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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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纏足

본 항목에 직접 관련된 사진이지만 혐짤이라 어쩔 수 없이 가려 둔다. 참고로 저 사진에 나온 정도면 상당히 잘된 전족에 속한다. 일반적인 전족은 현대 관점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정도로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 중국의 풍습. 혹은 그 풍습으로 인해 만들어진 작은 발을 일컫는 말이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연원은 없다. 전설은 하나라때부터 다양하게 나타나고 오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 발견된 신발 유물을 토대로 살펴볼때 당나라 때까지 전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전족이 나타나는 시기는 북송 때부터다. 한족이 자체적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서방지역의 이민족들이 보여주던 발끝으로 추는 춤이 중국에 전래되면서 유행하다가 아예 발을 작게 만드는 식으로 변질되었다는 말도 있다.

북송 때부터 천년 이상 지속되며 20세기까지도 성행하다가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기에 들어서야 사라지기 시작했다.참고로 이때 전족을 폐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여 선교사인 로티 문이다.[1]

국내의 경우 단순히 천을 감싸서 발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 측 기록을 보면 아이가 6-7세때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들을 발바닥 쪽으로 꺾은 다음에 천으로 동여맨다고 한다. 그러니깐 일부러 부러뜨려서 성장을 못하게 하는 쪽이다(…).

또한 동여매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전족을 하기 시작한 초기 1-2년 정도를 억지로 많이 걷게 해서 발가락 관절에 일부러 상처를 내고 부러트려서(!) 그걸 반복한다. 그렇게 되면 뼈가 곪아서 연해지는데 계속 강하게 동여매서 크기를 작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통 10명 중에 1명의 여아가 전족을 하던 도중 패혈증 등으로 죽는다. (멀쩡한 뼈를 부러트리고 살을 괴사시키는데 아무 일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이렇게 전족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린다. 이렇게 완성된 전족의 x-ray 사진을 보면 척골(발 뒷꿈치에서 발가락 사이의 뼈)이 발등 쪽으로 둥글게 휘어 솟아올라 있다. 엄지 발가락과 발뒷꿈치가 맞닿아 있는 형태.

현재의 관점으로 봤을 때 모양이 무척 흉하다. 발 사이즈가 그냥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발가락과 발꿈치가 뒤틀려버리기 때문. 당연하지만 전족을 한 여성 본인도 무척 고통스러운데다 걷기도 불편했다.

헌데도 이런 풍습이 천년이 넘도록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발의 기준으로 통용되었다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저 발로 걷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일 터, 그 때문에 여성의 하반신(사타구니)쪽이 발달하게 되고 이게 조임을 더 강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즉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거기다 발이 저 모양이다 보니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하지만, 중국 역사상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던 기간은 별로 없어서 신빙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은 계획생육정책의 영향으로 극심한 남초 현상을 겪고 있지만...

또 다른 의견은 남성들의 우월감 표출. 전족을 한 여성은 노동력의 가치가 없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발이 저 모양이 되니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어서 지팡이를 짚고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한다. 때문에 전족을 한 아내 = 부의 상징이 되어 부자들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족을 한 아내를 선호했다는 설도 있다.

반면에 일부 설에 따르면 예상 외로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선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전족 관련 자료의 대부분은 중년 혹은 노년의 여인들의 을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을 성기와 마찬가지로 생각하여 젊은 여성들이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라고, 실제 발은 대부분 아기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 했다고 하며, 또한 이런 발을 이용하여 에 활용했다.

발을 감싼 상태로 생활하기 때문에 냄새가 상당히 심해서 이런 우스개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손님 : 이 고약한 냄새는 무엇이냐?
하인 : (머뭇거리며) 주인 마님이 전족을 잠시 풀었습니다.
손님 : 전족을 풀었다고 이 정도 냄새가 날 리가 없다. 솔직히 대답하거라.
하인 : (더욱 머뭇거리며) 실은 양쪽 다 풀었습니다.


물론 전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유한 집안의 여성이나 기녀에 한정된 일이었으며, 반대로 전족을 하지 않아 큰(그러니까, 정상적인) 발을 지닌 여성을 천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특권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남송 시대부터 평민들이 상류층을 모방하기 시작하며 조금씩 퍼지더니 명나라 대에 이르면 궁의 여성들에겐 전족이 필수가 된다. 또 홍무제 주원장은 자신에게 끝까지 저항한 사성의 본거지 백성들을 처벌할 때, 남성은 글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여인은 전족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전족을 하지 않는 것이 천민과 죄인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전족이 더욱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남성들은 아내의 신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자랑(...)하고 다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아내의 신발이 유독 작으면 그만큼 부러움을 샀던 모양..

대의 만주족은 상류층이더라도 전족을 하지 않도록 엄하게 금했다.[2] 그리고 강희제때 잠깐 전족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극심한 반발에 부딪쳐 실패로 돌아갔다. 어차피 여성들의 일인지라 문자 하나하나까지 트집잡아 한족 문인들을 탄압한 청도 극심한 반발을 감수하고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건륭제처럼 전족을 아주 좋아한 황제도 있었다. 대의 전족 바리에이션으로 10세 초중반의 만주족 여자 아이들이 한 도조아가 있다. 다만 이 도조아는 여성의 자율에 맞겼고 한족보다 시행 연령이 높고 길이가 길었으며 발을 부러뜨려서 묶는게 아니라 발이 커지지 않도록 꽉 조이는 정도라 염증이나 감염, 기형의 위험이 있으나 최소한 한족 여성들처럼 장애인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도조아 말고도 만주족 귀족 여인들은 하이힐처럼 굽이 높은 나막신을 신어 전족한 여인의 종종걸음을 모방했다.

