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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

last modified: 2015-03-05 01:10:54 by Contributors

Contents

1. 前衛
1.1. 조선공산당의 청년조직 조선청년전위대
2. 電位
3. dislocation의 한자 번역어
4. 후한 말의 장수
4.1. 미디어 믹스


1. 前衛


군사 행동을 할 때 선봉에 서서 진격에 방해되는 것을 없애고 정찰, 경계 활동을 하는 일이다. 이를 담당하는 부대가 전위대. 혹은 의미가 확장되어 어떤 입장을 대표하고 앞서서 지지하는 세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더 자세한 것은 뱅가드아방가르드 등을 참고할 것.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말하는 혁명전위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본래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엘리트들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혁명의 동력은 다수 인민의 참여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러나 후일 레닌이 전업 혁명가, 즉 혁명을 위해 투신하는 소수 엘리트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전위라 불렀다. 그래서 반동분자를 보면 불러야 한다.

한편, 배구 코트 내에 3m 어택라인을 기준으로 나뉘는 전위·후위도 이 한자를 사용한다. 배구에 대한 내용은 배구/규칙 항목을 참조 바란다.

1.1. 조선공산당의 청년조직 조선청년전위대

야인시대에서 심영애가 타게 찾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2. 電位

전기 퍼텐셜의 한자 번역어. 무한원점으로부터 해당 지점까지 단위전하를 가져다 놓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말한다. 어떤 두 지점간의 전위차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압'이 된다.

3. dislocation의 한자 번역어

물체 내부에 존재하는 1차원적(선 단위의) 결함의 일종으로 edge dislocation, screw dislocation등으로 세분화된다.
전위가 도입된 배경으로는 이론상의 강도와 실제 물제의 강도 차가 크기 때문에 전위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4. 후한 말의 장수

典韋.jpg
[JPG image (74.25 KB)]


전위대! 전위대!

典韋

후한조조 수하의 장수로 삼국지의 등장인물. 생몰년도 ?-197. 진류(陳留, 지금의 하남성 부근) 사람이다. 진류 사람으로 용모가 우락부락한데다 엄청난 근력을 갖고 있었고 곧은 의지와 절개와 협기가 있었다고 한다.

'오래(惡來)' 라는 별명이 있는데 요코야마 미스테루 삼국지의 한국어 번역에선 '악래'로 번역되었다. 이건 역사 속의 힘세고 강한 장사인 오래[1]이름을 딴 것.
이는 딱히 한국에서만, 특히 미쓰테루 삼국지만 잘못 번역한건 아니며, 진삼국무쌍 시리즈 원판 대사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본에서도 악래(あくらい)로 통한다. 그전부터 이문열이나 황석영 등의 여러 삼국지 작품들에서도 악래라 표기해 온 것을 보면 이쪽이 더 널리 알려져 그대로 굳어진 듯하다. 만약 몰랐는데 이 항목을 보고 알게 됐다면 좋은 일이고 다른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경우 굳이 수정해주고 싶어서 근질근질해 죽겠다면 친절하게 '오래'라 수정해주는 것도 좋으나, 악래라는 표기도 삼국지를 읽어본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전위의 별명이니 어느쪽이든 틀린 표기라고 무시하거나 어그로 끌진 말자. 함부로 왈가왈부해보자고 나서는 사람이 괜히 좆문가 소리 듣는게 아니다. 그것도 그렇고 오래보다는 악래가 더 멋있잖아

참고로 오래와 전위가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 국산 5권짜리 아동용 삼국지 만화가 있었다(...).

출사하기 전에 호걸로 알려지게 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유씨를 위해 대신 복수를 해준 일이다. 유씨와 이영은 서로 원수사이였는데 이영은 현장 직위에 있었다. 전위는 유씨를 위해 복수하기로 하고 방문객으로 가장한 뒤 이영의 집에 들어가 그와 그의 아내를 죽였다[2][3][4]. 죽인 뒤 추격하는 이들이 수백이었으나 전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호걸로 알려졌다.

