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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



Ingrid Bergman
잉그리드 버그먼
1915년 8월 29일 - 1982년 8월 29일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40년대 할리우드의 연인

Contents

1. 소개와 생애
2. 기타
3. 출연작

1. 소개와 생애

할리우드의 전설 중 한 분인 스웨덴 출신의 배우. 스웨덴에서는 '잉리드 베리만'이라고 발음한다. 북유럽 출신답게 178cm의 큰 키와 금발벽안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배우로 194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여배우들 중 한 분. 앵그리버드와는 관련이 없다. [1]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3살 때는 아버지를 여의어 숙부의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17세 때 스웨덴 왕립연극예술아카데미(Dramatens elevskola)에 입학해 연기를 배웠고 스웨덴과 일 영화계에서 활동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엑스트라나 단역 등으로 출연하던 버그만의 배우 생활은 1936년에 출연한 《간주곡》으로 새 길이 열리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간주곡》을 보고 버그만을 눈여겨보아 미국으로 초청한 것. 셀즈닉의 초청에 응한 버그만은 미국으로 건너와 《간주곡》의 리메이크작 《이별》(1939)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 데뷔한다.


그리고 1942년 《카사블랑카》로 일약 스타가 된다.[2] 이후 찍은 영화들 역시 호평을 받으며 버그만의 명성을 높였고, 버그만은 '스웨덴이 할리우드에 준 걸출한 선물'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할리우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버그만의 인기는 만인의 연인 수준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를 영화화할 때에는 헤밍웨이가 직접 주인공 마리아 역으로 버그만을 지명했다고 한다. 이 시기 앨프리드 히치콕과 여러 영화를 찍었으며, 1944년 출연한 《가스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베르트 로셀리니 감독과의 열애로 배우 경력 최고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버그만은 로셀리니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로셀리니 씨, 당신의 영화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편》을 봤습니다.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만약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그녀는 영어는 아주 잘하고, 독일어는 아직 잊지 않았고, 프랑스어는 썩 잘하지는 않고, 이탈리아어는 오직 ‘당신을 사랑해’만 알고 있는 배우인데요, 저는 당신과 함께 일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먼.”
출처

버그만은 이윽고 정말로 로셀리니의 곁으로 달려가 로셀리니의 영화에 출연하며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로셀리니가 유부남이었고 버그만 역시 남편과 딸이 있는 유부녀였다는 것. 이 불륜 사건은 1940년대 미국에 파란을 일으켰고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으며 버그만은 결국 할리우드에서 실질적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당시에는 지금의 할리우드처럼 레브리티의 스캔들에 그러려니 넘어가주지 않았다. 또한 유명인 싱글맘이나 혼외자녀는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에는 배우 경력을 위협했기에 로레타 영 같은 배우는 몰래 출산한 후 친딸을 입양하는 형태로 눈속임을 해야 했다.[3] 또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진 할로 등 스 심벌 이미지나 좀 덜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배우의 스캔들과 달리[4], 이 경우는 국민 여배우의 타락이니..

이때 앨프리드 히치콕도 버그만에게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었다. 히치콕과 버그먼이 연인 관계인 것은 아니었지만,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버그만은 히치콕을 높이 평가했었고 히치콕 역시 버그만을 자신의 작품들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특별하게 대우해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감독을 찾아 떠나버리니 배신감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이후 남편과 이혼하고 로셀리니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와 쌍둥이 딸을 두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로셀리니와 함께 영화를 찍으나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다. 다만 흥행에 실패했을 뿐이지 이때 찍은 《스트롬볼리》나 《이탈리아 여행》 같은 영화들은 소위 모더니즘 영화의 시초라 불리며 재평가받게 된다. 즉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 결국 로셀리니-버그만 부부는 이혼에 이르게 된다.

로셀리니와 헤어진 버그만은 다시 미국 영화계로 복귀한다. 6년의 시간이 흐르며 여론도 누그러져, 1956년 《추상(아나스타샤)》에 출연하면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로셀리니와의 이혼 이후에 한 번 더 결혼했으나 세번째 결혼도 그다지 순탄치 못해서 이혼했다.

1972년 방암 선고를 받았으나 연기에 매진, 1974년 출연한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8년 마지막 영화 출연작인 잉마르 베리만의 《을 소나타》에서 명연을 펼쳐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다.

