 졸개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연재가 끝났다.
손자인 소설가 홍석중이 임꺽정의 최후를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쓴 것도 있는데 이후에 홍명희의 임꺽정을 원작으로 작품들은 홍석중이 쓴 결말 부분을 따른다.
2004년에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출판사 측에서 북한에 있는 작가 홍명희의 유족들에게 저작권료로 1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원래 공산주의에서는 저작권법을 인정하지 않으나, 2001년에 북한에서 저작권법이 제정된 후, 2004년 이후로 북한 출판사와의 저작권 협상을 해서 나온 책이 더러 있다.
임꺽정이 스승으로부터 받는 검은 일본도로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유명한 도공인 비젠 오사후네 나가미츠 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사사키 코지로의 애검인 모노호시자오를 만든 걸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만든 칼로 임꺽정은 이 칼로 삼포왜란에서 왜구를 수없이 썰어낸다.
7.2.1. 이두호 임꺽정 ¶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파생된 이두호 화백의 작품. 내용은 홍명희의 원작과 비슷하지만, 검열[6]을 피하기 위해 임꺽정과 서림을 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전부 고치고, 임꺽정의 적수이자 친구인 김달평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작가의 창작이 있다. 결말은 관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에서 임꺽정은 화적이 되기 전 젊은 시절에 어린 이순신을 만나기도 하고, 토정 이지함과 함께 제주도에 가기도 하고, 윤원형을 혼쭐내주기도 하고, 남명 조식[7]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당대의 유명인사들을 두루두루 만나본다. 당대의 유명인사를 만나는 에피소드는 홍명희의 임꺽정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김달평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순수 창작인물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소설가 김성한의 "이마"라는 소설에 박치기를 잘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윤난정의 첫사랑이었고 임꺽정 패거리에 잠깐 몸담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박치기를 잘하고, 윤난정의 첫사랑이면서 그녀를 찾아 헤멘다든지 하는 내용이 이두호의 "마빡 김달평"과 상당부분 겹친다.
참고로 파행에선 차손이가 서림의 목을 베어버려 아버지 원수를 갚는 가상 상황이 추가되었다. 더불어 1570년에 병으로 죽어가는 남치근에게 양반차림으로 가서 내가 임꺽정 아들이라고 말하는 게 추가되었다. 병자리에 누워있던 남치근은 눈이 커지며 놀라지만 병때문에 말도 못하고 컥컥거리다가 그대로 죽는다.
본래 임차손이 이순신과 더불어 임진왜란에 참전하는 부분까지 그려내려고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임차손이 사촌동생의 묘[8] 앞에서 자신의 아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연재가 종료된다.
일단 홍명희 임꺽정을 원작으로 각색한 것이지만 상당 부분 다른 점이 보인다. 우선 등장인물의 성격을 들 수 있는데 소설 원작보다 전반적으로 인물의 성격이 순화되었다. 가령 소설판에서건 만화판에서건 서림이 곽오주를 군율로 엮어 기를 꺾는 부분은 같다. 대략의 테크는
곽오주를 열받게 한다.->곽오주가 서림에게 해코지한다->그걸 지나가던 임꺽정이 본다->곽오주를 벌준다. |
패턴인데 만화판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단순히 기를 꺾기 위함이었다면 소설 원작에서는 진짜로 서림이 곽오주를 죽일 생각이었다. 박유복 등 의형제들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했기 때문에 곽오주가 살 수 있었던 것. 곽오주 역시 원작에서는 어린애를 때려죽이고 정신도 이상한 미친 놈이었다면 만화판의 박돌깨는 어린애를 죽이는 특징이 사라졌고 서림과 반목하기도 하지만 인정할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기도 하는 등 쿨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무자비한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개그 캐릭터로서의 면모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이 다르다.
임꺽정의 아내와 처남 역시 상당 부분 다르다. 원작에서는 끝까지 사회화가 안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만화에서는 백두산에서 내려온 후 인간 사회에 나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인 임꺽정 역시 성격이 다르다. 상술하였듯 원작에서 임꺽정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다. 이두호 임꺽정에서도 이러한 점은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외강내유적인 모습을 더 많이 부각시킨다. 특히 반편인 형과 여동생을 극진히 생각하고 지켜주지 못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모습을 더욱 부각시킨다. 참고로 소설판에서는 형과 누나였던 사람인데 형제 관계를 뒤집어 놓은 것은 아마도 임꺽정의 소년가장적인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누나인 섭섭이가 꺽정의 실질적인 보호자였지만 만화판에서는 임꺽정이 보호해주어야 했지만 결국 지켜주지 못한 것으로 묘사된다.
전반적으로 등장 인물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당대 야사에도 나오는 단천령 이억순과의 에피소드도 삭제되었는데 원작에서 몇 안되는 임꺽정의 인간미를 볼 수 있는 이벤트인데 왜 삭제되었는지는 불명이다. 돌팔매를 잘 하는 배돌석이 삭제되고 그 대신 박유복에 대응하는 조금맹이 팔매와 표창을 같이 쓴다.
