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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last modified: 2015-03-10 12:13:0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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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인물 소개
3. 사건의 진행
4. 사건의 여파
5. 트리비아

1. 개요

일명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 제5공화국 시절 길이 남을 흑역사.

한국판 닉 리슨[1]

201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금융사기 사건이었으나 결국 순위가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건 경신(更新)되면 안된다

1980년 7월 국군보안사령부 보안처장 정도영 준장에게 어느 중년의 여인이 군부대 불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거액을 뿌린다는 첩보가 입수된다. 이 여인이 각 해당 부대장과 아무런 인연도 없으면서 거액을 뿌리는 게 의문점으로 대두되었다. 조사 결과 여인의 이름은 장영자로 당시 나이 40세, 법명은 장보각행이며 엄청난 재력가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빚 독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곧 장영자는 요주의 인물로 집중 관찰 대상으로 지목되고 각부대에는 장영자를 조심하라는 지휘 조언이 보내졌다.

2. 인물 소개

장영자는 사채시장의 거물로 이 당시 이미 엄청난 재력가였다. 그녀의 재산 형성 과정은 이후의 행각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았고 관심도 적은 편이다. 이에 대해서는 형부 이규광 장군[2]이 재산 형성에 증권 정보나 거물 소개, 정치 자금 관리 등의 면에서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견해도 있으나 미확인이다. 어쨌든 이미 당시부터 부동산과 사채 등에서 큰손으로 이름이 높았다.[3]

장영자의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철희[4]였고 형부는 당시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의 삼촌인 이규광이었다.

3. 사건의 진행

1981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산하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이들 부부에 관한 첩보가 입수되었고, 민정수석비서관 이학봉국가안전기획부유학성에게 통보해 주었다. 유학성은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여겼으나 곧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1982년 4월 공영토건이 장영자에게 어음 사기를 당했다며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고 검찰 내사 결과 어음 사기와 관련된 기업이 더 있다는 게 밝혀진다. 처음 대검 중수부 2과에서 이 사건을 맡았으나 곧 중수부와 서울지검들이 맡게된다.

1982년 5월 7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종남 검사)는 이들 부부를 구속하며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장영자는 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을 찾아가 남편 이철희의 과거 경력을 이용해 특수자금이니 절대 비밀로 하라며 현금을 빌려주고 대신 업체들로부터 수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아냈다. 공영토건의 경우 빌려준 현금의 9배에 달하는 1279억원을 약속어음으로 받아냈다. 이들 부부는 이렇게 받은 어음을 할인해[5] 다른 회사에 빌려주었다.[6] 참고로 신군부가 3공화국, 4공화국의 대표적 부정축재자로 지목한 10명의 부정축재액 총액이 853억원이었다.[7] 이들이 받아낸 7111억원은 그야말로 당시 사람들로선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 사건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가령 태양금속의 경우 단 한 푼의 현금도 받지 않고 어음을 끊어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포항제철에 이은 업계 2위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이 부도가 났으며 장영자, 이철희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형에 미화 40만 달러, 엔화 800만엔이 몰수되고 추징금 1억 6254만 6740원이 선고됐으며 이규광에게는 징역 1년 6개월, 추징금 1억원이 선고되었다. 그 외에 구속된 사람이 30여명에 이르렀으며, 장영자 집에 침입해 물방울 다이아 등 1억 2천만 원 어치를 훔친 절도범 조세형을 잡은 대가로 장영자로부터 50만원을 사례비로 받았던 경찰관 8명이 옷을 벗어야 했다. 참고로 당시 경력 10년의 평교사 월급이 25만원 수준이었다. 지금 물가와 비교해서 계산해보시라.

사건 수사 후 검찰은 그들이 생활비를 포함해 15개월 동안 약 49억원을 사용했다고 발표해 국민들을 경악시켰다.[8]

4. 사건의 여파

이 사건으로 법무부장관 이종원, 검찰총장 정치근,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권정달, 정무수석비서관 허화평,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 등 당시 5공의 실세들이 물러나게 되었다. 유학성의 후임 국가안전기획부장에는 노신영이 임명되었다.

