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전인권

last modified: 2015-03-30 19:37:07 by Contributors

Contents

1. 이력
1.1. 들국화 이전 (1978~1984)
1.2. 들국화 시절(1984~1987)
1.2.1. Index : 들국화 1집
1.3. 솔로 시절 (1988~2011)
1.4. 들국화 재결성 후(2012~ 현재)
2. 사건
2.1. 마약
2.2. 故 이은주
3. 최성원과의 파란만장한 관계

1. 이력

1954.09.04~

1980년대에는 조용필, 산울림, 유재하 등과 함께 청춘 문화를 이끌었다. 그가 소속되었던 들국화대한민국 록의 스피릿을 결정지었고 전인권은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전인권이 메인 보컬로 참여했던 '들국화 1집'은 한민국 100대 명반 목록에서도 유재하 1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엔 여러 실수로 노망난 뽕쟁이 할배로 기억되다 2011년 들국화 재결성 이후 King of Rock 으로 다시 부활 중.

1.1. 들국화 이전 (1978~1984)

전인권은 음악 감상실 '쉘부르'출신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통기타업소에서 노래하곤 했다. 쉘부르는 DJ로 유명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업소로 1970년대 초 통기타 진영의 중심이었던 '쎄시봉'의 쇠퇴 이후 새로운 통기타 가수들의 중심이었다.

전인권은 1978년 인원, 이주원, 동민과 <따로 또 같이>로 활동하며 '맴도는 얼굴'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좆망... 후에 인터뷰에서 "불 태우고 싶었던" 음반이라고 하였다.[1]

1980년대 초 전인권은 세션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함춘호의 소개로 키보디스트 성욱과 기타리스트 덕환, 드러머 춘근[2]을 만나 강릉시의 한 디스코텍에서 밴드를 처음 시작한다. 그러나 한달쯤 되었을때 성욱의 부모가 찾아와 팀이 해체된다. 1982년에는 성욱과 함께 다시 통기타업소인 '까스등' '모노'에서 통기타 음악을 한다. 이때 '모노'에서 활동하던 성원을 처음 만나는데 성원은 당시 '매일 그대와'같은 자작곡으로 인정받고 있던 음악인이었다.[3] 성원, 전인권, 성욱 세 사람은 <전인권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1984년 봄무렵 음악적 견해 차이를 보이던 성원, 전인권, 성욱은 전인권의 모친상을 계기로 해산 상태로 들어간다. 전인권의 회고에 따르면 전인권 트리오의 해체 사유는 다음과 같다.

"최성원, 허성욱과의 활동은 1984년 5월 어머니의 죽음과 각자의 의견차이로 당분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3총사는 방배동의 '이트'라는 연주실을 연습장소로 택해 쓰고 있었는데 포크록을 하고 싶어하는 최성원, 클래식하길 원하는 허성욱 간에 가끔 마찰이 일곤 했다.그러던 차에 암으로 오랫동안 앓아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으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고 성원이와 성욱이도 잠시 헤어져 있게 됐다." (일간스포츠 스타스토리 - 전인권 1990)

1.2. 들국화 시절(1984~1987)

들국화 시절 대중에게 그의 목소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들국화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그것만이 내 세상'의 금지곡 지정 사유가 '창법 저속'(...). 바이브레이션이 없고 내지르는 샤우팅 창법이 주 원인.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판소리 명창들에게 창을 배워서 동굴에서 1년동안 득음 연습을 했다고 한다. 국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창법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깔끔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같은 해 여름, 덕환의 권유로 전인권, 덕환, 성욱 세 사람이 밴드를 재결성한다. 1984년 겨울에는 밴드 들국화가 결성되었으며, 1985년 6월에는 성원이 재합류했다. 데뷔 앨범은 1985년 9월 발매된다. 그동안 들국화의 곡들은 드럼 파트가 없어 리듬이 강조되지 않아 포크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지만, 앨범 녹음 과정에서 드럼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들국화의 곡들은 이전보다 록적인 이미지가 훨씬 강화되었다. 여기서 김도균의 증언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 아시아나의 기타리스트였던 김도균의 회고에 따르면 들국화는 포크 음악으로 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처음 볼 때는 들국화도 3인조였죠, 그런데 조금 독특한 멤버 구성이었습니다. 드럼이 없이 어쿠스틱 기타(전인권), 일렉트릭 기타(조덕환-그후 들국화를 탈퇴하고 도미) 그리고 베이스(최성원). 사실 처음 보는 형태였죠.[4] 매일 밤마다 연주를 하니까 항상 만나게 되고 또, 농담도 서로 자주 주고 받으며 아주 사이좋게 지냈었읍니다. 그 이후 앨범을 내고 국내에서 상당히 유명해 졌죠. 사실 음악적인 스타일은 저희와는 달랐읍니다. 제가 볼때는 포크 음악으로 부터 출발한것 같습니다. 그 쪽의 선배들은 한대수,김민기,동진,..등 이런 분 들로 부터 내려온 라인이 라고 봅니다. 그래서 rock 과 folk music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서로 돕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밥 딜런 노래를 지미 헨드릭스가 부르는 등 같은 히피 시대의 동지 들이죠....." 김도균 홈페이지. 지금은 없어짐.

