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자본주의 맹아론

last modified: 2015-04-08 16:02:04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한국의 자본주의 맹아론
3. 반론
4. 현황


1. 개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받은 지역에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이후 대두한 이론으로, 훼방이 없었다면 열강의 개입 없이도 자연적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근대가 도래할 수 있었다는 이론.[1] 이는 '열등한 식민지인들에게 근대 문물을 전파시켜 개화시켜준 은혜가 있다'는 기존의 열강 중심의 이론에 대한 반대항으로 대두된 것이다.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럽 대륙 내부에서도 맹아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내생적 자본주의를 달성한 것은 영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는 영국에서 우연히 탄생한, 혹은 발명된 특수한 제도인가? 아니면 모든 인류 사회는 늦든 빠르든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닿을 수 있었는가? 가 쟁점이 되는 논쟁이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대두되었다. 칼 마르크스에 의해 세계사적 발전법칙이 창안 및 보편화 되면서 다른 지역 역시 세계사적 발전법칙인 고대-중세-근대의 발전과정을 거쳤음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일게된다. 세계사적 발전 법칙에 따르면, 사회는 원시 공산사회 →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제 사회 → 근대 자본주의 사회 → 현대(?) 공산주의 사회 순서로 발전한다. 이를 역사발전 5단계설이라고 한다. 즉, 이론상으로는 자본주의가 먼저 나타나야 공산주의가 그 다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 [2]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영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같은 자본주의 발달이 미약한 나라에서 오히려 공산주의 체계가 성립되었다. 곁다리이지만 이 때문에 블라디미르 레닌조차도 '혁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러시아 노동자의 선진성'과 '공산주의로 이행하기에는 생산력이 부족한 러시아 산업화 수준(혹은 노동자까지도)의 미숙함' 사이에서 이리저리 고민이 많았다.[3][4]

이 때 중국에서 마오쩌둥은 서구적 발전법칙이 중국에서 역시 발견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학계에서는 1920 ~ 30년대에 중국 자본주의 맹아론을 펼치게 된다. 한국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바로 이 중국의 자본주의 맹아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하게 된다.

2. 한국의 자본주의 맹아론

한국 사학계에서도 이를 주요 이론으로 삼고 있으며, 체성론을 비롯한 식민사관에 대항하는 학설로 떠올랐다. 일찍이 백남운을 비롯한 유물 사학자들은 마르크스가 확립한 5단계 발전설에 기초해 한국사의 단계적 발전론을 제시한 바가 있다.

해방이후에는 식민사관인 조선사회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주장이 많이 제기되는데 그중 1960~70년대 조선농업사를 연구한 김용섭과 송찬식, 강만길에 의해 자본주의 맹아론이 제기되었다. 그 중 김용섭은 「조선후기농업사연구」등 걸출한 농업연구 성과를 내놓은 사회경제사학계의 거물로, 사실 자본주의 맹아론은 거의 김용섭에 의해 주도되었고 송찬식과 강만길은 거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학자들은 17세기 이후 조선 경제에서 여러 가지 발전적인 모습들을 제시하였는데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관의 통제력이 줄어들었고 양반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사농공상 질서는 설득력을 잃었다. 이는 백성들의 자유로운 생산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 농업에서는 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이모작이 실시되었으며,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이 감소하여 일부 농민들은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다수의 농민들은 농업으로 생업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도시로 흡수되었다. 견종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밭작물의 생산 또한 증가하였으며, 고추, 담배 등 상업 작물도 이 시기 유입되었다. 또한 각 지방의 풍토에 맞는 작물들이 특화 재배되어 기존의 농업에 비교하여 획기적인 수입 증대를 이룰 수 있었다.
  • 수공업 및 상업은 조직화되고 상호간의 유통이 증가하여 근대적인 공장제 공업과 상인 조직이 등장하였다. 이는 민간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광업의 발전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대동법 등이 실시되고 을 매개로 한 무역이 증대된 데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은 농촌에서 유입된 이들이 임노동자로 고용되면서 해결되었다.
  • 상업의 발달로 자본을 축적한 상인들이 등장하였으며, 화폐(상평통보)가 널리 사용되어 상업 유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시가 널리 열리고 상업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이를 상인들이 연결하여 전국적인 유통망을 형성하였다. 해외 무역도 발달하여 청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펼쳤다.
  • 조선의 사대부들은 유럽의 요먼/젠트리와 비슷했으며 유럽의 부르주아도 대부분 농지에 기반을 둔 형태였다가 발전한 것이었다. 실제로 개화기에 신문물에 관심을 가지고 상업에 끼어든 사대부들도 존재하였다.