반동탁연합이 결성되자 전위의 고향인 진류에서 태수로 있었던 장막이 이에 가담하고 병사를 모으자 전위는 이것에 종군하여 졸병이 된다. 이때 조총이 그의 상관이었는데 그때 대장기가 상당히 커서 아무도 들지 못하던 것을 전위는 한 손으로 들어올리는 괴력을 선보여 병사들 사이에서 유명해 진다. 그 뒤 하후돈 밑의 졸병으로 넘겨지는데 그곳에서 적을 여러차례 죽이고 공을 세우자 하후돈 부대의 사마로 승진한다. 이때 전위가 맡은 사마라는 직책은 부대에서의 최일선 장교에 해당되며 따라서 한부대에도 수없이 많이 있었다. 따라서 전위는 아래 복양전투에서 조조의 눈에 우연히 들지 않았으면 그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조조가 서주를 침공했을 때 여포가 연주를 침략했는데 조조는 귀환하여 복양의 여포를 공격했다. 이때 여포는 복양의 서쪽에 작은 부대를 하나 놔두었고 조조는 자신이 군을 직접 이끌고 이 부대를 야습해 격파한다. 하지만 그새 날이 밝았고 여포가 직접 이끄는[5] 군대가 조조군을 에워쌌다. 조조는 야습하기 위한 병력만 데려왔으므로 포위되어 매우 위급하게 되었고 적진을 뚫고 달아날 결사대를 소집하였다.[6] 전위가 이에 응모하여 수십명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전위는 계속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갔지만 뒤를 방어할 수 없게 되자 뒤에 병사들에게 적이 10발짝 접근하면 알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적이 10발짝 내로 왔다고 하자 전위는 일단 단검 하나를 날려 가장 선두에 오는 녀석을 쓰러트린 뒤 다시 5발짝 접근하면 고하라고 말하했다. 이에 적이 다시 5발짝까지 접근하자 전위는 손에 들던 10여개의 화극을 던지면서 적을 쓰러뜨렸다. 전위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고 날이 저물 때 여포군은 퇴각한다. 이후 복양 전투에서 조조가 탈출하려다 불타는 기둥에 깔려 기절하자 그를 구해낸 것도 전위였다.

조조는 전위의 활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으므로 이것은 전위에게 있어서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된다. 조조는 전위를 도위로 임명하고 친위병 수백명을 거느리게 하여 자신을 호위하게 했는데, 이것은 졸병으로 시작하여 한 제후의 경호실장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 그 뒤 전위는 계속된 전투에서 항상 선두에 서서 용맹하게 싸워 적을 격파하여 교위로 승진하였다.

이후 조조가 완성의 태수인 장수를 쳤을 때, 조조는 평소의 버릇대로(?) 장수의 숙부 장제의 미망인 추씨를 자신의 처소로 불러 며칠동안 검열삭제해 버렸다. 이것에 격분한 장수와 그의 부하들은 분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조는 장수가 싫어한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장수를 죽일 것을 계획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장수는 선수를 치기로 결정한다.[7] 마침 장수를 모시던 천하의 모사 가후가 책략을 주어 장수는 조조를 찾아가 군수품을 옮기는 수레가 너무 무거우니 병사들에게 갑옷을 입혀 수레의 무게를 줄이고 싶다고[8] 하였는데 조조는 왠일인지 이를 의심하지 않고 순순히 들어준다.

그 뒤의 상황 묘사는 연의와 정사가 약간 다르다. 연의에 따르면 호거아가 전위에게 술을 퍼먹인 뒤에 인사불성이 된 전위에게서 쌍철극을 숨겼고 전위는 조조를 모시고 가다가 조조를 먼저 밖으로 보내고 자신은 막사 앞을 막으며 적병을 몽둥이로 쓰는 등[9] 분투하였지만 결국 화살과 에 무참히 찔려 처참하게 죽는다. 정비석의 삼국지에 의하면 그 용맹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창과 칼만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돼서 멀리서 화살을 소나기같이 퍼부어서 고슴도치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예 그 고슴도치 모양 그대로 서서 죽었다는 묘사도 종종 나온다.

정사에 따르면 전위가 호거아와 함께 술먹고 취했다는 식의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배송지가 장수전에서 인용한 주석에 따르면 호거아가 등장하기는하나 조조가 그의 무용을 칭찬하며 금을 내리자 장수는 조조가 호거아로 하여금 자신을 암살할 것을 의심했다는 구절이 있으므로 연의에서 처럼 그가 전위에게 무슨 역할을 한 것은 아닐 것이고, 급습당하는 날에도 전위는 평소와 다름없이 임무를 수행하였다.

