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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일본)

last modified: 2015-04-13 19:05:2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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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 정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던 자유민주당 당사

Contents

1. 개요
2. 성립
3. 일본정치의 핵심
3.1. 역대 선거결과
4. 중의원 선거
5. 참의원 선거
6. 비교 항목

1. 개요

약칭 자민당(自民党). 속칭 자민막부 영어 약자는 LDP[1]. 창당이래 반세기 가까이 일본 최대 정당자리를 유지하고 있다.참고로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극우정당이 아닌 중도우파 정당이다![2] 물론 이런 인식을 만든데에는 아베 신조 총리를 위시한 일부 극단적인 우익 정치인들의 영향이 크다. 진짜 극우 정당은 따로 있다.

ldp.png
[PNG image (6.39 KB)]
[3]
정식명칭 自由民主党(じゆうみんしゅとう)
영문명칭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설립일 1955년 11월 15일
대표 아베 신조
의석수(중의원) 291석 / 475석
의석수(참의원) 114석 / 242석
웹사이트홈페이지

2. 성립

보수우파 기믹인 일본 자유당과 보수 중도파 야당 기믹이 강했던 일본 민주당합당으로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 정치는 크게 자유, 민주, 사회로 나누어져있었다. 보수우파 정당인 자유당은 자유, 민자를 중심으로, 중도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일본 진보당과 뒤를 이은 개진당, 자유당의 비 요시다 시게루 계열(하토야마 이치로 등)을 중심으로 창당됐으며, 사회당의 약진으로 의석이 위태로워지자 합당을 결의하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 사회당은 좌우로 분열하는 병크를 저지르고 자민당 결합이 될 즘(1955년)에야 다시 심기일전하여 뭉쳤으나 그 결과는 1958년 선거의 자민당 287석 vs 사회당 166석 이었다.[4] 이후 사회당이 당내 노선투쟁으로 지리멸렬해지면서 자민당은 사실상 일본 정계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3. 일본정치의 핵심

일본의 정치를 1955년부터 현재까지 1993년 8월부터 1994년 6월 (10개월), 2009년 12월부터 3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일당 우위체제를 유지해 온 일본 최강의 권력집단이며, 그 탓에 자민당 총재 선거는 거의 일본 총리를 가리는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자민당이 너무나 오랜 세월을 지배해왔기에 일본의 정치는 거의 정당 정치가 아닌 자민당 내의 파벌 정치나 다름없으며, 이는 일본의 민주주의는 허약하다는 비판을 받게했다.[5] 당연히도 해방 후 50여년간 사실상 독재를 해 온 한국 보수정당들의 역사적 모델. 정계와 재계, 언론의 강력한 연합이라든가 이념적 유연성등 특성은 사실 자민당의 집권사와 한국 정치의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하지만 뜯어보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한국의 경우처럼 심각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민당은 전체 의석의 2/3이상은 차지하지 못해서 헌법 수정은 불가능했고, 21세기 들어서 세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자민당 내에서도 호헌파가 상당수 있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일본이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헌법 9조를 바꾸지 못한 이유이다.)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삼선 개헌, 유신 개헌등 개인 독재나 군사, 일당 독재에 의해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온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55년 체제는, 정확히는 1.5정당(또는 1 1/2 정당) 체제를 의미했다. 무슨말이냐면 제1야당으로서 자민당의 2/3을 저지하는 일본 사회당(좌파)이 부분적인 양당제를 유지시켜주었기 때문. (애초에 55년 체제란 표현 자체는 이합집산하던 일본 정치가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제로 통합된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1996년 이후, 사회당은 자민당과의 연정과정에서 동의한 소선거제하에서 대거 의석을 잃고 사회민주당 등으로 분당되면서 주요 지지세력인 노동조합 등이 민주당으로 대거 이탈, 군소정당이 되었다. 그리고 뒤에 보듯 파벌이란 성질을 생각하면 사실 일당이라고 보기도 조금 힘든 감은 있다.