이외에 신분제의 붕괴, 평등 사상의 보급, 신문물과 신사상의 등장 등이 이를 뒷받침하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주로 경제를 다루므로 이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잘 반영되어 있으니 참고하자.

한편 근래에는 이덕일 등에 의해 정조는 이 시기를 이끌었던 군주의 대표주자[5]로 꼽히고 있으며(대표적으로 신해통공), 이 때문에 최근에도 정조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아졌다(예컨데 영조,정조 르네상스). 한편으로 19세기 세도정치는 이러한 자본주의 경향을 쇠퇴시킨 것으로 여겨졌다.

내재적 발전론과 같은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은 다른 개념이다. 내재적 발전론은 본래 일본의 조선사학계에서 정의된 개념으로, 식민사관에 대항하여 한국사의 흐름을 한민족의 주체적인 발전으로 파악하는 모든 역사 인식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이렇게 정의된 개념이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자본주의 맹아론은 내재적 발전론의 일환이면서도, 식민사관에 대항한다는 점에서는 핵심으로 볼 수 있겠다.[6]

중국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 중국의 화려한 경제력, , 시기 경제 발전과 공장제 수공업의 흥기, 민중 의식의 성장 등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에서도 상업 발전과 에도 막부 시기 민중 의식의 성장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맹아론을 펼치고 있는데,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가 자국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논하고 있다는 것은 특이한 면이라 할 수 있다.

3. 반론

자본주의 맹아론의 시작은 농경제사 연구자인 김용섭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가 내세운 이른바 경영형부농론을 시작으로 자본주의 맹아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자본주의 맹아론인데, 이 경영형부농론은 1980년대 초반. 지금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도하고 있는 이영훈 박사에 의해(그때는 교수가 아니었다) 정면 반박당한다.

김용섭은 농업연구를 통해 17세기 이전 양반의 대농장에서 사역하던 노비가 모내기등 생산성의 발달로 인해 독립적인 영농을 하게되어 소농사회 즉 봉건사회가 진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소농들 사이에서 높은 생산성과 농업생산품의 상품화 거래를 통해 성장하는 부농이 등장하고, 부농과의 경쟁에서 다수 농민들이 쇠퇴한다는 경영형부농론(다른말로 양극분해론)을 펼치게 된다.

이론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양반의 사역농장해체 → 소농사회진전 → 소농의 빈농/부농 양극분해

이 이론은 마르크스의 영국농민층 삼분화설에 기초하여 그 현상을 조선후기 농업변동에 대입을 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용섭이 말하는 경영형부농은 영국의 요먼(Yeoman)농가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즉, 선발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사회와 같은 농업변동이 조선후기에도 있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체성론에 대한 반박으로 제기되었는데, 여기서는 조선사회는 정체하지 않았고 도리어 선발산업국가인 영국과 같은 궤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1980년대 초 분재기나 양안 등을 통해 농업경작현황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영훈의 연구성과에 의해서 통렬히 반박당하게 된다.# 즉, 소농사회의 진전은 있었으나, 농민층의 부농/빈농의 양극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영훈은 박사학위 논문으로 그 의견을 피력한 다음 통감부 시기에 작성된 민적통계표 등을 근거로 20세기 초에도 상업, 수공업 및 광업 인구는 실질적으로 크게 높지 않았(1 ~ 2%)으며#, 광작으로 탄생한 대농장주[7]나 노임을 받고 일하는 임노동자[8]와 같은, 기존 설의 근거가 되는 근대적인 요소가 실재로는 부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영형 부농의 등장으로 인한 양극분해현상이 동시대 프랑스, 더 나아가 일본,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 농업변동양상에서 극히 드문 사례라는 점, 그리고 경영형부농이 대두하였던 영국 사회조차 1870년대 이후로 소농사회화가 진전된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더불어 자본주의 맹아론의 원래 모델인 영국에서 양극분해현상으로 인하여 대량의 산업예비군이 축적되지 않았다는 신경제사학의 새로운 연구성과가 제출됨에 따라 자본주의 맹아론 및 경영형부농론의 토대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오리지널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근래에는 낙성대 연구소 쪽을 중심으로「수량경제사[9]로 다시 본 조선후기」라는 공동저서가 나와 조선경제는 18세기 안정세가 나타났지만, 19세기의 변화로 이러한 경제가 붕괴하였다는 주장을 피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맹아론 논쟁은 이태진 교수를 비롯한 교수들의 반론을 통한 학문적 논쟁에 정치적, 감정적인 반응이 더해지면서 차이를 봉합하지 못한 채 꽤 복잡한 양상을 보였지만, 이후의 역사학자들이 여러 모로 생각해볼 요소들을 남겼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연구성과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부분적인 비약이나 생략, 간과를 지적하거나 경제문제를 절대시하고 절대당위로서 내세우는 부분은 반대하는 의견이 강하다.[10]