들국화 1집은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성공하였으며 후에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에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이거JK는 전인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본인의 6집 타이틀 곡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에서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그 다음은 오른발의 차례/ 눈앞을 향해 행진'전인권'의 열정 어태킹(Attacking)"이란 랩을 만들어 넣기도 했다. 이 랩에서 언급되는 '행진'은 물론 들국화 1집의 1번 트랙.

2번 트랙인 '그것만이 내 세상' 한 곡만 해도 YB, 김경호, 이수, 인하, 박효신, 포지션, 요아리, 박완규, TheOne, 하동균, 영웅재중, 박정현, 정준영 등이 리메이크하거나 공식무대 혹은 비공식 무대에서 불렀다.

하지만 1986년 초 기타리스트 조덕환이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건너가며 탈퇴해 버린다. 그 여파인지, 1986년 9월에 발표된 들국화 2집은 들국화 1집 특유의 록사운드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혹평과 함께 참담하게 실패한다. 결국 들국화는 1987년에 해체하였다.

1.2.1. Index : 들국화 1집

※ 제작 : 1985년 9월 10일

1.행진 (작사:전인권 작곡:전인권)
2.그것만이 내세상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3.세계로 가는 기차 (작사:조덕환 작곡:조덕환)
4.더 이상 내게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5.축복합니다 (작사:조덕환 작곡:조덕환)
6.사랑일 뿐이야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7.매일 그대와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8.오후만 있던 일요일 (작사:이병우 작곡:이병우)
9.아침이 밝아 올때까지 (작사:조덕환 작곡:조덕환)
10.우리의 소원 (작사:안병원 작곡:안석주)


1.3. 솔로 시절 (1988~2011)

1988년에 1집 앨범 '사랑한 후에'를 발표한다. <돌고 돌고 돌고>를 히트시키며 솔로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에는 <전인권과 가야>밴드로도 활동하였다. 1991년 2집 '언제나 영화처럼' 이후에는 마약 사건으로 인해 10년 넘게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10여년 만인 2003년에 3집 '다시 이제부터'를 발표하고 스카이라이프 CF에도 출연하여 인권이라이프라는 유행어도 남겼고, KBS 신화창조의 비밀의 삽입곡으로 그의 대표곡인 '행진'이 선정되면서 다시금 재기에 성공하여 2004년에 4집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 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하지만 솔로 시절 20년중 후기 10년은 대마초와 자기관리 부실(...)로 목소리가 리즈시절에 비하면 형편없어졌고, 마약 사건을 넘어서 200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이은주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과 스토킹에 가까운 편집증세 때문에 대중적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을 기어가게 된다.

1.4. 들국화 재결성 후(2012~ 현재)

2012년 10월을 기점으로 들국화가 재결성하였다. 이때 아내와 재결성 재결합도 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된 동안 성찰도 많이 해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딥 퍼플 Smoke On the Water

홀리스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사랑한 후에
(전인권이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한다.[5]그래서 그런지 사랑한후에를 전인권만큼 부르는 사람이 없다.)

완전부활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아니 원숙미까지 더해졌다!

2. 사건

2.1. 마약

전인권은 유독 마약과 악연이 깊었다. 1987년 10월 성욱 등과 함께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마약 관련 구속만 4번을 더 당했다. 즉 대마초 흡연 혐의(1987, 1992), 메스암페타민 투약 혐의(1997, 1999, 2008)로 구속 횟수만 총 다섯 번에 달한다. 이외에도 2004년 10월에는 울산병원 응급실에서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투약해달라고 요구했다가 전날 같은 약을 투약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병원의 기물을 파손하고 병원 관계자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당시 출동한 경찰이 간이 마약 조사를 실시했으나 무혐의로 훈방 조치만 했다.

