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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last modified: 2015-03-16 18:26:06 by Contributors

Contents

1. 일생
2. 발명품들
3. 기타



장영실
(1390~1452?)

조선 세종 때 활약한 인물. 생몰년도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려진 기록이 없어서, 이에 대한 건 주로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1. 일생

본관은 아산현.(오늘날의 충남 아산) 기녀의 소생으로 동래현(오늘날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의 관노로 있었다. 그의 출생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가 소주, 항주 출신 중국인이라고 하며 기술력으로 미루어보면 혹 그가 나라에서 망명한 기술자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아산 장씨 종친회# 에서는 장영실이 아산 장씨 8세손인 장성휘의 아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아산 장씨 종친회의 주장을 따르면, 장영실의 아버지 세대는 5형제 5전판서 (장성길(成吉), 장성발(成發), 장성휘(成暉), 장성미(成美), 장성유(成裕)로 유명한 영남 출신의 고려의 명문이었다가 고려-조선 변천기에 급격히 몰락한 집안이라 역사 드라마 제작가들이 주목할 수 있을 만한 떡밥을 제공하고 있다. 말이 쉬워 그렇지 5형제가 다 과거를 붙은 것을 넘어 각부서 장관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종친회 운영자는 이들 아버지 세대가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다 이방원을 위시한 조선 건국 세력에 철퇴를 맞고, 이 때 장영실의 어머니가 관노가 되었다는 추리를 하고 있다.[1] 사실 여부를 떠나 역사 드라마 한 편이 될만한 엄청난 떡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떡밥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것이 장영실의 영은 아산 장씨 족보상의 항렬과 맞는다. 그리고 나머지 4형제들은 어떻게 경북 산골에 숨어들어 무덤도 남기고 후손도 계속 이어오는 데 반해, 장영실의 아버지는 장영실 이외에는 후손도 없고, 무덤의 기록도 없다고 한다.

또한 사이언스 타임스#에 따르면 장영실 집안은 원래 고려 때 귀화하여 아산군을 하사받은 장서 이후, 3세손인 장공수와 장숭이 당시 무기 제조 기관이었던 군기시 책임자를 지내고, 5세손 장득분이 군기시 책임자 및 기상관청인 서운관의 책임자를 지내는 등 대대로 고려의 과학 기술 분야 고위직 책임자였다고 한다. 요즘으로치면 국방과학 연구소장 및 기상청장을 지낸 셈. 사실이라면 고려의 공돌이 집안?

하여간 손재주는 타고 난 것 같다. 어린시절에 동네 또래 친구들이 작대기들고 칼싸움 놀이를 하고 있는걸 보고 있다가 직접 나무를 깎아서 실물 장도와 가깝게 나무칼을 만들어 주었을 정도...

금속제련과 성곽축조, 농기구, 무기 수리 등에 탁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고 전하는 이야기로는 동래현이 가뭄으로 위기에 처했을때 수로를 만들고 먼곳에서 물을 끌어올수 있게 수차(오늘날로 따지면 양수기 펌프 비슷한 기구)를 개발해내 동래현의 가뭄을 해결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세종에게 보고 되어 한양으로 불려졌다 한다.

당시 세종은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유교적 정치 이상의 구현을 위한 차원에서 천문학과 천문기기 제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장영실의 재능을 보고 받고 그를 불러온 것으로 보여진다. 세종 5년인 1423년, 세종은 장영실을 왕실의 물품을 제작,수리하는 상의원의 별좌로 임명하려 하자 신료들이 반대하였다. 그러나 세종의 강력한 의지로 상의원 별좌가 제수되고 장영실은 관노의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이 때의 기록을 보면 40대였던 걸로 추정할 수 있기에, 몇몇 사람들은 이에 근거해 장영실이 주로 138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후 행사직을 거쳐 1432년, 공조판서 이천의 휘하에서 천문기구인 의대 제작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장영실은 명나라까지 건너가서 천문학과 천문기구 제작기술을 알아내왔다고 한다. 장영실이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가지고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명나라에 들어온 아랍상인들이나 원나라 출신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듬해인 1433년에는 호군에 제수되었고, 천의 제작에 착수해 1년만에 완성했다. 이후 태종대의 금속활자인 경자자의 단점을 보완한 갑인자의 주조를 감독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었다.

이후 장영실은 많은 과학적 발명품들을 쏟아냈다. 천체관측 기구인 대.소 간의와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공공장소 설치용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천문기기들과 시계의 제작은 세종의 강력한 지원하에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또한 자격루를 발전시켜 만든 천상시계 옥루를 개발하였다.이는 자동시계의 배경으로 농촌의 4계절의 광경을 그린 화폭을 세우고, 선녀가 방울을 들고 나타나는 모양, 사람·동물·나무 등을 나무로 조각하여 농촌의 자연을 재현하는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움직이는 모습을 한 인형이 나타나고 사리지게 만든 것으로 세종은 옥루를 두기 위해 전각을 짓고 양녕대군으로 하여금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여 "흠경각"이라는 현판을 달게 했다.

