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last modified: 2015-04-05 19:51:57 by Contributors

Contents

1.
1.1. 일반적 의미의 情
1.2. 루리웹 속어 情
2.
3.
3.1.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正
3.2. 셈할때 쓰는 正
3.3. 숫자로써의 正
4.
5.
5.1. 개요
5.2. 전성기
5.3. 내분
5.4. 쇠퇴기
5.5. 자산(子産)의 개혁
5.6. 다시 쇠퇴기
5.7. 역대 군주
5.8. 여담
6.
7.
8.
9. 한국의 성씨
10. 연장의 하나
11. SBS드라마
12. 錠, Tablet
13. 町, 일본의 행정구역


1.

1.1. 일반적 의미의 情


한자 자체는 '뜻 정'이지만, 쉽게 말해서 '감정'을 뜻한다. 주자의 사단칠정, 심통성정 등의 이야기를 미뤄보면 꾸준하게 형성되는 성격과 별개로 상황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정을 뜻한다. 현대 한국에서는 감정에서 더 나아가서 상대를 좋아하는, 따뜻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affection, intimacy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정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아닌 그 사람과 자신에 대한 관계에 대해 갖는 애착같은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A는 B와 10년을 투닥이며 지내왔는데, B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쓸쓸함이나 싫은 반응 같은 것을 느낄때 사람들은 A가 B에게 미운 정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허나 이것은 B가 아닌 A가 B에 대한, 그러니까 투닥이는 상대라는 관계에 대한 애착이지, B라는 인간 자체에게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 둘을 구별하여 생각하는 것이 어렵고, 익숙치 않기에 흔히 사람들은 그게 그게라고 생각할 뿐이다.

서양은 동양에 비해 정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깊은 이유도 있고 일단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의 자립심을 위해 일부러 독립된 상태라는 전제 하에 키운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부모는 자식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쓴다고. 게다가 애초에 영어 중에서 정을 뜻하거나 대체할 만한 단어 자체가 없다. 반면에 동양은 정이 서양보다 깊으며 특히 단체주의 성향이 짙은 대한민국이 유난히 크다고 한다.

한국 국민성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에 하나이다. 다정하다, 정이 들다, 정 떨어지다, 미운 정, 고운 정, 정 없다 등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고 사람의 성격을 뜻하는 단어로도 많이 쓰인다. "과연 외국에 비해서 한국인이 정이 많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의 집 아이를 보고 귀여워한다든지, 그런 것을 그집 부모가 용인을 한다든지,[1]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을 신고할 수 있지만 신고를 안 한다든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더치페이는 정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번갈아가면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집단도 있다. 반면 미국 같은 데에서는 아무리 친해도 칼같이 나눈다. 그래서 팁을 나누다가 머리가 빻아진다 따뜻한 남부로 갈 수록 더 정이 많다는 인식도 있다. 지방 사람이 서울 처음 왔을 때 느끼는 '깍쟁이'같다는 것도 이런 이유. 이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북유럽 사람들보단 남유럽 사람들이 더 열정적이고 다정하다.
전통적으로 보면 앗이, 같은 것도 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양날의 검이듯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학연, 지연, 혈연 등이 단순히 개인적 도덕성의 결여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내고, 같은 가족 관에 너무 객관적인 잣대를 들어미는 것이 무정하다고 생각하는 인식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도 개인주의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서 기성세대들과 같은 정의 모습을 보긴 힘들다.

하지만 이 정이란 것이 그나마 경제성장기 시기까진 괜찮았지만 그 이후에 들어서선 서구화된 한국사회에 맞춰서 정개념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며 폐단이 심해지게 되었다. 인맥이나 우정과 같은 혜택을 받지못하는 이들은 차별이나 따돌림을 받게 되었고 이것 또한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는 '정'때문에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들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비정

오리온 초코파이가 언젠가부터 제품 이름에 이 말을 넣어서 '초코파이 情'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다. 그리고 한자를 모르는 아이들은 초코파이 아홉이라고 읽는다

일본어에 쓰일 경우에는 '인연'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뒤집어서 보면 과 비슷하다고 한다.