대신 추가된 캐릭터도 있는데 원작에서 임꺽정의 스승은 갖바치 한 명이었지만 만화에서는 구공스님이 새로이 추가되면서 원작에서 갖바치가 했던 역할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게 되었다. 다만 몰락 양반 출신이라는 점, 정희량의 제자라는 점, 기인이라는 점 등은 원작의 심의(沈義,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상술하였지만 임꺽정의 맞수로 김마빡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정난정의 애인이라는 점, 박치기의 달인이라는 점, 등은 김성한의 소설에서 차용하지 않았나 싶다.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김해출신의 도망노비라는 점, 행실이 양아치급이라는 점, 날렵한 싸움꾼의 이미지 등은 원작의 배돌석과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이런 저런 점이 있지만 오늘날의 임꺽정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털보 수염에 큰 덩치, 부리부리한 눈 등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임꺽정 하면 가지는 이미지가 이 만화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물론 홍명희 소설에서도 이러한 점은 묘사되지만 만화와 소설의 차이를 생각하면 파급력은 다를 것이다.
신문 연재가 끝난 후 1995년에 대본소판이 출판되었고 2004년 경 무삭제판이 발매되었다. 대본소 판은 헌책방이나 중고장터 등에 가끔 올라오지만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무삭제판은 거의 찾기가 힘들다.
7.2.2. SBS의 전 드라마 ¶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 ||||
코리아게이트 | → | 임꺽정 | → | 아름다운 그녀 |
위의 두 작품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로 제작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들인 작품이다. 1996년 11월 10일 ~ 1997년 4월 6일까지 방송됐다. 제작 법칙을 따르지 않고 충격적인 연출과 철저한 시대고증을 표방하며 제작되었다. 특히 작품 특성상 90년대 기준으로 과격한 격투 장면이나 출혈등이 묘사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묘사하며 리얼리티를 살린 면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명 배우에 의존하기보다는 신인을 적절히 캐스팅하고 홍명희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져서 내용에 많이 신경을 썼으나 원작이 반쯤 미완이었기에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은 또한 설원에서 임꺽정이 화살을 맞고 죽게되는 이두호 임꺽정과 같은 결말. 드라마처럼 최후까지 무공을 펼치는 극적인 장면은 아니어도 실제로도 임꺽정은 관군에 의해 사살당하니 어느정도 실제모습과 유사하다. 결말 외에도 진상봉물 사건이나 여러 에피소드의 구성과 연출 면에서 이두호 임꺽정을 참고한 장면들이 많다.
시청률도 좋았고 현재의 SBS 사극보다는 꽤 잘 만든 사극이라서 현재도 평가가 좋다. 임꺽정과 장희빈, 여인천하가 SBS 사극들 중에서는 그나마 좋은 평가들을 받는데 야인시대 이후의 SBS 사극들은 하나같이 거의 평가들이 나쁘다. 그나마 수작에 시청률도 매우 좋았었던 뿌리깊은 나무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KBS의 전 레전드 사극 용의 눈물과 같은 시기, 같은 시간대에 방영했었다. 때문에 용의 눈물은 초반에 시청률 면에서 꽤나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임꺽정이 끝난 후 사극팬들이 용의 눈물로 몰리면서 용의 눈물의 시청률이 매우 높아졌다.
당시 출연한 신인들이 지금도 꽤 잘나간다. 원래 연극배우 출신으로 TV 데뷔 처음이었던 임꺽정 역의 정흥채는 2013년인 지금도 임꺽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후 거의 매년 TV드라마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 최고의 수혜자로 손꼽히는 배우는 다름 아닌 김원희. 독특한 4차원 캐릭터와 묘하게 개성있는 표정연기 덕택에 단숨에 관객들의 머리속을 지배했다
조연 캐스팅이 대체로 화려한 편인데 카메오로 나온 폭군 연산군을 유인촌이 맡았다. 명종은 이기영의 형 이효정이며 문정왕후는 미스코리아 출신 김청, 보우는 김학철, 임꺽정의 부친 임돌은 박인환, 누이 섭섭이는 윤유선, 정난정은 박선영,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와 잔나비는 각각 이정길과 정진이 맡았다. 그밖에도 능통의 정승호나 점쟁이 김륜에 김주영, 노밤의 윤문식 등 쟁쟁한 편이다.
7.2.2.1. 등장인물 ¶
- 이교리 (김병세)
- 양주팔 (이정길)
- 임꺽정 (정흥채)
- 이봉학 (차광수)
- 박유복 (정규수)
- 곽오주 (문용민)
소설과 드라마에선 흉악한 인물로 나오는 반면 문용민이란 연기자는 영구, 맹구, 칠득이와 맞먹는 바보캐릭터 호섭이를 연기한 적 있는 사람이다. 바가지 머리를 호섭이 머리라고 부르게 만든 그 호섭이다.
