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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훈

last modified: 2015-06-28 17:51:2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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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둘 다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그래도 인권운동가 임태훈은 야구선수 임태훈보다 훨씬 낫다. 아니 비교하기가 미안하다.

Contents

1.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선수 임태훈
1.1. 소개
1.2. 선수 생활
1.2.1. 프로 이전
1.2.2. 2007년
1.2.3. 2008년 ~ 2009년
1.2.4. 2010년
1.2.5. 2011년
1.2.6. 2012년
1.2.7. 2013년
1.2.8. 2014년
1.2.9. 2015년
1.3. 기타
1.4. 그 위엄넘치는 명투수의 기록들
2. 인권운동가 임태훈

1. 두산 베어스 소속 야구선수 임태훈


두산 베어스 No.51
임태훈(林泰勳)
생년월일 1988년 9월 2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7년 드래프트 1차 지명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7~)
수상 프로야구 신인왕 (2007)
등장곡 긱스 - 어때 (Feat. 하림)

2007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류현진(한화 이글스) 임태훈(두산 베어스) 최형우(삼성 라이온즈)
여기 있는 선수 다 잘 나간 상태인데 이 선수만 막장인게 함정

두산 베어스 등번호 51번(2007~)
최준석(2006) 임태훈(2007~) 현역 선수

1.1. 소개

KBO에서 자 선수 소속팀에서 금지어가 된 선수. 자팀 팬에서도 까이는 선수.[1]
사생활 문제로 본인과 팀의 이름 모두에 먹칠을 한 KBO, 아니 야구계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역대 최악의 투수.[2]
이동학을 뛰어넘은 KBO 역대 최악의 신인상 수상자.
사고를 일으킨지 6년째 가서야 소속팀에서 나간 나쁜 의미의 불사조

어째 소개 부분의 수식어가 조금씩 추가되는건 기분 탓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검은 모자가 하얀 색이 될 때까지 로진을 바르고 또 바르고 불고 또 바른다. 취미가 손에 쥔 로진불기

1.2. 선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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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 재학 시절.

1.2.1. 프로 이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으나 하필 그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손을 대다가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타는 바람에(...), 어머니마저 식당일에 가사도우미까지 뛰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고 임태훈 본인도 신문을 돌려야만 했다.

결국 형편 때문에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야구를 계속했고, 공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주변에서 프로행을 권할 정도까지 실력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출처

1.2.2. 2007년

첫해가 전성기. 혜성같이 등장한 두산의 기둥
2014년 기준으로 마지막 순수 신인 출신 신인왕.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 이용찬과 입단 동기이다. 입단 첫해부터 101.1IP 7승 3패 1세이브 20홀드 2.40ERA 93K를 기록, 2007년 신인왕을 거머쥐며 두산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끄는 데에 큰 공헌을 한다. 비록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참고로 임태훈 이후로 2014년까지 순수 신인 출신 신인왕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1.2.3. 2008년 ~ 2009년

그리고 2008년에도 솔리드한 활약을 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뽑히나 했지만 직전에 윤석민으로 교체, 병역 혜택을 이른 시기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이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 사이테러를 필두로 그야말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당시 대표팀 감독이 두산 김경문 감독이었기 때문에 전격 교체가 가능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임태훈과 윤석민 모두의 병역혜택이 걸려있던 문제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욱 컸다. 베이징 올림픽 우승 이후 제작된 특별 다큐멘터리에서 김경문 감독은 '엔트리 교체 이후 임태훈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코멘트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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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도 맹활약하여 11승 5패 4세이브 13홀드 3.06ERA를 기록하였다. 특히 이 당시 철벽불펜으로 활약하던 고창성-임태훈-이재우-이용찬을 일컬어 KILL 라인이라고 불렀다.어 잠깐만... 그리고 이 라인은 20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했다. 시즌 말 허리 통증 때문에 9월 내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SK와의 플레이오프에 필승조로 매일 출근하며 열심히 등판했다.