4. 현황

아시아 전반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현재 학설로서는 제자리걸음 상태에 있는 상태이다. 옹호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가령 조선의 예를 들자면 '일제 강점기가 오지 않아도 한국은 알아서 근대화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것이 결국 자본주의 맹아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금방 알겠지만, 이 이론은 IF를 논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결정적이며, 따라서 강의에서 자주 듣는 비아냥인 말만 들으면 왜 근대가 안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까임을 받게 된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기존의 입장은 일제 때문에 근대가 올건데 못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해석을 하는 이후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선, 철학적, 과학적 기초가 제대로 쌓이지 않아 기계를 동반한 산업혁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 있을 것이고[11], 아시아의 경제 성장이 식민지에서 자원을 직접 빼내오던 유럽의 자본 유입으로 인한 것, 즉 수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있을 것이며, 변동이 계속되던 유럽과 달리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아시아의 지배 정권이 변화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서양에 대한 열등감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필연적으로 받게 되며[12], 자본주의 맹아론의 연구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철학적, 학술적인 발달을 증명하기 위해 실학을 발굴하고, 정치적 발달을 증명하기 위해 민운동을 연구하게 되며, 자본과 관련해서는 민족 은행과 거상의 등장을 논하게 된다.[13][14]

반면 사회주의 역사학과 낙성대 학파를 모두 비판하는 아래의 입장도 있다.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또 한편으로 '근대에 대한 지향'에도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근대가 무엇이며 그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당연히 도래해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유럽권의 변화에 맞춰 아시아의 변화를 끼워맞춘다, '구체적인 실체가 존재하지도 않는' 근대를 설정해놓고 이에 학설을 끼워맞춘다는 학계에 대한 비판을 불렀고, 변화가 느리거나 오히려 쇠퇴하는 시대가 있을 것인데도 억지로 '발전'의 틀에 역사를 집어넣으려 한다는 비판을 부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중상주의적 발전에 동아시아의 농업 중심 발전을 끼워맞출 수 있는가?' 게다가 아메리카에서 쏟아지듯 들어온 '자본'과 아시아에서 무역으로 형성된 '자본'이 같은 선에 놓일 수 있는가? 등등. 이러한 비판은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모두 서양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절대적 가치로 두고 그것을 '자생적으로 일으킬 수 있었는가?'와 '타율적으로 일깨워진 일인가?'를 놓고 싸우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비판한다.

한편 중국의 경우, 영국은 중국을 개항만 시키면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오는 값싼 원료와 산업화된 공장제 기계공업에서 찍어내는 면제품을 중국에 수출하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편전쟁 이후 징조약의 체결에 이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값싸고 질 좋은 인해전술 중국산 수공업 면제품이 버텨내면서 영국의 대중국 수출은 10년간 정체수준에 머물렀고 오히려 중국산 차, 생사, 도자기 수입이 급증하여 아편의 대량 수출로 겨우 수입초과를 메우는 지경에 머물렀다. 오오 대국의 위엄 이로 미루어 봤을 때 인건비가 공장제 기계공업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싼 경우, 굳이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이행해가야할 이유가 상실된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그보다 임금 부담이 덜 하거나 사용자의 귀찮음이 덜 해진다는 이유로 일반 가정[15]에서 가전제품 구입보다 하녀 고용을 선호했음을 상기해보자. 중국의 이러한 경향은 무려 현대에까지 이어져 로봇을 이용한 인건비 절감형 자동화 공장이라는 20세기 말의 트렌드를 또다시 인해전술로 날려버리고 폭스콘으로 대표되는 저임금을 통한 저비용 달성이 세계 공업 생산의 대세가 되어버렸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이 기계를 이깁니다.

