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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last modified: 2015-04-03 06:52:12 by Contributors

Contents

1. 裝備
2. 삼국시대 나라의 장수이자 삼국지의 등장인물 張飛
2.1. 개요
2.2. 정사
2.3. 가족
2.4. 연의
2.4.1. 연의의 피해자?
2.4.2. 연의에서의 장비의 지략
2.5. 여담
2.6. 관련 항목

1. 裝備


비품이나 부속품 따위를 장치(裝置)하는 일. 게임 같은 데선 아이템을 갖출 때 주로 쓰인다. 중장비의 장비도 이것.

참고로 군대에선 인원[1]이 쓰는 모든 물건을 장비라고 부른다. 어떤 양식으로 쓰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K2 자동소총도 장비고 K-9 썬더 자주포도 장비고 장갑차 정비고 안에 있는 고정식 크레인도 장비고 심지어는 제설작전 때 쓰는 눈삽도 장비. 심지어는 행정병들이 쓰는 볼펜마저 장비라고 부르는 간부도 있었다.

2. 삼국시대 나라의 장수이자 삼국지의 등장인물 張飛



중국인 화가 예슝의 삽화. 리동혁 번역본인 본 삼국지에 쓰였다.

촉한오호대장군
(정사 삼국지 열전 기재 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

내가 연인 장비다![2]
생몰년도 165?/167?~221년. 는 익덕(益德)[3] 촉한오호대장군 중 일인.

2.1. 개요

촉한의 창업공신. 탁군 출신으로 유비, 간옹과 동향사람이다. 장비의 선조들이 옛 연(燕)나라 지방 사람들이어서 그랬던지 스스로 '연인 장비'라고 부르곤 했다. 정사에서 유비, 관우, 장비의 의형제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장비가 관우를 형처럼 모셨다는 기록은 있다. 여하튼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하게 가까웠다는건 확실하다.

본래 삼국지연극으로 공연되기 시작하던 , 시대에는 장비가 주인공이었으며, 현재에도 중국(과 한국, 일본)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삼국지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장비가 관련된 민간 설화나 야사 또한 굉장히 많은 편이다. 호즙주에 관련된 이야기라든가, 적장과 지혜를 겨루기 위해 한 벙어리 문답 등이 유명하다.[4] 심지어 보전 에도 장비가 놀부를 징벌하는 대목이 나온다.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관련 서적을 뒤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2. 정사

유비조조와 함께 여포를 정벌할 때 참전하여 중랑장의 벼슬을 받았다는 것이 최초의 기록으로써 그 이전에는 유비를 따랐을 뿐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이후 유비가 형주로 옮긴 후 조조의 침략을 받았을 때, 장판파에서 도주 중에 유비가 기병 20기를 주어 내보내자 강가를 점거하고 조조군의 추격을 막았다. 이 장면은 연의의 유명한 장판교 이야기의 바탕이 된다. 이때 조운과 함께 싸워 유선을 구해내고 조조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정확한 상황을 묘사하자면 장비가 강가에 서서 "나와 생사를 겨루자!"라고 외쳤는데 아무도 감히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장비의 계략에 넘어간 조조가 매복을 두려워해 군사를 물린 것처럼 나오지만 정사에 기록된 그 당시 상황은 그렇지 않다. 다음은 정사에 기록된 장판교의 이야기이다.

장비가 강가를 차지하고 다리를 끊어버린 후 눈을 부릅뜨고 창을 비껴잡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장익덕이다. 와서 나와 사생결단 낼 수 있겠는가! 적들이 가까이 오는 자가 없어서 마침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체적인 묘사는 상단의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자세한 정황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장비가 다리를 끊은 것이나 조조군을 대치한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장비의 용맹을 묘사한 것인지, 접근경로의 차단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한 계교를 강조한 것인지, 아니면 사정거리 밖에서의 허장성세로 봐야 하는 것인지 등 여러 이견이 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수는 장비의 용맹과 담력을 강조하기 위해 저 에피소드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미 적군이 한 번에 우르르 몰려 올 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소리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비의 무뢰같은 대담함과 가상한 용기를 증명해준다. 한창 추격 잘 하던 위군 정예기병 5,000여 기가 장비를 포함한 불과 21기 밖에 안되는 기병을 두려워해서 접근을 못했다는 기록 자체가 장비라는 이름이 위군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위군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없었고 감히 나서는 자조차 없었다.