1.2.4. 2010년

2010 시작 전 김경문 감독은 네이버에서 박동희 기자와 인터뷰할 때 임태훈의 선발은 팀의 우승 이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으나, 임태훈이 시즌 시작 후 허리통증 호소와 구위 하락을 보이자 임태훈을 휴식이 보장되는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시켰고, 이에 임태훈은 2010년 5월부터 선발로 등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하고 말았다. 기록은 130⅔이닝 9승 11패 1세이브 1홀드. 여기까지는 그냥저냥 하는 선발 투수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 평균자책점 5.30
  • 피홈런 27개(리그 1위)
  • 피안타율 0.267(전년대비 0.056상승)
  • 경기당 삼진비율(K/9) 7.094(전년기록 8.660)

2010년은 전형적인 타고투저 시즌이었음을 감안해도 너무한 성적이었다.그런데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에 승률 1위 투수하고 홀드 3위한 투수를 밀어내고 국대에 뽑힌게 개그

전반적인 성적이 전년도 특급 미들맨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많이 망가졌다. 너무나도 많은 피홈런때문에 홈런공장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으며, 레기라는 별명도 생겼다(…).

특히 임태훈의 투구 스타일 자체가 직구와 슬라이더의 구속으로 압도하는 정통파라 한번 실투가 나오면 새털같이 가벼운 공이 되는데 갑자기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한 것이 문제가 된 듯. 사실 데뷔 시즌 이후로 소화 이닝이 점점 줄고 있었다. 3년간 300이닝 가까이 던진 후유증이었다. 이재우와 함께 구위가 좋은 투수일수록 불펜에 때려박는 투수운영의 제물이 된 셈이었다.

사실 이런 홈런공장장막돼먹은 스탯은 2010 시즌 중반 이후의 일이다. 초반에는 마치 파이어볼러인 마냥 무시무시한 직구를 뿌리면서 선발로 기용하길 잘 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9승까지 찍어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정말 10승도 할 기세였다. 하지만 시즌 후반에 접어들면서 고질적인 허리 부상과 체력 저하로 성적이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2010년 9월 2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팀이 스코어 6:5로 지던 9회초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였으나, 폭풍같은 볼질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볼넷 3개를 조공하고 희생번트 실책을 저지르며 강판당했다. 불꽃놀이를 해볼까 이를 보고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신춘문예의 거목이라고 했다. 이날 임태훈은 0이닝 15투구수 3볼넷 4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99.99이 만화와는 전혀 관계없다를 기록했고, 팀은 9회초에만 5점을 내주며 스코어 10:5로 패했다.

임태훈은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3이닝 3피안타 7볼넷 2탈삼진 4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6.00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0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4:1로 이기던 9회초에 2루수 고영민의 실책으로 선두 타자이자 3번타자인 박석민의 대타 조영훈이 출루한 게 화근이 되어 스코어 4:2, 1사 1, 3루가 된 상황에서 임태훈이 5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강봉규를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유격수 땅볼을 유도했으나 이 공을 유격수 손시헌이 놓치는 실책을 저질러 스코어 4:3, 1사 2, 3루의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임태훈은 8번타자 채상병, 9번타자 김상수를 각각 7구와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아웃시켜 경기를 끝냈다.
임태훈은 이날 ⅔이닝 20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인 10회말 1사 상황에서 이현승에 이어 5번째 투수로 등판한 뒤 여전히 스코어 5:5인 연장 11회말에도 등판했다. 선두 타자이자 9번타자인 김상수에게 안타, 1번타자 조동찬에게 희생번트를 허용하고 2번타자 신명철 타석 때 폭투를 하여 1사 3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신명철을 삼진으로 아웃시켜 2사 3루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 박한이를 고의사구로 거른 뒤 최형우에게 볼넷을 허용하여 2사 만루가 되었고, 2스트라이크2볼에서 던진 7구를 박석민이 쳤는데, 이 타구가 느린 속도로 애매하게 유격수 쪽으로 굴러갔고, 유격수 손시헌이 이 타구를 놓치고 3루주자 김상수가 홈으로 들어와 스코어 5:6으로 경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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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플레이오프에서의 유일한 자책점이 결승점이 되는 바람에 팀이 삼성 라이온즈에게 패해 2010년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자 임태훈은 결국 무너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하필이면 히어로즈의 투수들이었던 장원삼이현승의 대 투수전이 이날 벌어졌고,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손시헌이 차분히 아웃카운트를 잡았으면 이닝을 끝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바운드가 매우 큰 내야 땅볼이었기 때문에 손시헌이 제대로 포구했더라도 아웃시키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야구 해설가 중에서는 허구연은 타자 박석민이 1루에서 아웃이 됐을 것이라고, 하일성은 세이프가 됐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어찌됐든 야구에 만약은 없다. 결국 마운드에 주저앉고 그 주위를 흥분하여 달려드는 삼성 선수들과 오버랩되는 모습은 삼성팬들을 제외한 관람하던 모든 이들을 눈물나게 만들었다.