단, 허화평과 허삼수는 바로 경질되지 않았고 그 해 말에 경질되었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김상구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사무차장 등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려고까지 하였고 심지어는 전두환 정권의 개국 공신들인 유학성, 노태우, 정호용 등을 궁정동 안전가옥에 초대하여 전두환에게 친인척의 2선 후퇴를 건의할 것을 결의하기까지 하였다. 이 점 때문에 그들은 전두환의 눈 밖에 났다. 여담으로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에 의하면 허화평과 허삼수는 경질되기 몇 달 전부터는 청와대 본관 출입도 경호원들에 의해 통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자랑격으로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 겸 정무비서관 신분으로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TV에 출연시켜 의혹을 잠재우는 데 기여했다고 하였다.

장영자는 이후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자신들은 영부인 이순자의 아버지인 이규동이 명성그룹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으로 세간이 시끄러워지자 대신 희생되었다고 주장했다.

5공 정부는 이 사건을 무마하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두 차례의 개각[9]과 1982년 5월 민주정의당 당직 개편을 단행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5공 정권 구호를 빗대어 '정의사회구현 좋아하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은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제2의 장영자, 이철희 사건을 막기 위해 시중의 음성자금을 양성화해야 한다는 점과 조세 부담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전두환 대통령에게 금융실명제 시행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기득권층에서는 정치 자금 모금의 어려움, 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하여서 없던 일이 되었다. 금융실명제는 결국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3년에야 시행되었다.

장영자는 1991년 가석방된 후 언론 플레이로 자신은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1994년에 다시 14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을 저질러서 4년간 복역하였다. 일명 '2차 장영자 사건'으로 여기에 연루된 동화은행서울신탁은행도 징계를 받았다. 1998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으나 이번에는 구권 관련 사기로 2000년에 또다시 구속되었다. 2014년 현재도 수감 중.

5. 트리비아

당시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은 장영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이 사건에 연루되는 화를 면하였다.

여담으로 아들은 2000년 구권 사기 때 함께 잡혀갔다가 풀려난 후 뺑소니 사고를 치고 외국으로 튀었다가 희귀병으로 죽었다. 배우였던 큰사위 김주승은 2007년 암으로 죽었고 이철희 이전 전남편과 낳은 아들도 2007년에 병사했다. 최근에는 장영자의 며느리인 배우 차주옥[10]과 장영자의 큰딸(김주승의 처)간의 재산 분쟁으로 시끄럽다.

또 여담으로 이들의 소유였던 땅에 빌딩이 지어졌는데 하필이면 무한성이 된 적이 있다. 일명 장영자 빌딩. 그러다가 소유주가 바뀌면서 2014년 10월에서야 15년만에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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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도 이 사람은 자기가 돈을 흥청망청 써제끼지는 않았다.
  • [2] 이규광의 처제는 장영자이며 장인은 김대중의 전처 차용애의 친정 어머니와 남매간으로 즉 김대중의 처외삼촌이다. 더군다나 조카는 다름아닌 전두환의 아내였던 이순자이다.
  • [3] 참고로 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는 이순자가 장영자를 따라 부동산 투기에 나서 연희동 집을 샀다는 내용이 나온다.
  • [4] 이철희는 육군방첩대HID 부대장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이었다. 그의 정보 관련 업적은 대단한 수준이다. 대북 작전에도 어느 정도 개입했었고 김대중 납치 사건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에도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박정희김대중 납치사건을 주도했는지는 논쟁이 있지만 이철희가 핵심 라인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로 때문인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 [5] 중앙일보 연재물인 '청와대 비서실에서 나온 증언'에 의하면 이때 불법으로 어음을 할인하지 않았던 은행장 하나는 좋은 고객을 놓쳤다고 한동안 시달렸다고 한다. 반대로 어음을 할인해주었던 은행 중 하나인 조흥은행은 이 사건의 여파로 기업 CI를 바꿀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그야말로 인생만사 새옹지마.
  • [6] 받아낸 어음의 총액은 7111억원이고 이 중 6404억원을 할인해서 사용하였다.
  • [7] 사실 이건 대국민용 쇄신 분위기 조성을 위한 쇼의 측면이 있어서 전액을 공개했다 하긴 어렵다.
  • [8] 이는 매일 평균적으로 1089만원을 썼다는 말이다.
  • [9] 1982년 5월과 6월에 각각 한 번씩 개각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6월 개각 때는 유창순 국무총리가 경질되고 김상협 고려대학교 총장이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다.
  • [10] 이 사람이 누구냐면 한지붕 세가족에서 강남길의 부인인 말자 역으로 나왔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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