1.2. 루리웹 속어 情

루리웹상에서는 음란물등을 가리키는 속어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야한 만화붕탁을 가리키며 굳이 야한 만화가 아니더라도 음란물 대부분을 포함한다. 음란물이 아닌 경우에도 무언가를 공유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쩡"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정 달린다"라는 표현상에서 사용되며 "정 달린다"의 의미는 게시판 상에 음란물을 직접 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어느 게시판에서 "지금부터 정 달린다"라는 제목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19금 자료를 대놓고 게시하겠다는 의미. 당장 오른쪽 마우스버튼 클릭해서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대부분 낚시 자료지만 가끔 제대로된 물건(!)이 올라오면 미친듯이 추천수가 올라간다. 물론 이 글은 그 게시판의 운영자가 일단 먼저 저장한 다음에 의해 삭제당하고, 그 글을 게시한 사람은 아이디를 정지, 즉 강등환을 먹는다. 유게이들은 이들을 '정립투사'라 칭한다. -_-;

"정 나눈다"라는 표현 상에서 사용될 때는 게시판에 직접 올리는 것이 아닌, 이메일이나 파일 호스팅 사이트 주소를 이용하여 정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도 강등환을 맞는다는 속설이 퍼져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당신이 루리웹 유게이라면 그냥 하지 말자.

수많은 강등환에도 불구하고 불사의 의지로 쩡을 올리는 문화는 붕탁과 함께 루리웹 유머게시판만의 특이한 풍습으로 남아있다.

2.

신장(腎臟)에 저장되어 인체의 생장발육과 생식기능을 담당하는 정기(精氣).

이 자를 쓴 단어에는 , 정액, 사정 등 남성의 성 활동과 관련된 단어가 많다.

3.

3.1.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正

바를 정. 바르다, 바람직하다란 의미의 한자이다. 바람직하다?
서로 같다라는 의미도 있어 다각형에서 각각의 각과 변이 같은 경우 正이 붙여 각각의 각과 변이 같음을 알릴때도 사용한다.

3.2. 셈할때 쓰는 正

한자의 획수가 한손의 손가락수와 같은 다섯개인데다, 각기 획의 방향이 달라 알아보기도 쉽기에 반장선거등 많지 않은 수를 셀때 사용한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한자문화권 어디에서든 통용되는 용법.[4] 허벅지에 쓴다면 어떻게 될까?[5]

3.3. 숫자로써의 正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0^40
큰 수의 단위
(澗)10000배
정(正)10000배
(載)
십진급수(十進級數)중에 하나. 인격이 바른 대인배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이렇게 큰 수를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알게뭐야. 1099511627776(=2^40) 과 9094947017729282379150390625(=5^40)의 곱이라 쓰고 합체라고 읽는다으로 나타낼 수 있다. 흠많무

간단히, 숫자 1의 제곱이고, 100억의 네제곱!!에 달하는 숫자.
우리 은하의 질량을 KG으로 환산 했을때 6*10^42 KG, 즉 600정 킬로그램으로 추정된다 카더라. 참고로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의 질량의 80% 정도 된다고 한다.

SI 접두어로써는 100엑사의 제곱에 해당한다.

4.

십간
십간(十干)에서 네번째. ex) 정유재란
중국어로는 탄소가 4개인 화합물을 뜻하기도 한다. ex) 丁烷

5.

5.1. 개요

중국 서주시대부터 존재하던 나라로 시조는 환공(桓公), 수도는 신정(新鄭)이었다. 작위는 백작이었으며 주나라의 제후국 중에서 봉건 시기가 매우 늦은 나라이다. 그 이유는 주무왕은나라를 멸망시킨 후나 주성왕이 분봉을 한게 아니라 서주 말기였던 선왕(宣王) 때 자신의 동생 우(友)를 봉했기 때문이다. 그가 환공으로 환공은 왕실 사도로 조카였던 유왕(幽旺)을 보필했으나, 견융의 침입으로 유왕을 보호할려다가 전사했다.

5.2. 전성기

지리적으로 중원의 이점을 살려 교통과 상업이 발달하여 BC 8세기경 환공의 아들 무공(武公)과 손자 장공(壯公) 때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들은 경사(卿士)를 지냈다. 장공의 어머니 무강(武姜)이 낳을 때 거꾸로 나와서 난산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장공의 이름을 역산(逆産)을 의미하는 오생(寤生)으로 지었다. 무강은 장공을 매우 싫어했으며 대신 그 반대급부로 아우 단을 사랑했다. 무강은 단에게 요충지였던 제읍을 줄 것을 청했다가 장공이 이를 거부하자 경성을 주기를 요청하니 이를 승낙했다. 이에 채중(祭仲)은 너무 큰 읍을 주었다고 간언하기도 했다.