그런 성실한 플레이의 모습에 두산회장님격려로 업어주시기도 했다. 이날 임태훈은 1⅓이닝 41투구수 3피안타 2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패를 기록했다.

임태훈은 2010년 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등판하여 7이닝 7피안타 3볼넷 8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29, 1홀드 1세이브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임태훈은 2010년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7경기 등판하여 10이닝 10피안타 10볼넷 10탈삼진 5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2.70, 1홀드 1세이브 1패를 기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뷔 때부터 대활약을 한 두산 투수진의 마당쇠이자 대들보였고 곱상한 외모로 팬들 사이에서도 아기곰이라 불리며 김현수와 함께 투타에서 각각 팀을 상징하는 대표선수이자 마스코트이기도 했다. 어쨌든, 여기서부터 설명할 항목은 위에서 서술된 이미지, 성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봐도 좋다.

1.2.5. 2011년

임태훈/2011년 항목 참조. 이 시점을 기준으로 임태훈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나빠졌고, 4월까지만 해도 상위권에서 선전하던 두산 베어스에 DTD를 선사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거기다 추가로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고, 두산 베어스는 5위로 미끄러지고 만다.

또 다른 계기는 정재훈이혜천. 정재훈은 그간 좋은 불펜 투수로 활약하였지만 2011년 들어 이 명성을 까먹은 것마냥 작가인생을 시작해서 불펜을 말아먹었고, 이혜천은 11억 원을 들여서 일본에서 복귀시켰으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긴커녕 마운드에 큰 핵폭탄을 떨궈놓고 말았다.

1.2.6. 2012년

4월 11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양훈을 상대하여 6이닝 85투구수 3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6:0으로 승리하여 임태훈은 629일만의 선발승을 거두었다. 당연히 기사 리플에는 축하 그딴 거 없고 디스로 시작해서 디스로 끝났다.

4월 17일 잠실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 82투구수 3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고 팀이 스코어 1:9로 승리하여 시즌 2승을 거두었다. 상대 선발 투수장원삼. 장원삼은 1이닝 8실점으로 그냥 털렸다.

4월 2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6이닝 102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4사사구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2:1로 승리하여 시즌 3승째를 거두었다. 개막 이후 3연승을 기록하며 두산의 철벽 선발진 구축이라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4회말 최정에게 솔로홈런을 맞긴 했지만 그 한 방이 이 경기에서 SK의 유일한 안타였다. 연속 무실점 기록은 14이닝에서 종료. 2011시즌에서 초반 김선우가 보여주던 무적포스를 임태훈이 보여주었다.그리고 이에 저주받은 김선우는 1869가 되었다. 이닝만 조금 더 먹어준다면 확실한 3선발로 자리잡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잘나가는 듯 했지만 5월 3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4⅓이닝 89투구수 3피안타 4사사구 6탈삼진 5실점 5자책점으로 털렸고 팀이 스코어 0:10으로 완패하며 임태훈은 시즌 첫 패를 당했다.

그리고 5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4⅓이닝동안 106개를 던지며 9피안타 2피홈런 3볼넷 2삼진 7실점(7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임삿갓에게 밀려서 시즌 끝나면 군대가는 노예를 위해1회부터 작심하고 두들긴 SK타자들과 본인의 제구력 난조에 힘입어 투구수가 심하게 불어난 탓에 5이닝도 먹지 못하며 크게 부진했다.