- 황천왕동이 (김홍표)
- 배돌석 (이기영)
- 길막봉 (손호균)
- 오가 아저씨 (임현식)
- 서림 (전무송)
- 임백손 (정준)
- 황운총 (김원희)
- 한온 (최주봉)
- 윤원형 (박근형)
- 이억순(신귀식)
역사적으로는 임꺽정이 만난 단천령이란 인물은 기록마다 엇갈린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왕실의 종실 단산수 이수라는 인물이고,후대의 인물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는 1560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함께 종실 출신의 주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금연주자로 기록했다. 단천령 이억순은 박동량의 기재잡기에 등장한다. 아무튼 셋다 종실 출신의 피리를 잘 부는 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억순은 사족으로 오리 이원익의 숙부였다.
- 남치근 (故 김흥기)
7.3. 고우영 임꺽정 ¶
고우영 화백의 작품 중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 작품에선 임꺽정의 숙적으로 양반 출신 검의 고수 윤원빈(윤원형의 조카라는 설정)이 등장하여 춘심이란 여성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의 임꺽정은 선이 굵은 호걸이며, 아무리 사랑하는 여성이라도, 설령 그녀가 숙적의 여자라고 해도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양심적인 사람. 다만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끝내 파국을 맞이한다. 사실 고우영 판 임꺽정의 진정한 주인공은 임꺽정도, 윤원빈도 아니라, 이 둘을 모두 농락하는 사기적인 능력자 서림이다. 남치근이 마지막에 서림을 풀어주지만, 그 꼴을 보고 열받은 병사 1이 서림을 향해 활을 쏘고 그 화살이 서림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과 함께 만화가 끝이 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고.
7.4. 애니메이션 ¶
1997년, 난데없이 김청기 감독이 감독하여 개봉한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그야말로 80년대풍 김청기 애니 그림체와 효과음, 성우연기를 보여주면서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끝나면 안녕~~이라는 자막7~80년대 한국 극장 애니에서 나오던 그 자막이다!까지 나온다. 결국 흥행에는 참패하였고, 이후 점차 잊혀지다가 명절때나 SBS에서 방영해주기도 하였다.
최후에 임꺽정이 사로잡혀서 처형당한다는 결말은 차마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여줄수 없었는지(...) 임꺽정은 자수하고 그전까지 임꺽정과 대립하던 양반 청년은 사실 암행어사라 탐관오리 사또를 처벌하고 임꺽정을 용서해준다는 무난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지었다.
7.5. 그 외 ¶
KBS-2 에서임하룡이 임걱정으로 나오는 코미디 코너도 나왔는데, 말 그대로 도적단 두령인 임걱정과 졸개인 심형래와 부하들이 나와 부하들 뻘짓으로 골탕먹으면서 끝난다. 끝날때마다 임걱정이 "걱정된다! 걱정돼."라면서 마무리하는데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 오래가진 못했다.
1990년대 중반 SBS의 대단한 일요일 이란 프로그램 에서 남희석이 남걱정 이란 캐릭터로 나와 사소한 일에도 "근데 만~약에~..." 라고 읊으며 걱정만 하다 일을 그르치는 코너도 있었는데 이 또한 얼마 가지는 못했다.
1993년도에 출판한 SF 임꺽정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관군의 추격에 죽을뻔한 임꺽정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20세기 서울로 시간이동 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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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자는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한자, 즉 국자이다.
- [2] 付(부)+叱(질)
- [3] 去(거)+叱(질)
- [4] 이러한 평가를 두고 사관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대단한게 아니라 당연한 의무다. 거기에 사초는 아무도 볼 수 없고 누설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갑자사화라던지 - [5] 스승 양주팔이 "재주가 삼군을 덮을 만 하나 끝내 쓰이지 못할 것"이라고 평한다
- [6] 이두호 화백이 작품을 연재하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홍명희와 그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 [7] 조식에게 김달평이 시비를 걸다가 이를 본 임꺽정이 김달평을 제압한다. 그 직후 김달평이 임꺽정을 알아보고 함께 술을 마시며 화를 푼다. 홍명희 임꺽정에서는 그냥 단역인 윤원형의 차지(하인)가 조식에게 시비를 걸다가 오히려 조식에게 혼쭐나는 것으로 나온다.
- [8] 어린 나이에 토포사가 씨를 남겨두면 안된다고 땅에 내리쳐 죽였다(...)
- [9] 단 서자라서 반쪽짜리 양반 취급을 받는다.
- [10] 대부분 야비한 캐릭터로만 나오던 서림이 여기선 좀 더 입체적으로 나온다. 탐욕이 많고 비겁하긴 하지만 임꺽정 휘하에 있을 땐 일단은 임꺽정의 책사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편이다. 남치근에게 잡힌 황천왕동이가 부상을 당하고 당장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임꺽정의 처남이니 써먹을 데가 있을 거라는 구실로 처형을 미루고 부상 후유증으로 다 죽어가는 천왕동이를 어떻게든 살려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여줬다. 마지막에 그런 광인이 된 것도 임꺽정을 배신했다는 후회와 두려움에 그렇게 됐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