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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모리스

last modified: 2015-01-24 07:51:09 by Contributors


이름 John Scott Morris
생년월일 1955년 5월 16일
국적 미국
출신지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5라운드(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977~1990)
미네소타 트윈스(1991)
토론토 블루제이스(1992~199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94)

1991년 월드 시리즈 MVP
세 리호
(신시내티 레즈)
잭 모리스
(미네소타 트윈스)
보더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3. 끝끝내 실패한 명예의 전당 떡밥
4. 기타

1. 개요

메이저리그 198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한 명. 1984년과 1991년, 두 번의 월드시리즈에서의 임팩트로 인해 역사상 최고의 빅 게임 피처이자, 80년대 최고의 투수로 강렬한 명성을 남겼다.

통산 성적은 3824이닝 동안 3.90 ERA, 254승 186패, 그리고 2478탈삼진.

2. 선수 생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눈으로 안보고 야구를 말하는데 천부적인 김형준 기자(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파워블로거) 덕분에, 꾸준히 승수나 쳐먹은 투수로 폄하되는 경향이 강한 선수. 천만의 말씀이다.
80년대 투구순위에서 162승으로 최다승 투수, 2443이닝으로 1위, 332선발 1위, 133완투 1위, 1629삼진 3위(적다고 까는 삼진도 80년대를 통털어 3위다.)

선수생활동안 3,824이닝을 던졌는데, 선발등판한 경기의 무려 33%를 완투했으며(3번 나오면 1번은 완투했다!), 8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절반에 가까운 47%이다. 8이닝 이상 경기 254회로 AL에 지명타자 도입이후 단연 최다 투수이다. (2위 블라일레븐 242회, 3위 로저 클레멘스 227회) 즉 80년대를 대표하는 올드스쿨 타입 에이스이다. 불같은 성격과 승부욕, 오만하고 자신에 찬 말투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승부사이자 강심장이기도 했다.

수많은 매체에서 80년대 최고의 우완투수로 랭크되었으며(좌완은 페르난도 발렌주엘라), 통산 3,824이닝을 던지고 14년 연속 개막전선발 (팀의 최고투수가 아닌데 개막전 선발로 내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존심과 팀의 사기를 위해서라도.)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통산 평균자책점 3.90과 이닝에 비해 작아보이는 2,478 탈삼진 때문에 김형준을 비롯한 스탯찌질이들에게 좋은 공격거리를 제공 중.

모르몬교도로서 모르몬교에서 만든 브리검 영 대학교를 나와 1976년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에 지명받아 디트로이트에 입단했다. 마이너리그를 비교적 빨리 졸업했지만, 주로 마이너와 메이저리그를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1979년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로 정착했다.

1979년 4월 전국 공중파 생중계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노히트게임을 달성하는 임팩트를 시작으로 디트로이트의 에이스로 매년 로테이션을 든든하게 지켰다. 단축시즌이던 1980년 다승왕에 올랐으며, 1982년 20승 13패 293.2이닝, 1984년에는 정규 시즌 19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상대로 두 경기 모두 완투승을 따내며 디트로이트의 월드시리즈 우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1987년에는 리그 우승이 달린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여 명성대로 완투승을 거두고 팀을 챔피언쉽 시리즈로 이끌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디트로이트의 로테이션을 지키다가 부상과 나이가 들면서 점차 부진하며, 결국 1990년을 끝으로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고향 미네소타 트윈스에 FA로 최고연봉 선수 대우를 받고 1991년에 입단했는데, 이제 모리스의 시대는 끝나간다는 평가를 비웃 듯, 전년도 꼴찌 미네소타를 선두로 이끄는 에이스로 승부사의 명성을 다시금 떨치며 그 해 지구 우승을 먹었다.

그리고 잭 모리스는 처절한 명승부가 펼처진 1991년 월드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상대로 미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1,4,7 차전에 나와 2승을 따냈고, 특히 3승 3패로 맞서 우승을 가리는 최종 7차전에서 10이닝 완봉승으로 팀의 1:0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당연히 1991년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다.[1]

9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잭 모리스를 영입했는데, 1992년 정규시즌에서 21승을 따내며 다승왕에 올랐지만 평균자책은 4.04로 썩 좋았다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역대 최고의 빅게임 피처라는 엄청난 명성과 달리 월드시리즈에서는 2패 평균자책 8.44로 폭망했다. 어쨌거나 토론토는 우승했고, 이 때문에 잭 모리스는 1992년과 1993년의 우승 반지도 얻어 총 4개의 우승 반지를 가지고 은퇴할 수 있었다.

빅게임의 사나이, 우승청부사의 이미지답게, 메이저리그 기록인 14년 연속 개막전 선발투수이기도 했다.

1994년 클리블랜드에서 마지막으로 뛴 후, 파업 도중 은퇴를 선언했다.