장비가 강을 건너는 다리를 미리 차단했다는 점에서 사정거리 밖에서의 허장성세였다고 볼 수도 있는 일화다. 물론 그냥 다리만 끊고 도망가면 호표기가 다리를 금방 수리하거나 저항없이 쫓아올 수가 있으니 장비가 어그로를 끌어서 시간을 벌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서촉 정벌 때는 제갈량과 출정하여 독자적으로 군사를 이끌고 유비를 구원하러 갔다. 파서에 이르러 태수 엄안을 격파하고 사로잡았으나, 엄안이 절개를 지키며 조금도 굽히지 않자 이에 크게 감복하여 엄안을 손수 풀어주고 예우하며 빈객으로 삼았다. 이후에도 가는 곳마다 승리하여 성도까지 나아가 유비와 만났다고 한다. 파서 전투는 연의에서 꽤나 재미있게 각색된다. 엄안이 성안에 틀어 박힌 채 수성에만 신경을 쓰자, 장비는 엄안을 밖으로 꾀어내기 위해 일부러 술주정을 부리고 자신의 대역을 앞세우는 등의 기발한 기지를 발휘하여 엄안을 기만한다.

한중 공방전 때는, 장합이 많은 군세를 몰고 쳐들어오자 적은 군세에도 불구하고 좁은 길목의 앞뒤를 차단하고 별동대를 운용해 철저하게 몰살시켜 장합이 겨우 십수 기와 함께 목숨만 부지하여 퇴각했다. 장비는 다른 길로 가서 장합을 요격했다고 정사는 기록하는데 우회로를 따라 좁은 길목을 행군하는 장합을 급습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합은 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명장이자 전략가인데 멋지게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아 앞서 설명되었던 것과 같이 장비는 단순히 용감한 무부가 아닌 용병이 뛰어난 사령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사서에서도 지구전에 능했다고 나올 뿐 아니라, 연의나 평화 등에서도 장비의 주요전투의 묘사는 지구전이 굉장히 많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지구전을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보는데다가, 수많은 명장들도 기피하고 패배한 이유가 바로 이 장기전 때문인데, 이것에 능했다는것 자체가 연의에서 묘사된 것처럼 지모가 떨어지는 장수로 본다는게 힘들다. 역사적으로도 지구전을 잘한 장수는 손에 꼽는다...

장비가 정예병 1만 여 명을 거느리고 다른 산길로 나아가 장합의 군대를 쳐서 전투가 벌어졌다. 산길이 좁아서 전후가 서로를 구원할 수 없게 되니 마침내 장합을 격파하였다. 장합은 말을 버리고 산길을 따라 오직 휘하의 10명과 함게 퇴각하여 군대를 이끌고 남정으로 돌아가니, 파군 지역이 안정되었다.

실제 장비의 사람됨은 연의와 확실히 달랐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대인과 소인을 구분했다. 대인(군자), 쉽게말해 인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대할때는 지위의 낮음, 입장의 차이, 자신에게 무례를 범함에도 개의치 않고 존중했다. 사로잡히고도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엄안을 존중하여 회유하는 데 성공했고, 식자로 유명한 유파에게 대놓고 모욕을 받고도 그냥 덮고 넘어갔으며, 유비가 자신을 추천하는 중신들의 의견을 뿌리치고 위연을 한중태수로 삼았을때도 군말없이 수긍했다. 의형 관우가 마초의 투항이나 황충의 후장군 임명후에 보인 태도와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장비는 서주 시절 조표와의 충돌을 제외하면 일체의 분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인 조표와 반목한 것에서[5] 알 수 있듯이 소인, 즉 능력 없고 인품도 비루한 사람들에겐 굉장히 가혹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소인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긴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장비는 관우와 반대로 부하들에게 가혹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수십년간 깨지고 도망가는게 일상사였던 유비군 소속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도 수십년간 무탈했던 점이나 혹독하게 대하면서도 그런 이들을 계속 옆에 둔 것을 보면 단순히 포악했던 것이 아니라 군법에 따른 나름의 훈계로, 형벌을 통해 소인도 군자처럼 행동하길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주군 유비가 따로 지적할 정도로 무척이나 가혹했던 것으로 보이고, 하필 이릉대전을 앞두고 부하인 범강장달에 의해 목이 달아나는 사태의 원인이 된다. 인물 감정에 일가견이 있는 유비는 장비가 부하들을 엄벌로 죽이거나, 채찍질한 뒤 살려두어 주변에 두는 등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지적해왔는데, 결국 장비는 이로 인한 부하의 배신으로 목이 달아난다.

