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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

last modified: 2015-04-12 19:36:48 by Contributors

이름 임창정(任昌丁)
출생 1973년 11월 30일, 경기 이천
본관 풍천 임씨
신체 171cm167-8cm[1], 56kg, B형
학력 중앙대학교 영화과
가족 1남 3녀 중 셋째, 슬하 3남
특기 작사, 작곡, 모든 운동, 남도창, 모창
수상경력

제4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 스카우트
제20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상 - 공모자들

대한민국멀티엔터테이너 - 가수, 영화배우, 개그맨[2], 디씨인.[3] 하지원의 영화셔틀.[4]

Contents

1. 개요
2. 데뷔 및 전성기
3. 임창정과 연관된 작곡가들
3.1. 김형석
3.2. 조규만
3.3. 원상우
3.4. 이동원
4. 트리비아
5. 활동
5.1. 영화
5.2. TV
5.3. 음반
5.3.1. 정규 앨범
5.3.2. 비정규 앨범
5.4. 공연
6. 수상경력


1. 개요

국내 대표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1990년대 당시 가요계, 연기계[5], 예능계에서 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유일한 연예인.[6] 만능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최초로 공론화 시키며(전영록?) 전성기를 보냈으며, 이후 연예인들이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케이스는 몇배로 늘어났고[7], 2000년대에 탁재훈, 2010년대에 이승기 등 배우, 가수, 예능 세 분야 모두 성공을 거둔 연예인이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이들 중 아직 임창정의 경지까지 올라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2. 데뷔 및 전성기

1990년 영화 '남부군'에서 연기자로 데뷔. 이어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등 여러 공중파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과 조연 등으로 얼굴을 내밈과 동시에, 1995년에 정규 1집을 발표하여 가수로도 데뷔하여, '이미 나에게로' 등의 곡들로 가수로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6년 발매된 2집의 처참한 실패를 딛고서, 그 다음해인 1997년에 영화 '비트'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임창정은 이 영화에서 양아치인 '환규' 역할을 맡아, 17대 1로 싸우는 양아치 연기를 실감나게 소화[8] 하여 유오성과 함께 당시 주목할 만한 신인 조연배우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 영화의 OST에 가수로서 참여하여 그가 부른 곡인 '슬픈연가' 또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더불어 공중파 예능계에도 입성, KBS 슈퍼선데이의 '촌댁네 사람들'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코믹연기로 주목을 받으면서, 배우-가수-예능까지 섭렵하는 당시에는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만능엔터테이너'라는 그만의 고유 수식어까지 얻게 되었다. 그의 히트곡 메들리.

이렇게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가수로서 3집 앨범을 내놓게 되는데, 임창정이 직접 작사한 최초의 가사가 별 마음에 안들었는지, 유명 작사가인 박주연의 가사를 새로 담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그때 또 다시', 임창정은 이 노래로 가요톱10에서 5주연속 1위를 거머쥐며 상반기 골든컵을 거머 쥐게 되고 ,연이어 하반기에 발표한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타게 되어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대단한 기록[9]을 달성하게 된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해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임창정 인생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 된다.[10]이런 엄청난 인기로 3집 앨범은 임창정 가수 인생 최초의 히트 앨범으로서 자리매김 하게 된다. 3집을 계기로 임창정은 명실공히 인기가수로서 자리매김 하였고, 10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2003년까지 약 6년 동안 최고의 발라드 가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임창정의 정규 6집과 8집은 그의 앨범 중에 명반으로 손꼽히곤 하는데, 두 앨범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6집이라 하겠다. 2000년 2월에 발매된 정규 6집 'White'는 '다줄꺼야'로 유명한 작곡가 규만[11]이 앨범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12]이고, 임창정이 일본에서 보컬 레이닝을 받으면서 가수로서 창법에 변화를 준 첫 앨범이기도 하며, 특히 2000년 당시 국내 가요계에서는 거의 생소했던 Unplugged 스타일[13]로 제작된 특별한 앨범이기도 하다. 방송활동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의 연인', 'Smile Again', '기쁜 우리' 외에도, '이별이 나를 부를 때', '낮에', '너의 꿈에 부치는 편지' 등의 나머지 앨범 수록곡들 역시 타이틀곡이나 후속곡으로 경합을 벌였을 만큼 6집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전성기 때는 역시 가수와 연기자로 큰 성공을 거둔 김민종과 라이벌 기믹이 있었는데, 임창정이 더 롱런한것도 있고 예능력에서도 넘사벽이라 임창정의 우세.

가수로서 10집까지 내고 연기자로 돌아가겠다는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3년 10집 활동을 마친 후에 돌연 가수로서 은퇴 선언을 하고 영화배우로서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은퇴했는데도 가수 활동에 미련이 많이 남았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자기 노래만 2시간 동안 부르고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을 정도였다고(…) 스스로 밝힌 적도 있다. 결국 2009년 11집으로 가수로서 다시 컴백하여 활동하였다. 예전만한 인기를 되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6년만에 컴백한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괜찮은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되겠다. 더불어 예능계에도 진출하여 '천하무적 야구단'에 고정출연했었다. 하지만 2010년 완전 하차함으로 예능에선 발을 뺀 상태.