다음 날인 5월 10일, 임태훈은 허리 통증을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5월 20일 1군으로 다시 콜업되어 이날 잠실 야구장에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스코어 5:5로 맞선 9회초 1사 1, 2루 상황에 구원 등판했고, 이진영을 고의 볼넷으로 걸러 만루의 배수진을 친 후 정성훈을 4-6-3 병살타로 낚았다. 그리고 10회초도 삼자 범퇴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11회초 1사 후 오지환, 박용택 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하고 이대형을 2루수 땅볼로 잡은 2사 2, 3루 상황에서 이진영에게 권선징돡포결승 2타점 좌전 적시타를 허용하였고 팀이 스코어 7:5로 패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2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판관 돼청천이 없는 롯데 자이언츠 전에 선발 등판했다가 스코어 0:0, 4회초 1사 1루에서 팡관 박청천에게 2점 홈런, 5회초 2사 1, 2루에서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는 등 5이닝 97투구수 6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4탈삼진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하였고 팀이 스코어 8:4로 패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회초 2:0으로 뒤진 상황에서 김선빈의 타구에 오른쪽 팔꿈치를 맞았다. 그리고 김선빈은 열사가 되었고, 7개구단 팬들은 하나가 되었다! 선빈후드!!!! KIA 타이거즈 성향인 야갤에서 유일하게 안까인 순간! 엠팍의 분위기를 예로 들자면 맞은 직후엔 그래도 사람이 다쳤는데 너무하는거 아니냐라는 두팬들의 의견이자 임삿갓 옹호하는 드립이 잠시 반짝 했으나 삼재드립을 친 기사가 재조명되며 다 버로우. 안면이나 국부에 직격을 날리는 선수는 명전에 보낼 기세이다. 이후 정대현으로 투수 교체. 일단 진단 결과는 단순 타박상이라고 한다.

6월 19일 1군에 복귀. 당분간 불펜에서 뛴다고 한다. 고로 노경은이 임태훈과 맞바꿔 선발로 보직 변경되었다. 그리고 노경은이 각성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게 되었으나 2년후 저주를 받아 100-100 클럽에 가입하고 말았다. 2012 임태훈의 유일한 업적

6월 22일 김선우-변진수의 뒤를 이어 두산의 세번째 투수로 8회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후 프록터에게 마운드를 내주고 물러났다.

6월 28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구원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4월 24일 SK전 선발등판 이후 참 오랜만에 승리를 챙겼다.

7월 1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9회초 한상훈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했고 그 순간 각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또다시 권선징악포 드립이 흥했다.

그리고 7월 30일 부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9월 22일에 다시 1군으로 등록되었다. 게다가 전날 안그래도 불륜스캔들로 논란이 되었던 모 선수가 음주운전에 사고까지 내자 바로 임의탈퇴 되었던 것과 비교되면서 역시 이 날도 비난을 받았다.[3]

결국 2012시즌 최종 성적은 22경기 출전 50⅓이닝 4승 4패 3홀드 평균자책점 4.65점으로 초라하게 마무리하였다. 2013년에 집필할 기세.

1.2.7. 2013년

허리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는지 2군에서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고, 피칭 내용도 좋지 않았다. 이 와중에 선수단이 초토화된 한화 이글스와의 트레이드 루머가 돌기도 했다. 카더라에 따르면 유창식 (+ 현금) ↔ 정수빈 or 김재호 or 고영민 + 임태훈이었다고 한다. 여론의 반응이 당연히 안 좋았기에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그런데 5월 17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그냥 은퇴해라

5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회말 1사 때 핵폭탄을 구원하러 등판하였으나 부처님들이 계시는 신성한 한밭야구장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핵실험을 진행했다. 첫 타자 최진행에게 밀어내기 볼넷, 김태균을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김태완에게 좌익수 앞 2타점 적시타를 맞았고, 3회말에는 오선진에게 좌중간 1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4회말에도 최진행김태균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다시 김태완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1과 ⅔이닝 동안 2자책점을 기록하고 홍상삼으로 교체되었다.대전시민 여러분께서는 지금 59번에 이은 초대형 핵실험을 보고 계십니다.

5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변진수를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지만 1과 ⅓이닝동안 1피안타 3자책점으로 거하게 불을 지르고 내려갔다. 재미있는 것은 5월 18일과는 반대로 임태훈이 내보낸 주자들을 이혜천이 불러들이는 분식회계를 당했다는 것. 팀도 15:7로 완패.

5월 2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3:6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오현택 다음으로 등판했지만 1이닝 1실점으로 그냥 털리고 강판.

그러다가 6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7:2로 앞선 상황에서 4이닝도 못채우고 강판된 개릿 올슨을 다음으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앞선 경기에 비해서 비교적 잘 틀어막았으며 팀도 8:4로 승리하면서 올 시즌 첫 양아승리를 거두었다.

6월 6일 LG 트윈스전에서 8회 의장대 출신의 다리 긴 남자에게 우월 솔로포를 맞고 결국 그날 팀이 졌다. 울트라 권선징돡포!!!

6월 11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에 등판해서 2실점을 헌납하며 또 털렸다. 거기다 박진만에게 통산 1500안타를 헌납했다.