최후 묘사는 정사는 범강, 장달이 단순히 수급을 취하고 오에 귀순했다고만 나온다. 다만, 바로 앞서 유비가 늘 장비에게 형벌이 가혹하니 이를 고치라고 충고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가혹행위로 인한 상관 살해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고대의 군법이란게 굉장히 가혹해서, 지금 기준으론 아무것도 아닌일로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하필 이릉대전 직전에 암살당했는가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는 현재로선 상상의 영역이다. 그래서 일부 삼국지 팬들은 범강, 장달은 오나라의 자객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6]

2.3. 가족

장비의 가족관계는 상당히 재미있다.

일단 놀라운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장비의 아내는 하후연의 조카딸이라는 기록이 있다. 어환위략서주에서 유비 세력이 괴멸된 이후, 장비가 여남 부근을 떠돌고 있을 때 결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더 가관인 것은 하후연의 조카딸이 땔나무를 주우러 왔다가 장비에게 잡혀갔다는 걸로 묘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일부에선 '장비 보쌈설' 내지 '로리콘 설' 등의 루머도 나돈다. 이 일화는 정사 삼국지 하후연 전에 딸려 있는 하후패전에 서술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하후연의 조카딸은 하후연의 형제의 집이 기근으로 모두 죽어버리자 하후연이 데려다가 기른 여자아이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애가 갑자기 적진에 가서 적장과 결혼해버렸으니 하후연은 대체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삼국지대전에서는 하후월희(夏侯月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이 이름은 일본 작가가 지은 것이다. 덧붙여 중화문화권에서 달 월자는 여자이름에 잘 쓰지 않는다. 화류계 여성에게나 쓰는 글자(육고기 月 부)이기 때문이다.

위략은 철저하게 위의 시각에서 서술된 저작이기 때문에, 특히 정통성 측면에서 위와 상극인 촉한에 관한 기록에 있어서 그 신뢰성이 강하게 의심받고 있고, 실제로 유선 벤허설처럼 누가봐도 왜곡인 기록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장비가 하후씨 집안의 여식을 처로 삼은 건 딱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지 않고, 또한 위의 개국공신이자 필두 명장인 하후연 집안에 대한 신상정보이기도 하니 왜곡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인다. 또한 유선이 하후패를 매우 우대한 정황을 보더라도 이는 사실에 가깝게 보인다.[7] 여담으로 후한말 중국의 경제사정은 호적의 80~90%가 유실될 정도의 막장 오브 헬게이트였기 때문에 하후씨의 고아가 땔나무를 하러 산에 가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건안 5년이면 황제가 끼니를 거르고 관리가 길거리에서 굶어 죽던 삼보의 난으로부터 불과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

장비의 아들은 요절한 장포, 시중을 지낸 장소가 있으며 장비의 손자는 장포의 아들로, 면죽성에서 제갈첨과 함께 등애의 공격에 맞서다 전사한 장준이 있다. 딸도 두 명 있었는데, 모두 후주 유선의 황후가 되었다. 황실의 외척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위상이 촉한에서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장비의 딸은 외모가 꽤나 준수했다고 하는데, 뿌리인 아버지가 형편없었다면 그런 딸은 나오지 않는다 하여 장비를 미청년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 장비를 모티브로 삼은 수호지의 임충이 미남형이라는 점이다. 즉, 백성들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현재의 백정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호남형으로 나오며, 삼국전투기에서도 나름대로 잘생긴 모습으로 나온다. 만화 람페이지에선 작가말에서 신빙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딸이 일본에서 가공의 캐릭터인 "장성채"로 구현되어 진삼국무쌍에 등장하기도 했다. 정작 남편인 유선은 6편에나 와서야 등장했다….