영화속에서의 임창정의 연기의 특징은 다름아닌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선사해 주는 묘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라는 것이다. '비트',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등 그만의 고유 캐릭터뭘해도 소시민를 잘 표현해 낸 영화들에서 흥행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5년간 영화배우로서 전념하면서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배우로서도 큰 성과를 내었다. 윤제균 감독의 일종의 페르소나로서 많은 작품에 참여했지만 초대박작인 해운대 촬영을 자기가 거절했다.[14] 지못미.

그리고 2013년 4월 3일....결혼 7년만에 아내 김현주씨와 이혼했는데, 세 자녀 중 첫째와 둘째는 아버지 임창정이 양육하고, 막내는 김현주씨가 양육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2013년 9월 24일 앨범 '나란놈이란'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컴백했다. 그간 공백기가 길었음에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전성기때 불렀던 노래들을 무리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복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격적인 예능 첫 출연으로 히든 싱어 시즌2에 첫번째 가수로 출연했는데 쟁쟁한 모창능력자들 사이에서 내가 임창정이다를 몸소 보여주시며 건재함을 알렸다. 예능쪽으로도 전현무의 깐죽거림에 열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역시 임창정이다'는 느낌의 입담을 과시했다. 그리고 모창능력자 6명이 '오랜만이야'의 후렴구를 함께 부르며 2003년 그가 은퇴할 때 모습을 재연하여 큰 감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얼떨결에 기부천사의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15][16]


미니앨범 '나란놈이란' 후속곡으로 나온 '문을 여시오 (feat.김창렬)'[17] M/V가 인터넷에서 유머사이트에서 엽기발랄한 내용으로 화제가 됐다. SNL 코리아에서 본인이 나왔던 스케치를 M/V에서 다시 선보인 것. 카메오로 업이 하다. 문- 열어

2014년 3월 20일 자정, 12집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은 '흔한 노래'. 흔한 노래의 최고음은 8집의 '기다리는 이유'의 3옥타브 도라는 엄청난 고음과 같다. 하지만 꺾이는 음까지 포함하면 3옥도 #이다. 담배를 끊게 되면서 후유증도 많았지만 안정적인 고음을 다시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의 목상태를 다시 찾은 셈.

이후 '친한 사람'을 발매했는데, 타이틀곡 '임박사와 함께 춤을 (Feat. LE Of EXID, 이박사)'이 문을 여시오와 비슷한 컨셉의 댄스곡이다. 이래저래 2010년대의 댄스곡은 으로 컨셉이 굳어진 모양.

3. 임창정과 연관된 작곡가들


은퇴전까지 정규 앨범만 10장을 발매하면서 수많은 작곡과들과 작업을 하였는데 이 항목에서는 그 중에서도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한 작곡가나 임창정의 노래를 언급하는데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곡가와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과의 관계를 서술한다.

먼저 작곡가들을 언급하기 전에 음악적인 면에서의 임창정을 더욱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임창정 본인만의 스타일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데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인 색깔은 대중적인 색깔과 조금 거리감이 있다.[18] 주된 임창정이 작곡한 곡들의 음악적 색깔은 음악 자체적으로 기승전결이 다른 대중적인 곡들보다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으며 한 소절 이후 다음 소절에 어떤식으로 노래가 진행이 되는지 꽤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19]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은 임창정의 창법에서도 드러나는데, 임창정 본인이 가장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창법은 서정적 발라드보다 트로트에 가까우며 이러한 창법들로 인해 90년대 이후 대중이 선호하는 서정적 발라드에 꼭 맞는 창법을 지닌 가수는 아니라는 점. 물론 임창정 정규 앨범 수록곡중 모든 곡들이 임창정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20] 그만큼 임창정 본인의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필요를 둘 다 충족시키기는 작곡가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다. [21] [22] 결론적으로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첫번째 은퇴 이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곡에서 1) 고음이 여실히 드러나야 하며 [23] 2) 특유의 꺾는 창법이 요소요소 잘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대중적 발라드가 (고음 제외) 추구하는 바와는 상반된다.

3.1. 김형석


준수한 타이틀 곡과 전체적으로 나름 임창정스러웠던 2집이 실패한 후 임창정을 대중적인 발라드 가수의 틀에 끼워넣은 작곡가이자 임창정이란 가수를 대중적으로 성공한 발라드 가수로 견인한 작곡가.

임창정하면 당연 작곡가 김형석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임창정의 음악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곡가이다. 임창정을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발라드가수 [24]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자 3집부터 5집까지 임창정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했으며 [25] 이후 조규만이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이후에도 2번이나 [26] 더 타이틀곡을 내놓은 작곡가이다.

임창정 한정 김형석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각 시대 대중이 원하는 발라드의 이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며 임창정이란 가수를 활용함으로써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를 아는 작곡가였다는 것. [27] 다만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극대화시킨 작곡가는 아니며 그때 또 다시 이후 임창정이 가지고 있는 본연만의 색깔을 희석시킨 작곡가란 점에서는 조금 아쉬운 편. 다만 임창정이 작곡가 입장에서 100% 임창정스러움을 표현해내는 것에 있어서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가수라는 점에 있어서 김형석의 임창정 한정 작곡가로서의 자질은 절대 깎아내려져서는 안된다.