6월 1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⅔이닝동안 탈삼진 4개를 잡았지만 5피안타 4실점을 당하여 강판되었다.

6월 22일 1군 엔트리에 말소되었다. 그리고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 콜업되지 못했다.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9경기 10⅓이닝 1승 1패에 평균자책점은 11.32이라는 막장 스탯으로 끝을 맺었다.뭐어야 이게에

1.2.8. 2014년

혜르노빌이 나간 팀의 (어떤 의미로) 두산 火펜의 희망

스프링 캠프에 따라가긴 했지만 고질적인 허리와 골반통증으로 중도하차했다. 팬들은 꼬시다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도 불미스러운 일과는 관계없이 작년의 성적과 비교해 보며 "쟤는 야구선수 생활 오래 못할것 같다"며 한입모아 말하는중. 확실히 이상태라면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것 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


2군에서도 평균자책점 5점대를 찍으며 부진했는데 8월 21일 삼성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야구팬들은 2군에서의 이런 막장 스탯에도 1군에 올릴 정도로 두산 투수진이 이렇게 비참해졌냐는 반응. 이날 임태훈은 팀이 1:5로 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사실 그렇게 좋은 성적은 아니다. 1이닝 18구 투구에 1 탈삼진이지만, 2 피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3일후에 바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송일수감독은 야수보강차원에서 그랬다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이미 박살 난 불펜인데 야수보강은 핑계고 여론때문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는 반응.

9월 6일 SK전에 1:7로 뒤진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 1이닝 동안 사구 2개 삼진 1개 무실점을 기록.

10월 16일 SK전에서는 선발 이현승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해서 5:1로 이기던 경기를 3피안타 2볼넷 4실점(이닝 없음)으로 동점을 만드는 승부조작급 졸전(...)을 펼쳤다. 사실 옆집이 4강가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는 그의 충성심이라 카더라

1.2.9. 2015년

미국 전지훈련에는 허리 부상으로 불참했다고 한다.#

시즌동안 1군에서 전혀 모습을 볼 수 없었다가, 결국 6월 25일에 본인 요청으로 임의탈퇴가 되었다. 과연 본인 의지'만'이었을까?

1.3. 기타

특이하게도 포스트시즌과는 악연이 깊었다. SK 와이번스김재현에게 약한 것도 그렇고 2007년부터 시작해서 두산의 우승을 위하여 묵묵히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그 성과는 안습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국가대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많이 등판하지는 않았지만...다만 여기서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으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에 불가피하게 김광현 대신 정우람을 거르고대표팀에 승선하였다! 그리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혜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서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엔트리 교체때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컸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출장전 시즌 성적은 한마디로 엉망이었고, 이는 경쟁자로 꼽히던 좌완불펜투수의 이점까지 가진 정우람과 비교되어서 더욱 말이 많았다. 굳이 정우람이 아니라도 임태훈보다 성적이 더 좋은 후보군 투수는 많았다. 이닝 때문에 평균자책점 2위를 놓친 승률왕 차우찬, 팀 상황에 따라 보직을 바꿔가며 미친 듯이 굴려지면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이승호, 딱히 좋은 성적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임태훈보다는 좋았던 장원준 등등... 게다가 이 선수들은 모두 김광현과 같은 좌완이었다! 임태훈 본인도 당연히 좌완이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하지만 결국 임태훈이 승선한 것은 성적보다는, 병역면제인 김광현 대신 같은 팀의 정우람이 승선할 경우의 논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에 대한 보상문제[4] 그리고 대표팀 감독은 임태훈의 교체로 대신 승선한 윤석민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의 조범현 감독이었다는 것 등등 실력 외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평이 당시에도 일반적이었다. 여러가지로 운이 맞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전에는 농담처럼 우승팀 멤버인 것이 죄라고 적혀있었지만, 우승팀 멤버라서라는 것은 SK팬들의 피해의식이 아니라면 그다지 영향이 없었다. 앞의 3가지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기 때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당연히 2010 시즌 도중에 열렸고, 2009 시즌 우승팀은 기아이고, 이것이 조범현 기아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된 이유였다. SK가 2010년 시즌에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을 해서 페널티를 줬을리는 당연히 없다.