자민당의 상당수 의원은 일제시대 구 관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인물이 많아,[6] 보수 우파적 성격을 띄며 이것이 현재까지도 한국의 식민지 시기에 대한 망언과 혐한열풍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다. 오랜 집권 동안 부패도 상당했지만 아주 절대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여하간 고인 물인지라 제대로 썩은건 사실이고, 의원 세습 문제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그나마 일본군 신설등의 우익성향은 안보투쟁 이후 가시 노부스케가 물러나면서 많이 잠잠했으나 2000년대 모리 요시로가 집권한 이후에 심화되었다.

자민당의 파벌은 역사도 대단히 길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크게는 보수 본류와 보수 지류(방류), 그외로 나뉘는데 그 안에서도 여러 파벌로 나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었으며, 2009년 참패 시점에서 자민당 내의 파벌은 7~8개였다. 그 중 당내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등 수 많은 총리를 배출했다. 자민당 최후의 총리였던 아소 타로의 파벌은 본인을 영수로 하고 있는 아소 파로 6번째 규모였다.

사실 파벌들의 크기는 30여명 가량으로 적당하게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파벌이 빠지면 과반수가 깨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에 한다하는 파벌은 죄다 정권에서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웬만한 파벌은 빠진적이 없었다. 이러면서 총리는 다른 파벌에서 내보내고 알짜 상(장관)들을 장악하는 "킹메이커"도 꽤나 많았다. 제왕적 총리를 막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것도 자민당 안에서의 이야기. 더구나 솔직히 말이 파벌안배 내각이지, 바로 말하면 나눠먹기 내각이다.

파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세습 정치이다. 세습 정치인의 수가 한때 자민당 중의원 중 무려 50%가 넘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해 △'정치인 직업학교'격인 사숙에서 현실 정치를 학습하고 △대기업·정부관청에 잠시 근무한 뒤 △정·재계 명문가 자녀와 결혼해 △아버지의 선거 기반으로 의원에 당선되는 과정을 통한다. 이런 세습정치인들은 ‘오봇짱’, 우리나라로 치면 '도련님'이라 불리며, 서민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일절 보지 못해서 그들을 거의 천민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본 보수화 경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파벌 영수'가 거의 필수이며, 파벌에 들지 않고 총리가 되는 것은 이미 달성한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 되는 것'보다 힘들었다. 일본의 총리는 의원들의 간선제로 내각에서 결정하는 것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이건 민주당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파벌 때문에 총리 개인이 뭔가 정책을 실현하려고 해도 다른 파벌들이 동의하지 않는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선거의 대패에 따라 파벌들이 대부분 반토막 나고 심지어 궤멸되면서, 파벌은 사실상 폐지, 붕괴되었다. # 지금 남은 건 크게 네 다섯파 정도라고위키백과 #. 하지만 여당인 일본민주당도 파벌 정치가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일본 민주당도 여덟 아홉 그룹(파벌)로 나뉘어져 있어서... [7] 그랬다가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다시 자민당 파벌정치가 슬그머니 부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야쿠자통일교가 이 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만 이런 드립은 일본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치는 드립이다.통일교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총리가 독도 망언 따위를 할 리가 없잖아?

2009년 8월 30일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8] 중의원 총 480석 중 119석 획득. 이로서 1955년 이후 단 한 번도 내 주지 않았던 원내 다수당 타이틀을 민주당한테 넘겨 줬다.

자민당에서 탈당한 주로 극우성향의 의원들이 "민나노당(みんなの党,모두의 당 혹은 다함께당. 영어로는 Your Party;;)", "일어나라 일본(타치아가레 닛폰, たちあがれ日本, Sunrise Party)", "신당개혁新党改革" 등을 창당하는 악재도 계속되었으나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둘째 아들을 중심으로 한 홍보와 간 나오토 총리의 소득세 인상 병크가 합쳐지면서 2010년 선거에서 51석이나 확보하면서 84석이 되었다.[9] [10] 민주당은 44석을 확보해 106석. 여3당을 모두 합쳐도 110석이다. 과반(121) 저지는 물론이고 정권 재창출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10석이나 확보한 민나노당이 캐스팅보터로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혐한초딩들과 뭉쳐서 일본의 공중파 언론(NHK 등)을 잠식해 들어가는 무서운 짓도 강행한 적이 자주 있었다.