훗날 태숙 단이 무강과 호응하여 본국을 치려 하자장공은 군사를 일으켜 단의 봉읍 경성을 치니 경성 사람들이 단을 배반했다. 단은 언으로 도망했고 장공은 추격하자 단은 다시 공나라로 도망갔다. 장공은 무강을 성영으로 옮기고 “황천(黃泉, 저승)에 가기 전까지는 절대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습니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이를 후회했고 이듬해 영고숙이 황천(지하수)에서 만나면 된다고 진언하자 이를 따라 굴을 파서 어머니를 만나고 화해했다. 장공은 각 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천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장공의 만행을 견디지 못한 환왕(桓王)[6]이 장공을 토벌하러 오자 대부 축담(祝聃)이 화살을 쏴서 환왕의 어깨를 맞춰 버렸다. 그나마 처음에 축담이 왕을 사로잡자고 한 걸 거부한 거다. 거기다가 장공이 잘못한 것을 천자가 토벌하러 온 건데 장공은 천자에 맞선 것으로 화살맞은 환왕에게 사과와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에 대해 환왕은 별 말을 하지 못했고 왕실의 권위는 추락했다.

5.3. 내분

정나라는 사실상 춘추시대를 일으킨 국가였지만 패자의 위치까지는 오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왕실의 권위를 바닥으로 만든데다가, 애초에 영토가 크지 않은 나라였고 장공 사후 권력다툼으로 인한 내분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해 약소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장공은 등만과 혼인하여 태자 홀을 낳았으나, 궁중에는 총애하는 여자가 많았고 11명의 아들을 더 두었다. 이들 중 공자 돌, 공자 미, 공자 의가 특히 군위를 겨룰 만했다. 장공이 죽자 채중이 세자 홀을 세우니 그가 소공(昭公)이다. 하지만 채중이 송나라의 협박을 받고 소공을 내치고 그의 아우 여공을 세웠다. 하지만 여공은 채중을 제거하고 국정의 실권을 쥐려고 했다. 여공은 채중의 사위인 옹규(雍糾)를 시켜 채중을 암살하게 했지만 옹규의 아내인 채중의 딸이 이를 채중에게 발설하여[7] 옹규는 살해당했다. 그리고 채중은 여공을 쫓아내고 다시 소공을 군주의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소공은 대부 고거미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장공이 고거미를 경으로 삼으려 했을 때 소공이 반대했었다. 결국 고거미는 이에 앙심을 품고 중신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수렵에서 소공을 살해하고 말았다.

채중은 이에 당황하였으나, 자신이 쫒아낸 여공을 다시 불러들이면 X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공자 미(亹)를 군주로 세웠다. 하지만 제나라 양공이 위나라 수지 땅에 주둔하자 고거미를 보좌로 데리고 양공과 회합했다. 제양공과 미가 둘 다 공자일 때 서로 싸웠으므로 채중은 미에게 수지에 가지 말기를 청했으나, 미는 강한 제나라가 제후를 거느리고 국외로 추방당한 여공과 함께 자신을 칠 것을 두려워해 끝내 갔다. 양공은 미에게 과거의 일을 사과하도록 요구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자 분노하여 숨겨둔 병사로 자미를 죽이고 말았다. 더불어 고거미는 군주를 시해했다는 이유로 거열형에 처했다.[8] 이에 채중은 공자 영(嬰)을 다시 군주로 세웠다. 하지만 여공이 본국으로 쳐들어와 수장 부하가 대릉에서 사로잡혔고 부하가 자신을 살려주면 여공을 임금으로 들이겠다고 했다. 그 조건으로 풀려나 영과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복위시켰다. 여공은 복위했지만 채중에게 복수는 하지 못했는데 이미 채중은 죽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공 이 후 그의 아들들간에 내분으로 엉망이 되었다.