----
  • [1] 맹아(萌芽)는 싹이라는 뜻이다.
  • [2] 마르크스는 생애 후반기에 근대적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수십년간 연구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자본론을 저술하였다. 위의 역사발전단계설도 당시 정치적,경제적으로 가장 선진적이었던 영국의 역사적 변화를 오랫동안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다.
  • [3] 이 괴리는 1930년대 스탈린의 급속한 (농민층에 대한 폭력을 동반한) 공업화로 나타났다.
  • [4]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러시아어판 서문을 보면, 마르크스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독일이나 영국과 같이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가 먼저 공산화된 후에 러시아를 지원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트로츠키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역으로 러시아를 먼저 공산화시키고 세계 혁명을 통해 부유한 나라를 공산화시켜 자신들을 원조하도록 하려 했지만 이런 나라들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실패해 무위로 돌아갔다.
  • [5] 정조를 몽군주로 추켜세우는 분위기조차 있다.
  • [6] 그래서 그런지, 자본주의 맹아론의 카운터격인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는 내재적 발전론=자본주의 맹아론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 [7] 모내기법으로 잡초를 뽑는 노동력 같은 것은 줄지만 다만 그 뿐이며, 논갈이하고 거름 주고 물 대고 거두어서 털고 하는 노동력은 감소하지 않았기에 실제로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 [8] 대표적인 주장의 근거는 화성성역의궤이지만 부역으로 노임을 제공하고 지은 건물은 사실상 수원화성밖에 없으며, 민간의 기록 또한 부실하다는 점을 들었다.
  • [9] 수량경제사는 최근 경제학계에서 경제사연구의 주류 방법론으로써, 사회경제사를 통계, 게임이론, 미시/거시경제이론 등에 기반을 둔 경제이론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영어로는 cliometrics라고 한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사연구의 주도권은 거의 모두 수량경제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넘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0] 감정적인 논쟁이 된 것은 사실 자본주의 맹아론의 문제라기 보다는, 낙성대 학파의 연구 방향이 한국 근현대 경제사의 고찰이 아닌, 현대 경제학의 분파 중 하나인 경제성장론에서의 최대의 수수께끼 중 하나인 한국의 경제 발전을 해설하기 위하여 '가장 고전적인' 설명 방식인 장기적인 자본의 축적을 주장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경우, 이미 충분히 자본이 축적되어 근대적인 의미의 투자를 수행할 수 있는 일본이 없었다면 강점기의 경제적 호황이 시작될 수 없으며, 한국전 당시의 자본 파괴를 긍정한다면 장기 자본 축적이 필요한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이 이승만인가 윤보선인가 박정희인가라는 논쟁이 시작되게 된다. 양쪽 모두 한국 사학계에 논란거리가 된 주장이다. 덧붙여 이 주석에서의 자본은 Money 뿐만이 아니라 시설과 인적 자본도 포함함에 유의.
  • [11] 유럽의 17 ~ 19세기는 철학과 과학의 뿌리가 잡히고 지금도 해당 학문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성들이 나타나 투닥투닥하던 시기이다. 특히나 수학적인 지식과 응용에서 유럽이 동양에 비해 높은 성과를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 [12] 이미 일제 강점기 시절에 있었던 논쟁인 듯 하다.
  • [13] 국사 교과서의 조선 말기의 발달 항목은 이 부분을 요약한 것이나 다름 없다.
  • [14] 주류 사학계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은 실학과는 달리, 농민운동은 해당 분야에 대한 논문을 뒤져보면 알겠지만, 자본주의 맹아론만큼이나 정체된 연구분야가 되었다...
  • [15] 당연히 세탁기를 살 정도로 여유가 있는 부유층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8 16:02:04
Processing time 0.118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