전위는 연의의 내용처럼 막사 앞을 지킨게 아니라 군문에서 싸웠으며 이때 그는 십여명의 용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조조는 기병을 거느리고 탈출하였으며 전위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이들과 죽을때까지 싸웠다.

이때 전위는 그의 전용 무기인 긴 화극을 사용하였으므로 자신의 무기를 쓰지 못했다는 연의와는 다르다. 그는 이것으로 적을 계속 공격하다 나중엔 부러졌는지 짧은 무기로 바꿨는데 적이 접근하자 두 명의 병사를 겨드랑이에 낀 뒤 압사시키고 적에게 돌격을 하여 몇 명을 죽인 뒤 상처가 심해지자 눈을 부릅뜨고 욕을 하며 종간나 장수군 새끼들!! 죽었다고 한다. 그가 죽었을때 그의 10여 명의 부하들도 모두 죽은 상태였으며, 장수군은 전위의 목을 베고 전군에게 돌려 보였다고 한다.

이때 조조는 이미 무음에 달아난 상태였는데 전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으며 전위의 시체를 훔쳐온 사람이 왔다고 하자 직접 그들에게 가서 곡을 했다고 한다. 그 뒤 양읍에 전위를 묻었는데 그 이후 양읍을 지날때마다 곡을 하였다. 복양전투가 194년의 일이고 장수에게 죽은 때는 197년의 일이므로 전위는 대략 3년여 정도 섬긴 주군의 생명을 위해 처절하게 목숨을 바친 것이었다.

연의에서는 조조가 장수와의 싸움에서 전사한 병사 및 장수들을 위한 위령제를 허도에서 시작하는데 거기서 "전위여 언제 다시 그대를 본단 말인가.. 전위여!"라면서 자기를 바쳐서 아버지를 살린자신의 장남 조앙과 조카 조안민을 잃은 것보다 전위를 잃은 것을 더 슬퍼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이 정사의 내용인지 연의의 창작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당시 조조의 정실부인[10]은 조조가 유부녀 건드려서 금지옥엽같은 자기 아들 죽게 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고 욕 하면서 이혼단계까지 가 버린 것으로 보아서는 사실일 가능성도 높다.

허저가 전위의 후임으로 조조의 경호임무를 해 주는 장수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허저가 전위의 임무를 계승한 것은 확실한데 허저는 196년에 등용되어 바로 호위무사로 배치되었으므로 아마도 전위를 상관으로 모시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허저가 등용되었을 때 전위는 교위였고 허저는 도위였으므로 직책상으로도 전위가 위였다. 장수의 기습을 받았을때 허저가 종군하였다면 그가 살아남은 것을 보아 조조가 이끌고 달아났다는 기병 중 한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전위나 허저나 그 완력으로 이름 높았는데 창천항로에서는 둘이 깃대로 줄다리기를 하지만 깃대가 부러져서 우열을 가리지 못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 후 조조는 적벽대전을 치르고 나서 다시 북상하다가 전위의 묘가 가까이 오자 깍듯이 그의 넋을 기리고 후하게 제사를 다시 지냈다고 한다.

나라의 장수들이 대부분 전략가나 지휘관 타입이었던 것에 비해 전위전은 일신의 용맹에 대한 묘사로 채워져 있다. 직책부터가 조조의 보디가드였던 것 만큼 군대를 지휘하기보다는 일선에 서서 적군과 싸울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수의 인물평에서는 허저와 나란히 번쾌에 비견되고 있다.

상당한 식신에 대주가였던 모양으로 먹고 마시는 양이 남들 먹는 양의 배였다고 한다. 매번 음식과 술을 주면 남들보다 크게 먹고 오래 마셔서 전위가 이걸 다 먹으면 좌우에서 음식을 더 가져다 주곤 했다고 하며 조조도 이를 보고 장대한 사람이라고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끔 화살을 잔뜩 맞았음에도 서 있는 채로 죽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 일본의 무장 무사시보 벤케이가 죽을 때의 모습을 가져와 묘사한 것이다. 본래 삼국지연의에서는 앞에서 오는 적들에 맞서 싸우다가 뒤에서 온 적이 창으로 등을 찔러서 죽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2차 매체 중에선 창천항로에서 이와 같은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연의 한정으로 주공의 호위를 담당하는 친위대장이랍시고 술 거나하게 처먹다가 무기까지 잃었으니 실직이라는 의견도 있다.