3.2. 조규만


5집까지 임창정을 대중적 성공으로 견인한 작곡가가 김형석이라면 은퇴 이전 가수로서의 임창정의 후반부를 총괄했던 작곡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번도 임창정의 타이틀곡을 견인한 적이 없는 (임창정 한정) 비운의 작곡가. 콩라인

김형석이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작곡가라면 조규만은 본인의 색깔이 뚜렷하면서 (가장 정형화된 발라드 스타일) 그 색깔자체가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이라 작곡가중에서도 못해도 중박 이상은 치는 작곡가이다. 5집까지 김형석의 시대가 끝나면서 6집부터 임창정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는데 6집부터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임창정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28]. 하지만 조규만 스스로의 스타일이 너무나도 확고하면서도 그 확고한 스타일이 임창정과는 극인지라 노래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표현하기에는 가장 적합하지 않았던 작곡가. [29] [30] 물론 임창정이라는 가수가 임창정스러움을 버려두고라도 감정적으로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가수라 흠좀무 조규만과의 작업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으나 점점 임창정스러움이 김형석시절보다 더 억압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형석 못지않게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한 작곡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작곡한 곡들은 단 한번도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점. 임창정 한정 콩라인이다. 6, 7집에서는 갑툭튀한 굇수 원상우에게 밀렸다면 8집이후에는 다시 임창정과 작업한 김형석에게 밀려버렸다. . . 잠깐 눈물 좀... [31] 그 후로 타이틀곡에 미련이 없어졌는지 9집이후 조규만 곡들은 8집 이전의 그것들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지는 편.

다만 그가 총괄했던 음반중 6집이 임창정 팬들사이에서 주로 최고의 명반으로 뽑힌다는 점에서 임창정의 은퇴 이전 후반부의 가수 인생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사실. 사실 조규만의 곡 색깔과 임창정 본인의 색깔이 안 맞았을 뿐이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은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32]

김형석과 조규만을 거치면서 예전 가장 임창정스러웠던 모습을 대중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작곡가는 없으리라 예상했으나. . . . .

3.3. 원상우


6, 7집 한정으로 임창정 본인만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명곡들을 작곡한 임창정 한정 최고의 작곡가.

김형석이 앨범을 총괄하던 시대가 끝나고 조규만이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조규만의 시대가 오나 했지만. . . 갑툭튀한 원상우가 작곡한 곡들이 6, 7집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된다. 원상우의 곡들은 임창정 월드에서는 신세계였는데 불가능하리라 믿어졌던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였던 점. 실제로 6집 나의 연인의 경우에는 가장 임창정스러움의 요소 (고음과 꺾는 창법)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깊이 빠져들만한 매력을 선사한다. 물론 조규만 곡에서도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규만 곡이 임창정 창법을 억압하는 방향이었다면 원상우는 임창정을 최대한 지지하면서 어떻게 대중적으로 잘 어필할 수 있는지 아는 작곡가였다는 것. [33] 원상우의 곡이 임창정의 임창정스러움을 잘 표현하면서도 6, 7집 한정으로 조규만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 대중적인 면모가 부족하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임창정의 작곡가로서의 원상우의 가장 큰 의의는 제일 처음으로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선호를 조화시키는 법을 아는 작곡가였다는 점. [34]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원상우의 가장 큰 장점은 얼마지나지 않아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는데 7집이후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대중적인 요소가 많이 파괴된 면모를 보인다 (물론 임창정스러움은 더욱 부각되었을지 몰라도). 즉, 임창정이라는 문맥안에서 원상우의 리즈시절은 6, 7집 (그중에서도 6집)이었다는 것. 7집 이후 임창정과의 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곡은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 [35]

3.4. 이동원


임창정 월드에서 1집을 제외하고 은퇴 이전 처음과 끝을 견인한 사람. 2집은 실패했으나 후에 소주한잔으로 은퇴이전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한 장본인.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곡 소주한잔을 임창정에게 선물한 작곡가.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요즘 시대에 임창정하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곡은 소주한잔이다. 이동원씨가 바로 그 소주한잔을 작곡한 사람. 재미나게도 임창정팬들에게는 명곡이나 인기를 얻는데에 실패했던 2집의 혼자만의 이별이나 나의 여백을 작곡한 그 작곡가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방송국에서 한키올려버려 분노의 가창을 했던 그 노래가 바로 혼자만의 이별. 기회를 주지마!!!!!!!!!

2집 이후 김형석이 임창정을 인기가수로 견인하고 그 후 조규만이 후반 프로듀싱을 책임지면서 이동원은 그대로 잊혀지는 듯 했으나. . . 은퇴이전 마지막 앨범인 10집에서 소주한잔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부활한다.[36] 일명 왕의 귀환. 이 후 소주한잔이라는 노래가 임창정이라는 문맥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니 그때 또 다시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올드팬 작곡한 곡수는 많지 않아도 임창정에게 있어서는 큰 도움을 준 작곡가.