2010년의 정우람과 임태훈의 성적을 비교해보면, 홀드 3위+출장경기수 2위+평균자책 3점대 < 피홈런 1위+평균자책 5점대의 결과로 광저우 AG 국대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임태훈도 2008년에 윤석민에 밀려 베이징 올림픽 국대로 선발되지는 못했긴 하나, 적어도 정우람은 국대에 가서 운 좋게 면제를 받은 선수들에 비해서는 차라리 양반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아니, 셋 다 이미지 추락 등의 사건사고가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절대로 양반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대호무릎팍도사에서 말한 바로는, 우승하자마자 랜덤으로 고르는 도핑 테스트에 당첨, 제대로 환호도 못하고 끌려갔다고. 그 당시 임태훈이 주최측 도핑 요원에게 낙점을 받은후 시뻘겋게 열을 내면서 "나 이거 세레모니 조금 하고 들어간다고! 제발 좀 기다려달란 말야!!"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세리머니는 하고 TV에도 나왔고 도핑 테스트받으러 갔다고 한다. 당시 동료들은 얘가 왜 금메달까지 받아놓고 그렇게 똥씹은 표정인지 알길이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대호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다.

KIA 타이거즈양현종과는 매우 절친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서로 벨트를 빌려주는 사이라고(...) 그리고 SK 와이번스의 타자 박정권김재현,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에게는 정의구현자천적이라 할 정도.

마구마구에는 아예 11임태훈 카드가 없고, 컴투스 프로야구 2012에서 국대를 달지 않은 선수가 되었다.[5]

선천성 허리척추분리증을 앓고 있어서 평소에도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 [6] 플레이오프에도 내내 진통제를 맞고 압박붕대를 한 채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평소에도 "허리야, 버텨줘!"라고 쓴 모자를 쓰고 나온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5차전에는 이 글귀가 "허리님...버텨주세요"라고 바뀌어 있는데, 잘 보면 싸인펜으로 지운 글귀는 "허리야, 버텨라!"이다. 이전 "허리야, 버텨줘!" 모자에서 새 모자로 교체했을때 "허리야, 버텨라!"라고 바꿨는데 준플 1차전에 그 모자를 쓰고 나와서 시원하게 털렸다.(...) 그래서 다시 이 문구로 바꿨다고 한다.그거나 그거나!! 결국 5차전에서도 털림

2013년 12월 19일 고 이두환을 기억하기 위한 일일호프에서 치킨을 서빙하는 모습이 찍혔다. 팬들은 그냥 짜지라는 반응.

그런데 2011년 9월 사과문을 두산 홈피에다 게시한 적이 있긴 하다. 이하 사과문.

안녕하십니까? 임태훈입니다.
먼저 프로야구 선수이자 공인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염려를 끼쳐드린 점, 팬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 동안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여름 군사 훈련을 마치고 2군에 합류해 합숙생활을 하면서
오직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에만 전념했습니다.

지난 8월 말 이천에서 2군 경기에 처음 등판한 날,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곳이 바로 마운드라는걸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정말 야구가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이제 용기내어 마운드 위로 걸어가려 합니다.
오늘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그리고 제 삶이라 할 수 있는 야구를 위해 오늘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 동안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실상 내용을 보면 어째 사과문이 아니라 변명문 같다. 게다가 이 내용에는 송지선 사건에 관련된 내용이 없다!모 카페의 사건의 사과문이 생각나지만 신경쓰면 지는거다.

2013 시즌 이후 한 장애유기아동 보호시설에 4년간 후원을 했다는 기사가 떴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 언플, 물타기 소리만 바가지로 먹었다.병주고 약주고 기사

게다가 2013 시즌의 삭감당해야 마땅한 개판 5분전 성적에도 불구하고 연봉 협상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팬들의 분노가 폭발, 최저연봉도 아깝다느니 방출감이라느니 무지막지하게 까였다. 같이 기사에 뜬 이용찬은 묻혔다 기사

2014 시즌 후 양준혁 야구재단 주최 2014 제3회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종범신 팀 2루수로 출전, 혼자서 5타점을 기록해 종범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대다수 야구팬들은 다 좋은데 임태훈이 왜 나왔냐면서 깠다.

아이유가 좋아하는 야구선수라고 한다. 하지만 2년후 임태훈이 저주를 내렸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참고로 리그베다 위키 한정 김영민, 서재응, 정찬헌, 최희섭, 윤완주와 함께 논란 중 인물틀이 달린 몇 안되는 현역 선수이다.2014년 말에 진갑용, 허도환도 논란틀 떼었는데 장원준강민호는 2015년 2월쯤에 간신히 논란틀이 떼졌다

어째 이 항목에 송지선으로 링크되는 게 많다.

