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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룡

last modified: 2015-03-13 00:23:25 by Contributors

이름 임하룡(林河龍)
출생 1952년 10월 31일,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1]충청북도 단양군
신체 167cm, 68kg, O형
학력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데뷔 1981년 KBS '즐거운 토요일'
가족 아들 임영식

KBS 코미디대상 대상
심형래
(1988)
임하룡
(1989)
김미화
(1990)
임하룡
(1991)

Contents

1. 개요
1.1. 주요 출연작


1. 개요


한국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 본명은 임한용. 1952년 충청북도 단양 출신이다.
이북출신도 아닌데 실향민이다. 어린시절 살던 마을이 충주댐공사로 수몰되었기 때문.

중동중학교, 제천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1997년 명예학사를 받았다.
고등학교때 오락부장을 맡으면서 좀 놀았...다는 고백을 했는데 이때 경험이 추억의 책가방이다. 재능이 얼마나 있어냐면 열차를 타고 가는데 어린 아기가 너무 울고 하는데 그 앞에서 재롱으로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계속 웃었다는(...) 군 입대를 했을 무렵 친척들에게 보증및 사기 크리로 가세가 기울어서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정신병원에서 사이코드라마를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밤무대에서 사회를 보다가 KBS 특채로 코미디언이 되었다. 이때 밤무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바로 전유성학래.

코미디언으로 활동했을 당시 심형래와 더불어 개그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활동을 보였다. 초창기에는 애드립으로 라디오 방송에서 북한 군관 흉내를 냈는데 적화통일하면 순자동무래..운운하는 바람에 80년대 무기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중전 능멸죄 전유성도 비슷한 케이스로 출연정지를 먹은 적이 있는데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후 KBS 하룡서당을 통해 이름을 얻고 출연하는 코너마다 대박을 쳐서, 요즘말로 국민오빠 반열에 올랐다. 이 무렵 KBS 코미디의 4대천왕이라면 단연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 임하룡이었다. 다만 오늘날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인지도나 파괴력이 2% 부족한 면이 있는데, 독자적인 개인기나 애드립 등으로 튀는 스타일이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음으로 양으로 받쳐주는 2인자 타입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은근히 웃기는 모습.

조폭 보스 '쉰옥수수'로 철없는 2인자 '밥풀떼기' 김정식과 똘마니들을 거느리고 소동을 벌이는 '도시의 천사들'이나, '장군'으로 심형래를 비롯한 당나라 군대 얼빠진 병졸들과 투닥거리는 '변방의 북소리'에서 이런 강점이 잘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자신보다 서열(상하관계)가 낮은 '주인공(중심)' 역할을 맡은 개그맨에게 딴죽를 거는 역할. 임하룡이 개그계를 떠난지 거의 이십여년이 흘렀지만 찰진 츳코미를 거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개그맨은 임하룡 이외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주역급으로 활동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추억의 책가방'이나 '내 청춘을 돌려다오', '귀곡산장' 같은 코너에서 양아치 학생이나 노망젊은 오빠(…) 같은 확실한 컨셉을 잡은 캐릭터를 그럴싸하게 연기해냈다. 더불어 짱구는 못말려를 상당 부분 베꼈다가 금세 사라진 <두통이는 못 말려>라는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 적도 있으나 이건 알려지지 않았다.

이미 전성기가 다 지나가던 그 후의 시절, 예능에서 슬슬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던 시점에서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요리대결 프로그램에선 '코미디언은 웃기는거 밖에 못한다'란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그 프로에서 임하룡은 매주 당대의 소문난 요리사들과 요리대결을 했는데, 비록 승리는 한두번도 안되었지만 관중과 3人의 심사위원들과 매료시켜 3포인트中 한 포인트라도 따내면서 자신의 열정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2]

아직도 임하룡 별명이 젊은 오빠로 통하고, 개인기다이아몬드 스텝으로 기억하는 것도 이때 활약상 덕분이다.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 스텝을 신승훈에게 전수했다 카더라.

간간히 영화 쪽에 얼굴을 내밀었고, 어린이 영화 뿐 아니라 조재현이 나온 <얼굴> 등 나름대로 정통파 연기를 좀 했고 SBS 개국 이후에 기존의 코미디 쇼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와 후배 코미디언들의 득세로 코미디 쇼에서의 자리를 잃은 후[3] 코미디언 최초로 프리랜서 선언을 해서 MBC를 평정했고 이후 사실상 배우로 전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인터뷰를 통해 코미디언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는 걸 과시했다.