다만 계속해서 서술했듯 곡의 완성도를 떠나 원상우만큼 임창정에게 잘 맞는 곡을 주는 작곡가는 아니다. 2집의 혼자만의 이별이나 나의 여백이 임창정스럽기는 해도 이는 곡 자체가 너무 높아 고음에서 잘 타나나는 임창정스러움이 잘 표현되는 것이지 임창정 특유의 창법이 원상우의 그것보다 잘 표현되는 곡은 아니기 때문. 오히려 2집의 이동원 작 노래들은 조규만의 그것들과 비슷하다. 후에 소주한잔에서 1절 후렴과 2절 후렴사이에 극적인 차이를 둠으로서 발라드계에 한 지평을 그엇으며 그의 노래들은 전부 완성도가 꽤 놓은편... 다만 11집의 오랜만이야를 보면 소주한잔의 느낌이 나면서도 그만한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4. 트리비아

  • 신혜성과 듀엣곡을 발표한다.
  • 가수 오디션을 보러갔다가 윤도현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둘은 결승까지 갔고, 둘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서 회사에서는 윤도현과 임창정을 둘다 캐스팅했지만 회사가 망해서 데뷔가 무산됬다고 한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밤이면 밤마다에서 언급을 했다.

  • 연예계 주당중에 하나로 유명하다. 주사를 묻는 질문에 '술 마시면 그냥 잔다'라고 하자, 마르코가 "아침 9시까지 마시는데 잠이 안오면 사람이 아니죠."(…). 비틀즈코드에 나와서 밝히기로는 술이 '깨면' 주사가 생긴다고 한다. 그 주사란 술을 찾는 것..깨고 마시고 깨고 마시고 무한반복

  • 임창정이라는 가수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흔히들 표 현하는건 '노력형 가수'. 순전히 노력으로 이루어진 실력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불후의명곡 출연 당시 본인 입으로도 '난 타고난게 없다, 99프로의 노력이 있고 1프로가 타고났다. 따라서 김건모, 이승철과 같은 타고난 가수들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 기본적으로 톤이 높으며 창법 운운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유명한 반가성[37] 가수. [38] 음악방송 한구석에 립싱크 마크가 당연하던 시절에도 꾸준히 라이브만 해왔던 가수 중 한명이라 그런지 사소한 음이탈이나 음정, 박자는 신경쓰지 않고 화끈하게 노래를 부른다. 공연환경이 좋지 않은 공중파 음악방송에 나와 마이크를 저만치 떼어서 불러도 쩌렁쩌렁 울리는 성량도 압권. 한번은 방송국에서 실수로 "혼자만의 이별"을 한키씩이나 올려버리는 병크를 저질러 버렸는데 그냥 소화해내는 기염을 토해낸다. 한 키 맞다. 이것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데 원곡은 최고음이 3옥타브 레인데 이 라이브는 최고음이 3옥타브 레 #이다. http://youtu.be/n9Xy5lMfCs0 창정횽의 빡친 표정은 그냥 넘어가자 여담이지만 조수미가 좋아하는 가수로 임창정을 꼽은 바 있는데, 다름아닌 가창력이 뛰어나서 좋아한다고 한다.

  • 5집 타이틀 곡 'Love Affair'의 녹음시에, 곡의 후렴구 중에 '우리 단 한 번'이라는 가사 부분을 부를 때, '한~번'으로 음이 올라갈 때 실수로 실제 작곡된 코드보다 반음 내려진 음으로 '번'을 불러 녹음했는데, 당시 이 곡의 작곡자이자 프로듀싱을 맡았던 작곡가 김형석이 오히려 흡족해 하며 훨씬 좋다고 판단해 그대로 앨범에 싣게 되었다고 한다.

  • 7집 수록곡인 '날 닮은 너'라는 곡엔 "두려워 겁이 나"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노래부를 때 이를 항상 "두려워 겁씨나"로 발음하여 이야깃거리가 된 적이 있다. 표준어의 올바른 사용에 민감한 사람들은 상당히 거슬린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본인은 이에 대해 "틀린 발음인 것은 알았지만, 강조를 위해 일부러 그리 한 것"이라 뉴스기사를 통해 해명.
    사실 70대 이상 어르신들 중에 이렇게 발음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지만, 옛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 중에는 임창정이 외국인처럼 한국어를 발음한다며 원래 없었던 외계어나 언어 파괴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흠좀무
    아이러니한 것은 걸스데이의 'Something'은 아예 맞춤법이 틀린 가사가 적혀 있는데도 논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 몸에 베인 낯선 향기에"라는 부분인데 원래는 '베인'이 아니라 '밴'이 맞는다. '베인'은 칼에 베였다는 뜻이다.;;; 물론 한 글자가 줄어드니 음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지만, 차라리 '배인'이라고 표기했다면 비록 틀린 맞춤법이지만 시적 허용으로 보아 줄 수는 있겠다. 실제로 예전 책에는 그렇게 적힌 사례가 많고 북한에선 표준어이기도 하니...
    이곳 참조

  • 2002년 가요 프로그램 출연시에 대기실에 들어갔는데 낯설어 보이는 여자 가수가 대기실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신인인거 같아 보이는데 인사할 기미가 없는 여자가수에게 선배로서 한 소리 할려고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가수는 다름아닌 6년 만에 컴백한 가요계의 마돈나 김완선이었다고...[39] 결국 임창정은 당황하면서 김완선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는...