나중에 하후연의 아들인 하후패가 촉에 귀순해오자, 유선은 자기 자식들을 보이면서 "이 아이들에게는 하후씨의 피도 흐르고 있다."고 발언하는데, 두 명의 장황후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관계로 유선의 아들들은 하후씨와는 혈연으로는 무관하다. 이는 유선이 자기 아들 어머니가 누군지 몰랐을리는 없을테니 귀순해온 하후패를 안심시키고 그를 중용하기 위해 한 행동일 수도 있고 유교적 관점에서 후처 소생의 자녀라도 본처 소생으로 인식하는 점 등을 볼 때, 이점을 고려하여 하후씨의 외손이라고 발언했을 수도 있다.

2.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관우와 함께 도원결의를 맺었다. 또한 도원결의 직전까지 고기장사를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8] 위키백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일화 부분 참조.)

장비가 돼지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관우가 커다란 항아리를 장비 근처까지 들고 와서 그 항아리 속에 든 고기를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줬다. 장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상황이다. 옆에서 자기 물건보다 싸게 팔아도 열받는데 아예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 관우의 이 행동 때문에 관우와 장비는 싸움이 났다. 이 싸움을 유비가 중재해서 이를 계기로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를 맺었다고 기록되어 있다.[9]

연의에서는 과 싸움에는 천하무적. 여포와 1:1로 맞짱떠서 밀리는 기색없이 100합을 싸운 건 아마도 장비가 유일하다. 물론 대 여포 맞짱은 허저도 좀 하긴 했는데 보고있던 조조가 밀리는 것 같아서 전위이전, 악진, 하후돈, 하후연을 모조리 보냈다. 그래도 여포는 지지 않았다. 물론 장비도 후에 관우와 유비가 달려들긴 했지만….

마초와도 승부를 내지 못한 거의 유일한 캐릭터이다. 1:1로 하루종일 싸우고도 승부가 나지않아 횃불을 켜놓고 밤중까지 싸운 일화도 있다. 다만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마초가 밀리는 기세였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당시 장비는 전성기가 지난 4~50대의 나이였고 마초는 아직 팔팔한 30대였다.

여하간 덕분에 여포와 독특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여포가 서주에 있던 유비에게 투항한 이후로도 계속 장비는 여포 늑대론을 주장하며 끝까지 여포를 미워하는데, 이 때문에 역으로 여포의 장인으로 설정된 조표가 끌어들인 여포가 서주를 뺏는다. 간신히 우여곡절 끝에 소패로 돌아온 유비였지만 다시 장비는 여포가 상인에게 구입한 말을 대량으로 도적질하면서 또다시 전쟁을 일어나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그렇게 여포의 비겁함과 치졸함을 미워하더니만 죽고 난 다음에는 술을 마시면서 "아~그놈과 한 판 제대로 더 붙어봤어야 하는건데."하며 아쉬워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인다.

관우가 조조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때 안량의 목을 벤 직후 조조가 관우의 재능을 찬탄한 적이 있다. 그러자 관우는 조조에게 "저는 별 것 아닙니다. 제 아우 장비는 적장의 목베기를 주머니속 물건 꺼내듯이 합니다."[10]라고 말하여 장비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준 바가 있다. 이후 조조는 "장비란 이름을 옷깃에라도 적어두었다가 가볍게 상대하지 말라."라며 부하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것은 장판파에서 현실화된다.