명청대에는 삼치금련이라 하여 9~10cm를 넘지 않고 칼날처럼 가늘며 냄새까지 좋아야 한다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현대인 관점에선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전족 기준이 확고히 자리잡으면서 여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졌으며 전국적으로 전족미인 선발대회까지 열렸다. 이 날만은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보여주어선 안되는 맨발을 문밖으로 내놓고 남자들의 평가를 받았고,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 집의 남자는 모든 남자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심사기준이 흠좀무 한데 발 모양이 예쁘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모양만 예쁜 게 제일 낮은 등급이었고, 모양도 좋고 촉감도 여성의 가슴처럼 좋은 전족이 중등급, 모양과 촉감에다 향기까지 좋은 전족이 최상급의 전족으로 평가되었다.

태평천국에서도 전족을 금지했고[3] 변법자강 운동을 전개한 유웨이양계초가 전족을 금하는 모임을 만들었으며 1894년엔 서태후도 다시 금지령을 내렸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전족이 곧 미인,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이 되는 바람에 전족을 안하면 시집을 못갔기 때문이다. 역시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이 5.4 운동 이후 바뀌게 되면서 전족이 사라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4]

여성할례와 함께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의 관점에 의해 왜곡되는 여성의 신체를 잘 나타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실제로 신체가 왜곡되니까. 전족의 거부는 실제로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 성 운동의 중요한 모토이기도 했다.[5]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까지는 가슴을 드러내는 것보다 다리를 드러내는 게 더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당시 중국 여인이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전족한 발을 보여준다는 것은 알몸을 보여준 것만큼 수치스러운 것이었다.[6] 변법자강운동 당시 일어났던 천족운동은 전족한 발을 모두 풀고 전족도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강제로 전족한 발을 보이게 된 여성들은 수치심에 못 이겨 자살하는 사건도 빈번했다고 한다. 전족이 아무리 야만적이고 비실용적이였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여성들 자체에서도 전족을 당연시했던 것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전형적 사례.

그래서 현재는 전족을 한 사람은 아주 나이든 할머니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놀라운 게 아니라 당연한 얘기다. 공산당이 국민당을 물리친 시기 그리고 물리치고도 일정 기간까지는 중국 전토를 완전 지배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

오랜 기간 내려온 풍습답게, 전족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문학 작품도 무척 많다. 금병매에서는 서문경반금련의 전족에 반하는 걸로 나온다. 영화로 만들어진 금병매에서도 이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전족은 그냥 크기가 작아진 발 정도로 나와 사람들이 '독특하긴 하지만 이해 못할 취향은 아닌 것 같아' 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실체는 맨 위의 사진.

참고로 이 전족은 중국의 풍습 중 유일하게 다른 나라로 일절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 야만성과 비실용성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펄 벅은 중국에서 가장 없애야 할 게 이 전족이라고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대지 3부 들들에선 중국인은 모두 전족을 한다고 비웃는 백인들을 풍자하면서 중립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위해 건강을 해친다는 점에서, 하이힐이 현대의 전족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족 수준이 아니라도 '작은 발'이 미인의 조건 중 하나였던 건 서양에서도 비슷했던 듯하다. 근대 영국 배경인 유명한 동화 <소공녀>에선 주인공의 작은 발을 놓고 급우들이 분명 비싼 신발로 작아보이게 커버했을 거라고 열폭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멀리까지 갈 것 없이 이 아가씨만 봐도...

무협지는 말할것도 없고 영화나 각종 시대극에 절대로 안 나온다. 발만 CG 처리하면 굳이 고증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제 중국인은 그냥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걸 잊고 싶은 듯. 일본 사극이나 관련 매체 등지에서 치아를 시커멓게 물들인 여성들이 아예 안 나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지만 일본쪽은 사극의 생활 고증이 점차 디테일해짐에 따라 이러한 헤이안 시기의 풍습이 자세하게 묘사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보는 현대인 입장에서는 극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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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이 사람은 로티 문 성탄절 특별헌금(Lottie Moon Christmas Offering)이 있을정도로 중국 선교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졌던 여선교사다.
  • [2]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보면 전족을 했는지의 여부로 한족만주족 여성을 구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족 여인들의 경우, 청이 전족을 금하자 남자들은 굴복하여 변발을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며 전족을 더 심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막힌 민족투쟁정신
  • [3] 홍수전은 전족을 싫어했으나, 정작 태평천국의 고위 간부들은 전족한 여인들을 가까이 했다.
  • [4]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많은 중국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중국인 및 한국인들에 대한 소설도 쓴 여류작가 펄 벅대지를 봐도 주인공 왕룽이 전족한 롄화에게 반하는 게 나온다.
  • [5] 대표적인 인물이 저우언라이의 아내 덩잉차오.
  • [6] 심지어 낯선 남자에게 여성이 전족한 발을 보여주는 일은, 그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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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2-12 01: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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