그 뒤 경상도 찰방별감으로 제수되어 경상도로 내려가 각종 금속 채굴과 제련작업을 지휘감독했다. 1441년, 강수량의 정확한 측정을 위한 기구제작에 착수해 세계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2], 그리고 강의 범람여부를 알 수 있는 수표를 발명하였다. 이 수표를 설치한 다리인 수표교는 청계천에 있다가 복개공사로 인해 해체되어 장충단 공원으로 운반된 뒤 재설치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공으로 상호군으로 특진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장영실은 세종이 온천여행을 갈때 타고 갈 가마를 제작하라는 명을 받고 가마를 제작했다. 이 가마도 비범한 것이 무려 자신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동차? 그러나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장영실은 불경죄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장형을 받은 뒤 파직되었다.

장영실의 가마사고는 많은 의혹을 남겼는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가마제작의 총 책임자는 장영실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가마제작의 총 책임자는 따로 있었으나 세종은 이해할 수 없게도, 장영실을 더 무겁게 처벌하고 따로 있던 총 책임자는 벌을 내리지 않았다. 게다가 장영실은 가마가 부실하다며 다시 꼼꼼하게 제작할 것을 요구했지만 총 책임자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기록까지 존재해 더 의혹을 키웠다.

워커홀릭 세종이 안겨 준 격무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 한 장영실의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다. 하긴 허울 좋은 면천 한 번 받고 골수까지 빨아 먹힐 정도로 굴려 먹혀, 마지막 퇴근은 언제였는지, 가족들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날 판이니... 일부러 큰 사고 한 번 쳐서 직장을 때려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세종의 행보는 이후 장영실이 만든 천문대를 철거하는 더 황당한 사태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세종이 친명사대적인 관료들과의 권력다툼에서 패하여 장영실을 내치기 위해 가마사건을 이용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혹은 명나라 사신의 방문에 대비해 천문대 철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장영실을 내칠 구실을 찾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천문대를 굳이 철거하려 했던 이유는 당시 천문관측은 황제의 권한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명나라에서 조선의 천문관측에 대해 안다면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명나라 사신이 오기 전 천문대를 철거함으로써 천문관측 사실을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장영실은 불경죄로 의금부에서 장형을 받은 후 파직되어 이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장영실이 그 뒤로 어떻게 살았다는 이야기조차 전해지지 않아서 그가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에 "장영실은 아산의 명신이다"라는 기록 한 줄만이 전하는 고로 그가 본관인 아산에 내려가서 여생을 마쳤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대체로 그가 사망한 때는 1450년대로 추정된다.

장영실은 사실상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조선의 과학 기술과 농업생산에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장영실이 제작한 각종 천문기기와 시계들로 인해 조선 고유의 역법이 탄생했고 이로 인해 농경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영실이 제작한 수표는 강수량을 측정하고 하천의 범람 여부를 알게 해주어서 백성들의 실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2. 발명품들

3. 기타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등장한다. 배우는 이천희. 장영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는 탓에 작가가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가 고려왕실 부활을 노리는 조직에 들어가서 기술자로 활동했다는 둥, 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옛 주인의 딸의 도움으로 천문 기술을 명나라에서 가져왔다는 둥의 황당한 스토리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 발휘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의 흐름을 베이스로 삼고 있기는 한 것 같다. 사실 세종과 더불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인물. 가마 때문에 곤장 맞고 관직을 잃는 것도 나온다. 그러나 곤장을 맞은 거 때문에 몸이 불편해지긴 했어도 은밀히 세종을 도와주는 등 마지막 장면까지 세종과 함께 하며 본작에서 세종을 총평하는 문장인 "단 하나의 백성도 그에게는 하늘이고, 땅이고, 우주였다"는 대사로 대미를 장식한다.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이 2015년 9월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이 이름을 가진 과학고등학교부산에 있었다. 동래현에서 활동을 시작해서 그런 듯. 현재는 부산과학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

또한 그의 이름을 기려 매년 교육과학기술부 후원 하에 1년 52주동안 매주 1개 제품씩을 선정,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매일경제신문사가 91년부터 시상하고 있는 국내 최고 권위의 산업기술상인 IR52 장영실상을 수여하고 있다.


충남 아산에 장영실 과학관이 있다. 해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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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수십년 뒤의 수양대군계유정난 때에도 이전까지 멀쩡한 사대부가였던 반대파 대신의 처나 여식을 노비로 만들었던 사례가 있다.
  • [2] 다만, 측우기 아이디어 자체는 문종이 세자시절 고안해냈다. 측우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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