1982년 8월 29일 자신의 생일에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 뒤 조용히 사망하였다. 향년 67세. 유작은 텔레비전 영화였던 《골다라는 여인》.

2. 기타

그레이스 켈리와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별로 안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히치콕의 여배우들이었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사족으로 켈리가 고등학교 시절 존경하는 배우로 잉그리드 버그만을 꼽은 적이 있다고 한다.


평생 세 번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평생 잔 다르크를 세 번 연기했다. 연극에서 한 번, 영화에서 두 번.

할리우드에서 추방되었을 때도, 복귀하여 할리우드에 돌아왔을 때도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준 것은 배우 캐리 그랜트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AFI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배우 50명" 중 4위에 랭크되어 있다.

첫 남편 피터 린드스트롬과의 사이에서 딸 피아 린드스트롬을 두었고,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사이에서 아들 로베르티노 로셀리니, 딸 잉그리드 이소타 로셀리니와 사벨라 로셀리니를 두었다. 피아와 이사벨라 역시 여배우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1983년부터 1996년까지 랑콤의 전속 모델로 활동해 이쪽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도 출연. 여담으로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딸 엘레트라 로셀리니 역시 랑콤 모델로 2012년 현재도 활동 중이다. 이사벨라는 이탈리아인 부친의 외모가 강한데 이사벨라의 딸은 외할머니를 쏘옥 빼닮은 외모로 셀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데뷔 전 가 너무 크다고 성형 권유를 받은 적이 있으나, 자신은 자기 코가 맘에 든다며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포크 가수로 유명한 디 거스리가 잉그리드 버그만의 팬이여서 곡을 바치기도 했다.

버그만도 로버트 카파에게 청혼을 하였다. 종전 무렵에 위문공연으로 와서 카파와 교제를 하여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카파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버그만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 죽은 자신의 첫 애인 생각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3. 출연작

간주곡 - Intermezzo (1936년)
달러 - Dollar (1938년)
여자의 얼굴 - En kvinnas ansikte(1938년) ※ 1941년 헐리우드에서 조앤 크로퍼드, 멜빈 더글러스 주연으로 리메이크
하룻밤 - En enda natt (1938년)
이별 - Intermezzo : A Love Story (1939년)
여섯째 달밤 - Juninatten (1940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Dr. Jekyll and Mr. Hyde(1941년)
카사블랑카 - Casablanca (1942 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For Whom the Bell Tolls (1943년)
가스등 - Gaslight (1944년)
세인트 메리의 종 - The Bells of St. Mary 's (1945년)
백색 공포 - Spellbound (1945년)
사라토가 본선 - Saratoga Trunk (1945년)
오명 - Notorious (1946년)
개선문 - Arch of Triumph(1948년)
잔 다르크 - Joan of Arc (1948년)
염소자리 - Under Capricorn (1949년)
스트롬볼리 하나님의 땅 - Stromboli(1950년)
유로파 51 - Europa '51 (1952년)
우린 여자 - Siamo donne (1953년) ※옴니버스 영화. 로셀리니 편에 출연
이탈리아 여행 - Journey to Italy (1954년)
불안 - La Paura (1954)
사랑 많은 여자 - Elena and Her Men (1956년)
아나스타샤 - Anastasia (1956년)
무분별 - Indiscreet (1958년)
여섯 번째 행복 - The Inn of the Sixth Happiness (1958년)
이별을 다시 - Goodbye Again(1961년)
방문 - The Visit (1964년)
노란 롤즈 - The Yellow Rolls - Royce (1964년) ※ 옴니버스 영화.
선인장 꽃 - Cactus Flower (1969년)
봄비 속을 - Walk in the Spring Rain(1970년)
외침과 속삭임 - Viskningar och Rop (1972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 - Murder on the Orient Express(1974년)
가을 연가 - Höstsonaten(1978년)
골다라는 여인 - A Woman Called Golda (1982년) ※ 텔레비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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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같은 시대에 활동한 스웨덴의 명감독 그마르 베리만과 혼동하지 않길.
  • [2] 사족이지만 버그만은 키가 178cm이어서, 174cm였던 보가트는 상자를 놓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 [3] 아이의 생부는 유부남이었던 클라크 게이블이었다.
  • [4] 그래도 시대가 시대이다보니,진 할로우도 미혼 임신때문에 몰래 낙태 시술을 받다가 부작용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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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0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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