2ch의 아스키 아트사이타마 드립의 AA가 이 정당 로고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

2006년 7월 19일 미 국무성에서 공개한 외교사료집 FRUS에 의하면, 미국 CIA가 50년대 말 부터 64년도까지 자민당 선거비자금 및 야당 분열(사회당과 민사당)등을 지원했다고 한다.[11]

2012년에 들어가 자유민주당은 다수의 병크를 폭발시켰다. 5월에 코메디언 모토 준이치의 어머니가 생활보호금을 수급하고 있었던 점을 자유민주당 소속의 타야마 사츠키 의원등이 고발, 코모토 준이치는 사죄 해야 한 상황에 발전해서 예능활동에도 지장이 나오고 있다. 어머니에의 생활 원조를 하지 않은 코모토 준이치의 도의적 문제도 있지만 생활보호 제도개정을 위해서 카타야마 사츠키 의원이 개인 공격한 점도 문제가 되었다. 6월에는 공명당과 공동으로 충분한 논의를 시키지 않는 만행을 범해서 불법 다운로드에의 형사처벌 도입을 포함하는 개정 저작권법을 성립했다. 이로인해 일본 네티즌의 엄청난 반발을 사게 되었으나 하도 여당 민주당이 시망이라 제1당+ 최대 단독 과반은 확실했다.

이 때문인지 다니가키 대표의 후임을 선출하는 당대표 선거에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해 이시하라 노부테루 간사장,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등이 출마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중이다. 국민 여론은 이시바 전 방위상의 지지율이 높은편이지만 전문가들은 결국 아베 전 총리가 대표에 선임될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예상대로 9월 26일 치러진 대표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1,2위 득표를 해 결선투표가 치러졌고 결선투표에서 아베 전 총리가 역전에 성공해 당 대표에 취임했다. 당대표 선거 이후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민당은 지지율 35%, 민주당 14%, 일본 유신화 12%로 나타나 다시 자민막부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결국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면서 12월 16일에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집권당이던 민주당이 뚜렷한 선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자민당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산케이 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자민당이 286석까지 가능하다고 전망해 사실상 단독과반이 가능할것이라고 한다. 마이니치 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자민당 단독으로 300석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는 결과도 나온 상황. 이런 상황으로 본다면 자민당의 단독과반은 거의 기정사실로 보이며 자민당의 전통적 연정대상인 공명당이 30여석, 하시모토 도루와 이시하라 신타로의 일본 유신회가 최소 40석 이상으로 자민+공명+일본유신회가 연정을 하게 되면 평화헌법 개정도 가능한 상황이다[12]. 안그래도 북한 리스크때문에 골치를 썩는 한국 입장에선 극우로 치닫는 일본 리스크까지 골치를 더 아프게 할 전망.