연의에서는 그야말로 호걸에 전형적인 막내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술이라면 사죽을 못쓰고, 선의에서 한 일이 안좋게 되어 유비를 곤란하게 만드는 등, 왠지 말썽꾸러기 막내동생(?) 이미지로, 굵은 사람에겐 굵게 대하고 가는 조무래기들은 하찮게 여기는 호걸다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최후 묘사는 정사는 단순히 수급을 취하는 것만 나온 반면, 연의에선 관우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3일 내로 휘하 장병들이 쓸 흰색 깃발과 흰 갑옷을 준비하라는 명령의 기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한 범강, 장달을 오히려 채찍으로 벌하는데, 앙심을 품은 두 사람이 장비의 목을 베어 오나라로 도망친다. 정사에선 오에 귀순했다고만 나왔지만, 연의에서는 귀순 후 손권이 유비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돌려보내 둘 다 장포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나온다. 참고로 장비를 죽였다는 것 때문인지 우리나라에 범강, 장달 같은 놈이라는 말이 있고 때로는 아예 어원에서 멀어진 표기로 '범강장다리' 등의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이를 욕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을 뜻하는 말.

2.4.1. 연의의 피해자?

연의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 힘은 세지만 계책에 서툰[11] 경솔하고 단순 열혈하며 정이 많은 연의에서와 달리 정사의 장비는 지용을 겸비한 호걸이다.사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관우와 더불어 만인지적의 칭호를 받은 인간흉기이자 용병에 능한 장수로서, 위에서도 손꼽히는 명장 美덕후장합이 이끄는 군세를 한중에서 완전히 초토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장비의 용맹은 별다른 기록이 보이지 않는 시기에도 잘 알려져 있었던지, 관우와 더불어 만인지적이라고 정욱이 조조에게 말했을 정도였다. 이는 유비를 경계하기 위해 나온 말인 만큼 이미 많은 활약으로 유명했을 것이지만, 기록이 유실되어 진수배송지의 손에 들어가지 못한 듯하다.

연의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정사에서는 술에 취해 실수한 기록은 없다. 장비의 딸은 안전하다연의에서 술에 취해서 하비성을 빼앗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은 상관조표여포와 내통한 것이 원인이었다. 또 연의에선 꾀를 쓰는데 서툴다거나 어진 선비를 몰라보고 날뛰는 등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로로 잡은 적장도 뛰어난 인물이라면 격식을 갖추어 엄중하게 대했다. 진수가 "국사의 풍도가 있었다."고 평할 정도였으니 연의를 통해 정립된 망나니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여러모로 연의에서 재구성된 인물. 하지만 연의의 묘사가 단순히 장비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하여 연의로 인해 구축된 용맹무쌍하면서도 단순하고 순진한 장비의 성품이 서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 인기는 한때 관우마저도 뛰어넘을 정도여서 삼국지평화에서는 아예 주인공급의 인물로 등장한다. 확실히 연의에서 장비가 벌이는 실책은 독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할지언정 미워할 마음이 들게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탐관오리를 매질하거나 형제의 정에 눈물을 쏟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거나 민초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경향이 있다. 개그 캐릭터로서의 일면도 존재해서 제갈량의 초려에서 유비와 나누는 대화는 만담에 버금간다.

이러한 모습들로 볼때 장비는 엄연한 삼국지연의의 마스코트인 셈이다. 이는 유비나 여포 등 연의에서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과도 공통되는 점이다. 연의에서 묘사되는 유비의 무위의 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무능력자로 비쳐질 수 있으나, 연의가 저술될 당시에는 매력적인 인물상으로 생각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비해 정사에서의 장비는 호걸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유비, 관우와의 의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여러가지로 너무 잘난 나머지 자신과 동등하게 잘난 사람만 상대해 준다. 진수는 장비가 군자는 아끼고 공경하였지만 소인들을 보살펴 주지 않았다면서 결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장비는 부하인 범강장달에게 죽임을 당하는 최후를 맞이했다.