1.4. 그 위엄넘치는 명투수의 기록들

이 문단의 이름에서 이분이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이다.
  • 투수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7 두산 베어스 64 101⅓ 7 3 3 20
(2위)
2.40 77 41 93
2008 57 87 6 5 5 14
(5위)
3.41 69 28 83
2009 58 88⅓ 11 5 4 13
(4위)
3.06 67 27 85
2010 36 130⅔ 9 11 1 1 5.30 134 59 103
2011 19 19 1 1 7 0 3.79 16 8 13
2012 22 50⅓ 4 4 0 3 4.65 53 37 33
2013 9 10⅓ 1 1 0 0 11.32 18 11 13
2014 6 3⅔ 0 0 0 1 9.82 7 7 4
통산 - 271 490⅔ 39 30 19 52 4.00 441 218 427

참고로 2011년 후반부터 평균자책점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알렉스 로드리게스? 게다가 둘다 이미지가 나빠진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까지 똑같다! 물론 임태훈은 약을 하진 않았지만... 이제 먹튀라인에 이름 올리면 완벽한 흑역사가 된다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7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상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래봐야 의미없다

2. 인권운동가 임태훈


林泰勳


커밍아웃게이이자 위 항목에 있는 임삿갓으로 인해 많이 묻혀진 피해자로서 1996년부터 동성애자 인권모임 친구사이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기 시작해 '동성애자 인권연대'를 창립했으며, 이후 동성애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활동을 했다.

활동을 보면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위한 입법활동을 통해 독립적인 국가인권위원회 탄생에 산파역할을 하였으며 차별금지법의 근간인 차별금지사유를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군형법의 계간 처벌규정과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규칙에 저항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행했다. 이것으로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수감기간 동안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과 더불어 양심수로 지정하여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전세계적으로 전개하였다.

출소 후에는 군인권실태조사등을 통해 군부대에서 매복, 경계군무 등의 병영체험을 하면서 군복무중인 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앞에 언급했듯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실제로 군복무를 한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군 경력 없는 민간인이 국방부장관을 맡는 등 군부의 민간통제가 이루어지는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반박하고 있다.

이후 군인의 인권문제를 전담하는 단체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의 변호사와 함께 군인권센터를 설립하여 소장으로서 여러 활동을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군인권센터 항목 참조.

이 인물이 언론에 많이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제28보병사단 폭행치사 사건(윤일병 사건)에 대해서 군 당국의 초기 발표내용이였던 "생활관에서 만두를 취식하다가 목에 걸려서 질식사했다."라는 내용을 뒤집고 "고문에 가까운 지속적 폭행을 당해서 폭행에 의한 쇼크사로 죽었다."라는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폭로한 사건이였다. 실제로 해당 항목에 보면 이 폭로 이후 상상을 초월한 폭행사실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군대폭력이 아닌 살인에 가까운 집단폭력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9월 26일 제28보병사단 폭행치사 사건 법정 출입과정에서 헌병대의 인권침해에 항의 하다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주심 군판사 김송이 소령에 의해 감치명령을 받았다. 민간으로는 최초로 군사법원에서 감치 재판을 받았다. 대한민국 헌법 27조 2항은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안에서는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날 재판은 명백한 헌법위반이다. 현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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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입단 동기인 이용찬이 약물+음주뺑소니를 저질러서 KILL라인의 핵심인 두 사람이 금지어에 등극했다.
  • [2] 특히 은퇴 후가 아니라 현역 시절, 그것도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시기에 사건이 터졌고, 상대 인물이 방송계라 마찬가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 때문에 파장이 엄청나게 컸다.
  • [3] 이때 까인건 이용찬이었다. 이유는 사건이 상당히 비슷했는데 이에 대한 각 구단의 처사가 달랐기 때문.그리고 야구와는 무관하지만 저 사람도 음주운전으로 사고쳐서 자진하차했었다. 근데 이용찬은 음주운전을 했는데 쫒겨나지 않은게 함정.
  • [4] 야구 관계자들은 한결 같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문제로, 당시 대표적으로 꼽히던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박기혁과 성적이 엉망이던 임태훈이었다.
  • [5] 그런데 권혁이나 송승준 같은 경우에도 국대를 달지 않았다. 2013에서 수정되었다.
  • [6] 한대화도 같은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6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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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6-28 17: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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