어떤 의미로 심형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만 감독이 아닌 배우의 위치를 고수했고 연기력도 좋아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하는 등, 코미디언 출신으로 영화계에 진출한 인물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다. 게다가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데 최강칠우에서는 주인공 칠우의 양아버지역을 하기도 했다.

여담인데 심형래를 혼내주는 스승이나 상관으로 하두 많이 나와서[4] 심형래 어머니가 임하룡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인품 좋은 선배로도 연예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듯. 이혼경력이 있던 이경애의 인터뷰에서, 당시 루머에 시달렸던 자신을 변호해줬던 유일한 인물로 임하룡을 꼽았고 박수홍도 감자골4인방 영구제명사건때 자신들을 변호해줬던 유일한 선배라고 임하룡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야말로 모두에게 존경받는 코미디언계의 '어른'으로 런닝맨에 출연했을 당시 유재석지석진 역시 깍듯이 대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예계에서 유명한 격자라고 한다. 8~90년대 온갖 군기잡기와 똥군기가 횡행하던 개그계에서 후배들을 갈구거나 때리지 않고 보듬어준 몇 안되는 개그맨이었다고 한다. 동료 개그맨들이 후배 개그맨들 모아놓고 군기를 잡고 있으면, 후배들 괴롭히지 말라고 말리던 사람이 임하룡이었다고. 그래서 아직까지 후배 개그맨들에게 받은 존경과 신뢰는 남다르다고 한다.

또한 연예계에서 경조사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별로 안 친한 사람이더라도 경조사가 있으면 꼬박꼬박 참여한다고 한다. 본인은 무슨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인간으로서 해야할 마땅할 도리라고 생각하는듯. 그렇게 경조사를 잘 챙기다 보니 임하룡 아들 결혼식 때 워낙 하객들이 많이 와서 줄을 섰다고 한다. 임하룡의 인망이 얼만큼 두터운지 알 수 있는 좋은 예.

2013년 3월 3일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 학래, 최양락, 장두석, 이봉원, 경래 등 올드 개그맨들과 함께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올랐고, 레전드 '다이아몬드 스텝' 알린 '추억의 책가방' 에서 열연을 보여주며 죽지않은 개그감을 선보였다. 이 때 임하룡을 패면서 혼내는 선생님 역을 맡았던 까마득한 후배 박영진은 비록 연기였지만 때리면서도 심장이 벌렁벌렁 했을듯... 그리고 깨알같은 임하룡의 대사 "선생님! 몇 년생이세요?", "선생님! 아버님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왠지 저는 알고 싶어요~"

그리고 SNL코리아 시즌2의 4화 '크루 스페셜'에서는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 김슬기와 부부기믹을 보였다. 이 때도 나이를 이용한 드립과 코믹연기가 일품.

1.1. 주요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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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름 때문에 생긴 개드립이지만(...) 성동일이 성동구 출신이 아니듯이 안동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 [2]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책임졌던 가수는 NRG의 전신인 '하모하모'(이성진, 천명훈) 였고, 심사위원 중 한명은 야구계 은퇴 후 잠시 예능계에 몸담았던 롯데의 수호신 최동원이었다...
  • [3] 이때 코미디 쇼에서 자리를 잃고 낙향한 코미디언들은 김창준, 박세민, 신경숙, 이하원 등이 있다. 김성은(미달이 아님)은 그나마 다행인 축에 속하는데 코메디언으로 얻은 인기를 이용하여 TV유치원 하나둘셋(현재의 TV유치원 파니파니)에서 깔깔마녀로 캐스팅돼서 현재까지 20년이 다돼가도록 활동중이다. 물론 이경규와 박미선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대성하긴 했다.
  • [4] 변방의 북소리말고도 X특공대라는 코미디 코너에서 임하룡이 특공대장으로 나오고, 얼간이 부하인 심형래가 나온다든지 임걱정이란 코미디 코너에서 임꺽정을 패러디한 임걱정으로 나오는 임하룡을 골탕먹이는 부하로 역시 심형래가 나왔으며, 내일은 챔피언의 복싱관장과 연습생 등 정말 많은 코미디 코너에서 단짝으로 나왔다.
  • [5] 이때는 단역으로 나왔다. 영화계 입문 초기였기 때문이다.
  • [6] 왜 그런지는 가사를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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