  • 개그맨 이수근과는 경기도 이천시의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생가가 서로 앞집 뒷집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깝게 위치했지만, 어릴 적에 이수근양평군으로 이사를 가서 임창정은 몰랐다고 한다. 이걸 알고 있엇던 이수근이 연예인으로서 유명해진 후 임창정을 찾아와 어릴 적 살았던 주소를 이야기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임창정은 그 전에도 이수근을 연예인으로서 이미 알고 지냈는데 이걸 왜 이제 말하냐고 물었더니, 같은 곳에서 태어난 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때 말할 생각이었다고 하더라...흠좀무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2010년 11월 개그맨 서경석의 결혼식 때 두 사람은 하객으로 동반 참석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상당히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음이 이미 예측되기도 했으며, 특히 이수근2010년에 개봉한 영화 '슈렉 포에버'에서 극중 슈렉과 대결하는 악역 역의 목소리를 더빙하기도 했는데, 영화 시사회 기자회견시에 "임창정처럼 영화에서 감동도 주는 코믹 연기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뚜렷한 소신을 밝히는 등, 이수근에게 있어서 임창정이 상당히 오래전 부터 연예인으로서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두 사람을 보면 키도 그렇고 은근히 닮은 구석이 좀 있다. 그리고 지금 이수근은...

  • 배우 이병헌의 데뷔 초반기에 임창정이 로드매니저 보조로 활동하던 경력이 있어서 이병헌과 옛날에는 무척이나 호형호제 하던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임창정이 스타가 되고 난 후에 술자리에서 대판 크게 싸우고 난 뒤[40] 서로 3~4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다시 임창정이 먼저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했고, 이를 계기로 임창정은 이병헌과 자신의 관계처럼 누군가 막역한 동생을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동생이 바로 칩사마[41]... 1년 동안 친하게 지내며 이병헌처럼 티격태격 싸움도 걸어보다가 맞을뻔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고... ㅎㄷㄷ 하지만 최근에 이수근이 제발로 찾아와 줬으니 소원 성취한 듯... 실제 막역하고 꽤나 아껴주는 듯 하다. 그리고 지금 신정환과 이수근은...

  • 2009년 말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호랑이가 나오는 길몽을 꿨다"라면서 영화 담보살이 대박날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러자 MC들은 즉각 "그거 임"이라면서 개드립을 날리는 순발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끝나는가 했더니……. 영화는 망하고, 1년 뒤에 임창정의 아내는 셋째를 출산하였다(…).

  • 강심장에서 과거 오디션에서 "너는 이런 일(배우)해야 할 놈이 아니야. 너는 공부나 해야 돼. 너 같은 놈이 경쟁률 머리 수만 높여준 거다. 네가 뭐가 되겠냐. 네가 성공하면 내가 내 성을 갈겠다."라는 식의 조롱을 한 감독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십수년 후 바로 그 감독이 영화에 출연해 줄 것을 부탁하자 "매니저와 상의하시죠"로 대충 넘겨버린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로 떡잎들에겐 제발 막말하지 말자.

  • 신인가수 시절의 임창정이 어느날 연예계 관계자들과 노래방에 들렸다고 한다. 분위기도 띄울 겸 임창정이 한 곡조를 뽑았고 그날따라 목소리가 좋았는지 폭발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한 작달막한 20대 여자가 피식 웃더니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신세계가 펼쳐졌다고 한다. 이후 며칠간 임창정은 절망에 빠져 가수를 계속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했다고 한다.그리고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여자의 정체는 바로박정현...임창정이 강심장에서 이야기한 당시의 비화[42]

  • 나는 가수다 출연설에 대해 이야기 한 바에 의하면 섭외 요청도 없었고 나갈 생각도 없다고 한다. 요청도 없었다고? 말도 안돼.나가수 시절에는 이미 11집 활동으로 전성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가창력을 보여줬던 터라.

  • 가수 허각이 임창정의 열렬한 팬이었고, 히든 싱어에 임창정이 출연하자 모창능력자로 함께 출연하여 방청객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근데 얼굴이 드러난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만 들리기 시작해서 광탈 원래는 임창정의 절친인 김창렬을 통해 이전부터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실제로 만나기는 방송에서가 처음이라고 했다. 덕분에 그의 앞에 서자 눈을 못마주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위에서 언급한 임창정의 2003년 가수 은퇴를 회상하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 요상하게 하지원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임창정이 같이 출연하면 흥행하는데 임창정 없이 찍으면 거의 100% 망한다. 영화에 하지원을 출연시켜서 흥행을 하려면 임창정도 같이 출연시켜야 하는 징크스가 있다.

  • 불후의 명곡 이선희 편에서 등장해 팬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수 이선희에게 많은 애정표현을 했다. 밥사주세요 이선희편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그리고 전술한 과거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던 박정현에게 1표차이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43]


  • 가수데뷔 무려 20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쌩목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수이기도 하다.쌩목갑 어디서부터 시작된 논란인가 거슬러 올라가보면 20년차임에도 콘서트 경력이 전무한 데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쪼는 느낌의 고음부 발성에서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인해 임창정은 두 세 곡만 부르면 목이 맛이 가버리므로 콘서트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많은 사람들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게 현실. 하지만 이는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말도 안되는 소문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임창정은 콘서트 경력이 있다!!!!!! 그것도 98, 99년도 무려 두 번!!!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자신의 히트곡이 너무 모자랐고 이미나에게로 그때또다시 결혼해줘 늑대와함께춤을...... 시키는 대로만 노래 부르던 콘서트였기에 정말 재미가 없어서 다시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20년 차 중견노땅 가수가 된 지금은 히트곡이 넘쳐나기도 하고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가 그립기도 해서 콘서트를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 99년 마지막 콘서트로부터 15년이 지나서 전국투어 콘서트를 한다고 한다! 오오 갓창정 오오 2014년 5월 23,24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주, 인천, 광주, 대구, 고양, 부산, 울산, 제주까지 무려 9개 도시에서 10회에 걸친 콘서트를 하기로 했다는듯.. 얼마 전 끝난 서울 콘서트에서는 세 시간에 걸쳐 38곡이나 되는 그의 히트곡과 명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역시 갓창정