결국 2012년 12월 16일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결과 294석으로 단독과반을 넘어서 절대안정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국가수반 지명투표는 자동적으로 아베 신조 총재가 선출되는게 기정사실이라 아베 내각이 출현할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민당이 마냥 좋아하기만도 뭣한 게 2013년 7월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가 예정되어 있다.[13] 사실상 아베 내각의 중간평가 성격이 될것으로 보여서 아베 내각이 2013년 상반기에 뭔가 보여주지 못한다면 바로 역풍을 맞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아베 내각이 상반기중에 뭔가를 못한다면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일본 유신회가 약진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아베 신조 내각이 일본 엔화 가치를 급격히 끌어내리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일본 내에서의 인기가 매우 좋기 때문에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도 압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3년 5월 자민당,공명당,일본유신회가 힘을 합쳐 아동포르노 개정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는데 문제는 해당법이 심각한 논란과 문제를 불러일으키고있는 한국의 아청법의 열화판으로 18세이하의 청소년의 수영복 차림이나 멀쩡한 교복차림의 사진집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는등 병크를 터뜨리는바람에 자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던 넷우익과 오타쿠를 비롯한 서브컬쳐층과 관련기업들이 등을돌려 자민당을 미친듯이 비난하고있어 인터넷에서 압도적인 여론우세를 차지하던 자민이 스스로의 메리트를 완전히 날려먹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6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민주당과 유신회가 죽을쑤는 틈을 타 전원당선이라는 ㅎㄷㄷ한 기록을 남겨놓으며 압승했다.[14] 그런데 전원 당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단독 과반에도 못미친다(…) 오히려 일본 공산당이 제1야당 자리를 꿰차며 대약진을 거둬 도쿄도의회 선거는 사실상 공산당의 승리라는 평가도 나오는 상황. 한편 일본 유신회망했어요 그래도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단독 과반확보에 실패하긴 했어도 공명당과 합해 135석을 확보하면서 압승을 거두었다.

2015년 4월 12일 일지방선거에서 20년 동안 난공불락의 민주당 요새였던 홋카이도사이타마를 함락시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뽑는 지방의원 중 50.5%로 사상 최대 의석비율을 뽑아냈으며, 홋카이도사이타마 등 난공불락의 야당 지사를 전부 여당 지사로 채워넣고 각종 시장, 촌장, 정장 선거에서도 40% 넘는 의석을 홀로 쓸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169명 후보 전원이 당선이라는 대기록을 또다시 달성하고야 말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장기집권 드라이브는 이제 추월차선으로 진입한게 확실해졌다.

3.1. 역대 선거결과

4. 중의원 선거

[15]
연도의석수정원득표율(지역구/비례대표)
195828746757.80%
1960296[16]46757.56%
196328346754.67%
196727748648.80%
196928848647.63%
197227149146.85%
197624951141.78%
197924851144.59%
198028451147.88%
1983250[17]51145.76%
1986300[18]51249.42%
199027551246.11%
1993223[19]51236.62%
1996239[20]50038.63%/32.76%
2000233[21]48040.97%/28.31%
200323748043.85%/34.96%
2005296[22]48047.77%/38.18%
200911948038.68%/26.73%
2012294[23]48043.00%/27.62%
201429147548.10%/33.11%

5. 참의원 선거

연도개선/비개선득표율(지역구비례구)총합 의석수/참의원 정수
195661/61--122/250
195971/62--133
196269/73--142
196571/69--140
196869/68--137
197163/72--135/251
197462/64--126/252
197763/61--124
198069/66--135
198368/6943.2%35.3%137
198672/7145.1%38.6%143[24]
198936/73[25]30.7%27.3%109
199269/3945.7%33.2%108
199546/6525.4%27.3%111
199844/5930.4%25.8%103
200164/4741.0%38.5%111/247
200449/6635.0%30.0%115/242[26]
200737/4631.0%28.9%83[27]
201051/3333.3%24.0%84
201365/5042.7%34.7%115[28]