3. 끝끝내 실패한 명예의 전당 떡밥

나름대로 시대를 풍미한 대투수였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에는 조금 논란이 있는 성적인데, 무엇보다 18년 커리어 동안 단 한 번도 2점대 평균 자책을 기록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탈삼진 능력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이점이 스탯쟁이들에게 과도하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최고의 투수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큰 경기에 강하다는 이미지와, 당대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들이 그를 하나같이 '이겨야 할 경기를 반드시 이겨주는 투수' '1:0 이건 10:9던 이기는 경기에서는 끝까지 리드를 지켜주는 에이스'로 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득세하기 이전의 시대였더라면, 그 강렬한 이미지와 임팩트 때문에 단순히 평균자책점,탈삼진이나 2차스탯으로 폄하하는 말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클래식 스탯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으나, 반대급부로 더 부정적으로 공격받는 '다승'이 단순한 운빨이나 승운, 타자의 도움이라고 지나치게 폄하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 요즘이라 더 그렇다.

그러나 투수의 선발승을 단순한 운빨이나 타자의 도움으로 폄하하기엔, 현재의 투수들도 질문하면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선발로 리드를 내주지 않고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스탯쟁이들과 평가가 심하게 갈리는 부분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잭 모리스의 경기와 시대 분위기를 라이브로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본것만 과대평가하고 기록만으로 아는척 나불나불거리는 특기를 지닌 자칭 '메이저리그 고수유저'들에게 이런 성향이 크게 나타난다.

여러 매체에서 조사한 80년대 최고의 투수로 단골 1위를 차지했으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데이브 스튜어트, 드와이트 구든, 로저 클레멘스보다도 80년대의 넘버원 투수로 미국인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의 별명 역시 국내에 MLB라는 단어는 커녕 '미국야구'라는 명칭으로 AFKN에서나 보던 시기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스 오브 더 에이스 - 말 그대로 에이스 중의 에이스
랙 잭 - 콧수염과 어우러진 외모(스페이드 잭) 블랙잭 도박의 최고 패인 21(블랙잭) 즉, 최고의 승부사라는 칭송

80년대 국내 일간지나 주간지 등에 미국야구 기사가 나올때 특파원 기사로 자주 언급되던 인물이었으며, 블랙 잭이라는 별명도 그때도 인용되던 정도였고, 페르난도 발렌주엘라와 함께 미국 최고의 에이스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모리스는 80년대 투수들의 로망이자 현재도 선발투수들의 미덕인 '선발투수의 임무는 완투'에 가장 충실했었고, 당대의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의 선수였으며, 동료들 역시 에이스가 등판하면 끝까지 던져서 이긴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는 엄청난 이닝 이터였기 때문이고, 점수는 내주더라도 리드를 내주지 않고 최대한 완투까지 경기를 끌고가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풀타임으로 뛴 16년 중에서 11번이나 200이닝 이상을 기록했고, 두 번은 190이닝 이상이었다. 그리고 250이닝 이상 소화도 6번이다.

또한 선발 등판 33% 완투, 8이닝 이상 47%, 7이닝 이상 68%, 즉 3번의 한번은 완투, 절반은 8이닝 이상, 3분의 2 이상은 7회이상 던졌다는 뜻이다. 즉, 팀에 있어서는 등판하면 최대한 긴 이닝을 소화해주면서 팀과 감독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주는 투수이다. 전성기에는 비록 2점대는 아니어도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으로 에이스로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시즌 향방에 중요한 경기에서나 포스트 시즌에 워낙 든든한 모습을 보여서, 당시의 기사나 팀의 인터뷰를 보면 '블랙잭이 팀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우리 팀에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가 나오는 날이다.' 라는 내용이 자주 보였다. 단, 말년에 워낙 얻어 맞으면서 평균 자책이 나 비율이 많이 올라간 케이스.

일부 세이버 신봉자, 자칭 X문가들이 폄하하는 것처럼 승수만 많은 선수라고 주장하는 건 그야말로 서울 한번도 안가본 사람이 서울을 잘 안다고 떠드는 격. 그리고 무엇보다 두 번의 월드시리즈에서의 임팩트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고, 우승청부사, 빅게임에서 가장 믿음직한 투수, 그리고 현직, 전직 감독들이 뽑은 '은퇴선수를 포함해서 당신이 만약 월드시리즈 7차전에 등판시킨다면 누구?' 설문에서 밥 깁슨, 샌디 쿠팩스를 누르고 1위에 뽑히도 했던 에이스였다.

다만,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점점 승수보다는 방어율 + 조정방어율과 whip 등의 가치를 급격하게 격상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묘한 분위기가 도는 선수다. 분명 통산 커리어는 들어가기 좀 애매하나 1980년대를 대표한 최고의 선발투수이기도 하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중흥기를 이끈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점도 있고, 두 번의 월드시리즈의 임팩트도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그 시대를 함께 보낸 사람들과 달리, 지나간 기록으로 보는 요즘에는, 솔직히 시대를 풍미한 특급 선수라고 하기에는 스탯이 어중간한 편이다. 다승왕 2회를 제외한다면 수상실적이 없고,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3위가 최고 성적이며, 대부분 투표에서 별 재미를 못 봤다. 구설수도 많고 기자들과 사이가 나빠서 매 시즌마다 여러차례 으르렁 거리기도 했으며 여성기자 라커룸 출입허가 문제로 폭언을 퍼붓는 바람에 여성기자들은 극렬안티 수준이고...