2.4.2. 연의에서의 장비의 지략

사실 장비가 연의에서는 지략이 부족하다는 오해가 많지만, 성격이 앞뒤 안가려서 그렇지 절대 머리가 나쁜 인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였으나 소패에서 개관광 당한 이후 나름대로 기습작전을 짜는 것을 시작으로 연의에서도 짬밥이 좀 쌓였을 후반부에선 꾀를 써 엄안을 관광보내는 등, 점차 완전체에 가깝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성장형 캐릭터. 공명이 이를 알고는 장비가 지모를 썼다며 유비에게 경하드렸다. 정사에서는 그 계략들이 모두 등장하진 않으나, 대인의 풍모로 엄안을 투항시킨 것이나 장합의 대군을 격파한 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애시당초 역사속의 장비도 지용의 겸비한 호걸인만큼 그 활약상을 그려내면서 장비의 용병술이 잘 드러난 부분이 생겼고 이로인해 연의에서도 처음엔 단순무식 캐릭터에서 차츰 성장하여 지략까지 겸비한 완전체로 성장하는 모습을 잘 그려주었다.

패배하긴 했으나 소패에서 유비와 대결에서 기습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후반에 가면 굵직한 전과가 많은데, 이때 잘 보면 하나같이 지형을 잘 이용한 부분들이다. 장판파에선 다리의 좁은 지형을 이용해 조조군을 위압하며, 입촉 때는 엄안이 이용한 샛길을 역이용해 엄안을 생포했고, 한중 공방전 때도 산의 지형을 이용해 장합을 물리친다. 의외지만 제갈량 다음으로 연의에서 지리를 잘 이용한 인물이 장비다. 이렇게 보면 장비는 지형 이용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봐야될 지도. 물론 그전에도 지략을 쓴 전과가 있다.

유비가 조조의 밑에 잠시 의탁했다가 공손찬의 죽음을 애도하는 복수전쟁을 한다며 군사를 빌려 탈출한 뒤 나중에 온 조조군의 장수 중 한 사람을 지략으로 잡았는데, 장비가 문자 그대로 몇 일을 개지랄부르스를 춰도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야습을 계획하고 술판을 벌였고 부하 중 한 사람이 주정을 하자 죽도록 패고 야습전에 제사지낼 제물로 쓴다고 한후 측근들에게 몰래 명해 풀어주라 한다. 그 병사는 적진에 가서 야습을 알리고 적장도 야습에 대비하는데 장비는 무슨 생각인지 병력을 셋으로 나눠 여러방향에서 처들어 가게 한다.[12] 드디어 적진에 입성했지만 야습에 대비해 진을 비워서 함정에 걸려서 도주하는 장비를 추격하던 조조군 장수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린 장비가 맹공을 퍼붓자 후퇴하는데 이미 진에는 장비가 산을 넘어 뒤를 치게 한 부대가 점령했다.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장수를 장비가 창대로 낙마시키고 생포를 명하자 한 병사가 생포를 하는데 다름 아닌 장비가 죽도록 패고 풀어줘 야습을 적진에 알린 병사였다. 즉 짜고친 고스톱.

그리고 산 지형을 이용해 장합을 잡기전에도 장합이 성에 처박혀 안나오자 몇날 몇일을 술판을 벌이고 논다. 이에 유비는 그전의 술로 인해 벌인 실수들을 생각해서 강제소환을 하려하나 그 작전을 눈치첸 공명은 오히려 좋은 술을 수레가득 보내고 유비에게 장비가 계략을 쓰고 있음을 언질해준다. 술이 도착하자 장비는 더욱더 크게 술판을 키우고 그 꼴을 본 장합은 "저 털보자식이 날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하며 전군을 동원해 기습공격을 하지만 술판의 상석에 있던 장비는 허수아비 인형. 그리고 진짜 장비가 술에 전혀 안취한체 장합을 공격한다. 대패한체 성으로 숨어 들어가 농성을 하니 주변 백성들을 불러들여 우회로를 알아내 산을 타고 넘어가 기습한다. 그리고 역시나 장합은 대패한다.