4.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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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오래는 사기 은본기에 등장하는 장사로, 은나라 마지막 왕이자 폭군으로 유명한 주왕에게 등용되어 주왕의 악행을 도운 인물이다. 시기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의 아버지인 비렴도 아니나 다를까 간신이었다. 훗날 주나라에 패할 때 주왕을 위해 싸우다가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한비자와 순자, 조선의 율곡 이이 등의 후대 학자들에게는 나라를 망친 간신으로 비판받고 있다.
  • [2] 이렇게 사사로운 원한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전위 말고도 하후돈, 서서, 관우 등이 있다. 이건 현대 기준으로 중죄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중국 사회는 이러한 범죄에 꽤 관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해석인데다, 당시 관리들이 백성을 갈취하는 것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황건적의 난까지 생긴 것을 본다면 이들이 죽인 사람들은 사람들의 미움을 상당히 받는 종류의 사람이었기에 이들이 총대를 맨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것인지 하후돈, 전위와 같은 이들은 살인을 하고서 오히려 명성이 높아졌다. 서양 얘기이긴 하지만 벤데타와 비슷한 논리.
  • [3] 사실, 남의 사사로운 원한을 갚아주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행동은 중국 협객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행위는 물론 당시 법에 따라 볼 때도 중죄였지만, 대중은 이런 일을 하는 협객들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높이 칭송했고,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인 사마천사기의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을 통해 이런 협객들의 이야기를 따로 기록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었다. 일찍부터 공고화된 국가권력 구조를 확충한 중국에서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힘없는 백성을 수탈하거나 괴롭히는 폐혜 역시 일찍부터 드러났고, 그런 만큼 대중은 법과 권력을 가진 압제자에 대항하는 불법적인 저항자로써의 협객을 영웅시한 것. 이런 협객(유협)전통은 단순히 범죄에 대한 기준이 현대와 다른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고, 이런 협객들은 중국의 가장 전통적인 대중적 영웅상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현재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무협지들도 그 문화적 기원의 일부분을 이런 유협전통에 두고 있다.) 이런 유협전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왜 수호전이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중국 대중에게 사랑받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 [4] 엄밀히 말하면 협객전통과 벤데타전통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기는 하나, 비슷한 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벤데타 전통은 동등한 대상 사이에 생겨난 원한을 해소하기 위한 보복으로써 상위의 권력구조와 직접 충돌하지는 않고(국가권력을 비롯한 상위의 권력구조는 벤데타를 무시하거나, 벤데타를 실행한 사람은 상위 권력구조의 제제를 피해 달아난다. 종종 권력자가 벤다타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벤데타는 동등한 위계에 있는 대상에게 원한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 실행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존경은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해 낸 사람에 대한 존경'에 가깝다. 이에 비하면 협객에 대한 중국 대중의 존경과 숭상은 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권력자에게 항거했고, 그를 통해 의를 이루려고 했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 [5] 김홍신 평역판 삼국지에서는 멍청하고 게으른 여포가 나서지 않으려 하다가 진궁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나선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 서쪽 영채를 되찾은 덕분에 진궁을 귀중히 여겼다고.
  • [6] 조조는 여포가 물러날 때까지 남아서 부대를 계속 지휘하였으므로 이 결사대는 포위를 뚫고 본진에 구원을 요청할 전령들로 추정된다.
  • [7]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원한을 품은 장수가 가후를 불러 "더 이상 조조의 밑에 있지 않겠다"라며 들고 일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 [8]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항복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도망병이 늘고 있으니 자신의 군사를 외방에 보내서 경비를 서겠다는 식으로 말해서 핑계의 내용이 바뀌었다.
  • [9] 적병 두 명을 한 손에 하나씩 잡고 좌우로 휘둘렀다.
  • [10] 조앙에게는 계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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