  • 1997년 한솔엠닷컴 CM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했다. 싸요싸요싸요싸요!하는 거렁뱅이(?)를 휴대폰으로 쏴죽이는(??)위엄

5. 활동

5.1. 영화[44]

연도제목활동관객수흥행
1990남부군조연68만명(전국)성공
1990장미여관단역2천명(서울)실패
1992섬강에서하늘까지단역2만 3천명(서울)실패
1992걸어서하늘까지단역7만 5천명성공
1994게임의법칙단역12만명(서울)성공
1997비트조연35만명성공
1998엑스트라주연8만 2000명(서울)실패
1998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주연20만명(서울)실패
2000행복한 장의사주연12만명 (서울)실패
2000자카르타주연70만명실패
2001두사부일체우정출연330만명성공
2002해적, 디스코 왕 되다주연130만명성공
2002색즉시공주연420만명성공
2003위대한 유산주연225만명성공
2003낭만자객우정주연96만명실패
2003역전에 산다특별출연55만명실패
2004시실리 2km주연200만명성공
2005파송송 계란탁주연110만명부진
2005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주연254만명성공
2006아치와 씨팍주연10만명실패
2007남의 광장주연130만명성공
20071번가의 기적주연275만명성공
2007스카우트주연31만명실패[45]
2007색즉시공 2주연209만명성공
2009청담보살주연132만명성공
2010육혈포 강도단조연123만명부진
2010불량남녀주연49만명실패
2011사랑이 무서워주연40만명실패
2012비처럼 음악처럼주연미개봉[46]??
2012공모자들주연164만명성공
2013창수[47]주연43만명실패

5.2. TV

5.3. 음반

'앨범명 - 타이틀곡'으로 표기합니다.

5.3.1. 정규 앨범

  • Rock & Razor Techno Music (1995) - 거짓 같은 진실
대부분이 '이미 나에게로'가 타이틀 곡인걸로 알고 있지만 댄스곡인 거짓 같은 진실이 1집의 타이틀곡. 3일만에 망했지만
  • Because I'm not with you (1996) - 혼자만의 이별
  • Again (1997) - 그때 또 다시(Again)
  • 늑대와 함께 춤을 (1998) - 별이 되어
  • Story Of... (1999) - Love Affair
  • White (2000) - 나의 연인(我戀)
  • www.Love.7th (2000) - 날 닮은 너
  • Different Color (2001) - 기다리는 이유
  • C.J.2002 (2002) - 슬픈 혼잣말
  • Bye (2003) - 소주 한 잔
  • Return To My World (2009) - 오랜만이야
  •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 (2014) - 흔한 노래[48]

5.3.2. 비정규 앨범

  • His 1st Best Album: Lim Chang Jung A To Z (2001)
  • Remind (2010) - 잊혀지는 이별
  • 지운수대통 OST앨범 - 집으로 가는 길 (2012)
  • 나란놈이란 (2013) - 나란놈이란
  • 용감한형제 10주년 앨범 Part 1 (2013) - 그렇게 당해놓고
  • 쓰리데이즈 OST Part 1 (2013) - Goodbye
  • 조선총잡이 OST Part 4 (2014) - 기다리라해요
  • 친한 사람 (2014) - 임박사와 함께 춤을 (Feat. LE Of EXID, 이박사)

5.4. 공연

  • 1993년 뮤지컬 동숭동 연가
  • 에비타
  • 마의 태자
  • 1998년 임창정 첫 단독콘서트 in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
  • 1999년 임창정 단독콘서트 서울-부산-청주 투어
  • 2009년 뮤지컬 빨래 - 솔롱고
  • 2010년-2011년 뮤지컬 라디오 스타 - 매니저 박민수
  • 2012년-2013년 뮤지컬 을 뚫는 남자 - 듀티울
  • 2014년 임창정 단독 전국투어콘서트 "흔한콘서트"