5.4. 쇠퇴기

여공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문공(文公)이 즉위했다. 정나라의 위치는 당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패권을 잡고자 하는 제후들은 제환공을 필두로 우선 정나라를 굴복시켜 자기 휘하로 넣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패권을 두고 다투는 (濟), (晋), (楚)는 심심하면 정나라를 공격했고 정나라는 살기 위해서 제나라가 쳐들어오면 제나라에 붙고 진나라가 쳐들어오면 진나라에 붙고 초나라가 쳐들어오면 초나라에 붙는 외교전술로 명맥을 보전했다. 제, 진, 초의 패권경쟁은 누가 정을 자기 편으로 끌어넣는지를 보면 누가 우세한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정나라는 각 제후국들의 완충 지대라는 점을 이용해서 간신히 나라를 보전하고 있었다.
중간에 진나라 공자 중이가 방문했을 때 무례하게 대했는데 그는 훗날 진문공이다. 그 결과 나중에 진문공에게 뼈저리게 털렸다. 문공의 뒤를 이어 목공(穆公)이 즉위했는데 그의 재위 시기 효산 전투가 일어나 진(晉)나라가 진(秦)나라를 발라버렸다. 목공의 뒤를 이어 영공(靈公)이 즉위했는데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경 자공과 자가에게 시해당했다. , 초나라에서 영공에게 큰 자라를 보냈는데 자가와 자공이 영공에게 조현하려는데 자공의 식지(食指)[9]이 저절로 움직였다. 자공이 자가에게 '예전에도 손가락이 움직인 일이 있었소. 반드시 기이한 것을 먹을 것이오.' 들어가려는데 자라국을 영공에게 바치는 것을 보고 자공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영공이 그 웃은 까닭을 물으니 영공에게 그대로 말했다. 영공은 약올리기 위해 자공에게는 자라국을 주지 않았다. 자공은 노하여 손가락을 솥에 넣고 맛보고 나왔다. 영공은 자공의 버릇없는 행태에 노해 자공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자공은 자가와 함께 모의하였고 선수를 쳐 여름에 흙자루로 눌러 영공을 시해했다. 영공 사후, 영공의 아우 공자 거질을 옹립하려 했으나, 거질이 사양하고 나이순대로 형 공자 견을 즉위시키니 그가 양공(襄公)이다. 참고로 영공은 죽은 후에는 시호를 유공(幽公)이라 했으나, 자가가 사망한 후 양공이 자가의 일족을 축출하고 영공으로 시호를 고쳤다. 다만 시법에 따르면 유(幽)나 영(靈)이나 둘 다 좋은 시호는 아니다.

5.5. 자산(子産)의 개혁

이처럼 정나라는 군주의 힘이 약햇다. 거기다 목공의 아들들의 후손들이자 방계 공족들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나마 간공(簡公) 때 재상으로 임명된 자산[10]의 개혁정치를 통해 잠시 부흥하기도 했다. 자산은 25년 동안 재상을 지냈는데 일련의 교묘한 외교활동을 통해 약한 정나라를 열강 사이에서 쓰러지지 않고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지위도 존중받게 되었다. 공자가 자산을 그토록 높게 평가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자산은 재상으로 있으면서 통치집단 내부의 암흑, 정치문란, 민중들의 무법, 불법비리 등 범국가적인 혼란에 맞서 먼저 국가질서를 정돈하는 일부터 손을 댔다. 법규와 제도를 건전하게 다듬고 통치기구의 등급을 제대로 갖추었으며 각종 법률조항을 형정(刑鼎)에다 새겨 전국에 반포했다. 각종 엄격한 제도를 실행하기 시작했는데 줄곧 혼란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정나라에서 이런 조치는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백성들은 원망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냈고 심지어는 노래까지 만들어 자산을 저주했다. 그러나 자산은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시정개혁을 굳세게 밀고 나갔다. 그리하여 3∼5년 사이에 정나라의 정치는 큰 효과를 보게 되었고 백성들은 다시 노래를 지어 자산을 칭송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자산이 병이 든 지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자 자태숙(子太叔)이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그는 차마 엄한 정치를 펼치지 못하고 관대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정나라에 도적이 갈수록 늘고 사회 치안이 혼란에 빠졌다. 자태숙은 "그 분(자산)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골치는 없었을 것을"이라며 후회했다. 그리하여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강도들을 무력으로 잡아들이고 죽였더니 사회 치안이 비로소 나아졌다.