6. 비교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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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Liberal Democratic Party의 약자. 리버럴이란 단어가 보통 미국에선 진보를 뜻한다는걸 생각하면 뭔가 아이러니하다. 리버럴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정당
  • [2] 사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시바시 단잔이나 사토 에이사쿠, 미키 다케오,스즈키 젠코, 가이후 토시키, 미야자와 기이치(이 양반 시절때 고노 담화가 발표되었다), 오부치 게이조등 한국입장에선 나름대로 온건적인 정치인들도 자민당 소속으로 총리를 지냈다. 물론 2000년대 이후에는 후쿠다 다케오 정도밖에 없지만
  • [3] 참고로 정식 당 로고는 따로 존재한다. 국화문양 가운데에 '자민(自民)'이라고 새겨져있는것이 정식 당 휘장이다.#
  • [4] 자민당은 후보 분열을 잘 통제한 반면 사회당은 8석 밖에 늘리지 못했다.
  • [5] 동아시아 정치를 연구해 온 미국의 정치학자 T.J. pempel은 일본 정치를 가리켜 'uncommon democracy'라고 칭하기도 했다.
  • [6] 대부분이 화족 출신이다. 단, 자민당 출신 도쿄 도지사이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평민 출신이었던 데 비해 민주당 전 대표였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매우 유서깊은 화족 가문 출신이었듯 예외도 가끔은 있다.
  • [7] 따지고보면 이런 군소 파벌 난립 자체가 내각제 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일본이 자민당이 오랜기간 집권해서 그렇지, 내각제 국가들도 파벌 다 있다.
  • [8] 이게 어느정도 수준이냐면 이전에 사상최저치였던 1993년도 선거에서도 223석은 확보했다. 다만 참의원 선거에서는 이정도 수준의 참패를 당한적이 4번씩이나 있었다.(1989년,1995년,1998년,2007년)
  • [9] 다만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는 사상최저치를 기록하는 명예불명예를 안게되었다.
  • [10] 신당 개혁(2석)과 공명당(19석)을 더하면 105석이 된다.
  • [11] http://www.randombooks.co.kr/book/book_detail.asp?ea_key=9390
  • [12] 다만 공명당은 평화헌법과 자위대 유지를 원하는 쪽이다.
  • [13] 자민당이 중의원에서는 안정적 과반수에 공명당 및 우파 정당을 포함하여 개헌선을 차지했지만, 참의원에서는 아직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내 우익세력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의 군대 전환을 위해서는 참의원에서도 개헌선에 해당하는 2/3 의석 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개헌 포기하면 참의원 씹어버리고 모든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건 함정.
  • [14] 다만 이 전원 당선기록은 이미 2005년과 2009년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공명당이 이록해낸바 있다. 특히 2009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의 전원당선을 기록한 일은 자민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있을때 치른 선거임을 감안하면 심히 놀랍다.
  • [15] 참고로 1993년까지 일본 중의원 선거구제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였지만 1996년부터는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있다.그러니까 비례대표란이 비어있어도 태클걸지말자.
  • [16] 역대 최고 의석점유율
  • [17] 1976, 1979년, 198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야당들의 분열 혹은 무소속 의원 영입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심지어 사회당 지지자들도 자민당 과반 붕괴에 별 감상 없었다고.
  • [18] 역대 최다의석
  • [19] 이번엔 정권 붕괴가 일어난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고, 1994년 6월에 사회당(일본), 신당 사키가케와의 연합정권(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도로 여당으로 돌아온다.
  • [20] 사민당 등과 연정.
  • [21] 공명당, 보수당 등과 연정.
  • [22] 단독 과반수 확보. 공명당 31석을 더하면 327석으로 개헌선인 2/3를 넘었다. 물론 헌법 개정은 실패.
  • [23] 공명당 31석을 더하면 325석으로 개헌선인 2/3를 넘은데다가 일본 유신회(54석)와 민나노당(18석)까지 있다! 보수적 성향의 무소속 4석까지 더하면 보수의석이 401석이라는 무서운 숫자. 으아아아 무섭다
  • [24] 역대 최다의석.
  • [25] 55년 체제하에서 유일하게 개선 제1당을 뺏긴 때였고, 이때문에 우노 소스케총리가 사임했다. 이는 사회당(당시 46석 확보. 총 68석)의 여성당수 도이 다카코의 여성후보 공천 때문이었는데, 1991년 이후 사회당이 자멸하면서(대표적으로 자민당과 연정) 망했어요...
  • [26] 15년만에 개선 2당으로 전락했다.
  • [27] 사상최초로 참의원내 제2당으로 전락했다.
  • [28] 오랜만에 참의원 1당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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