물론 번외로 하는 Decade(80년대)의 최고투수, 포스트시즌에 강한 투수 등의 언론매체나 설문 랭킹 투표에서는 1위 자리에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물론 월드시리즈의 임팩트가 없었다면, 진작 광탈했을 수 있었다는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니다.[2]

그러나 임팩트 면에서도 대를 대표하는 수준에 충분히 부합하는 선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위상은 팬들과 동료 및 리그의 선수들, 코칭스태프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하는, 8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흔히 과소평가된 대표적인 사례인 버트 블라일레븐과 놓고본다면, 분명 기록으로 보기엔 블라일레븐은 '단지 300승에 모자라는 승수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선수'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당시 블라일레븐의 위치는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선수라고는 할 수 없었고, 잭 모리스가 리그에서 가진 위상에는 많이 모자랐다. 비율 성적이 언뜻 비슷하거나 더 좋다고 해서 동급이 나 더 뛰어난 선수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모리스가 활약하던 시기에는 9이닝 4실점 완투가 6이닝 무실점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였고, 에이스가 7,8회에 1,2점을 추가로 내주더라도 동점이나 역전되기 전엔 내리지 않곤 했다. 모리스의 개인 성향 역시 본인의 스탯에는 안 좋은 영향을 끼쳤는데, 바로 '1:0이건 10:9이건 이기는 경기가 낫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그는 특히 4,5점 이상 넉넉한 리드에서는 한점도 내주지 않으려고 버티기보다는, 한점 내주고 아웃카운트를 더 잡아내서 오래던지는 것을 선호했는데, 당시에는 이런 자세가 팀을 이끄는 에이스의 덕목으로 더 높게 평가받았으나 기록면에선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처음 20%대로 출발한 득표율은 13년차인 2012년 투표에서 66.7%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대개 이 정도면 14년차나 15년차에 입성을 노려봄 직도 한데, 문제는 14년차와 15년차에 나오는 인간들이 14년차인 2013년에 크레익 비지오, 커트 실링. 15년차인 2014년에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제프 켄트, 마이크 무시나(...) 이는 약물 의혹이 있는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새미 소사, 마이크 피아자를 빼고도 이 정도다. 그냥 울자. 그리고 14번째 해에는 67.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다시한번 입성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해였던 2014년 투표에서도 프랭크 토마스, 톰 글래빈, 그렉 매덕스가 입성하는 가운데 크레익 비지오마이크 피아자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득표율이 떨어지는 가운데에서 그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득표율이 떨어지며 6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투표로서의 입성은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명예의 전당이 임팩트와 꾸준함, 그리고 일정이상 인품과 기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모리스가 남긴 임팩트는 충분히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득표율로만 봐도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문턱에 오르내린 셈이니까.

사실 국내에서야 흘러간 승수만 많은 선수로 착각하는 스탯찌질이들이 끄적거리는 글만 몇개 있지만, 미국에서는 워낙 위상이 높고 거물이었던 바람에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자부심 넘치는 성격과 고압적인 태도를 문제삼는 일이었고, 언론과의 관계도 상당히 안좋은 편이었다. 특히 여성기자들에겐 공공의 적. 라커룸에 여성기자 출입을 두고 차별적인 발언과 폭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고, 기자들과의 마찰도 꽤 있었다. 그럼에도 60%가 넘는 득표율을 보면, 당대에서 요구하는 에이스의 위치를 충분히 갖춘 선수라고 할 만하다.

4. 기타

2013년부터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한다. 다만 보스턴 레드삭스 투수 클레이 벅홀츠부정투구 의혹을 제기했다가 보스턴 레드삭스 방송국 NESN에서 일하는 데니스 에커슬리에게 "업계에 갓 돌아온 주제에 이딴 개소리나 씨부리노" 하는 내용의 일갈을 듣기도 했다. 결국 모리스는 벅홀츠에게 사과하며 데꿀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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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리고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신이라는 점까지 겹치며 잭 모리스가 미네소타 레전드인줄 아는 사람도 국내에는 은근 많다. 대부분 7차전 상대 존 스몰츠를 찾아보다가 알게되는 뉴비들이 특히 그런데, 모리스는 미네소타에서는 딱 1년만 뛰었는데(...)
  • [2]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가장 비슷한 커리어를 가졌다고 분석한 니카라과의 야구 영웅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첫 해 3.2%로 광탈한 것을 생각한다면 특히 그렇다. 두 번째로 비슷한 양반은 역시 빅 게임 피처로 명성이 높은 밥 깁슨이지만 이 양반은 승수만 적다 뿐이지 임팩트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만 커리어를 보내서 프랜차이즈 속성을 모두 갖춘 역대급 우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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