2.5. 여담

삼국지평화에선 그냥 주인공. 의병 모집할 때도 연왕(장비)이 유비를 수령으로 임명했다고 나온다(…). 또 능력 띄워 주는 것도 거의 창천항로의 조조 수준으로 띄워준다. 어느 정도냐면 여포가 장비를 못 당해내서 도망갈 정도다.(…) 거기다가 장판파에서 소리를 지르니 그 소리에 다리가 무너졌다.FUS RO DAH!!!!!! 이쯤되면 그냥 음파병기를 겸한 인간흉기다.(…)

장비가 서화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설이 있는데 후세에 지어진 이야기로 실제 근거는 없다. 박봉성 삼국지나 화봉요원, 적벽대전 등에서 소재로 사용하는 걸 보면 중국쪽에서는 나름대로 인기 있는 소재인듯 하다.

임진왜란 당시의 민간 야사에 의하면 선조가 장비의 환생이라서장비 안습, 관우가 도와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만력제는 유비라서 임진록에는 만력제의 꿈에 관우가 나와서 선조가 장비의 환생이라며 파병을 역설하는 장면도 있다.(…) 서민들 사이에서 장비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 장비의 서민적인 이미지도 한몫했을 듯하다.

그 덕택인지 흥부전에도 우정 출연한다. 흥부가 박에서 "비요 비요 양귀비"가 나왔다면 놀부에게는 "비요 비요 장비"[13]가 나와 혼쭐낸다. 거기다가 놀부의 등짝을(…).

이 이야기는 사실 명나라 때의 유머 이야기 모음집이 가장 오래된 출처다.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라는 것. 본래는 이런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들판의 해골을 수습해줬는데 그날 밤 "비요 비요"라는 말을 듣고 문을 열어주니 양귀비의 혼령이 와서 고맙다면서 운우지정을 나누고,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흑심을 품고 들판의 해골을 수습했는데 다시 그날 밤 "비요 비요"라는 말을 듣고 문을 열어주니 장비가….(…)

미트스핀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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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군대 용어로 '인원'은 사람과 완전한 동의어이다. 그래서 '이 인원, 저 인원'이란 말도 자주 쓰인다.
  • [2] 삼국지연의의 장판교에서 장비가 지르는 고함이다.
  • [3] 연의에서는 가끔 같은 발음의 "翼德"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장비의 이름에 "飛(날 비)"가 있기 때문에 맞추고자 "翼(날개 익)을 대신 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의미를 고려하면 "益德"이 맞다. '덕을 더욱 더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4] 창천항로에서도 장판파에서 조조와의 문답으로 등장한다.
  • [5] 자치통감에선 서주성에서 반란이 일어나 여포가 서주를 손에 넣은 배경을 장비와 조표가 반목해 장비가 조표를 죽인것에서 찾고 있다.
  • [6] 소노다 삼국지처럼 이런 자객설을 반영한 작품도 있다.
  • [7] 하후패가 투항하고 받은 관직은 당시 촉군을 이끌던 강유보다 높은 거기장군이었고 시호도 개국공신인 관장마황조보다 7년이나 먼저 받았다.
  • [8] 그래서 중국에서는 장비를 도축업자의 시조로 보는 곳도 있다.
  • [9] 다만 이 일화는 여러 각색 판본중 하나이기 때문에 삼국지연의 원본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도원결의 항목에도 나와있다시피 삼국지연의 원본에서는 도원결의를 맺기전의 유비, 관우, 장비의 행보에 대해서는 아주 짤막하게 언급되는 수준. 한국에서는 이문열이 이 각색 내용을 채택함에 따라 알려지게 되었다.
  • [10] 사자성어 낭중취물의 유례.
  • [11] 사실 연의의 장비도 무조건 무식한 닥돌형 장수는 아니다, 이하 후술.
  • [12] 셋 중 한 부대는 산을 돌아 후방을 기습하는 임무를 맡았다.
  • [13] 두 사람 다 박을 타려고 보니 박 안에서 사람 목소리로 "비요, 비요."하는 목소리가 났다. 문제는 위에 쓰인대로 흥부는 양귀비가 나와 첩으로 삼았고, 놀부는 장비가 나와 정신줄을 정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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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3 06: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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