정나라는 오랫동안 대국 세력에 의해 통제당해왔기 때문에 통치계층 내부의 귀족세력도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간 모순된 입장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권력쟁탈을 위해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일도 그칠 날이 없었다. 자산은 재상이 된 뒤 국내의 이런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압적인 수단으로 나간다면 각종 세력이 연합하여 반발할 것이 뻔했다. 그는 잠시 모순을 이용하여 양측 모두 상처를 입힌 다음 다시 하나하나 징벌하는 책략을 구사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군주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었다. 정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교의 성패가 매우 중요했다. 자산은 집정 기간 동안 제후들과 여섯 차례 이상 동맹을 가졌는데, 민첩한 외교수단으로 정나라의 굴욕적인 모습을 바꾸어 명예와 지위를 유지했다.

5.6. 다시 쇠퇴기

하지만 자산 사후에는 권력다툼으로 또다시 쇠퇴했다. 간공의 아들 정공(定公) 때는 초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이 망명왔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진(晉)나라와 짜고 내응할려다가[11] 걸려서 분노한 정공에 의해 주살되기도 했다. 이 후 애공(哀公)은 정나라 사람들에 의해 시해되기도 했으며 전국시대 들어서는 더욱 입지가 약해졌다. 유공(幽公)은 (韓)나라의 무자(武子)의 침입을 받아 피살되고 그의 아들 또는 아우[12]인 수공(繻公)은 재상 자양을 죽였다가 2년 후 자양의 무리에게 시해당했다. 결국 유공의 아우 강공(康公) 때는 한나라에 눌려 부서와 양성을 빼앗기고 결국 한나라 애후(哀侯)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 후 한나라는 정나라의 옛 수도였던 신정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5.7. 역대 군주

  • 환공(桓公) 우(友): 기원전 806년 ~ 기원전 771년
  • 무공(武公) 굴돌(掘突): 기원전 770년 ~ 기원전 744년, 환공의 아들
  • 장공(莊公) 오생(寤生): 기원전 743년 ~ 기원전 701년, 무공의 아들
  • 소공(昭公) 홀(忽): 기원전 701년, 장공의 아들, 폐위
  • 여공(厲公) 돌(突): 기원전 700년 ~ 기원전 697년, 장공의 아들, 폐위
  • 소공(昭公) 홀(忽):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95년, 복위, 고거미에 의해 시해
  • 미(亹): 기원전 694년, 장공의 아들, 제나라 양공에 의해 시해
  • 영(嬰) 기원전 693년 ~ 기원전 680년, 장공의 아들, 부하에 의해 시해
  • 여공(厲公) 돌(突): 기원전 679년 ~ 기원전 673년, 복위
  • 문공(文公) 첩(踕): 기원전 672년 ~ 기원전 628년, 여공의 아들
  • 목공(穆公) 란(蘭): 기원전 627년 ~ 기원전 606년, 문공의 아들
  • 영공(靈公) 이(夷): 기원전 605년, 목공의 아들
  • 양공(襄公) 견(堅): 기원전 605년 ~ 기원전 587년, 목공의 아들
  • 도공(悼公) 비(費): 기원전 586년 ~ 기원전 585년, 양공의 아들
  • 성공(成公) 곤(睔): 기원전 585년 ~ 기원전 582년, 양공의 아들
  • 수(繻): 양공의 아들, 기원전 581년, 성공이 진나라에 구금된 후 추대, 신하들에 의해 시해
  • 곤완(髡頑): 기원전 581년, 성공의 아들, 임시로 추대
  • 성공(成公) 곤(睔): 기원전 581년 ~ 기원전 571년, 복위
  • 희공(僖公) 곤완(髡頑), 운(惲): 기원전 570년 ~ 기원전 566년, 복위(정식 즉위), 재상 자사에 의해 시해
  • 간공(簡公) 가(嘉): 기원전 565년 ~ 기원전 530년, 희공의 아들
  • 정공(定公) 영(寧): 기원전 529년 ~ 기원전 514년, 간공의 아들
  • 헌공(獻公) 채(蠆): 기원전 513년 ~ 기원전 502년, 정공의 아들
  • 성공(聲公) 승(勝): 기원전 501년 ~ 기원전 464년, 헌공의 아들
  • 애공(哀公) 역(易): 기원전 463년 ~ 기원전 455년, 성공의 아들, 정나라 사람에 의해 시해[13]
  • 공공(共公) 추(丑): 기원전 454년 ~ 기원전 429년, 헌공의 아들
  • 유공(幽公) 이(已): 기원전 428년, 공공의 아들, 한무자의 침입을 받아 전사
  • 수공(繻公) 태(駘): 기원전 427년 ~ 기원전 396년, 유공의 아들[14] 또는 아우[15], 재상 자양의 무리의 의해 시해
  • 강공(康公)[16] 을(乙): 기원전 395년 ~ 기원전 375년, 수공의 아우, 한나라 애후의 공격을 받아 멸망