6. 수상경력

  •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신인연기상 - 비트
  • 제35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 비트
  • 1997년 KBS 가요대상 대상
  • 1997년 MBC 영상음반대상 본상
  • 1997년 서울가요대상 본상
  • 1997년 SBS 가요대전 본상 (1997~2002년 6년 연속)
  • 2000년 KBS PD가 뽑은 최고 인기가수상
  •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 색즉시공
  • 제4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 스카우트
  • 제20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상 - 공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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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임창정의 프로필키는 시간이 지날때마다 줄어들고있다. 10년전만해도 175cm(...)로 표기햇었다.
  • [2] 씁쓸한 인생 항목의 등장인물 소개 참조(...)
  • [3] 자신의 갤러리에 자주 나타난다. 심지어 다른 연예인들까지 디씨로 끌어들이고 있다(...).
  • [4] 하지원의 영화셔틀인 이유는 하지원은 임창정을 동반하면 흥행성공하지만 임창정이 없으면 흥행참패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같이 찍은 영화는 색즉시공 1,2, 전에 산다, 1번가의 기적.
  • [5] 영화 비트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쪽에서는 흥행에 거의 성공하는 편이다
  • [6] 예능까지는 아니지만 가수와 배우 활동 모두 성공한 연예인으로는 엄정화가 있다.
  • [7] 이전에 김민종과 김원준이 연기와 가수를 병행하였고,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었지만 김민종은 영화에서는 죽을 쑤었고 김원준은 연기쪽에서는 실패를 거두고 있었다.
  • [8] 당시 소위 노는 애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돌던 '17대 1로 다구리 붙는다'는 허풍은 사실 이 영화에 출연한 임창정의 대사였다. 하지만 이 대사를 생각해낸건 정우성이라고 정우성 본인이 직접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언급했다.
  • [9] 이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
  • [10] 이 당시 가요대상을 놓고 경쟁했던 팀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였는데, 팬덤의 화력도 대단하던그리고 지금 빠순이들과 다를 바없는 시기였다. 히든 싱어 시즌2에 출연해서 밝힌 일화로 당시 임창정이 '그때 또 다시'로 대상을 타자 H.O.T. 팬덤이 반발했고(...) 앵콜을 부를 땐 이미 그 팬덤이 다 빠져나가며 10명 남짓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 [11]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가수 조규찬의 형이기도 하다.
  • [12] 이 앨범이 제작된 2000년 당시에 규만의 프로듀싱을 거친 가요 발라드 음반들은 모두 히트하는 등 조규만은 거의 발라드계의 미다스의 손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특히 임창정 6집은 조규찬, 이승환, 세준 등 가요계의 최고의 작곡가들과 함께한 그 당시 조규만 프로듀싱 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13] 컴퓨터를 이용한 자음이 배제된 최정예 밴드 라이브 연주 스타일이다. 일부 댄스곡들을 제외하고서 타이틀 곡인 "나의 연인"을 비롯한 거의 모든 앨범 수록곡들은 춘호(기타), (기타), 이태윤(베이스), 박영용(퍼커션), 장혁(드럼) 등 최정예 밴드 세션의 탄탄한 연주에 14인조 오케스트라가 가미되었다.
  • [14] 황금어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미 2007년에 출연료를 먼저 받고 촬영을 기다리던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영화를 놓쳤다고. 그 놓친 작품들이란 해운대, 속 스캔들, 거북이 달린다
  • [15] 본인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85표 이상을 못 받으면 히든 판정단 100명 전원에 13집 앨범 사인CD를 증정하기로 했고, 결국 우승은 했으나 목표한 점수를 얻지 못하며 사인CD 증정. 여기에 모창능력자 중 한사람이 어머니 임플란트 비용을 벌기 위해 출연했다고 하자 본인이 연락처를 주며 흔쾌히 그 비용을 대주기로 약속했으며, 마지막으로 모창능력자로 출연한 허각의 단독콘서트에 게스트 출연도 약속했다. 의리의 사나이
  • [16] 임플란트 이야기의 후일담으로 어머니께 임플란트를 해드리기로 한 모창능력자가 임창정 갤러리에 인증글을 남겼는데, 진짜로 임창정의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어머니께서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고, 재차 권유가 왔으나 어머니께서 다시 한 번 사양하셔서 그냥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 [17] 김창렬이 프로듀스 했던 더보이즈의 '문을 여시오'를 리메이크한 곡. '김창렬의 올드스쿨'의 중간 시그널 음악이기도하다. 여담으로 이 노래가 원더보이즈가 발매하기 전인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G.DRAGON에게 들려주었던 샘플 중 한 곡이 이 노래였다. 만에하나 이 때 GG가 '바람났어'가 아닌 이 곡을 채택했다면 이 노래는 임창정이나 원더보이즈가 아닌 저 두 사람이 불렀을지도 모른다.
  • [18] 이는 임창정 본인이 작곡한 노래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음악적 깊이를 떠나서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곡들이 대부분
  • [19]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 색깔과 극을 이루는 작곡가로 임창정과 작곡가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조규만이 있는데 조규만의 곡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에 언제 어디서 음악적으로 극적인 전개가 등장할지 청중이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쉽기때문. 조규만의 곡들은 대부분 기승전결이 뚜렷하며 verse와 후렴사이에 주로 극적인 전개를 선호하지만 임창정 본인이 작곡한 곡들은 대부분 이런 경계가 모호하다.