2007년에는 메스암페타민 복용 혐의로 조사 도중 필리핀으로 돌연 출국, 수배중인 상황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5개월간 체류하다 귀국, 인천국제공항에서 검거되었으며 필리핀에서 마약한 것은 사실이나 한국에서는 안 했다고 주장하였다. 한 차례의 항소끝에 2008년 3월, 징역 1년과 추징금 54만6,000원을 선고받았다. 가요계 후배와 동료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는데 사진작가 중만을 중심으로 이수만, 윤도현, 김장훈 등 16명이 천만원 정도를 변호사비로 모금하여 주었고, 윤도현김장훈은 변호측 증인으로도 출석하였다. 김부선, 조덕배, 정경수 등은 탄원서를 제출하여 구속보다 치료를 위해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이번이 다섯번째...) 시바 롤링 스톤즈는 마약난교도 했는데 뭐 이정도로

2009년 3월 출소하였으며 2008년 10월에는 지난 2002년 이별했던 전처와 재결합을하고 신곡을 작곡하며 콘서트를 준비하는 등 재기하는 듯하였으나 지병인 대상포진으로 첫 콘서트가 취소되었으며 아내와도 2009년 3월 다시 결별하였다.

그리고 2012년 들국화 재결성과 함께 아내와도 재재결합.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2008년 1월 25일 KBS의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가 2012년 5월에 해제됐다.[6] 그 뒤 2014년 3월 2일 배철수가 일요일 밤 11시에 진행하는 KBS의 콘서트 7080에 춘호와 함께 출연했다. 여기서 이제는 몸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전인권 본인이 말했고, 배철수도 전인권의 피부가 반짝거린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 전인권 자신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듯.

2.2. 故 이은주

2005년 여배우인 이은주가 자살하자 전인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주와 나는 레옹과 마틸다 같은 사이였다"라며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발언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흥미 위주로 끌고 간 일부 언론도 문제는 있다. 故 이은주의 친한 언니인 하씨는 "전인권씨는 이은주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은주의 스토커였다"면서 하루에 20차례씩 문자를 보내고, 새벽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폭언을 녹음하는 등 스토커 수준의 행동을 일삼았다고 밝혔다.

또한 故 이은주의 친오빠는 팬클럽 까페에 글을 올려 "문자 뿐만 아니라 당신과의 교류는 단순한 친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을 어찌하여 그렇게 착각을 하면서 이제 고인이 된 은주를 두번 죽이시는지 가슴이 아픕니다"는 심정을 전한 후 "그리고 그걸 기정사실인양 언론에 떠들어 대는 전인권씨를 보며, 연민마저 느낍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인권은 분위기 파악못하고 "이은주를 위한 노래 부르겠다"라고 밝혔다. 예상대로 전인권은 대차게 까였으며 대중들이 전인권에게 가졌던 호의는 모래처럼 사라져버렸다.

이은주를 사랑했는가 안 했는가를 떠나, 이은주가 반박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구원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기사들이 전부 와전된 이야기라는 소리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언론이 장난질을 친 것이라는 거. 명불허전 기레기.

기사들이 자극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인 정의에 입각하여 전인권의 발언을 왜곡시켰다는 저 주장이 사실이라면 분명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위의 글 또한 논리적 오류가 있으니, 전인권의 발언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잘못한것은 사실이란 것이다. 애초에 전인권이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은것은 이미 고인이 된 이은주씨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감정을 바탕으로 외부인들에게 증명받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위 글이 지적하고 있는 것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는데, 전인권과 이은주가 사랑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는가? 하는 것인데, 문제는 전인권의 주장이 팩트라고 해도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다는 거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단계에 따라 짝사랑, 혹은 스토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전인권이 애초에 욕을 먹은 이유가, 윗 글에서 처럼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대답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을 상대로 이 될 수도 있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된말로 전인권과 이은주가 정말 남녀간의 어떤 썸씽이 있었다고 친다면 이은주가 전인권에게 보낸 어떤 메시지가 있을 것이 아닌가.
남녀간의 사이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려면, 그는 왜곡되었던 언론의 주장을 바로 잡았어야 했다. 녀사이가 아닌 선후배 사이 혹은 정 분야에서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사이 등.
그는 자신과 이은주가 남녀사이였다는 증거도 내놓지 못했고, 언론의 잘못됨을 바로잡지도 않았다. 거기에 이은주씨의 주변에서는 전인권의 발언내용과는 전혀 다른 증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찌라시 연예인 X파일만 해도 이은주와 전인권의 스캔들 이야기가 있으나 단순한 친구사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즉, 설령 윗글처럼 중간에 전인권의 말이 언론과 네티즌에 의해서 과다하게 부풀려 진면이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그가 반론하지 못하는 고인을 상대로 자신의 감정을 마치 사실인듯 증언한 사실 자체의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전인권과 이은주 사태는 그가 불러일으킨 사건이며, 중간의 왜곡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왜곡에 대해서 반론을 전혀 하지 않으므로써 의혹을 더 증폭시켰다. 그건 왜곡한 이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런 뉘앙스의 말을 꺼낸 그의 잘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인권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미 고인이 된 더이상 어떤 의견도 낼 수 없는 상대인 이은주씨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설령 그것이 왜곡이라 할지라도 바로잡지 않고 입다물고 있었던건 애초에 말을 꺼낸 그의 잘못임이 분명한 것이다.