5.8. 여담

시경 중에서 '정나라의 노래'[鄭風]에는 음란한 노래가 많다고 해, 역사에서 음란의 대명사로 쓰였으며 림별곡의 '혀고시라 밀오시라 뎡소년(鄭少年)하'의 '뎡소년'이 이 정나라에서 따온, '음란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란 설도 있다.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 호질의 배경이 정나라로 나오는데 위선자인 북곽(北郭) 선생과 열녀 표창까지 받았지만 성이 각각 다른 아들들이 다섯이나 있는 이웃의 동리자(東里子)라는 과부가 나온다.

6.

규모가 작은 배.
예) 경비정.

7.

솥 정. 솥 모양을 딴 한자로서, 밑에 달린 3개의 발은 균형과 견제, 안정을 뜻하는 것으로 자주 비유된다..

8.

우물 정. 전화기에 있는 #()과 비슷해서인지 ARS같은데서 자주 샵 대신에 우물 정자라는 표현을 쓸 때가 많다.

9. 한국의 성씨


정(성씨)항목 참조.

10. 연장의 하나

돌에 구멍을 뚫거나 돌을 쪼아서 다듬는데 사용되는 쇠로 만든 연장. 끝이 뾰족한 막대기 처럼생겼다.

11. SBS드라마

2002년 8월에서 11월까지 방영했던 김지호 주연의 드라마.
김지호(미연)와 유준상(병수)가 3년차 부부 역으로 나왔다.

12. 錠, Tablet

13. 町, 일본의 행정구역

시정촌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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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개인주의가 심한 곳에서는 남의 집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무례이다.
  • [2] 락커룸의 제왕의 명장면에 자막을 붙인것. 여기에 출현한 두 사람은, "님 쩨발 정 좀 쭈세여"라고 구걸하는 쪽이 마크 울프, "조~옷~까"라고 대답하는 쪽이 반 다크홈.
  • [3] 정작 주인공은 달리지 않아 아직까지 강등환을 맞지 않고 살아있다....는 풍문이 있지만 사실 대장의 글은 정과는 전혀 무관한 글이였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어느새 유게 배너화가 되었다(...)
  • [4] 서양에서는 비슷하게 이런 모양을 사용한다. 다들 한번쯤은 봤을법한, 4개의 작대기를 빗금 하나로 묶은 그 모양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섯개씩 세는 건 같은가보다. 아마 손가락이 다섯개라서 그런지도?
  • [5] 궁금하면 그날 검열삭제검열삭제검열삭제한 횟수만큼 여친 허벅지에 써보자. 물론 뺨맞고 헤어지고 보너스로 고소먹을 각오는 해야한다.
  • [6] 평왕(平王)의 손자
  • [7] 채중의 딸이 어머니에게 물었는데 남편은 다시 맞아들일 수 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채중의 딸은 기탄없이 아버지에게 이를 말했다.
  • [8] 사기 정세가에서는 고거미도 함께 영을 옹립했다고 하나,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양공이 고거미를 거열형에 처했다고 나온다.
  • [9] 둘째 손가락
  • [10] 목공의 손자로 이름은 교(僑)이다. 자산은 그의 자다.
  • [11] 태자 건이 자신을 정나라 군주로 만들어주면 정나라 내부에서 호응하겠다는 조건으로 진나라를 끌여들였다. 정공은 태자 건을 엄청나게 대접한 것에 비하면 명백한 반역 행위다.
  • [12] 사기 육국연표에서는 아들, 정세가에서는 아우
  • [13] 사유는 불명
  • [14] 사기 육국연표
  • [15] 사기 정세가
  • [16] 사기 육국연표와 달리 사기 정세가에서는 시호 없이 '정군(鄭君) 을(乙)'로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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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5 19: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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