  • [20] 그랬다면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 [21] 이는 각 앨범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대중적 시선을 고려하여 선택한 타이틀곡과 각 앨범에 수록된 임창정 본인이 작곡한 곡들 사이에는 음악적인 괴리가 있다.
  • [22] 대표적으로 2집 타이틀곡인 이동원 작곡의 혼자만의 이별과 임창정 작곡의 염원의 눈물을 비교해보자. '혼자만의 이별'에 비해 '염원의 눈물'은 상대적으로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이 극대화되기에 최적화 된 곡이다.
  • [23] 임창정은 고음에서 특유의 톤과 감정이 가장 잘 표현되는 가수이다. 단순히 고음을 잘 내기때문에 가창력있는 가수가 아니라 고음에서 감정표현이 가장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가수이기때문
  • [24] 3집에 처음으로 임창정의 앨범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때 김형석이 선물한 노래가 때 또 다시. . . 흠좀무 이후 그때 또 다시가 라디오에 전파를 타며 대중적인 인기를 서서히 얻기 시작하며...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5] 3집부터 5집까지의 타이틀곡은 모두 김형석 작곡이다
  • [26] 8집의 기다리는 이유와 9집의 슬픈 혼잣말
  • [27] 이는 김형석이 작곡한 임창정의 타이틀 곡에서 알 수 있는데 김형석만의 '정형화된' 음악적 스타일을 찾기 어렵다는 점. 그때 또 다시 -> 별이 되어 -> Love Affair -> 기다리는 이유에 이르기 까지 음악적으로 다양한 (발라드 안에서)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9집 슬픈 혼잣말에서 가장 정형화된 발라드 스타일로서 정착하게 된다.
  • [28] 대표적으로 6집의 Smile Again, 7집의 그대도 여기에, 8집의 너에게 모자란 나같은 곡들
  • [29] 조규만 작곡의 곡들을 들어보면 임창정보다는 예전 전성기의 조성모에게 더욱 더 어울리는 곡들이 많다.
  • [30] 조규만의 음악적 성향과 임창정의 그것이 극이라는 것은 임창정이 조규만 곡을 라이브로 부를 때 특히 잘 드러난다. 녹음과는 달리 본인 특유의 음악적 성향을 감출 수 없는 공개무대 라이브에서 부른 조규만 작곡의 smile again 후렴부를 들어보면 녹음곡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도호 우후수훌쑤이쬬 임창정 특유의 꺽는 창법에 주의하면서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NZLHhwLs6w0
  • [31] 특히 7집 조규만 작곡 수록곡 "그대도 여기에" 작업상황이 영상으로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녹음 후 임창정이 "타이틀 곡 나온것 같지 않아요?" 라고 말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다시 원상우의 "날 닮은 너"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된다.
  • [32] 다만 조규만은 6집이전에도 임창정과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앨범전체를 프로듀싱하지는 않았지만 3집의 "너를 잊기로 했어"는 조규만 작곡의 노래! 다만 이 노래는 기이하게도 6집 이후 조규만 작곡 노래들과는 달리 임창정스러움이 많이 묻어난다!!!!!.
  • [33] 물론 원상우의 타이틀 곡들 (나의 연인이나 날 닮은 너)이 임창정스러움을 100% 반영한 곡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임창정스러움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중 가장 임창정스러운 곡들임에는 틀림없다.
  • [34] 임창정의 곡들은 다른 가수가 부르기 꺼려하는 곡들이 많은데 특히 원상우의 곡들이 그러하다. 이것은 대중가요계에서 임창정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수가 전무하기때문
  • [35] 실제로 8집에 김형석 조규만 원상우가 프로듀서로서 참가한다고 했을때 임창정 팬들은 그때 또 다시 + 스마일 어게인 + 나의 연인을 기대했으나. . .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8집에서 조규만과 김형석이 프로듀싱한 파트는 결코 나쁘지 않았으나 원상우가 프로듀싱한 파트는 좀 매니악하다..
  • [36] 2집 이후 10집전까지 임창정과 작업을 아예 안 한건 아니다. 5집의 숨은 명곡 운명이라는 곡도 그의 작품
  • [37]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잘못 알려진 창법이다. 그냥 발라드에 맞춘 톤이 높은 진성가수로써 유명하다 생각하면 된다
  • [38] 각 앨범 타이틀곡들만 불러봐도 클라이막스가면 가빠오는 호흡과 꾸준히 높은 음때문에 노래방에서 안드로메다를 느낄 수 있게된다.
  • [39] 참고로 김완선은 임창정보다 4살 많은 연장자인데다가, 가요계 데뷔년도는 임창정보다 10년 가까이 앞선 완전 대선배다. 그리고 착각할만큼 동안이기도 하고.
  • [40] 술을 계속 권하자 임창정이 스케줄 때문에 이를 거부하자, 이병헌이 임창정에게 뜨고서 변했다며 나무랬는데, 임창정이 무명시절 이병헌이 도와주지 않았던 서운함이 터지며 대판 싸웠던 것.
  • [41] MC대격돌 3기(공포의 쿵쿵따 2기) 때부터 함께한 경력이 있어서 친해진 듯.
  • [42] 박정현의 기억에 따르면 이병헌의 생일파티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물론 당시 박정현은 데뷔전이었다.
  • [43] 단 박정현의 순번이 1번이였고, 임창정의 순번은 6번이었다.
  • [44] 2000년대 이전에는 제대로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2000년대 이전 관객수는 서울기준으로 작성
  • [45]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임창정에게 백상예술대상의 남자최우수연기상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 [46] 2010년에 제작되었으나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으로 계속 개봉이 미루어지고 있음.
  • [47] 개봉이 계속해서 미뤄지다가 2013년 11월 28일!! 개봉이 확정되었다.
  • [48] 간만에 작정하고 풀발라드 패키지 앨범으로 나와서 그런지 난이도가 흡사 지옥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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