윗글은 기자들과 네티즌들의 사건의 왜곡에 대해서 분노하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전인권을 감싸주는데, 왜곡이 잘못된건 그 사실대로 지적하되, 중간의 내용이 부풀려졌다 하더라도 애초에 그러한 남들이 오해할만한 일을 말한 전인권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둘은 별개의 문제이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어 고의였던 그렇지 않던 간에 추문을 만든 뒤에도 입다물고 있었던 전인권에게 크나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최성원과의 파란만장한 관계

그의 평생의 동료이자 음악적 경쟁자였던 성원과는 말그대로 애증으로 점철 된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흥미롭게도 최성원의 별명 중에 ‘한국의 폴 매카트니’ 가 있는데 전인권을 존 레논에 대입하면 꽤나 그 관계가 들어맞는다. 포크락을 베이스로 대중친화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최성원과 락킹한 사운드로 시대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전인권. 각각의 음악 성향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에 놀라울 정도로 대응된다. 또한 전인권이 이것저것 문제로 언론사에 구설수로 오르내리고 방황하는 동안 최성원은 가요계 원로로서 별 풍파 없이 안정적이게 지냈고. 심지어 들국화 시절 포지션도 최성원은 베이스&보컬 전인권은 리듬 기타&보컬이였는데 이것은 정확히 비틀즈 시절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과 대응 된다. 이 정도면 정말 일부러 따라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들국화 멤버들이 엄청난 비틀즈 팬이었으니까..

놀러와에서 들국화가 이야기한 걸 요약하자면 안 싸운 날이 더 적었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심각한 것도 아니라 사소한 이유.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이런 걸로.... 물론 이건 농담일 것이고, 서로의 주관이 너무 뚜렷하면서 음악적 역량 역시 뛰어났기에 충돌하다보니 사소한 것 가지고도 싸운 게 아닌 가 싶다.

이제는 전인권도 오랜 방황의 길에서 벗어났고, 최성원 역시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기에, 무엇보다 다들 이제는 다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웬만한 평지풍파에는 눈 하나 흔들리지 않을 내공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게 된 듯. 애초에 1980년대에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 [1] 신해철의 라디오프로였던 스트네이션에서 말씀하시길 반주 한큐에 녹음, 보컬 한큐에 녹음 그리고 끝이었다고(...) 그땐 그랬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는데 그래서 백두산이라던지 그당시를 전후로한 여러 밴드들도 같은 이유로 1집 의 퀄리티와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한다.
  • [2]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로 간다.
  • [3] 전인권의 말론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의 아티스트지만 은근히 터프하다고한다. 운전할때보면 정말 무섭다고. 덤으로 본인의 무면허운전 이야기도 했다.
  • [4] 트리오시절의 들국화는 전인권,조덕환,허성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3인조였다가 최성원이 나중에 가입하게 되는데 김도균씨는 허성욱을 후에 들어온 멤버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 [5] 정확하게는 작사. 원곡은 알 스튜어트의 The Palace of Versaille라는 곡이다.
  • [6] MBC에는 명단에 없었다. SBS는 별도의 출연금지 명단이 없는 대신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결정한다고 한다. 참고로 KBS의 출연금지 명단은 MBC에서도 준용한다고 한다.(플러스 알파)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30 19:37:07
Processing time 0.107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